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화 (2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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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칵-!

“…….”

TV 위를 닦으며 청소하던 성진은 그 위에 놓여진 리모콘을 걸레로 쳐서 떨어뜨리는 실수를 하고는 잠시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곤 몸을 숙여서 리모콘을 주워들었다. 하지만 그가 그것을 다시 TV위에 올려놓으려는 순간 미끄러지듯 리모콘은 그의 손아귀를 떠나 바닥에 다시 떨어졌다.

성진은 조금 고개를 갸웃했다. 떨어진 리모콘은 뒤의 건전지 커버가 완전히 분리되며 건전지가 튀어나와 데굴데굴 굴러갔다. 스프링이 튀어나와있는 그 내부를 바라보던 성진은 문득 알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 자신을 스멀스멀 덮쳐오는 것을 느꼈다. 어쩐지 오한이 일 듯한 그 느낌에 성진은 추위라도 타는 것처럼 자신의 팔을 몇 번 매만져보곤 무심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는 집안. 적막하기 그지없는 원룸 내부에서 성진은 잠깐 공포감 비슷한 것을 느끼고는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그는 다시 리모콘을 주워들고는 건전지가 굴러간 쪽으로 몇 걸음 내디뎌서 그것도 주워들었다. 그리고는 우두커니 서서 자신의 손에 들린 건전지를 내려보았다. 한동안 그것을 바라보던 성진의 입에서 무심코 그녀의 이름이 튀어나온다.

“은선영…?”

‘카잔 전쟁’을 주로 시청하던 선영의 모습이 리모콘에서 느껴져서였을까. 성진은 왜 갑자기 그녀의 이름이 튀어나왔는지 자신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곤 터벅터벅 침대로 걸어갔다. 침대 시트에 앉아 건전지를 다시 리모콘에 끼워 넣고 커버를 덮어씌우는 성진.

문득 그는 창 밖을 바라보았다. 성진이 있는 원룸은 지상 2층이었고, 바깥으로는 몇 개의 다른 건물 벽들과 함께 어둑어둑해져가는 풍경을 보게 되었다. 곧 저녁식사 시간이 될 텐데, 이 녀석은 어디서 뭘 하느라 오지 않는 거지? 역시 내가 좀 심하게 말을 했나? 그렇다곤 해도…. 성진은 청소를 마저 마무리지을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리모콘을 만지작거리며 한참동안 창문 밖을 응시하였다.

선영의 보지 속에 좆물을 한껏 쏟아 넣은 노란 머리 청년은 만족한 미소를 띠며 서서히 자지를 뽑아들었다. 정액을 가득 머금은 자지가 약간 뻑뻑하게 뽑혀져나왔고, 소량의 피도 묻어나왔다. 선영의 보지는 무리한 성교로 인해 붉게 달아올라 사타구니를 경련시키고 있었고, 주르륵 새어나오는 정액에도 피가 섞여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선영을 그쯤에서 놔둘 생각 따윈 없는 것 같았다.

옆에서 선영의 팔을 봉쇄시키던 남자가 일어서서 두번째는 자신이라는 걸 강력하게 피력하기라도 하듯 그녀의 다리 사이로 서둘러 다가갔다. 그 자신이 일을 진행해야 했기에 선영의 두 팔은 놓은 상태였지만, 사실상 그녀는 힘이 다 빠져서 굳이 팔을 붙잡고 있을 필요도 없어 보였다. 힘없이 벽에 기댄 채 바닥에 손을 늘어뜨리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선영. 땀에 젖은 그녀의 머리카락이 늘어뜨려져 있었지만 이따금씩 하반신을 경련할 뿐,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적어도 그 패거리들이 보기에는.

그리고 두번째 남자가 그녀의 보지 가까이로 자지를 가져가는 동작을 하는 순간이었다.

