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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혁은 자신의 입에서 음료수가 약간 방울져 튄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다. 그것은 의외의 소식에 놀랐다는 증거였고, 그렇게 만든 이는 다름 아닌 성진이었다. 동혁은 살짝 흥분하기까지 하며 되물었다.
“그게 정말이야?”
실외에 놓여진 자판기 근처에서 성진은 자신의 음료수를 기울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평일의 캠퍼스는 언제나처럼 시끌벅적했고 약간 쌀쌀해진 날씨에 고맙게도 햇살은 따사롭게 내리쬐고 있었다. ‘동거’라는 말에 동혁은 꽤나 대단한 뉴스를 들은 것처럼 눈을 크게 뜨고 호들갑을 떨었다.
“네가 자주 병문안 간다던 여자가 학기 초에 캠퍼스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킨 그 여자였다고?”
“그래, 이제 와서 말하는 거지만.”
“게다가 지금은 동거라니!”
동혁은 그거야말로 우리 같은 남자의 로망이 아니냐고 두 팔을 벌려 감탄했다. 하지만 청자와는 반대로 정작 당사자인 본인은 덤덤하게 음료수캔만 기울이고 있었다. 한 손을 재킷 주머니에 찔러넣은 채. 그리고 동혁도 곧 그 상대가 누군지 약간 디테일하게 자각하고선 부러워한다기보단 호기심 어린 표정이 되었다. 그는 얼른 자신의 음료수를 한 모금 들이키곤 도대체 어떻게 하다 그렇게 됐냐고 물어보았다.
“도대체 어떻게 하다 그렇게 됐냐고?”
“응, 응.”
“그녀한테 정면돌파를 한다고 식당에서 너한테 얘기했던 때부터.”
“과연! 어쩐지 그 때 이후로 관련 얘기를 한마디도 안 한 게 이상하긴 했어. 문자도 몽땅 씹었잖아.”
“사람은 말야. 일상적인 부분에서 조금 충격적인 뉴스를 듣거나 접하면 알리지 않고서는 못 견디지.”
한 손에 음료수캔을 든 채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성진. 동혁은 자신의 캔을 기울이면서도 무슨 얘기냐는 듯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성진의 눈동자가 슬며시 그의 눈을 벗어나 허공으로 향했다.
“나는 그 정도의 충격을 기대했는데, 그녀는 그런 기대감 따위는 사치스런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제대로 가르쳐주더라. 그래서 한동안 아무 말도 못했던 거야.”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어……. 너 설마…?”
“그래. 다음 날 자살 사건 소식이 들렸지? 거기에 내가 연계돼있었어.”
동혁은 잠시 경계의 발걸음으로 몇 걸음 뒤로 물러났고, 성진은 그런 그를 탓하진 않았다. 대신 힘없이 웃으며 허탈한 듯 말했다.
“그렇다고 내가 그녀를 죽이려 했다는 건 아냐. 경찰서에도 갔다 왔고 조서와 진술서, 증거 등등… 지금은 수사 결과가 아무 문제 없이 다 끝났어. 예전의 나와 다를 게 하나도 없잖아? 경찰도 더 이상 오지 않고.”
“뭐 그야 그렇지만…….”
동혁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주변을 휙휙 둘러보았고, 그것은 어디서 경찰이 주시하고 있지 않나, 혹은 성가신 일에 말려드는 건 아닐까 경계하는 동작임이 분명했다. 역시 대학 친구는 어느 정도 계산적이 될 수밖에 없어…. 성진은 그에게 마음껏 탐색할 시간을 주다가 강의 시간이 다가옴을 확인하는 동작으로 핸드폰 시계를 확인하였다. 그리고는 짐짓 지나가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수업 시작하겠다. 한동혁. 그런데 너 뭐 할 말 있어서 여기서 음료수 먹자고 한 거 아니었어?”
“어? 어…… 그게….”
동혁은 여전히 미심쩍은 표정을 지우지 않았지만, 그의 말마따나 뒤끝은 없다고 판단했는지 곧 큼직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는 빈 음료수캔을 휴지통에 신중하게 겨냥해서 휙 던져 넣었다. 마치 공으로 어떠한 골대에 집어넣는 연습하는 것마냥.
“저녁에 시간 있냐? 간단한 모임 자리 하나 주선했는데.”
“개인적인 모임이야?”
“그냥 뭐 소주 몇 잔 하며 후배들이랑 친목 좀 다져보자는 거지. 인원도 얼마 없어.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재미있지 않을까 싶은데.”
성진도 남은 음료수를 단숨에 들이키곤 빈 캔을 휴지통에 던져 넣으며 히죽 웃어 보였다. 약간 우울해진 감정을 일부러 떨쳐버리려고 할 때도 지어 보이는 특유의 날카로운 미소였다. 물론 동혁은 그런 의도를 눈치채지 못했지만.
“여자도 있겠지? 없으면 안 가.”
“당연히 있지! 여자 없음 뭔 재미냐? 실은 우리 빼고 다 일공(10)학번이야. 너까지 오면 딱 6명 되겠군.”
“6명? 설마 여자가 그 중 반은 아니겠지?”
“왜 반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냐?”
동혁은 짐짓 의미심장한 미소를 일관하며 어깨를 으쓱했고, 성진은 그만 고개를 숙이고 웃어버렸다. 이 녀석… 작년부터 함께 하며 느꼈던 거지만 수완 하나는 끝내준단 말야. 어디 유명 기업의 지사에 있는 퉁퉁하면서도 믿음직한 사장 정도 되면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는 성진.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겠다는 무언의 의사를 밝혔다.
동혁은 손가락을 들어 딱하고 마주치며 몸을 돌렸다.
“오케이. 인원 성립. 수업 끝나고 보자구. 정확한 시간과 장소는 문자로 돌릴 테니까.”
“3대 3이라… 이건 거의 미팅 수준인데.”
“친목이야, 친목. 대학교 처음 입학할 때 선배들한테 들었던 얘기 기억하지 않나? 우리가 학번이 올라가면 후배들한테도 잘해줘야 한다고.”
그 말은 곧 이런 개인적 모임도 자주 가지란 말 아니겠어? 라고 온화하지만 인지시키는 듯한 눈빛을 보내는 동혁. 성진은 그런 그와 함께 걸어가면서 다시금 실소가 나오는 걸 감출 수가 없었다. 친목은 무슨. 원나잇 상대를 고르는 자리겠지. 이미 그런 자리를 몇 번 겪었던 성진의 입장에서는 동혁의 의도를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