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화 (17/20)

전소라는 아무것도 모른 채 가벼운 발걸음으로 숙소로 향했다. 도착했을 때, 그녀는 밝은 얼굴로 일행에게 인사했다. 이은지는 잠들어 있었고, 박성규와 최기훈은 바위 위에 걸터 앉아 있었다.

"어... 수민이 먼저 안 왔어? 먼저 가겠다고 했는데."

"모르겠는데."

"그래?"

전소라의 다정한 얼굴이 걱정으로 어둡게 변했다.

최기훈과 박성규는 이미 그녀가 오기 전에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기로 마음을 먹은 상태였다. 최기훈은 아직 때가 아니라고 말했고, 박성규는 그에 동의했다. 최기훈은 전소라에게는 일말의 진심도 있었기 때문에, 이은지 때처럼 덮어놓고 일을 치르는 식으로 진행시키고 싶지 않았

다. 그들이 제대로 해 봐야 사실 거기서 거기지만, 그래도 나름의 방식이 있는모양이었다.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겠지만..."

최기훈은 걱정스런 목소리를 가장하며 말했다.

"알다시피 섬이라 불이 없기 때문에... 밤에 어두컴컴해서 괜히 우리까지 위험해질 수가 있다고."

"그렇지만...! 그렇지만 수민이가 무슨 일을 당했을 지 모르는데..."

사실 이은지는 잠든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표정을 관리할 자신이 없어 자는 척을 했던 것이었다. 전소라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며 이은지는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한 마디라도 입밖에 낸다면 그 즉시 그녀의 머리를 커다란 짱돌로 찍어누를 것이라는 위협을 받았기 때문이

다. 요 근래 단 몇 주 사이에 그녀의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최기훈은 짐짓 믿음직스런 태도로 그녀를 안정시켰다.

"이럴수록 냉정해져야지. 이러다가 다 죽어. 알았어?"

그의 말에 전소라는 좀 평정심을 찾는 듯했다.

"역시... 일행 중에 남자가 있어서 다행이야."

박성규와 최기훈은 의미 있는 눈빛을 나누었다. 이은지는 몸을 심하게 떨었다.

"은지야, 춥니?"

"..."

"잠 깊이 들었나보네."

전소라는 정말 아무것도, 아무것도 몰랐다.

"이제 와?"

채하진은 밝은 얼굴로 우경철을 보다가, 곧 그의 뒤를 따라오는 낯선 여자아이를 발견하고 몸이 굳었다.

"누... 구?"

"아..."

연수민은 눈으로 다른 일행을 찾았지만, 더이상 아무도 없었다. 어딘가 나가 있을 수도 있지만, 이미 해가 저물어 있었기에 그럴 가능성은 없었다. 아마 이 두 명이 전부인 것 같았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5반의 연수민이라고 합니다."

"어... 어떻게..."

채하진은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우경철은 조용히 설명을 했다.

"여기는 나랑 같이 지내는 12반 채하진... 여기는 5반 연수민... 오늘 위험에 처한 것을 구해 주고 지낼 곳이 없어서 같이 지내자고 얘기하길래 데리고 왔다능..."

"아..."

채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배고플테니 버섯 굽자능."

우경철은 버섯을 들고 불가로 갔다.

"어... 저... 반가워. 다른 사람도 있었구나. 이 섬에."

"네, 저 말고도 네 명 더 있어요."

"왜 존댓말을 쓰니?"

채하진의 말에 연수민은 금방 말을 놓았다.

"네 명 더 있는데... 그 중에 두 명이 남자인데 정말 나쁜 사람들이라..."

"안다능."

버섯을 굽는 우경철이 등을 돌린 채로 말했다.

"우리반이라능."

"우... 우리반?"

채하진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최기훈이랑 박성규라능."

"아..."

채하진이 수긍이 간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반에서도 불량하기로 이름난 그들이었다.

종종 그들은 채하진에게도 추근거리곤 했었다.

"존나 맛있게 생겼다 너."

그럴 때면 채하진은 기분이 상하여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리곤 했다. 그런 그들이...

"나쁜 짓을 하려고 해서 도망나왔어."

어떤 나쁜 짓일지는 안 봐도 비디오였다. 채하진은 연수민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려 다독였다.

