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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언덕과 검은 나무들은 밤이란 거대한 그림자에 의해 잠식된 존재들의 표상이다. 그것을 만들어낸 높다란 검은 하늘은 달빛과 별빛이란 조명등을 제외하면 그야말로 검은색의 일색이다. 그러나 그런 일관된 검은색으로 물들인 깊은 밤 배경 속에서도 세라임 호수의 잔잔한 물결은 달빛으로 인해 시리도록 밝은 느낌을 준다. 낮과 비교해서도 전혀 미색이 퇴색되어있지 않은, 아니 오히려 보석같이 빛나는 밤만의 특유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모습.
선영은 검은 언덕위에 서서 검은 나무들 너머로 보이는 그 호수의 물결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바람이 살짝 불며 그녀의 머릿결을 몇 가닥 흩날렸고 그것들은 눈가를 살며시 간질였다. 그녀는 문득 스키니 청바지를 입고 있는 다리 사이에서 동혁이 쏟아냈던 정액이 주륵 하고 한모금 또 새어나오는 것을 느꼈지만 여전히 무표정을 일관했다. 미간을 찌푸릴 힘도 없는 듯 그녀는 탁한 눈동자로 세라임 호수의 물결만 응시하고 있었다.
그 물결들이 그녀의 눈동자 속에서 들어차듯 춤을 췄고, 그런 잔잔하면서도 복잡한 운동은 잠시 현세와 맞닿아있는 본래의 선영 머릿속에서 추억이란 염증을 들썩이도록 촉구하고 있었다.
- 뭐야, 저 자식. 재수없어. 똑똑하고 얼굴 반반하다고 지가 무슨 공주라도 된 줄 아나보지? 못 봐주겠네, 정말 -
- 이 망할 년의 여편네가! 몇 놈한테 대줬어? 응? 남편은 뼈빠지게 밖에서 일하다 보면 집사람이라는 작자는 그 돈으로 편하고 즐겁게 딴 남자랑 희희덕거린단 말이지? 엉? 보지가 허전하냐? 뜨겁게 만들어 줄까? -
- 예쁜 칼날이야. 사랑스러운 녀석이지. 그러나 조심해야 돼. 너무 예쁘다고 자신도 모르게 다가갔다간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몸 한구석이 베여버릴 테니까. 그저 그녀는 맡은 역할을 수행하는 기계와도 같은 년이라 생각해라. 뭐 어때? 눈요깃거리는 되잖아? -
- 아하… 이래서 똑똑한 년은 질색이라니깐. 금방 자기가 뭐라도 되는 양 사사건건 트집을 잡잖아. 어이 너. 나랑 몇 번 잠자리 같이 하니까 뵈는 게 없나 보지? 너도 어차피 외로움 달래려고 나랑 사귀는 것뿐이잖아? 그럼 그냥 닥치고 있든지 헤어지든지 해! -
- 몇 살이야? 이쁘네…. 가출했니? 아저씨랑 같이 재미나게 놀까? 아저씨 이래봬도 돈 많은 사람이야. 얼마면 될까? 왜 그래, 세상 다 산 사람처럼. 이쁜이한테는 어울리지 않아 -
- 저기… 웬만하면 사람들이랑 자주 친하게 지내고 그래요. 왜, 왜 그런 눈으로 보세요? 저도 다 이해하고 있다구요. 사람은 살아가면서 종종 힘든 난관에 부딪힐 때가 있지요. 하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모두 극복할 수 있답니다. 힘든 때일수록 자신을 다잡으세요! 혹시 남친 있으세요? -
‘쓰레기들….’
파노라마처럼 넘어가는 회상 속의 말들이 생생하게 머릿속을 다시금 헤집고 지나갔고, 그 끝에 결론지어진 선영의 통칭은 그 한마디였다. 어느 쪽이 낫고 어느 쪽이 못하고를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그녀에겐 모두 구역질나는 추억들이었다. 행복이란 도대체 뭐지?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을 행복이란 건… 과연 존재는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어째서 더 많은 재산을 가지려 노력하고, 더 좋은 직위에 올라서려 노력하고, 더 좋은 인연을 만들려 노력하는 걸까. 그것들이 궁극적인 행복이라 생각하는 건가? ‘살아갈 만한 가치’가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런 거라면… 도대체가 너무도 하찮고 가엾은 인생이다. 난 좀 더 나은 행복을 추구하고 싶었는데… 내가 그나마 믿어보려 했던 이 세계는 눈앞의 얄팍한 것만 추구하고 있었다.
