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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날씨에는 상대적으로 실내가 우중충해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각종 불빛이 난무하고 가지각색의 사운드가 울려퍼지는 대형 공간은 그런 자연의 섭리까지도 잠시 잊게 만든다. 최소한 이 실내에 들어서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 난 그대를 감싸는 실크♪ 온몸을 부드럽게, 포근하게♬ 추위로부터 보호해주는 옷처럼, 동시에 가장 가까이 있는 옷처럼♬ -
경쾌한 음악과 함께 거대한 디지털 기기가 형형색색의 불빛을 쏟아내었다. 전방에는 큰 화면이 서있는 사람의 눈높이에 맞추어 고정되어있었고, 그 화면엔 수많은 화살표들이 어지럽게 상단으로 줄지어 올라갔다. 커다란 바닥 판 위에 4개의 전후좌우를 가리키는 화살표 센서판은 내리밟는 여자의 발에 의해 빛을 쏘아올리듯 반짝였다. 그 빛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다른 화살표로 빠르게 이동하는 그녀의 다리. 그리고 쏘아올려졌던 빛이 여자의 발과 헤어짐을 슬퍼하거나 고찰해볼 사이도 없이 꺼지기가 무섭게 다시 그쪽 화살표를 밟는다.
간혹 꽤 오랫동안 재회가 지연되는 경우도 있었으나 그것은 빛이라는 관점에서 한정되어있을 뿐, 보통 사람의 시각에서는 그야말로 찰나에 불과하다. 여자는 운동화를 신은 두 발로 4개의 판을 쉴새 없이 이동하며 밟아대었다. 그리고 화면에 올라가는 화살표들은 어쩐지 여자가 그곳을 밟아 없애는 것처럼 소멸하고 있었다.
- I want to feel your heart♬ I want to feel your heart♬ -
차앙-! 차앙-! 차앙-!
기기의 조명이 번쩍임과 동시에 끝마무리까지 완벽히 해낸 혜진은 환하게 웃으며 손으로 브이자를 그려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녀와 ‘댄스댄스 레볼루션’이란 기기 주변에 모여있던 구경꾼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최고 난이도인 익스퍼트 모드까지 대부분의 화살표를 모두 없애버린 혜진. 그녀의 엄청난 순발력은 주변인들에게 충분히 구경과 선망의 대상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혜진은 이윽고 송글송글 맺힌 이마의 땀을 훔치면서 옆을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약간 아래쪽.
바로 옆에 똑같이 붙어있는 2플레이어 전용 기기에는 한 남자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손잡이에 기대 앉아있었다. 물론 그가 올라섰던 기기는 발로 밟는 용도가 아닌 엉덩이를 대고 주저앉는 용도로 전락한지 오래이다. 혜진과 초반에 2인용 배틀모드를 진행했던 성진은 그야말로 완벽히 패한 채 - 처음부터 그 광경을 보았던 주변인들은 말 그대로 그녀가 그를 ‘발랐다’라고 수군대고 있었다 - 굳은 얼굴로 그녀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정체가 뭐냐, 강혜진?”
“오빠 여자친구.”
성진은 이젠 웃지도 않고 그녀가 내민 손을 잡으며 비틀비틀 일어서곤 신음처럼 말했다.
“나도 한때 이거 이목을 끌만한 실력은 있었다고. 그런데 너는 무슨 전문가 수준을 뛰어넘어 그… 뭐? 오타? 오타쿠 수준인데.”
“아, 오빠도 참. 단어 하나 배워주니까 아무데나 써먹네. 별로 적합한 지칭은 아냐.”
그리고 여전히 선망의 눈길을 보내는 주변인들 사이를 빠져나오면서 혜진은 기지개라도 펴는 것처럼 팔을 쭉 펴곤 명랑하게 말했다.
“야아, 그나저나 이런 데에 DDR이 있었다니 정말 반가웠어. 얼마 만에 이렇게 뛰어보는 건지 모르겠네.”
“이젠 고전 게임 다 됐지 뭐. 너도 예전에 이 게임에 얼마나 돈을 투자했을지 짐작이 안 간다.”
“에이, 그 정도 실력을 보면 짐작이 안 가, 오빠? 나 어렸을 때 그 기기 집에 아예 한 대 구비해두고 있었어.”
