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9화 (5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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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조금씩 지면서 낮동안에 채워진 열기가 절정을 달리고 있었다. 때는 겨울이었기에 그 열기는 따스함이란 완화된 단어로 사람들 느낌 속에 각인된다. 그리고 그런 따스함을 이기지 못하고 꾸벅꾸벅 조는 한 남자가 있었다. 꽤 고급스러워보이는 우윳빛 중형 승용차 안에서 어울리지 않을 법한 꾀죄죄한 옷을 입고 있는 형준은, 역시 그와는 어울리지 않을 고급 노트북을 끌어안은 채 고개를 주억거렸다.

덜컥, 탁-.

자세는 불편하지만 내면적으로는 그래도 달콤한 졸음 속을 방황하던 그는 문 여는 소리와 흔들 하는 느낌에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곤 조수석에 앉아있는 자신을 한심한 듯 슬쩍 바라보는 시선에 서둘러서 입가의 침을 닦았다. 물론 침을 다 닦기도 전에 이미 기식은 차 키를 꽂고 시동을 걸고 있었다.

“이… 이제 끝난 거야, 기식아?”

“어.”

“어땠어, 그 은선영이란 년의 기억은?”

“꽤 많은 부분을 잃어버린 것 같더군. 게다가 완전히 숙맥이 다 되었던데. 마치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말야. 후후… 이거, 일이 재미있게 될 것 같아.”

그의 키득거리는 음성에 형준도 덩달아 즐거워졌다. 일이 그의 뜻대로 잘 풀린다면 자신에게 주어지는 보상금도 확실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분위기가 좋아진 틈을 타 형준은 좀 더 자신의 궁금증을 풀어보기로 했다. 그것은 역시나 선영과 기식의 만남에 관한 것이었고, 보다 자세한 정보를 기대하는 형준에게 기식은 운전에 집중하면서도 모두 얘기해주었다. 하지만 그 내용은 형준을 꽤나 당황하게 만들었다. 황당무계한 정보 때문이 아니라 정보 자체가 없다는 데에서 나온 황당함이었던 것이다.

“아니, 하다못해 연락처라도 알고 왔으면 일이 훨씬 수월해졌을 것 아냐?”

기식은 신호등에 걸린 틈을 타 형준을 곁눈으로 슬쩍 보고는 한숨을 폭하고 쉬고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네가 그래서 안 되는 거야.”

뭐가 안 되냐고 반박하려던 형준은 순간적으로 나오는 말을 꾹 삼키곤 그의 옆모습만 살펴보았다. 그를 자극해서 좋을 것도 없거니와 여자 꼬시는 데 선수를 넘어서 픽업아티스트라 불러도 무방할 그의 행동패턴은 반박할 거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녀석은 기억상실증에 걸린 지 1년도 안 됐다. 네가 찾은 같잖은 정보로라도 추측해보자면 길어야 반 년이군. 그렇게 많은 기억을 잃어버린 채 기자들과 광적인 추종자들로부터 시달리다 보면 사람에 대한 방어기제가 예민해질 수밖에 없지. 아무리 호의적으로 접근했다 해도 곧바로 상대의 개인정보를 요구해선 안 되는 일. 반면에 녀석의 빈약한 세상살이 경험을 노려서 우연을 가장한 필연을 만들어낸다. 꼭 기억상실증 영향이 아니더라도 아직 20대 초반인 여성은 연애에 관한 환상과 신비에 젖어있게 마련이지. 그걸 이용하면 더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곤 여전히 실망스런 기색을 비치는 형준에게 명령하듯 말했다.

“그래서 네가 필요한 것 아니겠냐? 쓸데없는 생각 말고 다음에 열릴 ‘카잔 전쟁’ 대회나 검색해봐. 은선영의 연락처도 재량껏 찾아보고. 명실상부 장인의 공학도 해커가 옆에 있는데 내가 뭐하러 리스크를 안아야 해?”

형준은 ‘장인의 공학도’란 말에 슬그머니 자부심이 섞인 미소를 지으며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기식은 그런 형준을 비웃으며 신호등에 초록불이 들어오자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자신의 노트북을 어루만지던 형준은 문득 또 다른 게 궁금해진 듯 기식을 슬쩍 바라보며 조심스레 질문했다.

“그… 그런데 굳이 다른 녀석들까지 필요할까? 아지트로 불러들인 녀석… 들 말이야. 그냥 잘 거라면 꼬셔서 아무 모텔이라도 들어가면 그만 아냐?”

“내가 왜 이런 자금을 들여가며 계획을 짜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군. 기억상실증까지 걸린 녀석을 그냥 따먹어봤자 뭔 재미냐? 그럴 바에야 그냥 나이트에서 널리고 널린 년들 하나 골라먹음 그만이지.”

그리고 형준은 보았다. 기식의 앞머리칼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하지만 가늘고 날카로운 눈 안에 빛나는 욕망의 눈동자를.

“과거의 추억 속 썸씽이 있었던 년은 그에 맞는 대우를 해주는 게 인지상정이지. 그 때 내가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수 년이 지난 지금도 기분이 더러워지는군. 그래서 기억을 잃기 전의 자신을 원망하며 철저히 짓밟히는 꼴을 봐야 해. 바로 모든 스테이지가 마련된 강간의 향연 속에서.”

“가… 강간?”

“녀석 페이스 이쁘지? 사진으로 볼 때보다 더 이쁘다, 실제로 보면. 그런 년을 밑바닥까지 유린시키는 데서 나오는 짜릿함은 너에게 있어서도 어느 야동과 견줄 수 없는 진귀한 구경거리가 될 텐데.”

