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난 아주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평범한 고등학생이라...
성적때문에 집에서 부모님께 꾸지람을 듣기도 하고, 학교에서는 특별히 말썽을 일으키
거나 하지는 않지만, 시비거는 놈이 있을때 싸움또한 피하지는 않는다.
남자고등학교란 곳이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우리학교 또한 저 잘났다고 나서는 놈들
이 있고, 힘자랑하는 놈들이 있고 그런놈들끼리 싸우고 소란떨고 끌려가고...
너무도 평범한 일상... 그러나 권태를 느낄수는 없었다. 나만이 아닌 다른 모든 주위
의 친구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나에게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내게 있어서 참혹한 비극
의 시작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그 유혹은 너무나도 달콤하게, 유유히 다가
왔다......
"야! 나종민!!" [또 그놈이다. 젠장!]
"집에가냐? 요새 너무 공부만 하는거 아냐?" [상대하지 말자]
난 못들은척 이어폰에 흥얼거리며 걸어갔다. 가만히 있을 놈도 아니지만 말려들고 싶
지 않다. 놈때문에 또 학생부에 끌려가는 것도 이젠 지겹다 못해 짜증이 난다.
"나종민! 사람말이 말같지 않냐?"
어깨에 손을 올려놓는다. 내 몸에 손대지 말라고 지난번에 경고했던 일이 갑자기 생각
났다. 난 놈의 팔을 잡아 꺽고 팔꿈치로 팔을 내려쳤다. '우직' [이런! 크게 다쳤겠
군...]
어디서 보고 있었는지 지겨운 학생부 사회선생이 내 팔을 잡고 나의 따귀를 후려 갈겼
다. 맵다... 여자인데도 저 선생은 상당히 손이 맵다..
"나종민! 너 또 싸움질이야? 너요새 왜그래? 엉?"
"죄송합니다." 째려보는 눈길이 느껴진다.
"너희들은 철호를 양호실로 데려가고, 종민이 넌 따라와!"
선생의 이름은 김혜원이다. 사회선생이고 여자인데도 학생부에 있다. 그리고 나의 담
임이다. 손도 맵고 말도 거칠지만 그렇다고 나쁜사람은 아니다. 벌써 몇번이나 나의
정학을 막아준 것도 담임덕분이니까.. 좋은 사람이지만 나와는 악연인 모양이다. 나역
시 담임을 인간적으로 좋아하지만 나때문에 담임은 늘 골치를 썩고 있다.
그래서 악연이다...후후
"나도 이제 너에게 이런 충고 하는게 지겹고, 더이상 해줄말도 없다. 정말 이럴수 밖
에 없는거니?"
"죄송합니다"
"죄송하다고 해결되는건 아니야 그말도 이젠 지겨워!!"
옆에 지나가던 한문선생이 나에게 집적대기 시작한다. 한문선생은 담임을 좋아하고 있
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얘기지만 정작 담임만은 모르는 모양이다. 아니지 어쩌
면 알면서도 모른척 하는지도...모르겠다.
"이녀석! 또 끌려왔냐? 너때문에 김혜원선생이 얼마나 힘들어 하시는지 알고나 있어?
나쁜녀석 같으니라구. 선생님이 너무 잘만 해주시니까 그래요. 이런 녀석은 따끔하게
맛을 보여줘야 되는데..."
"됐어요.박선생님. 나종민 너는 여기 앉아서 반성문 20장 쓰고 있어. 어떻게 쓰는지
는 이젠 전문가가 됐을 테니까..."
한문선생도 좋은 사람이다. 확실히 나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는것 같다. 다들 나쁜사
람들은 아니니까...
