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2화 (62/86)

00062  6장 구밀복검 - 종(終)  =========================================================================

"자장, 자장, 잘도 잔다."

쏴아아아아.

열어놓은 창문 밖으로 들리는 낙엽구르는 소리를 듣고 방안으로 들어오는 청명한 가을바람의 싸늘함을 느끼며 자장가를 부르는 내 품에는 남편과 나의 결실, 내 딸, 영호가 귀엽게 코를 골며 잠에 빠져들고 있었다.

"..겨우 잠들었구나.."

품에 안고있던 영호를 조심스럽게 침대로 내려놓고서 난 그녀를 안고있느라 뻐근거리던 몸을 풀었다.

아무리 반신급에 다다른 요괴라고 하더라도 같은 자세로 계속 있는 것은 고된일이었고, 더군다나 금방이라도 요력을 폭발시켜서 주변을 초토화시키려는 아기를 막는 것은 더운 고된 일이므로 이렇게 몸을 풀어주지 않으면 무리가 가기에 어쩔 수 없었다.

"자고있는 모습만 보면 귀여운데 말이야."

고로롱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잠에 빠져든 영호는 자신의 볼을 찌르는 내 손가락을 아기답지않게 재빠른 움직임으로 잡고서 꼬옥 움켜잡았는데, 겉으로보기에는 귀엽지만 실상 그녀의 손바닥에 잡힌다면, 보통 인간으로써는 손가락뼈가 분지를 수 있을만한 힘이 지금 내 손가락에 가해지고 있었다.

물론 나에게는 어림도 없는 짓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속으로 한숨을 쉬고서 가볍게 손가락을 뺀 나는 아기의 옆에 조심스럽게 누워 눈을 감고 지금쯤 당황하고 있을 남편을 생각하였다.

경고를 해준답시고 그를 부른 뒤, 그의 그림자 속에 숨겨진 것에 살짝 장난질을 쳐놨으며 그것에 걸린 두 암컷이 짐승처럼 그를 탐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뭐, 그러다가 그에게 생명력을 다 빨려서 죽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별 상관은 없다.

아니 오히려 그래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건 요술은 그렇게 죽은 뒤에 더욱 효험을 보일 것이니까.

인간들이 잃어버리고 금지했을 구시술(강시를 만들고 부리는 술법)을 걸어놨기에 죽은 후, 다시한번 흉성이 폭발하여 그를 범하고 결국엔 저주를 발동시킬 것이다.

'그러기에 그저 요술에 걸려있으면 좋았을 것을, 굳이 풀려서는..'

그는 아마도 숨기는 척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갓난아기시절부터 그를 돌봐온 나에게는 그가 내가 건 요술을 스스로 풀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말투, 표정, 행동등에서는 나에게 무조건적인 호감을 가지고 있는 듯했지만 인간들 틈에서 아주 오랜시간 살아온 나에게는 그 행동들의 깊숙한 곳에서 흘러나오는 적대감이 전부 보이기 때문이다.

무엇때문에 풀린 줄은 모르겠지만 요술이 풀리고 나서 그가 힘을 기르기 위해 한 행동들, 즉 힘을 기르는 행동들은 동기는 불순했지만(나에게서 벗어나 여왕님의 밑으로 들어가 자유롭게 산다고한다.) 보통 암컷의 다리사이에서 아양떠는 나태한 수컷들 보다는 낫다싶어 모르는 척을 해주었다.

보통의 수컷보다는 자신의 힘을 갈고닦으며 반짝거리는, 소위 제련된 보검이나 잘 연마된 보석같은 수컷이 더 가치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도를 넘어섰다.

너무도 빠른 성장과 그것을 넘어서려는 집념과 지식등은 요괴들 중에서도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나마저 위협을 느낄정도였다.

요괴화가 되어버린지 얼마 되지도 않은 주제에 벌써 꼬리를 3개로 만들정도로 빠른 성장, 그리고 그것보다 더 빠르게 성장할 정도로 기발한 생각들과 그것을 실행시킬 집념. 

젖먹이었을 적, 그를 처음 본 순간 그는 보통의 하등한 인간과는 다름을 알기는 했었지만 천재라고 불린 자신보다 더 빠르게 아홉개의 꼬리를 만들고 그것을 넘어설만큼의 재능을 보이자 가장 먼저 느낀것은 공포였다.

