그 아가씨 정말 성격하고는... 곧 죽어도 절대 지지는 않는구만!
윤아의 몸은 마치 깃털처럼 가벼웠다. 그렇다고해서 정말로 깃털같아서 업고있는 무게가 전혀 안느껴진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업기 힘들다고 말할 무게는 결코 아니었다.
"....."
처음에는 그렇게도 파닥거리면서 발버둥을 치던 윤아였지만 이제는 포기를 한건지, 아니면 자기도 내심으로는
계속 업혀있고 싶은 것인지 꽤 잠잠해져서 조용히 업혀있는 상태였다. 내 어깨에 두른 팔을 떨어지지
않게 맞잡아 붙들고 있는걸 보니 아무래도 이제 더 반항같은 것은 하지 않을 듯 싶었다.
'그래. 그건 다 좋은데...'
하지만 정말 어처구니가 없게도, 18 세의 여고생을 등에 업고 길거리를 활보한다는 것이 그렇게나 어려울 수
밖에 없었던 그 이유란.... 그녀가 반항을 하느냐 마느냐의 유무도 아니었고, 내가 그녀를 업을 만한 힘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도 아니었으며, 심지어는 길을 가다 우릴 힐끗 한번씩 돌아보는 행인들의 눈초리 또한 아니었다.
'으아...! 이거 너무 딱 붙었잖아!'
그것은 다른 그 무엇도 아닌, 등 뒤에서 등줄기 전체를 통해 생생히 느껴지는 소녀의 굴곡이 가져다주는 바로
이 감각이었다. 교복이 두겹이나 사이에 가로막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등판을 말캉말캉하게 짓눌러대는
이 뭉클한 감촉이 무엇인지 정도는 내가 병신이 아닌 다음에야 모를 리가 없었다.
게다가 윤아의 아랫 허벅지를 받쳐들고 있는 손바닥 전체로 전해져오는 이 보드랍고 탄력있는 살결의 느낌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커다란 난제였다. 비록 교복 치마 너머이기는 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그 천쪼가리 한장이
이 감촉을 제어하는데 대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말이다.
'미치겠다. 이제와서 내리라고 할 수도 없고....'
유경 누나의 동생이라는 이유로 가급적이면 윤아를 여자라기 보다는 그저 친한 동생이라고만 생각하자고
은연중에 다짐을 하기는 했었다만, 그렇다고해서 윤아가 이미 클대로 다 큰 어엿한 여고생이라는 사실마저
변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난감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 나는 남자이니까. 그것도 19 세의 매우 왕성한.
"윤아야, 우리 저기서 좀 쉬었다 가자."
"....응? 오빠 힘들어?"
"어? 으응. 쬐끔..."
"뭐야... 오빠 보기보다 허약하네. 얼마나 업었다구. 엄살 아냐?"
"야, 내가 허약한게 아니라 니가 무거운 거야!"
사실 이 '힘들다' 라는 의미가 지금 윤아가 생각하는 것과 내가 생각하는 개념이 서로 전혀 연관성이 없을 정도로
어긋나 있었긴 했지만 어쨌든 내가 현재 무지하게 힘들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뭐? 엄살 아니냐고?
젠장, 아랫도리의 코끼리가 고개를 쳐들었는데 그럼 당연히 걷기가 힘들지, 이게 안 힘들겠냐?
"우씨... 태어나서 무겁다는 소린 또 처음 들어보네."
윤아는 입을 툭 부풀리면서 궁시렁거렸지만 내게 그래도 은근히 미안했던지 무어라 더 불평을 하지는 못했다.
혹시 '내가 진짜 무거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흐흐, 전혀 마음에도 없는 말이었는데.
윤아를 업은 나는 인근 공원의 조용한 분수대 아래 놓여진 나무 벤치에 잠시 걸터앉았다. 그러자 윤아는 금새
등 위에서 다람쥐처럼 내려와 내 옆에 앉았다. 벤치 하나에 나란히 앉게된 우리는 고요하게 흐르는 분수대의
물줄기를 가만히 바라보며 잠시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이제 좀 살 것 같네.'
