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화 (18/20)

그날, 모두들 왔을 때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행동했지만 P군도 홍세린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랬구나...'

동굴에서 주저주저하던 그녀. 자신이 말을 걸면 얼굴이 붉어지던 그녀.

'언제부터였을까?'

홍세린과는 큰일이 두 번이나 있었기 때문에(인공호흡, 강간구조) 그중 무언가가 계기가 되었을 수도 있고, 둘 다였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 전부터 좋아했던 것인지도 몰랐다. 어쨌든 중요한 건 홍세린이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어둠 속에서 홍세린의 모습을 그리고, 그녀가 얼마나 예쁘고 청순한지 다시 되새겼다. 원래부터 놀랄 만한 미소녀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번 일로 좀 더 진지하게 다시 보게 되었다.

'마다할 이유가 없지... 귀여워, 홍세린은.'

홍세린의 돌발 행동으로, 여자에 대한 관심은 접고 살던 P군에게 변화가 왔다.

한편, 홍세린은 홍세린대로 제대로 한 것인지 모르겠어서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P군, 분명히 팔을 둘러 주었으니까...'

하지만 평소에도 매너가 좋은 P군이다. 어쩌면 자신이 무안할까봐 배려해 준 것일지도 몰랐다. 그 후로는 계속 일행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P군의 마음을 확인할 방도가 없었다. 어쩌면 적극적인 여자를 싫어할지도 몰랐다.

'그럼 어떡하지...'

아까의 대담한 행동과는 반대로 점점 소극적이 되어 가는 홍세린이었다. 그녀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 고백 Part.

II -->

첫사랑이라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아는 것이 없었고 그래서 고민이 많았지만, 홍세린은 P군을 생각할 때마다 행복한 기분을 느꼈다.

'P군같이 좋은 사람이라서 다행이야... 처음 좋아하게 된 사람이.'

방실방실 웃는 홍세린을 아니꼽게 바라보던 윤아영이 입을 열었다.

"뭐 좋은 일이라도 있어? 고백한 얼굴이네."

"아, 아니..."

홍세린의 얼굴이 화르륵 달아올라 귀 밑까지 빨갛게 되었다. 허둥지둥하는 그 모습을 보며 윤아영은 저으기 놀랐다.

'뭐, 뭐야... 정말 한 건가 저 아이...'

"저... 고백이라고 해야 할 지 아니라고 해야 할 지."

홍세린은 부끄러운 표정으로 더듬거리며 말했다.

"뭐야? 정말 뭔가 있었던 거야?"

홍세린은 정말 민망해서 어쩔 줄 몰랐다. 그녀는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훗, 그렇게 안 봤는데 제법이구나 홍세린."

윤아영이 농담인지 비꼼인지 알 수 없는 말투로 툭 던졌다.

'어째서지... 아영이 조금 화난 것 같다... 왜일까.'

홍세린은 윤아영의 말투에 날이 선 것을 감지하고 조금 위축되었다.

'혹시... 내가 미리 상담을 하지 않아서... 도와주려고 했는데 나 혼자 말없이 해 버리니까... 그런 거야?'

"저기, 미리 말 안 해서 미안..."

"뭐라구?"

윤아영이 기가 막히다는 듯이 홍세린을 돌아보았다. 같은 여자이지만 자신보다 한결 가녀리고, 청순해 보이는 홍세린의 우물쭈물하는 귀여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윤아영은 짜증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왜지? 왜 화가 나는 건지 모르겠네. 적어도 얘 잘못은 아니잖아.'

윤아영은 곧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런 거 아니니까... 앞으로 P군 관련된 이야기는 나한테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응... 응?"

"왜냐면... 난 P군이 싫으니까. 절대 너와 관련된 이유는 아니야."

씁쓸하게 미소짓는 윤아영을 바라보며 홍세린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하지만... P군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인데...'

"저... 고기 손질... 도울 수 있어요."

"존댓말 안 써도 된다니까?"

채하진이 상냥하게 웃으며 말했다. 연수민은 아차 싶어 다시 말투를 바꾸었다.

"미안... 내가 원래 낯모르는 사람한테는 한동안 존댓말을 쓰는 버릇이 있어서..."

"그렇구나. 예의가 바르네."

연수민과 채하진은 한동안 말없이 물고기를 손질했다.

"다 됐어?"

"응."

우경철이 다가와 손질된 물고기를 꼬챙이에 꿰었다. 연수민은 어색한 분위기를 떨쳐내려고 한결 더 열심히 생선을 손질했다.

두 사람은 연수민에게 친절했다. 연수민이 처음 믿은 대로, 우경철은 아주 착한 사람이었고 채하진은 타고난 상냥함으로 그녀에게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그러나 자신이 잘 지내고있는 둘 사이에 들어와 상황을 어색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몸으로 느낄 수 있었

다.

'겉으로 보기엔 정말 안 어울리지만... 두 사람 분명히 커플이구나.'

그녀가 온 후로 두 사람은 직접적으로 애정 행각을 벌이지는 않았지만, 서로를 대하는 태도에서 커플이라는 느낌이 물씬 묻어났다.

'나 때문에 불편하게 되었네...'

그녀는 당장이라도 거처를 옮기고 싶었다. 미안한 마음은 무겁게 그녀를 짓눌렀다. 그러나 당장 옮긴다 해도 어디로 가야 할 지 몰랐다.

'고마운 사람들이기는 한데... 미안해라.'

벌써 그녀가 온 지도 5일이 넘어가고 있었다. 하루에도 두세 차례 섹스를 나누던 우경철과 채하진인데, 새로운 식구가 온 뒤로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우경철은 시간이 지날수록 채하진과 둘이 편안하고 자유롭게 살던 시기가 그리워졌다.

'오늘은... 어떻게든 해야겠다능. 못 참겠다능...'

그는 채하진 상상만 해도 단단히 발기되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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