나보다 더 빨리 성장하고 더 높이 올라갈것이라고 생각되어진 나는 아이 영호와 혼인지약, 요괴로 변화시켜주면서 걸어놓은 종속계약, 젖먹이었던 시절부터 주입한 내 영혼의 조각으로 알게모르게 그의 영혼을 구속하고있는 사슬이 있음에도 그가 날 벗어날 것으로 판단, 그가 개발한 주술에 장난질을 쳤다.

그림자 분신술.

자신의 영혼을 떼어낸 분신으로부터 흡수한 생명력과 경험을 본체가 받아들이면서 성장한다는 그 방법은 기발하다못해 놀랄만한 것이다.

분신술이라는 술법의 혁신이라고나할까?

단순히 적을 타격하는 수를 늘리거나 현혹하는 것으로만 생각하던 술법을 성장의 발판으로 만든 그 생각은 그의 영혼을 구속하고 있던 사슬로부터 나로 흘러들어왔고 그것을 받아들인 난 이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림자 분신술을 완성하는데 소환된 저승의 영혼들을 불러 오래된 요괴들만 알고있는 금주를 써서 그것들을 완전 소멸시켰다.

혹시라도 기억을 갖고 환생을 한다면, 그것을 인간이 사용한다면 금방 신선으로 탈각하여 지금 요괴들이 우위로 차지하고 있는 세상을 역전시킬것이라고 여겨서이다.

그리고 그이의 그림자에 숨겨져있는, 그가 핵이라고 불리는 것에 장난질을 쳐놓은 것도 이런 이유였다.

그이의 성격으로 보건데, 술법이 실패 해버리면 문제점을 파악하려고 하기보다는 포기하고 잊어버릴 것이다.

아닐수도 있다고?

아니, 반드시 그럴것이다.

내가 그렇게 키워왔고 만들었고,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만들 것이다.

아주 질기고 튼튼하며 옭메어버릴 족쇄를 걸어서라도 말이다.

그리고 그 족쇄는 지금 그이의 몸에 단단히 옥죄여버렸다.

향후 50년은 족히 벗어날 수 없는 튼튼한 족쇄에....

---------------------------------

생명력을 정제하고 있던 도중 갑작스럽게 달려든 무언가에 덮쳐져 가부좌를 틀던 상태로 나자빠져버린 나는 헝클어진 생명력의 기운에 내상을 입고 피를 토해내었다.

"푸웁, 푸우. 퉤."

내장이 빌빌 꼬이는 고통과 제멋대로 쿵쾅거리는 심장의 상호작용으로 식도가득 모여있는 피를 사레걸린 물마냥 뱉어내고 입안에 고여있던 것까지 마저 뱉어내며 몸을 일으키려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피를 토하고나서 온몸을 타고 도는 찌릿한 고통은 요괴의 몸으로도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워서이다.

임맥(몸의 앞정중앙선에 분포된 경맥)을 타고 내려가는 찌릿한 고통은 허벅지와 팔뚝으로 퍼져가 발가락 끝, 손가락 끝까지 퍼져내려가 근육을 마비시키고 신경을 태워버릴 듯하였기에 그저 꿈틀거리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내 몸위에는 바로..

"쿨럭. 이 썩어빠진..시체덩이..들이잇!"

아까전 내 말에 절대복종하겠다는 시체덩이 두 개가 아까전처럼 눈을 벌겋게 물들이고서 내 몸위에 올라타 뱉어낸 피들을 혀로 게걸스럽게 핥고 있었다.

침대를 빨갛게 물들인 끈적한 피와 그것을 맛있다고 핥아대면서 주둥이를 검붉은 피칠한 그것들의 모습은 구역질나고 혐오감을 치솟게 하였다.

더욱이 그것들은 그 더러운 주둥이와 혓바닥을 놀리며 짐승처럼 4발로 기어 다가왔는데, 그 짐승같은 모습과 탐욕에 젖은 얼굴은 과거, 나를 방안에 가두고 강간하던 당가의 여자들과 겹쳐보이게 만들었다.

치열하게 사느라 잊어버렸던 부끄럽고 분노케하던 과거.

인간이라는 존엄성 없이 그저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혀지고 여자들을 흥분케하는 화장을 하며 마음에도 없는 교성을 지르고 교태스럽게 팔다리를 휘젖고 어떻게하면 그녀들을 기절할정도로 흥분시켜야하는지 익히기위해 배워야했던 부끄러운 교육.