강간이란 대범한 계획을 지니고 있는 기식의 말에 격앙한 형준은 그의 이어지는 말에 다른 의미로 놀란 표정이 되었다. 확실히 이건 꿩 먹고 알 먹기일지도 모른다. 주변 패거리들은 물론 자신에게도 공개되는 철저한 강간의 현장. 형준은 노트북을 열고 선영의 사진을 불러온 후 침을 꼴깍 삼켰다. 그런 형준을 키득거리며 다시금 비웃어준 기식은 액셀에 얹힌 발에 더욱 힘을 주었다. 하얗고 반짝거리는 그의 중형 승용차는 아지트를 향해 거침없이 질주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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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의 이름을 떠나서 어느 국적인지도 불분명한, 발음하기 어려운 외국어로 잔뜩 치장된 인물의 잡지가 십수 개쯤 거실 여기저기에 나동그라져있다. 어떤 것은 덮여 있고 어떤 것은 펼쳐져 있는, 그리고 또 어떤 것은 찢겨져 있는. 커다란 카펫 위에 그러한 잡지들 중 몇 개를 배에 깔고 엎드려서 곁에 있는 건어물 조각을 질겅거리며 잡지를 뒤적거리는 레게 머리의 남자가 있었다. 그의 옆에는 흑인이 아닌가 싶을 만큼 까무잡잡한 피부의 남자가 엎드려 있는 그의 등 위에 발을 걸친 채로 소파에 기대어있다. 그 역시 잡지를 뒤적거리며 시간을 보낸다. 또 어떤 간사하게 생긴 이는 소파 팔걸이에 걸터앉은 채로 스마트폰을 갖고 놀기에 여념이 없다.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는 커다란 대형TV앞에서 콘솔 게임기를 앞에 두고 두 명이 조이스틱을 열심히 놀리면서 대전 액션 게임에 심취해있다. 그 옆에도 한 남자가 감자칩을 와작거리며 게임 화면을 응시하면서 시간을 때우는 모습이다. 여섯 명의 남자들 모두 하나같이 인상이 험악하거나 혹은 살가움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을 페이스를 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과 어울리고 다닌다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말끔하고 잘생긴 기식은, 이미 그들과 그런 풍경에 익숙해진 것마냥 아무렇지도 않게 아지트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파트 한 동을 전세 내고 방탕한 짓거리를 일삼는 그와 패거리들은 이미 서로에게 낯이 익은 듯 보고도 별 인사를 건네지 않는다. 하지만 기식이 그들의 행동대장쯤으로 짐작될만한 것은 몇 가지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그의 옷차림이었다. 슬림 청바지와 티셔츠, 재킷, 목걸이, 운동화 등이 모두 명품으로 치장돼있었다. 더군다나 험악한 무리들의 가운데에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는 모습은 그가 일부러 그들을 불러모았음을 짐작케 하는 모습이다. 물론 뒤따라가는 형준은 몇 번 와봤어도 여전히 익숙해질 수 없다는 듯 잔뜩 움츠리고 있었지만.

“여-. 왔냐, 소혁?”

조이스틱을 열심히 놀리며 게임에 전념하던 무리 중 하나가 여전히 게임화면만 응시하며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기식은 언짢은 투로 그를 노려보며 곧바로 입을 열었다. 맞인사가 아닌 대응에 가까운.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말랬지?”

“뭐 어때, 이 아지트에는 우리밖에 없는데. 방음 시설도 꽤 괜찮게 돼있어서 이정도 목소리는 새어나갈 염려도 없다구.”

“모든 일에는 만전을 기해야지. 내 뒤에 있는 형준 녀석도 둘만 있을 때조차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고.”

조이스틱을 열심히 놀리던 약간 얼굴 긴 사내는 그제서야 기식쪽을 쓱 돌아보곤 조금 고개를 더 돌려 형준까지 보았다. 그리고는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이죽거리는 음성을 내었다.

“글쎄… 내가 보기엔 일에 관한 이유 때문만은 아닌 듯한데.”

“해고되고 싶냐?”

“휘유, 알았어, 알았어. 예민하긴. 그나저나 정보통까지 납시었군. 이번엔 또 무슨 일을 꾸미고 계시길래 이렇게 여러 명을 불러모았지?”

기식은 재킷을 벗어서 어깨에 턱하고 걸치고는 가지런한 흰 이빨이 드러나도록 히죽 웃었다. 그리고는 형준에게 길게 늘려서 얘기했던 오브젝트를 한마디로 압축해서 툭하고 내뱉었다.

“강간.”

“와우!”

여기저기서 관심 어린 시선이 집중되며 환호가 터져나온다. 엎드려있던 레게 머리 남자가 짓궂게 웃으며 기식을 올려다보았다.

“우리도 맛 좀 보게 해줄 거지?”

“조리돌림은 상황 봐서. 어쨌든 너희들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만일을 위한 건지도 몰라. 상대는 생각보다 너무 쉽게 넘어올 것 같거든.”

“대상이 누군데?”

기식은 그 물음에는 대답도 않고 주변을 잠시 둘러보며 다른 질문을 건넸다.

“경희 오늘도 왔냐?”

“천경희 말야? 걔 저쪽 방에 있다. 걔 완전 너한테 필 꽂힌 것 같던데.”