실내이긴 하지만 주변은 광장처럼 엄청나게 넓었고 사람도 많았다. 각종 오락기기들을 기웃거리거나 만지고 있는 수많은 인파를 가로지르며, 성진은 옆에 같이 걷는 혜진에게 들리게 하기 위해 조금 목소리를 높여야 했다. 혜진은 추억의 게임들이 여전히 광택나는 기기들로 자리하고 있는 게 반갑다는 얼굴로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나저나 강혜진. 여기까지 여행 와놓고 고작 다니는 게 이런 오락실이냐?”
“뭐 어때, 관광지가 괜히 관광지겠어? 우리 사는 곳에는 이런 곳 눈 씻고 찾아봐도 없을 정도로 다 사라졌는데.”
그리곤 또다시 눈에 익은 게임기를 발견하자 “와, 오빠. 이거, 이거 좀 봐”라며 그쪽으로 뛰어가는 혜진. 성진은 그런 그녀의 발랄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짓다가 곧 회심의 미소로 돌변했다. 호오, 이건… ‘블러드 오브 파이터’라는 대전액션 게임이란 말이지.
‘이거라면….’
성진은 아케이드 게임기에 이미 동전을 집어넣고 있는 혜진의 반대편으로 걸어가서 자신도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조금 옆으로 내밀어보이며 씩하고 웃었다.
“야, 강혜진. 이건 좀 긴장해야 할거야. 나도 콘솔 게임기로 간직하고 있던 거거든.”
그의 경고에 혜진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성진이 다시금 남자의 체면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도복 입은 남자 캐릭터가 당연히 성진이고 봉을 든 여자 캐릭터가 혜진이 플레이하고 있는 캐릭터이리라 믿어 의심치 않고 구경했다. 하지만 조금 더 주의깊게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반전의 기분을 만끽할 수밖에 없었다. 혜진은 5판 3승제의 게임을 3연승이란 완벽한 승리로 종결시켜버린 것이다.
성진은 오기가 생겨서 몇 번 더 동전을 집어넣어봤지만 곧 그것도 얼마 가지 않아 시들해져버렸다. 실력의 차이가 나도 너무 컸던 것이다. 성진은 이젠 CPU와 대전하는 혜진의 등 뒤로 돌아가 서서 툭하고 내뱉었다.
“학생이 공부는 안하고 게임만 했구만. 너 도대체 이 대학은 어떻게 들어왔냐?”
“만화랑 애니메이션에 빠져있던 시간에 비하면 일각이지 뭐.”
의연하게 한 술 더 뜨며 스틱만 놀리는 혜진의 모습에 성진은 그만 웃어버렸다.
잠시 후, 성진은 그렇게 패배감에 사로잡혀있거나 한가롭게 웃을 수 있던 시간에 감사해야 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성진은 아무리 규모가 큰 오락실이라도 유원지에서나 볼법한 놀이기구는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형 실내의 한 구석에는 그 건물의 위용을 자랑이라도 하듯 떡하니 디스코팡팡이란 거대 원판이 자리하고 있었다. 성진은 불길한 표정으로 혜진을 돌아보았고, 원판을 타고 있는 사람들을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에 낯빛이 확 바뀌어버렸다.
“저거 타자, 오빠.”
때로는 간단한 권유가 거부할 수 없는 공포로 다가서기도 한다. 성진은 중학교 시절 첫경험으로 디팡을 타보고 중앙으로 수없이 튕겨져나가 비웃음속에서 멀미로 헛구역질을 하고는 다시는 안 타겠다고 몇번이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는 너무도 의외의 상황에 그것과 재회하자 몸이 굳어버렸다. 잠시 후, 정신을 차려보니 혜진의 손에 이끌리다시피 디팡 의자에 자신이 앉아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비명이 나왔을 때는 이미 늦었다. 디팡은 그렇게 성진의 절규를 감싸면서 가동하기 시작했고, 그의 처절한 음성과 혜진의 즐거운 탄성이 묘한 조화로 어우러졌다. 세상은 그들 사이에서 참으로 아스트랄하게 돌아가는 듯했다.
“다신 꾸고 싶지 않은 악몽을 꾼 기분이야.”
디스코팡팡의 후유증은 성진에겐 적잖게 가혹한 것이었다. 그는 한 손에 솜사탕을 들고 다른 쪽 손으로는 내리쬐는 햇살을 가리기라도 하듯 머리에 갖다대곤 그렇게 자신의 심경을 표현하였다. 그들은 서로의 손에 각자의 솜사탕을 들고 보도를 걷고 있었다. 본인이 생각하기엔 매우 적절한 한 줄 요약이었겠지만 옆에 걷는 혜진은 자신의 솜사탕을 홀짝거리며 딴청을 피웠다. 성진이 탈거면 혼자 타지 왜 자신의 의견은 듣지도 않고 같이 탔는지에 대한 원망의 시선을 계속 보내자, 결국 혜진은 뚱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에이, 오빠. 안 어울리게 왜 그래? 나이트나 클럽 등 안 다녀본 곳 없이 잘 노는 형님께서 엄살이셔~”
“그거랑 이거랑 같냐? 게다가 나는 어릴 때 안 좋은 추억이 있어서 디팡만큼은 질색이라고!”
