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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레인.”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며 중얼거린 남자는 참으로 선영다운 아이디라 생각하면서 잠시동안 쿡쿡 웃었다. 그리곤 보편적인 남자로 보기엔 상당히 길어버린 자신의 머리칼을 옆으로 쓸어넘기곤 한 손을 턱에 갖다대곤 생각에 잠겨갔다. 그의 다른 쪽 손은 금방이라도 어딘가를 클릭할 것처럼 마우스 위를 붙잡고 있었지만 사실 한참동안 움직이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그의 모니터에는 ‘카잔 전쟁’의 net플레이 대기실에 접속한 화면이 보여지고 있었고, 온라인 친구 목록으로 보이는 한쪽 란에는 여러 개의 아이디가 띄워져있었다. 하지만 은선영이 사용하던 ‘실버레인’이란 아이디는 어제 저녁때쯤을 기점으로 갑자기 오프라인으로 표기되었다. 늘상 간다는 인사를 남기던 그녀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있다가 접속이 끊긴 채 오늘까지 다 지나가도록 감감무소식이었던 것이다. 남자는 그런 사실에 별 신경을 안 쓰려고 고개를 내젓기도 하고 대전자를 고르는 방을 뒤적이기도 했지만 얼마 안 가 다시금 선영이 접속해있나 하고 온라인 친구 목록을 확인하곤 했다.
남자는 결국 옆에 있는 생수통을 들어올려 꿀꺽꿀꺽 마시고는 답답해진 심경을 가눌 길이 없는 사람처럼 허공을 향해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그 옆에 있던 담뱃갑을 더듬었다. 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벌써 다 빨았나…. 시계를 확인한 그는 내키지 않는 목소리로 누군가의 이름을 불렀다. 잠시 후 들리는 발소리.
“뭐야, 오빠. 이 밤중에….”
가벼운 스웨터에 스키니 트레이닝 바지 차림의 20대 초반 여자가 그의 방문을 열었다. 거실의 불빛이 어두운 그의 방 안에 어색하게 비추어진다. 오빠라 불린 그 남자는 담뱃갑을 들어보였고, 여자는 짜증이 난 목소리로 응수했다.
“꼭 이 시간에 그런 걸 시켜야 해?”
“어차피 안 자고 있었잖아? 친구들이랑 문자나 돌리며 놀고 있던 주제에.”
“아 몰라, 잘려고 다 씻었는데 찝찝하게시리….”
남자는 쓴웃음을 픽하고 지었다.
“미안하다. 예나야. 오빠 이거 없으면 긴긴밤 내내 괴롭다. 부탁한다.”
여자는 대답도 하기 싫다는 듯 문을 다시 닫아버렸다. 하지만 그녀의 발걸음은 현관으로 향하고 있었고, 남자는 현관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를 확인하곤 컴컴한 허공을 향해 한숨을 폭하고 내쉬었다. 모니터에서 나오는 불빛만 은은하게 방안을 밝히는 형국.
“벌써 2년이 다되어가나….”
뭐가 2년인지 의미모를 중얼거림만 내던 그는 다시 ‘카잔 전쟁’ net플레이 화면으로 회전의자를 돌렸다. 그의 눈은 다시금 온라인 친구 목록에 있는 은선영의 아이디인 ‘실버레인’으로 향했다. 여전히 오프.
“뭐 별일 없겠지. 기대하고 재회한 것도 아니니… 내가 신경 쓸 문제는 아닌 것 같고. 하지만…….”
기억하기 싫은 건지 정말로 기억이 안 나는 건지. 그러나 남자는 둘 다의 가정에 별로 의거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엔 그렇게까지 안 좋은 감정으로 헤어졌던 것도 아니고, 한동안 메신저로도 연락을 자주 했던 기억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로 기억이 안 난다기엔 공백 기간이 불과 몇 년도 채 지나지 않았을 정도로 짧았다.
그래서 그는 선영이 어떤 사고로 기억을 잃은 게 아닌가 하는 자연스러운 추측을 해보았다. 물론 선영은 그것에 관해선 일체 모르는 것처럼 대답이 없었고(라기보단 설명하기 귀찮은 투였지만), 단지 접속해보니 자신도 모르는 예전의 누군가가 온라인 친구 추가를 해놓은 것에 부합되었을 뿐이라는 의미모를 메시지만 남겼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선영은 사실상 접속하면 게임하는데만 관심을 쏟는 것 같았다. 대화를 목적으로 한 메신저 따위는 일체 쓰지 않는다는 점이 그 근거를 뒷받침하고 있었다. 게다가 처음에는 굉장히 오랜만에 접속한 그녀에게 반가움에 말을 여러 번 걸어봤지만 완전히 딴 사람 취급하듯 답변도 안 왔었다. 그래서 그는 마치 초등학교 때나 만난 사람처럼 자신과 그녀의 예전 관계를 설명해야했고, 그녀는 간신히 어느 정도 납득하는 태도를 보였을 뿐이다.
