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3 2장- 장강 =========================================================================
선실생활을 생각보다 불쾌했다. 좁아터진 선실구석에는 그물로 된 침대와 습기를 먹어 축축한 이불, 땀에 절은 베게가 놓여져 있있었고 바닥은 한걸음 걸을 때마다 불안하게 삐그덕거렸다.
마치 조심스럽게 걷지않는다면 부서질거야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그리고 화장실 대신에 선실에 비치된 요강의 뚜껑은 부숴져서 그런지 오물냄새가 지독했는데, 덕분에 요강을 이용할 때마다 창문 밖으로 오물을 버렸지만 남아있는 찌꺼기들에서 풍기는 냄새 때문에 선실에서 무언가를 먹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냥 그 여자하고 같은 방을 쓸걸 그랬나?'
하지만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만약 그녀와 같은 방을 쓴다면 지금쯤 그는 그녀의 엉덩이 아래서 씨근덕거리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술김에 강제로 맺어진 의누나, 패철기는 단촐해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상당히 돈이 많았는데, 덕분에 그녀는 지금 나처럼 냄새나고 좁아터진 선실이 아니라 넓고 깨끗한 선실에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녀가 같이 방을 쓰자고 밀어부쳤지만 내가 아무리 의남매라고 하더라도 남녀가 유별하다는 것과 앞으로 승려가 될몸으로 되도록 여성과의 접촉은 줄이고 싶다는 내용을 아주 길고 상세히 주장하자 그것에 질려버린 그저 내 의견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그런지 며칠동안 나를 문전박대를 했지만 몇번 애교섞인 말투로 사과를 하자 금방 풀어져서 헤실헤실 웃는 모습을 보고 왠지 마음에 찔려 잘 때빼고 대부분의 시간을 그녀와 같이 보냈다.
...미리 말해두건데, 같이 시간을 보냈다고 하더라도 야한 행위는 전혀 하지 않았다.
장기나 바둑을 두거나(의외로 그녀는 장기나 바둑을 잘 두었다. 겉모습으로 보면 엄청나게 무식해보였지만 그녀의 수법은 나의 빈틈을 정확하고도 날카롭게 찌르는 지적이고 예리한 것이다.) 전생에서 내가 즐겨 두었던 오목, 오셀로를 가르쳐주고 대결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내가 가르쳐준 오목이나 오셀로(오셀로를 발음하지 못해서 오세로라고 발음하였다.)에 적응되지 않아서 자꾸 지기만 하였지만 나를 농락하기까지에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으음, 오세로와 오목이라...바둑이나 장기보다는 쉽고 깊이가 깊지는 않지만 간단히 즐기기에는 좋은 놀이군...영 동생 덕분에 상당히 즐거운 놀이를 알게 되었어."
"하...하하..그러세요?"
"그래도 영 동생도 바둑과 장기는 잘 두는 편인데? 어디 높은 집안 출신이었나봐?"
뜨끔.
아무생각없이 바둑판을 훑어보던 그녀의 말에 실수로 당문 출신이라고 말할뻔했으나 가까스로 그것을 집어삼키고 미리 설정해둔 배경을 다시 내뱉었다.
"부잣집 도련님 놀이하인이었으니까요. 덕분에 여러가지 놀이도, 공부도 할 수 있게 되었죠. 뭐..."
"흐응~ 그래?...여기!"
"앗! 철기 누나 한 수만!"
"동생이 말했었지? 낙장불입이라고? 자아~ 이마 갖다대."
"...우으으~"
"그, 그렇게 봐도 봐주지 않을꺼야. 어서 이마 까!"
신의 한수로 나를 압살시킨 철기 누나는 그동안 여자들과 관계를 맺어가면서 익힌 '귀여운 짓'을 이겨내고 냉정하게 작은 춘권같은 손가락으로 내 머리에 딱밤을 놓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면서 목을 풀었다.
아무래도 그동안 나랑 방안에서 놀이만 하다보니 몸이 찌뿌드드한 모양이다.
"으아아~ 확실히 재밌기는 했지만 너무 방구석에만 처박히니 몸이 쑤시는 것 같아. 어때? 동생. 우리 같이 갑판위로 나가보지 않을래?"