그제서야 나는 마음의 평정을 조금이나마 찾을 수 있었고, 안도의 한숨도 내쉴 수 있었다.
휴... 내가 생각해도 정말 고생했다. 차라리 윤아가 절벽 가슴에 드럼통 허벅지를 가진 막되먹은(?) 몸매의
소유자였다면 사실 이런 고생 자체가 없었을 테지만 그녀는 애석하게도.... 아니, 솔직히 매우 행복하게도,
고교생 치고는 매우 늘씬한 굴곡과 성숙한 볼륨을 가진 착하디 착한 몸매의 소유자였다.
예전에 같이 청소를 할 때 눈요기 삼아 여기저기 한번 훔쳐본 적은 있었지만 새삼 이렇게 몸으로 그 감촉을
제대로 실감해보니 과연 내 심미안이 틀리지 않았음을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흐흐.... 그래, 나 엉큼하다.
'하긴 그 언니에 그 동생인데... 언니 몸매가 어디 가겠어.'
보통 그런 법칙이 꼭 성립되는 것은 아니라고들 하지만, 유경 누나의 그 예술적인 몸매를 감안한다면
윤아의 경우는 그 예외적인 케이스에 속하지 않는다고 충분히 말할 수 있을 만 했다. 물론 아직 자기 언니에
비견될 정도는 아니긴 했지만.... 뭐, 아직 여고생이니까.
혹시 또 모르지, 조금만 더 자라면 나중에는 자기 언니처럼 끝내주는 여인이 될지도 모르고....? 흐흐흐.
'잠깐, 내가 지금 무슨 생각하는건지....'
에휴. 하여튼 이놈의 망상.... 한번 시작하면 끝이 없다니까. 색마도 아니고 애인 동생을 가지고 말야.
"오빠! 오빠 내 말 안들려?"
"어, 어? 응?"
망상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던 나는 윤아의 뾰족한 음성 덕분에 잡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보니 윤아가 뿔이 돋친 표정으로 날 째려보고 있었다. 아마 날 여러번 불렀는데 내가
딴생각 때문에 대답을 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무슨 생각 하는거야? 다섯 번이나 불렀어."
"아, 미안... 잠시 생각 좀 하느라."
"무슨 생각 하는데?"
"어? 그게.... 아무 것도 아냐."
무슨 생각하냐고? 그건 죽어도 말 못하지. 어떻게 내가 너한테 '너와 네 언니의 몸매를 잠시 비교해 보았단다.'
라고 말할 수 있겠니?
"흥. 말하기 곤란하단 표정이네. 그럼 보나마나 언니 생각이겠지?"
"뭐? 아, 아냐!"
헉.... 이럴 수가, 얘가 도대체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요즘 검도하는 애들은 독심술도 배우나?
"아니긴 뭐가 아냐? 얼굴에 다 쓰여있는데."
"아니래도 그러네...."
차마 양심이 찔려서 더욱 거센 부정은 하지 못하고 나는 그저 시선을 피한 채 공원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척 했다.
중앙의 분수대와 돌고래 석상이 뿜어내는 물줄기, 고풍스런 나무 벤치들, 녹색 화단, 그리고 공원을 거니는
여러 연인들....
'어라?! 그러고보니 여기는....'
들어올 때는 워낙 힘들어서 아무 생각없이 들어왔었는데, 그러고보니 이곳은 내가 저번에 한번 와보았던 적이
있는 공원이었다. 이렇게 자세히 둘러보니 분명히 확신할 수 있었다. 내가 얼마 전 중간고사가 끝나던 날에
유경 누나가 학교로 나를 찾아왔던 그 날, 우리가 잠시 머물렀었던 바로 그 공원이었다. 틀림없었다.
'게다가 이 벤치도 나하고 누나가 같이 앉았던 곳 같은데....'