선영은 갑자기 눈을 떴다. 눈동자의 색깔과 모양 등등은 조금 전 선영과 다를 바 하나 없는 똑같은 모습이었고, 분위기도 변한 게 없어보였지만(성진이라면 미묘한 변화를 알아차렸을지도 모르지만) 사실상 그녀의 내부는 하나의 전환점을 완료한 상태였다. 바로 본래의 선영이 무의식의 심연 속에서 깨어나 그 신체의 의지를 쥐게 된 것. 고개를 숙인 채 죽은 듯 있던 그녀의 입술이 나지막이 열렸다.

“…뭐가 이렇게 불쾌하니.”

“……?”

다가가던 남자는 선영이 중얼거리는 모습에 잠시 멈칫했다. 아직 말할 힘이 남아있나? 그러나 그것은 그야말로 잠깐일 뿐이었고, 남자는 자신의 행동에 머뭇거릴 시간조차 아깝다는 듯 자지를 그녀의 보지구멍 가까이에다가 들이대었다. 아직 씹물이 줄줄 흘러나오는 저 미끈한 구멍 속에다가…….

그리고 그 다음의 장면은 한순간에 일어났다.

남자는 뇌가 굉장한 충격을 받았음을 느끼며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처음에 그는 다른 누군가가 끼어들어서 턱을 가격했다고 생각했다. 도무지 저 힘없이 늘어진 여자가 쳤다고는 생각할 수도 없는 위력이 전해졌기에. PC방의 다른 손님들 중 정의감에 불타는 누군가가 끼어들었나? 그렇다곤 해도 이리 빠르게 기척도 없이…….

물론 그것은 그 남자의 주관적인 생각일 뿐이었고, 한발자국 뒤로 물러선 노란 머리 청년과 뒤에서 순서(?)를 기다리던 다른 패거리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방금 저 여자가 다가간 남자의 턱을 걷어찬 것 맞지? 그들은 물론 뒤에서 관망하던 손님들까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묻는 듯한 시선이 되었다.

볼품없이 뒤로 넘어진 남자는 꺼내어진 자지를 도로 들여놓을 생각도 못한 채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앞쪽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눈은 이번엔 더 큰 놀라움으로 커졌다. 선영이 서서히 일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여전히 힘이 없는 듯 고개를 떨구고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채 비틀거리고 있었지만, 무참히 강간당한 여자란 점을 감안한다면 지금 이렇게 일어선다는 것 자체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선영의 입장에서는 이미 그런 비상식적인 행동보다 더 집중하고 있는 게 있었다. ‘일어섰다는 사실’에 놀라느라 그들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팔과 다리 등을 조금씩 꼼지락거리며 신체를 컨트롤해보고 있었다. 측정.

‘여전히 귀찮은 몸뚱아리야.’

선영은 그렇게 생각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시선을 조금 앞쪽 바닥으로 이동시켜, 여전히 일어날 생각도 못하는 ‘조금 전 그녀가 걷어찬 남자’를 바라보았다.

귀신의 눈빛을 본 것처럼 허둥거리는 게 나았을것이다. 하지만 그녀 자체가 바뀌었다는 걸 알리 없는 남자는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어쩐지 자신이 그녀에게 압도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에 울컥하고 말았다. 그래서 다시금 힘으로 제압하려고 벌떡 일어났다.

퍼억-!

1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 남자는 이번엔 그녀의 주먹에 명치를 가격당하고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신음소리조차 제대로 낼 수 없을만큼 깔끔한 타격. 남자는 거품을 물 듯 웅얼거리며 그대로 그녀 앞에 스르르 쓰러져버렸다. 주변에서 이번엔 정확히 봤다는 증거로 경악한 시선이 한데 모아졌고, 그런 시선을 받는 주인공답지 않게 선영은 짜증섞인 시선으로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지탱하고 서있는 것만으로도 부르르 떨리는 다리. 채 낫지도 않은 걸 보니 무의식의 세계에 재잠식(再蠶食)한지 많은 시간이 흐른 건 아니군.

