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웠다!"
P군이 이마에 비오듯 흐르는 땀을 닦으며 외치자 한데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던 소녀들이 환성을 지르며 몰려왔다.
"와아, P군 잘했어."
"정말 믿음직스러워..."
"고마워..."
'흠... 이래서 여자들이란...'
"여튼, 그럼 물고기를 잡을까? 이 불은 앞으로 절대로 꺼뜨려서는 안될 불이니까 불씨는 안전한 데다 옮겨 놓는 게 좋을 것 같고."
"좋아!"
"배고팠는데 잘됐다."
서유라가 지나가면서 장난스럽게 그의 어깨를 주무르는 시늉을 했다. 보드라운 여자 손의 감촉이 어깨에 닿았다.
'좋은데? 그래도 이거 고생한 보람이 있군...'
어쩐지 희미하게 미소가 입가에 걸리는 P군이었다...
<-- 주식은 생선... >(((') -->
불도 마련이 됐겠다... 이제 물고기를 잡을 일만 남았다. 그런데 문제는 물고기가 너무 작다는 것이었다.
"에... 아기 물고기인가? 왜 이렇게 작지? 큰 것도 겨우 손바닥만해..."
잡으려고 손을 뻗을 적마다 번번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곤 했다. 일행이 모두 물고기에 집중하는 사이, 서녘 하늘은 서서히, 불그레하게 물들어 갔다.
"많이 잡았어?"
"음... 난 세 마리..."
"많이 잡았네?"
도구가 없어 손의 민첩성만을 이용해서 무턱대고 잡은 물고기들이 냇가 근처에서 파닥거리고 있다.
강아름: 5마리
홍세린: 0마리 (무서워서 만지지 못했다. 근처에서 구경만 함)
서유라: 3마리
윤아영: 3마리
P군: 17마리
"이래서 남자가 있어야 돼..."
"그러게... 우리가 P군에게 도움을 많이 받네. ^^"
서유라가 중얼거리는 말을 강아름이 받아쳤다. P군은 어쩐지 으쓱해졌다.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변태잖아?"
비아냥거리는 듯한 윤아영의 말.
"그럼 구워 볼까나?"
일행은 이제 배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도 나지 않을 정도로 허기가 져 있었다. 근처에 떨어진 나뭇가지에 물고기를 꿰는 일은 여자들이 맡았다. P군이 고기를 많이 잡았기 때문이다. 굽기 시작하니 노릇노릇 익는 맛있는 냄새가 근처에 진동을 했다.
"이거... 고기 크기가 작아서 열 마리는 먹어야 겨우 배부를 것 같아."
"아아 맛있겠다..."
"그런데, 먹어도 되는 고기일까?"
멀찍이 떨어져서 구경만 하던 홍세린이 가까이 다가오더니 물고기를 유심히 살폈다.
"음.. 이건, 모양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분명 피라미야."
"피라미... 먹어도 되지?"
"괜찮지."
"이렇게 냄새가 좋은데 먹지 못하는 고기일리가 없어!!"
서유라가 소리를 지르며 한마리를 덥썩 입에 넣었다.
"아~ 맛있어~"
"정말? 나도~"
"맛있네..."
"이봐 여자들... 나도 좀 달라고~"
★
"스니커즈, 맛있다... ^^ 고마워."
하진은 깍듯한 태도로 인사를 했다. 그녀의 귀여운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여기 피라미류의 물고기가 사는 것 같아 좀 잡았다능. 굽기만 하면 된다능."
"아, 생선..."
그녀의 뱃속에서 꼬르륵하는 소리가 났다.
"많이 배고프겠다능... 어서 먹자능!"
"고마워..."
생선은 제법 맛이 있어, 하진은 게눈 감추듯이 여러 마리를 뚝딱 해치웠다.
"흠... 생긴 것보다 많이 먹는다능?"
"뭐, 뭐???"
부끄러움과 당황스러움에 채하진의 얼굴이 빨개졌다.
"그보다, 얘기해 줘. 어떻게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지..."
"사실은..."
우경철은 대답 대신 수풀 뒤에 숨겨놓았던 작은 상자를 꺼냈다.
"이거라능."
"응? 그게 뭔데?"
"프랑소와즈... 그리고 DSLR..."
"프랑소와즈?"
상자를 열자, 금발머리에 귀여운 표정을 한 백랍같이 흰 얼굴의 프랑스 인형이 나왔다.
"어머 예뻐라..."
채하진은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사실 나는..."
우경철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나는 싸**드 XX사진동호회 회장이고, 네*버 앤티크인형컬렉터즈 커뮤니티에서도 게시판지기로 활동할 정도로 사진이랑 옛날 인형을 좋아한다능. 마침 울릉도로 간다기에, 울릉도를 배경으로 우리 프랑소와즈 사진을 찍어 줄까 하고 상자를 하나 들고 왔다능. 혹시 가면서 소금기나
물기에 부식이 될까봐 완벽 방수와 방습이 되는, 이 특별한 보관 박스를 구입해 왔다능. 이 안에 프랑소와즈랑, 사진기랑 먹을 것 등등을 가지고 왔다능. 프랑소와즈 눈이 좀 약한데 떨어질까봐 글루건이랑 라이터도 가져왔다능.
풍랑이 왔을 때 나는 이 박스를 지키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능. 내가 죽는다는 생각보다는 1750년대 인형인데도 최상급의 상태를 자랑하는 프랑소와즈가 바닷속에 수장된다고 생각하니 거의 정신이 없고 미칠 것 같았다능. 그래서 박스를 껴안고 있었는데, 기적인지 박스가 워낙 단
단히 밀봉되어 있는 구조라 그런지 이게 물 위로 떴다능...!!!
그래서 이걸 타고 여기까지 흘러들어 왔고, 너를 발견해서 구했다능."
"그렇구나... 나 혼자서 상상하라고 하면 절대 못했을 그런 뒷이야기가 숨어 있었구나..."
"스닉커즈랑 과자 좀 가져왔는데 다 멀쩡하다능."
"어쨌든 잘됐다. 아마 그 상자를 가져온 게 하늘의 뜻이었나봐."
"그런 것 같다능... 아아 근데 얼굴에 모래가 좀 묻었다능?"
우경철은 가만히 손을 뻗어 채하진의 눈썹 부근으로 손을 가져갔다. 채하진은 자기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아무 감촉도 느껴지지 않았다.
거의 눈썹 근처에 도달했을 때 우경철이 멈칫하며 손을 내린 것이다.
"미안하다능, 나도 모르게... 인형 관리하는 버릇이 익어서..."
우경철은 중얼거리며 저쪽으로 멀어져 갔다.
"그,그럼 나는 뒷정리 좀 하겠다능!"
"..."
'뭐, 뭐야? 왜 순간 두근거린 거지?'
채하진은 얼굴을 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