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9화 (69/86)

00069  7장 새로운 시작 (終)  =========================================================================

후르릅.

"차 맛이 좋군. 비영의 솜씨도 아니고 아까 그 건방진 사내가 우린건가? 솜씨가 좋군."

".....겨우 찻물로 그런것까지 알아? 이 미친년이?!"

"내 입장에서는 겨우 칼질로 누가 어떤 자세로 찔렀는지 아는게 더 대단한데?"

"흥, 그런것 따위 나에겐 간단하다."

"그말 그대로 돌려주지."

조촐한 방에서 식사후 차를 들이키는 두명의 여성은 그렇게 투닥이다가 다시 조용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손님으로 방문한 단목세기가 입을 떼자 조용해진 분위기가 들썩였다.

"그 하인...많이 닮았어. 류향이랑."

"그래, 그렇지..."

"후보년들..전부 용서한거냐?"

우드득.

단목세기에게서 흘러나온 후보년과 용서라는 말에 적귀는 들고있던 찻잔을 강하게 움켜쥐었고 솜씨좋은 장인이 만들었을법한 고급찻잔은 찻물과 함께 탁자위에 쏟아졌다.

그러면서 적귀는 눈앞의 단목세기에게 흉흉한 살기가 담긴 눈으로 노려보았는데, 단목세기는 그런 적귀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차분하게 마주보았다.

"용서? 용서라고? 웃기지마! 그날이후로 아직 난...."

"그런것치고는 아직까지 얌전한걸? 예전의 너였다면 벌써 아무 후보년들 집안에 처들어가 도를 휘둘렀겠지."

씩씩거리는 적귀에게 차분히 대꾸해준 단목세기는 점차 노기를 가라앉히는 친우의 반응에 살풋이 미소를 지었다.

"그래, 바깥에 나가있으면서 성취를 이루었구나?"

"이루긴 무슨, 그저, 복수하기위해서는 몸을 낮추고 참을 줄도 알아야한다는 것을 알았을 뿐이야."

"...세상에!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불었기에 개차반이 사람이 되었을까나?"

"이년이! 누가 개차반이라는거야?"

다시한번 장난스럽게 왁자지껄한 분위기로 변한 둘은 한동안 서로를 욕하다가 다시 분위기를 가라앉혔다.

"적귀, 아니 세현아. 난 류향이를 죽인 그년들을 아직 용서하지 못한다."

"응. 나도 그래."

"...휴~ 그래? 그럼다행이고, 그나저나 저 남아랑 여아는 뭐니? 남아는 류향이를 닮았다고 치더라도 여아는.."

"오행지체다."

".....뭐?"

오행지체라는 말에 뭐라고 하려던 단목세기는 입을 빠끔거릴 뿐이었다.

오행지체란 오령문에서는 전설로 내려오는 신체로써, 본래 정파였을적 순후한 무공을 전부 완성시켜 선인이 될 수 있다는 몸이다.

그 전설적인 것이 저 작은 여아의 몸이라는 말에 단목세기는 믿을 수 없다고 반박했지만 비영이 검사한 결과라고 하자 단목세기는 입을 다물고 그저 놀라워할 뿐이다.

"그렇다면.."

"그래, 난 문주가 되지 않을 거다. 저 여아에게 문주자리를 넘기고 난 그저 총관이 될거야."

"하지만..."

"무공이라면 우선 내가 익힌 화령공은 가르치고 있어. 정말 무시무시한 속도로 익히더군. 조금있으면 소주천도 가능할 정도야. 그래서 너에게 부탁이 있는데."

적귀의 말에 단목세기는 한숨을 내쉬며 찻잔을 내렸다.

뒤이어 나올말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분명 다른 4가지 기본공을 저 아이에게 가르치라는 이야기겠지.

그건 어렵지 않다. 우선 그녀는 오령문의 무공서를 담당하는 직위를 가지고 있기도하고 기본공이라는 것도 밖으로 빼돌리기만 어렵지 오령문 안이라면 전해주기도 그리 어렵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녀가 걱정하는 것은 바로 친우였다.

류향. 고아였던 친우의 단 하나밖에 없는 친혈육이자 남동생, 그리고 자신의 약혼자였던 그와의 약속을 그녀 스스로가 어기게 될것을 생각하자 절로 한숨이 나온 것이다.

동생을 끔찍하게 생각하여 그의 말이라면 껌뻑죽는 적귀임을 알기에 그의 유언을 깨버리겠다는 그녀의 말에 단목세기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런 단목세기의 태도를 알아차렸는지 적귀는 방금 전과는 달리 시선을 내리깔며 괜히 깨어진 찻잔을 치우고 있는데 그런 친우의 모습에 단목세기는 입술을 살짝 깨물고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약혼자의 유언, 누나를 도와달라는 말을 지켜야했으니까.

비록 그의 누나이자 친우인 적귀는 그의 유언을 어긴다지만 오령문을 바꾸겠다는 본래 목적에는 부합되는 것이니 상관없다고 생각하면서 적귀의 청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밖에도 다른 4명의 후보에 대한 정보도 넘기고 어떻게 그녀들을 처리할지 말을 맞추다가 달이 머리위까지 올라가게 되었지만 적귀의 방에서 흘러나오는 빛은 꺼질줄은 몰랐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일찍 적귀의 방에서 나온 단목세기는 초췌한 얼굴로 호위무사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섰고 그 뒤로 적귀의 거처를 드나드는 사람들은 수가 많아졌다.

