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도 비슷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거의 농담조였던 반면, 지금은 정말로 어느정도 진지하게
물어보는 것 같았다.
"애인 맞지? 난 유경 씨가 남자 손님 이렇게 챙기는거 처음 봤어."
"챙긴다기 보다는..."
"에이, 왜 그래. 남자친구 맞잖아. 호호, 뺏기기 싫어서 아주 손목까지 붙잡고 홱 가버리더니?"
아마 미선 씨라고 했었나, 그 여직원은 재미있다는 듯 싱글싱글 웃으며 유경 누나에게 마치 놀리는 것처럼
계속 장난을 쳤다. 그 약간은 짓궂은 농담에 괜히 듣고있던 나까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기분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우리가 애인 사이처럼 보이는건가?'
세상 모든 여자들을 한군데 모아놓아도 그 중에서 군계일학일 것만 같은 유경 누나와 대체로 평범한 나 사이를
비교하면서 아무리봐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스스로 가끔 저울질해보곤 했는데, 그래도 그렇게 봐주는 사람도
몇 있긴 있는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까 그 여직원에게 쌓였던 조금 맘에 안들던 감정들이 순식간에
저멀리 훨훨 날아가버렸다.
"후훗. 놀리지마세요."
"이거 봐, 그래도 아니라고 말은 못하잖아. 호호, 내일 자세히 얘기해줘! 난 먼저 가볼게."
"그래요. 제가 문 단속하고 갈게요. 잘 가요, 미선 씨."
"내일 봐~ 커튼은 내가 닫고 갈게."
아니, 도대체 뭘 자세히 얘기해달라는 건지...
그 여직원은 유경 누나에게 인사하고는 미용실의 블라인드 글라스에 모조리 커튼을 내리고서 가게 문을 나섰다.
그 직원까지 퇴근해버리자... 마침내는 미용실 안에 유경 누나와 나, 단 둘만이 남아있게 되었다.
'다, 단 둘뿐? 미용실 안에?'
이 넓은 미용실 안에 사람이라곤 나와 유경 누나, 단 둘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다고?
"물 온도 괜찮니?"
"아, 그, 그럼요.'
상황은 참으로 기묘하게 바뀌어버렸다. 너무 행복한 나머지 당황스럽기까지한 이 복잡한 기분은 분명 어제
그녀와 데이트를 할 때에도 느껴볼 수 있었던 묘한 기분이었다. 도대체 내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나는 언제나처럼 미용실의 샴푸대 의자에 반듯이 천장을 보고 누워 머리를 감겨주는 유경 누나의 손길에 가만히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하지만, 항상 이 의자에서 그녀가 머리를 감겨주었던 평소 때와 지금 이 상황에는 정말로 엄청나게 큰 차이점이
하나 있었다.
'단 둘뿐... 단 둘뿐... 단 둘뿐...'
마음 속에서 자꾸만 이 미용실 안에 그녀와 나, 단 둘만 남아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메아리가 에코처럼
울려퍼진다. 설마 이런 상황이 만들어질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미용실 안에 유경 누나와 나... 단 둘 뿐이라니!
나도 모르게 자꾸만 감은척 하고 있는 눈을 살짝 떠 머리에 샴푸칠을 해주고 있는 유경 누나의 자태를 슬그머니
올려다본다. 언제봐도 가슴 떨리는 사슴같이 고운 새하얀 목선하며...
은은한 조명 아래 반짝이는 저 분홍빛 입술...
'저, 저 입술에 내가 어제 키스를 했단 말이야? 그것도 그렇게 찐하게?'
문득 어제 그녀와 나누었던 깊은 딥키스가 떠오르자 심장이 도저히 주체가 안될 정도로 쿵쿵 뛰기 시작했다.
마치 다이너마이트 폭발 소리를 방불케하는 그 엄청난 고동소리에 혈압까지 덩달아 올라가는 것 같다.
눈 앞에서 반짝반짝 매혹적으로 빛나고 있는 그 부드럽고 매끄러운 분홍빛의 입술을 불과 바로 어제,
그렇게나 마음껏 내 입술을 통해서 느꼈었다는 사실이 정말 실감이 나지 않는다.
입술에는 아직까지도 그녀의 따뜻하고 촉촉한 입술 감촉이 남아있는 듯 이렇게나 생생한데도,
머리 속으로는 그것이 전혀 사실이 아닌 것 같았다. 이것 또한 정말이지 엄청나게 기묘한 느낌이었다.
