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화 (1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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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가을로 들어선 듯 높다랗게 솟아 있는 병원 건물 배경을 푸른 하늘이 가득 메웠다. 그리고 그곳에 두 사람이 약간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 한쪽, 그러니까 여자 쪽은 팔과 다리에 깁스를 한 채 목발을 짚고 한발한발 조심스럽게 내딛는 중이었고, 남자 쪽은 가벼운 짐과 약봉지 등을 쥔 채로 여자의 느린 걸음에 맞추어 걸어가는 중이었다.

그렇게 퇴원해서 약 3주 만에 바깥 바람을 쐬는 선영은,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은 듯했다. 최소한 성진이 보기에는.

“퇴원할 때는 깁스를 풀 줄 알았는데 이게 뭐야. 한동안 통원치료라니 아아아아아, 우울해.”

“글쎄…. 내가 보기에는 죽지 않고 이 정도로 끝난 게 엄청나게 양호하다고 생각한다만.”

선영은 그런 성진의 긍정적인 발언에 전혀 동조하지 않았다.

“그냥 그 자리에서 죽었으면 이런 이상한 인격의 내가 튀어나오진 않았을 텐데. 이 고생에 이 꼴을 할 바에야.”

철없는 아이처럼 투덜대는 그녀의 막말에 성진은 기가 막혔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대신 병원 건물을 우회하면서 얼마간 걸어가자 재킷 안쪽에서 쪽지를 하나 꺼냈다. 그리곤 손바닥을 이마에 갖다 대 햇빛을 가리며 그녀의 집 주소를 확인하는 성진. 선영은 그가 뭘 하려는 건지 궁금하다는 시선으로 옆에서 그 쪽지와 그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하지만 성진은 그녀에게 눈길도 안 주고 차도 쪽으로 뭔가를 찾는 사람처럼 면밀히 둘러보았다.

“역시 혼자서 가긴 아직 어렵겠지? 택시 타고 같이 가자고.”

선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어딜?”

“어디긴 어디야? 너네 집이지.”

“우리 집? 우리 집에 왜 가?”

성진은 잠시 택시 찾는 걸 뒤로 미뤄두고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집 주소를 확인한 후 잠깐 동안 뭔가를 생각하는 듯 뺨을 긁적이더니, 그녀를 다시 넌지시 바라보았다.

“혼자 산다고 했으니 아무래도 내가 같이 가는 게 불안하냐? 뭐 정체도 명확하지 않은 남자를 집 안에 들이기가 좀 그렇겠지.”

그리고 고개를 살짝 꺾어서 선영을 바라보는 성진. 그녀의 머리칼이 오래간만에 바람을 만나 기분 좋은 듯 한쪽으로 넘실거리듯 휘날리고 있었다. 정작 당사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를 눈으로 성진을 마주보는 중이었지만.

“그런데 어쩔 수 없어. 지금의 네 꼴로는 네 집 문도 제대로 열기 힘들 테니까. 열쇠로 열 수는 있나? 아, 열쇠전문가부터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군. 넌 네 가방도 잃어버렸지?”

그러나 성진은 그때까지도 선영이 ‘자신의 집으로 왜 가야 하는가’라는 의문에 대한 명확한 의도를 읽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오해하고 있었다.

“난 내 가방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기억나지 않아. 그건 그렇다 치고, 너 자꾸 딴소리 할래?”

“무슨 딴소리?”

“너네 집으로 가야지.”

“내 집에 널 데리고 가라고?”

“그럼 혼자 가려고?”

성진은 입을 다물고 한숨을 쉬며 다시 고개를 돌려 차도 쪽을 바라보았다. 산들바람이 불며 그의 날카로운 앞머리칼을 살그머니 흔들고 있었다. 지나다니는 차는 별로 없는, 비교적 한적한 곳이라고 생각하며 성진은 일단 고개를 주억거렸다. 긍정의 주억거림은 아니었지만.

잠시 후, 성진은 그녀의 반응도 볼 겸 한 손을 허리에 얹고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내 집에 널 데리고 가야 하는 타당한 이유를 대봐.”

“내가 살던 집은 여기서 택시 타고도 한 시간 가까이 걸린다며? 게다가 그곳에서 통원치료를 하러 다니려면 아직 낫지 않은 내 팔과 다리에도 무리가 갈 텐데, 이 근처의 너네 집에서 보살펴주는 게 좋잖아.”

“내가 왜 너를 보살펴주어야… 아니, 그건 둘째 치자. 너 말야….”

“이번엔 네가 타당한 이유를 대봐.”

