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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그랑. 딸랑, 딸랑….
두꺼운 여닫이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는 선영의 머리 위로, 손님이 왔다는 신호를 알리는 방울소리가 춤을 춘다. 느지막한 오후에 하품이라도 하듯 PC방 카운터에 앉아있던 남자 아르바이트생의 눈이 입구쪽으로 돌려지자마자 문득 생기가 돌았다.
“어서오세요.”
평소라면 들릴락말락하게 말하던 그의 목소리도 어째선지 조금 커진 것 같다. 한달 넘게 투병을 했던 선영은 꽤나 초췌해진 모습이었고, 다리는 끌듯이 절뚝거리고 있었지만 그녀의 기본적 외모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녀의 목 언저리까지 오는 살랑거리는 머릿결에 아르바이트생 역시 카운터에서 마음이 설레는 것을 느꼈다.
“녹차로 갖다 드릴까요?”
이미 선영이 몇 번 왔던 것을 보았던지 아르바이트생은 그렇게 물었고, 선영은 간단히 ‘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별 생각없이 머리칼을 귀 너머로 쓸어넘기며 빈 자리 중 하나에 앉았다. 하지만 아르바이트생은 오늘따라 그녀를 꽤나 의식하는 듯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보면서 종이컵에 녹차를 담갔다. 그리고는 그것을 갖다가 선영 옆자리에 놓았다.
“좋은 시간 되세요.”
어쩐지 은근한 기대감을 담아 건네어지는 말이었지만 선영은 고개도 끄덕이지 않고 모니터 속의 자신만의 관심사로 시선을 향했다. 아르바이트생은 카운터로 돌아가 본연의 일에 착수할 생각은 안 하고 선영이 뭘 하는지 궁금한 표정으로 뒤에서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선영은 보통의 20대 초반 아가씨들이 하는, 그러니까 미니 홈피 운영이나 방문, 혹은 채팅이나 캐주얼 게임 따윈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약간 게임에 대해 눈을 뜬 여자들이 하는 MMORPG조차도 선영에게는 제외였다. 그녀는 참으로 천 명 중에 한 명 볼까말까할 ‘여성이 PC방을 방문했을 때’의 행동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곧바로 남자들이 격투라도 하듯 피터지게(?) 싸우는 ‘카잔 전쟁’ 전략시뮬레이션을 로딩시킨 것이었다.
중세 시대의 대포와 검, 창날 등의 이미지가 디테일하게 로딩 화면에 표시되었다. 완전히 게임 속으로 들어가는 그 과정에서 선영은 문득 타인의 시선을 느끼고는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녀가 앉은 의자 뒤로 아르바이트생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선영의 묻는 듯한 시선이 보내지자 아르바이트생은 얼른 볼을 긁적이면서 더듬더듬 말했다.
“아, 아하하. 카잔 전쟁을 즐겨하시나봐요?”
“예. 그런데요?”
“아뇨. 그냥…. 여자분이 혼자서만 계속 여길 오시길래… 뭘 하는지 궁금해서 보았던 것뿐입니다. 그나저나 꽤 특이한 취향을 가지셨나봐요? 여자분이 카잔 전쟁을 하는 건 이례적으로 잘 없는 일이어서….”
“여자는 이런 걸 잘 안 하나요?”
“보통 남친분들이랑 같이 왔을 때 심심풀이로 하거나 어쩌다 한두번 해보는 경우 외에는 잘 없죠. 전략시뮬레이션이란 건 주어진 자원을 이용해서 공간을 활용해서 상대방을 쓰러뜨린다는 보다 남성적 취향에 맞추어진 게임이니까요.”
PC방 아르바이트를 하며 나름대로 쌓아온 게임 쪽 경향에 관한 지식을 피력하기라도 하듯 그는 자신있게 말했다. 하지만 선영은 ‘아, 그러세요.’라고 별 관심 없는 투로 다시 모니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카잔 전쟁의 로딩 화면은 끝이 났고, 멀티플레이용 인터넷에 접속하는 창으로 전환돼있었다.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입력하는 선영을 보며 아르바이트생은 우물쭈물 서있다가 결심한 듯 다시 말을 걸었다.
“저기… 원래 늘 혼자 다니고 그러시나요?”
“그런데요. 왜요?”
“아니 그저… 이렇게 이쁘신데 남친 분이라도 안 계신가 해서…….”
이쁘다는 표현을 들어서 기분나쁠 여자는 없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상황에 맞추어져야 하는 법이다. 선영은 뒤에서 끈질기에 돌아가지 않는 그 남자에게로 다시 고개를 휙 돌려 바라보았다.