"아, 진짜, 한번에 오던가 아니면 하인의 수를 늘리던가 힘들어죽겠네."

"오, 오빠..."

"내가 말이야. 아무리 거지출신이라지만 남자라고? 체력도 근력도 여자에 비해서 거지같은 남자란말야. 그런데 일하는 건 왠만한 여자 뺨칠정도로 험하게 굴리는데 골병나지않고 어떻게 베기라는..."

"오빠아~~"

꽈악꽈악.

"간식 줘? 미안. 오늘은 이 오빠가 힘들어서 않되겠다. 정말 죽을 것같단말야."

"호오~ 그래 죽.을.것.같단말이지?"

흠칫.

어린티와 애교가 깃든 장우의 목소리가 아닌 장난스럽지만 성숙한 여인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리자 나는 천천히 그리고 살짝 고개와 시선을 돌려 뒤를 돌아봤고 그곳에서는 어두운 얼굴로 하얀이만 드러낸 체 웃고있는 아가씨의 모습이 보였다.

"후후후, 그래? 죽을것 같다라."

"그, 그게..."

"내가 요즘 손님을 많이 불러들여서 고생한다고 이렇게 선물을 들고왔더니 죽을것같다고 칭얼거리는 하인이라니...정말 죽여주랴?"

"사, 살려주세요."

"살려주지 단! 죽기 직전까지 굴려주겠다."

아가씨의 말씀에 그것이 무슨 뜻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어떤 생각이 든 나는 식은 땀을 흘리면서 그건 아니겠죠?라고 물어봤지만 아가씨는 환하게 웃으시면서 내가 생각하는 그건 아니라고 한다.

"휴우~"

"그것보다 몇배는 더한 수련이지. 축화한다. 넌 내일부터 이 적귀가 직접 무공을 가르쳐주겠다는 거다. 어때? 기쁘지?"

...난 왜 저말이 어서와 지옥은 처음이지?라는 말로 들릴까?

결국 다음날부터 난 적귀 아가씨로부터 직접 무공을 사사받게 되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오령문의 기본공이나 아가씨의 독문무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아주 기초적인 단련을 받는 것 뿐이었는데 생각보다 내가 능숙히해내자 무공의 소질이 있다면서 더욱 나를 험하게 굴리셨다.

뭐, 그 보답으로 비영누나와 장우가 집안일을 떠맡아다른 편으로는 편했지만 차라리 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되었다.

그만큼 아가씨가 나를 굴리시는게 힘들었는데 왜 갑자기 나에게 이런 무공을 가르치는지 모르겠다.

누누히 말했듯이 남자는 여자보다 신체적으로 벽이 있다고 말할만큼 그 능력이 떨어지니까.

그 이유를 한 번 물어봤는데 대답대신 입을 꾹 다무시고 나를 노려보시기에 그냥 닥치고 구르는 수밖에 없었다.

당가나 팽가에서도 질리도록 했던 기초단련이라 자세만큼은 완벽했지만 그동안 거지로 활동해온 이 신체능력은 엄청나게 저급한지라 몇 번밖에 못했지만 인간이란 위기의 순간에 잠재능력이 드러낸다는 말이 사실인듯 아가씨의 손찌검이나 협박등에 없는 힘까지 쥐어짜자 겨우 몇달만에 내공을 담을만큼의 신체가 되었다.

그러자 이제 슬슬 단전이 형성되면서 조금씩 내공이 모이기 시작했는데, 잡귀들을 잡아먹고 영혼을 불린 탓인지 아니면 이 신체의 재능이 그만큼 있는지 몰라도 꽤 빠른기간내에 내력이 모이자 아가씨는 무공수련하는 것을 그만두게하시고 다시 하인으로 되돌리셨다.

무공으로 다져진 몸을 이용하여 집안일을 하자 전보다 더욱 쉽고 빠르게 일을 할 수 있었는데,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장우나 비영누나는 왠지모를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때로는 아깝지 않느냐며 더 높은 무공을 수련받을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그 둘은 말했지만 내쪽에서 그것을 거절하였다.

이미 전의 육체로 천하를 떠돌아다니면 뛰어난 무공을 가진 남자가 어떤취급을 받는지 자세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종마, 뛰어난 성노리개.

여자들의 욕심에 겨우 그정도로밖에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을(그렇지 않은 남자 무인도 있다지만 그것은 아주 극소수이다.) 잘 알고 있기에 난 이정도에서 마치기로 하였다.

그저 이렇게 팽가로 되돌아가지 않고 아가씨의 밑에서 하인으로 사는 것이 몸은 고되지만 마음편하다고 생각하며 이곳에 줄곧 머무르려했지만 세상이라는 것은 결코 나에게 평온이라는 것을 주지 않을 모양이다.

왜냐하면 흑귀라는 문주후보가 이 저택에 방문한 뒤, 나를 발견하고서 아가씨에게 나를 달라고 졸라댔기 때문이다.

아가씨는 강경하게 그것을 반대하였지만(전에 방문했던 무례하신 손님도 왠일인지 아가씨의 편을 들어주셨다.) 외부인에 대한 검사는 꼭 해야한다는 여론이 모아지자 하는 수 없이 난 흑귀라는 거구의 여성을 모시는 하인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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