선영은 문득 자신이 한없이 약해보인다고 생각했다. 이 세계는 그녀에게 감당할 수 없는 현실만 제공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남들은 모두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도대체가… 당신들은 정말로 ‘그것’을 믿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정말로 강하시군요. 그렇게 살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부럽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지 못합니다. 제 뇌가 그것을 거부하거든요. 현실의 끝이 어떤 건지, 잡을 수 없는 행복을 인정하지 않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하는. 그래서 돈, 명예, 사랑, 꿈. 이 모든 것들이 하찮게만 보이는… 이런 저를 이해할 사람이 있습니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최소한,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있잖은가?
“……닥쳐!”
한없이 미동도 않고 세라임 호수를 바라만보던 선영의 몸이 외침과 함께 급격하게 요동쳤다. 상체가 옆으로 비틀리듯 휘었고, 그녀의 오른팔은 뒤로 젖혀졌다. 그녀는 주저없이 그것을 옆의 거목에다 휘둘렀다. 주먹을 쥔 연약한 여자의 손은 단단하고 꺼끌꺼끌한 거목의 둥치에 짓이겨지며 쉽게 핏자국들을 남겼다. 하지만 그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 체념이란 안주로 다가서는 그녀의 마음을 뒤흔드는 빌어먹을 내면의 목소리를 들은 듯했기 때문이었다.
대행하던 녀석이 의식을 찾아가는 건가? 그럴 리가 없다. 녀석이 그쪽 방면의 기억을 되찾았을 리도 없고. 그럼 그 목소리는 뭐지? 헛것을 들은 건가?
설마 내가… 스스로…….
선영은 거목에 내질렀던 손을 툭하고 떨궜다. 그리고는 피가 스며나오기 시작하는 손등을 한번 볼 생각도 않은 채 재킷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곧 그녀의 손엔 핸드폰이 들려져 나왔고, 그녀는 쓰라림을 호소하는 손의 감각을 무시하며 기억 속의 번호를 눌렀다.
잠시 후, 그녀는 핸드폰을 귀에 갖다 댔다. 배터리가 유지되는 한 늘 깨어있는 그 조그만 디지털 기기는, 시간과 장소에 상관 없이 주인의 목적에 충실하게 부합하며 신호음을 전달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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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진은 소파에 누워있는 미선의 보지 속에 자지를 박아대고 있었다. 확실히 그녀는 처음은 아닌 듯 크게 긴장하진 않고 있었고, 자지도 비교적 순조롭게 안을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하지만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은 그녀의 마인드였다.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고 자신의 의지로 선배에게 몸을 내맡길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에 매우 만족하는 모습이었다.
미선은 현재 스타킹과 팬티를 모두 벗어서 아랫도리를 완전히 드러낸 상태였지만 들추어진 미니원피스와 롱가디건은 그대로 입고 있는 상태였다. 그녀는 손등으로 입을 가려서 내리깐 눈으로 아랫도리를 응시하고 있었고, 성진은 그렇게 그녀가 자신의 자지를 느껴가는 모습에 은근히 격한 흥분이 밀려왔다. 게다가 주변에선 처음 분위기가 업되는 순간만큼은 아니었지만, 흥미가 동한 몇 회원들은 여전히 소파 너머로 그들의 정사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 혹은 그녀들은 성진의 피스톤 운동으로 인해 미선이 몸을 떨거나 신음을 흘릴 때마다 옆사람과 의견(?)을 교환하거나 탄성을 질렀다. 멀찍이서 한가롭게 와인잔을 기울이는 커플들도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고, 사실 공개된 섹스는 이 클럽만의 매력이기도 했기에 성진은 묘한 짜릿함을 느끼며 피스톤 운동을 계속했다. 미선도 미선 나름대로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좋아하는 남자와의 섹스를 축복받는 기분을 느끼며, 부끄러움보다는 기쁨 속에 붉어진 얼굴로 선배의 몸짓에 호응했다.
