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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뜬눈으로 모닥불 근처에서 윤아영과 P군을 기다리던 나머지 일행은 갑자기 쏟아지는 비에 나무 그늘로 대피했다. 비가 오리라곤 누구도 생각지 않았기 때문에 천막 같은 건 생각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워낙 날씨가 더워 비가 내리는 것이 춥진 않았고, 오히려 시원하게 느껴질
정도였지만 그렇다고 결코 반가운 소식은 아니었다. 일단 불씨가 꺼졌다. P군이 모아 놓은 땔감도 다 젖었다.
"아..."
칠흑같은 밤을 소녀 셋이 견뎌야 했다. 불안한 그들을 강아름이 통솔했다.
"일단 여기서 움직이지 말고 기다리자... 여기는 조금 고지대니까..."
"아영이 어떡하지? P군은...? 흑..."
"울지 마..."
"괜찮을까? 정말??"
"괜찮을 거야..."
강아름도 내심 자신이 없었지만, 그래도 울먹이는 홍세린 앞에서 자신 없는 태도를 보일 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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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있는 채하진은 팔을 강하게 흔드는 감촉에 눈을 떴다.
"비... 비가 온다능!!"
"으음... 비?"
정말이었다.
"그러네... 어떻게 이렇게 젖을 정도로 계속 자고 있었지?"
"이리로 대피하라능!"
따뜻하고 안정감 있는 손이 그녀의 팔을 잡아 일으켰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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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가 지났을까?
P군은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졸았네... 음?'
오른쪽 어깨에 따뜻한 감촉이 느껴졌다. 윤아영이 기대어 잠든 것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전신에 찌르르하고 전류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상황도 상황이지만, 아무래도 한창 때의 남자라 어쩔 수 없었다.
'휴... 이러면 곤란한데...'
윤아영이 자면서 중심을 잃었는지 자꾸 앞쪽으로 몸이 기울어지려 했다. P군은 그걸 깨닫고 뒤로 젖혀 주려고 했는데...
'이런!'
몸을 뒤로 민다는 것이 그만 가슴을 정면에서 누르고 말았다....?
"으음....?"
'야단 났네...'
"뭐, 뭐야?"
윤아영이 잠을 깬 것 같았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다.
"역시 변태!!"
"아니, 그런 게 아니고..."
화가 난 목소리다. 윤아영이 몸을 일으키려는 기척을 냈다.
"뭐야? 어디 가려고?"
"변태 옆에는 있기 싫으니까..."
"바보! 지금 여기서 움직이면 얼마나 더 위험하게 될 지 모른단 말야!!"
P군은 자기도 모르게 손을 뻗어 윤아영을 잡았다.
'핫. 여긴 엉덩이인가...'
"아악! 아무도 없다고 이젠 막 만지니?"
"그런 게 아니고... 일단 앉아."
정말 화가 난 것 같다.
'어떡하지... 이런 상황에서 서로 다투어 봐야 좋을 것 없는데... 어떻게 해야 화가 풀어지려나?'
P군이 고민하는 사이 윤아영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애들 다시 만나기 전에 이상한 짓 하면 넌 죽어."
"아무 짓도 안 해... 그럴 생각도 없어..."
"뭐?"
뭐지? 이 묘하게 기분 상한 듯한 목소리는?
"흥..."
"지금은 또 왜 화를 내는 건데!"
"모.. 몰라!!"
그러는 사이 서서이 동녘이 밝아지고, 빗소리도 잦아들었다.
'이제 슬슬 다시 출발해 볼까...'
P군은 어슴푸레하니 보이는 숲속에서 방향을 가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