키득거리며 거실 한쪽 방을 가리키는 사내를 뒤로 한 채 기식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그쪽으로 걸어갔다. 문득 그는 어찌할 줄 모르고 서있는 형준을 돌아보곤 다른 쪽의 쪽방문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넌 저 방에 들어가서 노트북 충전시키며 아까 말한 선영의 정보를 좀 더 찾아봐. 그리고 그 년 곁에 있다고 하던 임시보호자인가 하는 녀석 조사도 해보고.”

“홍준석인가 하는 녀석은?”

“전에도 말했듯이 별 걸림돌이 될 것 같지는 않군. 내버려둬.”

모든 상황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꿰뚫는 그의 수완이 발휘되고 있는 순간이었다. 형준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곤 쪽방 쪽으로 몸을 돌렸다. 기식은 날카로운 매의 눈빛을 한 채 선영의 보지 속에 자지를 박아대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는 짧게 심호흡을 하고는 고개를 숙여 큭큭거리며 웃고는 자신도 앞에 있는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커다란 쿠션에 머리와 어깨를 기댄 채 늘씬한 몸매를 자랑이라도 하듯 길게 누워있던 20대 초중반의 여자는 기식이 들어와도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 그리고 기식이 그녀를 바라보며 재킷을 아무렇게나 벽걸이행거에 던지듯 걸어놓을 때에도 마주보지 않았다. 그녀는 그것보다 자신의 손에 들린 패션 잡지와 입에 물린 하드에 더 관심이 가있는 듯했다. 때는 겨울이라 하드란 아이스크림의 묘미를 느끼기엔 어려울 듯하지만 여자는 그런 것에 별 상관을 두지 않는 듯하다. 뿐만 아니라 롱티셔츠 한장만 달랑 걸친 하의실종 패션도 역시 계절과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사정없이 보일러를 틀어놓는 그들의 아지트는 후끈하기 그지없었고, 그래서 여자도 추위 따위는 전혀 타지 않는 모습이었다.

기식은 계절의 상성을 완벽하게 무시한 여자의 길고 미려한 다리를 흘끗 보고는 두 손을 청바지에 꽂아 넣은 채 느릿하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얼굴을 거의 가리듯 집중해서 바라보는 패션 잡지의 표지를 잠깐 살피는 척하더니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이봐, 천경희.”

“왜?”

건방진 부름에 건방진 대답. 기식은 누워있는 그녀 옆에 엉덩이를 걸치면서 지나가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여긴 내 침대라고. 왜 늘상 니가 누워있는 거냐?”

그제서야 손에 든 잡지를 조금 내리면서 기식을 바라보는 경희. 하지만 곧 그녀는 입에 문 하드를 한 손으로 빼어들고는 시선을 다시 잡지로 주며 웃지도 않고 말했다.

“웃겨. 니 침대 내 침대가 어딨나? 어차피 잠시 머무르는 아지트에 지나지 않는 주제에.”

“그래도 월세는 내가 내고 있다고. 니 집세 한 푼이라도 보태고 그런 말을 하는 거냐?”

“흥.”

경희는 두 다리를 포개며 다시 하드를 입에 물고는 잡지 페이지를 넘겨갔다. 기식도 결국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고는 팔짱을 끼면서 천장을 응시했다. 꽤 낡은 아파트의 천장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거주지를 자주 옮기는 그들의 특성상 굳이 비싼 곳을 택할 필요도 없다. 기식은 도배를 언제쯤 했을까 생각해보며 속으로 웃고는 꼬아 앉은 두 다리를 떨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고등학교 때의 여후배 만났다.”

“그래서?”

“엄청나게 이뻐졌더군. 뭐 원래부터 이쁜 녀석이긴 했지만.”

“그래서?”

기식은 심드렁하게 대답하는 경희를 가만히 돌아보다가 - 그래 봤자 잡지에 가려져서 얼굴이 잘 보이지도 않았지만 - 갑자기 그녀 옆에 나란히 몸을 눕혔다. 그리곤 한 팔로 자신의 얼굴을 받쳐들곤, 쿠션에 누워있는 경희를 약간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히죽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녀석은 날 기억하지 못해. 불쌍하게도 기억상실증에 제대로 걸린 모양이야.”

경희는 누운 자세 그대로 눈동자만 돌려 기식을 마주보고는 하드를 입에 문 채 조금 웅얼거리는 음성을 내었다.

“그게 어쨌다는 거야?”

“너 나 좋아하냐?”

“뭐…? 하, 참. 웃기지도 않어.”

하지만 기식은 경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얼굴을 받치지 않은 다른 쪽 손을 뻗어 그녀의 입에 물린 하드를 낚아챘다. 그리고는 서슴없이 자신의 입에 가져갔다.

“좋아하지도 않는데 아주 여기 살다시피 맨날 오는 거냐?”

“차… 착각하지 마. 집에 가봤자 부모님 간섭에 재미있는 일도 없으니 지루해서 오는 것뿐이니까. 게다가 주변에 다니는 학원도 있고, 번화가도 가까우니 약속 잡기도 쉬워. 게다가 여기 난방 시설도 잘되어 있어서 따뜻하거든.”

“논리적이군. 하지만 그런 물음을 예상해서 당황하지 않게 미리 준비해둔 대답이라 여겨지는 건 왜일까.”

“네 착각이겠지. 빨리 하드나 도로 내놔!”

하지만 기식은 경희가 뻗은 손을 슬쩍 피해서 하드를 허리 뒤쪽으로 숨기더니 그녀의 입에 자신의 입을 맞추었다. “웁….” 경희가 갑작스런 기습 키스에 당황하여 외마디 소리를 내지른 것도 잠시, 기식은 자신이 빨았던 하드의 단물을 입을 통해 그녀의 입 속으로 건네주었다. 멍청한 얼굴로 그런 그의 침을 받아 마시게 된 경희는 이윽고, 그의 얼굴을 손으로 힘껏 밀쳐냈다.

