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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아! 정말 멋졌어, 그 사람. 가슴이 이렇게 두근거린 건 처음이라니까?」
「어, 어… 그렇게 멋졌어?」
태환은 선영이 이렇게까지 들떠있는 건 처음이라고 - 본래의 선영 때의 모습까지 합쳐서 - 생각했다. 물론 여전히 ‘카잔 전쟁’ net플레이 대기실에서의 채팅이었지만 디지털 문자만으로도 그녀가 얼마나 설레고 있는지 훤히 보이는 듯하다. 태환은 잠시 방 한 구석의 손거울을 집어 들어 자신의 머리칼을 다듬어보면서 내가 그녀를 만나도 저 정도 반응이 나올까 가늠해보았다. 그리곤 머쓱한 표정을 짓는것마저도 부끄러운 듯 얼른 거울을 제자리에 갖다 놓았다. 그럴 리 없잖아.
「정말 신기하군.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상황인데. 그 난리통속에서 마치 백마탄 왕자처럼 등장해 함께 인파를 빠져나가고, 커피숍에서 단둘이 커피를 마셨다?」
「그치? 이야, 세상에 그런 로맨틱한 일이 나에게도 생기다니. 이래서 사람들이 사랑에 빠진다 하는 거구나. 게다가 얼마나 친절한지… 트카우탭인가? 창오빠도 알아?」
「트카우탭? 그거 최신기종 태블릿PC인데」
「세상에, 그 비싼 것 내가 고장내버렸는데, 그냥 가도 좋다고 했다니깐? 오히려 커피도 내가 얻어 마시고」
「하, 하…」
정신없이 타이핑해 올리는 그녀의 내용들을 훑어보며 태환은 두 손가락을 깍지 껴 뒷머리를 받치곤 생각에 잠겼다. 연애와 섹스에 대한 기억 차단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완전히 지워진 거나 다름없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그녀는 현재 연애적 감정이 새롭게 싹트고 있을 것이다…. 태환은 그렇게 판단하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만… 새롭게 싹트는 감정? 그 말은 그녀가 나에 대한 기억이나 감정도 완전히 리셋되어 있다는 얘긴데. 그렇다면… 그녀와 나도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찬스가 아닐까.
그리고 태환은 본래의 선영이 자신에게 내렸던 평가. 즉, 지나치게 진지하고 보수적이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을 인정해야 했다. 그 무슨 배덕한 짓이냐, 기억을 이용해서 애인 관계를 다시 구축해나가다니. 태환은 2년 전을 기점으로 선영과의 관계 정리를 절대로 번복할 수도, 번복하지도 않겠다고 재차 다짐했다. 그녀와 나는 이제…….
「방 좀 어지른다고 내 약점이나 콱콱 잡아 주무르는 찌질한 누구와는 천지차이라니깐. 걔 이름도 뭐지? 김, 김… 뭐?」
「김성진?」
「아아아아. 창오빠, 너무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자식 이름을 그렇게 노골적으로 띄워올리면 어떻게 해?」
태환은 잠시 이걸 사과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을 했다. 물론 선영은 이미 그런 것 따윈 안중에도 없이 계속 험담을 타이핑하고 있었지만.
「정말 빌어먹을 자식이라니까. 나보고 나가라니. 남의 집에서 이렇게 피해주고 뭐하는 짓이냐고? 흥. 안 그래도 조만간 나갈 거야. 나한텐 안전을 보장해주겠다는 창오빠도 있고, 만난 것 만으로도 영광이라 생각하는 그 잘생긴 남자도 있는걸. 병원비 따위 누가 대주래? 부탁이나 했냐고? 누가 아쉽대나 참 나」
하지만 점차 감정이 복받쳐 오르는 듯한 선영과는 달리 태환은 담배를 입에 물면서 차분해지는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는 천천히 짧은 문장을 타이핑했다.
「신경 쓰고 있긴 했구나」
「아하하하! 창오빠, 농담이 너무 심해. 난 김성진 그 따위 녀석 저언~혀 신경 안 쓰여」
「김성진이라고 말한 적 없는데」
잠시 채팅이 끊겼다. 태환은 보지 않아도 그녀가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왠지 따지는 듯한 메시지가 올라왔다.
「그럼 뭘 말한 거야?」
「내가 이리 와서 같이 지내자고 권유했던 것. 아직은 때가 아니라며 넘기고는 지금까지 아무 말도 없길래 아예 잊어버린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지」
아까보다 더 오랫동안 채팅이 끊겼다. 하지만 태환은 괜한 말을 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태환은 이번엔 자신 쪽에서 먼저 메시지를 타이핑해서 띄웠다. 그녀의 마음을 점쳐보는, ‘현재의 선영’에게 있어서도 그나마 가장 정신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상담원이라도 된 것마냥.