따지듯 대드는 선영의 앞에서 성진은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곧바로 감을 잡지 못했다. 그녀의 시선을 피하듯 고개를 반쯤 돌리다가 더듬거리며 말하는 성진.

“그… 그러니까, 이봐. 너 우리 집에서 통원치료 한다면…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 동거한다는 의미가 되는 거야. 게다가 난 원룸에서 혼자 살고 있다고. 우리 같은 20대 초반의 남녀가 한집에서 같이 산다는 게 뭘 뜻하는 건지 굳이 내 입으로 말해야 해?”

“타당하지 않아.”

“뭐?”

“네 말마따나 20대 초반의 남녀가 한집에서 같이 살면 안 되는 이유를 대보라고.”

당연한 상식에 속하는 부분이었기에 성진에게는 그것에 관련된 설명을 한다는 것 자체가 생소했다. 이 녀석… 성(性)에 관한 지식은 완전히 제로에 가깝게 변해버렸군. 성진은 상식을 논리로 설명해야 하는 굉장히 어려운 사명감에 둘러싸여 우물쭈물했고, 선영은 점점 더 의혹적인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가끔씩 옆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흘끗흘끗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면서 성진은 한시라도 이 상황을 탈피하고 싶다는 바람이 간절해졌다.

“이것 봐, 그러니까 말야….”

“보고 있어. 나 다리 아파. 빨리 좀 설명해.”

“남자랑 여자가 단둘이 같이 살면 본능적인 욕구를 제지할 기제가 생기지 않아 불순한 이성교제가 이루어질 확률이 굉장히 높다고!”

겨우 납득할만한 문법을 맞추어낸 성진은 그 말을 거의 토해내듯 내뱉었고, 선영은 그런 안타까운 노력에 관심을 보이는 대신 그의 말 내용을 머릿속으로 굴려봤다. 그녀의 눈동자도 또르륵 굴러간다.

“본능이라… 그래, 그럼 그 본능이 문제군.”

별로 인정하는 어조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은 성진은 불길한 기분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선영은 약간 갈색 빛을 발하는 아름다운 눈동자로 그를 응시하더니 툭 내뱉었다.

“그런데 너한텐 별로 그런 게 느껴지지 않던데. 병실에서도 단둘이 적잖은 시간을 보내왔잖아?”

“거기야 당연히 수시로 누가 드나들지도 모르고… 간호사들도 언제든지 불러낼 수 있으니까….”

“그럼 밀폐된 공간에 있으면 날 범했을 거라는 거네?”

“누… 누가 너 따윌…!”

“그래? 그럼 됐네.”

대화가 끊어지고 나서야 성진은 자신이 잘못 대답했다고 한탄해야 했다. 왜 이럴 때 자신 특유의 날카로운 포스를 뿜어대면서 ‘그걸 이제 알았냐?’라고 주의를 주지 못했을까. 성진은 푼수나 범할 법한 실수를 했다며 속으로 수없이 자신을 욕하고 뒤늦게 정정할 말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선영은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말야, 당신.”

“어… 왜?”

도리어 추궁 당하는 입장이 됐다는 기분을 느끼는 성진.

“예전의 나란 존재의 남친이었다면 좀 더 날 걱정하고 보살펴줘야 할 의무가 있는 거 아냐? 기억 하나 잃어버렸다고 완전히 다른 사람 취급하지 말아줬음 좋겠는데.”

그녀의 말에 성진은 병원에서 주변인, 간호사, 의사에게 수없이 들었던 질문이 다시금 머릿속에 부상하는 것을 느껴야 했다. 일종의 염증마저 이는 기분을 받으며 그는 자포자기 심경으로 되물었다.

“누가 그래?”

“뭐가?”

“내가 네 남친이었다고 하는 것 말야.”

“아니야?”

“아냐! 이건 뭐 남녀가 같이 있으면 무조건 연인처럼 보는 현상이 사회적 통관념이 된 것도 아니고….”

그러나 선영은 그런 성진을 도리어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럼 넌 뭔데 나한테 치료비를 다 대주고 기억을 되찾아주려 노력하는 거야?”

“그건…….”

성진은 그만 말문이 막혀버렸다. 동시에 예고 없이 찾아온 침묵. 선영은 여전히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았지만 대답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문득 햇살이 비스듬이 그의 얼굴 한 쪽을 쓸어내어 어두운 색깔을 만들어낸다는 느낌을 받던 선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것처럼.

