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3화 (4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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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스러운 긴 소파와 테이블, 각종 조명 기기와 최신 노래방 기기에 연결된 대형 스크린 등은 폐쇄적인 공간을 몽환적인 세계로 바꾸어놓는다. 테이블 위에는 수많은 맥주들과 양주, 그리고 각종 안주가 풍족하게 올려져있다. 그곳에 모인 네다섯 명의 남자와 역시 같은 수의 여자들은 짝을 지어 앉아서 술을 즐기고 음악을 즐기고 분위기를 즐기고 서로의 몸을 즐긴다.

보다 일링크스적인 놀이에 초점이 맞추어진 바깥 홀과는 또다른 타입의 즐길거리가 존재하는 나이트 룸. 성진은 맥주에 양주를 섞은 폭탄주를 단숨에 들이키고 잔을 테이블에 탁 소리 나도록 내려놓았다.

“휴우…….”

“오오!”

약속이나 한 듯 주변에서 환호성과 박수소리가 울려퍼졌다. 성진의 옆에 앉은 여자는 과일안주를 하나 포크로 집어서 성진의 입으로 건네주었고, 그는 그것을 받아먹으면서 자연스럽게 그녀의 허리를 손으로 감쌌다. 그리고는 여자의 목에 키스를 했고, 그녀는 성진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훑어서 약간 묻어나온 맥주방울을 쪽하고 빨았다. 성진은 씩하고 웃고는 이번엔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그때쯤 테이블 반대편에 앉은 성진의 일행으로 보이는 남자가 맥주를 한모금 들이키며 큰 목소리로 말했다.

“야, 성진! 짜식, 변함없이 능숙하구만.”

성진은 잠시 입술을 떼고는 이번엔 자신이 과일안주를 집어서 여자의 입에 넣어주며 그를 보지도 않고 응수했다.

“형이 그런 말 할 처지가 안 되는 것 같은데?”

“얌마, 내가 네 나이 때는 지나가는 여자만 봐도 눈도 못마주치고 고개를 숙였어. 하여간 요즘 애들은 이런 방면으로 너무 빨리 성숙해서 탈이야.”

“기껏해야 나이 차도 얼마 안 나면서 아저씨처럼 굴지 말고, 할말이 뭐야?”

형이라 불린 그 남자는 역시 옆에 낀 여자에게서 한 손으로 술을 따라 받으며 히죽 웃고는 물었다.

“뭐 괜찮은 수당이라도 받았냐? 아니면 일거리라도 생겼어?”

“그런 건 아닌데, 왜?”

“네가 갑자기 연락와서 나이트 룸을 다 쏘겠다고 하니까 좀 의외라서 그렇지. 니 아직 학생이잖아?”

“가끔씩은 이러고 싶은 날이 있지 뭐. 그리고 틈틈이 납품 일 하니까 몇십만원 정도야 못 쓰겠어?”

“너 무슨 일 있냐?”

“새삼스레 뭘 그런 걸 묻고 그래, 형. 그냥 재밌게 놀자구.”

실제로 성진은 자주 그들과 어울려다니기도 했기에 형이라 불린 남자도 그쯤에서 별말 않고, 자신의 파트너와 술잔을 기울여갔다. 성진의 또래만한 다른 남자가 일어서서 파트너 여자와 함께 마이크를 잡고 신나는 노래를 불러대자 분위기는 급속도로 달아올랐다. 성진은 손을 들어 적당히 호응해주다가 폭탄주를 한번 더 들이켰고 적당히 취해가는 상태에서 옆 부킹된 여자의 목에 다시 입술을 꽂았다. 윤기나는 긴 갈색머리를 곱게 빗어낸 단아하면서도 섹시함이 성진은 맘에 들었고, 그녀는 키득거리며 한 손으로 그의 손목을 잡아 자신의 허벅지로 끌어당겼다.

나이트 클럽 죽돌이까진 아니지만 성진과 그의 일행은 꽤 고정적으로 클럽을 드나드는 편이었고, 노는 데에 어떤 분위기를 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준수하면서도 센스 있는 외모와 옷차림에 능숙했고 게다가 나이까지 20대 초중반으로 젊었다. 남자가 여자를 보는 관점만큼은 아니어도 여성도 사실상 젊고 멋진 남자를 우선으로 하는 건 당연한 법. 더군다나 성진은 오늘만큼은 학생신분 따윈 버린 것처럼 안주와 비싼 술을 내키는 대로 시켰고 - 물론 그의 일행들은 어리둥절하면서도 ‘이새끼 오늘 날 잡았구나’ 정도로만 알고 같이 웃고 떠들고 마시는 데 집중했지만 - 따라서 부킹되는 여자들도 단번에 자리를 잡다시피 했다.

