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6화 (3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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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에 들어선 미선이 가장 먼저 느꼈던 것은 왁자지껄한 분위기였다.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는 귓가를 울릴 정도로 크진 않았으나 사람들은 환호를 지르고 몸짓으로 호응을 하고 있었다. 내부는 일종의 바(Bar)처럼 은은한 분위기였고 넓이가 꽤 넓었다. 천장도 높았는데 그 위에는 커다란 미러볼이 조명을 가지각색으로 비추고 있었다. 클럽과 비슷해보이기도 했지만 어느 정도 떨어진 사람의 얼굴도 또렷이 보일 정도로 밝기는 환한 편이었다.

그리고 그런 밝기 아래에서 잠시 후 미선은 시각적으로 보이는 장면에 충격을 먹었다. 그녀의 또래만하거나 기껏해야 이십 대 중후반 여자들이 홀의 전방에 마련된 무대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그런데 그냥 춤추는 게 아니라 옷을 거의 벗은 채로 추고 있었다. 속옷만 입은 채로, 치마만 입은 채로, 혹은 중요한 부위(?)만 그냥 드러낸 채로 제멋대로란 표현력마냥 그들은 몸을 흔들고 있었다. 전혀 부끄럼없는 모습은 그 사이사이에서 성기를 꺼내어 흔들고 있는 남자 쪽도 마찬가지였고, 곳곳에 널려있는 테이블과 반쯤 쏟아져 뒹굴고 있는 술 등에서 미선은 해답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수의 사람이 몰려 있는 곳에서 형성되는 통념은 역시나 다수에 의거한다. 그리고 그것이 대부분을 차지한다면 일반적인 관념 속에 박혀있는 상식을 지키고 있는 쪽이 ‘틀렸다’라고 지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최소한 그런 공감대가 형성돼있는 곳이라면. 그리고 미선은 그런 상식을 지키고 있는 자신과 성진 선배의 옷차림을 보면서 더욱 이방인의 모습이 부각되고 있음을 얼마 안 가 깨달았다. 테이블 근처의 소파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까지도 대부분이 아찔한 노출을 일삼고 있었기에.

주변에서 의아함, 미심쩍음, 신기함, 호기심, 의외란 가지각색이 섞인 눈빛이 방금 이 ‘장소’에 들어온 둘에게 꽂히었다. 그 시선들은 곧 다시 외면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었으나 미선은 어쩐지 들어오지 말아야 할 곳에 들어온 불청객의 기분을 느꼈다. 그녀는 애타는 감정으로 성진의 등만 바라보며 걸었고, 그것과는 별개로 성진은 손을 들어올리며 보이는 사람들마다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어이어이, 여기 올 때마다 보이는구만, 재식 너는.”

“뭐야, 성진이냐?”

“여, 김성진! 기껏 오랜만에 와서 재식한테만 아는척 하기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한쪽은 가벼운 와이셔츠를 걸치긴 했다) 일어서서 와인을 마시면서 얘기를 하던 그들은 성진을 발견하자 반가운 손짓을 한다. 미선은 그들과 시선이 마주치자 휑하게 벗겨져있는 그들의 아랫도리를 되도록 보지 않으려 하며, 벌개진 얼굴로 고개만 까딱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미선의 모습에 별 관심을 두지 않은 채 킬킬거리면서 성진과 가벼운 농담을 몇 주고받았다.

성진은 무대쪽으로 가서 손을 흔들었다. 올라서서 춤을 추던 열 명에 가까운 여자들 중 절반이 성진을 알아보고 환호를 올렸다. ‘성진 오빠’라느니 ‘성진아’ 등등의 지칭으로 반갑게 화답하는 그녀들을 보며 미선은 또한번 넋이 나가버렸다. 뭐야, 저렇게 이쁘고 관능적인 여자들이 다 성진 선배와 아는 사이란 말야? 몇 웨이터가 옆을 지나갔고 이미 그들도 성진과 안면이 있는 듯 자연스럽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여자 웨이터가 꽤 많았고, 그들은 영업용으로 보이는 정장을 통일해서 입고 있었지만 워낙 홀의 손님(?)들이 다 벗고 있는지라 그들의 깔끔한 차림은 상당한 위화감을 안겨주었다.

도대체 여긴 뭐하는 곳이지? 미선이 그런 의문감을 들 때쯤 성진은 무대 옆쪽에 마련된 거대한 디지털 음악 기기를 가동시키고 있는 DJ에게 다가갔다.

“야! 김성진! 너 이자식… 요즘 왜이리 얼굴 보기 힘들어!”

