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20)

P군은 잠이 안 와 뒤척이다가, 동이 희부옇게 터올 무렵 바닷가로 나가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불을 다시 피워야겠군. 날씨가 좋아서 나무가 싹 마르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나저나, 구조대는 어떻게 된 걸까. 우리가 다 죽었다고 결론을 내리고 조사를 중단한 건 아니겠지... 언제까지 여기서 지내야 하는 지 모르니 힘이 드네...'

그때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돌아보니 강아름이었다.

"벌써 일어났어?"

"응... 잠이 안 와서. 그러는 너는."

"나는 원래 이 시간이면 눈이 떠지더라구. 사실 이때 일어나 있는 건 언제나 나뿐이었거든."

강아름이 웃으며 말했다.

"무슨 생각 하고 있었어?"

"언제 구조될까... 하는 생각."

강아름은 어른스럽고 침착한 구석이 있어, 자신도 모르게 속내를 털어놓게 된다. 듣는 사람을 불안하게 할 수 있는 말이지만, P군은 그냥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너무 조바심내진 마."

"너다운 말이다."

P군은 웃으며 강아름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불을 다시 피워야겠어. 비가 와서 꺼졌으니까. 그보다, 우리 동굴을 찾아 보는 게 어떨까?"

"좋은 생각이야."

강아름은 미소지었다. 미소를 짓자, 그녀의 예쁜 얼굴이 한결 돋보였다.

"그럼... 애들이 일어나면 그 계획을 짜보자. 주변을 탐색해야겠지?"

P군은 끄덕였다.

그때, 홍세린은 P군과 둘이 학교 근처에서 데이트를 하는 꿈을 꾸고 있었다. 달콤한 꿈에 홍세린은 자면서 미소를 지었다.

<-- 동굴 탐사 시작! -->

날이 밝자 일행은 팀을 나누어 흩어져서 근방의 동굴을 찾아보기로 했다.

"자, 그럼 아영이는 아직 발목이 아플 테니까 있구... P군이랑 세린이랑 같이 나갔다 와. 나랑 유라가 같이 갈게."

강아름이 의젓한 목소리로 말했다.

"응? 나도 발 괜찮은데..."

윤아영이 떼를 썼다.

"그러지 말고 쉬어. 발 삔 건 생각보다 오래 가거든..."

윤아영은 홍세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홍세린은 윤아영에게 오른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뭐, 뭐야. 저 의미는... 잘해볼게, 기다리고 있어, 란 건가...'

윤아영은 점점 더 기분이 나빠졌다. 윤아영이 그러거나 말거나, 네 명은 두 팀으로 나뉘어져 동굴 탐색에 나섰다.

"그럼, 길 잃지 말고 좋은 데 찾아 와."

"너네나 길 잃지 마~"

두 팀은 가벼운 장난을 치고 난 뒤 윤아영을 뒤로 하고 헤어졌다.

둘만 남게 되자 홍세린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P군은 그런 그녀를 흘깃흘깃 곁눈질로 바라다 보았다.

'혹시 그때 너무 충격을 받아 남자라면 다 싫어졌다던가...?'

"홍세린."

"으,응?"

'역시 그런 건가...'

"강아름이랑 가고 싶어?"

"아... 아니 괜찮아."

"같이 가고 싶으면 말해."

"아... 괜찮아."

'뭔가 반응이 예전과 다른데...?'

간격도 어색하게 떨어져 따라왔다. P군은 더 이상 그런 문제로 말을 꺼내지는 않았지만 계속 신경은 쓰고 있었다. 한참 해안을 따라 한 방향으로 가다 보니 바위로 된 야트막한 언덕이 하나 나왔다.

"아! 저기 혹시 동굴 비슷한 게 있으려나?"

"으.. 으응. 그래 보이네..."

홍세린이 더듬거렸다. 그때 덤불 근처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엄마야!"

홍세린은 자기도 모르게 P군에게 몸을 밀착시켰다가 다시 화들짝 놀라며 떨어졌다. 아주 순간이었지만 P군의 팔에는 홍세린의 말캉한 가슴의 감촉이 느껴졌다.

'큭...'

P군은 그 와중에도 홍세린의 가슴을 느끼고 자기도 모르게 긴장을 했다가,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저게 뭐지?"

수풀은 계속 부스럭거리고 있었다.

'맹수라면...'

그 생각을 뒷받침하기라도 하듯이 안에서는 크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앗, 무서워..."

홍세린은 P군의 곁에 바짝 붙어 큰 눈을 더욱 크게 뜨고 수풀을 응시했다. 그러나 잠시 후그 안에서 나온 건...

"아? 귀여워라..."

작은 고슴도치였다...

홍세린이 손을 내밀자 고슴도치는 가만히 그녀의 손을 타고 올라왔다.

"아앗? 간지러워... 하하..."

홍세린이 몸을 뒤틀며 가볍게 웃었다. 그녀의 맑은 웃음소리가 메아리치듯 울려퍼졌다.

"얘 데려가서 길러도 될까나...?"

"안돼. 주변에 엄마나, 가족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좀 아쉽당..."

홍세린은 서운한 표정으로 아기 고슴도치를 바닥에 내려주었다. 곧 고슴도치를 부스럭거리며 원래 있던 덤불 안으로 들어갔다.

둘은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이제 바위산이 코앞이었다.

태양이 하늘 정중앙에 떠서 뜨겁게 내리쬘 때쯤 채하진은 일어났다. 몸은 커다란 야자수 잎으로 대강 가려져 있었지만, 그 사이사이로 희고 보드라운 속살이 들여다보였다.

바다는 잔잔하고 날씨가 무척 좋았다. 하진은 기분이 좋았다.

"아... 잘 잤다..."

그런데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우경철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어디 갔지...?'

처음엔 근처에 무언가 준비하러 갔나 싶었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기척이 없는 거였다. 아직 해가 지려면 멀었지만, 왠지 심상찮은 기색에 채하진은 더럭 겁이 났다.

그때였다.

"여기라능...!"

우경철이 제법 커다란 짐승을 들고 왔다.

"그, 그게 뭐야? 멧돼지...?"

"잘 모르겠는데... 숲에서 내려와 나에게 달려드는 것을 우연히 잡게 되었다능."

"멋지다... 사냥도 하는구나?"

채하진이 존경의 눈빛으로 우경철을 바라다보았다.

"윽..."

그치만 고기를 처리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처음 보는 생고기의 비릿한 피냄새에 채하진은 고개를 돌렸다.

"기, 기다리고 있으라능. 내가 요리하겠다능."

"나도 같이 해."

채하진은 역겨움을 참아 가며 고기를 날카로운 돌로 찢었다.

"무리하지 말라능..."

그녀는 빙긋이 웃었다.

"이 정도는 괜찮아..."

'정말 착하구나, 이 사람...'

갑자기 채하진이 불쑥 말을 꺼냈다.

"어제.. 정말 좋았어... 나..."

그러자 우경철의 얼굴이 화르륵 붉어졌다.

"켁..."

"앗 알았어 있다가 얘기할께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