“으아아아!”

“이 빌어먹을 년이!”

옆쪽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다른 패거리 둘이 그제서야 심각성을 자각하고는 온힘을 다해 돌진해들어갔다. 한 녀석은 맨주먹이었지만 다른 한 녀석의 손에는 잭나이프가 들려있었고, 멀리서 관망하던 손님들조차도 신음을 삼킬 정도로 아찔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선영은 침착하게 허리를 뒤로 눕히며 그들의 주먹과 찔러들어오는 잭나이프를 피했다.

공격이 허공을 가르자 두 남자는 잠깐 휘청하였고, 균형을 바로잡으려는 빈틈을 놓치지 않고 그녀는 몸을 돌리며 팔꿈치로 관자놀이를 가격했다. 잭나이프를 든 남자는 얼떨결에 관자놀이를 가격당한 남자가 쓰러지는 것에 떠밀려 넘어졌다. 짧은 순간이지만 선영은 어쩐지 여유있는 동작으로 한 발을 앞으로 내뻗어 남자의 손을 가격했고, 잭나이프는 그의 손아귀에서 떠나 공중으로 튕겨져올랐다. 선영 뒤쪽으로 휘릭 돌면서 날아간 나이프는 컴퓨터 키보드의 자판 사이에 착지하듯 꽂힌다. 투욱.

선영은 비틀비틀 다가가 넘어져있는 잭나이프 남자의 턱을 사정없이 걷어찼다. 그는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기절해버렸고, 세 남자를 쓰러뜨린 장본인답지 않게 선영은 태연하게 주섬주섬 자신의 팬티와 바지를 주워들어 입기 시작했다. 한순간에 혼자 남아버린 노란 머리 청년은 그 위화감 넘치는 어처구니없는 모습에 멍청한 표정으로 응시하고만 있을 뿐이었다.

뭐지? 도대체…. 저 년이 방금 내 동료 셋을 순식간에 쓰러뜨린 년 맞나? 다른 누구 아닌가? 그의 패거리들은 각자 기절하거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여전히 일어날 생각도 못하고 있었고, 그 가운데에서 옷을 다 입은 선영은 다리를 매만지면서 곤혹스러워하고 있었다. 처음 삐끗했던 다리가 여전히 그녀의 의지에 제대로 부합해주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노란 머리 청년은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다가가보았다. 선영은 다가오는 그를 보지도 않고 한 팔을 내뻗어 주먹으로 그의 코를 가격했다. 스피드도 스피드지만 코뼈가 부서지는 듯한 정확한 타격에 청년은 얼굴을 감싸쥐고 몇걸음 물러났고 얼른 본능적으로 방어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선영은 여전히 다리를 매만지는 데만 정신을 쏟고 있는 모습이었다. 일정량의 데미지와 굴욕감은 청년의 분노를 돋우는 자양분이었고, 그래서 노란 머리 청년은 자신을 완전히 무시하는 듯한 그녀의 모습에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그리곤 곧바로 괴성을 지르며 돌진해들어갔다.

“죽어라, 이년!”

순간, 선영의 한 팔이 옆으로 내뻗어지며 LCD모니터 거치대를 붙잡았다. 그녀는 그것을 수직으로 들어올렸고, CRT에 비해 월등히 가벼운 그것은 연결 플러그가 뽑혀져나가며 본체와 완전히 분리되었다. 선영은 주저 없이 그것을 앞으로 밀어내었다. 청년의 얼굴이 모니터에 가려지듯 한복판에 가격당하고는 다리를 공중으로 들어올리면서 호되게 뒤로 쓰러졌다. 선영은 그런 그의 안면을 향해 곧바로 모니터를 마구 찍어내렸다.

파칵-! 파칵-! 파칵-! 파칵-! 파칵-!

