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7 7장 새로운 시작 =========================================================================
폭웅파에서 아가씨의 수신호위라는 비영씨의 아래에서 교육을 받고 음식을 받아먹으며 시중을 들며 몇달간 시간을 보내자 우리는 비쩍마르고 땟국물이 줄줄흐르던 거지새끼에서 꽤나 귀염있는 아이들의 모습으로 변했다.
물론 귀염성있는 어린아이라는 모습이라는 것이지 본체인 팽영령마냥 벌써부터 여자들이 환장하고 달려들만큼 아름답고 매력있는 모습은 아니다.
평범, 혹은 그 이하의 외모를 지닌 하연의 육체였기에 아직은 괜찮았다.
'이런것도 나쁘지는 않아.'
그 동안 영령이라는 몸으로 지내다보니 여자들이란 성욕에 지배되는 짐승과 같은 모습밖에 보지 못했는데, 이런 평범한 외모의 어린몸으로 보는 여자들은 상냥하고 이해심많은 '인간'이었다.
물론 그 중에는 정말 짐승이라고 표현해야할 개차반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영령이었을 때보다는 훨씬 좋다.
끈적거리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지 않고 호의와 맑은 눈으로 바라보면서 내 요구를 받아주는 폭웅파의 시녀누나들이나 비영씨, 가 아니라 비영누나(좀 친해지니 누나라고 부르라고 하였다.)의 모습은 내가 그토록 바라던 평화, 그것이다.
"오빠, 오빠, 나 드디어 기를 느끼게 되었다"
"잘했네. 우리 장우."
"헤헤헤~"
충분한 휴식과 음식덕택에 장우의 몸은 쪼그라든 생쥐에서 뛰어난 근골을 가진 여자아이로 변하게 되었는데, 그런 장우의 근골을 보게된 아가씨와 비영누나는 장우에게 오령문의 기초적인 무공을 가르쳤다.
장문인의 허락없이 외인을 제자로 받아들여 문파의 무공을 가르친다는 것은 정파에서는 꿈에도 꾸지 못할 행위이기는 했지만 적귀아가씨는 사파인이고 유력한 차기 장문인이었으며 장문인의 수양딸이자 사파인이었으므로 이런 행위는 괜찮다며 비영누나가 말했다.
오령문의 기본무공, 정파에서 기부를 많이한(다른말로 금으로 떡을 친) 속가제자에게나 가르쳐 줄법한 무공인 기본오령공 중 하나, 화령공은 단전속에 조그마한 불의 기운을 심는 것인데, 생각보다 난이도가 높아 아주 작은 불씨를 만드는 것만해도 몇년이나 걸리는 것이지만 장우는 놀랍게도 단 몇주만에 그것을 해내었다.
"우! 우 이녀석. 당장오지 못해!"
"힉, 큰일이다."
"어서 가봐, 나중에 비영누나에게 볼기얻어맞지말고."
"힝. 알았어. 그럼 나 갈께~!"
나를 껴안고 가슴팍에서 얼굴을 부비적거리던 장우는 곧 잘 다져진 연무장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곧 비영누나의 크고 우렁우렁한 소리가 들렸다.
꽤나 거리가 멀지만 또렷하게 들리는 것을 보면 내기까지 섞은 듯했다.
"이럴때가 아니지."
장우의 수련을 돌보느라 바쁜 비영누나를 대신하여 아가씨의 시중을 봐야하기에 얼른 그릇을 들고 주방으로 향했다.
빨리 돌아가지 않으면 아가씨께서 짜증을 부리실 수 있으니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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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오령문으로 돌아간다."
"드디어.."
일주일 뒤, 아가씨의 말에 비영누나는 매우 기쁘다는 듯 목소리가 떨렸다.
'오령문으로 돌아간다라...'
아가씨의 문파이자 비영누나가 자란 오령문으로 돌아간다는 말에 장우는 고개를 갸우뚱거렸고 나는 다가올 미래에 대해 생각하였다.
현재 폭웅파에 있는 아가씨의 부하라고는 비영누나밖에 없고 하녀와 하인이라고는 나와 장우밖에 없었는데, 오령문으로 돌아가면 전에 말했듯이 아가씨를 돌보는 다른 하녀들이 많을테니까 말이다.
분명히 아가씨가 전에 말했듯 하인이라고는 그러니까 아가씨를 시중드는 남자는 나말고 없다하였다.
그러면 난 아가씨가 머무는 곳에서 청일점이 된다는 것이 아닌가?
비영누나는 수신호위라 그런지 무척이나 털털하다지만 하녀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갖가지 궃은 일을하고 때로는 모시는 사람들의 비밀이나 화풀이용이 되어버리는 하녀들은 무사들과는 다르게 화를 풀 수단이 없기에 신입을 아주 심하게 괴롭힌다.
