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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먹어야 된다능. 냉장고가 없어서 고기는 이런 더운 날씨에는 금방 썩으니까..."
"응."
채하진과 우경철은 그날 무인도에 온 이래로 가장 포식을 했다.
"그래도 더 이상 먹을 순 없어..."
"그럼 남기라능. 내가 먹겠다능..."
우경철은 멧돼지 뒷다리 하나를 금세 해치웠다. 고기를 먹을 만큼 먹고 난 뒤, 채하진은 방긋 웃으며 우경철에게 다가왔다.
"피곤하지? 저런 큰 짐승을 잡느라..."
"괜찮다능..."
"덕분에 잘 먹었어."
밝게 웃으며 인사하는 채하진의 귀여운 얼굴을 보고 우경철은 자기도 모르게 손을 뻗어 볼을 만지고 말았다.
"아앗... 부끄러워..."
그리고는 순식간이었다. 어느새 정신을 차려 보니 서로를 탐하고 있었다...
"하앙, 하앙."
채하진의 눈이라도 녹일 것 같은 교태어린 신음 소리가 울려퍼졌다. 어제의 일이 반복될 건 안 봐도 뻔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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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 동굴은 아주 천혜의 장소임에 틀림없어. 폭포를 뒤에 끼고... 아니, 폭포가 있더라니까, 이 섬에?"
"우리가 찾은 동굴도 채광도 되고 괜찮더라. 적에게 발견당할 염려도 없고..."
두 팀 모두 자기네가 찾은 동굴 이야기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서로 자기 팀이 찾은 동굴이 좋다는 이야기였다.
"우리 동굴은 벌레가 좀 있긴 했지만 괜찮았어. 아마 여기 있는 동굴은 다 벌레가 있을 테니까."
홍세린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우리 동굴에는 벌레가 없더라고..."
강아름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그러자 P군이 웃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 폭포가 있으면 습할 텐데 벌레가 없을 리 없어... 거기 혹시 유독 가스가 나온다거나 그런 거 아니야?"
"아니라니까, 아주 건조했어..."
"정말? 믿을 수가 없는데?"
"그럼 내일 다 같이 가보자."
"뭐... 그러든지."
그때 서유라가 문득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세린아. 너 벌레 무서워하잖아, 그러고 보니. 어떻게 들어갔어?"
"아... 그렇잖아도 나올 때 거미줄이 많이 묻었는데 P군이 떼 주었어..."
조용히 듣기만 하던 윤아영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아무래도 아름이네 동굴이 낫겠어."
P군은 윤아영을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넌... 내가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반대구나."
"그런 거 아니야."
윤아영은 정색을 했다.
"들어 보니까 조건이 그쪽 동굴이 더 나은 거 같아서..."
"그래? 그럼 내일 양쪽 다 확인해 보자. 먼 거리는 아니니까."
어쨌든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새로 피운 불씨를 옮겨야 했다(이것을 피우느라 P군이 또 엄청 고생을 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았다.
<-- 새로운 희생양의 등장 -->
'도대체 폭포 근처에 있는 동굴이 어떻게 건조해? 그게 어떻게 가능하다는 거야?'
P군은 강아름과 서유라가 발견했다는 동굴에 직접 방문하기 전까지는 반신반의했다. 그리고 그들이 왜 그렇게 자신있게 자기네가 찾은 동굴이 좋다고 우기는 것인지, 의아하게만 여겼다.
그러나 직접 찾아갔을 때...
"와."
P군도 의외의 광경에 놀라서 숨을 들이켰다. 홍세린도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강아름과 서유라가 발견한 동굴은 정말이지 '멋졌기' 때문이다... 동굴은 깊이가 그리 깊지는 않았는데, 한쪽 끝이 막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위를 폭포수가 덮고 있었다. 그쪽 구멍은 폭포가 마르
지 않는 한은 외부에서 관찰될 염려가 없어 보였다. 다른 쪽 구멍으로 들어가면, 자연스레 폭포수가 흐르는 쪽 구멍이 가장 안쪽이 되었는데, 그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어와 채광 또한 좋았다. 더욱이 신기했던 것은, 그렇게 폭포 뒤쪽에 붙어 있는데도 꽤나 공기가 습하지 않다는 거였
다. 아무래도 동굴의 지형이 묘하여 그런 효과가 얻어지는 듯했다.
"정말 멋진데. 이 정도면 우리는 깨끗하게 항복이다."
오전 중에는 P군과 홍세린의 동굴을, 오후에는 강아름과 서유라의 동굴을 구경했는데, 5인은 만장일치로 후자를 택했다.