두건으로 머리를 감싼 채 시디를 손가락에 끼워 빙글빙글 돌리던 그는 성진을 보자마자 대번에 반가운 탄성을 지른다.

“좀 바쁜일이 많아서… 준영은 요즘 안 오냐?”

“안 오기는. 네가 잘 안오는 거겠지. 걔 벌써 뉴페이스 하나 낚아채서 룸에 들어갔다.”

“범석 이 멍청한 녀석아. 성진이 너 같은 줄 아냐? 여기 죽돌하면서 허송세월 보내는 누구랑은 비교하지 말라고.”

까무잡잡한 피부에 검은색 삼각팬티 하나만 달랑 입고, 선글라스를 낀 건장한 청년이 어디선가 등장했다. 성진은 씩 웃으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종훈이 형!”

그렇게 그들이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처럼 약간은 짓궂은 인사를 하는 동안, 미선은 성진의 뒤에서 그의 재킷자락을 붙잡기라도 하듯 서있었다. 그녀는 홀의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해 안절부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알고 있는 성진 선배 맞나? 물론 그가 어느 정도 놀러 다니는 선배인줄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건 기껏해야 학교 또래나 선배들간의 접점에 그칠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다른 친구들이 엠티를 가건 말건 만나고 놀 사람의 수는 그에게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쪽은 누구야?”

종훈이 형이라 불린 까무잡잡한 피부의 사내는 담배를 하나 입에 물면서 미선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조금은 무례할법한 동작이었으나 미선은 워낙 기가 눌려서 째려볼 생각도 못하고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성진은 피식 웃고는 같은 과의 후배라고 간단히 소개했다.

“아, 너 학교 다니고 있다고 했지? 이런 젠장할. 요즘은 이 바닥에서도 다들 기본적으로 대학교 하나는 꿰차고 있다니깐. 가방끈 짧아서 주눅들어 살 수가 있나.”

“그러니까 살살 장사하면서 놀기만 하지 말고 자기개발 좀 해봐라, 이 생각 없는 놈아.”

시디를 바꿔끼우며 투덜거리는 범석에게 종훈은 뒤통수라도 한대 날릴 듯한 표정으로 혀를 찼고, 성진은 재킷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로 킬킬 웃기만 했다. 문득 그는 홀 내부를 둘러보다 또 아는 사람을 발견하곤 잠시 가보겠다는 손짓을 하며 걸어갔다. 미선은 그 둘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한 채 앞을 지나쳐서 성진을 따라갔다.

홀 한쪽의 테이블에는 각종 술과 와인, 안주들이 쌓여있었고 그곳에는 한 여자가 앉아있었다. 검은 단발머리를 한쪽 눈을 살짝 가리다시피 빗어낸 볼륨매직 스타일이었고 이쁘장한 외모와는 달리 꽤나 터프한 모습이었다. 짙은 눈화장에 짧은 티셔츠, 핫팬츠라고 부르기도 부족할정도로 짧은 청바지를 입고 있는 그녀는 풍만한 허벅지를 자랑이라도 하듯 긴 다리를 꼬아앉고 있었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던 그녀는 성진이 다가오자 간단히 왔냐는 눈짓만 보내고는 다시 액정을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눌러대었다. 성진은 그녀 옆에 선 채로 주변을 잠시 둘러보고는 의문섞인 음성을 내었다.

“하영인 어디갔어?”

“화장실 갔어.”

여전히 스마트폰을 바라보며 건성으로 대답하는 그녀. 성진은 고개를 갸웃하고 그녀 옆자리를 바라보았다.

“들어올 때부터 안 보이던데.”

“화장실에서 누구랑 또 하고 있겠지 뭐.”

별거 아닌 투로 대답하는 그녀의 말에 미선은 잠시 ‘화장실에서 뭘 한다는 거지?’란 순수한 의문이 들었고, 본의미를 깨달았을 땐 멍청한 표정이 되어버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홀 내부의 온도에 더워진 성진은 목도리를 풀어서 재킷 주머니에 넣고는 미선을 조금 앞서 세웠다.

“어쨌거나 간단히 소개하지. 같은 디지털 미디어 학과 후배인 채미선이라고 해. 잠시지만 잘 부탁한다고.”

“아… 안녕하세요.”

꼬아 앉은 그녀의 탐스러운 허벅지에 정신이 팔려있던 미선은 그제서야 기어가는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바로 옆에 있는 성진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았으나 그녀는 그제서야 스마트폰에서 시선을 떼곤 미선을 바라보았다. 언제까지고 무표정일 것 같은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그녀는 킥하고 웃고는 자세를 바꾸지 않은 채 탁자 위로 손을 뻗어 와인을 집어들며 자신을 소개했다.

