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이 제법 쌀쌀해졌음을 느낀 성진은 잠바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 동네 마트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의 발걸음은 꽤나 빨랐지만 머릿속에는 일련의 생각이 얽혀 있었다. 그것은 방금 전 윗옷을 벗고 선영이 앉아 있는 침대로 다가갔을 때 그녀가 보인 반응에 대한 것이었고, 그에 관한 다각도의 판단을 고려해보는 중이었다.
사실 그는 정말로 선영을 범할 생각 따윈 눈곱만큼도 없었다. 병원에서든 자신의 집에서든, 그녀와 한바탕 할 것 같이 다가섰음에도 불구하고 별 스킨쉽조차 가지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그녀가 성(性)에 대한 어떤 방어 기제를 갖고 있는지 시험해보는 단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어째선지 이번 시험(?)에서는 짧지만 자신도 갑자기 그녀의 입술을 빨아버리고 싶다는 욕구가 잠시나마 솟았다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역시 위험하군…. 병원과 이곳은 달라.’
그는 잡생각을 떨쳐버리려는 듯 혼자 고개를 가로젓고는 마트 문을 열었다. ‘어서오세요.’라고 건네는 점원의 인사. 하지만 성진의 귀에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는 물건을 고르면서도 앞으로 선영과의 동거와 거기에 일어날 일들을 머릿속으로 추려보는 중이었다. 어차피 팔과 다리에 깁스를 했으니 한동안은 깊은 관계를 가질 계제는 생기지 않을 것도 같았다.
그건 일단 접어두고… 그럼 그녀가 화장실을 갈 때는 도와주어야 하나? 이것도 문제군. 머리를 감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한쪽 다리와 팔을 못 쓰니 그것도 도와주어야 할 듯한데… 목욕이야 앞으로도 얼마간 못한다고 쳐도… 그러고 보니 병원에서는 어떻게 했지? 간호사들이 물수건 같은 걸로라도 닦아주었나? 그러고 보니 식사는… 잠자리는…….
“이런 젠장할!”
한꺼번에 몰려오는 예상 난관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생수통을 집어들던 손을 꽉 하고 움켜쥐었다. 콰득 하고 생수통이 구겨졌고, 그제서야 퍼뜩 정신이 든 성진은 반사적으로 점원 쪽을 돌아보았다. 경계의 눈초리로 이쪽을 쏘아보는 점원의 시선에 성진은 어차피 살 것이라고 알려주기라도 하듯 얼른 그것을 한 팔로 감싸 들었다.
그리곤 속으로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는 성진.
‘그래, 빌어먹을. 내가 잘못했다고…. 그녀 혼자 집에 가봤자 돌봐줄 사람도 없고, 어떻게 생활하겠어. 차라리 내 집으로 오는 게 맞지 맞아.’
복잡한 생각을 뒤로 한 채, 마트를 돌아보며 살 것에 집중하기로 한 성진. 그의 눈과 손이 과일과 젤리들을 거쳐갔다. 그리고 이어서 생리대는 도대체 어떻게 골라야 하나 라는 새로운 문제의 전환점을 맞이할 때쯤이었다.
“어라? 성진 선배… 아니세요?”
애틋하면서도 고운 여자의 목소리. 성진은 무심코 생리대가 진열돼있는 선반에 손가락을 이리저리 이동하면서 가늠해보다가 화들짝 놀랐다. 얼른 손가락을 내리고는 돌아본 그의 눈에 생긋 웃는 이쁘장한 또래의 여자가 비쳐졌다.
“어, 미… 미선이구나.”
“와, 이런 데서 다 만나네요. 선배.”
손을 가볍게 흔들어보인 그녀는 성진이 무엇을 샀나 괜히 관심 가져보는 듯 두 팔을 뒤로 하고 바라보고 있었다. 적갈색의 가벼운 트레이닝복 차림의 그녀는 뒤로 한번 묶어 넘긴 포니테일 머리를 하고 있었고, 그것은 성진이 보기에도 꽤나 귀여운 스타일이었다.
“우린 편의점에서 일하는 입장인데, 또 손님으로 이런 데서 만나는 걸 보니 기분이 묘하네요.”
“나는 납품쪽 일이니 딱히 이런 데 소속됐다고 얘기하긴 좀 그렇지.”
“피, 그냥 같은 처지라고 하면 어디가 덧나요?”
