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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음 음 음~♪”
희미한 모텔의 조명등. 그 아래에서 혜진은 침대에 걸터앉아 콧노래를 부르며 옷을 벗고 있었다. 곧 하얗고 얇은 속옷만 남긴 채 모조리 벗어버린 그녀는 섬세하게 꽃무늬가 들어가있는 자신의 브래지어를 가리키며 옆에 앉아있는 성진을 돌아보았다.
“오빠, 나 속옷 새로 샀다. 요런 스타일 어때?”
“…….”
윗옷은 벗었지만 바지는 여전히 입은 채로 침대에 걸터앉아있던 성진은 그녀를 한번 흘끗 보고는 미소도 짓지 않고 다시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혜진은 별 상관 없다는 듯 여전히 즐거운 표정으로 두 손을 뒤로 뻗어 침대 위를 짚고는 몸을 반쯤 눕혔다. 그녀의 눈이 모텔 천장을 향한다.
“자주 불러줘 오빠. 일주일간 연락도 안 하고, 뭐야. 자기 전에 메시지 확인하고 일어나자마자 또 핸드폰 열어보는 내맘, 오빤 모르지?”
“…….”
“그래도 오늘 만나서 좋다. 하……. 조금만 더 일찍 연락 줬으면 오빠랑 같이 백화점도 가려고 했는데. 봐둔 옷이 있긴 한데 영… 친구들 평은 못미더워서 말이지. 오빠가 봐주면 더 정확할 것 같았는데.”
“…….”
“있지. 나 라이벌 생겼어. 오빠 맘을 휘어잡을 라이벌이라고 해야 하냐, 후훗. 되게 귀여운 스타일이던데, 일단은 친구라곤 하지만 어제의 친구는 오늘의 적이 되는 것도 비일비재한 게 현실이잖아? 아참, 맞다. 오빠 이쁜 스타일이 좋아, 귀여운 스타일이 좋아?”
“…….”
성진은 그녀가 뭐라고 떠들든 관심없다는 시선으로 자신만의 생각에 잠긴 채 목석처럼 바닥만 내려보고 있었다. 만일 이곳에 타인의 시선이 존재했다면 저렇게 아름다운 여자를 옆에 두고 어떻게 그렇게 철저하게 무시할 수 있는지 분통을 터뜨리고도 남을 광경이다. 하지만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혜진은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은 듯 침대에 걸터앉은 두 다리를 흔들며 다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모텔 바닥지의 무늬를 감상하는 것마냥 고개를 아래로 향하고 있던 성진은 이윽고, 슬그머니 눈동자만 돌려 옆의 혜진을 바라보았다. 얇고 섹시한 속옷을 입은 채 천장을 바라보던 혜진은 그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성진의 심경은 다시금 복잡해지고 있었다. 이전날 아파하는 선영을 겨우 잠재운 그는 오늘 아침 일찍 병원에 데리고 갔고, 사후 피임약 등을 처방받은 후 종일 그녀를 간호해야 했다. 강의도 못들어간 그는 저녁이 넘어가자 정신적 피로가 몰려왔고, 도저히 집에 있을 수가 없어서 나온 후 혜진에게 연락한 것이었다.
될대로 되란 심정으로 그녀에게 문자를 날렸지만 이상하게 혜진은 아무렇게나 날린 문자에도 늘 성심성의껏 반응하고 있었다. 그녀가 내 마음을 아는 건가? 성진은 그녀에게 신경쓰며 문자를 보낸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그녀는 한번도 문자에 대해 불평이나 불만을 토로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은 당연하게도 성진 자신에게 더욱더 죄책감 같은 걸 심어주고 있었다. 이런 쓰레기 같은 녀석. 자기가 힘들 때만 여자한테 연락하는 최저의 남자 케이스를 밟아가는 자가 따로 없군. 물론 성진도 혜진을 만날수록 그녀가 그런 점에 정말로 신경을 안 쓰는 여자라는 것을 짐작하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나를 좋아한다고 해서 이런 식으로 계속 대해도 되나? 아니지…. 그녀는 그런 것에 전혀 신경 안 쓰고 나를 만나는 것 자체가 좋다고 하면 그걸로 된 걸까? 혜진… 강혜진?
“음…? 오빠, 왜 그래? 빤히 바라보고.”
“어… 어? 그랬나? 미안, 생각 좀 하느라.”
“우움. 무슨 생각했어? 또 복잡한 생각? 정말이지, 오빠는 너무 생각이 많아서 탈이라니까. 나랑 있을 땐 편하게 있어, 편하게! 이잉. 내 속옷은 보지도 않고, 핏.”