「선영아. 나는 네가 성진을 좋아한다고 생각지는 않아. 너는 김성진과 동거를 할지언정 제대로 된 연애나 관계 등을 가진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사랑은, 사랑이란 것은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상대방을 좋아하는 감정에서만 비롯되진 않아. 누군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신경 쓰고, 아쉬워하고, 그리워하는 ‘끈적하게 연결되어있는 그 무엇’이 가슴 속에 자리하고 있을 때, 그것을 사랑이란 단어에 비추어 근접해볼 수 있어」
「끈적하게 연결되어있는 그 무엇…」
「네가 그 이기식인가 하는 남자에게 설렘을 느낀다는 걸 부정하진 않겠어. 하지만… 사랑이란 감정으로 보자면 그 사람이 처음이 아냐. 본래의 너한테서 네 자신이 튀어나왔을 때부터 쭉 보살펴왔던, 그 김성진이 ‘현재의 너’의 첫사랑이 아닐까 싶군」
「첫사랑? 아하하. 웃기지 마, 창오빠. 김성진과 나와의 관계는 그렇게 낯뜨거운 단어가 적용될 만한 계제가 없어」
「그럴지도」
이렇다. 창오빠는 늘 이렇게 미적지근하다. 뭔가 자극적인 논란거리나 반발거리가 엿보인다 해도 자신의 의견이 100% 맞다는 전제를 깔아놓지 않는다. 상대방 의견도 맞을 수 있다는 식으로 간단히 무마시키기 때문에 맥이 탁 풀린다. 그래서 선영은 괜히 짜증거리를 발산할 곳을 찾지 못해 자신의 입지를 더욱 확고히 굳히는 발언을 했다.
타이핑된 디지털 문자는 감정이입을 싣고 대화상대인 태환에게 거리의 개념을 없애는 듯한 속도로 전달되었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나는 그를 좋아하는지 어떤 감정인지조차 몰라. 그래, 신경 쓰인다는 점은 인정하겠어. 하지만 첫사랑이란 말은 오버야. 그렇잖아? 내 감정이 단순히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는데. 게다가 상대인 김성진도 날 귀찮은 녀석 그 이상 이하로도 보고 있지 않아. 예전의 나라면 모를까」
태환은 성진이 그녀를 단순히 귀찮은 존재로 인식한다고 못박는 선영의 발언에는 딴지를 걸지 않기로 했다. 그보다는 선영과 얘기하면 얘기할수록 그 김성진이란 녀석을 한번 만나서 자초지종을 직접 듣고 싶다는 생각이 새록새록 들었다. 물론 히키코모리에 걸려있는 자신의 현 상태가 그것을 쉽게 실현으로 옮기진 못하게 하고 있었지만.
잠시 사이를 두고 태환은 느릿하게 타이핑을 했다.
「그런데 넌 지금 성진의 컴퓨터를 쓰고 있는 것 아니니?」
「쓰고 있는 것은 인정해. 하지만 이것도 첫사랑과는 별개의 문제야」
「아니, 동거를 하고 있다면 우리가 지금 성진에 대해 얘기를 하는걸 뒤에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지. 분명 이상하게 생각할 텐데, 그런 것 상관없이 이렇게 자유자재로 얘기해도 되는가를 물으려는 거야」
태환은 첫사랑이란 단어에 상당히 민감해진 그녀의 메시지를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런 걸 보면 분명 ‘그냥’ 신경 쓰고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하지만 이 이상 더 캐내려는 시도를 해봤자 좋을 건 없지. 태환은 이제부턴 괜히 그런 단어를 꺼내서 그녀를 자극시키면 안되겠다 다짐하였다.
어쩐지 태환은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완전히 ‘차가운’ 본래의 선영보다는 이쪽이 그래도 좀 더 여자다워 보인달까. 그리고 아까처럼 약간 민망해졌는지 그녀의 대답은 조금 늦게 띄워올려졌다.
「그런 건 신경 쓸 필요 없어. 성진은 지금 자기 애인이랑 여행을 갔으니까. 적어도 며칠 간은 집에 없을 거야」
애인이랑? 이것도 선영이 확실히 알아보고 애인이란 표현을 쓰는 걸까. 어쨌거나 다른 여자랑 수 일 동안 여행을 갈 정도면 선영이 ‘김성진이 자신에게 갖는 감정에 대해 얘기한 것’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겠군. 그다지 좋지는 않은데….