“심소희. 아샨대 패션디자인과를 전공중이야. 근데 너 나이가 어떻게 되지?”

“…….”

자신을 소희라 소개한 여자는 잔뜩 기죽어서 대답도 못하는 미선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곤 와인을 한모금 슬쩍 들이키며 성진에게 말했다.

“얘 미성년자는 아니지? 좀 어려보이네.”

“그치? 문지기 녀석도 얘 민증 확인하고도 계속 미심쩍은 시선을 보내더라니깐.”

소희는 소리내어 웃진 않았지만 잠시 고개를 숙이곤 어깨를 들썩였고, 곧 와인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이어서 그 옆에 있던 담배갑을 집어들어 한 개비 빼문 그녀는 불을 붙이곤 지긋한 눈으로 그녀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흐음… 아무리 봐도 대학생으론 안 보이는데…. 뭐 네 후배라면 갓 입학한 신입이겠고 그럴 만도 하겠지. 근데 꽤 귀엽다. 너 이런 스타일이었냐?”

“무슨 스타일. 오버하지 마. 그냥 친한 후배라고.”

“그럼 뉴페이스?”

이곳에 온 이유를 묻는 것이었고, 성진은 볼을 긁적이며 적당한 단어를 찾다가 그녀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냥 견학 정도? 한번 와본거랄까. 뭐 어때, 꼭 섹스하러 와야한다는 법은 없잖아?”

그는 그렇게 말하며 와인잔 하나를 집어들었다. 소희도 별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와인을 들어 그의 잔에 채워주었다. 그리곤 자신도 잔을 들어 성진의 잔에 가볍게 부딪치면서 다시 미선을 바라보았다.

“그쪽… 여기가 뭐하는 곳인지는 성진한테 이미 들었는진 모르겠는데, 보다시피 그냥 노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돼. 음악 듣고 춤추고 술마시고… 단지 일반 유흥주점보다 수위가 좀 세지. 대신 회원제이고 외부인이 들어올려고 하면 가입하거나 너처럼 아는 사람을 통해서 몇 번 정돈 그냥 드나들 수도 있긴 해. 하지만 이곳도 그냥 운영되는 곳은 아니니까 웬만하면 가입하고 회비를 내면서 다니는 게 보기에도 좋아. 어쨌거나… 비공개 위주로 운영하는만큼 일단 이곳에 들어오면 오픈 마인드로 서로를 믿고 놀고 연애하고 즐기다 갈 수 있는 매력이 있어.”

미선은 그녀의 설명을 들으며 주변을 흘끗흘끗 관찰해보았다. 시간이 흐르며 처음의 긴장감은 많이 완화된 상태였으나 여전히 옷을 벗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나 소파와 테이블, 카펫 등에서 대놓고 정사를 벌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도무지 익숙해질 수 없는 광경이었다. 더군다나 대부분 20대로 보이는데 이렇게 노는 또래들도 다 있구나 하는, 신세계를 보는 기분.

“다리아프지 않아? 앉아.”

“아, 예….”

계속해서 반말을 건네는 그녀에게 존댓말로 대답하며 미선은 성진의 곁에 바싹 붙어앉았다. 마치 지금의 그녀로서는 의지할 게 선배밖에 없다는 것처럼. 소희는 그런 미선을 바라보며 다시금 미소를 짓고는 와인을 쥐지 않은 다른 쪽 손으로 입에 문 담배를 빼어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그리고는 성진 너머에 앉은 그녀에게 물었다.

“채미선… 이라고 했지? 술 해?”

미선은 여전히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고개를 내저었다. 보다못한 성진이 미선을 돌아보면서 자신의 잔을 슬쩍 들어보였다.

“뭐 어때, 와인 정도면. 이거 그리 싼 것도 아냐. 온 김에 마셔봐.”

“예, 예. 선배….”

성진의 말이면 뭐든 다 해보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미선. 성진은 손수 빈 잔에 와인을 따라서 미선에게 건네주었고, 소희는 두 손으로 받는 그녀를 보며 또한번 피식 웃었다. 그리곤 성진의 어깨를 슬그머니 안으면서 매혹적인 눈빛을 보낸다.

“여전히 능력 좋네, 이런 귀여운 애를 여기까지 데리고 오기도 하고.”

“경험이야, 경험. 이런 세계도 있다는 걸 알만한 나이이기도 하고.”

“쿡쿡, 하기야 경험이란 구실은 대부분의 불건전한 세계를 탐험하는 데 가장 만만한 면죄부가 되기도 하지. 동시에 자신을 깨끗이 방어하는 비겁한 수단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여전하군. 그 시크한 빈정거림은. 네 자신이 포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흐음, 뭔가 또 지적인 말로 꼬드겼을까?”

