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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쩜, 이 인형은 보면 볼수록 예쁘게도 생겼다."
채하진은 누워서 프랑소와즈를 살펴보고 있었다.
"그거 정말 예쁘지 않냐능? 크라우프 솜씨라능..."
"응? 크라우프?"
"유럽의 인형 장인 이름이라능."
"그렇구나..."
프랑소와즈를 살펴 보는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정말 좋아하는구나. 골동품 인형..."
"커뮤니티 차기 회장으로 거론되고 있다능."
어쩐지 으쓱해진 우경철이 시키지도 않은 말을 했다.
"어머. 대단하다."
하진은 모르는 척 칭찬해주었다.
'또 자랑하는 거야?'
하고 되받아칠 수도 있지만, 어쩐지 오늘은 그럴 기분이 들지 않았다.
이 사람 어딘가 순진하고 착한 것 같다고, 채하진은 혼자 생각했다. 처음에 느꼈던 불안감은 가신 지 오래였다. 아니, 애초에 왜 불안해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녀는 어느새 일상의 모든 일을 우경철에게 의지하고 있는 자신을 깨닫고 놀랐다.
"... 닮았다능."
"응?"
"사촌 누나."
"내가?"
"응..."
"그렇구나. 사촌 누나가 좀 예쁘시겠는걸 ^^?"
"그렇다능... 꽤 예뻤다능..."
'뭐야, 그렇게 순순히 인정해버리면 괜히 내가 민망하잖아?'
"근데, 왜 과거형이야?"
"아..."
우경철은 시선을 돌렸다.
"지금은 없다능..."
"응?"
"저세상 사람이라능..."
"어머."
채하진은 당황해서 하마터면 들고 있는 프랑소와즈를 떨어뜨릴 뻔했다.
"그... 그거 조심하라능!"
"미안해, 미안해..."
"뭐, 너무 오래 전 일이라 기억도 안 난다능..."
'그치만 기억이 안 나는 표정이 아닌걸... 너무 보고싶어하는 표정인데. 저건.'
"어쨌든... 밥이나 먹자능!"
"그래."
★
"윤아영! 야!"
성기게만 보였던 야자수 숲은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빽빽해졌다.
'아... 어딨지... 이제 얼마 지나지 않으면 완전히 어둠이 깔릴 텐데...'
그때 어디선가 부스럭, 하는 소리가 났다.
'뭐지!'
그리고...
"흐... 흐흑..."
조용히 흐느끼는 소리...
"아영?"
"... 흐흑...."
"도대체 이런 데서 뭐 하는... 어?"
고개를 들어 P군을 보는 윤아영의 얼굴은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어서 나가자. 왜 울어? 어디 다쳤어?"
"다리를... 다리를 삐어서... 아파 죽겠어..."
"뭐야, 애초에 왜 숲속으로 들어가서 일을 만들어. 여기 업혀."
"그건 싫어..."
"업히라니까?"
"싫어... 그건..."
"아니 너... 그럼 어쩌자는 거야?"
이렇게 되어서까지 고집인가 싶어 P군은 어이가 없었다.
"너... 내가 싫은 건 알겠지만 지금은 업히는 게 나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너도 나도 이 숲 속에 갇혀 버리게 되니까."
"그치만... 그치만..."
윤아영은 머뭇거리며 말했다. 왠지 엄청나게 당황한 기색이 보였다.
"나, 깨끗하지 않단 말야..."
"뭐야?"
P군은 슬슬 화가 나려고 했다.
"장난치는 것 같은 말이나 하고... 빨리 업혀?"
"그게 아니라... 나 생리를 시작해서..."
"어?"
이번에는 P군이 당황했다. 여자 몸에 관해 아는 것이 없는 그로서는 당황할 법도 했다. 하지만 뭔가 말을 해야 했다. 이미 눈앞의 것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어두워져 있다.
"그.. 그래도 업혀!"
"싫어, 피가 묻는단 말야..."
"괜찮으니까..."
한번 더 강하게 말하자 의외로 그녀는 순순히 업혔다. 등에 닿는 말랑한 가슴의 감촉에 P군은 자신도 모르게 흥분이 되는 것을 느꼈다.
'뭐야... 갑자기...'
"나가자..."
그런데 이미 한 발자국도 제대로 딛지 못할 상황이 되어 있었다.
"너 진짜... 일을 만드는구나."
"그러니까, 왜 찾으러 와서 이 고생이야?"
윤아영은 다시 기력을 회복했는지 받아쳤다.
"바보..."
이번에는 조금 작은 목소리였다.
"어쨌든 나가는 편이 안전하니까..."
그러나 그들은 비슷한 곳을 헤매다가, 잠시 후 무인도에서 처음으로 비를 만나게 된다.
<-- 폭우 -->
처음에 한두 방울씩 듣기 시작한 비는 잠시 후 쏴아, 하고 장대비로 변하여 기세 좋게 내리기시작했다.
"아... 제기랄."
P군은 사면초가의 심정이 되어 캄캄한 가운데 무언가 도움이 될 만한 실루엣이 보이지 않는지 필사적으로 찾았다. 등에 업힌 윤아영이 오들오들 떨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겁이 나는 모양이다.
마침 딱딱한 것이 무릎에 닿아, 만져 보니 이끼가 끼지 않은 바위가 있었다. 윗면을 만져 보니 편평하다. 동굴은 아닌데, 위에 무언가 천정같은 것이 있는지 젖지도 않았다.
'여기서 비를 피하면 되겠는데?'
P군은 윤아영을 바위 위에 내려 놓고 한숨 돌렸다.
"휴... 너 무겁다?"
분위기를 가볍게 하려고 던진 농담이었는데, 아무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흐느끼는 소리가...
"뭐야... 울어?"
겁이 나도 단단히 난 모양이지, 하고 P군은 조용히 윤아영의 팔을 잡았다. 흐느끼는 소리는 빗속으로 점차 잦아들었다. 몸의 떨림도 안정이 되어 갔다.
"일단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리자. 이 빗속에 돌아다니다간 무슨 일을 당할 지 모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