"큰일날 뻔했구나..."

밤중이었다. 전소라는 자신의 몸 위에 실리는 체중을 느끼고 잠에서 깼다.

"쉿."

그림자가 말했다.

"조용."

"누... 구..."

잠이 덜 깬 전소라가 희미하게 말하자 목소리가 귓가에 속삭였다.

"누구겠어..."

"박성규?"

"쉿."

전소라는 꼼짝없이 당할 판이었다. 그녀는 이미 얼어붙어 움직이거나 소리를 지를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박성규는 서서히 그녀의 교복을 벗기고, 그 안의 속옷을 벗기며 서서히 가슴을 주물럭거렸다.

"..."

전소라는 너무 놀라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대로 마네킹처럼 누워 있었다. 작업을 하는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다루기 쉬운 상대였다.

박성규는 전소라의 교복을 적당히 벗겼다고 생각될 무렵 그녀의 다리 사이에 손가락을 쑤셔 넣고 본격적인 애무로 들어갔다.

"아.."

전소라가 낯선 감촉에 몸을 떨었다.

"조용히..."

박성규는 충분히 재미를 보았다고 생각될 무렵, 커질대로 커진 자신의 것을 전소라의 질구에 갖다 댔다. 손가락을 강제로 쑤셔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였기 때문에 좋든 싫든 젖어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자..."

그는 서서히, 전소라의 몸 속을 뚫고 들어가고 있었다.

"아아......"

전소라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고개를 한쪽으로 축 늘어뜨린 전소라 위에서, 박성규는 저 혼자 열락을 맛보았다. 그녀의 몸은 야들야들하고 탄력이 있었으며, 안쪽도 마찬가지였다. 박성규의 것을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사방 팔방으로 조이는 구멍이었다. 그는 참지 못하고 전

소라의 안쪽에 엄청난 양을 분출했다. 아마 그녀의 뱃속은 흰색의 정액으로가득 채워졌을 것이리라. 그는 몇 번이고 재미를 본 뒤 전소라의 배 위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적당히 옷을 입혔다.

다음 날, 날이 밝았다. 전소라는 눈을 떴지만 머리가 띵하니 울리는 것이 기분이 이상함을느꼈다. 그리고 곧 전날 있었던 일을 기억해냈다. 무언가 말하려 하자, 박성규가 난처한 눈치를 줬다. 그러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아, 박성규였구나... 역시... 당한 건가?'

그녀는 아직도 충격이 가시지 않아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 몰랐다. 화가 나지도 않았다. 그저 너무 갑작스러웠다.

이은지 때와는 다르게 그녀는 상황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은지는 최기훈과 박성규로부터 처음부터 윤간을 당했기 때문에 자신이 확실히 성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전소라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이 당한 일의 정체를 몰랐다. 게다가 곧 정신

을 잃었기 때문에, 많은 부분을 기억하지 못했다.

단순한 성폭행인지, 아니면 박성규가 자신을 너무 좋아해서 벌인 일인지 그녀는 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오랜 무인도 생활로 판단 기준이 흐려져, 그녀는 오히려 박성규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이 그렇게 싫지는 않았다. 모든 게 처음 겪는 일이었다.

"배고프네..."

그녀는 딴소리를 하고, 박성규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행동하고, 이은지는 요 근래 늘 그렇듯 힘이 없었으며, 최기훈은 활기찬 모습이었다. 그렇게 또 하루가 시작되었다.

<-- 말없는 고백 -->

첫 관계가 있은 후, 이튿날 밤에도 박성규는 전소라를 탐했다. 그녀는 역시 상황을 정리하지 못한 채로 당했고, 이번에는 정신을 잃지는 않았지만 아무런 판단도 할 수 없었다. 그 후로 밤이 되면 이따금 박성규는 전소라의 위로 올라오곤 했다.