미선을 가리키는 말이었고, 소희는 테이블 위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고는 성진의 어깨를 안은 팔을 움직였다. 그녀의 손이 슬그머니 성진의 재킷 속 티셔츠 안쪽으로 파고들어간다. 성진은 와인잔을 기울이며 무슨 소리냐는 시선으로 그녀를 마주보았다. ‘네가 잘하는 것이기도 하잖아? 설마 저애가 단순한 호기심만으로 따라오진 않았을 테고’란 속삭임을 그의 귓가에 전달하는 소희.

성진은 문득 미선을 돌아보았고, 자꾸만 불안한 듯 이쪽을 흘끗거리며 와인을 홀짝거리는 그녀를 보게 되었다. 언니처럼 보이는 매력적인 여자가 성진을 쓰다듬는 걸 도저히 그냥 보고 있을 수만은 없는 듯한 모습. 성진은 한숨을 쉬고는 밀착하는 소희를 조금 떨어뜨려놓으려 했다. 하지만 소희는 밀어내려는 그의 손목을 붙잡아 가슴으로 이동시켰고, 성진은 본의 아니게 그녀의 풍만한 젖가슴을 만지게 되었다. 성진은 흠칫하며 몸을 뒤로 빼려 했다.

“어이, 이것 봐. 오늘은 나도 그냥 있다가 갈 거라니깐?”

하지만 소희는 더욱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성진을 바라보았다. 마치 그의 말 속엔 전혀 신빙성이 없다는 것처럼. 소희는 다리를 바꿔 꼬면서 그에게로 아예 돌아앉았고, 그렇게 밀착해오는 그녀는 되도록 보지 않으려 하며 성진은 시선을 딴 데로 두었다.

“왜 그래? 저 아이 때문이야? 그렇고 그런 관계도 아닌 그냥 친한 후배라며. 그럼 별로 신경쓰지 않아도 되잖아?”

“소희 네가 상관할 문제가 아냐.”

“흐응… 평소에는 자연스럽게 녹아들더니만 오늘따라 왜 이럴까?”

그리고는 일부러 슬쩍 미선쪽을 바라보면서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대는 소희.

“너도 벌써 나랑 다섯 번이나 했으면서 새삼스레….”

미선은 그 말에 멍청한 시선으로 성진과 소희를 번갈아 바라보았고, 성진은 와인에 취하기라도 한 것처럼 붉어진 얼굴로 허둥거렸다.

“그… 러니까, 임마! 오늘은 좀 그냥 넘어가자고!”

“봤지, 미선이. 네 선배가 부정은 안 하고 있는 걸.”

“너 정말…… 그, 그렇지! 너 형오인가 걔랑 사귀기 시작했다며? 네 남자친구는 네가 이러고 있는 거 알긴 하냐?”

핀치에 몰린 성진이 나름대로 반격해본답시고 건넨 말이었지만 소희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자기 손가락을 이리저리 돌리며 네일아트나 관찰하는 모습이었다. 자기 입술로 조금 적셔진 에메랄드빛 손톱을 살펴보는 그녀.

“걔말야? 옛날에 찼어.”

“뭐? 사귄지 얼마나 됐다고….”

“남자새끼가 좀 찌질해야지, 이건 뭐 섬세함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어서. 징징대는 거 듣기 짜증나서 폰으로 꺼지라고 한 후 얼굴도 안 보고 연락 끊었지 뭐.”

그리고는 다시 미소지으며 자신의 입술로 적셔진 그 손가락을 살며시 성진의 뺨에 갖다댔다. 머리칼 한쪽으로 드러난 짙은 눈화장의 매혹적인 시선이 그에게로 꽂힌다.

“연애는 귀찮아…. 가끔씩 심심할때나 해야지, 그렇잖으면 피곤해.”

그리고는 굳어있는 성진의 얼굴에 마치 선이라도 그리듯 목 부분으로 미끄러져 내려오는 소희의 손가락. 그녀는 어느 새 성진의 귓가에 입술을 밀착해가며 나지막이 속삭이고 있었다.

“그런데 성진, 너라면 난 괜찮아. 언제든지 사귀자고 하면 사귀어줄 수 있어.”

홀의 음악소리는 여전히 쿵쿵대며 울렸고, 환호성과 신음소리가 여기저기 섞여 들려오고 있었으나 미선은 그녀의 조그만 목소리를 정확히 들었다. 안절부절 못하며 와인잔만 만지작거리던 그녀는 돌연 한번에 그것을 들이켰다. 단숨에 잔을 비운 그녀는 빈 와인잔을 테이블 위에 탁하고 내려놓았고, 소희를 찌릿 쏘아보았다. 와인잔이 테이블에 거칠게 내려놓아지는 소리에 성진과 소희는 거의 동시에 미선을 돌아보았지만 그녀는 당황하지 않겠다는 투로 입을 꾹 다문 채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미선아…?”