그 굴욕스러운, 집에서 기르는 개나 고양이같은 삶이 머릿속에 잘 그려진 그림처럼 생생하게 한 장 한 장 떠오르자 난 비명을 질렀다.

공포, 고통에 얼룩진 것이 아닌 짙은 분노가 뭍어나오는 그런 비명.

그 비명소리에는 분노와 살기 그리고 그것에 섞인 요기와 내력이 듬뿍담겨있어 방안의 공기가 내 주변으로 원형을 그리며 들썩거렸고 그것에 가까이 있던 두 시쳇덩이는 귀를 틀어막고 발버둥을 치다가 바람을 빵빵하게 들어찬 돼지오줌보처럼 부풀어오르다가 큰소리와 함께 핏덩어리와 살점, 뼛조각들이 흩어지며 터져버렸다.

뻐엉- 푸드드득.

피와 뼈, 살점들이 흩어지며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진득한 그것들의 부산물을 가까이서 뒤집어쓴 나는 과거에 나를 괴롭혔던 당가의 여자들을 죽인 듯한 기쁨에 키득거리고 웃었다가 곧 빳빳하게 굳어버렸다.

나를 뒤엎은 피와 살점, 뼛조각들이 서로 엉겨붙고 말라붙어 강철같은 강도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말도 안 돼! 겨우 인간이었던 것들의 피와 살점으로 날 꼼짝도 못하게 한다고? 이건..이건. 분명 주술이나 요술같은 이능이 섞여...아..'

"아아아아아아악!"

치이이익.

엉겨붙어있던 것들은 점점 달아오르더니 곧바로 확 타올라 죄인을 벌하는 인두처럼 살갗을 지지면서 고기를 굽는 냄새를 풍겼다.

머리, 이마, 눈, 입, 코, 손등등.

그것들의 부산물에 젖은 곳곳에서 지져지는 고통은 내게서 이성을 날려버리기에 충분하였고 때문에 곧 무언가가 떠오르려던 내 뇌는 그것을 그만두게하였다.

온 몸을 자극하는 고통을 받아들이는 것만해도 충분히 힘들기 때문이리라.

"끄으..으으..흐으윽. 흑."

울음섞인 신음소리를 내면서 발버둥치던 난, 곧 나를 불태우는 듯한 고통이 사그라드는 것이 느껴졌으며 그것과 같이 내 몸뚱아리도 쪼그라드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딱 눈앞에 보이던 창문이 점점 위로 올라갔기 때문이다.

우두둑. 뿌득.

뼈가 맞부딪히는 소리가 나면서 쪼그라드는 내 몸은 이내 그것을 그만두었지만 난 손가락하나 까닥할 수가 없었다.

좀 전의 고통으로 기력이 전부 빨려버렸기 때문이리라.

끼익.

잠시 후, 반쯤 무너진 방문이 좀 전의 나처럼 힘겨운 비명을 지르며 열렸고 곧 내 눈에는 화려한 무늬의 가죽신을 신은 하얗고 고운 발이 보였다.

얇은 복숭아뼈에 감겨진 보랏빛 천이나 화려한 은실로 무늬가 그려진 바짓단을 보건데 아무래도...

'금...비...'

그녀다! 

이 체향이나 저 화려한 신발과 바지.

분명히 그녀이다.

그것을 확인한 나는 고개를 들고 입을 열어 도움을 청하려했지만 아직도 기력이 나오지 못했는지 꼼짝도 못했다.

"세상에, 방 안이 대체 무슨 꼴이야? 게다가 이건...설마? 영령? 당신이야?"

고개를 살짝이라도 끄덕이고 싶었지만 그러기는 커녕 눈꺼풀은 점점 무거워져, 곧 오행산에서 제천대성을 눌렀던 철괴들처럼 내리눌렀다.

'나, 날 도와...줘...'

----------------------------------

"세상에, 방 안이 대체 무슨 꼴이야? 게다가 이건...설마? 영령? 당신이야?"

눈 앞에 쓰러져있는 작은 생명체를 보면서 난 놀란 듯 날선목소리를 내었다가 곧 눈꺼풀을 감고서 고른 숨소리를 내는 것을 보고 표정을 바꾼 뒤, 쪼그려앉아 그것을 감싸안아올랐다.