혜진은 살짝 토라진 척 고개를 커튼이 쳐진 창문쪽으로 돌렸고, 성진은 그만 힘없이 웃어버렸다. 하지만 그의 내면은 하나의 고민이 전환점이 되어 휘몰아치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다름아닌 눈앞의 혜진이었다. 새삼스레 그녀와 자신의 관계를 정립해보려던 그는, 자신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그녀를 ‘원하고’ 있는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늘상 내가 힘들때마다 그녀는 옆에 있었지. 섹스를 하든 안 하든 그녀와 만난 게 첫 미팅 이후로 약 열 번쯤 되었고, 대부분이 성진의 심경이 복잡할 때곤 했다. 사실 만나도 별 얘기는 나누지 않았다.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면서도 단 한마디도 안 한 채 나온 적도 있었다. 그러나 참 이상한 일이었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이미 많은 얘기를 나눈 것처럼 편안해지곤 했다. 그냥 혼자 생각하고 있어도 꼭 그녀와 정신적인 교감을 나눈 듯한 기분이 들곤 했던 것이다.
내면적으로 혜진에 대한 생각의 가지가 뻗어나가던 성진. 그는 갑자기 그녀에게 사귀자고 얘기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를 수 없음을 자각하고 깜짝 놀랐다. 그는 한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아직이야…. 김성진. 너 이렇게 헤프게 행동하면 안 돼. 선영이 잡을 수 없는 곳에 있다고 그렇게 곧바로 돌아설 수 있나? 아니, 그건 그렇다 쳐도… 네가 혜진과 사귀어서 해줄 수 있는 게 있나? 현재의 선영을 보호하는 데만도 벅차잖아? 물론 그녀가 내게 바라는 건 단지 정신적인 사랑뿐이라 해도, 훗날 돌아보았을 때 내가 그녀에게 피해만 주었던 것을 자각하면 더 괴로워질 수 있다.
성진은 문득 몇 걸음 건너편에 있는 테이블 위에 놓인 혜진의 핸드백을 바라보았다. 명품백도 아닌 어떻게 보면 꽤나 평범해보이는 가죽으로 된 가방이었다. 하지만 성진은 그녀의 집안 사정을 잘 모른다해도 꽤나 윤택한 생활을 하고 있을 거라 짐작했다. 단지 그녀가 외부적으로 잘 드러내지 않고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림을 위한 연기가 몸에 배어있을 뿐이다. 그녀와 이미 꽤 많은 만남을 가진 성진에게 있어서 그 정도는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고, 그래서 자신이 그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물질적인 사랑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었다.
‘무슨… 결혼을 전제로 사귀는 것도 아니고, 단지 연애를 할 뿐이라면 상관없지 않나?’
성진은 자신이 너무 앞서 생각하고 있음을 자각하곤 다시금 픽 웃으며 고개를 조금 들어올렸다. 그리곤 긴 한숨. 이러나저러나 아직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허공을 바라보며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에게 이제 그만 하라는 듯 부드럽게 목 너머로 감겨오는 혜진의 두 팔. 그녀가 침대 위로 올라가서 뒤에서 끌어안고 있었다.
“무리하지 마, 오빠. 천천히 생각해. 고민을 되풀이한다고 해서 득이 될 건 별로 없어.”
“네… 네 생각한 거 아냐!”
“어머, 내 생각하고 있었구나.”
혜진은 까르르 웃으며 그를 더욱 꼭 끌어안았다. 그녀의 커다란 가슴이 부드러운 브래지어의 실크 감촉과 함께 등에 꾹꾹 와닿고 있었다. 성진은 짐짓 시선을 딴 데로 두며 그녀의 나긋나긋한 감촉을 무시하려 엄청난 노력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혜진은 그대로 두지를 않았다. 그녀는 성진의 고개를 붙잡아 자신에게로 반쯤 돌리게 한 후 얼굴을 붉히곤 그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깊고 진한 키스였다. 혜진은 성진의 뒤에서 내려다보는 자세로 그의 입술과 혀를 빨았고, 성진은 고개를 돌려 올려다보는 자세로 그녀의 키스를 받아갔다. 그리곤 곧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릿속의 온갖 생각들이 날아가버리며 그녀의 혀놀림에 호응하듯 자신도 입술과 혀를 놀리고 있음을 자각하게 되었다. 한동안 적막 속에서 몽환적인 키스 타임이 지속되었다. 그러다가 이윽고 혜진은 다시 그의 목 너머로 손을 뻗어 그의 젖꼭지를 간지럽히듯 살살 자극했다.
이미 여러 번 혜진의 보지를 맛보았던 성진의 자지가 그녀의 접촉을 감지한 듯 바지 위로 치솟아오르고 있었다. 그 불끈거리는 자지의 모습을 본 혜진은 키스를 멈추지 않으며 능숙하게 뒤에서 손을 뻗어 그의 바지를 끌러내렸다. 팬티가 내려지자 자지는 무서운 속도로 그 위세를 과시하듯 허공을 향해 꼿꼿하게 섰다. 핏대를 세우며 꿈틀거리는 그 자지를 진정시키기라도 하듯 혜진은 부드럽게 귀두와 좆대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성진은 참지 못하고 그녀를 침대 위로 쓰러뜨리곤 하나가 되듯 포개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