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풍지대 9 편
악마의 유희 1,
"어때, 형?"
"흠 쓸만한데... ..."
얼떨결에 문휘 선배에게 끌려 온 광운이 일상적인 인사를 마친 후 소라를
가리키며 물었다.
모두가 춤을 추러 스테이지에 나간 지금 혼자 남은 그녀는 발을 동동 굴리더니
간간이 음악에 마쳐 머리를 흔들어 대고 있었다.
멀리서도 윤기 나는 검정 머리가 출렁거리고 약간은 심심한 듯 고개를 이리저리
뒤흔드는 모습이 왠지 귀엽게 느껴지고 있었다.
"저년, 맛있겠는데... ..."
문휘의 말에 광운은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문휘는 광운만큼이나 여자를 밝히는 호색한으로서 지금도 수많은 여자를 거느리고
있었다.
광운은 벌써부터 은근한 소라의 나체를 그려본다.
쭉 빠진 몸매에 늘씬한 다리,
그 사이로 살며시 갈라진 그녀의 비너스,
금단의 열매인 그곳을 오늘밤 점령해 보려는 광운은 상상만으로도 하체가
뜨거워져 왔다.
"저 가시나 돌림빵 하자. 무지 맛있겠는데!"
"... ... ... ... ... ..."
"... ... ..."
용산고 시절 서로의 여자를 교환하며 엔조이를 즐겼던 문휘는 다시금 끼가
발동했는지 두 눈이 잔뜩 충혈 되어 있었다.
순간, 광운의 머리 속엔 뭔가 재미있는 일이 떠올랐다.
소라의 친구인 주영.
약간 소라보다는 작고 마른 편이지만 나름대로 귀엽고 청순한 이미지의 주영이
어쩌면 문휘 선배와 잘 어울릴지도 모를 거란 생각이 문득 들어 나왔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오늘밤 소라와 오붓한 시간을 보내려는 자신에게 있어서
주영은 혹 같은 존재였다.
왜냐하면 모처럼 다가온 토요일 날 한바탕 신나게 놀고 싶은 주영은 미리
집에다 외박을 허락 받아 놓은 상태였었고 이미 소라의 집에서 함께 자기로
약속이 되 있는 것이었다.
광운은 어차피 소라와 주영이 함께 있어야 할 상황이라면 문휘 선배에게
주영을 소개시켜주고 그녀를 책임지게 하는 편이 훨씬 더 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그 방면으로 선수인 문휘 선배가 절대 실수 할 일은 없었고, 또 잘만
하면 주영과도 엔조이를 할 수가 있다.
평소라면 사리가 분별하지만 여자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조금 과격해지는 문휘는
한번 찍은 여자는 반드시 자빠뜨려야 하는 과격파였다.
그런 문휘에게 주영을 소개시켜 주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그녀를 건들 것이다.
"형, 재는 어때?"
한창 조명이 쏟아지는 무대 중앙.
조금은 야시시한 차림의 짧은 검정 색 치마를 입은 주영이 미친 듯이 음악에 마쳐
춤추고 있었다.
벌써 광운의 생각을 읽은 문휘는 그런 대로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서로 돌리는 거냐?"
"당연하지... ..."
칠공주파의 두 미녀 선배인 소라와 주영을 오늘밤 함께 해치워 버린다.
제대로만 된다면 두 미녀를 동시에 끌어안을 수도 있는 일이다.
광운은 상상 속에 전해지는 쾌감만으로도 벌써부터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다.
"thank you, thank you... ..."
금새라도 고막을 터뜨릴 것만 같은 시끄러운 음악이 꺼지고 조용한 발라드
음악이 울려 퍼지자 일행들이 하나둘 자리로 모여들고 문휘를 데려온 광운이
서로에게 인사시켰다.
"어휴, 오늘따라 왜 이렇게 술이 올라오지."
자연스레 말하며 광운은 소라의 옆에 앉았다.
오늘밤 소라와 멋진 밤을 보내려면 최대한의 경계심을 풀어 주어야 한다.
"안녕하세요. 용산고의 강문휘입니다."
190cm나 넘어 보이는 거구의 문휘가 능청스레 웃어 보이며 자리에 앉자
넉살 좋은 주영이 빈 잔을 건넸다..
"자, 한잔하세요."
"어이구, 이거 고맙습니다."