-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왜 이렇게 크게 들리는지 참...
실눈을 살짝 뜬 채로 샴푸칠을 해주고있는 유경 누나의 모습을 조심스럽게 샅샅히 훔쳐본다.
오늘따라 보우트넥라인의 칠부 셔링 탑과 안에 슬림 롱나시를 매치한 차림의 그녀가 샴푸를 해주느라 상체를
약간 숙인 탓에 셔링 탑의 목부분이 언뜻 살짝 벌어져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그녀의 옷차림이 노출성이 심하다
거나 야하다거나 할 리는 절대 없었지만, 사람이라곤 나와 누나 말고는 아무도 없는 미용실 안에서 이 샴푸대에
누워 그녀의 예쁜 목선을 이렇게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으려니 그 기분이 정말.....
'이, 이상한 생각을 안하려고 해도 정말 안할 수가 없잖아!'
짝사랑하는 천사같은 미모의 여인이, 그것도 미용실 직원이, 아무도 없는 미용실 안에서 이렇게 단 둘이 남아
내 머리를 감겨주고 있다니.... 이 상황에서 이상한 상상을 하지말라고? 젠장, 차라리 숨을 쉬지 말라 그래라.
"무슨 생각해?"
폭탄 터지는 것 마냥 쿵쾅거리는 가슴을 겨우 진정시키고 있는데, 유경 누나가 내 귀에 거의 속삭이듯 낮게
말해왔다. 당연히 화들짝 놀란 나는 그녀가 머리를 감겨주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채 벌떡 자리에서
일어날 뻔 했다.
"아, 아, 아무 생각 안해요!"
심하게 더듬거리며 나도 모르게 목소리까지 높여 어설프게 변명하는 내 모습은 내가봐도 분명히
'전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어요' 라고 주장하는 듯한 한심한 모습이리라...
"지금 야한 생각 하고있지?"
"네에!?"
정곡을 찌르는 그 비수같은 유경 누나의 기습같은 질문에 나는 샴푸대 의자 위에 누운 그 자세 그대로 무참하게
쩍 얼어버렸다. 유경 누나는 그렇게 엄청나게 당황하는 내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장난스럽게 쿡쿡 웃으며
계속해서 날 놀려대었다.
"솔직히 말해봐. 너 지금 응큼한 생각 하고 있잖아."
뜨끔하는 충격이 느껴질 정도로 정확하게 꼬집는 듯한 그 질문.
다 알고있다는 유경 누나의 말투로 보아서 여기서 더이상 거짓말을 하며 둘러대봤자 나만 더 난처해질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누나가 너무 예뻐서요."
긍정은 긍정이지만 약간은 우회적인 대답. 차마 직접적으로 야한 생각 하고 있다고는 죽어도 말 못할
노릇이었다. 유경 누나는 이런 내 간접적인 시인에 눈을 흘기며 살풋 웃음을 터트렸다.
"푸훗.. 뭐야? 그럼 나 가지고 엉큼한 상상하고 있었단 말야?"
"네? 아니, 그, 그게! 그런게 아니고..."
그렇게 말하니까 또 할 말이 없어진다. 유경 누나는 고양이처럼 눈을 장난스럽게 흘겼다.
그 귀엽고 깜찍한 모습은 윤아의 전매특허라고만 생각했는데... 누나도 이런 표정을 지을 수 있구나.
너무너무 귀엽다. 근데... 솔직히 이 상황은 좀 난감하다.
"어떤 상상인지 꽤 궁금하네... 말해줄 수 있어?"
"무, 무슨 말씀을..."
설마 내가 어떻게 내 입으로 '이렇게 저렇게 응응하고 응응해서 응응하는 상상이에요' 라고 실토할 수 있겠는가.
아마 유경 누나도 내가 말할 수 없음을 알기에 이렇게 날 놀려먹고 있는 것이리라...
어쩌면 그녀는 오늘 뿐만 아니라 예전부터 내가 이렇게 누워있을 때면 그녀를 올려다보며 얼굴을 붉혔던 일을
대충 눈치채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응? 말해봐. 나 궁금해."
"으..."
하지만 장난치고는 꽤 집요하게 계속해서 물어오는 그녀의 질문을 끝까지 외면할 수가 없었다.
