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4화 (64/86)

00064  7장 새로운 시작  =========================================================================

"오빠.."

훌쩍.

물기어린 목소리와 함께 코를 훌쩍이며 다가오는 기척은 적대적이기는 커녕 오히려 나를 걱정해주는 듯한 감정을 물씬 풍겼다.

그래서 잠에서 깨는척, 작은 신음소리와 함께 눈을 천천히 뜨니 10살쯤은 되어보이는 듯한 여자아이가 퉁퉁부은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 얼굴은.'

잘 먹지못해 홀쭉하고 여자치고는 조그마한 체구이지만 강아지같이 동글거리고 맑은 눈동자를 지닌 이 여아는 나와 같이 구걸하면서 내가 여동생처럼 돌봐주는 아이, 장우였다.

이 꼬마아이는 내가 거지노릇을 어느정도하다가 내 밑으로 들어왔는데, 듣기로는 마을근처에서 빌빌거리다가 여기로 끌려오게 되었다고한다.

10살이라는 나이에 맞지않게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보며 부잣집 아가씨라고 생각하고 처음에는 험하게 대했다가 밤중에 몰래 우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약해져 여동생처럼 대해주었는데, 이 아이도 내가 병에 걸렸을 때, 날 간호해주었다.

내 친누나들보다 더욱 자주, 오랫동안 말이다.

"우흐윽. 우욱."

"장우..니?"

"오, 오빠아아앙~~~으허어엉, 죽, 주느 주 아앗쩌어(죽는 줄 알았어)~~~"

눈이 밤탱이가 될정도로 울었으면서 또 울음보가 터지는 장우를 보고서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등을 토닥여주니 점점 울음을 그쳐가고 있었다.

퀘퀘한 땀냄새가 났지만 여기서 땀냄새 난다고 밀쳤다가는 더 크게 울 것 같아 꾹참고 계속 토닥이자 끅끅대다가 이제는 좀 진정을 한 듯 숨이 차분하게 안정되었다.

"다 울었어?"

"...우, 응."

"그동안 다른 사람들이 너 괴롭히지는 않고?"

"...응."

거짓말이다.

내 20몇년 생동안 이렇게 거짓말을 못하는 생물을 처음보았다.

심지어 당가에 있던 내 딸 설천이도 어렸을 적 이보다는 거짓말을 더 잘했다.

하연이라는 이 육체의 주인보다 3살 더 어릴 뿐인데, 하는 짓은 5살짜리같은 이 아이를 보고 난, 왠지 가슴속에서 몽글거리는 감정이 피어올랐다.

자신보다 약한 것을 불쌍히 여기고 보살피고 싶어하는 마음.

아기였을 적 설천이에게도 지금의 영호에게도 느껴본적이 있는 감정이지만 지금 눈앞의 아이만큼 강하게 느낀적은 없었다.

친자식들보다 더 보살펴주고 보호해주어야할 법한 이 감정이 영혼인 팽영령이 느끼는 것인지 아니면 이 몸뚱아리가 느끼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두초할망이 내일부터는 구걸하러가도 된다고하니까, 내일에는 같이 다니자."

"응!"

"우선 오빠는 잠 좀 자야..겠..다."

"응. 잘 자."

귀엽게 고개를 끄덕이는 장우를 보고서 눈을 감는 난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편안하게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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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내 가슴팍에 머리를 대고 같이 잠든 장우와 같이 마을로 내려와 구걸을 시작하자, 금방 동냥바가지에 식은 밥덩이나 음식들이 가득찼는데, 아무래도 우리 둘 다 살이 바짝마르고 서로 손을 잡고있는 모습이 남매처럼 보여 더 불쌍하게 여긴 탓인 듯 싶었다.

바가지 한 가득 담긴 음식을 먹어치우며 다시 구걸을 시작할 때, 우리는 금방 음식으로 차오르는 바가지대신 우리를 둘러싼 다른 거지들을 보게되었다.

전부 여자들이고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비슷한 새끼거지들이었는데, 전부 나보다 덩치가 커서그런지 전부 사나워보였다.

"어이, 요것봐라, 생쥐. 너, 우리들과 같이 다니기로하지 않았냐? 왜 비실이하고 같이다니는건데 엉?"

"저 모자라는 년도 여자라는거죠. 어휴~ 눈꼴시려. 저 손잡은거 봐! 저거 일부러 모자라는 척하면서 작업거는 거 보니 순 꾼이네, 꾼이야!"

"씨바, 거지년주제에 붙어먹으려나 들고...이리와 생쥐!"

탁.

장우의 손을 잡아끌려는 새끼거지의 손을 내가 바가지로 쳐내자 그년은 기가막힌 듯 혹은 어이없다는 듯이 픽하고 웃고서 내 앞으로 다가와 검지손가락으로 이마를 꾹꾹 누르면서 한마디씩 짓씹듯이 중얼거렸다.