‘왜 이렇게 귀찮게 하지? 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시선이 마주치자 그 아르바이트생은 이번엔 자기 목을 쓰다듬으며 멋쩍게 웃었다. 뭐 나름대로 착해보이는 스타일이긴 한데…. 도저히 자신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고 말도 빙빙 돌려서 하는 그의 분위기에서, 아무리 연애를 모르는 현재의 선영에게 있어서도 ‘이 녀석 자력으로 애인 만들기는 틀렸군’이라는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실제로 뭐 하나 제대로 꾸민 흔적도 없는 외모에서 연애 경험이라곤 제로에 가까울 것이라고 그녀는 판단했다.
얼른 카운터로 가서 손님을 위한 아르바이트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라고 직접적으로 쏘아줄까 하던 그녀는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녀는 시계를 보았고 그 다음으로 PC방 내부를 한바퀴 돌아보았다. 그리고선 의아한 시선을 건네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생긋 웃으며 말했다.
“지금 바쁜 시간은 아니죠?”
“예? 아 예, 바쁘지는 않습니다만….”
이런 식으로 말을 걸어오는 여자는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었는지, 그는 갖가지 생각을 머릿속에 교차시키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선영은 갑자기 킥 하고 실소하고 싶어지는 걸 간신히 참으며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그것은 일종의 제안 비슷한 것이기도 했다.
“저랑 게임 한판 하실래요?”
“카잔 전쟁이요?”
“네. 매일 넷상으로 불특정인이랑만 하는 것도 썩 긴장감이 없어서요.”
그리고는 어쩔 줄 모르는 그를 향해 슬쩍 한마디 다시 던져보았다.
“혹시… 이 게임 할줄 모르세요?”
“아, 아니요! 할 줄 압니다. 한판 해보죠 뭐, 그거. 으흠….”
“그냥 하면 역시 긴장감이 덜할 테니까, 내기 걸어보는 건 어때요?”
아르바이트생의 묻는 듯한 시선이 다시 건네어졌다. 선영은 청재킷 안주머니에서 신용카드를 들어보이며 자신만만한 미소를 띠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한쪽 눈을 살짝 가리면서 이쪽을 바라보는 각도가 묘한 매력을 생성해낸다.
“당신이 이기면 있다가 아르바이트 끝나고 저녁 데이트 한번 해드리죠. 물론 비용은 내가 대는 걸로. 영화를 보든 어디든 당신이 좋아하는 데로 가자구요.”
당연히 그 카드는 성진의 것이었고, 몰래 가지고 나와 이런 식으로 쓰여지는 걸 그가 나중에 안다면 길길이 날뛸 일이지만 선영은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모르는 아르바이트생의 입장에서는 이게 웬 횡재냐 하는 심경이 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치료 단계라 선영은 별볼일 없는 흰 티에 청재킷, 통이 넓은 바지를 입고 있었으나 기본적으로 뛰어난 미모를 지닌 그녀이기에 한 남자의 마음을 흔들게 하긴 충분했다.
그러다가 문득 아르바이트생은 위험 요소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제가 지면…?”
“앞으로 귀찮게 저한테 말 걸지 마시고, 본연의 일이나 열심히 하심 돼요.”
별 생각 없이 대답한 선영이지만 사실 그것은 개인적인 관점에서만 ‘특별할 거 있냐’는 식의 대답일 뿐이었다. 그리고 아르바이트생은 없는 자신감마냥 쉽게 상처받는 타입이기도 했다. 그것이 맞물려지며 선영의 제안은 말 그대로 별 의미 없이 사그라들어버렸다. 아르바이트생은 얼굴이 벌개진 채 조그맣게 중얼거리며 카운터로 돌아가버린 것이다.
“아니, 뭐 그렇게 제가 귀찮으셨다면… 그냥 됐구요.”
선영은 멍청한 얼굴로 그런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잠시 후 헛웃음을 삼키며 의자에 등을 깊숙이 대고 팔짱을 꼈다. 뭐 저런 시시한 남자가 다 있나? 차라리 성진이라면 그 특유의 날카로운 미소를 히죽 띠면서 한판 하자고 재미있게 다가왔을 텐데. 그러다가 그녀는 문득 어쩐지 예전에도 이 비슷한 경험이 있지 않았나 하는 이유모를 직감 같은 게 들었다. 그나저나 김성진…. 싸우고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그 녀석 생각이 나는 거지?