“뭐… 뭐하는 짓이야!”

“머리 이쁘게 잘랐네. 어느 헤어숍에서 했냐? 솜씨 좋은데.”

“네가 언제 내 머리에 관심이나 가졌다고.”

“아니, 정말 이뻐. 은선영이란 년은 이보다 조금 더 긴 머리칼이긴 했지만.”

그리곤 머리칼을 살살 쓰다듬어오기 시작하는 기식의 행동에 경희는 짜증이 팍 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하드를 포기하고 잡지나 훑어보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기식은 더욱 미소를 짙게 하며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그럼 네 대답에 일리가 있다고 치자. 왜 매번 나랑 여기서 자는 건데?”

“그… 그건…….”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랑 벌써 몇 번이고 잤다는 건 단순히 심심풀이용이었나?”

“그… 네 말대로 집세도 안 보태고 있기도 뭐해서…….”

여전히 시선을 피한 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내는 경희를 지그시 응시하던 기식은 다시금 키득거렸다. 그리고는 그녀의 롱티셔츠 밑자락을 붙잡고는 위로 확하고 걷어 올렸다.

“호오…. 그렇다면 어린 녀석이 벌써부터 몸 팔아서 빚 갚는 용도에 맛들인 건가?”

“무… 무슨 짓이야? 어린 녀석? 좀 있으면 벌써 20대 중반이라고! 게다가 너도 어차피 나랑 동갑인 주제에….”

“그게 중요하냐?”

기식은 롱티셔츠가 걷어 올려지자 그 밑으로 훤히 드러난 경희의 희고 탐스러운 살결들에 침을 꼴깍 삼켰다. 그리고는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하드를 마저 와작거리며 한입에 털어넣은 후, 그녀의 팬티자락을 손가락으로 살살 어루만졌다. 속이 비쳐보일 정도로 얇고 아름다운 무늬들이 새겨져있는 팬티. 그의 손가락이 닿자 경희의 몸이 움찔 하고 떨렸다.

“야, 천경희. 너 솔직히 말해봐.”

“뭐… 뭘 말해? 손 안 치워?”

“네 이유들은 모두 그럴싸하지만 동시에 굳이 여기서 나랑 자야 할 정도로 유효한 이유들은 아니란 거지. 세상의 어느 미친년이 멀쩡한 자기 집 놔두고 남의 남자 집에서 월세를 빌미로 성관계를 하겠냐? 그렇지 않아?”

경희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얼굴을 살짝 붉힌 채 시선을 피해버렸고, 기식은 그런 경희가 귀여운 듯 그녀의 아랫도리와 배를 살살 어루만졌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녀의 옷을 가슴 위까지 완전히 걷어올렸다. 니트 재질의 보드라운 롱티셔츠 아래로 경희의 크고 탄력있는 젖가슴이 불쑥 튀어나왔다. 기식은 곧바로 그녀의 젖가슴을 입술로 물고 혀로 핥았다.

“앗, 차거!”

하드의 기운이 남아있는 기식의 혀는 마치 얼음 같았고, 그래서 경희는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외쳤다. 물론 그것은 아주 잠깐에 지나지 않았다. 곧 경희의 체온과 시간에 의해 지워져 버린 그 기운은, 온도의 변화를 따라가는 것처럼 쾌락의 느낌으로 그녀에게 다가서고 있었다. 기식은 그녀의 젖가슴에 얼굴을 묻다시피 핥고 빨거나 눈가를 비비거나 하면서 중얼거리듯 말했다.

“네가 나를 좋아한다는 증거야, 천경희…. 아니면 내 솜씨를 잊지 못해서 자꾸 찾아온다든가, 혹은 내 ‘그것’에 맛들려서 그런다든가. 뭐 다 비슷비슷한 이유겠지만.”

“웃기지… 마. 누가 너 따윌…….”

“그런데 왜 이렇게 옴짝달싹 못해? 쿡쿡…….”

경희는 자신의 젖꼭지를 핥고 팬티의 아래쪽 균열을 살살 손가락으로 보듬듯 만지는 그의 혀와 손놀림을 저항할 수 없었다. 하지만 머릿속으로는 어떻게든 그의 말에 반박할 거리를 생각해보려 애쓰고 있었다. 나 이렇게 쉬운 여자 아닌데… 왜 이 녀석의 행동을 제지하지 못하는 거지? 그리고 기식은 그렇게 발악하는 듯한 경희의 표정은 제대로 살피지도 않았다. 필사적인 경희와는 달리 기식은 그녀의 몸을 탐하면서도 머릿속은 이미 다른 여자의 몸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은선영 말야. 그 녀석 보는 순간 견딜 수 없이 욕망이 치솟아 오르더라고. 물론 겉으로는 평상심을 유지하려 무진 애를 썼지만. 고등학교 때 결국 한번 해보지도 못하고 헤어졌던 년을 이제 와서 따먹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흥분되는 일인지 아나?”

“으… 은선영? 걔가 누군데? 야, 너 설마…….”

“그래. 넌 계획이 진행되는 동안 선영을 향한 제어할 수 없는 내 욕정의 분출구를 대신해줄 년이야. 알아? 크크큭….”

“미쳤어, 미쳤어! 야, 너 그만 안 둬? 아… 아흣……!”