“흐음, 그럼 사과하길 원해?”
“당연히 사과…….”
투덜대며 무의식적으로 내뱉던 성진은 불쑥 자신의 옆얼굴에 밀착하는 혜진을 보며 정신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디팡 후유증마저도 잠시 잊게 만드는 그녀의 미모이자 매력이기도 했다. 걸음을 멈춰선 성진이 쭈뼛거리며 그녀를 흘끗흘끗 잘 보지 못하는 사이, 혜진은 반대로 성진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속삭이듯 입술을 움직였다.
“어떻게 사과해줄까, 오빠?”
“아니… 괜찮습니다.”
얼굴이 붉어진 성진은, 이젠 점차 익숙해지려는 듯 손바닥을 펴서 재빨리 사양의 의사를 밝혔다. 이렇든저렇든 혜진이 이렇게 들이대기 시작하면 스킨쉽을 포함해 그대로 말려 들어가버릴 가능성이 높다. 그것이 비록 장소가 길거리라 해도.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가만히 바라보던 혜진은 귀엽다는 듯 쿡하고 웃고는 그의 솜사탕을 한입 베어 뺏어 물었다.
“오빠 알고 보면 은근 숙맥이라니까.”
성진은 다시금 울컥하여 뺏긴 솜사탕 조각이 그녀의 입 안으로 채 말려들어가기도 전에 빈정대듯 말했다.
“혜진이 너야말로 은근 헤픈 거 알고는 있냐?”
“내가 뭘?”
성진은 가만히 그녀의 복장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때는 겨울방학이니만큼 눈이 쌓일 정도였지만 혜진은 허벅지 맨살을 다 드러낼 만큼 짧은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물론 추위 때문에 무릎 위로 올라오는 니삭스에 상의도 두터운 옷을 껴입고 있었지만 성진이 트집을 잡기에는 별 무리가 없다. 그는 다시 걸음을 옮기며 딱딱한 어투로 말했다.
“그런 치마 입고 디팡을 타면 다 들춰졌을 텐데, 지나가는 사람들 다 니 팬티 봤겠다.”
“뭐 어때, 노팬티도 아닌데. 오히려 내 미모에 오빠 말마따나 봤던 사람들은 ‘럭키-☆’라고 생각지 않았을까?”
성진은 베어물던 솜사탕을 조금 입 밖으로 뿜어낼 정도로 풋하고 웃었다. 공주병이라고 치부할 만큼 혜진의 외모에 딴지를 거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사고회로가 참으로 쇼킹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긴 이렇게 예상밖의 행동들 때문에 늘 그녀에게서 설렘을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아니면 혹시 오빠, 질투하는 거야? 아무한테나 속옷 보여주고 막 그러니까?”
“질투는 무슨. 그냥 칠칠치 못하다는 겁니다요, 후배씨.”
“에이, 오빠도 보고 싶음 말해. 오빠랑 나 사이에 무슨.”
그리고는 슬쩍 치마를 들춰보이는 혜진의 모습에 성진은 도리어 당황하였다.
“야! 길거리에서 뭐하는 거야! 사람들 다 보잖아.”
“아하하핫.”
혜진은 치마를 도로 내리려고 뻗은 성진의 손을 피하면서 조금 옆쪽으로 떨어져 걸었다. 어찌되든 간에 그녀에게 자꾸만 놀아나는 기분을 느끼게 된 성진은 한 손을 코트자락에 꽂아 넣은 채 솜사탕이나 우물거리며 외면하기로 했다. 그리고는 지나가는 말투로 툭하고 말했다.
“너 원래 이런 애였냐?”
“흐음~. 난 원래 이런 애야.”
“오늘은 어딘가 나사 하나 빠져 보이는데?”
“여자는 사랑을 시작할 때 본성을 드러내진 않아. 시간의 경과가 필요하지.”
그것도 하나의 케이스겠지. 여자는 끝까지 알 수 없는 존재라고 성진은 필터링해버리며 시선을 돌렸다. 문득 그의 눈에 들어오는 한 광장의 분수대.