마침 택시가 한 대 병원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고, 선영은 성진 대신 손을 들어 그 택시를 잡았다. 성진의 집까지는 기본요금밖에 안 나올 거리였지만 부상자 입장에선 당연한 처사였고, 그녀는 그런 권리를 마음껏 사용했다.

택시가 길가 옆에 서자 성진은 될 대로 되란 심정으로 뒷좌석 문을 열었다. 그리고 선영의 깁스한 왼쪽 다리를 택시 뒷좌석 시트 위에 올려놓도록 해서 옆으로 앉히게 하였다. 이어서 목발을 정리해 밑에다 놓은 후 자신은 앞좌석에 탔다. 택시는 곧바로 출발하였고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택시기사는 느긋한 어조로 물어보았다.

“어디로 모셔드릴까요?”

“그…….”

순간 선영의 집 주소를 내뱉어버릴까 생각했던 성진은 곧바로 그 생각을 포기했다. 지금의 그녀라면 어떤 분쟁을 일으킬지 모르는 일이었기에, 조용히 데리고 가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원룸 위치를 택시기사에게 가르쳐줄 수밖에 없었다. 이렇든저렇든 선영 같은 예쁜 여자가 자신의 집에 오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 되었다는 것을 자각한 성진. 그 상황에 미묘한 기분을 느끼면서 그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곤 택시 앞유리를 통해 전방을 응시했다.

택시기사는 꽤나 세상과 대화하기를 좋아할 법한 인상의 아저씨였다. 약간은 퉁퉁하고 서글서글한 눈매를 가진 그는 백미러로 선영의 모습을 흘끗거리며 바라보더니 툭 하고 물었다.

“어휴… 여자분이 많이 다치셨나 봐요?”

“굉장히 양호한 편입니다.”

“애인분이신가 봅니다그려?”

“잘 모르는 사이에요.”

“애인분 아니라구요? 그럼 지금 가는 집은….”

“저희 집이죠.”

택시기사는 잠시 자신이 비상식적인 질문만 던지고 있나 하고 곱씹어보았다. 그건 아닌데… 왜 계속 예상했던 반대의 대답만 나오는 거지? 물론 성진에게 있어선 지겹도록 들은 질문인지라 거의 반사적으로 툭툭 대답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택시기사의 입장에선 보편적인 두 남녀 사이란 관념을 재설정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렇게 택시기사가 다른 어떤 특수한 방면의 관계를 추리해보는 동안, 뒷좌석에서 옆으로 길게 앉아있던 선영이 탄성을 질렀다.

“아!”

처음 듣는 듯한 그녀의 경탄어린 감탄사에 성진은 자신도 모르게 뒷좌석으로 고개를 돌렸다. 선영의 눈은 택시의 창문 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 지나고 있는 이곳은…….

성진의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 그의 눈동자가 그녀의 반응을 잡아내기 위한 센서처럼 움직였다. 그는 선영이 자신을 주시하지 못할 정도로 바깥 풍경에 빠져있다는 점에 주목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포림대다.”

“포림대…?”

“네가 다니는 대학이야. 내가 다니는 대학이라고 할 수도 있겠군. 풍경을 보니 기억이 나나?”

“어, 음… 어…….”

급작스런 정보의 조합에 뇌가 놀란 듯 그녀의 대답은 시원찮게 나왔다. 그리고 성진은 그 대답의 시원찮음에 만족했다. 효과가 있군. 그녀에게 있어선 데자뷰 비슷한 경험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의사의 말이 사실이었음은 꽤나 고무적인 현상이다.

- 기억을 잃은 당사자가 다시 한번 그 경험을 한다면, 몸이 기억하는 회로로 뇌에 전달돼서 그 기억 자체를 찾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죠 -

‘실력과 지식적인 측면에서 꽤나 좋은 의사였군….’

의사가 했던 말을 되짚어보며 성진은 시선을 다시 앞쪽으로 돌렸다. 그리곤 의자 등받이에 편하게 등을 받쳤다. 그녀가 다 나으면 학교부터 곳곳으로 데려가 기억을 되찾아주는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물론 그것이 그렇게 쉽게 이루어질지는 현재의 한 상황으로만 미루어 판단하기 이른 감이 없지 않았으나 목표가 정해졌다는 것은 심적 부담을 던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성진은 어쩐지 화창한 날씨에 심경이 부합하는 기분을 느끼며 휘파람이라도 불고 싶어졌다.

그래서 성진은 다음으로 건네어진 택시기사의 질문을 얼른 파악하지 못하고 되물어야 했다.

“예…? 뭐라구요?”

