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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들과 비교해 본다면, P군과 만난 여자들은 행운이었다. P군은 그리 몸집이 크거나흉악하게 생기지도 않았지만, 만약 그랬더라도 P군은 싫어하는 행동을 할 인물은 아니었다.
밤이면 이제 P군과 여자들은 동굴 안에서 사이좋게 둥그런 모양을 하고 잠이 들었다. 늘 홍세린만이 뜬눈으로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P군을 훔쳐보다가(이제 불씨가 보관되어 있어 밤에도 어둡지가 않았다) 새벽녘에 잠들곤 했다. 그런 그녀이기에 늘 늦게 일어나는 건 당연한 수순이
었다. 항상 늦잠을 자기에 하루는 P군이 장난삼아,
"미녀는 늦잠꾸러기라던데..."
라고 말했다. 그날 홍세린이 하루종일 두근거리는 마음에 아무 일도 못 한 건 뻔한 일이었다.
"아아... 고백하고 싶어."
홍세린은 바닷가를 거닐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 무인도 포커 -->
그 즈음, 그들은 서유라의 카드를 곧잘 가지고 놀았다. 어느날 밤, 여자들은 불가에 모여 앉아 원카드를 치고 있었다.
"애매해서 끝나질 않네..."
"누구 새로운 카드놀이 아는 사람?"
"도둑잡기 할까나?"
"아까 했잖아."
"그럼... 뭐 하지?"
P군은 구석에서 무언가를 다듬고 있었다. 그들은 날카로운 돌을 이용하여 물고기의 살을 발렸는데, 당연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예리하면 예리할수록, 그리고 쥐기 편할수록 잘 발려졌다. 그래서 P군은 그 작업을 좀더 손쉽게 하기 위해 연장을 손보는 중이었다.
"P군!"
"응?"
서유라가 불렀다.
"뭐... 새로 아는 게임 없어? 원카드 질렸어."
"음..."
P군은 잠시 생각했다.
"포커 배울래?"
그리하여 여자들은 P군으로부터 포커를 전수받게 되었다. 의외로 그녀들은 큰 흥미를 보였다.
"재밌을 거 같아... 그런데 '족보'라는 게 외우기가 힘들어."
강아름은 울상이 되었다.
"저... 같은 게 두 개 있는 거보다 세 개 있는 게 더 좋은 거랬나, 나쁜 거랬나?"
"투페어랑 트리플(봉) 말하는 거구나. 트리플이 더 좋은 거지! 그게 나올 확률이 더 적거든."
홍세린은 구석에 앉아 가만히 눈을 빛내며 듣고 있었다.
"자아 그럼 테스트를 해 볼까. 한 판 해보자."
P군의 도움을 받아 가며 그녀들은 포커를 치기 시작했다.
"칩이 없으니까 일단 설명만 해둘게. 작은 돌 같은 걸 주워 와서 칩으로 쓰면 되겠지?"
모두들 직접 카드를 들고 치는 상황이 되자 헷갈리기 시작했다.
"에? 그런 패 가지고 올인 치면 안 되는 거야, 강아름."
"그런가? 하지만 난 혹시 뭐 좋은 게 나올까 하고..."
"혹시라도 돈 걸고 하는 게 있으면 넌 절대로 나가면 안되겠다 -_-"
몇 차례의 훈수를 통해, 곧 P군은 여자들의 개인별 이해도를 깨닫게 된다...
4등. 강아름.
그녀는 막무가내로 아무 때나 들어오려고 할 뿐더러 판돈도 많이씩 건다. 상당히 공격적인 플레이처럼 보일 수 있으나 사실은 굉장히 못치는 것이다.
공동 2등. 윤아영과 서유라. 그들은 적당히 합리적으로 치지만, 가끔 어이없는 실수를 하는 모습을 보인다. 전형적인 초보자인데, 앞으로 연습하면 잘 하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놀라운 건 홍세린이었다.
그녀는 한 번 듣고 족보를 다 외웠을 뿐 아니라, 플레이가 노련하여 마치 처음 치는 것 같지 않았다.
"전에 배운 적 있지?"
P군의 물음에 홍세린은 귀 끝까지 빨개지며 도리질을 쳤다.
"너무 잘하는데?"
여자들은 무료하던 차에 새로운 게임에 너무 마음을 빼앗긴 나머지 한밤중임에도 불구하고 횃불 비스무레한 것을하나씩 들고 나가 칩으로 쓸 돌멩이를 모아오기에 이른다. 꽤 많이도 모아 왔다.
"내일 일찍 일어나려면 자야 할 텐데..."