선영은 고개를 휙휙 저어버리고는 다시 ‘카잔 전쟁’의 넷플레이나 하기 위해 방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그러려고 마우스를 다시금 붙잡았을 때였다.
“어이, 아가씨. 그 제안 내가 받으면 안 될까?”
선영은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컴퓨터가 꺼져있는 빈 옆자리에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한 건장한 남자가 앉아서 이쪽으로 몸을 돌려 쳐다보고 있었다. 컴퓨터 책상 위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괸 그의 귀에는 여러 개의 피어싱이 되어 있었고, 짧은 머리칼 가운데를 뒤에서부터 앞머리까지 노란 색으로 염색한 모습이었다. 선영은 어쩐지 양아치를 연상케 하는 그의 외모에 눈살을 찌푸렸지만, 걸쭉한 웃음을 짓는 그의 뒤편엔 같은 패거리로 보이는 녀석들이 제각기 의자에 앉아 이쪽으로 몸을 돌려 흥미롭다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무슨 제안인지는 아시나요?”
“물론이지. 아까부터 쭉 보고 있었는데. 저런 시시껄렁한 아르바이트생보다 우리랑 노는 게 더 재밌지 않을까?”
그리고는 선영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컴퓨터를 켜는 노란 머리의 청년. 선영은 순간 도움을 요청할까 하다가 그 소심한 아르바이트생은 물론이고 주변에 도움을 줄 만한 손님도 거의 없다는 것을 자각하곤 차선책을 자력으로 마련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친 데다 힘도 없는 현재의 선영에게 있어선 선택의 루트란 게 그다지 많지 않은 게 사실. 그녀는 여흥거리가 보다 위험한 내기가 되었음을 깨닫곤 불안한 심정을 아슬아슬하게 감추는 게 고작이었다.
반면에 노란 머리 청년에겐 정말로 여흥거리가 된 듯 여유 있게 키보드와 마우스를 가슴 앞쪽에 끌어당겼다. 손가락을 뚜둑뚜둑 풀어보는 그의 목구멍속에서 재미있어 못견디겠다는 음성이 거하게 튀어나온다.
“자, 그럼 시작해볼까, 이쁜이.”
선영은 그 치근덕거림이 분명한 지칭에 소리없이 몸을 떨었다. 뒤에서는 이쪽을 관망하는 패거리들의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고, 그녀는 애써 그것들을 외면하기 위해 시선을 모니터쪽으로 고정시켜 집중했다.
하지만 그녀 나름대로 내면적으로는 하나의 실력을 시험해보기 위한 긴장감이 조성된 무대라 여기고 있었다. 어쨌거나 그녀는 ‘카잔 전쟁’ 방송을 여러 번 시청하며 연구했고, 나름대로 PC방에서 몰래 연습을 해왔기 때문이었다.(성진의 집에서는 그녀 계정이 결제되어있지 않아서 net을 통한 대결이 불가능하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기력을 발휘해서 반드시 이기고 말겠다고 마음먹으며 ‘카잔 전쟁’의 맵을 선택해가기 시작했다.
노란 머리 청년은 잠시 뒤통수를 한대 맞은 사람처럼 멍하니 모니터를 응시했다. 그의 눈은 놀라움으로 커져 있었고 입은 반쯤 벌어졌다. 그리고 뒤에서 구경하던 패거리들도 제각기 비슷한 표정을 지은 채 약 10초간 멍청하게 그의 모니터로 시선을 모으고 있었다. 물론 PC방의 LCD모니터 구조가 특이해서 집중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그 화면에서 펼쳐진 시각적 정보에 경악한 것이었다.
‘카잔 전쟁’ 게임에서 선영의 부대는 그야말로 완벽하게 노란 머리 청년의 부대를 궤멸시켜버렸다. 아무리 가상현실이라곤 하지만 그녀의 부대가 기습하고 찔러대며 공세를 펼쳐오는 모습은 도무지 한 여성의 플레이라곤 볼 수 없을 정도로 날카로웠다. 같은 남자들과의 경기에서도 잘 져본적이 없는 노란 머리 청년의 입장에서는 경기 직후 예사롭지 않게 놀리는 그녀의 유닛 컨트롤이나 예측할 수 없는 곳에서 기습작전을 펼쳐오는 전략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설마 했던 패배까지 종착해버린 것이다.