우연이라고 한다면 상당히 재미있는 우연이었다. 불과 얼마 전에 나와 유경 누나가 나란히 앉았었던 바로
이 장소에서, 지금은 그녀의 동생인 윤아와 또 이렇게 나란히 앉게 되다니. 하긴 뭐, 그렇게 놀랄 만한 일은
아닌가?
'여기 이 자리에서 우리가 첫데이트도 시작했었는데....'
그 때를 생각하니 왠지 웃음이 나왔다. 시간이 많이 흐른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얼마 전인데 어쩐지 벌써부터
아름다운 추억담이 된 것 같아 실없는 웃음이 입에 걸린다.
"얼씨구... 실실 웃고 아주 난리났네, 난리났어. 그렇게 언니가 좋아?"
"아, 아니라니까!"
백 퍼센트 제대로 정곡을 찔린 나는 그야말로 철저히 양심을 팔아 영락없는 거짓말을 늘어놓았지만
다행스럽게도 윤아는 더이상 추궁을 해오지 않았다. 다만 그 깜찍한 눈매를 가늘게 뜨고서는 날 수상하게
흘겨볼 뿐이었다. 윤아가 저렇게 고양이 눈매를 하고서 삐진 듯한 표정을 지을 때면 그 모습은 정말 넋나갈
정도로 귀엽기는 했지만서도 잘못 건드렸다가는 또 무슨 성질이 폭발할지 모르기 때문에 나 역시 그냥 입을
꾹 닫아버렸다. 이럴 땐 그저 무언이 제일이지. 말 안하는게 최고야. 그럼그럼.
'그런데... 이제는 화가 좀 풀린 건가?'
내가 윤아의 눈치를 살피며 가만히 있으려니, 그녀는 생각 외로 먼저 입을 열었다.
"오빠, 미안."
뜬금없는 윤아의 사과. 전혀 예상치 못했던 말에 나는 순간 의아하다 못해 놀라기까지 했다.
"으응? 뭐가?"
"나 땜에 시험 치다가 나왔잖아. 미안하다고."
아... 그거 말이었나?
"하, 하하... 뭐 그거 가지고. 나도 어차피 오늘 망친거라서 치기 싫어서 그랬어. 미안할 것 까지야...
신경 쓰지 마."
사실 모의고사를 때려치고 나온 것은 물론 오늘은 처음부터 말아먹고 시작했기 때문에 의욕 자체가 없었던
탓이기도 했지만 솔직히 털어놓자면 윤아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도 아예 없었다고는 말 못할 것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는 윤아에게는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것이 여러모로 좋을 테니까.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 의도는 그럭저럭 성공적으로 먹혀들어간 듯 싶었다.
"그래도 미안한건 미안한거지. 그리고 또 어제 일도 그렇고..."
"응? 어제?"
"어제 화낸 것도 미안하다구."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솔직히 그 말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발언이었다.
어제의 그 단단히 열받은 모양새로 보아서 당분간 분위기 험악하겠구나 싶었는데 되려 그녀 쪽에서 먼저
사과를 해올 줄이야..... 뭐 분명히 잘된 일이기는 했지만.
"저기... 윤아야, 그럼 이제 화는 좀 풀린 거야?"
나는 조심스럽게 아까부터 물어보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어쩌면 괜한 화제를 꺼내서 그녀의 성질을 또
건드리는 것은 아닌가 싶었지만 윤아가 사과까지 한 마당에 이 분위기에서라면 괜찮겠지 싶었다. 게다가 이것은
말 꺼내기 곤란하다고 해서 덮어놓고 어물쩍 넘어가도 될 그런 문제도 아니었다. 단순히 윤아의 기분만을 떠나서
나는 유경 누나와 나 사이의 관계를 윤아에게 인정을 받아두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나와 유경 누나가 서로 사귄다는데 윤아가 인정을 하느냐 마느냐는 냉정하게 따지고 보면 그렇게 썩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았다. 유경 누나와 윤아는 그냥 평범한 자매가
아니지 않은가. 거기다가 사실 그것은 내가 유경 누나를 그만큼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 사이의 관계를 보다
확실히 해두고 싶은 마음도 조금은 있었긴 했지만 말이다. 어찌됬건 윤아에게 미리 공인을 받아놓는다는 것은
내게는 좋은 일이었다.