현재 문휘는 용산고의 짱으로서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막상 졸업을 하면
본격적으로 일진회에 가입해 생활할 예정이다.
"자, 그쪽도 한잔하세요."
받은 잔을 시원스럽게 들이킨 문휘가 이번에는 거꾸로 주영에게 자신이
들고 있던 잔을 건넨다.
주영은 아담한 체격으로 왠지 보호본능을 연상케 하는 그런 스타일로서
모든 남자들이 한번쯤 호감을 가질만한 얼굴이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시간이 벌써 12시를 가리키자 슬쩍 소라의 옆에 달라붙은 광운이
그녀에게만 들릴 정도로 잽싸게 속삭였다.
"선배, 너무 늦었는데 자고 가면 안 돼?
술이나 한잔 더 하다가 주영 선배랑 자면 되잖아!
방이 두 개니까 난 문휘 선배랑 잘 거야."
최대한 경계심을 풀어 줄려고 히죽 웃어 보인 광운은 소라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웨이터를 통해 미리 예약한 방 번호를 불러 주었다.
맨 위층의 꼭대기에 위치한 1602호,
웨이터를 통해 예약한 V.I.P 객실 룸이었다.
"하지만... ... 불편해서... ... ... ..."
"... ... ... ..."
할 말이 있는 듯 뭔가 광운에게 말하려던 소라는 돌연 행동을 멈추고는 담배를
하나 피워 물었다.
어차피 부모님들도 모두 잠든 지금 주영을 집으로 끌고 가 함께 자기에는 자신도
무리가 있음이 퍼뜩 생각났던 것이다.
'나, 오늘 너네 집에서 자고 간다고 했어. 재워 줄 거지?'
평소 몇 번이나 자신의 집에서 자고 갔던 주영은 오늘도 그럴 계획으로 집을
나왔던 거겠지만 벌써 12시를 넘긴 지금 소라는 도저히 주영을 데리고 집으로
갈 상황이 아니어서 내심 망설였던 것이다.
"... ... ..."
"잠깐만!"
"... ... ..."
허리를 구부린 체로 친구인 주영에게 뭔가 상의라도 구하듯 귓 말을 주고받던
소라는 서로 합의가 끝난 듯 그제 서야 배시시 웃어 보인다.
광운은 듣지 않고도 그녀들의 대화 내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일단 방으로 끌어들이는데는 성공!
어떡하면 그녀를 벗기는가가 문제다.
그러기 위해선 오늘 어느 정도의 '술'을 비우느냐가 관건이었다.
술은 신이 창조한 모든 창조물 중에서 가장 신비스러운 괴물.
인간세상의 모든 시름을 덮어주기도 하고, 또 인간을 자연스레 파멸의 길로
인도하기도 하는 술은 세상의 필요악과도 같은 존재이다.
그런 술의 파괴력을 신봉하는 광운은 살며시 웃으며 잔을 건넸다.
주량이 꽤 되는 듯 홀짝홀짝 잘 받아 마시던 주영이 조금은 취하는 듯 고개를
저으며 거부하지만 '어, 약한 모습 보이네.' 라며 신경을 자극하는 문휘의 말에
불끈 화가 났는지 단숨에 잔을 비웠다.
"오, 굉장한데. 도대체 주량이 끝이 없군."
문휘는 그런 주영의 허세를 부추기며 연달아 또 잔을 건넨다.
"아, 이젠 도저히 못 마시겠어... ..."
연거푸 술잔을 비우고 난 주영은 몸이 못 견디겠는지 비스듬히 테이블 위에
기대어 앉았고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문휘의 시선이 순간 빛났다.
어느 정도 다들 취기가 오른 지금.
모두들 저마다 취해 혀가 꼬부라져 나왔고 그것은 소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무리 술이 강하다 하더라도 인간인 이상 한계가 있는 법!
몇 시간 동안 한 자리에 앉아 양주와 맥주를 번갈아 비운 지금 제 정신인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스레 보일 정도였다.
"이만 갈까? 선배... ..."
"... 응 ..."
차분한 광운의 음성에 소라가 고개를 끄덕이자 먼저 방으로 가 있으라고 속삭인
광운이 서둘러 자리를 정리하고는 일행들을 돌려보냈다.
"흥, 나쁜 놈! 바람둥이... ..."