“애인분… 아니, 여자분이 여기 굉장히 오랜만에 오시나 봐요?”

성진은 다시 흘끗 뒷좌석을 본 후 - 선영은 그 때까지도 바깥 풍경에 빨려들 듯이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 짧게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별로 숨길 것도 없는 얘기라고 생각하면서.

“아니요. 원래 여기 사는 여자였는데… 사고로 기억을 잃었죠.”

“아, 저런…… 그러셨구나.”

“천재적인 여자였죠. IQ를 측정했으면 200은 가뿐히 넘었을 겁니다. 그러나… 타고난 천재라고 해서 세상 살아가기 좋은 건 아니겠다는 느낌을 간접적으로 받았습니다. 그녀의 똑똑함은 자신을 파멸로 몰아갈 정도였으니까요.”

“인간은 본디 어느 정도 둔감해야 강한 법이죠.”

“그녀가 기억을 되찾으면… 그러니까 예전 기억과 존재감, 정체성 등을 모두 되찾으면 저는 그녀를 두번 다시 자살하지 않게끔 할 겁니다. 옆에서 도와줄 거예요. 그녀가 스스로에게 지지 않도록…….”

문득 쓸데없는 얘기까지 넘어간다고 자각한 성진은 얼른 입을 닫고 택시기사를 흘끗 바라보았다. 하지만 택시기사는 자살에 관련한 어떤 의문점이나 흥미로움 등을 간직한 표정이 아니었다. 도리어 성진 쪽이 궁금해질 정도로 의외의, 그러니까 근심이 담긴 표정으로 운전을 하고 있었다.

입을 다물고 있는 택시기사의 옆얼굴을 보며 성진이 조바심이 날 즈음.

“학생. 그리 간단하진 않을 것 같소.”

“예…? 그야, 기억을 쉽사리 모두 되찾기는 시간적으로도 기약이 없을 정도란 건 저도 알…….”

“그런 게 아니오. 뭐랄까…… 지금 겉으로만 듣기론 장담할 순 없지만 나는 그녀의 신변이 위험에 노출돼있다는 기분을 받는군.”

나이로 인한 인생적 경험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었고, 성진은 그 점을 일찍이 깨닫고 있었기에 조심스레 되물었다.

“무슨 소립니까…?”

“기억상실에 관련해선 나도 먼 친척과 술잔을 주고받다가 꽤 깊은 대화까지 들어갔던 적이 있소. 기억상실은 단순한 게 아닌 굉장히 여러 방면과 형태를 띠고 있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이 존재하지. 그것은 뇌의 구조와 활동량이요. 학생네 세대는 컴퓨터와 친숙하니까 그걸 예로 들면 이해하기 쉽겠군.”

신호등에 걸리자 택시기사는 살짝 답답한 기분을 느꼈는지 옆 창문을 조금 열었다. 우뚝 솟아 있는 도심의 건물들 사이로 햇빛이 비스듬이 들어와 택시 창문을 넘나들고 있었다. 거기에 비쳐진 무중력에 몸을 맡긴 채 이리저리 얽히고설키는 먼지들을 바라보면서 성진은 택시기사의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성능이 굉장히 뛰어난 컴퓨터가 있소. 그것이 어떤 바이러스나 사고로 하드를 포맷했다 칩시다. 그게 자의든 타의든. 그러면 컴퓨터가 내제하고 있는 정보는 원점에 가깝게 변하지요. 백지장 비슷하게 된단 말입니다. 그럼 그 순간에는 조금 사양이 낮아도 여러 정보를 간직한 컴퓨터가 더 뛰어나보이기에 주목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조금 영악한 자들이라면 사양이 뛰어난 컴퓨터의 가능성을 선택하죠. 눈에 보이는 게 아닌 앞으로의 내제된 가능성을 파악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컴퓨터를 자신만의 고사양 프로그램과 정보로 채워나갑니다. 물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이죠.”

“그럼…….”

택시기사는 어쩐지 담배를 피우고 싶어하는 기분을 느끼는 것 같다. 적어도 성진이 보기에는 그렇게 느껴졌다. 그의 왼손이 불안하게 핸들을 만지작거렸기에.

“아까 잠깐 학교를 보면서 했던 대화로 미루어보건데… 그녀는 이제 막 기억을 되찾아가는 단계 아니오? 기억의 조각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방어 기제를 확고히 하는 것도 더없이 중요하오. 그렇지 않으면…… 세상에는 천재의 두뇌를 이용해서 돈을 벌겠다는 야심을 가진 암적 존재들이 널려있죠. 그걸 조심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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