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화 (20/39)

그녀는 기운이 빠진듯 지친 한숨을 폭 내쉬었다.

"너네 학교 되게 무섭다... 아무 생각없이 갔는데."

"하하... 누나가 예쁘니까요."

"내, 내가 뭘..."

솔직히 지금 공원 벤치에 앉은 이 상황에서도 공원을 지나가던 몇몇 남자들이 얼이 빠져 

유경 누나를 한번씩 돌아보고 있었다. 그만큼 그녀의 화사한 미모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래서 예쁜 여자는 어딜가든 피곤하다는 말이 나온걸까....

"그런데... 어쩐 일로 오신거에요?"

나를 보러왔다고 아까 말하긴 했지만 정확히 무엇인지 너무나도 궁금했다.

일단 그녀가 날 찾아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주체할 수 없이 행복했지만, 난 그녀의 용건이 

나를 더욱더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기를 바랬다.

"그냥... 너 시험 끝나는 날이라고해서 와봤어. 저번에 퇴원할때 제대로 축하도 못해줬구."

약간 수줍게 웃으며 말하는 천사같은 그녀의 모습에 나는 몸이 구름 위로 붕 떠오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쑥스러운 헛기침을 하며 나는 장난스럽게 마주 웃었다.

"하하... 왜요? 데이트라도 해주시게요?"

농담조로 던지듯이 말하긴 했지만 사실 이 말을 하는 내 심장이 어찌나 크게 뛰고 있었던지

옆에 앉아있는 그녀에게 들리지는 않을까 걱정해야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는 너무나도 예쁘고 천사같은 웃음을 생긋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럴려구."

"우리 뭐 먹을까?"

얼핏 봐도 산뜻한 분위기가 괜찮아보이는 레스토랑 창가 자리에서 유경 누나와 마주앉아 

메뉴판을 고르고 있는 이 상황이 마치 꿈만 같았던 나는 그 질문에 제대로 대답조차 하지 못하고

그저 밝게 미소짓는 그녀의 얼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병원에 입원했던 상당한 기간 동안 매일같이 그녀의 얼굴을 보아오며 꽤 친밀해졌기 때문에 어느정도 이젠

적응이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미소짓는 그녀의 모습을 볼 때면 아직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유경 누나와 같은 음식을 주문하고 테이블에 앉아있는 내내 가슴이 주체할 수 없이 두근두근 뛰었다.

마치 그녀와 내가 연인이라도 된 듯한 이 꿈결같은 기분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의심스럽기까지 했지만 만약 꿈이라면 제발 이대로 깨지말았으면 했다.

"시험은 잘 봤어?"

하지만 귓가에 생생히 녹아드는 그녀의 사근사근한 목소리가 이것이 꿈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생전 처음으로 너무 행복한 탓에 당황스럽기까지한 그런 이상야릇한 느낌을 받았다.

"네? 아.. 뭐 그럭저럭이요."

"입원하느라 공부도 제대로 못했겠다.. 그치?"

아직도 그녀는 내게 그 일로 못내 미안한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하지만 내가 그녀에게서 미안하단 말을 듣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기 때문에

그저 옅게 웃음 지을 뿐이었다.

"다친 데는 좀 어때...? 아직도 많이 아프니?"

"아니에요, 이젠 살만해요."

뭐, 이 더운 날씨에 마음놓고 샤워를 못하기 때문에 그거 하나는 불편했지만 나름대로 요령껏 붕대를 

피해서 씻는 방법도 터득했기 때문에 그럭저럭 괜찮았다. 가끔 일어날때 조금 욱신거리기는 해도.

그 뒤로 음식이 나오기까지 그녀와 이것저것 담소를 나누었다.

그녀에겐 별 일이 없는지 물어보는 것 부터 시작해서 수능에 관한 이것저것 사소한 얘기들까지...

유경 누나와 대화를 나누면서 레스토랑 주위를 둘러보니 꽤 많은 사람들이 이쪽을 흘끗거리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전부 유경 누나를 흘끗거리며 쳐다보는 남자들이었다.