성진이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고, 미선은 대답 대신 성진의 한쪽 팔을 자신에게로 홱 끌어안았다. 소희는 그 모습에 푸훗 하고 고개를 숙이며 웃었지만 곧 지지 않겠다는 듯 성진의 다른 쪽 팔을 껴안으며 더욱더 밀착해 앉았다. 얼떨결에 두 여자 사이에 낀 성진은 난데없이 흘러가는 상황에 잠시 멍해있다가 둘 다 그만하라고 소리를 지르려 했다. 그리고 그 순간 성진은 아랫도리에서 전해지는 묘한 쾌감에 내지르려던 목소리가 신음소리로 바뀌는 자신을 경험했다.

소희가 어느 새 성진의 바지지퍼를 끌러내린 후 자지를 꺼내어 손으로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길고 예쁜 손가락이 자지의 밑동부터 부드럽게 쓸어올리다가 귀두 부분을 세심하고 빠르게 쓰다듬었다. 성진이 그녀의 손가락에 마비된 것처럼 움찔거리는 틈을 타 그녀는 바지지퍼 아랫부분까지 완전히 파고들어가 불알을 손으로 주물렀다. 적극적이고, 자극적인 손놀림.

소희는 그렇게 적당히 성진의 자지를 주무르다가 보란 듯이 성진을 한 팔로 안고는 그의 입에 키스를 했다. 성진은 마지막 저항이라도 하듯 그녀를 밀어내려 했지만 그의 손은 자꾸만 그녀의 가슴을 더듬게 됐고, 소희는 아예 짧은 반팔 티셔츠를 아래로 끌어내려 젖가슴을 드러나게 했다. 결국 성진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자지가 불끈거리며 허공으로 치솟기 시작했다. 미선이 보는 앞에서 그렇게 자지를 드러낸 채 소희와 정신없이 키스를 하게 된 성진.

“쪽, 쪼옥…… 쭙…… 쪼옥…….”

“쭙…… 츄릅…… 하읍…… 쩌업…….”

꽤 떨어진 곳에서 들리던 야릇한 소리가 미선 바로 옆에서도 펼쳐졌고, 그래서 성진의 한쪽 팔을 끌어안던 그녀는 얼굴이 붉어졌다. 하지만 그녀가 얼굴을 붉힌 상당 부분은 처음 보는 언니가 좋아하는 선배의 몸을 탐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기인했고, 그에 따라 알 수 없는 분노 같은 게 내면속에서 슬금슬금 피어나고 있는 중이었다. 그 증거로 미선은 고개를 숙이거나 돌리지 않은 채 노려보듯 눈을 똑바로 뜨고 성진과 소희가 혀를 섞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읏….”

살짝 신음을 흘리며 입술을 뗀 소희. 그녀는 에메랄드빛 네일아트 손가락을 입에 물고는 매혹적인 시선으로 성진을 가만히 응시하였다. 넋이 나간 표정으로 마주보던 성진은 문득 소희가 자신을 유혹하고 있다는 걸 자각하곤 이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앉은 상태로 비척비척 옆으로 물러났다. 그 때 자신의 옆에 미선이 앉아있었다는 걸 깨달은 그는 구원의 손길이라도 갈망하듯 고개를 돌렸다.

성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더 두고 볼 수 없었던 그녀가 행동개시를 하려는 듯 소희를 쏘아보며 몸을 일으켰던 것이다. 성진은 비록 꽤 주눅들어 있겠지만 미선이 어느 정도 소희를 방어해주리라 기대했다. 내성적인 그녀라도 의외로 독설에 소질이 있어서 그녀에게 한방 먹여줄 말이라도 선사할지 몰라. 그리고 그런 그의 바람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미선은 소희에게 분명 충격적인 한방을 먹이긴 했다. 하지만 그건 말이나 어떠한 동작을 그녀에게 직접적으로 전달해 임팩트를 준 게 아닌, 성진에게 행함으로써 정신적인 공격을 가했던 것이다. 미선은 소파에 앉아있는 성진의 앞으로 와 무릎을 굽히고 앉아서 그의 내놓아진 자지를 입으로 물었다. 그리곤 성진이 기겁해서 뭘 어떻게 해보기도 전에 그녀는 어느 정도 부풀어있는 성진의 자지를 힘있게 빨아대기 시작했다. 마치 소희에게 절대로 지지 않겠다는 것처럼.