액정 자체는 단단한 게 아니어서 깨지는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위력까지 감소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진득하게 파손되는 LCD모니터가 전하는 기묘한 소리는 PC방 손님들은 물론이고 옆에 쓰러져있는 패거리들까지 몸을 움찔할 정도로 흉흉했다. 선영은 다치지 않은 팔힘이 어디까지 세게 내려칠 수 있는지를 시험해보는 것처럼 강도를 줄이지 않고 끊임없이 내리쳤다. 파칵-! 파칵-! 파칵-! 파칵-!

노란 머리 청년의 얼굴은 곧 알 수 없을 정도로 피투성이가 되었고, 액정 파편과 깨진 커버의 플라스틱 조각들이 사방으로 핏방울과 함께 튀었다. 청년은 발악하듯 몸을 뒤틀다가 곧 그것이 고통의 몸짓으로 돌변했고, 잠시 후에는 정신을 완전히 잃은 채 축 늘어졌다. 그러나 선영은 멈출 생각이 없는 듯 그의 얼굴을 향해 너덜너덜해진 모니터를 계속해서 내리찍었다.

주변에서 감히 끼어들 생각도 못한 채 청년이 죽는 게 아닌가 하고 소리없는 침을 삼켜갈 무렵, 이따금씩 경련만 일으키는 단계까지 온 청년을 향해 수없이 내리찍던 그녀의 손이 간신히 멈추었다. 모니터와 연결된 거치대가 부러져나간 것이다. 선영은 그제서야 허리를 바로 하곤 주변을 둘러보았다.

경악을 감추지 못한 손님들은 그녀의 얼굴을 보자 또한번 지옥의 사신을 보는 시선으로 돌변했다. 청년의 얼굴에서 튄 피가 선영의 옷 곳곳을 물들었고 얼굴에도 적잖은 피가 묻어있었다. 하지만 그런 선영의 표정은 놀라우리만큼 침착했던 것이다. 단지 귀찮은 작업을 하나 끝낸 듯한 살짝 피로한 무표정에 가까웠고, 사실 그건 모니터로 청년을 무차별 가격하는 순간에도 유지되고 있던 표정이기도 했다.

“…….”

입을 다문 채 주변을 한바퀴 둘러본 그녀는 죽은 듯 누워있는 청년 옆에다 거치대 조각을 내던져버렸다. 그리곤 다리를 끌듯이 비틀거리며 카운터로 걸어갔다. 아르바이트생은 용감하게도 도망가지 않고 그의 본연의 임무를 지키겠다는 것처럼 카운터에 있었고 - 라기보단 다리가 굳어서 도망갈 엄두도 못내고 있었다는 쪽이 맞겠지만 - 선영이 걸어오자 그는 비명을 삼킨 채 그녀의 행동을 주시하는 게 고작이었다. 선영은 그의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 채 흘끗 고개를 돌려 바라보곤 입을 열었다.

“얼마야?”

“네… 네?”

“얼마냐고? 계산해야 할 거 아냐?”

아르바이트생은 떨리는 손으로 카운터 모니터링 컴퓨터의 마우스를 붙잡으려다 자꾸 놓치고 엉뚱한 곳을 클릭했다. 그래서 계산을 하는 데 조금 시간이 지체되었다. 선영이 물끄러미 바라보는 가운데 그는 마치 대단한 일을 수행하는 것마냥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간신히 클릭 몇 번을 완수했다.

“사사사… 삼천 육백원 입니다.”

꽤나 더듬거리긴 했지만 금액을 알리는 데 성공한 아르바이트생. 선영은 잠시 그를 더 가만히 바라보고는 주머니에서 금액을 꺼내 지불하곤 돌아섰다. 그리고 조금 후 문에 자물쇠가 채워져있다는 것을 안 선영이 다시 돌아보았을 땐 아르바이트생은 기어코 울 듯한 표정이 되어 그녀를 바라볼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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