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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산은 높이가 높지는 않은데, 제법 광대한 지역에 걸쳐 있는 것 같았다.
"야, 잘하면 여기 동굴이 나오겠는데?"
P군이 신나는 표정을 지어 보이자,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홍세린의 얼굴이 빨개졌다.
'저... 저런 표정 지으면 두근거리게 되니까...'
"열심히 찾아보자!"
P군이 홍세린을 바라보자 홍세린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정말... 왜 그러지? 계속 이상 행동이 보이네.'
"이봐. 바위산으로 올라가기 전에..."
"으... 응?"
"나하고 얘기 좀 해."
P군은 홍세린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세린은 어쩔 줄 모르고 고개를 돌리려 했다.
"아무래도 너 좀 이상해..."
"그... 그런 거 아냐...."
홍세린은 더듬거리며 말을 받았다.
'그런 게 아니고...'
P군은 홍세린을 또렷이 바라보고 있었다.
'아앗.. 그렇게 바라보면 정신이 하나도 없어진단 말야...'
홍세린은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글썽거렸다.
"에? 왜 우는 거야? 갑자기..."
P군은 크게 당황했다.
<-- 어느 동굴로? -->
"저, 정말 아무것도 아니니까... 훌쩍. 신경 쓰지 마-"
"아니..."
'아니, 다짜고짜 울기 시작하면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잖아...'
P군은 어리둥절하여 홍세린을 바라보았다.
'내가 무언가 잘못했나?'
그러나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 보아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흠... 도대체 뭐지?'
P군은 자연스러운 태도로 홍세린의 등을 토닥여 주려 했다. 마치 홍세린이 울 때 서유라나 강아름이 그러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하앗!!!"
홍세린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몸을 비틀며 피했다.
'역시, 그때의 기억으로 좀 힘들어져 있는 상태구나. 최대한 내버려 두어야겠다.'
P군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홍세린을 향해 안쓰러운 눈초리를 보냈다.
"여튼... 갈까?"
"응."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바위산에는 길이 나 있지 않았다. 가는 곳이 곧 길이었다. 나무가 없고 온통 돌 뿐이라 올라온 곳이 내려다 보였기에 길 잃을 염려는 없다는 것은 다행이었다. 산도 널찍하니 크고 완만하여 비교적 오르기가 쉬웠다.
"그 바위는 조심해, 움직이니까..."
P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홍세린이 휘청, 하고 흔들렸다. P군은 재빠르게 손을 내밀어 홍세린을 붙잡았다.
"하아아."
홍세린이 뜻모를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할 수 없잖아. 이런 위기 상황에서는. 싫어도 잡아야 한다고.'
P군은 얼른 홍세린의 손을 놓았다.
날씨는 언제 비가 왔냐는 듯, 단 하루 폭우가 쏟아진 날을 제외하면 줄곧 맑았다. 바위 틈에 핀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바람이 불어올 적마다 한들한들 움직이며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P군과 홍세린은 바위산을 크게 한 바퀴 돌아 가며 동굴이 있는지 열심히살폈다.
"저... 저거 어떨까."
홍세린이 가리킨 쪽에는 동굴이라 하기에는 조금 곤란한 사이즈의, 약간 안으로 패인 공간이 있었다. 깊지 않아 안쪽이 모두 보였다.
"음... 동굴은 아니지만 저 정도라도 불씨가 꺼지지 않을 정도는 되긴 하겠다. 기억해 놓자."
홍세린은 뒤를 흘끗 돌아다보고, 산 아래의 출발 지점을 내려다 보았다. 방향이 어딘지 가늠하는 것 같았다.
한참을 가다 보니 바위산 바깥에서는 잘 관찰할 수 없는, 오로지 산을 오르며 눈에 불을 켜고 수색을 해야만 찾아낼 수 있을 정도로 숨겨져 있는 구멍이 나타났다.
"아."
"아... 아..."
P군이 소리를 지르자 메아리가 쳐 오는 것이 제법 공간감이 느껴졌다.
"여기 괜찮은데?"
P군은 소리를 지르고, 돌을 던졌다. 그러나 안에서는 무반응.
"박쥐 같은 것도 살지 않나봐. 한번 들어가 볼까?"
"으... 으응."
"곤충이 무서우면 밖에 있어도 돼. 나만 갔다 오면 되니까."
"아, 아냐... 괜찮아!"
홍세린은 P군의 뒤를 따라 동굴로 들어왔다.
워낙 산기슭에 숨겨진 곳이라 그런지 안쪽은 햇살이 비치치 않는 곳이었다. 그러나 먼발치에 희미한 빛이 보이는 것 같아 그리로 조심스레 걸어가 보니, 동굴의 벽에 아주 미세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하하. 이건 창문인가? 이 근처에서는 내부가 좀 보이네."
P군과 홍세린이 둘러보니, 안쪽은 조용하고, 건조하고 편평했다.
"여기 괜찮은데? 채광도 되고 말야."
"그, 그러네... 어맛!"
홍세린은 문득 뒤를 돌아보다, 한줄기 빛에 비친 거미줄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그러나 피하려다 그만 P군을 밀쳐 넘어뜨리고 말았다. 졸지에 홍세린은 P군을 올라 탄 자세가 되어 버렸다.
"으... 윽..."
"아앗... 미, 미안... 괜찮아?"
"괜... 찮아..."
어렴풋이 홍세린의 얼굴이 보이고, 야릇한 자세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 어서 내려와."
"아... 응!!! 미안!!!"
'또 우는 건 아니겠지...?'
"나가자. 벌레 보고 놀랐지? 아마 안에 꽤 있을 거야. 우리가 나중에 청소해야지."
"으... 응."
밖으로 나오니 정말 홍세린과 P군의 옷에는 거미줄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아앗, 싫어, 싫어."
홍세린은 어느새 또 눈물이 글썽해져가지고는 몸을 털었다.
"이리 와. 내가 털어 줄게."
P군은 홍세린의 옷을 툭툭 털어 주었다.
"다행히 줄만 묻고 거미는 없네?"
"후우우..."
홍세린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P군을 고마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내 생각엔 이제 해도 지고, 이 정도 퀄리티의 동굴은 더 나올 것 같지 않으니 그만 돌아가는 게 어떨까?"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