기식의 손가락이 경희의 팬티 속을 헤집고 들어가 보지 둔덕을 어루만지자 경희는 다시 한번 움찔 떨면서 신음소리를 내었다. 기식은 히죽 웃고는 그녀의 젖가슴을 한동안 물고 빨고 핥다가 목 쪽으로 이동했다. 그의 혀가 닿는 곳마다 경희는 온몸이 성감대인 듯 찌릿찌릿 떨었다. 그녀의 목을 핥던 기식은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느껴지는 샴푸 내음에 성욕이 왈칵 밀려옴을 느꼈다. 헤어숍은 방금 다녀왔나 보군. 기식은 경희의 뺨으로 서서히 혀를 이동해 올라오다가 그녀의 입에 자신의 입을 포개었다. 혀와 혀가 맞닿아졌고 기식은 혀를 길게 빼어들어 그녀의 입 속 깊숙한 곳까지 탐색했다. 침이 끈적하게 그들의 입가를 적시고 흘러내렸다.

“읍… 웁…….”

경희는 두 팔로 그를 밀쳐내려 했지만 그 힘은 미약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사실상 그 시도도 얼마 안 가 눈 녹듯 사라져버렸다. 스르륵 하고 내려가버리는 경희의 두 팔. 기식은 한동안 그녀의 입술을 마음껏 탐하다가 그녀의 위에 올라탄 자세로 상체를 일으켜세웠다. 그리고는 윗옷을 벗어제꼈다. 잘생긴 그의 얼굴만큼이나 멋진 몸매가 드러난다. 운동선수처럼 근육이 잡힌 건 아니지만 단단해보이는 살집들. 기식은 그 상태로 상체를 굽혀서 경희를 빤히 바라보았다. 봉긋한 젖가슴 양 옆에 팔을 지탱한 채로 내려다보는 기식의 시선에 회피하듯 경희는 고개를 조금 옆으로 돌렸다.

“왜…… 그래? 뭘 그렇게 바라봐.”

기식은 피식 웃었다.

“너 가만 보면 되게 이쁘다?”

“나 이쁜 거 이제 알았어?”

“아니, 진짜 연예계에 진출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아. 어디 스카웃 제의라도 안 들어오냐?”

“장난하냐?”라는 시선으로 맞쏘아주려던 경희는 고개를 바로 하고도 그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눈가를 살짝 가린 길고 밝은 머리카락. 그의 목에 걸린 가는 줄의 목걸이는 반짝거리며 약간씩 흔들거렸고, 그에 따라 경희의 마음도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의 가슴팍이라도 한대 후려칠 것 같이 마음을 다잡던 그녀는 또다시 스르륵 약해졌다. 두 팔을 늘어뜨리고 또다시 시선을 피하는 경희.

“…칫, 바보 자식.”

“하핫. 왜 그래, 또. 나 그래도 너 되게 좋아한다? 네 몸, 살결들이 나한테 착착 감기는 게 쫄깃하고 맛있는 무언가를 먹는 것 같거든.”

“표현하고는. 바보 자식. 멍청이. 색마. 바람둥이!”

하지만 기식은 그 모든 것이 칭찬인 것마냥 키득거리며 즐겁게 웃고는 자신의 청바지 지퍼를 끌러내렸다. 팬티까지 단숨에 내린 그의 아랫도리에 세워진 커다란 자지. 벌써부터 묽은 좆물이 귀두 끝에 맺어진 그 꼿꼿하고 단단한 것을 질린 표정으로 바라본 경희는 그를 올려다보며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뭐야, 버… 벌써 이렇게 커진 거야?”

“네가 아냐.”

“……?”

“말했잖아. 은선영이란 년을 봤을 때부터 욕정이 치솟아 올랐다고.”

경희는 기가 막혔다.

“너 그럼 다른 년한테 흥분한 걸 내 안에 집어넣겠단 거야?”

기식은 고개를 옆으로 흔들어서 시야를 가리는 머리칼을 조금 내친 후에 살짝 귀찮다는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자꾸 같은 말을 하게 하지 말라고. 넌 계획이 진행되는 동안 내 욕정을 대신 받아줄 녀석이라니까? 뭐 결정적으로는 네 매력도 한몫 하긴 하지만.”

“싫어! 저리 가! 안 돼!”

“안 되긴 뭐가 안 돼? 너도 지금 여기가 잔뜩 젖어있잖아. 팬티를 다 적실 정도로.”

“그… 건 네가 자꾸 만져대서 그런 거고!”

하지만 기식은 들은 채도 안 하고 경희의 팬티를 한쪽으로 잡아당겨서 보지를 드러나게 한 후, 거기다 자지를 쑤욱 밀어 넣었다. 더 이상 말장난하며 놀기에는 기식의 욕정이 제어 불가능한 수준까지 닿아있었다. 바깥에서 선영을 만나고 이성의 끈으로 묶어두었던 성욕이 탐스러운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다시피 침대에 누워있는 경희를 보자마자 풀어헤쳐진 것이었다. “아흑…!” 경희의 숨 넘어갈듯한 신음소리. 기식은 자지를 꽉꽉 조여대는 보지의 압박감을 느끼며 깊은 숨을 몰아쉬었다.

“휴우…… 좋다. 최고다.”

“야… 너…… 진짜… 아흣….”

“이럴 때 네가 있어서 참 다행이란 말야. 다른 건 몰라도 성욕 하나는 확실하게 만족시켜주거든.”

“이… 최악… 자식…….”