P군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쌩쌩했다. 윤아영이 피식, 하고 미소를 지으며 냉소적인 한 마디를 날렸다.
"내일 일찍 일어난다고 따로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하여 P군을 포함한 모두는 새벽이 될 때까지 포커를 치며 놀았다. 고등학생이라 체력이 한창 때라 그런지, 모두들 지치는 기색이 없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첫 순위가 정해졌다.
1등 홍세린
2등 P군
3등 윤아영
4등 강아름
5등 서유라 (서유라는 운이 나쁘게 초반에 죽었다)
P군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아무리 홍세린이 잘 친다고 해도... 어떻게 나보다?'
그도 그럴 것이, P군은 아는 친구들끼리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포커를 쳐 왔고, 남중에서도 많이 친데다, 그중에서도 P군이 거의 제일 잘 쳤기 때문이다.
그 다음 순위가 정해졌다.
1등 홍세린
2등 P군
3등 서유라
4등 윤아영
5등 강아름
...
게임이 반복되며 P군이 1등을 하기도 하고, 서유라가 영예를 차지하는 순간도 오긴 했지만 아무래도 압도적인 실력을 보이는 것은 홍세린이었다. P군은 그것이 의야했다.
"저, 이제 잘까? 동이 터 오네."
"한 번만 더 하고."
서유라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윤아영은 고개를 돌렸다.
"난 피곤해. 좀 자야겠어."
곧 강아름이 뒤따라 자리에 눕고, 가장 많은 실력 향상을 보인 서유라도 곧 하품을 하며 피곤해하는 기색을 보인다.
"잘까나... 안자?"
"응..."
P군은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는 홍세린과의 두뇌 싸움에 몰입 중이었다. 그러나 정작 홍세린 쪽은 평소와 표정 변화도 달리 없고, 그냥저냥 데면데면 치는 느낌이었다.
"호... 참으로 신기하네. 홍세린, 오늘 정말 처음 배운 거 맞아?"
"응? 으, 응.. ,"
자기 위해 누운 서유라가 한마디했다.
"세린이 머리 좋은 거 몰랐어? 아아 참, 다른 반이라 그런가..."
그러더니 곧 그녀마저 곯아떨어졌다.
그 다음 턴에는 P군이 이겼다.
"이얍!"
P군이 주먹을 쥐며 좋아했다.
'P군, 저렇게 좋아하는 모습 너무 귀여워... 저런 모습 계속 보고 싶으니까.'
홍세린은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나서 이어지는 게임은 번번이 어이없게 P군이 승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뭐야... 홍세린 졸려? 간만에 맞수를 만났다 싶었는데."
P군의 실망한 표정.
'아... 아닌데... 나 잘못했나...'
홍세린의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그런 그녀의 표정이 여느 때보다 더 예뻐 보였다. P군은 졸려서 그런가 싶어, 눈을 비볐다.
'오늘따라 홍세린 엄청 예뻐 보이는데...'
그는 자신과 함께 사는 네 명의 소녀들이 모두 미인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연애 감정은 조금도 품고 있지 않았다. 아니, 품지 않으려 의식적으로 노력했다는 것이 옳겠다. 일단 생존이 중요했고, 연애 감정이 생기기 이전에 그들은 팀이었다.
그런데 오늘, 홍세린은 이상하게 귀여워 보이는 것이다.
'울기 잘하는 울보 미소녀인줄만 알았더니... 가만 보니 대단히 영리해...'
그러고 보니, 각종 상식도 그녀가 제일 많이 알고 있었던 것이 기억났다. 이곳의 식물 생김새가 이상하다고 지적한 것도 그녀였고, 먹을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도 그녀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머리가 좋았구나. 아는 것도 많고... 그렇지만 얼굴만 보면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애 같아... ㅋ'
P군은 사슴같은 눈망울로 카드를 응시하고 있는 홍세린을 문득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그는 애써 충동을 자제해야 했다.
"홍세린, 졸리면 자라. 아침도 됐구..."
"저, 나, 난 괜찮으니까..."
홍세린은 간만에 P군과 둘만 깨어 있는 시간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다음 게임부터는 다시 홍세린이 승기를 잡기 시작했다.
"졸린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군... 흠..."
P군은 진심으로 홍세린과 노는 것이 재미가 있었다.
'세상에... 갓 배운 여자애랑 포커 치는 게 이렇게 박진감이 넘칠 줄이야...'