‘다섯 번이나 했다고? 치, 그게 어때서! 이제부터 선배를 다른 누구에게로부터 더럽히지만 않으면 돼.’

미선은 그렇게 생각하며 선배를 향한 마음을 입술에 모아 고개를 계속해서 위아래로 움직였다.

미선은 잠시 할말을 잊고 이쪽을 바라보는 소희의 시선을 느끼면서 일종의 뿌듯함 같은 게 일고 있음을 느꼈다. 예상 외의 반격에 얼이 빠졌군. 터프한 척 혼자 다하더니만 별 거 아니잖아. 미선은 기분이 좋아져서 더욱 집요하게 성진의 자지를 입으로 빨아댔다. 그녀는 혀를 빼어들어서 불알 밑쪽 부분까지 구석구석 핥았고, 곧 묽은 좆물이 나오기 시작하는 귀두 끝을 서슴없이 혀로 씻어내었다.

성진은 그녀를 강력히 제지할까 하다가 그냥 놔두기로 했다. 어쨌거나 덕분에 소희의 공격(?)은 끊겼고, 계속 미선의 스킨쉽을 거부하는 것도 그녀에게 어떤 오해와 상처를 줄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미선의 펠라치오 자체로도 썩 나쁘지 않은 기분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어디서 배웠는지 그녀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매우 적극적으로 그의 자지를 빨아주고 있었다. 무엇보다 선배를 갈망하는 그녀의 마음이 그대로 그 행위에도 적용되어, 성진은 그녀의 입가가 침으로 뒤범벅이 되듯 질펀하게 핥아가는 것까지도 사랑스러워 보였다.

“역시 능력이 좋다니깐. 겉으로는 평범한 것처럼 슬슬 빼도 말이지.”

미선의 포니테일 머리를 한 손으로 움켜쥔 채 그녀의 서비스를 느껴가던 성진은 들려오는 소리에 다시금 옆을 바라보았다. 소희는 어느 새 평온한 표정으로 여유있게 와인을 마시며 그들의 정사행위를 구경하고 있었다. 사실상 그녀에겐 미선의 돌발행동에 당혹했을지언정 그리 충격을 먹은 건 아니었고, 연애 경험 많은 그녀는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즐길지도 모조리 꿰뚫고 있었다.

소희는 내어진 젖가슴을 들여놓을 생각도 않고 다리를 꼬고 앉아 흥미로운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이 애, 정말로 널 좋아하는 것 같은데?”

한창 성진의 자지를 빨던 미선은 그 말에 정신이 돌아온 듯 움찔했다. 그녀의 얼굴이 대번에 빨개졌고, 성진은 원망스런 눈빛을 소희에게 보내었다. 이런 상대방 정곡을 찌르고 어떻게 나오나 반응을 살피는 악취미적인 녀석. 하지만 소희는 생긋생긋 웃으면서 자신이 마시던 와인잔을 성진의 입에 물려주었다. 얼떨결에 그녀가 마시던 와인을 받아마시게 된 성진. 그녀가 손을 떼자 성진은 와인잔이 쏟아지지 않도록 - 밑에 미선이 있었기에 더 조심해서 - 자신의 손으로 받쳤고, 그 사이에 소희는 일어서서 속옷과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짧은 자신의 청바지를 벗어제꼈다. 곧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소희의 보지.

“성진아.”

“어…? 어….”

성진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에 대답했고, 소희는 한 발을 성진 옆 소파 위에 턱하고 올려놔서 보지를 잘 보이도록 그의 눈앞에 들이댔다. 성진과 미선은 회피하려다 더 큰 반격을 당한 사람처럼 멍해진 시선으로 그녀의 아랫도리를 올려다보았다. 소희의 풍만하고 새하얀 허벅지 사이에 자리한 균열이 갈망하듯 옴질거리고 있었다. 잘 손질되어 예쁘게 자라난 보지털들이 성진의 마음을 자석처럼 끌어당기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뭐… 뭐가?”

“나 오랜만에 네 자지 먹고 싶어.”

그리곤 ‘요기로’라는 말을 첨언하기라도 하듯 자신의 보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소희. 성진은 그녀의 이 퍼포먼스에 뜨거운 것이 내면에서 울컥 솟아나듯 성욕이 치솟는 걸 느꼈다. 사실상 소희는 굉장한 미모이기도 했고 기교가 뛰어났고 남자를 어떻게 품에 안을지도 잘 알고 있는 여자였다. 그리고 그것은 성진으로 하여금 전에 그녀와 했던 강렬한 섹스의 기억을 되살려서 불을 지피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성진은 갑자기 이성을 잃은 사람처럼 소파에서 벌떡 하고 일어섰다.