“이것 봐, 아주 깨가 쏟아지는데? 그냥 친한 후배라며~”
소파에 한쪽 무릎을 굽히고 피스톤 운동을 하는 성진의 뒤에서 언제 다가왔는지 모르게 소희는 등뒤에서 팔을 뻗어 그의 젖꼭지를 살짝 꼬집었다. 몸이 달아올랐기에 현재 성진은 상의를 완전히 벗은 상태였다. 약간 마른 듯하면서도 꽤 단단하게 다져진 그의 균형잡힌 상체에 소희 또한 입맛을 다셨고, 그녀는 성진을 뒤에서라도 한번 안아보고 싶은 심경에 살며시 끌어안아 그의 성감대를 자극해나가기 시작했다. 성진은 등으로 느껴지는 그녀의 볼륨있는 가슴과 능숙하게 젖꼭지를 자극하는 그녀의 손가락에 신음을 흘렸다.
“으윽… 소희 너…….”
“하아… 예전보다 더 괜찮아진 것 같네. 안되겠어. 나중에 나하고도 꼭 한번 해야 한다?”
“아읏…… 아아…… 흣…….”
미선은 소희가 성진을 끌어안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제지할 여력은 없었고, 그래서 그대로 신음을 흘리고만 있었다. 성진은 소희의 자극까지 겸해지자 금방 사정감이 밀려와서 그녀를 돌아보며 그만두라고 윽박지르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바로 옆에 밀착하고 있는 그녀의 얼굴과 코와 코가 맞닿을 거리에 있다는 것을 깨닿고는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소희는 머리카락에 가려지지 않은 드러난 한쪽 눈으로 성진의 두 눈을 마주하게 되자 자연스럽게 그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성진은 상체로는 소희의 애무를 느끼고 하체로는 미선의 보지를 느끼면서 그 전까지도 경험해보지 못한 독특한 쾌감이 전달되고 있음을 느꼈다. 성진은 결국 허리를 격렬하게 움직이며 미선의 보지 속에 자지를 박아대었고, 커져가는 그녀의 신음 소리에 약속이나 한듯 주변에서 구경하던 회원들의 탄성 또한 커져갔다. 정장을 입은 여자 웨이터들도 지나가던 발걸음을 멈추곤 절정에 달하는 그들의 정사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뒤에서 껴안은 소희 또한 그의 귓가를 입술로 애무하다 그가 사정할 양으로 몸을 흔드는 것에 같이 신음을 흘리며 눈을 내리깔았다.
“아…… 아흐흐흐흣…… 서… 선배……!”
“미… 미선아……. 나…… 온다…… 으으으윽.”
“으으응…. 밖으로 내봐. 내가 해줄게.”
성진은 머리 한쪽이 무언가를 스치며 지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이 자지 끝으로 몰리는 기운에 의거한 것을 자각한 그는 재빨리 미선의 보지 속에서 자지를 빼어들었다. 그리고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미선의 몸 위로 올라가 자지를 그녀의 얼굴에 들이대었다. 미선은 하체가 경련하듯 격한 통증과 쾌감을 느끼면서도 선배의 자지를 보고는 입을 벌리고 혀를 내밀어서 좆물을 받으려는 의지를 확고히 했다. 소희는 그 때에 맞추어 뒤에서 한 손을 뻗어 성진의 자지를 잡아 힘있고 빠르게 앞뒤로 문질러댔다. 그녀의 능숙한 손놀림에 의해 자지 끝부분에서 정액이 힘차게 쏘아져 미선의 입 속으로 들어갔고 얼굴 곳곳으로도 튀었다. 찌익-. 쭈욱-.
“오오!”
“휘익-!”
옆에서 구경하던 회원들과 웨이터들은 다시금 환호성을 올렸다. 성진은 이를 악물고는 더 많은 정액을 쏟아내기 위해 사정에 집중해갔다. 그의 조력자(?) 소희는 한 손으로는 계속 그의 자지를 문질렀고, 다른 쪽 손으론 브이자를 그려보이며 미소로 관객들에게 대신 화답했다. 정액은 계속해서 쭉쭉 쏟아져 나와 미선의 얼굴을 가득히 물들였다. 그녀의 머리 윗쪽까지 튄 좆물들은 소파에 늘어뜨린 포니테일 머리칼에까지 묻어났다.