성진은 일사천리로 자신의 파트너가 된 여자의 치마 속에 손을 넣어 팬티를 만지작거렸다. 긴소매지만 가슴과 배 부분이 훤히 드러난 짧은 티셔츠에 허벅지를 몽땅 드러낼정도로 착 달라붙는 미니스커트를 입은 그녀는 엄청난 미모에 도발적인 눈빛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성진의 조금 과감하다 싶은 스킨쉽을 더욱 높은 수위로 끌어올림으로써 상대를 제압하는 고단수의 수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여자 경험이 적지 않은 성진으로서도 조금 당황할 정도였고 그는 씩 웃으며 그녀의 눈을 마주보았다.

“대단히 능숙한데?”

여자는 성진의 뺨을 손가락으로 훑으며 매력적인 미소를 생긋하고 지었고, 이어서 곧바로 그의 뺨을 혀로 올려내듯 핥았다. 성진은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가슴을 밀착하며 그녀와 키스를 했다. 맛보면 맛볼수록 더욱 빠져들고 싶은 향취가 그의 코를 자극했다. 성진은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목을 핥으며 내려가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고, 그녀는 아예 티셔츠를 아래로 끌어내어 젖가슴을 훤히 드러나게 했다. 볼륨있는 그녀의 젖을 빨면서 성진은 완연하게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하아…….”

여자도 살짝 붉어진 얼굴로 그의 머리를 끌어안아 더욱더 가슴에 밀착하게 했다. 성진은 탄력있는 젖꼭지를 입술로 느끼며 오늘은 이 여자로 끝내겠다는 생각으로 정신 없이 그녀의 몸을 애무하고 키스에 빠져들었다. 룸은 전체적으로 고요해져 갔지만 내부적으로 진한 애정행각에 물들어갔고 홀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만 간헐적으로 아스라이 귓가에 맴돈다. 각자 달콤하고 몽환적인 교류의 즐김.

성진은 이 단아하고 섹시한 긴 갈색머리 여자와 모텔을 가서 쌓아올려진 느낌을 풀어낼 향연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사실상 그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가치 있는 쾌감이긴 하다. 적어도 현재로서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성진의 주머니에서 울려대는 핸드폰 메시지 도착 소리와 그것을 확인함에 있어서 그런 기대감이 다른 방향으로 사그라지는 느낌을 부정할 수 없었다.

우웅-.

잠시만. 응. ……. 왜 그러는데? 으응, 아무것도 아냐. 계속해도 돼? 물론이지. 후음…. 하압……. 쪽…… 쪼옵…….

잠시의 끊김과 의례적인 확인 절차. 재개. 다시금 달아오르는 기분. 그러나 성진은 현재의 행위를 재개하긴 했지만 그 이전처럼 달아오르는 기분을 느낄 수는 없었다. 물론 여자는 메시지를 보지 못했고 심경에 동요가 인 것도 아니다. 그녀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농후한 키스에 고감각의 애무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나 성진 쪽은 그녀의 행위에 호응하면서도 집중할 수가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키스 소리와 서로의 성감대를 빨아대는 소리, 거칠어져가는 숨소리 등 음란한 소리들은 룸 내부를 적나라하게 물들여갔지만, 성진은 그런 분위기에서 완연히 고립되어갔다. 애써 무시하려 하면 할수록 핸드폰으로 온 그 한 통의 메시지는 성진의 머릿속을 반복적으로 어지럽혔다. 겉으로 보기에는 거의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으나 성진의 행위는 점차적으로 힘을 잃고 무미건조해져 갔다.

여자도 그걸 눈치챘는지 의문 섞인 눈으로 성진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곤 그가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것을 깨닫고는 뭐라고 말하려던 찰나, 성진은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화장실이라도 가려는 건가 하고 별 신경을 쓰지 않던 일행들도 뒤이어 나온 그의 선언과도 같은 말에 한순간 시선을 집중하게끔 한다.

“형, 미안한데 먼저 갈게. 마저 재밌게 놀다 가.”

“뭐…?”

“급한 일이 생겨서. 지금 가봐야 할 것 같아. 여기 비용은 내가 넉넉히 계산하고 갈게. ……미안해, 수진아. 다음에 만나서 제대로 하자고.”

물론 원나잇 상대를 또 만날 확률은 말 그대로 기약 없는 이별에 가깝다. 하지만 수진이라 불린 성진의 파트너는 멍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에 쥐어지는 10만원권 수표와 그걸 건넨 그의 휑하니 돌아서는 코트 자락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바깥으로 나간 성진이 웨이터를 불러서 몇 가지 추가 주문을 하는 듯한 소리도 작게 들렸으나 어쨌거나. 성진은 그렇게 본인의 입장에선 아쉬움을 넘어선 황당한 지출을 마치고는 나이트 클럽의 들뜬 음악을 떠나 차가운 밤공기가 스며든 바깥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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