물론 선영을 오늘 처음 본 그들의 입장에서는 전생(?)이었던 본래의 선영이 해커의 경력을 갖고 있다는 걸 알 리가 만무했다. 연애를 제외한 대부분의 경험들은 그대로 현재의 선영에게도 적용되는 것이었고, 그래서 이미 그녀는 컴퓨터에 익숙한 사고회로를 갖고 있었다. 유닛들을 컨트롤하는 그녀의 손동작 또한 신속히 소스 입력을 해야 하는 해커의 경력에 크게 기인하였다. 더불어 기본적으로 천재적인 두뇌를 지닌 그녀의 입장에선 유닛의 사정거리와 속도 등등을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했기에 사실상 그녀는 남들이 수개월간 매달리고 연습해야 하는 걸 단기간에 따라잡아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의 신체를 컨트롤하는 것과 긴장감 등은 아직 그녀에겐 이른 것이었고, 그래서 한 게임이 끝나자마자 선영은 엄청난 피로감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온몸에 땀이 비오듯 쏟아지는 것 같았고 심장은 계속해서 쿵쾅거렸다. 그러나 그녀는 최대한 그것을 내색하지 않으려 하며 여유있게 땀에 젖은 머리칼을 옆으로 쓸어넘기는 동작을 해보였다. 그리곤 옆자리에 앉아있는 그 건장한 청년을 향해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어때요? 제가 이겼죠?”
“그… 렇군. 완벽한 패배야.”
그렇게 대답하는 청년이었지만 사실 그도 자신이 뭐라고 중얼거리는지는 모르는 모양이었다. 자존심에 상당한 타격을 받은 듯했고, 선영은 그래서 삼세판이라든가 다른 패거리의 재도전 등이 이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휩싸였다. 물론 자신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현재로선 체력과 정신력의 문제가 뒤따랐기에.
다행히 그들은 완벽하게 제압한 그녀의 실력에서 재도전 등의 제안은 꺼낼 엄두고 못내고 있는 듯했다. 다들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 패거리였는지라 ‘카잔 전쟁’으로는 선영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측정 또한 꽤나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선영에게 있어서 행운이자 또다른 불운으로 치달아가도록 했다. 정신적 공황에서 빠져나온 그들은 잠시 후 노란 머리 청년을 제외하고 저희들끼리 쑥덕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중에는 킬킬 웃는 녀석도 있었고, 선영 옆에 앉아있는 노란 머리 청년은 게임 따윈 아무래도 좋다는 듯 거칠게 키보드와 마우스를 한쪽으로 치워버렸다. 그리고는 다시 컴퓨터 책상 위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괴어 선영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그 징그러운 미소가 더욱 짙어진 것 같다는 생각은 한 선영은 net의 대전자를 고르는 척 모니터를 바라보며 지나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 그러고 있어요? 이제 제가 말한 대로 신경쓰지 말아 주세요.”
킬킬거리는 패거리들의 웃음소리가 고조되었다. 그리고 노란 머리 청년은 그녀의 말이 꽤나 재미있는지 히죽히죽 웃으면서 넌지시 말했다.
“귀엽게도 말하는군. 이쁜이. 계속 플레이해봐.”
“제가 플레이하든 말든 그쪽이 신경쓸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요?”
“너야말로 우릴 계속 의식하는 것 같은데 그럼 게임은 됐고, 같이 놀아보자구.”
그리고는 큼직한 손을 들어 선영의 마우스 쥔 손을 덥석 덮었다. 선영은 깜짝 놀랐지만 가까스로 내색하지 않은 채 고개를 홱 돌려 그를 쏘아보았다. 하지만 자신을 흘겨보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즐기기라도 하듯 청년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고, 그래서 선영은 경각심을 담아 한마디한마디 또박또박 내뱉었다.
“내기의 룰을 지키지 않을 셈이야? 명색이 남자면 남자답게 패배를 인정하고 깨끗이 뒤돌아서는 게 맞다고 보는데, 당신?”
또다시 비꼬는 웃음소리가 몇 걸음 옆에서 왁자지껄 들려왔다. 노란 머리 청년도 그녀의 이 도도하다싶은 말에 잠시 고개를 숙이곤 킬킬거리며 웃더니 이윽고 조금 삐딱하게 얼굴을 들고는 입을 열었다. 그의 목구멍에서 가르치는 듯한 굵직한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어이, 아가씨.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군. 그러한 내기 따윈 이미 시작하기 전부터 승리자가 정해져있었다구. 힘이 있는 우리쪽으로 말이야. 이 따위 게임은 그저 하나의 여흥거리 전초전에 지나지 않았단 말이지. 하지만 너는 그 전초전을 망쳤고, 그래서 남은 거라도 좀 제대로 챙겨먹어야겠어.”