장우는..거의 비영누나의 제자나 다름없기에 막내라고하더라도 괴롭힘을 당하지 않겠지만 나는 이야기가 다르다.
오로지 아가씨의 시중을 드는 하인, 그것도 별로 잘생기지 않은 남자라면...
부르르르.
어떤 괴롭힘을 당할지 생각만해도 몸이 절로 떨려온다.
"오빠 왜그래? 어디 아파?"
"아, 아니. 그냥. 좀.."
곁에서 내가 몸을 떠는 것을 느낀 장우가 작지만 꽤 굳은살이 박힌 손으로 내 손을 잡으면서 힘내라고 응원을 해준다.
그런 장우의 모습에 살짝 미소를 지은 나는 아직 작은 장우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주면서 아가씨와 비영누나의 말에 집중하였다.
그녀들의 대화는 그저 가벼운 추억팔이였지만 아직 오령문에 가지 않은 나로써는 귀중한 정보였기 때문이니까.
그리고 다음날, 폭웅파에서 지원해준 마차에 오르며 아가씨, 장우, 비영누나와 같이 앉으며 주전부리를 꺼내거나 길거리에서 나도는 괴담, 혹은 옛날이야기같은 것을 말했다.
어렸을 적부터 무공만 죽어라 익히신 덕분인지 아가씨는 이런 이야기를 잘 모르시는데 그래서인지 하나씩 이야기를 할 때마다 눈을 반짝이는 아가씨의 모습은 우습게도 어린아이와 같았다.
...이 세상에서 성인이라는 16세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저, 궁금한게 있는데요."
"웅? 뭐데 마해바(뭔데 말해봐?)"
"아가씨께서는 왜 폭웅파에 오셨을 때, 다른 하녀들을 데려오시지 않으셨는지요? 저를 받아들이실 때 하녀는 엄청 많다고 하셨는데..."
내 말이 끝나자 입안가득 과자를 채우신 아가씨는 와그작거리는 소리와 함께 금방 그것들을 삼키고서는 비영누나의 눈치를 슬슬보고서 말했다.
"어..그게, 사실을 말하자면."
뒤이어 나온 아가씨의 말에 난 안도의 한숨과 왠지모를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아가씨께서 말씀하신 많은 하녀들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고 오령문으로 돌아가더라도 아가씨의 하인은 오로지 나 하나뿐이라는 것이다.
나에게 하녀가 많다고 한 것은 여자 특유의 허세라고나 할까?
거지라고는 하더라도 남자인 나에게 얕보이기 싫어서 그런 허세를 부렸다고한다.
"그럼 아가씨는 왜 오빠말고 다른 사람을 뽑지 않은 거예요?"
말을 다 들은 장우는 직접적으로 아가씨에게 내가 묻고 싶었던 것을 물었고 그것을 들은 아가씨는 잠깐 한숨을 쉬고서 비영누나에게 눈짓을 하자 누나는 특유의 버릇인 안경을 벗고 콧잔등을 주무르는 행동을 하며 장우의 질문에 답해주었다.
오령문의 간부들은 전부 문주님의 수양딸이자 무공에있어서는 거의 천재라고 불리는 인종들인데 그 중에서 우리 아가씨가 최고라고한다.
그도 그럴것이 아가씨는 지금 무인들이 그토록 원하는 경지인 화경에 거의 한발짝만 남겨두는 최절정의 끝자락에 올라와 계시기 때문이다.
이것때문에 나머지 간부들이자 차기 문주후보인 다른 네명의 아가씨는 우리 아가씨를 죽이기 위해 하녀나 하인들을 매수하여 암살을 명령하였다.
그 사실에 우리아가씨는 분노하셨고 이내 가장 믿을 수 있는 비영누나를 제외한 모든 하녀와 하인들을 도로 베어버렸다는 것이 누나의 설명.
때문에 문주님에게 벌을 받아 폭웅파의 시찰이라는 명목으로 오령문에서 쫓겨나버렸다가 오늘에서야 용서받고 돌아가게 되었다.
그 말을 다들은 나는 담담했지만(정파도 그 못지않게 막장이었으니까) 장우는 옆에서 벌벌 떨었다.
"저, 저하고 오빠도...죽일거예요?"
"날 배신한다면."
"안해요! 절대로 안할게요!"
부들부들 떨면서 아가씨에게 죽일거냐고 물어보는 장우의 말에 아가씨는 평소 싱글거리는 얼굴을 단단하게 굳혀 저 북쪽의 빙산마냥 차가운 기운이 물씬 풍기는 대답하였다.