입구에 들어설 때부터 어느정도 시선을 받고 있었다고 생각은 했지만 아예 첫눈에 반했는지 대놓고

이쪽을 보고있는 남자도 있었다.

'역시... 예쁜 여자는 어딜가도 주목받는구나.'

꽃처럼 화사한 절정의 미인이 교복차림의 평범한 남학생과 함께 다정하게 테이블에 마주앉아 있는 것이 

그 남자들의 눈에도 어지간히 이상해보였는지, 마치 그 눈초리들이 '내가 대신 저기에 앉아있어야 하는데'

라고 말하는 것 같은 기분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어쩐지 열받긴 했지만 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뭐... 솔직히 유경 누나같은 미인이 나와 데이트를 한다는 것은 내가 생각하기에도 내게있어 행운이다 못해

거의 영광이었다. 

'제길, 이럴줄 알았으면 꾸미기라도 좀 제대로 하고있는 상태였음 좋으련만.'

난 대체로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나와는 달리 어딜가든 이목을 끌 수 있는 눈 앞의 미녀를 보았다.

여성스러운 느낌을 주는 엠파이어 라인의 블라우스 셔츠와 에스닉한 스타일의 우아한 플레어스커트 차림에

하이힐을 매치한 그녀의 모습은 수수해보이면서도 한편으론 너무나 여성스럽고 세련되어보였다. 

상쾌하고 화사하면서도 조금도 부담스럽지 않은 매우 감각있는 옷차림이었다. 

언제나 유경 누나를 볼때마다 느끼는 것이었지만 그녀는 정말 상반된 두 매력을 동시에 나타내는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 

나는 바지나 레깅스를 입지 않고 스커트를 입은 그녀의 맨다리를 보는 것은 처음이란 생각이 들어 나도모르게

테이블 밑으로 가지런히 쭉 뻗어있는 그 새하얀 다리 한쌍을 흘끗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스키니진이나 레깅스를 통해 그녀의 수려하기 이를데 없는 쭉 뻗은 각선미가 너무나도 매혹적이라는 사실은 

익히 알고있었다. 입원 전에는 그녀의 그 환상적인 라인을 상상하며 자위도 숱하게 하지 않았던가. 

비록 스커트의 길이가 언더니 타입으로 그다지 짧은 것은 아니어서 다리가 훤하게 드러난 것은 아니었다고 해도 

하얗고 길게 쭉 뻗은 다리 한쌍이 다소곳하게 모아져 테이블 밑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그 광경은 너무나도 아찔한 

것이어서 사진으로 한장 남겨두고 싶을 정도였다. 

게다가 블라우스 셔츠의 넥라인으로 살짝 드러나는 유경 누나의 사슴같이 부드러운 목선까지도 하루종일 

바라보고 싶을만큼 내 시선을 강렬하게 사로잡고 있었다. 그 모든 옷차림이 전혀 야하다거나 하는 느낌의 옷이 

아니었음에도 그녀의 너무나도 완벽한 몸의 굴곡이 그런 수수하고 우아한 옷마저도 더없이 여성스럽고 섹시한 

분위기의 차림새로 탈바꿈시켜 놓았다.

군살이라곤 하나없이 수려한 굴곡만으로 이루어져있는 유경 누나의 몸매는 그 어떠한 옷을 입더라도 그 매력을 

감출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이 청순하고 우아한 매력과 동시에 절정의 섹시미까지 두루 갖출 수 있는 그녀만의 

매력을 가능케 하는 천연의 원동력이었다. 세상에 이런 완벽한 미인이 또 있을까...?

"공부하느라 많이 힘들지?"

"그, 그렇죠. 뭐... 하하."

유경 누나의 길고 하얀 다리를 흘끗 쳐다보고 있던 나는 순간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그녀는 눈치채지 못한듯 핸드백을 집어들고 있었다. 