“소희야….”

“이리 와. 성진.”

소희는 빈 테이블쪽으로 성진의 손목을 잡아 이끌었고 그가 자지를 삽입하기 좋게 테이블 위로 엉덩이를 걸쳐서 올라갔다. 성진은 크고 단단하게 쳐올려진 자지를 흔들거리며 한걸음한걸음 소희에게 다가갔다. 이미 그의 자지를 더 이상 물고 있을 수 없게 된 미선은 옆으로 물러나듯 주저앉아있었고, 그녀는 모멸감 비슷한 것을 느끼며 입술을 깨물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저런 완벽한 언니를 경쟁상대로 내어놓다니!

하지만 그 순간 미선은 더욱 반동작용이 인 것마냥 튀어오르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소희에게 다가가는 성진의 등 뒤를 향해, 홀 내부의 적잖은 사람들이 고개를 돌릴 정도로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선배!”

그녀의 이 간단하면서도 커다란 외침에 넋놓고 있던 성진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아보았다. 뿐만 아니라 테이블 위에 반쯤 누워있던 소희마저도 두번째로 찾아든 당혹감을 느끼며 미선 쪽을 바라보았다. 주변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었지만 미선은 상관하지 않고 몸을 움찔움찔 떨면서 자신의 미니원피스를 걷어보였다. 팬티스타킹 속으로 비쳐지는 그녀의 조그만 팬티. 성진이 그녀의 이 대담함에 할말을 잃고 바라보는 동안 미선은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하지만 또렷하게 한마디씩 내뱉었다.

“선배, 어떻게… 어떻게 그러실 수 있어요? 이런 걸 보여주려고 절 여기로 데려왔어요? 다른 여자랑 하는 걸 보여주려고? 제가… 제가 얼마나 용기를 내서 선배한테…….”

홀의 음악마저 그 선율이 느릿하게 흘러가는 것 같다. 미선은 체념어린 표정으로 눈을 내리깔며 가슴속의 말을 토해내는 것처럼 툭하고 내뱉었다.

“거기서 하고 싶다고 얘기했었는데… 선배가 제 입술에 키스한 후에… 그런데…….”

약속이나 한듯 정적. 때문에 미선의 말은 성진과 소희뿐 아니라 주변 모두에게 들릴 정도로 전파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렇게 조용해진 주변은 다시금 왁자지껄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그것이 미선쪽으로 타깃지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감탄, 그리고 탄성,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박수 소리, 휘파람 소리. 그리고 미선이 문득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는 그 순간엔 이미 홀의 수많은 사람들이 환호성을 올리고 있었다. 여자든 남자든 너나 할 것 없이, 심지어는 정사를 나누던 사람들까지도 잠시 행위를 중지하고 이쪽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뭐야, 또 커플 하나 탄생이야?”

“김성진 저 녀석이잖아.”

“상대는 못보던 애 같은데? 귀엽다, 야.”

미선은 주변에서 들려오는 반응에 어쩔줄을 몰라하면서도 묘한 환희 같은 것이 내면에서 차오르고 있음을 느끼곤 당황했다. 나 왜 이러지? 왜 이렇게 가슴이 두근거리고… 주변에서 다 쳐다보고 있는데… 부끄럽기보다는, 기분이 좋은 거지? 그래, 그렇다. 나는 방금… 성진 선배한테 고백한 거나 마찬가지구나. 다른 여자에게 안기지 말라고, 선배는 나의 것이라고.

그리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것은 고백의 축하설. 처음 보는 사람들이지만, 모두가 한마음이 된 것처럼 미선을 응원하는 그들. 테이블 여기저기서 샴페인이 터졌고 지나가던 종업원들도 자리에 멈춰선 채 박수를 보내었다. 무대 위에서 춤을 추던 남녀들도 엎어질 듯 몸을 날려 소파에 한 팔을 걸친 채 다른쪽 팔을 흔들어댔다. 마치 오늘의 주인공은 처음 온 미선이라는 것처럼.

테이블 위에 다리를 벌리고 앉아있던 소희는 급작스럽게 변화한 분위기와, 그런 주변을 만들어낸 장본인을 바라보며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째선지 그녀의 시크한 웃음소리 속에는 힘이 실려있지 않았다. 소희는 멍한 표정으로 뒤돌아보고 있는 성진의 허리를 발로 툭 건드렸다. 그녀의 하이힐 앞볼을 느낀 성진은 경직하듯 다시 소희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살짝 찡그린 미간으로, 하지만 여전히 미소를 간직한 채 그에게 말을 건네었다.

