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5화 (65/86)

00065  7장 새로운 시작  =========================================================================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나랑 장우는 같이 손을 잡고 마을을 누비벼 구걸을 하였다.

조그마한 장우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글썽거릴 듯한 동그란 눈으로 사람들을 쳐다보고 난 곁에서 배고파 죽을 듯한 표정과 목소리로 구걸을 하니 오늘도 꽤 먹을 것을 얻었다.

우리 둘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후미진 골목길에서 바가지 속 음식을 퍼먹고있었을 때, 그녀들이 나타났다.

상인들에게 행패를 부리며 자릿세를 뜯어먹는 주먹패들말이다.

전의 육체라면 저런 여자들 따위 한 손으로 들어올려 날려버릴 수 있겠지만 지금의 난 말라비틀어진 13살의 남자아이일 뿐이고 내 곁에는 지켜야할 10살짜리 여자아이도 있다.

그래서 조심조심하면서 먹던 바가지를 치우고 골목길 구석으로 붙었는데, 그런 내 노력이 통했는지 주먹패들은 우리들에게 시비를 걸지않고 그저 험상궃은 얼굴로 지나쳤다.

아니, 지나치려했었다.

"어이, 이것들봐라? 빌어먹는 거지새끼들 주제에 부부놀이하는데~"

"이 미친년아. 지금 그게 중요하냐? 얼른 수금하러 가지 않으면 언니들이 우릴 죽일거라고!"

"퉷, 씨바, 언니는 무슨 언니. 내가 그동안 그년들에게 먹인 돈이 얼마인데 아직까지 우리는 피래미아냐? 기분도 더러워죽겠는데, 잘됐다. 이것들 좀 패고 갈란다."

주먹패들 중에서 가장 건장해 보이는 여자가 주먹을 쥐고 관절끼리 맞부딪히는 소리를 내면서 우리 앞에 다가왔다.

아무래도 이 마을을 지배하다시피한 사파, 폭웅파의 조무래기인 듯하다.

이 육체의 전 주인, 하연의 기억을 빌리자면 이 마을의 유일한 문파이었지만 그다지 수준이 높아보이지는 않았다.

문주라는 여자는 이제 기를 몸에 실을 줄 아는 2류이고 간부라고 불리는 자들도 이제 막 기를 느끼기 시작하는 3류였으니 말이다.

뭐, 그 기억으로부터 몇년이 지났으니 실력이 좀 올랐겠지만 그렇다고해서 그리 부담되는 수준은 아니었다.

기억에 보이는 그녀들의 무공을 보자면 허접한 내공은 둘째치고 초식도 형편없는 수준이었으니까.

그래도 평범한 민초들에게는 무서운 건 마찬가지이다.

어찌됐든 그 조무래기 사파에서도 조무래기인 눈 앞의 여자는 아무래도 원하던 것을 이루지 못해서 화딱지가 난 것을 우리에게 풀고싶어하는 것 같았다.

우두득, 우득.

목을 좌우로 꺾으며 다가오는 그녀의 모습에 난 장우를 등뒤로 숨겼고 그런 내 모습에 그녀는 더욱 얼굴을 찌푸리며 불만어린 목소리를 내뱉었다.

"거지새끼들이 말이야. 거슬리게 오손도손 모여서 식은밥처먹는 것도 짜증나는데, 씨발, 사내새끼 주제에 어린년을 보호하는 모습이 상당히 거슬려."

"장우야, 도망가, 얼른. 어서."

여자가 그르렁거리는 소리에 장우에게 속삭이듯 도망치라고 말했지만 겁을 집어먹어 다리에 힘이 없는 것인지 바르르 몸을 떨면서도 내 등뒤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나와 장우의 모습에 더욱 인상을 찌푸리는 여자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주먹패들을 보면서 다가오는 고통에 대비해 눈을 감고 몸에 힘을 주고 있을 때, 이 상황에 들어맞지 않는 느긋하면서도 태연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라? 덩어리 네년이 지금 왜 여기에 있니?"

"헙! 저, 적귀님."

살짝 눈을 뜨고보니 눈 앞에는 검은 무복에 허리에는 얇은 협도하나를 차고서 머리를 한데 그러모아 묶은 여자가 나와 험상궃은 여자사이에 서 있었는데, 그녀의 얼굴을 본 험상궃은 조무래기는 이마에 팥죽같은 땀을 흘리면서 멍청하게 서 있었다.

"그래, 내 이름이 적귀인건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저기 쟤들도 알고있는 거니까 굳이 네가 큰소리로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는데..내 물음은 그게 아니잖니? 왜 여기서 엄한 애들에게 주먹질을 하려는 거냐고 물었잖아, 문주에게 듣기로는 지금 수금하려 갔다는데, 설마 거지들한테도 수금받니?"