기식은 또다시 키득거리며 경희의 두 다리를 양쪽으로 더욱 벌리게 한 후 재차 삽입을 진행해나갔다. 쑤욱-. 퍼억-. 쑤욱-. 철벅-. 왕복이 수월해져감에 따라 점차적으로 빨라져가는 피스톤 운동. 기식의 숨이 차오르는 만족감의 표식마냥 점차적으로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경희의 신음소리도.

“아… 아흣……! 하악, 하악…!”

“후우, 후우…. 어때?”

“뭐… 뭐가 어때…….”

“어쨌거나 내가 어느 년한테 반했든, 너도 느낀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잖아?”

“야… 이……! 몰라… 아흑……!”

퍼억-. 퍼억-. 철퍽. 부직, 부직-.

침대가 삐걱거리며 들썩였다. 기식의 말이 맞다는 걸 증명해주기라도 하듯 경희의 보지에선 보짓물이 흥건하게 흘러나와 자지를 잔뜩 적시었다. 바깥으로 거품처럼 흘러나온 씹물이 경희의 짓눌리다시피 한 엉덩이를 타고 내려가 침대 시트를 적셨다. 기식은 점점 더 강하게, 격하게 경희의 보지에다 자지를 쑤셔박았다. 마치 그의 체중을 실어서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는 것처럼. 퍼억-. 퍼억-. 푸욱-.

“으으음…. 하악…! 아……. 야, 니 보지 정말 죽여준다.”

“야, 씨……! 몰라. 그 따위 년하고… 놀지 마. 하읏……!”

투욱-. 그녀 옆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졌던 잡지가 침대의 들썩임을 이기지 못하고 방바닥으로 떨어져내렸다. 그리고 그것이 신호라도 되듯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기식은 허리의 움직임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닫혀진 방문 쪽을 돌아보았다.

“누구야?”

“야, 기식아. 네가 말했던 정보를 좀 찾아봤는데… 그, 좀… 얘기할 수 있을까?”

“들어와.”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의 자지를 느껴가던 경희는 문득 정신이 퍼뜩 하고 돌아온 듯 기식을 올려다보며 다급하게 말했다. 목소리를 낮추려는 기색이 역력하지만 당황한 듯 전혀 속삭이는 것 같지 않은 음성.

“야, 너… 너 미쳤어? 들어오라고? 어찌 그렇게 쉽게… 흑……!”

“뭐 어때? 계획은 중요하다고. 시도 때도 가리면 안 되지.”

“이 정신 나간……!”

그리고 방문을 열고 들어온 형준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할말을 잊어버렸다(물론 기식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상체는 완전히 벗어버린 채 하체도 청바지만 두 무릎에 끼우고 침대 위에서 피스톤 운동을 하는 기식. 그리고 롱티셔츠를 가슴 위까지 걷어 올린 채 두 다리를 한껏 벌리고 기식의 허리놀림에 따라 몸을 흔드는 경희. 방바닥을 뒹굴고 있는 흐트러진 옷가지들과 잡지 등은 성교의 부산물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얼굴이 붉어진 채 차마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하는 형준을 쳐다보지도 않고 삽입에 집중하던 기식은, 참으로 어울리지 않게 지나가는 말투로 물었다.

“보고할 게 뭔데?”

“흑… 야…… 이 바보가…… 아흐응…!”

“그게 말이지…. 선영의 임시보호자로 일단 기재된 곳을 찾았는데, 이름이 김성진이라고…….”

철퍽, 타악-. 퍼억, 퍼억, 찔걱, 찔걱…….

살과 살이 맞부딪치고 성기가 마찰하는 음란한 소리가 방을 메우는 가운데, 형준은 무릎이라도 꿇듯 침대 옆에 앉아 쭈뼛거리며 노트북을 펼쳤다.

김성진? 녀석의 신상정보가 어떻게 되는데?”

기식은 그렇게 물으며 더욱 허리놀림을 거칠게 했다. 꼿꼿이 치솟아 오른 자지가 힘있게 경희의 보지 속으로 밀려들어가면서 귀두가 그녀의 질 내부 깊은 곳을 건드려댔다. 그에 따라 그녀의 몸 속에서도 참지 못한 짙은 신음이 형성되어 입술로 배어져 나왔다.

“하악……. 아아… 앗흐……!”

“쉬… 쉽게 말하지 말라고. 이것도 찾기 어… 어려운 정보란 말야. 학교 전산망이 새… 생각보다 허술해서 금방 조회할 수, 수 있었지만…….”

하지만 형준의 더듬거리는 음성이 더욱 심해진 건 기식의 말에 반발하려는 의도보다 아무래도 눈앞의 적나라한 성교가 더 크게 작용하는 듯하다. 한동안 기식의 좆질을 느껴가던 경희는 문득 옆을 돌아보았고, 형준과 눈이 마주치자 얼굴을 얼른 반대편으로 돌려버렸다. 그리고 그런 그녀보다 더 빠르게 얼굴을 푹 숙여버린 형준은 떨리는 손으로 키보드를 조작해 김성진의 데이터를 불러왔다. 그의 붉어진 얼굴을 재밌다는 듯 침대 위에서 내려다보던 기식은 즐거운 음악이라도 감상하는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이… 이름 김성진, 나이 스물 하나, 포림대 디지털 미디어 학과 고… 09학번, 가족관계 특이사항 없음, 은선영의 병원비 전액을 지불한 후 도매업을 하는 숙부의 납품 일을 주말마다 담당하며 자금을 충당함. 자… 자세한 사항은 기재되어있지 않지만 아마도 내 짐작으론… 녀석의 자취방 같은 데서 동거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해.”