혀를 살짝 빼들어보이는 미선의 모습에 성진도 따라서 히죽 하고 웃어버렸다. 동시에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현실들이 잠시나마 소강되는 느낌을 받았다. 마트 내부에 울려퍼지는 감미로운 발라드곡을 들으며 성진은 자신보다 조금 키가 작은 그녀를 지긋이 마주보았고, 곧 지나가는 어투로 물어보았다.
“그런데 채미선. 너 오늘 3시부터 근무타임 아니야? 뭘 사러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부터 준비해도 늦을 것 같은데.”
“같이 교대하는 분이랑 시간 합의해서 조정했어요. 전 그 시간 수업 없는 날이랑 주말 쪽에 밀어 넣었죠. 따라서 오늘은 비번!”
“왜 하필 놀기 좋은 주말 쪽이야?”
“그래야 선배랑 만날 수 있으니까.”
‘선배는 주말 납품 담당이잖아요?’라고 뒤이어 말하는 걸 채 다 듣기도 전에 성진은 다시금 가벼운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미선은 이어서 얼굴을 살짝 붉히곤 성진의 잠바에 손가락을 갖다 대 그 촉감을 확인이라도 하듯 밑으로 주욱 선을 그어 보였다.
“저… 그리고 선배 일이 끝나면 오셔서 집까지 바래다주시니까… 그것도 좋아하고…….”
“내가 바래다주는 것은 어디까지나 밤길에 후배 안위 걱정되니까 그러는 것뿐이야. 가까운 동생 같으니까.”
미선은 살짝 눈을 들어 성진과 마주보았다.
“선배는 저 같은 여동생이라면 어때요? 하나 있으면 좋겠다 생각해요?”
성진은 잠시 눈을 들어서 딴 곳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척하다가 곧 다시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1살 차이갖고 무슨…. 여동생 느낌인지 뭔지도 애매해, 솔직히.”
“피, 성진 선배는 맨날 대답을 얼버무리더라.”
“맨날이라니.”
“그래요. 맨날은 아니고 자주. 자아~ 주.”
끝에 말을 길게 늘이며 시선을 옆으로 비켜버리는 그녀. 참으로 귀엽고 사랑스러운 후배다. 그렇게 생각한 성진은 편안한 미소가 절로 지어짐을 느꼈다. 하릴없이 마트 진열대쪽을 둘러보던 그는 문득 자신이 어느 위치에 서있는지 자각이 들었다. 잠깐, 그러고 보니 내가 사려고 했던 게…….
“그런데 선배. 이거 사려고 그런 거에요? 아까 여기를 면밀하게 보시던데…….”
“아, 저…! 그, 그게……. 필요하단 사람이 있어서….”
“흐음, 애인분이신가 봐요? 좋겠다. 남친이 이런 것도 다 챙겨주고….”
“그러니까, 애인이 아니라니까…….”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오르며 설명할 단어를 조합하고, 또 그걸 입 밖으로 내뱉는 과정이 생소한 사람처럼 더듬거리는 성진. 하지만 미선은 그런 그의 애처로운 노력이 어떤 성과를 발휘하는지는 전혀 관심 없어 보였다. 그저 덤덤하게 선반 위에 진열된 생리대들을 이것저것 손으로 가늠해보다가 하나를 집어 들어 건네는 그녀.
“이거 정도면 무난할 거에요. 선물용으로도 잘나가는 거니까.”
“어, 그… 그래? 고맙… 고마워.”
늘 듬직한 오빠로 있을 것 같았던 그가 당황하는 모습이 꽤나 생소했던 모양이다. 미선은 킥 하고 웃으며 손가락으로 그의 가슴을 살짝 밀어 보이고는 몸을 반쯤 돌려 걸어갔다.
“그럼 다음에 봐요, 선배~”
그리곤 완전히 몸을 돌려 다른 코너로 사라지는 그녀. 뒤로 묶은 포니테일 머리칼이 매력적으로 흔들린다고 느끼던 성진은 문득 보이지 않게 된 미선을 향해 손을 흔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기분을 받았다. 그러다가 곧 정신을 차리듯 고개를 살짝 흔들고는 계산대 위에 물건들을 갖다 놓았다. 물론 아이스크림도 잊지 않고 있었기에 그의 발걸음은 곧바로 근처 냉장고로 향하고 있었다.
본래는 하나였을 물줄기는 샤워기란 촘촘하면서도 여러 개의 구멍이 나있는 주체를 통해 수많은 갈래로 분산되어 떨어졌다. 여러 갈래의 가는 물줄기들은 살결에 맞닿을 때마다 그 살결의 모양새를 본뜨면서 바닥으로 이동해갔다. 마치 휘감듯이, 부드럽게 훑어내는 듯이.
