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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가을을 조금이라도 더 빛나게 유지해보려는 듯 전날의 화창함과 다를 바 없는 햇빛이 창틀을 내리쬐었다. 창문에 쳐진 커튼으로 오전 햇살이 힘겹게 스며들었고, 성진은 그 옆 침대에서 자고 있는 것처럼 누워 있었다.
어디까지나 ‘자고 있는 것처럼’이다. 실제로 성진은 깨어 있었다. 머릿속은 굉장히 부스스하긴 했지만. 때가 점심시간을 달리고 있는 만큼 적잖은 시간을 잔 것 같은데 그에 걸맞지 않는 느낌이 엄습했다.
‘피곤해…….’
이렇게 피곤한데 내가 왜 깨었더라… 라고 자각해보던 성진은 간신히 익숙한 진동 소리가 났던 걸 떠올렸다. 머리맡에 둔 핸드폰이 울렸던 것이었고, 그걸 받을 정도로 정신이 돌아오지 않아 결국 못 받았던 것이었다. 성진은 누구한테 왔던 것인지라도 확인하기 위해 손을 더듬어서 핸드폰을 쥐었다.
그리고 그 순간 다시 핸드폰이 울렸다. 우우우우웅…. 약간 놀란 성진은 발신자 표시를 확인할 생각도 못한 채 반사적으로 받았다.
“여보… 세요…?”
“나야.”
조금은 뻔뻔하다시피 할 어조로, 어투로, 마디로. 그러나 성진은 그 너무나도 간략하고 건성이기까지 한 음성의 주인공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한량없이 늘어지려던 정신이 번쩍 하고 돌아왔다.
“은선영?”
“어제 한 번 만났을 뿐인데 바로 알아채주다니, 고마운데?”
핸드폰 너머로 살짝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성진은 자신도 모르게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아 온 정신을 집중해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그가 이 상황에 관한 하나의 위화감 정체를 밝혀보려는 시도를 하기도 전에, 그녀가 먼저 짧고 간략하게 자신의 용건을 말했다.
“캠퍼스 중앙도서관 뒤쪽 별관 알지? 베이지색 벽돌로 지어진 그곳. 옥상에서 만나자고.”
“자… 잠깐. 너 어떻게 내 폰번호를….”
“아, 그러고 보니 시간을 깜빡했네. 음… 뭐 어제 비슷한 시간으로 하지. 1시 반쯤.”
성진의 물음은 깡그리 무시한 채 자기 할 말만 하고 끊으려는 선영. 성진은 간신히 그 짧은 사이를 파고들어 자신이 수동적 성격이 아님을 확립하려 했다.
“이봐! 난 아직 가겠다고 답변한 적 없어.”
“와야 할 걸?”
성진이 무슨 소리냐고 반문할 틈은 없었다. 그런 계제조차 그녀에겐 필요 없는 단계라 치부되는 것처럼 연이어서 부드럽게 속삭이듯 목소리가 흘러나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건 성진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을 정확히 집어내고 있었다.
“내가 왜 그랬는지를 설명해야 하니까.”
성진은 잠시 ‘자신의 폰번호를 어떻게 알았나’와 같은 궁금했던 점과 황당했던 점이 모조리 머릿속에서 망각됨을 경험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