"음... 나 너한테 줄 거 있는데..."

"네, 네? 뭘요?"

그녀는 핸드백을 뒤적거리더니 테이블 위에 무언가를 올려놓았다. 

손수 예쁘게 포장한 흔적이 보이는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한눈에 바로 알아볼 수가 없었다.

"별 거 아니야... 그냥 주고 싶어서."

약간 수줍은 듯 말하는 그녀의 표정에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더더욱 궁금해졌다. 

도대체 이게 뭐길래...?

난 그것을 집어들어 조심스럽게 그녀가 직접 해놓은 듯한 포장을 열어보았다.

'십자..수..?'

그것은 분명히 손수 뜬 것으로 보이는, 한눈에 봐도 정성이 들어갔음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십자수 악세사리였다. 게다가 그 십자수에는 수능 성공을 기원하는 문구가 정성스럽게 수놓아져 있었다. 

"이거... 직접 만드신거에요?"

"응... 잘 만든건 아니지만."

"혹시 저... 주실려구요?"

"응. 너 병원에 있을때 만들었어."

고개를 끄덕거리는 유경 누나의 모습에 나는 순간 아무 말도 못하고 십자수를 손에 든채 멍하니 굳어버렸다.

그녀가 내게 선물을 주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자신의 손으로 정성들여 만든 선물을... 

"후훗. 공부하다 힘들때 도움이 될까 해서... 뭐 별로 쓸모는 없겠지만."

쑥스러운 듯이 미소 짓는 그녀. 뭔가가 가슴 속에서 찡하게 메아리쳤지만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 세상 무엇보다 값진 선물을 받은 것 같은 그 느낌에 심장을 조여드는 듯한 감격조차도 제대로 음미하지 

못했다.

"고, 고마워요 누나."

나는 그저 그 소중한 선물을 조심스럽게 손에 받아든 채 넋을 잃고 가만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내 모습에 유경 누나는 다시 햇살같이 아름다운 웃음을 살며시 지어주었다.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그녀와의 꿈결같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그 이후로도 

내내 시간가는 줄 모르는 행복한 순간들이 계속되었다.

어떻게봐도 그녀와 내가 연인사이로 보이기는 어렵겠지만 나는 그 다정한 분위기에 정말로 그녀가 내 연인이라도

된 듯한 황홀한 기분이 들어 데이트 내내 하늘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길을 걸을때도 주위에서 쏟아지는 

남자들의 부러움과 질투 가득한 시선들을 받았지만 이젠 그런 시선에도 우쭐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아무 것도 이 넘쳐오르는 행복감을 방해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아무 것도...

"아... 비가 오네."

하지만, 아까부터 어쩐지 어둑어둑하던 먹구름 낀 하늘에서 기어코 굵은 소나기가 갑자기 쏟아져내리자 

공원을 산책하고 카페에서 마주앉아 차를 마시던 유경 누나는 유리창 밖을 내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예상치 못한 소나기에 카페 안의 손님들도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다. 우산을 가진 손님은 척봐도 몇 없어 보였다.

아침까지만 해도 너무나 쨍쨍한 날씨였고 특별한 일기예보도 없었기 때문에.

"영화 보러 가려고 했는데..."

그녀가 아쉽다는 듯 살풋 웃으며 날 돌아보았다.

나는 비가 오건 말건간에 상관없이 이 행복한 데이트를 조금이라도 더 계속하고 싶을 뿐이었지만 

정말 슬프게도 그건 불가능했다. 우산이 있느냐 없느냐는 둘째치고서라도.... 

"후훗, 아쉽네... 너 상처에 물 들어가면 안되잖아."

그녀가 아무리 아쉬워봐야 내가 느끼는 아쉬움에 비할 바는 아니리라.

나는 하필 이렇게 좋을때 갑자기 소나기를 퍼부어 분위기를 망쳐버린 빌어먹을 먹구름에게 속으로 한바탕 

욕지거리를 날렸다. 제길, 상처만 아니었으면 비를 맞는 한이 있더라도 계속 데이트하고 싶은데...