"하연 너 이 새끼, 언니들한테 이쁨받는다고 기고만장해하는데, 계속까불면 멍석말이하고서 냇가에 버려버린다? 죽다살아난 사내자식주제에 어디서 여자들일에 끼어들고 지랄이야? 어? 확 씨!"

이마를 꾹꾹 누르던 손을 펴서 당장이라도 손찌검을 할 듯 손을 움직였지만 내가 꿈쩍도하지 않고 장우의 앞을 막고서 가만히 노려보자 얼굴을 잔뜩찌푸린체 가래를 모아 땅에 뱉고서는 새끼거지들을 이끌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오빠, 우우, 미안해, 난 여자인데, 맨날 오빠에게 보호만받아서..."

"괜찮아. 그러니까 울지마. 알았지?"

새끼거지무리가 가고나서 내 등뒤에 있던 장우가 등을 끌어안고 훌쩍거리자 난 그런 장우의 조막만한 손을 토닥거려주면서 괜찮다고 달래주었다.

그리자 장우는 진이 빠져버렸는지 축늘어져버렸는데, 그런 장우를 내버려둘수 없어서 그녀를 받쳐업고 거지굴로 돌아갔고, 할당받은만큼 음식을 넘겨준 뒤, 장우를 내가 누웠던 움막으로 데려와 눕혔다.

낡은 거적때기 위에서 새근새근 잠든 그녀의 얼굴을 보니 저 멀리있을 딸들의 모습이 생각나 저도모르게 자장가를 부르며 이마를 쓰다듬어주자 병마들을 집어삼키면서 어둡고 더럽혀졌던 영혼이 밝아지고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따스한 느낌은 그녀의 이마를 쓰다듬는 손가락에서부터 천천히 위로 올라오고 곧 온몸으로 널리퍼져, 나른한 감을 주었다.

남녀간의 격렬한 교합 후에 오는 것이나 마약을 태워 흥분한 뒤 몰려오는 것과 달리, 마치 화창한 봄날, 너무 따갑지 않은 햇볕을 쬐는 듯한 편안하고 기분좋은 나른함에 점점 취해가던 나는 더이상 참지못하고 눈을 감은체, 장우의 옆에 드러누워 잠을 청했다.

아무리 어리다고하더라도 여자와 같이 자는 것을 찜찜하게 여기고 기분나빠할 당수연, 팽영령이라면 어림도 없을 행위겠지만 이 몸뚱이, 하연이라는 소년에게는 그다지 거부감이 여겨지지 않는 듯했다.

아니, 오히려 더 기분좋아한달까?

아아, 그렇다고해서 이 하연이라는 소년의 몸이 음탕하거나 음란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영양이 부족해서 그런지 아직 첫 몽정도 하지않은 어린아이의 몸이라 그런쪽으로는 아직 발달하지 않았다.

뭐랄까, 이 기분은 마치...

정신적으로 충만하다고나할까? 아니면 행복하다고해야하나?

이런 감각은 전생에서도 현생에서도 느끼지 못해서 따로 설명을 못하겠다.

어찌됐든 그냥 행복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그런 감정을 느끼면 난 스르륵 잠에 빠져들었고 곧 병마들을 갈아서 영혼을 갈고 닦는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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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연의 옆에서 잠들어있는 장우의 작은 영혼 한 구석에서 작지만 아주 맑은 영혼의 파동이 울렸다.

이 파동을 내려면 몇 십년이나 마음을 갈고닦아 속세의 때를 벗고 오욕칠정을 던지고 오로지 순수함을 남겨, 등선을 하기 직전인 도사나 성불하기 직전의 고승만이 가능한데, 한낱 거지, 그것도 쪼그마한 여자아이에게서 발한다는 것을 구파의 도사나 중들이 알면 서로 데려가려 할 것이다.

도사들이 말하는 선재(仙材)혹은 스님들이 말하는 미륵의 자질이 있기 때문이다.

이 자질이 뭐기에 그렇게 혈안이 되느냐면 축기가 느리고 올라갈수록 심오한 정신공부가 필요한 정종무공을 빠른시간에 큰 성취를 볼 수 있다.

얼마나 빠르냐면 구대문파의 장로급정도되는 무공수위를 2, 30대에 이룩할 수 있을 정도이니 잘만 키우면 화경을 넘어 현경까지 다다를 수 있는 무인을 탄생시킬수 있다.

그러니 구파가 노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 맑은 영혼의 파동은 겨우 그런 재능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맑으면서 깊었다.

이유는 이 파동을 내는 것이 인간이 아닌 신선이었기 때문이다.

오랜세월 요괴와의 다툼에서 패배한 신선들은 요괴들에게 '선계'라는 좁은 차원으로 쫓겨나 갇혀버렸다.

