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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 언제쯤 구조가 될까?"
"글쎄..."
모닥불 가에는 네 명의 소녀들과 P군이 머리 뒤에 손베개를 하고 동그랗게 둘러싸 누워 있었다.
"우리... 어디 있는지 감도 잡히지 않아."
"맞아. 나무도 이상하고... 꽤 남쪽인 것 같은데..."
"아니, 생각해보니 남쪽이 아닐 수도 있겠어."
"왜 그렇지?"
홍세린이 눈을 반짝이며 설명했다.
"동해엔 난류가 흐르잖아. 난류가 강하게 흐르는 일대 지역은 수온의 영향으로 조금 더 더운 듯한 기후가 형성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가?"
서유라가 길게 기지개를 켜며 중얼거렸다. 기지개를 켜자 가슴이 출렁하며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우연히 그 모습을 본 P군은 당황하여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렸다.
"아, 심심해. 우리 게임이나 할까?"
"게임? 무슨 게임..."
"카드 게임..."
"카드?"
"내 뒷주머니에 플라스틱 카드가 있는 것이 지금 떠올랐어..."
서유라가 카드를 꺼냈다. 플라스틱이라 다소 젖어 있었다.
"일단 섞으려면 말려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러지 뭐."
모두들 불가에 플라스틱 카드를 늘어놓았다.
그러던 중 윤아영이 혀를 찼다.
"정작 필요한 건 없고 도움 안되는 것만..."
서유라가 정색을 했다.
"혹시 모르지. 우리가 오래 갇혀 있게 되면 이 카드가 없어서는 안될 물건이 되지 않을까?"
불가에 널어 놓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카드는 바싹 말랐다.
"뭐할까?"
"카드 게임 뭐 할 줄 아는데?"
"원카드나 할까?"
"좋아."
"우리... 언제쯤 구조될까?"
"몰라. 근데 다행이야. 혼자가 아니라서... 그리고 P군이 있어서 정말 도움을 많이 받고 있어."
소녀들은 P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날 한 일이 많아 카드게임을 그만두고 먼저 곯아 떨어진 P군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줄도 모른 채 곤히 잠들어 있었다.
<-- 인공호흡과 행방불명 -->
다음 날 아침, 홍세린은 산책하며 먹을 수 있는 과일들을 조사했다. 가만히 보면 먹을 것이 꽤 지척에 널려 있는 섬이었다. 식수도 달고, 물고기도 맛이 있고... 일단 섬이 풍요로워 그런지 표류 생활은 꽤 견딜만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럿이 함께 생활한다는 것이 의지가 되었다. 언제 구조가 될 지 기약이 없는 상태에서 비슷한 처지의 여러 명이 모여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꽤 힘이 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섯 명 사이에는 분업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P군은 생선 담당과 장작패기, 홍세린과 강아름은 채소와 과일 담당, 서유라와 윤아영은 조리 담당이 되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모든 일에 걸쳐 P군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많았다.
윤아영은 종종 태클을 걸어 왔다.
"뭐야, 오늘은 생선이 작잖아?"
"할 수 없었어, 이것밖엔..."
P군이 변명했다.
"너희들, 꼭 부부싸움하는 것 같다."
강아름의 말이었다.
"뭐, 뭐야? 절대 그런 거 아니라구!"
"그럴 리가 있어?!"
P군과 윤아영이 거의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일행 중 서로 가장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이었기에 그런 반응은 매우 당연한 것이었는데도, 윤아영은 P군의 말을 듣고 왠지 좀 더 화가 난 것 같았다.
"뭐야? 어째서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거야?"
"그럼, 뭐라고 말해? 부부싸움하는 것 같다고 하는 게,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있을 수 있는 일이야 그럼?"
"그, 그건 아니지만... 여튼... 몰라! 정말 짜증나!"
윤아영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숲 속으로 사라졌다. P군은 어리둥절해졌다.
"저거 뭐야?"
"니가 이해해... 가끔 저렇게 까칠하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난 절대 먼저 공격하지 않았다구."
"알아."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정찰을 나갔던 홍세린 팀이 돌아왔다. 세린의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오... 오늘은 많이 찾지 못했어."
그런 그녀를 강아름이 토닥여 주었다.
"괜찮아, 괜찮아. 내일 또 찾아보면 되지 뭐."
"그래도 숲에 새로운 과일이 있는 걸 알아냈어. 이 정도면 큰 수확이지, 안그래, 세린아?"
서유라의 말이었다. 제법 크고 먹음직스럽게 생긴 과일이 그녀의 손에 들려 있었다.
"맛있게 생겼는데?"
"한번 먹어 볼까..."
식수도, 이제 주식이 되어 버린 생선도 의외로 금방 찾고, 근처의 야자 열매도 먹을 수 있는 것임을 확인했기에 일행은 조금 긴장감이 풀어진 상태였다. 홍세린은 밝은 표정으로 과일을 한입 베어 물었다.
그러나 잠시 후 그녀는 쓰러졌다...!
"세... 세린아! 왜그래?"
"뭐야... 무슨 일이야!"
"세린아?"
"P군!!!"
저쪽에서 땔감을 옮기던 P군이 자신을 부르는 큰 소리에 놀라 달려왔다.
"뭐야?"
"세... 세린이가..."
"어! 왜그래!"
"아까 그 과일을 먹었는데 이러는 거야..."
"헉..."
P군은 자신도 모르게 세린의 왼쪽 젖가슴 아랫부분을 더듬고 있었다.
"시... 심박이 느려지고 있어!"
"뭐라구?"
"아... 세린아... 어쩜 좋아..."
서유라와 강아름은 거의 패닉 상태가 되어 울먹이고 있었다.
"잠깐만 기다려 봐. 인공 호흡을..."
P군은 홍세린의 입에 자신의 입을 가져다 댔다. 차게 식은 그녀의 입술이 닿았다. 아기처럼 말랑말랑하지만 핏기 없는, 촉촉한 입술...
"흐읍... 흡..."
얼마 지나지 않아 변화의 조짐이 보였다.
"콜록... 콜록..."
세린이 기침을 한 것이다.
"세린아!"
기침과 동시에 과육이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괜찮아...? 세린아..."
"으응..."
"이 과일은 먹지 말아야겠다. 위험해."
"그런 거 아닐 거야."
P군이 말했다.
"내가 볼 땐 질식한 것 같은데..."
세린의 얼굴이 빨개졌다.
"응... 맞아. 갑자기 너무 급히 먹다가 목에 걸리는 바람에..."
"P군이 너한테 인공호흡을 했어..."
"P군이...?"
세린의 얼굴이 더더욱 빨갛게 물들었다.
"나... 첫 키스..."
"응? 뭐라고?"
서유라가 되물었지만 세린은 다시 말하지 않았다.
과일은 다시 침착하게 맛을 보니 이제껏 발견한 그 어느 과일보다 맛이 있었고, 과즙이 풍부했다. 알레르기 반응은 일지 않았다. 일행은 과일의 이름을 몰랐다. 그들은 과일을 다른 과일과 구분하기 위해 세린의 이름을 따서 홍세린 과일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런데... 아영인 어디 갔어?"
"아영이?"
"그러게..."
아까 화를 내며 숲 쪽으로 뛰쳐나간 뒤로 본 사람이 없었다. P군은 더럭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까지 봐 온 바로는 이 섬이 안전한 것 같긴 해. 하지만... 혹시 숲 속에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있다면... 혹시 야수라도...'
"내가 갔다올게!"
P군은 숲 속으로 아영을 찾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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