‘두 가지 가정으로 좁혀지는군. 기억상실증이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이 대신 접속하고 있다거나. 설명을 좀 해주었음 좋겠는데 내가 누군지를 정말로 모르는 것 같고, 별로 말할 의무도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니….’
물론 선영의 매우 특수한 케이스로 그 두 가지 가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온라인으로만 몇 번 재회한 남자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전혀 추측할 수 없을 것이었다.
- × × ×선수, 빠른 경장기병대로 집요하게 △ △ △선수의 확장 진지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진지를 궤멸시키진 못하고 있지만 이렇게 꾸준히 타격을 가하면 △ △ △선수는 병력을 제대로 모으기도 힘들단 말이죠 -
“한그릇 더.”
선영은 TV에서 펼쳐지는 ‘카잔 전쟁’의 경기에 눈과 귀를 집중한 채 빈 밥그릇을 들어올렸다. 성진 쪽은 보지도 않고 건네는 그 모습은 마치 당연한 걸 요구하는 손님과 점원의 관계를 연상케 했지만 성진은 피식 한번 웃기만 할 뿐 순순히 그릇을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밥을 반쯤 채워서 다시 건네주었고, 그 결과물을 본 선영의 시선을 돌리도록 만드는 데 성공했다.
“왜 이렇게 조금 줘? 난 분명 한그릇 더라고 했는데 이건 반 공기잖아.”
“무슨 여자애가 그리 많이 먹으려 하냐? 살찐다고. 네 몸도 생각해야지. 가뜩이나 움직이지 않고 방안에만 있는 주제에.”
“먹어야 할 때와 안 먹어야 할 때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고. 그리고 나 요즘 운동도 다닐 정도로 거의 다 낫고 있잖아.”
“회복의 절정기땐 영양 보충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거냐?”
“잘 아네.”
선영은 그렇게 마무리지으며 다시 그에게 밥그릇을 건넸고, 성진은 또한번 가볍게 웃어넘겨버렸다. 그리고는 그릇을 받아들여 이번엔 꽉꽉 채워서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요즘 따라 갑자기 늘어난 그녀의 식량은 성진의 냉장고를 꽤나 빠르게 갉아먹고 있었지만 그는 그것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않기로 했다. 어쨌거나 기억하기 싫은 그날의 사건이 있었던 후로 성진은 그녀가 건강하게 있는 현재의 상황에 이유 모를 감사함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처절한 강간의 사건을 접했던 여자답지 않게 선영의 회복은 놀랍도록 빨랐다. 그녀는 불과 열흘도 지나지 않아 그런 사건 따윈 기억속에서 깨끗이 지워버린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성진은 그녀가 내색하지 않는 것뿐인가 하는 의문도 들었지만 예전과 별 다를 것 없는 멋대로(?)의 분위기에, 여전히 게임을 즐기고 - 그녀의 ‘카잔 전쟁’ 계정을 끊어주어 선영은 현재 집에서도 net플레이를 하고 있었다 - 잘 쏘다니고 식사도 잘하는 걸 보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오히려 변한 건 성진쪽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녀가 뭔 투정을 하든 성진은 웬만한 건 다 들어주었고, 짜증을 내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 도리어 선영 쪽이 미안해질 정도였다.
자신이 사랑하고 싶었던 여자가 그녀 내면에 ‘존재는 하고 있다’는 자각 때문일까, 똑같은 외모에서 그리움 비슷한 걸 느끼기 때문일까. 성진은 그녀가 다시 TV의 ‘카잔 전쟁’ 경기에 집중하는 옆모습을 바라보며 그냥 이대로의 시간이 지속되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앞일이야 어떻게 되든 간에 어쨌건.
“뭘 그리 빤히 보고 있어? 민망하게….”
“으응, 아냐. 니가 너무 이뻐서 그렇다.”
“닭살 돋는 대사는 그만 하고. 이거 맛있다. 좀 더 있어?”
“그게 끝이야. 후…. 미팅 끝나고 장 보고 와야겠군. 뭐 살 거 있으면 말해.”
선영은 ‘카잔 전쟁’에서 시선을 돌려 성진을 바라보았다. 수저를 입에 문채로 눈을 동그랗게 뜨곤 입을 여는 그녀.