그러나 해가 수평선 위로 올라오고, 아무리 한창 때의 고교생이라 해도 슬슬 둘의 체력은 바닥나기 시작했다. 특히 홍세린의 눈꺼풀이 조금씩 감겼다. 그녀는 잠에 취해 몽롱한 기분이 되었다.
"졸린가 보네. 그럼 자."
"으응... 자야겠어..."
홍세린은 잠결에, 문득 지금이라면, P군에게 고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저어..."
"응?"
홍세린은 P군 곁에 가까이 다가 앉았다...
"무슨 일...?"
그러나 홍세린은 말없이 P군 쪽으로 안겨 오는 것이 아닌가...!!
"헛."
P군이 그녀의 팔을 잡아 일으키자, 그녀는 이미 쌔근거리는 숨소리를 내며 편안한 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뭐야, 잠들었잖아."
P군은 그녀를 반듯이 눕혀 주고, 여자들로부터 어느 정도 떨어진 곳에 손베개를 하고 누웠다. 이윽고 P군은 잠이 들었다.
그러나 가장 마지막까지 깨어 있던 건 P군이 아니라 홍세린이었다. P군은 그녀가 필사적으로 눈을 감고 자는 척한 것만 보았을 뿐, 그녀의 심장이 엄청나게 뛰고 있는 것은 조금도눈치채지 못했다. 홍세린의 자신의 대담한 행동에 스스로도 놀라, 한동안 얼굴을 붉히며 P군의 품의 감
촉을 되새기다가, 가장 마지막으로 잠이 들었다.
<-- 반복되는 만행 -->
그로부터 며칠 후, 가만히 손베개를 하고 누워 낮잠을 자려는 윤아영에게 홍세린이 가만히 다가왔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저어..."
"응?"
"물어볼 게 있는데..."
"물어봐."
"고백은... 어떻게 하는 걸까?"
윤아영은 짜증이 팍 났다.
"왜, 내가 고백할 줄 알 것 같아서 그러니? 나도 누구에게 고백해 본 적 없어."
"아니, 꼭 그렇다기보다... 그냥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어서... 계속 이대로라면 너무 힘들어."
홍세린은 벌써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 모습이 그녀를 한결 더 청순해 보이게끔 했다. 윤아영도 그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한결 더 성질이 났다. 왜 성질이 나는지 그녀도 잘 모를 일이었다. 그녀는 그저... 홍세린이 P군에 대한 연애 감정을 자기에게 주로 상담한다는 것
이 마음에 안 들었다.
'귀찮아. 변태가 뭐가 좋다고 자랑이람?'
"그래서, 고백하려는 거야?"
"응."
의외로 홍세린의 담담한 대답이다. 그 대답에 윤아영은 저으기 놀랐다. 늘 망설이기만 하는 그녀인데, 이렇게 마음을 확실하게 정하는 일도 있구나 하고.
"그런데 어떻게 하는 지 몰라..."
"나도 몰라. 미안. 도움이 안 돼서..."
그때 P군이 들어왔다.
"일손이 필요해! 강아름은 어디 갔지?"
"강아름은 왜?"
윤아영이 말했다.
"강아름이 너희들 중에서 제일 키도 크고, 체격 조건이 좋으니까 그렇지..."
"힘쓸 일인 거야?"
"꼭 그렇다기보다... 너희는 믿을 수가 없어서 말이지. (홍세린을 보며) 혼자 걸어도 쓰러질 것 같은 애한테 부탁해서야 되겠냐. (윤아영을 바라보며) 넌 얘보단 낫지만 그래도 자격 미달이야. 쯧쯧."
P군은 혀를 차며 바깥으로 나갔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향해 윤아영은 소리를 질렀다.
"잘됐네! 자격 미달이면 일 안해도 되니까..."
그 모습을 보며 홍세린은 중얼거렸다...
"내, 내가 도와주고 싶은데..."
"뭐라고 했어?"
"아무것도..."
P군은 동굴을 나오며 방금 전 그녀들의 몸매를 다시 상상했다. 가느다랗고 흰 팔다리, 날씬한 몸매... 살이라고는 가슴과 엉덩이 부위에만 붙은 그녀들. 도시에서는 누구라도 가지고 싶어 할 몸매임이 분명하지만, 여기에서는 좀 더 키가 크고 글래머 스타일로 살이 적당히 붙은 강아름
이나 보통 정도로 살이 붙은 서유라가 더 유용하다.
'하긴 가슴에는 살이 많구나... ;'
그는 문득 자기도 모르게 홍세린의 가슴 부위를 상상했다. 의도한 것이 아니었는데도 아랫도리가 딱딱하게 굳어 오는 것이 느껴졌다.
'헉...'
그는 당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