그렇게 머리 위로 쏟아져내리는 샤워기의 물줄기를 음미하던 성진은 곧 질린 것처럼 몸을 뒤로 빼었다. 그리고는 두 손을 들어 얼굴을 거칠게 비볐다. 물기를 어느 정도 쓸어낸 그는 욕실의 거울을 보았고, 그 거울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걸 깨닫자 짧은 실망감을 표출했다. 표출된 실망감은 그의 손으로 하여금 샤워기를 가져와 거울에 서린 김을 제거하는 양상으로 변형됐다.
물기에 젖어 날카롭게 이마를 살짝 가린 머리칼과 또렷한 눈썹, 잘생긴 이목구비. 그런 것들을 가진 자신이란 존재가 거울을 통해 스스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그런 자화상을 관찰하던 그는 곧 픽하고 웃고는 샤워기를 잠그고 몸을 닦아내었다.
커다란 수건으로 몸을 감싼 채 욕실을 나섰을 때는 벌써 어스름하게 석양이 지는 시각이었다. 이미 아이스크림을 두 개 해치운 선영이 젤리를 떠먹으며 침대에 앉아있었다. 그녀는 침대 풋보드쪽에 있는 TV를 시청하고 있었고, 사실 그것은 성진이 일부러 권유한 것이기도 했다. TV는 각종 정보가 쏟아지는 매체이기에 그녀의 기억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될만한 장면도 많이 나올 것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억상실 경험이 없는 ‘성진’의 입장에서 추측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한 가지는 확실해졌어.”
“긍정적인 것? 부정적인 것?”
“내용은 긍정적이지만 의미는 부정적인 것.”
젤리를 떠먹던 수저를 입에 문 채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돌아보며 그렇게 대답한 선영. 그래서 성진은 딱히 그녀 잘못이 아니라는 걸 자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염증이 이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조금이라도 상대방을 위해 미안한 표정을 짓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은 유혹도 함께 느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선영은 구체적인 설명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TV를 보면서 알아낸 건 예전의 내가 TV를 시청할 때 받았던 느낌 이상의 것을 느끼지 못한다는 거야.”
“예를 들자면?”
“내가 시청하던 TV프로그램, 드라마 스토리, 뉴스 앵커나 진행 구조, 그것만 익숙하게 와닿을 뿐 그 이상의 것은 없어. 아니, 이쪽 부분은 어째서인지 기억 자체가 사라지지 않고 보존돼있다고 해야 맞겠군.”
그리고 선영은 환하게 웃었다. ‘내가 이렇게 많은 것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니!’라고 자부심을 느끼는 모습. 당연하게도 성진은 그런 선영의 기분에 전혀 동조하지 못한 채 컴퓨터 책상 앞 의자에 힘없이 털썩 앉았다. 그리고는 기분전환이라도 할 겸 컴퓨터를 켰다.
위잉 하고 부팅되는 익숙한 소리를 들으며 성진은 사고의 방향을 긍정적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그래, 그것은 바꿔 말하면 그녀의 기억을 완전히 되찾아줄 곳은 직접적으로 체험하고 경험했던 것에 국한된단 말이지. 그리고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 일단 자신이 자살을 시도했던 학교로 가본다면 한꺼번에 모든 기억을 되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끼워 맞추기 식의 가설일 뿐이었지만 성진은 그것을 최선의 방도로 정해놓고는, 일단 선영의 몸이 완치될 때까지 기다려보기로 했다.
복잡한 심경이 많이 느껴지던 하루였기 때문일까. 성진은 지인들 미니홈피나 블로그 등도 방문해보지 않고 곧바로 게임을 켰다. 정지해있던 디지털 구성체가 그래픽이란 유동성 높은 조각으로 변모하면서 그의 정신을 환상적인 착각의 세계로 몰아넣었다.
“뭐야, 그건?”
“게임이다.”
“게임인 건 나도 알아. 내가 요구하는 건 좀 더 디테일적인 요소.”
“마치 사전을 들추는 것처럼 쉽게도 요구하는군. 그런 네 반응에 익숙해지는 내 자신도 희한하고. 젠장할. 그래, 어쨌거나 좀 더 디테일하게 표현하자면 전략 시뮬레이션이야. 더 디테일하게 표현하자면 중세 시대 전쟁을 배경으로 한 ‘카잔 전쟁’.”
“카잔 전쟁?”