「그런데 창오빠」
「음?」
「오빠는 날 어떻게 생각해?」
태환은 잠시 김성진에 대한 생각을 접어두고 그녀의 채팅에 집중했다.
「어떻게 생각하냐니?」
「그러니까… 오빠는 본래의 나의 전 남자친구였잖아. 그러니까 지금 새롭게 나온 나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너는 너야」
「전혀 이성으로 보이지 않는 거야?」
태환은 담배를 비벼 끄곤 긴 한숨을 쉬었다. 이걸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일단은 딱딱한 반문으로 대응해보자. 태환은 역시 이번에도 느릿하게 키보드 자판을 두드려갔다.
「그렇게 물어보는 의미가 뭐지?」
「오빠는 지금까지 계속 나를 걱정해주고 있잖아. 그리고 일시적일지는 모르지만 안전한 거주지까지 보장해주고, ‘카잔 전쟁’에 관련해서도 내 경기를 살펴보며 상당한 조언을 해주잖아. 그럼 날 좋아해서 그러는 거 아냐? 아니, 이것도 좀 더 명확히 하자. 날 좋아해보고 이성친구로서 다시 시작하고 싶은 감정에서 비롯되는 거 아냐?」
「그렇다고 한다면?」
반문에 반문. 하지만 어색한 진행은 아니군. 태환은 컴퓨터 책상 위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고, 꽤 긴 시간이 지나서야 선영의 메시지는 띄워올려졌다. 고민한 흔적이 역력한 메시지.
「그럼… 난 상관없어. 난 오빠에게 기대고 오빠와 함께 진지한 사랑이란 게 뭔지를 한번 경험해보고 싶어」
「……」
태환은 턱을 만지작거렸다. 그렇게만 되면 참으로 이 얼마나 고무적인 현상일까. 하지만…….
태환은 이번엔 오히려 약간 빠르게 타이핑을 했다.
「그럴 순 없어, 선영아」
「……왜지?」
「내가 상관 있으니까」
조금 잔인한가?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선영은 얼마간 사이를 두고 똑같은 메시지를 한번 더 띄워올렸다.
「……왜지?」
「나는 예전에 이미 본래의 너랑 관계를 정리했던 사이거든. 비록 현재의 너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겠지만… 외모는 변하지 않은 데다, 현재의 너라도 본래의 너를 내면 속에 간직하고 있는 존재니까」
「그게 중요해? 헤어진 연인끼리 다시 만나서 잘되는 경우도 있잖아. 하물며 내 기억이 완전히 리셋됐는데, 오빠한테는 더 잘된 일 아냐?」
이 녀석, 내 성격을 잘 모르는군. 태환은 담배를 새로 하나 꺼내서 입에 물고는 불을 붙이기 전에 한번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 보니 직감적으로 느끼고 생각할 때는 쉬워보였는데, 언어로 풀어내려니 어렵기 그지없군. 담배에 불을 붙인 태환은 연기를 짙게 내뱉으며 키보드 위의 손가락을 놀려갔다. 어쩐지 그녀와 이렇게 대화할 때는 더 많은 담배를 피우게 되는 것 같다고 생각을 하면서.
「한번 헤어진 연인이 다시 시작하기란 쉬운 게 아니야, 선영아. 더군다나 그녀와 나는… 순간적인 트러블 같은 게 일어서 헤어진 게 아니라 성격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다. 나는 그녀를 이해해보려고 했지만 이해할 수 없었고, 그녀는 이해하지도 못하는 주제에 늘 다정하게 깔보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고 지긋지긋해했었지. 그 와중에 나는 입사한지 얼마 안된 회사에서 해고당하고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보통 사람들의 뇌에서는 나오지 않는 정신적인 압박에 시달리기 일쑤였어. 차라리 경멸이란 감정으로 헤어졌으면, 다신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돌아올 수는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건 그런 게 아냐. 너무 여러 부분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어」
「난 오빠의 성격에 신경 쓰지 않아. 난 본래의 나와는 완전히 다르다고. 나는 정신적인 혼란도 없어. 설령 시간이 경과하며 그런 부분이 나에게 닥친다고 해도, 난 오빠를 위해 극복할 거야」
「선영아」
「나를 사랑해! 그리고 나도 사랑하게 해줘!」
태환은 갑자기 막무가내로 변한 선영의 메시지를 단조로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어쩐지 그 메시지에는 울먹이는 감정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태환은 다시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한 손을 들어 눈가를 살며시 가렸다. 그녀에게 감정을 주려 하지 않으려고 다짐했지만, 여전히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현재의 선영도 이렇게 힘들어하고 있는데… 역시 그녀의 말대로 할 수는 없는 상황, 그러도록 허용하지 않는 자신.