내 딸, 영호만한 크기의 그것을 조심스럽게 안고서 몸을 돌리고 밖으로 천천히 걸음을 내딛는 나에게 점점 햇빛이 비치기 시작했고 가죽신부터 비춰지는 햇빛을 다리, 허리로 올라오더니 이내 내 품에 안은 그것까지 비추기 시작했다.

구름한점 없는 가을의 태양은 내 품에 안겨있는 것을 환하게 비추었고, 비추어진 것은 인간 팽영령도 여우 요괴인 영령도 아닌 황금빛 털로 뒤덮인 귀여운 아기여우였다.

환하게 비추어지는 햇빛에 반짝이는 금빛털은 윤기가 자르르 흘렀고 절로 얼굴을 갖다대어 부벼대고 싶을 정도로 부드러울듯이 보였으나 난 그리하지 않았다.

괜히 그랬다가는 편히 잠들고있는 아기여우, 아니 내 남편의 잠을 깨울수 있었으니말이다.

그에게 요기로 만든 방울을 덮어씌우면서 천천히 발걸음을 내딛어 걷던 나는 지나가다 만난 노예 한 두마리에게 남편의 방을 치우라고 명령을 내리면서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를 안고서 숲을 거닐었다.

쏴아아아아.

갑작스럽게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떨어진 낙엽들이 구르면서 저들끼리 부딪히는 소리를 들으며 난 그가 듣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에 담았던 말을 속닥거렸다.

오로지 그와 나만이 있는 숲에, 그조차도 듣지 못하지만 오랜만에 그를 독점할 수 있다는 마음 때문이리라.

"당신은 꿀처럼 달콤한 입으로 유혹하고 배를 뚫는 검같은 하물로 여자들을 중독시키지. 그래, 당신의 최대무기는 요술도 무공도 아닌 그것들이야. 그런데..당신은 그것들을 아주 잘 이용해먹을 머리도 있어, 난 그것이 매우 사랑스러워. 하지만..."

솨아아아아.

좀 더 강한 바람이 부르며 울긋불긋한 나뭇잎들이 떨어졌고 그것은 바람에 따라 나의 주위를 한번 휘감고 잘 정리된 바닥에 주저앉았다.

"동시에 너무 무섭기도 해. 그것으로 나말고 다른 여자와 놀아나지 않을지..그래서 난 당신에게 요술을 걸었어, 하지만 당신은 그것을 풀었더라고. 거기에 더욱 겁을 먹은 난...이번엔 당신에게 저주를 걸었어."

바스락바스락.

방금전 떨어진 낙엽들이 발에 밟히면서 부숴지는 소리에 잠깐 미소를 지으면서 계속 말을 이었다.

"낮에는 아기여우가 되고 밤에는 나만의 장난감이 되는 그 저주는..후후, 당신의 머리와 마음속에 내가 가득해지면 풀리게 될거야. 쿡쿡. 후후, 하하하하하!"

고양된 기분에 요기가 조금 섞여버렸는지 웃음소리에 내 주위의 낙엽들이 순간적으로 날아가버리고 나무들까지 흔들흔들거렸다.

그 모습에 더욱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 느껴지면서 이제는 어깨까지 들썩이며 더욱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 더 즐거운 건 말야. 하하하, 당신이 이 저주를 풀 방법을 모른다는 거지. 크흐흐흐, 당신은 그저 '그림자 분신'이라는, 크흡, 주술의 부작용으로 알테고, 난 모른다고만 할테니까 말야, 흐읍."

또다시 웃음에 요기가 섞여 이번에는 이 정원전체를 날려버릴 것 같아 간신히 웃음을 참고서 곤히 잠들고 있는 아기여우의 촉촉하고 검은 콧잔등에 소리가 나도록 살짝 입을 한번 맞춘 난 경쾌한 걸음으로 가주전을 향해 내딛었다.

--------------------------------

솨아아아아.

그녀, 금비가 사라진 팽가의 정원에 나무가 다시한번 바람에 흔들릴때, 낙엽이 쌓여 푹신한 바닥사이로 한마리 나비가 기어나왔다.

그 나비는 본래 겨울을 나기위해 낙엽사이에서 몸을 숨기던 그런 종류의 나비였는데 왠일인지 싸늘한 바람이 부는 가을 공기에 자신의 몸을 드러낸 것이다.

붉고 노랗고 갈빛인 낙엽사이로 작고 볼품없는 날개를 파닥거리던 나비는 비틀거리다가 이내 다시한번 불어오는 가을바람을 타고서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마치, 이 팽가에서 도망가는 것처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