봄이라 그런지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무척이나 달콤했다. 난 어릴적 좋아하던 동
요를 흥얼거리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나종민! 반성문쓰라니까 잠을자? 선생님이 빵좀 사왔으니까 이거 먹고 어서 집에가"
담임이었다. "감사합니다"
늘 이런식이다. 따귀를 맞아도 욕을 먹어도 담임을 싫어하기는 힘들다. 시계를 보니
7시30분이었다. 벌써 수업이 끝난지 한참이나 지난거다. 빵을 먹고 집에가려 담임과
함께 일어섰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면서도 담임은 아무말이 없다. 사실 아까 담임의 말대로 더이상
할말도 없으리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철호새끼만 아니었어도. 철호는 꽤 오래
전부터 우리학교에 있던 폭력써클의 참모다. 체격이 좋고 운동을 즐기는 나를 영입하
려 계속 집적대는 중이다. 계속 집적대다가 우두머리가 와서 달래고 가입을 권유하는
유치한 놈들의 계획인 거다. 쓰레기들...
"김선생님~~!!" 저멀리서 누군가 뛰어오고 있다. 양호선생이다.
양호선생은 짧은 단발에 웃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고 실제 성격도 매우 선한 그런 사
람이다. 그리고 가슴이 매우커서 친구들 사이에는 젖통이란 별명으로 불리우고 있다.
"종민이 너 또 말썽피웠구나! 철호는 그냥 팔이 빠진 것뿐이니까 일주일정도 지나면
괜찮을 거 같다. 김선생님 속좀 그만 썩혀드려 이녀석아!" 담임은 씁쓰레 웃는다.
교문앞에서 담임과 양호선생은 양호선생의 차를 타고 귀가했고 난 육교를 건너 집으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자리에 앉으니 이런저런 생각이 물밀듯 밀려왔다. 담임의 씁
쓰레 웃는 모습... 정말 아름답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새엄마는 무언가 반찬을 만들고 있는것 같다.
"그래 씻고 밥먹어라"
내가 중학교1학년때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불과 3달후에 지금의 새엄마와 재
혼하셨다. 아버지와 대학때부터 알고 지내던 학교후배셨다는데 지금은 집에만 계시지
만 원래는 정신과 의사셨었다고 한다. 나의 아버지는 변호사로 수입이 상당한 편이다
. 아버지는 고지식하지만 나름대로 성실히 자신의 일에 충실한 그런분이다.
우리집에서 문제가 있는건 요즘들어 매일같이 학교에서 싸움만 하는 나에게만 있을 뿐
이었다.
"종민이 왔니?" 상연이 누나다. 우리집 근처에있는 대학에 다니며 우리집에서 내 옆
방에서 하숙을 하고 있는 누나다. 전공은 사회학이라나? 정확히는 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상당한 미인으로 가끔 집앞까지 쫓아오는 남자들도 있는 모양이다. 하긴 큰
키에 시원한 성격, 늘씬한 몸매에 옷차림등에서 풍기는 지성미까지... 흔하지는 않은
여자임에 틀림없다. 내 과외선생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나와는 가깝게 지내는 편이다.
상연이 누나, 새엄마와 식사를 마치고 독서실에 간다며 집을 나왔다. 대문을 열고 나
오는데 아래층 아주머니와 마주쳤다. 이 아주머니는 40쯤 됐을까?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은뒤 국민학교에 다니는 딸과 함께 우리 아래층에 세들어 살고 있다. 돈암동에서
무슨 까페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
"안녕하세요?"
"....네" 어린 나에게도 늘 존대를 한다. 좀 부담스럽다...
내가 다니는 독서실앞에는 놀이터가 있는데 이근처 동네 깡패들의 아지트 같은 곳이었
다. 우리 동네 깡패들의 우두머리는 나와 동갑인 어떤 여자애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
여자애 오빠가 유명한 깡패조직의 두목인가 뭐라서 아무도 그애를 건들수 없다는 소문
이다.
독서실로 들어가다가 슬쩍보면 없을때도 있지만 대걔는 맨 구석의 벤치에 다리를 꼬고
않아 주위다른 년놈들에게 뭐라뭐라 담배피며 떠들고 있다. 꽤 이쁜것 같은데...뭐
나완 상관없지...
독서실은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혼자 운영하시는데 가끔은 딸이 총무를 보곤한다. 딸
은 사법고시를 준비한다는데 27~28정도 된것 같았다. 뿔테 안경을 끼고 있는데...별
로 이쁘지는 않았지만 엉덩이가 무척커서 옆을 지나면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키게 된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