“미팅? 그거 남녀끼리 만나고 뭔가 하고 그러는 거지?”
연애를 모르는 현재의 선영이 나름대로 지식은 주워듣고 있다는 건 인정해야겠다며 성진은 속으로 웃었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열어 스케줄을 확인해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 거 아니다. 조별 과제 때문에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어. 업무상의 미팅 같은 거랄까.”
“흐음, 지금 가는 거야? 올 때 젤리나 많이 사와.”
성진은 이미 그건 기본이 되어버린 듯 ‘그것뿐이야?’라고 반문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촉박하게 다가왔음을 알자 부산스럽게 재킷을 걸치고 거울을 보며 머리를 다듬었다. 간단한 스킨과 로션으로 외출 준비를 끝낸 그는, 가방 안에 몇 가지 문서를 확인하고 ‘나가려고’ 했다. 여기까지는 휘파람을 불며 기분을 내어도 별 문제 없을 평범한 일상이나 마찬가지.
그는 ‘예상 외로 꽤 촉박해진’이 ‘보다 심각하게 촉박해진’으로 건너가게 되는 하나의 결정적 장애물에 당도했음을 개탄해야 했다. 그리고 그 장애물은 인생의 대부분의 험난한 굴곡이 그렇듯 예상 못한 곳에서 튀어나왔다.
“뭐? 엠티?”
“응. 잊고 있었는데, 나 내일 오전에 다른 과 애들이랑 같이 세라임 호수에 가기로 했어. 다들 좋은 사람들 같더라. 난 몸만 와도 된다나 뭐라나. 사고가 있었던 걸 감안해주는 모양이야. 어쨌든 점심도시락 용으로 하나 먹을만한 것도 사와주면….”
성진은 그녀가 말하는 ‘좋은 사람들’이란 표현에 별 위안을 얻지 못했다. 그는 금방이라도 나갈 것 같았던 발걸음을 멈칫하고 선영을 내려다보았고, 그래서 그녀는 묻는 시선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곤 마주보았다. 성진은 일단 핸드폰 시간을 확인해보고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뭐야, 성진아. 왜 그래?”
“아 잠깐, 그……. 음, 뭐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 하아…….”
“너 바쁘지 않아? 얼른 나가봐. 설거지는 내가 할게.”
“엠티는 이미 지난주에 끝난 거 아니었나? 왜 이제 와서 또 간다는 얘기가 나오지?”
“지난 주에 다들 바빠서 이번주로 연기된 거야. 그리고 내가 추가지원 한거고.”
성진에게는 까맣게 관심을 끄고 있던 소식이었다. 어차피 그에게 있어서는 납품일 때문에 갈 수도 없는 거였으니. 물론 친구들이나 지인을 통해서 알 수도 있었을 거였지만 요새 신경이 온통 선영에게로 가 있었던지라 접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가 모르는 사이에 선영은 멋대로 지원하고 아직 철없는(?) 그녀는 이제서야 성진에게 밝히는 것이었다.
“야, 너 수업도 거의 못 들어갔잖아. 게다가 너도 알겠지만 넌 예전에 다른 사람들이 알던 선영이 아니라고. 그걸 자각하고 지원한 거냐?”
“왜 또 갑자기 목소리를 높여? 너 가끔씩 되게 이상하다? 수업을 거의 못들어갔으니까 엠티라도 가서 친목을 다져야지. 그리고 예전의 나와는 다르다고 언제까지 기피하고 있을 거야? 어차피 내가 이 세계를 계속 살아가야 한다면 익숙해질 계기가 필요해.”
“젠장할! 익숙해지지 않아도 돼! 내가…….”
성진은 순간적인 감정으로 ‘내가 지켜주면 되잖아!’라고 내뱉을 뻔하다가 간신히 그 말을 삼켰다. 선영의 식사조차도 제대로 감당해주기 어려운 그의 처지에서는 별 현실성이 없는 발언이었고, 쓸데없는 말싸움으로만 전이될 가능성이 높았다. 게다가 그녀 말마따나 언제까지고 친구들과의 관계를 기피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아직 학창시절은 많이 남았고 본래의 선영은 돌아올 수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니 그녀의 삶으로 전환해서 살아야 할 기로를 결정해야 했다.
그렇다곤 해도… 너무 급작스럽다고 생각한 성진은 핸드폰을 열어 동혁에게 연락을 취했다. 인원 담당은 그였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고 그래서 직접 전화해서 선영의 지원을 취소시킬 작정이었다.