끝까지 남은 메두사의 미라는 자신을 소홀히 하고 뭔가 계획을 짜는 듯한 광운의
태도가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냉랭한 어조이다.
자신과 여러 차례 몸까지 섞은 사내가 바로 눈앞에서 딴 여자를 노리고 있는데
기분이 좋을 리 있는가?
그것도 상대는 몇 일 전까지 메두사와 경쟁 관계에 있던 칠공주의 소라였다.
아무리 T.N.T의 명성에 힘입어 요즘 메두사가 잘 나가고 있다지만 그래도
미라는 참을 수가 없는지 화가 난 표정이다.
"후훗, 너 질투 하냐?"
뭔가 재미있는 생각이 떠오른 광운은 미라를 불러 세웠다.
이미 몇 번 맛을 본 탓에 흥미가 떨어져서 그렇지 미라는 그래도 학교에서
알아주는 퀸카였다.
순간,
일 학년과 삼 학년의 양대 미인을 떡 주무르듯 희롱해 보고 싶은 광운은
웨이터를 불러 세우고는 미리 예약한 방의 바로 옆방을 하나 다시 잡았다.
"잠깐만 그곳에 가 있어! 어차피 늦어서 들어가기 뭐 하잖아!"
"무슨 짓이야! 하룻밤 두 명의 여자와 즐기시려고?"
어렴풋이 광운의 의도를 눈치 챈 미라가 질색을 하며 팔팔 뛰었지만 굳이 싫지는
않은 표정이다.
"잠깐이면 되니까 기다려!"
미라의 손을 잡아끈 광운은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고는 16층의 버튼을 눌렀다.
치-이-이-잉-
금속음이 울리며 엘리베이터가 올라가자 마침 아무도 없는 지금 챤스라 여긴
광운은 미라에게 뜨거운 키스를 퍼부었다.
"흥, 소라 선배랑 잘 해 보라지."
엘리베이터가 멈추며 문이 열리자 미라가 비아냥거렸다.
"어차피 너도 소라 선배를 좋아하지는 않잖아! 내 밑에 깔려 버둥거릴 선배 모습을
떠 올려봐! 짜릿하지 않아?"
1603호란 쓰여진 방 앞에서 미라에게 키를 건네 준 광운은 어서 들어가라는 시늉을
해 보이며 바로 옆방의 일행이 머물고 있는 객실의 문을 두들겼다.
"왜 이렇게 늦었어?"
약간 술이 취한 듯 알딸딸한 음성의 문휘가 문을 열어 주었다.
"소라는 화장실에 들어가서 안 나오고 주영이는 이미 뻗었어!
슬슬 시작해야지. 흐흐..."
잔뜩 취한 주영이 간신히 방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졌다고 말하는 문휘는
소파에 기댄 체 누운 주영을 한번 힐끗 바라보고는 군침을 삼켰다.
짧은 치마를 입은 탓에 자연스레 위로 치켜진 치마 사이로 아찔할 정도로 뇌쇄적인
허벅지가 고스란히 드러나 오는 주영은 뜨거운 늑대들의 시선도 모른 체 세상 모르고
곯아 떨어져 있었다.
늘씬한 두 다리를 감싼 커피 색 스타킹.
그 속에 살짝 가려진 엷은 베이지 색 팬티가 비쳐 나온다.
그것을 바라보던 광운과 문휘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럼, 슬슬 시작해야지!"
벌써부터 아랫도리가 뻐근한 광운은 소라가 있다는 화장실로 다가갔다.
똑똑-
'누구세요' 라는 가냘픈 소라의 음성이 새어 나오고 그것은 아마도 술기운
때문인지 찬찬히 떨려 나왔다.
"선배, 아직 멀었어?"
"아니... 이제 다 됐어... ..."
낯익은 광운의 음성에 급작스레 튀어나온 소라의 몸에선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샤넬의 향수 냄새가 찐하게 풍겨 나왔다.
나이트에서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맡아보지 못했던 냄새였지만 지금 은은히
풍겨 나오는 소라의 냄새는 그녀만의 또 다른 멋일 것이다.
"선배 할 말이 있어!"
덥석 소라의 손을 잡은 광운은 그녀를 방으로 데려갔다.
이런 일엔 생각할 시간을 주면 안 된다는 것이 광운의 평소 지론이었고,
그런 그의 예상대로 당황한 소라는 그대로 이끌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