“아… 아음…… 흣…… 선배…….”
“헉…… 허…… 후으…….”
“흐음…. 쿡쿡쿡…….”
성진은 정액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자지를 미선의 입가에 물리었다. 그녀는 눈꺼풀 위로 들러붙은 정액 때문에 제대로 뜨지도 못하면서도 선배의 자지를 핥아갔다. 성진은 그런 미선의 모습을 보며 얼굴을 조금 붉혔다가 곧 피식 하고 웃었다. 그리고는 몸을 굽혀 사랑스러운 후배에게 입맞춤을 했다. 미선의 달뜬 숨소리가 성진의 귓가를 간지럽혔고, 뒤에서 약간 떨어져 앉은 소희는 손가락에 묻은 그의 정액을 쪽쪽 빨면서 맛보았다. 불꽃 같은 정사 후의 차분하면서도 긴 여운의 즐김.
시각이 자정을 한참 넘어 새벽을 달리자 무대 위에서 춤추는 회원들은 거의 사라졌다. 대신 그들은 제각기 정사로 옮겨가거나 와인을 즐겨갔고, 웨이터들의 발걸음도 뜸해졌다. 가끔씩 꽤 보기 드물게 여자 웨이터까지 끼어든 정사가 벌어지면서 곳곳에서 다시 한번 열기가 솟아올랐으나 홀 내부는 음악소리마저 줄어들며 조용하고 감미로운 분위기로 전환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즈음, 미선과 긴 키스를 나누던 성진에게 전해지는 바지주머니의 핸드폰 진동소리.
우웅-.
성진은 키스를 멈추지 않으면서도, 늦은 시각에 전화하는 상대방의 매너 없음에 내면적으로 짜증을 일으키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성진은 차라리 별 거 아닌 전화에 짜증을 내는 편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핸드폰 너머에서 다급한 목소리로 허둥지둥 말하는 동혁의 목소리는 그로 하여금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재킷만 걸친 채 클럽 바깥까지 나와 통화 내용에 집중하는 그의 얼굴은 핏기가 싹 사라져있었고, 문지기는 그런 그의 안색을 흘끗거리며 살펴보는 중이었다. 차가운 새벽 늦가을바람이 겉옷만 대충 걸친 그의 몸을 훑고 지나갔지만 성진은 추위조차도 못 느끼는 것 같았다.
동혁의 물음이 다시금 그에게 전해졌다.
- 그래서, 너한테도 연락이 안 갔다는 말이지? -
“그래, 그리고 난 지금 바깥이라 선영이 집에 왔는지도 알 수 없어.”
벌써 몇 번째 같은 내용을 묻고 있는진 몰랐지만 성진 또한 그 부분을 지적할 여력이 없었기에 이전과 똑같이 대답했다. 하지만 시간이 어느 정도 해결해주는 부분은 존재하기 마련이었고, 그래서 성진은 보다 디테일적인 대답을 창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열쇠는 나한테 있으니까 집에 왔다면 내게 연락했겠지. 그런데 연락이 없는 걸 보면 집에 왔을 것 같지도 않아.”
- 이런 젠장할… 도대체 어디로 간 거지? 걔 가방도 보이지 않아. 모두 잠든 사이에 펜션을 아예 나가버린 거 같은데…. 여긴 택시도 잘 없다고. 대체 어디로… -
“너 취한 건 아니지?”
- 안 취했어! 임마. 걔가 취했지. 아, 그러고 보니 내가 필름 끊기기 전 걔가 날 손날로… -
“안 취했는데 필름이 끊겨? 손날은 또 뭐야?”