그 선계에서 신선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환경을 일구고 나름대로 문화를 만들며 살아가기는 했으나, 그래도 하계, 즉 인간들이 살던 세상을 그리워하는 자들은 있었다.

환경에서 보자면 선계가 하계보다 더 좋기는 했지만 선계는 하계보다 없는 것도 많았다.

바다라던가, 보기만해도 두근거리게하는 별, 달등.

오로지 태양의 역할을 하는 태양주(太陽珠)하나만 둥둥 떠있으며 밤이 되면 스스로 꺼져서 그저 빛주술로 만든 구슬로 생활해야하는 선계에는 낭만이라는 것이 없었다.

그렇기에 장우의 영혼 한 구석에 들어가있는 신선의 영혼, 선명(仙名) 옥호(玉湖)는 별과 달을 보기위해 오랫동안 주술을 연마하였고 그 주술로 인해 겨우 이 하계로 넘어올 수 있었으나, 선체(仙體)를 잃어버리고 혼만 떠돌아다니게 되었다.

영혼의 상태로 선계에서 듣던 별이나 달, 바다를 실컷 둘러본 옥호는 그만 선계로 올라가려고 했으나 선체가 없고 하계에서 꽤 오랫동안 영혼상태로 있는 바람에 힘을 꽤 많이 잃었던 그녀는 선계로 돌아가지 못하고 소멸될 위기에 처해버렸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근처 임신한 여성의 뱃속에 들어가 아기로 환생한 뒤, 선술을 갈고 닦아 다시 선계로 올라가려했으나 그것은 할 수 없었다.

인간으로 태어나자 바로 실행하려던 선술은 아예 시도조차 되지 않았고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을 옥이야 금이야 길러주던 부모님들이 누군가에게 살해당한것을 보았던 것!

꽤나 부잣집에 태어난 옥호, 아니 장우는 화목한 가정에서 잘 자라고 있었다가 어느날 갑자기 들이닥치던 도적들에 의해 부모님이 살해당하는 것을 숨어있던 장롱안에서 똑똑히 보았다.

선계에서는 요괴와의 전쟁이후로 무엇이든 살해하는 것을 금하였기에 죽인다라는 것을 한번도 본적이 없었는데, 그것을 보게 되어버리자 큰 충격을 받은 옥호의 주 인격은 잠시 봉인되었던 것.

봉인 된 주 인격대신 보조인격이 장우를 움직이게 되었고, 주 인격보다 저급한 보조인격 때문에 장우의 몸은 또래보다 작았고 머리도 잘 발달되지 못한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날 장우는 하연이라는 오라버니를 만나게 되었고 그의 보호를 받고 보살핌을 받다가 그를 잃을뻔하고 다시 보살핌과 보호를 받게 되자 그녀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깨닫게 되었고 그에 따라 봉인되었던 주 인격이 깨어나게 되버린 것이다.

"오빠...아니, 오라버니..."

스윽.

따사로운 미소를 지으면서 잠이든 오라버니의 얼굴을 본 장우는 평소 어린아이같던 미소대신 좀 더 성숙한 여인의 미소를 살풋이 지으며 잠이든 오라버니의 입술에 살짝, 자신의 입술을 갖다대고 그의 품에 들어갔다.

아직 작고 풋내나는 첫사랑이라서 그런지 완전히 옥호의 인격, 즉, 주인격의 봉인이 완전히 풀리지 않아 오늘 이후로 다시 등장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는 장우의 의식 한 구석에서 장우의 시선으로 그를 볼 것이다.

============================ 작품 후기 ============================

...이번편을 쓰고나서 제가 할말은 딱 하나입니다.

도대체 내가 뭘 쓴거지?

에로한 것을 표방한 제가 손가락을 움직여 쓴 결과 달달한 순애물이 나와버렸습니다.

가을 날씨에 따른 호르몬의 변화때문인가?

..하아. 어찌됐든 작품스토리가 갑자기 산으로 간다고 하시는 분들에게 변명을 드리자면 전부 새로운 히로인 장우를 만나게 하기위해서였습니다.

초 집착 얀데레 구미호인 금비의 눈을 피해 새로운 히로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었거든요. 

제가 전에도 말했듯이 히로인은 한명 더 붙일 거라고 했으니까 그것에 맞추다보니 이렇게 되어버렸습니다.

주인공의 성격이 급격히 변한 것 같다고요?

그거야 당연히 소년의 몸으로 빙의하다보니 순진무구하고 천진난만한 성격으로 바뀌어버린 거지요. 몸과 영혼(혹은 정신)은 이어져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제 지론인지라서..하하하..

앞으로 전개에 대해 설명하자면..다음편에 기대해주세요.

※왠지 선작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군요. 

월병인/네! yes! yes! yes!

MrTJoker, 여관집아들, 플레로/후기 참조.

루나케/그렇죠. 망한 본체는 뭐...

이호성성님/저도 집착여캐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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