전소라는 박성규로 인해 처녀를 잃은 몸이 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녀도 그런 관계가 싫지는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선천적으로 음심이 있는 여자가 있다는데, 전소라가 그런 셈인지 그녀는 오히려 그것을 즐기게끔 되었다. 그래서 박성규가 올라오면 몸을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인다든지 하여 응하곤 했는데, 그것을 알아차리면 박성규는 한결 더 흥분이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첫 남자에게 점점 애

착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그런 것을 최기훈은 알 리 없었다. 그는 적당한 시점이 오면 전소라와 일을 벌일 계획만 잔뜩준비해놓고 있었다. 그리고 간간히 이은지와 관계를 가지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기대에 부풀어 보내고 있었다.

"저, P군."

홍세린이 말을 걸어 왔다.

"포커 치지 않을래."

"그럴까?"

홍세린을 제외한 다른 여자들은 해변으로 가서 조개를 주워 오겠다고 한 어느날이었다. 홍세린은 왠지 피곤하다며 나가지 않았다. 그런 그녀를 윤아영은 까닭 모르게 지긋이 바라보더니 나갔었다. 요즘 들어 별로 긴밀해 보이지는 않는 그녀들이었다. 애초에 윤아영이 살가운 성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요즘은 좀 사이가 벌어져 보이는 것을 P군도 느끼고 있었다.

P군은 홍세린의 요구에 응했다. 그래서 둘은 카드놀이를 시작했는데...

홍세린은 기회를 봐서 P군에게 말을 꺼낼 틈만 찾는 바람에 번번이 어이없는 실수를 하곤 했다.

"그만 할까? 집중 잘 못하는 것 같은데..."

"저기... 저어..."

"응?"

홍세린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졌다. P군도 대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달아오른 얼굴이었다. P군도 뭔가 이상한 낌새를 챘다. 그리고 요 근래 홍세린의 이상 행동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주 잠깐, 혹시 나를 좋아하는 건가 싶은 생각도 했지만, 그건 그저 단순히 떠오른 여러 생각들 중 하나일 뿐으로, 그대로 스쳐지나갔다. 아무래도 그녀의 이상 행동은 강간을 당할 뻔한 후유증으로 생겼다는 의심이 갔기 때문이다.

"홍세린, 괜찮아? 어디 아파?"

P군은 진심으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홍세린을 바라보았다.

"그게 아니라..."

홍세린의 눈에는 벌써 눈물이 고여 있었다.

"P군... P군..."

"응 말해..."

그녀는 감정이 북받쳐 더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P군에게 쓰러지듯 안겨 왔다...

"어?"

그녀로서는 그녀 안의 용기란 용기는 전부 쥐어짜내어 한 행동이었다. 이미 홍세린은 현기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P군이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는 사이, 홍세린은 가만히 팔을 들어 그의 목을 끌어안고 매달리듯 안겼다.

"헉..."

P군의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이렇게 된 이상, 홍세린의 행동이 그 일 때문이 아니라 그를좋아해서라는 것은 바보라도 알 수 있었다.

"너......."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그에게 안긴 홍세린의 심장도 갓 잡힌 새의 그것처럼 팔딱팔딱 뛰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전심전력으로 부딪혀 오는 홍세린의 진심을 느끼고 팔을 그녀의 등 뒤로 둘러 안았다.

언제나 잘 울곤 하는, 소녀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청순한 미소녀 홍세린. 그녀는 성격도 착하다는 것을 P군은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P군은 싫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자신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안 순간,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지는 것을 느꼈다.

이제까지 그는 네 명의 소녀들 모두가 마음에 들긴 했지만, 그중 누구에게도 마음을 직접적으로 쏟고 있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이것은 관심 있는 여자가 없어서가 아니라, 무인도 생활이라 서로 조심할 것이 많았고, 또 생존의 문제도 걸려 있었기 때문에 P군 스스로 그동안 무의식적

으로 자제해왔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일단 홍세린의 진심을 느끼자 마치 방아쇠가 당겨진 것처럼 P군의 마음도 달아올랐다. 그리고 비로소 홍세린을 여자 동료가 아닌, 진짜 여자로 보기 시작했다.

그녀는 P군을 글썽거리는 사슴같은 눈망울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P군은 언제나처럼 쓰다듬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그는 평소와는 다르게 생각을 행동으로옮겼다.

홍세린은 P군의 손길을 느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P군은 두근거렸다.

그때 바깥에서 와글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홍세린은 황급히 무릎을 세우고, P군에게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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