성진은 다시금 걸음을 멈춰섰다. 그리곤 몇 층짜리 건물의 높이까지 치솟았다가 떨어지는 그 거대한 물줄기들의 자태를 감상하였다. 혜진도 그의 옆에서 솜사탕을 입에 문 채 다른쪽 손으로 스마트폰을 꺼내어 그 경치를 사진 속에 담는다. 그 즈음 성진의 머릿속은 일련의 생각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끝까지 알 수 없는 여자…. 그래, 그녀도 그랬지.
은선영.
본래의 그녀를 지칭하는 건지 현재의 그녀를 지칭하는 건지는 그 자신도 알 수 없었다. 한가지 분명한 건 멀리 떨어진 타지까지 와서 그녀의 생각이 여전히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는 거였다. 분명 집에 있을 때는 왜 있는지 모르는 귀찮은 녀석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게다가 수일 전에 그녀에게 히스테리같은 신경질을 쏟아내고는 여행을 올 때까지 그녀와 말 한마디 안하고 담을 쌓은 것 같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것이 자꾸 맘에 걸리면서… 왜 녀석 생각이 계속해서 나는 거지.
사랑하고 싶던 본래의 선영이 녀석 안에 틀어박혀있기에 자꾸 생각나는 걸까. 하지만 본래의 선영은 나오지 않는다고 못박았고…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녀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뭔가 은근 성사되길 기대하는 걸까? 본래의 선영이 녀석 내면에 자리하지 않고 완전히 소멸됐다면, 나는 현재의 선영 따윈 아무 상관 없다고 훌훌 털어버릴 수 있을까? 현재의 선영은… 나에겐 정말 본래의 선영 대행자의 역할 외엔 아무 의미도 없는 존재인가?
“이렇게 있으니까 너무 좋다, 오빠….”
혜진이 슬그머니 그의 팔짱을 끼고 어깨에 머리를 기대왔다.
“그러네.”
성진은 간단히 동의하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이 여자랑 있다는 건 다른 의미로도 행운이다. 혜진과 있을 때는 잠시나마 선영에 대한 복잡한 기분을 잊을 수 있으니. 그리고 성진은 비록 몇 개월도 채 사귀지 않은 사이이지만 어쩐지 자꾸만 혜진에게도 죄책감 비슷한 것을 느껴가고 있었다. 사랑하고 싶은 여자를 잊기 위해 이렇게 자신을 좋아해주는 여자와 ‘사귄다’고 선언까지 하고는 이용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성진은 그 생각 또한 빠르게 잊어버리기로 했다. 혜진은 겉으로는 자신과 평범하게 연애하는 듯하지만 그 와중에 심경을 짚어보는 데에도 예리하다. 어쩌면 벌써 자신의 그런 생각 또한 비슷한 내용으로 짐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성진은 그 모든 걸 혜진에게 상세히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그녀의 실망이나 분노 등을 두려워해서 털어놓지 않는 게 아니다. 혜진이라면 그의 그 생각까지도 ‘모두 이해해서’ 변함없이 사랑할 것이 뻔했기 때문에 더 미안해지기만 할 것 같았다.
내가 선영을 놓지 못하는 끈과 혜진이 날 놓지 못하는 끈의 대치는 어디까지 이어질까. 이 둘은 너무도 강력해서 어느 한쪽이 쉽게 결판날 것 같지도 않다. 난다고 해도 그 결과 또한 어떨지 짐작이 안 가고. 이 무슨 희대의 희한한 경쟁이란 말인가. 성진은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의 팔짱을 낀 혜진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아직까지 성진은 혜진을 버릴 수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쪽 또한 포기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렇게 이쁘고 귀여운 외모에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까지도 이해해주고 사랑하려 하는 여자는 평생 한 번 만날까 말까다. 그런 단순한 사실이 혜진과 그의 관계를 강력하게 다지고 있었다.
‘그냥 결혼해버릴까’
결혼하면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 없이 혜진만 사랑하면 되니까 문제가 없을지도 모른다. 아직 ‘연애’란 단계에서 머무르기에 심경이 불안정한 걸지도. 결혼에 대한 얘기 또한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지만 혜진이 먼저 얘기를 꺼내기도 했었다. 물론 그것을 차치하고서라도 혜진이라면 쌍수 들고 환영하면 환영했지 절대 반대할 리는 없다. 역시 문제는 나이인가? 아직 대학생이란 신분에….
하지만 진짜 문제는…….
성진의 눈동자에 비치는 광장 분수만이 그의 생각을 날려버리기라도 하듯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