“뭐해? 가서 한번 해줘야지.”

“어? 어…….”

성진은 멍청한 표정으로 그녀와 미선을 번갈아 바라보았고 소희는 한번 더 하이힐로 성진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너답지 않게 왜 그래? 얼른 가보라고.”

“그… 런데, 소희야. 너는…….”

“그 목도리. 저 애가 선물해준 거지?”

소희는 그의 부름에 대답 대신 재킷 주머니에서 조금 삐져나온 베이지색 목도리자락을 가리켰고, 성진은 또한번 놀랐다.

“어떻게 그걸….”

“알았냐고? 싫다, 야. 너 내 눈썰미를 그렇게 무시하냐? 저 애랑 오늘 온 첫날 처음 보는 목도리를 두르고 있으면 짐작이 가지.”

성진은 ‘그런가’하는 표정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그는 보편적인 상황과 남녀간의 관계에 있어서의 상황을 어느 정도 구분할 줄 아는 남자였고, 소희의 이전 행동패턴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한가지 추리를 짐작해나가고 있었다. 그랬다는 건 처음부터 그를 은근히 주의깊게 관찰하고 있었다는 것, 성진이 아는 척하며 다가오자 복잡한 심정을 들키지 않으려고 스마트폰에 정신을 쏟는 척했던 점, 언제든지 사귀자면 사귀어줄 수 있다고 은근한 마음을 담아 건네었던 속삭임.

그리고 그것이 완성되자 성진은 다시 한번 멍청한 표정이 되어 소희를 바라보았다.

“야, 너 설마…….”

“시끄러워. 빨리 가보라니깐?”

소희는 어느 새 테이블 위에서 다리를 꼬고 똑바로 앉아 담배를 입에 물었고, 그런 그를 두번 보지 않으려는 듯 시선까지 옆으로 하고 있었다. 하지만 성진은 쉽사리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들뜨고 있는 주변의 분위기마냥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미선. 그녀는 기대감 가득한 표정으로 두 손을 가슴 위에 모아 자리에 서있었고, 결국 성진은 서서히 미선에게로 몸을 돌려 걸어오기 시작했다. 느릿하게. 차분한 걸음걸이로.

휘파람과 환호성은 성진이 발걸음을 옮겨 미선에게 다가갈수록 점차적으로 고조되고 있었다. DJ역을 맡던 범석은 문득 누군가가 자신의 어깨를 툭툭 치는 걸 느끼고는 돌아보았다. 하지만 어깨를 치는 장본인인 종훈은 여전히 시선을 성진과 미선 쪽에 향하고 있었고, 그를 보지도 않고 입을 열었다.

“멘트 한번 날려줘야지, 뭐하고 있냐?”

“에? 종훈이 형. 하지만 저 애는 우리 클럽 회원도 아닌데….”

범석은 형의 주의를 끌어서 시선을 자신에게로 돌리는 데 성공했다. 물론 노이즈적인 형태로.

“아 새끼. 분위기 파악 못하네. 어쨌거나 성진이가 데려온 애잖아. 뒤통수가 허전하냐? 한대 갈겨줘?”

종훈이 그 건장한 체격으로 한 팔을 들어서 위협적인 신호를 보내자 범석은 빠릿하게 한쪽에 놓인 마이크를 움켜쥐었다. 그의 매력적인 중저음의 목소리가 홀 내부를 가득 메운다.

- 에… 밤이란 나태함을 열정이란 불꽃으로 승화시켜 꿈 같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 오늘 우리 클럽에서 또 한쌍의 커플이 탄생한 것 같군요. 그 주인공은 김성진 군과… -

“채미선.”

성진의 소개를 기억하는 종훈은 재빨리 그에게 귀띔했고 범석은 익숙하게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자연스럽게 이어갔다.

- 채미선 양입니다.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수많은 면을 가진 유리가 빛을 반사하듯, 제각각의 인생 속에서도 나름대로의 가치있는 빛을 견지하길 바라며 오늘 그 중 두 빛의 결합을 축복하는 바입니다 -

성진은 미선의 앞까지 오자, 그녀의 두 손을 깍지껴 잡고는 부드러운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미선은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선배를 올려다보았다. 멀찍이서 바라보던 소희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그나마 상황의 주도권을 자신이 이끌어갔다는 일말의 만족감 정도를 느끼면서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홀 내부의 사람들은 범석의 멘트로 인해 이제 모두가 하나의 목적으로 점철된 듯 팔을 흔들거나 앞뒤로 내저으면서 소리 높여 외쳐가고 있었다.

“미선! 미선! 미선! 미선! 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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