“아마 맞겠지. 녀석의 가족 관계는 피폐하기 그지없었으니까. 기댈 사람이 없으니 그 김성진이란 임시보호자의 곁에 있을 확률이 높다는 건 뻔한 스토리 아니겠어?”

“하악…… 아읏…….”

철퍽, 철퍽. 삐걱, 삐걱……. 형준은 귀라도 막고 싶다는 불편한 표정을 하였다. 동시에 어떻게 그렇게 선영의 가족관계까지 다 알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표정을 하며 기식을 올려다보았다. 기식은 적당히 땀에 젖은 얼굴로 여전히 눈을 감은 채 경희의 보지 속 느낌을 음미하며 미소 띤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것은 형준의 무언의 질문에 대답하는 내용이 아니었다.

“녀석들이 어떤 썸씽이 있었는지 궁금해지는군. 혹시 이런 관계로까지 벌써 발전해버린 건 아닐까. 그럼 재미가 좀 떨어지는데, 훗훗….”

“아흣…… 뭐라… 지껄이는 거야, 이 색마 자식…… 흑…….”

“괘… 괜찮을까? 녀석들의 유대감이 짙어졌으면… 김성진이란 녀석이 계획에 걸림돌이 될지도…….”

기식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피스톤 운동만 계속했다. 약간 사정을 지연시키려는 것인지 아니면 생각에 잠긴 건지 조금 천천히, 부드럽게 왕복 운동을 하던 그는 눈을 떴다. 그리고는 뜬금없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이봐, 천경희.”

“흣… 왜… 그래…….”

“날 봐봐.”

“싫… 어.”

“보라니깐.”

“꺅-!”

기식은 갑자기 경희의 등에 손을 받치고는 그녀의 상체를 일으켜세웠다. 경희의 얼굴이 그의 얼굴에 맞닿아질 듯 밀착하면서 그의 두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이렇게 가까이서 남자 눈을 마주하는 것도 처음이란 생각에 그녀 얼굴이 확 붉어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기식은 씩 하고 한번 웃어준 후 자지를 보지에 끼운 채로 그녀의 몸을 반 바퀴 돌렸다. 그리고 침대 위에 팔을 뻗고 엎드리게 했다.

“뭐… 뭐하는 거야?”

“뭐하긴. 뒤로 하려는 거지.”

그리곤 경희가 뭐라 입을 열기도 전에 기식은 다시금 자지를 그녀 보지 속에 힘주어 박았다. 쑤욱, 퍼억-! “하윽….” 경희의 한쪽 팔이 살짝 구부려지며 몸을 삐끗하곤 달뜬 신음을 흘렸다.

“그것이 보편적인 생각이겠지만….”

다시금 왕복되는 피스톤 운동. 경희가 몸을 움찔거리며 자지를 느껴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형준은 잠시 기식이 말한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다 퍼뜩 김성진의 얘기를 하고 있음을 알아차린 그는 더듬거리는 대답을 낸다.

“어? 어…?”

“잘 들어둬, 너희들.”

“흑… 하윽…… 무슨…….”

기식은 한 손으로 경희의 엉덩이를 움켜잡은 채 다른 쪽 팔을 들어 검지손가락을 치켜들어 보인다. 물론 허리놀림을 멈추지 않으며. 때문에 형준이 보기엔 그가 여자 보지에 좆질을 하면서 태연하게 강의라도 하는 모습을 연상케 했다.

“사랑이란 것은 인간을 강하게 하지. 하지만 동시에 약하게도 만든다.”

“강하게, 혹은 약하게…?”

“아…… 아아아…… 흐윽… 으응…….”

“그러니까 우리는, 는…… 으읏….”

벌겋게 달아오른 자지가 핏대를 세우며 찌르르 떨려왔다. 기식은 그것이 무슨 신호인지 알고 있었고, 그래서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몰아 쉬었다. 확실히 이 녀석은 조임이 좋아. 그렇게 생각하며 기식은 경희의 허리를 두 손으로 꽉 움켜잡았다. 보지에서 보짓물이 흥건하게 쏟아져 나와 기식의 좆털까지 질펀하게 적시고, 그녀 사타구니를 타고 내려가 침대 시트를 적시고 있었다. 경희는 어느 새 무의식적으로 그의 허리놀림에 따라 리듬을 맞추어 몸을 흔들고 있었다. 두 팔은 이미 무너져서 침대에 뺨을 기댄 채 눈을 내리깔고 깊은 숨결을 내뱉고 그녀.

“흐윽… 하악… 아으응…….”

“야… 천경희. 나온다. 싼다….”

“하앙…… 흐윽…….”

“안에다 싼다니까?”

“몰라…… 하읏…….”

싫다는 말은 안 하네? 참 이 년도 골때리는구만. 기식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경희의 허리를 힘껏 끌어당겼다. 자지가 그녀의 보지 속 깊은 곳까지 쑤욱 밀려들어갔다. 사방으로 부드럽게 조여대는 그 느낌에 견딜 수 없게 된 자지는 얼마 안 있어 벌떡벌떡 요동쳤다. “흐읍…!” 기식은 뜨거운 숨결을 내뱉으며 경희의 보지 속에다 사정을 시작했다.

쭈우우욱-. 찌익-. 왈칵-.

“아학……!”