그리고는 이번엔 그녀의 팔을 꽉 잡고는 옆의 패거리들한테 슬쩍 눈짓을 했다. 웃음을 가득 머금은 그의 패거리들이 하나 둘 의자에서 일어서기 시작한다. 선영은 입을 꽉 다물곤 잡히지 않은 다른 쪽 팔을 들어 힘껏 그의 뺨을 가격했다. 짜악-!
고개를 조금 옆으로 돌린 채 잠시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 청년. 하지만 그도 이 정도는 이미 예상 범주 안에 들었다는 듯 다시금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로 고개를 바로 했고, 아직 채 낫지 않은 팔을 무리하게 휘두른 선영은 저릿한 팔을 쥐지도 못한 채 부들부들 떨 뿐이었다. 이어서 곧바로 청년은 그녀의 다른 쪽 팔도 붙잡고는 강제로 의자에서 일으켜세웠다. 쓰러질 듯 그에게 끌려 일어나는 선영.
“이 새끼야, 뭘 꼬나보고 있어? 너희들 할 거나 해!”
“너네 신고하면 경찰 오기 전에 반죽음먼저 당할줄 알아.”
“어이어이, 시시하게 반죽음이 뭐야. 우린 그냥 막나가는 놈들이라고. 피를 보게 될지도 몰라.”
시시껄렁한 패거리가 아님을 굳이 인지시켜줘야 분위기를 좀 자각하지 않겠냐는 듯 번득이는 잭나이프를 꺼내 드는 녀석도 있었다. 노란 머리 청년의 패거리는 그까지 합해서 총 넷이었고, 모두 하나같이 살기등등한지라 PC방 아르바이트생은 물론이고 주변 손님들까지 몸이 얼어붙고 말았다. 그의 패거리들이 PC방 내부를 휘어잡는 동안 노란 머리 청년은 선영을 끌고간 후 벽 한쪽에다 강제로 주저앉게 했다. 격하게 끌려가느라 삐끗한 다리를 주물러볼 틈도 없이, 청년은 선영의 머리카락을 휘어잡고는 고개를 들게 했다.
“흡……!”
다리 통증과 놀라움으로 신음조차 제대로 낼 수 없는 선영. 그렇게 강제로 들려진 그녀의 얼굴 앞으로 거대한 무언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선영은 그 뭉툭하고 기다란 것이 무엇인지 짐작하고 있었다. 본래의 선영을 이끌어내기 위해 성진과 관계를 가졌을 때 보고 느꼈던 그것. 하지만 이번에 그것을 본 순간 선영의 눈빛은 공포감으로 물들었다. 건장한 체격의 노란 머리 청년은 그의 몸집에 자지 크기도 비례한다는 걸 증명시켜주기라도 하듯 거대했고, 그녀를 내려다보는 청년의 얼굴에 비릿한 웃음이 떠올랐다.
“그래, 바로 그거야. 공포에 물든 이쁜이. 이제 그 얼굴로 내 자지를 흥분시켜 주셔야겠어.”
선영의 겁에 질린 얼굴을 볼수록 더 흥분하는 타입인지, 청년은 그녀의 얼굴 앞에다 자지를 이리저리 흔들어보였다. 선영은 그만 눈을 꽉 감고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위로 머리칼을 휘어잡고 있는 청년의 손힘은 못박힌 듯 거세었다.
그 때 다른 남자의 손힘이 그녀의 얼굴에 가해졌다. 그의 패거리 중 하나가 선영의 안면을 잡고 다른 쪽 손으로 턱을 붙잡은 후 억지로 입을 열게 만들었다. 그녀의 시야는 그 남자의 손아귀에 막혀 암흑으로 가려졌고, 그녀의 의지는 노란 머리 청년과 다른 패거리 남자의 손에 의해 강제적으로 가동하는 기계와 다를 바 없게 되었다.
“아…… 하…… 하윽… 끗…….”
쑤우우욱!
그런 그녀의 입 안으로 인정사정없이 쑤셔넣어진 노란 머리 청년의 자지. 거대하게 부푼 자지가 그녀의 입을 지나 혀를 돌파하고 목구멍속까지 밀어넣어졌다. 벽에 밀어붙여진 선영의 양 팔이 움찔하고 떨렸고, 그녀의 두 다리 또한 벌려서 있는 노란 머리 청년의 가랑이 사이로 빠져나와 꿈틀거렸다. 그대로 자지 밑둥까지 쑤셔넣은 청년은 히죽 웃으면서 그 상태로 허리를 둥글게 돌렸다. 자지가 그녀의 목구멍 속을 이리저리 헤집으며 기묘한 쾌감을 그에게 전달한다.