성진은 돌아보지 않고 계속해서 설명했다. 그의 눈과 손은 이미 게임 속 가상의 개체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데 집중돼있었기에.
“이미 e스포츠로도 전국적인 인기를 한창 구사하고 있는 게임이지. 이렇게 net에 접속해서 임의의 상대방과 대전할 수도 있어. 시작과 동시에 주어진 자원과 일꾼으로 진지를 구축하고, 병력을 생산해 상대방을 토벌하면 승리하는 것.”
“주어진 자원과 일꾼으로 진지를 구축한다… 라.”
“상대방도 동일한 조건에서 시작하니까 결국 실력에 따라 승부가 갈리는 거야. 그게 게임 대전의 묘미이지.”
“동일한 조건…….”
어쩐지 그런 게임의 특징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마냥 따라서 되뇌이는 선영. 성진은 그녀가 왜 그렇게 관심을 보이는지 궁금해져 돌아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한시라도 모니터 안의 개체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걸 중단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런 충동은 일단 뒤로 미뤄두기로 했다. 게다가 지금 대전하는 상대는 성진과 실력이 비슷해서 굉장히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던 터였다.
문득 침대가 들썩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선영이 침대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성진의 뒤에 와서 섰다. 의자 뒤에서 가만히 그가 게임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선영. 성진도 그걸 느끼고 있었지만 전투를 하고 유닛들을 컨트롤하는 손이 바빠, 그것을 인식하고 있다는 선상에서만 그치고 있었다.
콰쾅-!
이윽고 성진이 컨트롤하는 대포가 상대편 본진에 있는 본부까지 부숴뜨리자 ‘GG’를 치고 나가는 대전 상대. 성진은 그제서야 숨을 크게 몰아쉬며 의자 등받이에 등을 편하게 기대고 몸을 쭉 뻗었다. 첫판부터 화끈하게 한판 승부를 벌여 쟁취한 희열감이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나 성진은 곧 마음 놓고 승리의 기쁨을 만끽할 수 없는 상황이란 걸 자각해야 했다. 선영이 자기 옆얼굴에 거의 밀착할 정도로 갖다 대고 대전을 관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왁…! 야, 너……!”
“응?”
허둥거리며 의자에서 굴러 떨어지듯 물러나는 성진. 엉거주춤하게 서서 그녀를 바라보는 모습은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꽤나 꼴불견이었지만 성진은 그런 것을 안중에 두지는 않았다. 대신 그녀를 향해서 따지듯 내뱉었다.
“사람 좀 놀래키지 말라고! 너 도대체가… 매사에 그런 식인 건 예전의 너일 때부터 은연중에 느껴진 것이기도 하지만.”
“아하하, 미안, 미안.”
손바닥을 입 앞에 휙휙 내저으면서 난처한 미소로 사과하는 선영. 성진은 이번엔 도리어 그녀가 너무 쉽게 사과하는 것에 잠시 얼빠진 모습이 되었다. 하지만 선영은 곧바로 그에게서 시선을 돌려 다시 모니터로 향하였다. 모니터에는 대전이 끝나 각 대전 상대의 점수를 표시하는 결과 보고서가 띄워져있었다. 대전을 한 당사자도 기실 별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결과표였지만 선영은 그것마저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툭하고 내뱉는 말.
“이봐, 너.”
“앞서도 몇 번이고 얘기했지만 내 이름은 김성진이야. 앞으로 이름으로 좀 불러줬음 좋겠는데.”
“게임 다시 해봐.”
쉽게 사과했다고 해서 성진의 말이 가치가 드높아진 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발언. 성진은 이를 갈며 자리에 다시 앉았고, 이번엔 다른 상대와 두 번째 대전을 시작했다. 그리고 초반 일꾼들에게 명령을 내리며, 성진은 잠시 그녀가 게임을 했던 기억을 되살리고 있는 건가 하고 추측해보았다. 아닌 게 아니라 그녀는 해커이기도 했던 만큼 컴퓨터를 많이 다루었을 것이고 그녀도 기분전환 겸 게임도 했을지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영의 눈동자는 그런 성진의 추리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단정짓기엔 조금 이른 감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복잡해지는 진지 확장으로 인해 쉴새 없이 마우스를 놀려야 하는 성진에게 있어선 딱히 이상한 점을 느낄 겨를이 없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선영 또한 평소와는 다른 집중을 보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터였다. 그녀의 은은한 갈색 빛이 어린 아름다운 눈동자는 일종의 탐지기처럼 ‘카잔 전쟁’의 게임 상황을 주시해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