한참 후 태환은 마지못해서 채팅을 하는 사람처럼 힘없이 키보드 자판을 두드려갔다.
「선영아. 나는 너를 정말로 좋아해. 하지만 그 이상으로 발전시킬 수는 없어. 왜 사람들이 가슴 아파하면서도 좋은 친구로 지내자고 선을 긋는지 알 것 같군. 그래서 그 점은 정말로 미안하게 생각해. 특히 아무것도 모르고 나와있는 현재의 너에게는 더」
「……」
「하지만 난 너를 위해 웬만한 일을 모두 감수할 거야.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이면 뭐든 다 할게. 하지만 나를 사랑하려곤 하지 마. 너와 나는… 그저 특별한 관계 그 이상 이하로도 변화시키지 않고 유지하는 게 최선이야」
「특별한 관계…」
선영은 그런 지칭이 너무도 낯설고 허무하게 느껴진다는 듯 그 한마디만 띄웠다. 태환은 뭐라 더 얘기를 진행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손가락만 키보드 위에 올린 채, 하릴없이 담배만 피워갔다.
누군가 보면 한쪽이 접속이라도 끊었나 생각이 들만큼 오랜 시간 아무 메시지가 올라오지 않았다. 하지만 태환은 그녀가 여전히 모니터 앞에 있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단지 생각을 하는 거겠지. 경험하지 못한, 그리고 경험한다 해도 인정하기 힘든 이 어려운 상황을.
이윽고 선영은 마치 울먹임을 간신히 진정시킨 사람처럼 덤덤하게 메시지를 띄워 올렸다. 태환이 담배를 비벼 끄고도 한참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어쩐지 현실에 조소를 보내는 뉘앙스를 담고 있었다.
「내게는 특별한 사람이 둘이나 되는군. 모든 걸 도와주는 창오빠와, 어떻게든 날 살려서 이 정도까지라도 오게 만든 김성진」
「성진은 나와는 조금 다를걸」
「그래, 다르겠지. 그는 이제 날 내치려고 하니까」
「아니, 나와 너의 관계보다 상황이 낫다는 뜻이야」
당연히 의아해지겠지. 태환은 그렇게 선영의 생각을 짐작해보며 다음에 나올 물음도 거의 예상할 수 있었다.
「무슨 소리야? 성진과 나는 지금 관계가 삐걱거리기 그지없는데」
「삐걱거리고 있을 뿐, 아직 공식적으로 한번도 헤어진 적은 없잖아?」
이해할 수 없음에 선영의 메시지는 잠시 동안 올라오지 않았다. 그리고 태환은 그 틈에 재차 자신의 메시지를 입력해갔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나는, 어쩐지 성진은 절대로 너를 버릴 것 같지 않군」
「뭐…?」
「네가 그를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다른 어떤 연인들보다도 더 강한 이어짐의 사슬로 너희 둘은 묶여있어」
지금 나에게 비상식을 상식으로 전환시키길 강요하는 건가? 그렇게 여길 것이라 짐작하며 태환은 왠지 미소마저도 짓고 싶어지는 자신을 느꼈다. 재미있군. 그녀를 이렇게 당황시킬 수 있다는 게.
약간 거들어볼까.
「이런 경우엔 당연히 이유를 요구하겠지?」
「요구하겠어」
「내가 친절한가?」
「창오빠는 친절해. 그러니까 이유나 내놔」
결국 태환은 폭소했다. 물론 그 이유란 것이 좋은 현상인지 나쁜 현상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기에 유쾌한 기분도 잠시이긴 했지만.
「성진은 본래의 너를 살리고 싶었다. 그리고 사랑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문제는 단순히 돌아오지 않았을 뿐, 본래의 그녀는 여전히 네 속에 잠식해있다. 여기까지가 네가 나한테 해주었던 얘기를 종합해본 것이지. 그렇다면 생각해봐.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 네 안에 들어있는데 어떻게 너를 버리겠어? 본래의 그녀가 나오지 않으면 않을수록 성진은 더더욱 널 버리지 못할걸? 시작할 기회라도 달라며 속으로 수없이 되뇌이면서. 이보다 더 아이러니한 인연의 끈이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