"그럼 이제 불씨를 옮기면 되겠지? 자아 마른 짚을 깔고..."
바삐 움직여 옮기고 나니 금세 해가 저물었다.
"여기는, 시간이 엄청 느리게 가는 것 같으면서도- 무언가 하기 시작하면 금방 가버려."
"정말 그래. 어느새 우리 적응해 버린 것 같네."
강아름과 윤아영이 중얼거리는데, 문득 P군이 끼어들었다.
"우리, 아예 이참에 숙소를 동굴로 옮겨 버릴까? 비가 오면 젖을 염려도 없고... 동굴이 해안이나 시내에서 멀지도 않으니까. 어때?"
"그럴까?"
서유라가 눈을 빛냈다.
"좋은 생각 같아~"
그리하여 이튿날 이사가 시작되었다... 라고는 하지만, 이사라고 해 봐야 비축해 둔 땔감이라거나과일 외에는 별다른 짐이 없었으므로 오전 중에 깔끔하니 끝이 났다. 느지막한 점심으로 여느때와 같이 갓 잡아 온 생선을 구워 먹고, P군은 잠시 낮잠을 청하려 했다. 그가 자리에 눕기
직전, 강아름과 서유라는 과일을 따러 나갔다. 윤아영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아마도 산책을 하러 갔거나 강아름 일행을 따라 갔을 것이었다. P군 곁에는 어딘지 내내 부자연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홍세린만 남아 땔감 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거 다 정리되지 않았어? 뭘 또 정리할 게 있다구..."
"으, 응? 아니 난 그냥 보기 좋게 하려고..."
홍세린의 얼굴이 빨개졌다.
'또... 또... 잘못하면 울리겠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둘까.'
이윽고 P군은 잠이 들었다. 홍세린은 그런 P군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가만히 한숨을 쉬었다.
'귀... 귀여워, P군...'
사실 P군의 외모는 그다지 귀여운 편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모든 사람이 그렇듯이, P군 역시 평범하게 생겼으며,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때로 귀엽게 보이는 때도 있기는 할 것이다. 연장자가 볼 때 젊은이는 모두 귀여워 보인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미 콩깍지가 씌일
대로 씐 홍세린의 눈에는 P군의 행동 하나하나가 두근거렸다.
그녀는 하던 일손을 놓고 물끄러미 P군을 바라보며, 그렇게 넋을 놓고 앉아 있었다.
잠시 바깥을 거닐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들어오려던 윤아영은 동굴 입구에서 그 모습을 보았다. P군을 멍하니 응시하는 홍세린의 눈길...
'뭐야, 왜 이렇게 기분이 나쁜 거지.'
윤아영은 괜히 짜증이 나서, 들어가려던 발걸음을 옮겨 다시 해안가로 향했다. 뭉게구름이 수평선 위로 피어오른, 날씨 화창한 하루였다.
홍세린은 P군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문득 자신이 쓰러졌을 때 인공호흡을 해 주었다던 이야기를 기억해 내고 얼굴을 붉혔다.
'첫 키스였지... P군에게...'
홍세린은 가슴이 떨려왔다. 남자에게 관심이 있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P군에 대한 마음이 한결 진지한지도 모를 일이었다. 청순한 외모에 가냘픈 몸매, 희고 티 없는 맑은 피부와 타고난 결 좋은 갈색 머리카락은 홍세린을 늘 돋보이게 하여, 인근의 남고생들은 홍세린이 지나가면
그녀의 외모에 대해 꼭 한마디씩 할 정도였지만, 정작 그녀는 남자에게 통 관심이 없었다.
언니들과도 나이 차이가 많이 나고, 둘 다 가벼운 성격은 아니라서 홍세린은 쿡쿡대며 남자 이야기를 하는 애들과는 좀 거리가 있었다. 그래서 고백을 받아도 난처한 듯이 늘 거절했던 것인데...
'갑자기 이렇게 좋아지게 될 줄은...'
정말 순식간이다. 사람이 좋아지는 건. 처음에 P군과 함께 조난을 당했을 때에는 워낙 경황이 없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는데, 몇일을 모두와 함께 보내고, P군의 담담한 성격을 알고 나면서 점차 호감이 생기고... 결정적으로 인공호흡 사건과 성폭행 위기에서 구해 준 사건 이후로
는 확연히 의식하게 되어 버렸다.
홍세린은 잠든 P군에게 키스가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로서는 무리... 그래서 그녀는 하염없이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