때문에, 지금 내가 던진 이 질문에는 나와 유경 누나의 관계를 인정해주겠냐고 동의를 구하는 그런 의미도
조금 쯤은 내포되어 있었다고 봐야할 것이다. 비록 윤아는 그 의미를 깨닫지 못했겠지만....
"오빠."
"왜?"
"내가 왜 화났었는지 이유를 알긴 아는 거야?"
윤아의 갑작스런 역질문에 나는 순간 마땅히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입을 다물어야했다.
"그, 글쎄..."
"그것 봐. 모르지? 오빠가 그것도 모르니까 내가 화가 나는 거야. 알겠어?"
"무슨... 말이야?"
하지만 윤아는 더이상 구체적인 말을 하지 않고 그냥 입을 닫아버렸다. 괜시리 마음이 혼란스러워진 나도
덩달아 입을 닫았지만 나는 속으로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고민해야만 했다.
윤아가 화를 내는 이유..... 글쎄, 솔직히 말하자면 정말로 모르겠다.
"윤아야, 너 혹시 내가 맘에 안들어서 그래? 내가 너희 언니 상대로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거야?"
"......"
조심스럽게 내가 그나마 추측할 수 있는 가장 그럴 듯한 이유를 들어보았지만 윤아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렇다' 라는 의미를 가진 무언의 긍정이었을까?
"그래, 그건 분명 그럴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아니, 그런거 아냐."
'누나한테 잘할 자신 있어' 따위의 여타의 다른 드라마 속에서 많이도 우려먹었던 그런 진부한 대사라도
늘어놓고자 했지만 윤아는 내 말허리를 가차없이 잘라버렸다. 그 기세에 나는 움찔했지만 윤아가 그다지
화를 내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기에 다시 한번 넌지시 물었다.
"그럼... 왜?"
"오빠 우리 언니 좋아해?"
또 다시 갑작스런 역질문. 하여간 얘는 묻는 말에 제대로 대답해 주는 법이 없다니깐....
하지만 이번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은 아니었다. 나는 침착하게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그래. 좋아해."
"얼만큼 좋아하는데?"
"....뭐?"
아니, 이건 또 무슨 말이지? 얼만큼 좋아하냐니? 설마 뭐, 하늘만큼 땅만큼 이런 대답이라도 해보란 건가?
나는 잠시 머리를 굴려보고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조심스럽게 대답을 꺼냈다.
"글쎄... 니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난 정말로 너희 언니를 좋아하고 있어. 아니, 사랑하고 있어."
조금 민망할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굳이 못할 말도 아니었다. 사실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말에 윤아는 또다시 할 말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윤아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녀의 옆얼굴만을 볼 수 있었지만 불어오는 바람결에 이리저리 흩날리는 흑빛 머릿결 때문에 그 표정까지
들여다볼 수는 없었다.
"그럼 나는?"
"응?"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윤아는 알 수 없는 한마디를 내뱉 듯이 툭 던져버렸다.
하지만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던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해줄 수가 없었다.
"그럼 나는 뭐냐구. 오빠한테 나는 뭐야?"
"그, 그게... 무슨 뜻이야?"
도대체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일까....? 자기는 뭐냐니.
윤아는 옆으로 돌리고 있었던 고개를 나에게로 향하고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알 수 없는 부담감마저 느껴지는 묘한 시선이었다.
"오빠, 언니랑 처음 만난지도 얼마 안 됐지? 기껏해야 나하고 하루이틀 차이 아니었어?
그런데 오빤 언니는 사랑한다면서 나한텐 아무 관심도 없잖아."
"뭐....?"
"언니가 나보다 예쁘니까 그런거지? 혹시 오빠는 그냥 언니 외모만 보고 좋아하는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