하지만 통화음이 가는 동안 성진은 이것이 생각보다 원활하게 풀릴 문제가 아님을 직감하고 있었다. 선영의 성격은 예전 선영의 능동적인 본성에 그대로 기인하고 있었기에, 못가게 막는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행여나 지금 당장 미팅에 간 사이에 집을 나갔다가 내일 곧바로 가버릴 수도 있다. 그런 그의 복잡한 심경을 아는지 모르는지 선영은 생긋 웃으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치, 요즘 따라서 왜 그렇게 걱정해주는 거야?”
“요즘 따라서라니… 예전에 그 일도 있고 하니 조심하는 거지.”
“고맙긴 한데… 나도 이제 좀 어린애다운 기질에서 벗어나야겠다고 내 의지로 선택한 거야. 날씨가 더 추워지면 갈 기회가 없을 것이기도 하니까.”
성진은 엠티의 목적이 단순히 친목에 있지 않고 남녀끼리 일종의 썸씽이 생길 소지가 많다는 점을 굳이 자각시켜야 하나라는 고민을 잠깐 해보았다. 하지만 연애에 대해서 아직 잘 모르는 그녀가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선도 아니거니와 한창 활달해지는 그녀에게 경계시켜야 할 거리만 넘겨주는 것도 별로 내키지 않는 것이었다. 그 때 핸드폰 너머로 동혁의 목소리가 울려온다.
- 야, 김성진! 너 맞지? 왜 전화를 하고 대답이 없어? -
“어? 어, 잠깐만….”
성진은 미팅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일단 다녀온다는 손짓을 해보이곤 바깥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정신없이 두 다리를 놀리면서 핸드폰을 귀에 밀착하고 동혁에게 말했다. 자가용 한 대가 그의 앞을 휙하고 지나갔고, 거의 스칠 듯이 다가섰다는 것을 자각한 그는 정신을 차리기라도 하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일 엠티에 은선영 이름이 목록에 올라가있냐?”
- 어? 어. 지원하긴 했는데 왜? -
“그거… 취소시킬 수는 없겠지?”
- 걔 아직도 너네 집에서 동거중이냐? -
핸드폰 너머로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성진은 그런 그와 말장난할 여유 따윈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다. 지체된 미팅 시간을 메우기 위해 택시를 찾아보기로 마음먹은 성진은 바쁘게 고개를 이리저리 돌아보았다. 그런 그의 핸드폰에 동혁의 목소리가 다시금 건네어졌다.
- 뭔 애 돌보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다친 것뿐이잖아? 그것도 이젠 거의 나았으니 슬슬 어울려야지. 걔 그래봬도 학교에서 잘 어울리는지 엠티 참가한다니까 다들 좋아하는 눈치더라고 -
‘하긴, 정신까지 뒤바뀌었다는 걸 알리가 없지. 지금 말해봤자 납득하기도 쉽지 않을테고.’
성진은 속으로 한숨을 폭하고 내쉬고는, 그래도 믿을 만한 수완이 있는 녀석이란 생각을 하며 당부를 해두기로 했다. 게다가 녀석에겐 윤지가 있으니 선영에게 딱히 집적거리거나 어떠한 위해를 가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는 택시에 올라타고는 경각심을 담아서 또박또박 동혁에게 말을 건넸다.
“어쨌거나 네가 인원 관리자인 만큼 특별히 주의해서 선영을 좀 감시해줘. 술 절대 많이 먹이지 말고. 아직 다 나은 게 아니니까 누구 하나 손대지 못하게 해.”
잠시 핸드폰 너머에서 정적이 감돌았다. 입학할 때부터 쭉 같이 있었던 만큼 동혁은 성진의 타입을 상당 부분 파악하고 있었고, 그래서 ‘거 되게 심각하네’ 따위로 간단히 짚고 넘어가지는 않았다.
- 그렇게 심각한 거야? 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좀 이상하군. 알았어. 특별히 주의해서 보지 -
“부탁한다. 나중에 나이트나 한탕 가자고.”
- 짜식. 근데 요즘 뭐 바쁜 거 있냐? 통 놀러다니기 힘들다 -
성진은 피식 웃고는 핸드폰을 끊었다. 그리고는 미팅 때 제시할 문서를 택시 안에서 하나 둘 검토해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촉박하게 움직이는 시간 속에서 그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하나 존재했다. 그는 본래의 선영이 다시 나오지 않겠다는 ‘의지만’ 생각하고 있었고, 그래서 그녀가 다시 나왔을 시 현재의 선영에게도 매우 위험해질 거라는 경고를 까맣게 망각한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