“흐음… 아……. 좋아, 큭큭큭…….”
“아흡……. 으……. 끄읍……. 끕…….”
자지를 삼키느라 한껏 벌려진 그녀의 입 가장자리로 침이 질질 흘렀고, 무리한 벌림으로 인해 턱이 덜덜 떨려왔지만 청년은 상관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동안 처박고 있던 자지를 서서리 빼어든 청년은, 그녀가 쉴 틈도 안주고 그대로 다시 사정없이 처박았다. 쭈우우욱!
“아흑……!”
그의 자지 끝 귀두가 목구멍속에 처박히면서 침과 타액이 엉켜 기침이 나올법도 했지만, 선영에겐 그런 걸 할 여유마저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목소리조차 제대로 낼 수 없었다. 이어서 몇 번 더 좆을 선영의 입 속에 처박는 청년. 그녀의 입술이 자지를 마찰할 때마다 더욱 큰 쾌감을 느껴가는 듯 그의 허리는 점차적으로 빠르고 거세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선영은 정신이 혼미해지는 걸 느꼈다. 옆에서 안면을 붙잡고 있는 남자의 손길 또한 전혀 흐트러지지 않은 채 바위처럼 짓누르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선영의 목에 핏줄이 돋고 벌겋게 달아올랐지만 그들이 선영에게 가하는 힘은 조금도 완화되지 않았다.
“계… 계산 해주세요.”
“아, 네.”
유린의 광경이 펼쳐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약삭빠른 어느 커플은 그 자리로부터 얼른 도망치듯 뒤로 돌아가 카운터에 돈을 건네었다. 아르바이트생은 이런 때야말로 그의 업무 본연의 자세를 취하는 동작으로 재빠르게 계산을 끝마쳤고, 다른 손님들도 하나 둘 불똥을 피하는 것처럼 조용히 자리를 떴다. 남은 손님들은 기껏해야 서넛에 지나지 않았고, 그들은 보다 위험한 현장 신고보다 그 강간의 실체를 흥미롭게 구경하는 관람객 역할 쪽을 선택했다. 물론 여전히 그의 패거리들의 잭나이프 등을 경계하는 눈빛이었지만 그보다도 예쁜 여자가 무참히 강간당하는 모습에 초점이 맞추어진 듯하다. 다시 보기 힘든 진귀한 광경을 구경하는 시선.
조금 후 나이프를 든 남자가 주변을 잠시 둘러보더니 아르바이트생을 향해 그것으로 문 쪽을 휙휙 가리키면서 명령한다.
“야! 문 잠궈! 오늘 영업 잠시 쉬는 것처럼 보이게 해!”
“예, 예….”
아르바이트생은 허둥지둥 벽을 더듬어서 열쇠를 찾았고, 남자들 비위가 상하지 않게 얼른 자물쇠로 출입구를 틀어막았다. 그리고는 정말로 영업을 쉬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입구쪽 불까지 모조리 꺼버렸다. 은은한 중앙 불빛만 남자 그 강간의 현장은 더욱 분위기가 음침하게 달아올랐고, 노란 머리 청년의 패거리들은 이제 아예 짙은 미소를 띠며 유린하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꼿꼿하고 딱딱하게 달아올라가는 청년의 자지는 그녀의 입에서 잠시 빠져나와 얼굴 이곳저곳에 번들거리는 액체로 물들여갔다. 선영은 그 잠깐의 틈을 통해 기침을 해보려 했으나 그 단계는 이미 넘어가버렸는지 끅끅거리는 신음만 새어나올 뿐이었다.
뻣뻣하고 큼직하게 솟아오른 청년의 자지가 다시 선영의 입 속으로 틀어박혀진다. 퍼억!
“꺽……. 끅…….”
그의 들이미는 기세에 의해 그녀의 뒷머리가 벽에 부딪혔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해 빨갛게 달아오른 선영의 얼굴은 경련하듯 움찔거렸고 그들은 선영의 목과 이마 등등에 돋아오른 핏줄을 가리키며 킬킬대었다. 잠시 후, 시야를 가린 남자의 손아귀 밑으로 몇 방울의 물이 새어나왔다. 선영의 눈물이었다. 도저히 견디기 힘든, 아니 견딜 수 없는 그들의 우악스런 강간 속에서 억제할 수 없는 흘러나옴. 철저하게 세상과 단절된 듯한 슬픔. 마음 속의 비명.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한 사람의 생각이 떠오르면서 더욱 많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김성진…….’