그 차가움을 느꼈는지 장우는 발작하듯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다고 목청이 터져라 소리를 쳤는데, 그 모습을 본 아가씨와 비영누나는 피식 웃으면서 거의 울기 직전인 장우를 끌어안아 무릎위에 앉혀 머리를 쓰다듬으며, "착하다"라고 달래주었다.
"흐음~ 역시나랄까? 하연이는 별로 두렵지 않은 모양이네?"
울먹이다가 아가씨의 손길에 잠든 장우를 받아든 나는 조그맣게 중얼거리는 아가씨의 말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답했다.
아가씨를 배신할 생각이 없으니 두려움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고.
그 말을 들으신 아가씨는 고개를 푹숙이시다가 잠든 장우를 깨울정도로 아니, 마차 밖 말들이 놀라버릴정도로 박장대소를 하셨다.
"그래, 맞아. 그렇게 생각하면 나를 두려워하지 않겠네. 하하하! 정말~ 넌 남장부구나? 하연이는."
"...그런가요?"
"그렇다고! 보통 사내자식이라면 우야처럼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저는 살려주세요'라고 아양떨거나 했을 건데말야. 정말 넌 특이해."
"그래서 싫으십니까?"
"아아아~니? 정말 좋아. 문칙(문파의 법칙)만 아니라면 당장이라도 남편으로 삼고싶을만큼."
"아가씨!"
"알아, 알아."
그게 무슨말이지?
날 남편으로 받아들이고 싶다는 말은 제쳐두고 왜 그런 문칙이 있는지 이상하게 여겼다.
이 세상은 꽤 성적으로 문란하고 자유롭기에 까놓고 말해서 장우정도의 나이라면 남자맛보는 것은 그리 흠이 될 일도 아니다.
물론 남자의 경우에는 반대로 정절을 요구받지만서도...
아무튼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자유로운 성문화로 인해 구파의 스님(비구니)이나 (여)도사들을 제외하면 문파에서 성관계를 맺는것을 억압하지 않는것이 상도덕이거늘 왜 이 오령문은 그것을 막는걸까?
또다시 궁금함이 들어 그것에 관해 아가씨와 비영누나에게 물어보려했지만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아가씨의 '절대 물어보지마!'라는 눈빛으로 그저 조개처럼 꽉 다물뿐이었다.
하루, 이틀, 사흘, 일주일.
거의 보름에 가까운 시간동안 마차를 타고 이동하자 드디어 우리의 최종목적지인 오령문에 도착하게 되었는데, 처음보는 오령문은 마치 작은 도관(도교의 사원)처럼 보였다.
명망있고 영향력있는 사파라고했는데 사실은 거의 몰락하는 문파가아닐까 싶었지만 그런 마음은 곧 바람앞의 촛불마냥 훅하고 꺼지듯 사라졌다.
작은 도관안에 보관되어있는 태상노군이 그려진 족자를 잡아당기자 커다란 돌이 움직이는 듯한 소리와 함께 바닥이 흔들리면서 아까까지만해도 보이지 않던 계단이 보였기 때문이다.
"자, 들어가자."
아가씨와 비영씨의 뒤를 따라가는 우리는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따라내려가며 천장에 매달린 박쥐와 벽을 기어다니는 벌레들을 보다가 빛이 환하게 비춰지는 동굴의 출구에 다가갔다.
그 출구로 나서자 놀랍게도, 웅장하면서도 보는 이로하여금 기를 죽일만큼 검고 단단해보이는 궁궐들이 눈을 가득메웠다.
중원과는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흑색의 거궁은 회회족(아랍인)들의 것과도 비슷해보였다.
그 거대한 모습이 두눈 가득들어와 놀라는 우리의 모습을 잠깐동안 내버려두던 비영누나와 아가씨는 우리의 등을 토닥이며 어서들어가자고 재촉하였고 나와 장우는 잘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아가씨와 비영누나의 뒤를 병아리마냥 졸졸 따라갔다.
가까이 다가가자 더욱 크게보이는 궁궐의 성벽은 문이 보이지않는 매끈한 성벽이었는데, 아가씨가 열라는 한마디를 하자 어디서 나타났는지모를 여자들이 성벽의 어떤 부위를 팔에 힘줄이 튀어나올정도로 강하게 잡아당겼다.
그러자..
그르르르.
무거운 것이 움직이는 소리와함께 매끈했던 성벽에서 조그만 틈이 벌려지더니 엄청큰 문이 되어 커다란 짐승의 아가리마냥 옆으로 쩍벌어졌다.
마치 우리를 집어삼키고싶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