"그, 그냥... 어제 누나랑... 그, 그거 때문에."
정확히 그게 무엇인지 차마 설명하기가 민망해서 홀라당 생략해버렸지만 누나라면 분명히 어제 나와 그녀가
무엇을 했었다는 것인지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에겐 정말이지 생각 외로 상당히 짖궂은 구석이 있었나보다.
"그거? 그게 뭔데? 나랑 뭘 했는데? 응?"
정확한 묘사를 요구하는 그녀의 장난기 가득한 모습. 그녀에게 이런 면도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처음 알았지만,
그 신선하고 깜찍한 귀여운 모습을 감상하고 있기에는 이 상황... 너무너무 낯간지럽다.
나는 거의 반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간신히 입을 열었다.
"키, 키스... 요."
나는 가능한 별 것 아닌 것처럼 소프트하게 말하려고 했지만 그 시도는 완전 대실패였다.
아, 쪽팔려... 혹시 유경 누나는 의외로 날 이렇게 부끄럽게 만드는 것을 즐기고 있는건가?
솔직히 말해서, 결코 나쁜 기분은 아닌데... 그저 많이 쑥스럽다.
어느새 머리에서 샴푸가 전부 씻겨져 나갔지만 나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킬 생각도 못하고 그저 얼굴을 붉힌 채
가만히 누워만 있었다. 유경 누나 또한 샤워기에서 잔잔히 흘러나오는 물줄기에 내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감겨주는 그 손길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쑥스러워하는 내 모습에 결국 소리를 내어 웃음을 터뜨렸다.
"후훗... 재밌다."
"그, 그런가요..."
하하... 좀 창피하긴 하지만 어쨌든 유경 누나가 기분이 좋다면야 뭐 상관없겠지...
"그럼, 우리 한번 더 할래?"
"...네?"
이어지는 유경 누나의 달콤한 속삭임에 나는 다시 멍하니 굳어져버렸다.
머리카락에 붙은 물기들이 방울져 샴푸대 위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 따위는 조금도 느끼지 못한 채... 오직 혀 끝으로 느껴지는 따스하고 부드러운 느낌에만
빠져들고 있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아니, 어제보다 더욱더 자신있게 나는 혀로 그녀의 입안 구석구석을 이리저리 마구
헤집는다. 혀를 마주 감기도하고, 입술을 빨아들이기도 하고, 서로 뒤엉키는 혀의 움직임을 이끌어가기도 하면서
깊고 진한 키스를 나누는 내 머릿 속은 거의 백짓장이 되어있었다. 어제도 느꼈던 뇌와 혀가 동떨어진 것만 같은
이 기묘한 괴리감...
그것은 너무도 달콤한 유혹. 그것은 너무도 강렬한 쾌감.
"하아.."
오로지 누구의 것인지조차 구분되지 않는 달아오른 숨소리만이 그녀와 나 사이에 존재하고 있었다.
코 끝과 입안 가득히 느껴지는 서로의 뜨거운 숨결... 너무나도 따스하고 포근하며, 한편으론 아찔하다.
미용실 샴푸대 의자에 누워 그녀와 키스를 나누고 있다는 흥분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이미 한번의 키스 경험으로
자신이 있었기 때문일까.... 어쩌면 둘 다 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정말로 아무런 거침없이 유경 누나의 분홍빛 입술
과 부드러운 혀를 마음껏 탐해가는 한편, 고개를 내려숙인 채 키스를 나누고 있는 유경 누나의 가느다란 허리를
껴안고 이끌어 샴푸대 의자 위에 누워있는 내 몸에 완전히 겹쳐 눕혀버렸다. 마치 침대처럼 길다란 의자 위에서,
내 몸 위에 그대로 몸을 마주 포개어 눕혀버린 유경 누나는 어제처럼 서로의 몸이 완전히 딱 밀착되었음에도
순순히 아무런 거부도 하지 않았다.
가냘프도록 얇은 그녀의 허리를 꼭 끌어안고 누운 채로 그녀와 이렇게 몸을 마주 포개고 있으니
너무나도 환상적인 그 육체의 굴곡이 온 몸으로 생생하게 느껴져온다. 오직 수려한 곡선만으로 이루어져있는
유경 누나의 몸... 전신으로 느껴지는 그 아찔한 느낌...