"그, 그게 아니오라."

"그게 아니면 지금 내 눈앞에서 아직까지 주먹을 치켜드는 모습을 보고 내가 뭐라고 해야하니? 어쭈? 아직도 손 안내리니? 이거 그거니? 새로운 방식의 하극상? 아하! 어쩐지 문주가 내 얼굴을 똥씹은 얼굴로 쳐다보더니 너희들이 작당하고 하극상벌이는구나? 그치?"

"아, 아닙니다. 요, 용서를..."

"용서고 나발이고 내 질문에 답이나 하라니까?"

"그, 그것이."

덩치있는 여자를 순전히 말로 제압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그리고 장우도 놀란듯 입을 벌려 감탄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일이 마무리가 된 듯 주먹패들은 허둥지둥대면서 골목길을 벗어났다.

그녀들이 골목길에서 사라지자 우리에게 뒷모습만 보이던 여자가 몸을 돌려 우리를 내려다보았는데, 우리가 입을 벌리고 놀란 모습이 웃긴듯 킥킥대는 그녀는 나와 그다지 나이차가 큰 모습은 아니었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검은 무복에서도 알아볼수 있을만큼 볼록튀어나온 앞섬이나 골반으로 볼 때, 성숙해질대로 성숙한 모습으로 보였지만 그녀의 얼굴은 나보다 3, 4살정도 더 나이를 먹은 얼굴이었다.

눈꼬리가 졸린듯 쳐져있으며 옅은 미소가 지어진 그녀의 얼굴을 보면 무척이나 마음씨가 좋아보이는 누나로 보였는데, 방금 그 덩치큰 여자가 적귀라고 부른 것이나 폭웅파의 문주를 문주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그보다는 더 윗급의 사파에서 활동하는 무인같았다.

그녀는 여전이 바보같은 표정을 짓는 우리를 보며 킥킥웃다가 괜찮냐고 물어보았고 나는 그녀의 말에 얼른 정신을 차리고서 곧바로 땅에 처박을 듯 허리를 구부려 고맙다고 인사를 하였다.

"고, 고맙습니다. 무사님."

"고맙습니다. 무사님."

"쿡쿡. 참, 귀엽기도하지. 네 동생이니?"

"네."

내 인사에 뒤이어 장우까지 같이 허리를 구부리자 조금더 소리내 웃던 그녀는 허리를 펴고 정면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날 정면으로 바라보며 장우가 내 동생이냐고 물었다.

장우는 쑥스러운지 한번 인사를 하고나서도 계속 내 뒤로 숨으면서 고개만 살짝 빼꼼히 드러내어 그녀를 쳐다보았는데, 그 모습이 그녀에게는 좋게 비추어졌는지 더욱 깊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여기는 저런 애들이 들락날락 거리는 곳이니 되도록이면 들어오지 않는 것이 좋아."

"네, 말씀 세겨듣겠습니다."

"흐음~? 말투가 꽤나 고풍스럽구나? 거지이기전에 어디 부잣집의 도련님이었니?"

아차, 당수연과 팽영령으로써의 삶때문인지 무인에게 그만 상류층들이 쓰는 어투와 어조를 쓰니 대번 그녀가 그것을 알아채고 지적한다.

"아, 아니옵니다. 그저, 나중에라도 거지생활에 벗어나면 하인으로써 일이라도 하고 싶어서 따라하다보니 그만..."

"...흐음?"

그런 나를 찬찬히 뜯어보는 그녀, 적귀라는 여자의 시선은 방금전 장우와 나를 바라보던 것과는 다르게 상당히 날카롭게 변했지만 시선을 피하지 않고 당당히 그녀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이렇게 빤히 쳐다보면 무례라고 여겨져 당장에 칼에 찔릴 수도 있는 일이지만 왠지 본능이 저 눈길을 피해서는 않된다고 자꾸 신호를 보냈기에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는데, 본능이 전해준 것은 정답이었는지 곧 그녀는 날카로운 기세를 풀고서 내 어깨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고 한마디했다.

"좋아. 마음에 든다. 너, 내 하인으로 받아들이마."

하지만 난 곧바로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내 등뒤에서 넝마같은 옷을 잡은 장우를 두고 떠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이라면 이 조그마한 아이가 나를 붙잡건 말건 그저 내팽겨치고 이 좋은 기회를 붙잡았을테지만 하연이라는 소년의 육체에 빙의하고나서부터는 그러기가 불가능했다.

등에 딱 달라붙어 부들부들 떨고있는 아이가 너무나도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난, 정말 어렵게 입을 열어 적귀라는 여자에게 하인을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죄송합니다. 무사님. 저를 높게 봐주신 것은 감사하지만..."

"잠깐, 잠깐. 혹시 너...지금 내 제안에 거절하는 거니? 정말?"