완전히 앞으로 엎어져있는 경희는 자신의 뒤에서 깊게 쑤셔박은 자지가 뜨뜻한 것을 내뿜기 시작하자 얼굴을 붉혔다. 기식은 계속해서 숨을 몰아쉬며 하체에 힘을 주었고, 자지로 모든 기운이 쏠리는 것을 느끼며 그 쾌감에 집중했다. 울꺽, 울꺽…. 자지가 경희의 보지 속에서 수없이 꿈틀대며 정액을 쏟아내었다. 그녀의 허리를 붙잡은 기식의 손가락이 힘에 부치는 듯 파들거렸다. 그의 자지가 몸부림치면서 좆물을 토해낼 때마다 침대에 머리칼을 어지럽게 늘어뜨린 경희의 미간도 조금씩 떨려왔다.

한참의 절정에 달한 사정이 끝나자, 기식은 그녀를 뒤에서 끌어안으며 - 경희가 앞으로 몸을 뉘이듯 엎어져있었기에 정확히는 같이 포개졌지만 - 감탄 어린 목소리를 헐떡거렸다.

“하아…… 죽인다….”

“아응…… 으응…….”

“역시 선영의 보지를 대신하려면 이 정도는 돼야지.”

아직 빼지 않은 좆물투성이의 그의 자지를 느껴가던 경희는 (순수한 자의는 아니지만)쾌감의 여운이 한순간 산산조각 나버리는 것을 경험했다.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옆으로 비켜앉고는 ‘뭐 이딴 녀석이 다 있어?’라는 시선으로 기식을 내려다보았다.

“…응?”

여전히 능글맞은 미소로 서서히 일어나 앉는 기식. 그런 그를 향해 경희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손을 들어 그의 뺨을 후려치는 시늉을 해보았다. 물론 말 그대로 시늉에 지나지 않았다. 경희가 손을 들자마자 기식이 번개같이 팔을 뻗어 그녀의 손목을 움켜잡았기 때문이다.

“어이어이, 뭐 어때. 너도 어쨌거나 즐겁긴 했잖아.”

“이… 쓰레기 같은 자식!”

“하아…. 난 참 이렇게 까칠하면서도 속으로는 제대로 M속성을 느끼는 녀석이 좋다니까.”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들어올린 손을 내리지도 못하고 부들부들 떠는 경희를 지그시 마주보던 기식. 그는 갑자기 키스라도 하듯 그녀 얼굴로 슥 밀착하더니 속삭이듯 말했다.

“그런 네가 좋다고.”

“뭐… 어?”

걷어 올려진 롱티셔츠를 내릴 생각도 못한 채 기식의 빛나는 눈을 응시하던 경희는 다시금 얼굴이 확 붉어졌다. 기식은 키득키득 웃으며 그녀의 손을 놓아주고 멀찍이 떨어져 앉았고, 곧 얼마 안 가 경희는 다시금 짜증어린 표정이 되었다. 그녀는 질척해진 자신의 팬티가 거슬렸는지 신경질적으로 벗어제끼고는 그의 면상에 팍하고 던졌다. 정확히 얼굴 한복판에 명중하는 팬티.

“오우. 사격 실력 만점인데?”

“뭐 저딴 녀석이 다 있어? 아 짜증나!”

경희는 성큼성큼 형준 옆을 지나쳐 걸어가 방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찝찝해서 샤워하러 간 것이겠지만, 기식은 침대 위에 두 팔을 뒤로 뻗어 앉은 채 어린애처럼 웃어댔다. 젖은 팬티가 그의 눈과 코를 가리고 있어서 드러난 입만 움직인다.

“야, 야. 밖에 남자들 다 있다고. 그렇게 훌렁 벗고 다녀도 되는 거야? 누가 더 대단한 녀석인지 모르겠는데, 하하핫.”

경희가 나간 문밖을 멍청한 표정으로 돌아보던 형준은 조심스레 방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사정 후의 기분 좋은 나른함에 젖어있는 기식을 흘끗거렸다. 기식은 팬티를 떨쳐내고서 손에 올려놓곤 가만히 그것을 내려다보다가 형준의 시선을 느끼고는 옆을 돌아보았다.

“뭐 물어볼 말 있냐? 아,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사랑은 인간을 강하게 하면서 동시에 약하게도 한다 했지. 그… 그게 무슨 뜻이지?”

기식이 경희와 늘상 섹스를 즐기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두 눈으로 똑똑히 본 건 처음이었기에 형준의 표정은 충격으로 물들어있었다. 기식은 늦게 트이는 그의 말문에 픽하고 웃고는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말 그대로야. 사랑을 하는 인간은 강해지는 부분도 있고 약해지는 부분도 있다는 거지. 사랑을 함으로써 대상을 지키거나 믿는 것이 강한 것이라 하면, 사랑에 눈이 멀어 판단력이 흐려지는 것은 약한 것이라 할 수 있지”

“……그리고 우리는 그 약한 부분을 파고들고 있는 것이고?”

“물론 김성진이란 녀석이 계획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더 재미있을 것 같지 않나? 사랑의 강점이 그녀를 지켜줄 수 있을지, 아니면 약점을 이용하는 쪽이 그녀를 파괴할 수 있을지.”

안정적인 보상을 우선으로 하는 형준은 단순히 귀찮을 것 같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기식은 그의 표정 따윈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조금 후에 다른 내용의 말을 꺼내었다.

“메지즈 같은 프로게임단을 하나 만들어.”

“뭐…?”

“물론 개인 구단으로. 이름은 너라면 꽤 센스있게 지을 수 있을 것 같군.”

자신을 인정하는 말에 귀 기울이는 자부심 높은 공학도인 형준도, 이 순간만큼은 그저 잘못들은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떨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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