- 아, 아무튼! 대체 어디로, 어디로…… -
성진은 이젠 횡설수설인 동혁의 통화 내용을 들으며 한숨을 쉬었다. 이 녀석 취한 거 맞구만. 그리고 그는 특별히 주의해서 선영을 봐주라는 부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점에 있어서 질타를 하지는 않았다. 어디까지나 부탁이었지, 그의 즐거움까지 뺏아가면서 수행할 의무는 동혁의 입장에선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물론 그가 선영을 범했다는 점이 드러나면 얘기는 달라졌겠지만, 아직 그 부분까지 전혀 짐작하지 못하는 단계인 성진은 일단 무의미한 통화는 이쯤에서 끊기로 했다. 그는 자신도 집으로 가서 확인할 테니 동혁에게 계속해서 찾아보라는 말만 남기고 핸드폰을 닫았다. 어둠 속으로 내뻗어진 한숨에 의해 입김이 피어오르는 것을 바라본 그는 잠시 후, 휙하고 몸을 돌려 지하에 위치한 클럽 내부로 다시 들어갔다.
“선배. 무슨 일 있어요? 표정이 왜 그래요?”
성진이 오면 또 할지 어떨지를 잘 몰랐기에 미선은 옷가지들을 입지 않고 안은 채 소파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성진의 얼굴에서 딴 생각에 잠겨있는 생경함을 발견하고는 질문했다. 하지만 성진은 대답할 생각도 못했고, 그녀 옆에 앉아있는 소희까지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자각해서야 정신을 차리듯 말했다.
“어? 어… 미안. 미선아. 급히 가봐야겠다.”
“지금요? 같이 가요, 선배.”
“이 시간에? 참… 성진, 어지간히도 바쁜 몸인가 보군.”
소희는 아쉬운 입맛을 다시기라도 하듯 와인잔을 기울이며 드러난 한쪽 눈으로 성진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성진은 설명을 삼키는 표정으로 미소만 지으며 그녀에게 손을 들어보였고, 소희는 별 말 없이 벗은 다리를 꼬아앉아 그에게서 시선을 떼었다. 그녀는 그 무릎 위에 팔을 받치고는 턱을 괴어서 와인잔을 내려놓은 손으로 이번엔 자신의 팬티를 집어들어 검지에 걸었다. 그리고는 마치 그것을 가지고 장난이라도 하듯 빙글빙글 돌렸다.
그 모습에 성진은 잠시 인사를 건넬까 하다가 그냥 넘어가는 편이 낫겠다 판단하곤, 옷을 추슬러 입은 미선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홀 바깥을 향해 조금 빠른 발걸음을 내디뎠다. 소희는 그런 그들의 뒷모습을 흘끗 쳐다보곤 팬티를 이번엔 손목에 걸고는 다시 와인잔을 들어올려 입가에 갖다댔다. 약간 붉은빛을 띠는 주황색의 와인이 그녀의 목으로 살포시 흘러들어간다.
그리고 소희는 그 느낌을 하나의 생각에 섞어서 내기라도 하듯 중얼거렸다. 섹시하고 적극적이지만 동시에 예리하기도 한 그녀.
“친한 후배란 강조, 야심한 시각의 뜬금없는 연락, 미소지을 여력은 있으나 생각은 딴 곳으로.”
슬쩍 핏하고 힘없는 웃음을 내뱉는 소희.
“또 다른 여자 문제군. 그가 진심으로 생각하는.”
“어라, 그냥 가도록 놔둔 거야?”
긴 머리를 웨이브로 늘어뜨린 하영이 역시 환상적인 몸매를 자랑이라도 하듯 가슴과 하반신만 대충 가린 차림으로 그녀 옆에 다가왔다. 하지만 소희는 와인의 맛을 음미하기라도 하듯 그녀 쪽은 바라보지도 않고 있었다. 대답조차 없는 친구의 모습에 하영은 툴툴거리며 과일안주를 몇 조각 우적거렸다. 그리고는 자신도 빈 와인잔을 하나 집어들었고, 그 때쯤 소희는 여전히 하영을 보지도 않은 채 지나가는 물음을 던졌다.
“화장실에서 이제 끝난 거야?”
“끝나긴 예전에 끝났지, 이 가스나야. 여기 분위기 보고 바로 안 오고 파트너랑 멀찍이서 수다나 떨면서 기껏 시간 끌다 왔구만. 아니, 근데 너 쟤 좋아하지 않았어? 아무리 귀여워보이는 애가 옆에 있다지만….”
“시끄러워. 그 얘긴 그만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