“으음. 자, 이제.”
수십번을 더 선영의 입 속에 자지를 처박은 노란 머리 청년은 이제 그 자지를 완전히 빼어들었다. 옆의 남자에 의해 안면과 턱을 붙잡힌 상태 그대로 선영은 힘없이 축 늘어졌고 온몸이 땀에 젖은 채 신체 곳곳을 경직하듯 꿈틀꿈틀거리고 있었다. 벌려진 입 사이로 타액이 질질거리며 흘러내렸다. 하지만 청년은 그만둔 게 아니었다. 그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듯 큼직하게 웃으며 선영의 바지를 우악스럽게 벗겨내었다.
저항할 힘은 다 빠져나갔지만, 선영은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짐작하고는 내심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잘 움직여지지도 않는 입을 꿈틀거리며 중얼거리듯, 하지만 간절하게 말했다.
“아…… 안 돼…….”
그녀의 바지와 팬티까지 모조리 벗겨서 던져버린 청년. 중앙 부분만 켜져있는 은은한 PC방 불빛 사이로 선영의 다리는 곱고 길게 뻗어져있었다. 아직 완전히 낫지 않은 왼쪽 다리는 조금 가늘고 푸르딩딩한 빛이 있었으나 기본적으로 꽤나 늘씬한 여대생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그녀의 다리 라인은 환상적이었다. 잠시 그녀의 벗겨진 하반신을 본 사내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군침을 꿀꺽 하고 삼켰다.
“어이, 아가씨. 이쪽도 참 건방지게 이쁜데.”
“제발…… 그만…….”
“큭큭큭. 이거 참 못참겠구먼.”
노란 머리 청년은 위풍당당하게 달아오른 자신의 자지를 그녀의 허벅지 안쪽에 대고 슬슬 문질렀다. 뜨뜻한 그의 귀두가 허벅지를 자극하자 벽에 기대어 탈진한 듯 늘어져있는 선영은 움찔하고 떨었다. 한 손으로 자지를 붙잡고 허벅지 안쪽 곳곳을 문질러대는 그의 모습을 보며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선영은 신음같이 말했다.
“제발 그만둬…… 그만둬주세요…….”
“어라, 이젠 애원하고 있네, 이년. 큭큭큭. 아까 그 도도하던 모습은 어디 갔냐?”
“크핫핫핫…….”
사내들의 음흉한 웃음소리가 다시금 퍼졌고, 선영은 땀과 타액과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청년은 그런 그녀가 무슨 말을 하든 자신의 행동에는 전혀 제지될 것이 없다는 기세로 그녀의 다리를 양쪽으로 벌리었다. 선영은 마지막 힘을 짜내 두 손으로 그의 몸을 밀어내려 했으나 그런 시도조차 귀찮다는 듯 청년은 옆 남자에게 그녀의 두 팔을 붙잡으라고 지시했다. 이제 그녀는 벽에 등을 기댄 채로 두 팔을 위로 붙잡히었고, 벌려져 있는 그녀의 다리 사이로 기어간 청년은 자지를 그녀의 보지 구멍에 맞추었다. 청년은 그 상태로 인정사정없이 자지를 밀어넣었다.
“까…… 윽…….”
그렇잖아도 거대한 자지가 별다른 전희도 없이 한번에 밀어넣어지자 선영의 입장에서는 극심한 통증이 밀려올라왔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목이 잠겨버린 듯 제대로 된 비명소리조차 낼 수 없었고, 아픔은 아픔대로 받으며 몸을 움찔거리는 게 고작이었다. 두 손을 윗쪽으로 치켜든 옆의 남자는 다른 쪽 손으로 선영의 흰 티를 윗쪽으로 올려내었고, 곧 브레지어와 함께 동그랗게 자리한 그녀의 젖가슴이 드러났다.
노란 머리 청년은 한 손으론 그녀의 허리를 붙잡고 다른 쪽 손으로는 그녀의 가슴을 마음껏 주무르며 마구 자지를 보지 속으로 쑤셔넣었다. 선영의 보지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러면서도 허리 운동을 멈추지 않는 청년의 움직임은 그녀에게 잔인하리만큼 격통을 선사하였고 선영은 이젠 눈물도 나오지 않는 생기없는 눈으로 PC방 천장만 응시했다. 그녀의 눈동자가 청년의 피스톤 운동이 지속될 때마다 그나마 고통을 느낀다는 증거라도 표현하듯 좌우로 조금씩 떨리었다. 사실 그런 그녀의 눈동자를 제대로 볼 수도 없을 것이었다. 선영의 땀에 절은 머리카락이 여기저기 들러붙어 반쯤 시야를 가리고 있었기에.