말캉하고 부드러운 가슴의 감촉은 물론이고 배와 허리, 심지어는 다리 아래까지도 서로 꼭 붙어 포개어진 채로
우리는 그렇게 긴 의자 위에서 몸을 겹친 채 끝없이 서로의 혀를 춤추게 하고 있었다.
"으응.."
온몸의 굴곡이 내 몸에 물샐 틈 없이 밀착된 그 느낌에 그녀는 잠시 몸을 뒤척거렸지만, 곧 양팔을 들어 내 목
뒷덜미부터 고개를 꼭 끌어안아 더욱 내 얼굴을 끌어당겨오고 있었다. 마치 어제의 일을 그대로 고스란히
재현이라도 하듯, 그 한번 겪어보았던 느낌을 다시 맛보게 된 내 아랫도리에 또 서서히 힘이 단단하게 들어가고
있었다. 이윽고 빳빳하게 고개를 들던 내 자지는 당연히 어제처럼... 그녀의 부드러운 안쪽 허벅지 살에 그대로
살짝 맞닿아버린다.
'이런... 또...'
어제와 같은 이 상황, 어제는 분명 여기에서 끝나버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이질적인 느낌에 움찔한 그녀의 반응과 더불어 윤아의 난입으로 어제는 그렇게 깨어져버린 키스...
하지만 오늘은... 아니, 지금 이 순간에는, 난 도저히 여기서 멈추고 싶지 않았다.
그녀와 나 사이에 무언가 새로운 한발짝을 더 내딛고 싶은 폭풍같은 욕망을 나에겐 거스를 힘도, 그럴 의지도
없었다. 게다가... 이런 내 마음을 헤아려주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녀 또한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오늘은
그녀마저도 안쪽 허벅지에 내 물건이 닿는 것을 분명히 느꼈을 텐데도 여전히 혀의 깊은 움직임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주체할 수 없는 흥분과 아찔함에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간신히 들어올려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께부터 서서히
손을 쓸어올려가기 시작한다. 잘록하게 들어간 허리의 수려한 곡선을 지나 점점 위로 더듬어 올라오기 시작하는
내 무례한 손의 침범에 그녀는 또다시 몸을 잠시 뒤척였지만, 그 와중에도 서로 뒤엉키는 혀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옷 위로 그녀의 매끈한 상체 굴곡을 더듬어가며 전진하던 내 손이 어느새 내 가슴에 맞닿아 살짝 짓눌러져있는
그녀의 가슴께에 이르렀다. 손가락을 뻗기만하면 꿈 속에서나 그려왔던 유경 누나의 가슴을 직접 만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였지만, 한가닥 불안과 주저함은 그 가까운 거리를 침범해들어가지 못하게 날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괜찮은 걸까...?'
여기서 더 손을 뻗는다는 것은, 단순한 스킨십의 정도를 넘어서 무언가 돌이킬 수 없는 한 발을 내딛게 됨을
의미한다. 이 상황에서, 그건 누가 보더라도 그러할 것이다. 나에겐 이대로 이 손을 뻗고싶은 어마어마한 욕망이
들끓고 있었지만, 그녀는 내 그러한 침범을 용납해줄 수 있을까...
우습게도 처음 만났을 때부터 한눈에 반해 언제나 마음 속에 품어왔던 그녀와 나 사이의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그 마지막 선에서, 나는 이 힘겨운 한발짝을 쉽사리 떼어놓지 못하고 있었다.
허리춤에 올려놓은 내 손이 더이상 움직이지않고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녀 또한 눈치챈 모양이었다.
영리한 여인이니 아마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지 잘 알고있을 것이다.
그것은 내 갈등을 풀어주기위한 그녀 나름대로의 따뜻한 배려였는지도 모른다.
유경 누나는 살짝 떨고있는 내 손을 그녀의 손으로 살짝 마주쥐더니, 이윽고 그대로 자신의 가슴골 위로 내 손을
이끌어 그 봉우리 위에 살짝 얹어놓는다.
'아...?'
머뭇거리는 내 손을 쥐어 직접 자신의 가슴골 위에 올려놓은 그녀의 그러한 행위는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그것은 진한 스킨십의 허용이었을 뿐일까, 그렇지않으면 그녀에게도 나처럼 오늘 이 자리에서 어떠한 한발짝을
앞으로 내딛고 싶은 바램이 있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