난 거의 절망에 가까운 아쉬움을 느끼며 한숨을 푸욱 쉬었다. 이런 내게 그녀는 찻잔을 내려놓고 말을 이어왔다.

"그런데... 어떡하지? 너 우산 없으면..."

"으음... 택시라도 타야죠."

"그래, 일단 택시타고 우리 집으로 가자."

뭐? 유경 누나의 집에...?

나는 그 의외의 제안에 순간 화들짝 놀라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우리 집에서 비 그칠때까지 있다가 가. 소나기인데 금방 그치겠지."

택시를 타고 내 원룸으로 곧장 바로 가도 될 것을, 그녀는 굳이 자신의 집에 들렀다가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 네... 그럴게요."

그리고 나도 미치지 않고서야 그 제안을 거절할 리가 없었다.

- 위이이잉.

헤어드라이어의 바람소리가 간간히 울린다.

유경 누나는 미용실 직원답게 세심한 솜씨로 내 뒤에 앉아 머리카락을 꼼꼼히 말려주고 있었다.

"상처에 물 들어가진 않았어?"

"네... 겉옷만 좀 젖었네요."

여기는 다름아닌 그녀의 방. 나는 머리를 말려주는 그녀의 손길에 얼굴을 붉히면서도 눈을 힐끔힐끔

돌려 그녀의 방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짝사랑하는 여인의 방에 들어왔는데 여기저기 눈이 돌아가지 않을 남자가 과연 있을까?

수수하면서도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방의 모습은 마치 그녀의 매력을 드러내어주는 듯 했고

방 전체에는 은은하고 알싸한 향기까지 나는 것 같았다. 

그 알 수 없는 기분좋은 향기를 맡으며 잔잔한 바람과 함께 머리카락을 말려주는 그녀의 고운 손길을 느끼는 

그 기분이란 정말이지... 너무도 황홀했다. 마치 천국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이렇게 그녀의 방 안에서 단 둘이 앉아 이러고있으니, 미용실에서 그녀가 머리를 말려주던 것과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이것은 미용실 고객과 직원으로서의 관계가 아니라 둘만의 사적인 만남이니까. 

귓가에 스치는 바람과 그녀의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음미하듯이 미동도 하지않고 앉아있던 나는

화장대며, 옷장이며, 테이블을 비롯해서 벽에 붙어있는 일인용 침대까지도 볼 수 있었다.

'흐... 저기서 매일 유경 누나가 잠들겠구나.' 

그렇게 실없는 생각이나 하면서 멍하니 앉아있길 몇분이 지났을까, 유경 누나는 생긋 웃으며 드라이어를 껐다.

"다 됐네."

"아... 고마워요."

약간 젖었었지만 지금은 보송보송하게 마른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나는 얼굴을 살짝 붉혔다. 

어쩐지 좀 아쉬웠던 것이다.

"방이 참 깨끗하네요. 이쁘고."

"그래보여?"

그녀의 방 안은 먼지 하나없이 깨끗했다.

하지만 나는 문득 단 하나, 그녀의 방 테이블 위에 이리저리 어질러져있는 십자수 재료들을 볼 수 있었다.

수실과 바늘, 도안 등등.... 

"누나, 저건..."

"아, 저거... 그거 만드느라. 후훗." 

저 테이블에 앉아 누나가 날 위해 십자수를 하나하나 놓았다고 생각하니 정말 가슴이 녹아들 것만 같았다.

난 주머니에 조심스럽게 넣어놓은 십자수를 매만지며 헛기침을 했다.

"으흠, 다음엔 제가 뭐 하나 만들어드릴게요."

"응?"

돌아보는 그녀에게, 나는 꽤 부끄러웠지만 꿋꿋이 말을 이었다.

"십자수는 아니라도... 저도 다음에 선물 하나 해드릴게요."

"정말?"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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