“야, 씨발. 혼자 재미보기냐? 어떠냐, 이년 보지 맛은?”
“죽여주는데, 큭큭. 꽉꽉 조이는 느낌이 아주 좋아. 그동안 따먹었던 년들이랑 비교해본다면 음…. A-정도? 이년이 흥분한다면 더 높을 수도.”
“까고 있네. 큭큭큭. 대학도 안다니는 녀석이 학점을 매기기는. 적당히 하고 나와. 나도 좀 맛봐야 하니까.”
사정없이 박아대는 노란 머리 청년의 허리 뒤로 내뻗어져있는 선영의 하얀 다리에 자극을 받았는지, 뒤에서 구경하던 패거리들도 각자 자지를 빼들어서 손으로 문지르고 있었다. 옆에서 선영의 두 손목을 붙잡아 위로 쳐들고 있던 남자는 자기부터라고 눈을 치켜들었고, 그들만의 즐거운 신경전이 벌어지는 동안 선영은 여전히 지옥길을 거니는 고통을 맛봐야 했다.
그리고 이윽고.
사정의 기운이 올라오는지 보지에 자지를 박아대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노란 머리 청년의 이마에도 송글송글 땀이 맺어갔다. 그는 이를 드러내며 미소짓는 자태 그대로 중얼거리듯 내뱉었다.
“자, 이쁜이. 네 보지 속에 정액을 넣어줄 시간이다.”
“으으윽…… 윽…… 끄읏…….”
“질내 사정이야. 크하하핫. 으으으음! 이거 정말 죽여주는걸?”
푸우우욱, 쑤욱. 팍팍팍팍팍!
“아아아…… 안 돼, 안 돼. 제발…….”
“하하하하핫!”
굵직한 자지로 그녀의 질 내부를 거칠게 마찰시키던 청년은 그녀가 애원할수록 더욱 큰 절정으로 가는지 광기에 가까운 폭소를 터뜨렸다. 옆에서 구경하던 패거리들의 웃음소리도 커졌고, 담 너머 구경하듯 바라보는 손님들의 시선도 흥미로움에 가득 차서 소리없이 침을 삼켜대고 있었다. 꿀꺽.
그러나 선영의 애원 속에는, 물론 죽음보다 더할지도 모르는 무참한 강간의 현장 속에서 구원의 손길을 바라는 무의식도 포함하고 있었지만, 한가지 더 문제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그녀의 생기 없는 눈동자가 별안간 커지었다. 바로… 자신의 내면 속에 잠식되어 있던 그 무언가가 서서히 눈을 뜨고 있는 신호와도 같은 증거. 선영은 예전에 성진과의 섹스에서 느꼈던 그 기묘한 감각이 격통 속에서도 뚜렷하게 느껴지는 것에 전율하듯 몸을 떨었다.
“나… 나와. 안 돼…! 제발……! 제발 멈춰줘…….”
마지막 힘을 짜내 간신히 입을 놀리고 있었으나 당연하게도 사정 직전의 피스톤 운동에 몰입하고 있는 청년에게는 들릴 리가 만무했다. 혹 들렸다 하더라도 그는 그 행위를 멈추지는 않을 것이었지만 어쨌거나. 강제적이긴 했지만 섹스라는 것은 본래의 선영이 끌어내어질 정도로 그녀에겐 강렬한 기억이었고, 동시에 그리운 기억이기도 했다. 잠식되어있던 본래의 선영은 그 불쾌한 감각과 기억과 짜증스러움과 익숙함과 설레임과. 그런 통일되지 않은 엇맞물리는 감정들이 자신을 휘감아오는 걸 느끼곤, 도무지 무의식의 세계에 안주할 수가 없어 현재의 선영을 짓누르고 다시금 나오게 되고 있었다.
“본래의 내가… 본래의 내가 나온다고…….”
옆에서 선영의 두 손목을 위로 쳐들어 봉쇄하고 있던 남자만이 얼핏 의미모를 그녀의 중얼거림만 들었을 뿐이다. 노란 머리 청년은 한껏 기합을 토하듯 자지를 그녀의 보지 속에 처박았다.
“흐읍…!”
짧고 굵은 그의 기합소리와 함께 그녀의 질 내부로 물밀 듯 쏟아져들어가는 그의 정액.
그리고 눈뜬 본래의 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