"....딱 잘라 말하면 그렇습니다."

"하, 하하, 하하하하하하. 우와~ 내 평생 거절이라는 것을 처음받아보네? 정말 내 제안을 거절하겠다고? 네가?"

"그, 그렇...."

스릉. 

말이 채 끝나기도전에 목가까이에 턱하니 올려져있는 환도의 모습에 눈을 크게 뜨며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여전히 깔깔 웃으면서 "거절? 거절?"이라는 말만 되풀이하였다.

그렇게 한참을 웃던 그녀는 갑자기 웃음을 뚝하고 그치더니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날카로운 기세를 뿜어내며 차가운 목소리로 짓씹듯 말을 내뱉었다.

"내가 마음씨 좋게 말하니 실감하지 못하는 모양인데, 본녀는 꽤, 아니 엄청 강한 무사란다. 그래서 거절이라는 것에 익숙하지않지. 오랜만에 변덕으로 선행 좀하니까 물로본 모양인데 아까 덩어리가 나보고 적귀라고 하지 않든? 그만큼 본녀는 아주아주 무서운 사람이야....그런데, 거절을 해?"

핏.

협도의 날을 살짝 움직이자 때로 검게 물든 목에서 피가 조금베어나왔다.

차가운 금속특유의 감촉에 보통 어린이, 아니 성인이라도 벌벌떨어대었겠지만 나는 차분히 그녀를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한마디씩 딱딱끊어지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무사님이 얼마나 무서운 분이시고 대단하신 분이신지 아까 주먹패들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 홀로 하인이 되어 무사님을 따라가게 되면 제 동생은 홀로 이곳에서 거지로 살아야합니다."

"내 알 바아니다. 보아하니 저 아이도 여자아인데, 젖가슴있는 여아라면 이정도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지, 사내인 너도 이런 곳에서 살아남지 않느냐?"

"여자아이이기에 당당하고 남자아이이기에 연약하다니요? 마치 정파는 깨끗하고 사파는 사악하다는 말과 같지 않습니까?"

"....그래서? 네가 하고 싶은 말은 뭐냐?"

"제 동생도 같이 거두어주십시요."

내 한마디에 그녀는 피식 웃고서 협도의 날을 좀 더 내 목에 박고서 얼굴을 들이밀었는데, 아래로 쳐진 눈꼬리 안, 본래는 검은 빛을 내야할 눈동자에는 피빛 기운이 일렁이고 있었다.

"본녀는 물러터진 자선가가 아니야. 본녀에게는 계집종은 차고 넘칠만큼 있고 저런 쪼그마하고 겁쟁이는 가져가고 싶지도 않아."

"제 동생도 같이 거두어주신다면 저의 충성을 받으실텐데요?"

"까불지마라. 그 기개가 마음에 들어 하인으로 받아들인다하였지만 도를 넘어서면 지금이라도 목을 베어버릴테니까."

"그럼 베시지요."

내가 당당히, 예의바르면서도 올곧게 목을치라고하니 피빛기운이 일렁이는 눈동자에서 당황하는 기색이 읽혀진다. 

그리고 그 때, 나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계속 내 등뒤에서 숨어있던 장우가 내 앞으로 나와, 나를 가로막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오빠를 죽이지 말라고 말했던 것이다.

내 앞에서 대(大)자로 서서 말하는 장우의 모습에 나도 그녀도 놀랐는지 잠깐동안 가만히 있다가 한숨쉬는 소리와 함께, 내 목에 박혀있던 협도는 어느사이에 검집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하아~ 젠장, 좋아, 알았다. 알았어. 저희 남매의 두둑한 베짱에 경의를 표하며 둘을 고용하도록하마. 대신 힘들다고 칭얼거리면 당장에라도 쫓아낼 터이니 각오 단단히 해!"

"네."

"...크흡...네에에~~~"

"으이구, 어머니하고 언니들에게 욕을 좀 얻어먹을지도 모르겠네...뚝 그쳐. 본녀의 하녀가 되었으니 함부로 눈물짜내면 벌을줄꺼야? 알았어?"

"눼에에엥. 흐끅."

============================ 작품 후기 ============================

본체에 대한 이야기는 차후 단편외전-영호의 일기에서 다룰 예정입니다.

여관집아들/글쎄요. 기대는 좀...

rjsak/그런가요?

linetd/뭔가 유희왕같은 대사네요. 또 하나의 나라니..

쿤라이/금비와 싸워도 삐까삐까할 히로인입니다.

tlsdmlwnwkr/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요즘따라 자꾸만 졸려서. 병원에라도 가봐야할 듯 합니다.

육식곰/프, 플라나리아! ㅋㅋ 나중에 다시 합칠건데요?

누굴지?/사파에 가는 이유는 무공때문이 아닙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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