"..그럴까요?"
솔직히 나도 갑판위로 나가서 장강을 보거나 주위 경관을 살피고 싶었지만 워낙 여자들이 무서운 관계로 이곳에 처박혀서(철기누나가 무섭지 않은 이유는 여자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말이 누나지 겉모습만 보면 보디빌딩한 형님같으니까.) 바둑판이나 장기판만 잡았지, 그것만 아니었으면 벌써 바깥에서 신선한 강바람을 쐬고 있었을 것이다.
"면도 뽑은김에 삶으라고 했으니 어서 나가보자고, 해도 쨍쨍하니까 말야."
나는 바둑판과 알을 치우고 그녀는 등뒤에 내려놓던 거도를 차고서 나갈준비를 하고 갑판위로 올라갔다. 웅성이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가끔씩 우는 새의 소리를 들어면서 말이다.
--------------------------------------
전생에서 강이라고는 여름철 피서 때 놀러가 본, 작은 강만 보아온 내 눈에 비치는 장강은 강이라기보다는 바다...와 비슷하게 보였다.
흙탕물이 아닌 약간 초록빛마저 띄는 파란, 물결이 일렁거리는 장강의 모습은 나도모르게 탄성을 지를 정도로 멋진 모습이다.
가끔씩 튀어오르는 물고기들이나 그런 물고기들을 사냥하는 멋진 새의 모습, 작은 배로 낚시를 하다가 손을 흔드는 어부의 모습, 저멀리 깎아내린 거대한 돌산의 모습을 보고서 어린아이처럼 들뜬 나는 그동안 친해진 철기누나의 두터운 팔을 붙잡으며 조잘거렸고, 그런 나의 모습을 본 누나는 왠지모르게 따뜻한 미소를 지으면서 내가 조잘거리는 것에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평온하게 주위 경관을 보거나 선원에게 낚싯대를 빌려 낚시를 즐기면서 시간을 보내며 하루하루를 보냈을 때, 그녀들이 나타났다.
드넓은 장강을 누비면서 악명을 높이는 수적(水賊)들, 장강수로채의 여자들 말이다!
달 한조각 떠오르지 않은 그믐날 저녁, 쿵-하는 커다란 소리와 함께 심하게 흔들리던 배의 진동에 놀라서 깨어난 나는 무슨일인가 싶어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갑판위로 올라가려다가 운도 없게도 시퍼런 칼날을 들이댄 체, 징그러운 미소를 짓는 여자들에게 사로잡혀 얌전히 갑판위로 끌려왔다.
평소의 나답지 않게 금방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체 반쯤 정신을 놓고서 흐느적거리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렸을 때, 갑판위에는 나처럼 손목이 구속당한체 무릎꿇린 승객들로 가득 차버렸다.
간간히 성난 여자들의 소리와 철끼리 부딪히는 소리도 났지만 금방 그것은 사그라들었고 잠시 후, 피투성이의 여자가 질질 끌려오자 짧은 박수소리와 함께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짝짝.
"자, 자아~ 모두 정신차리시고 여기 주목, 주우~목. 거기, 아저씨, 여기 보시고..음음. 좋아. 먼저 우리 소개를 하자면 장강을 수호하는 여걸 중에 한 무리인데, 아닌 밤중에 여러분들을 깨운이유는...우리가 장강을 수호하면서 자금이 좀 부족해서 말이지~ 그래서 자.발.적.인 모금을 받고자 이런 늦은 시간에 여러분들을 찾아왔소..."
그 외에도 이리저리 말을 빙빙둘렀지만 요약하자면 가진 돈과 패물들을 전부 바치라는 것이었다.
몇몇 무림인으로 보이는 눈치없는 여자들이 반항했지만 그런 여자들은 순식간에 몸 어딘가에 구멍이 뚫리고 장강의 밑바닥으로 가라앉혀져, 물고기밥이 되자 사람들은 숨겨두었던 패물들의 위치를 줄줄히 불었다.
순순히 패물을 바친 자들은 선실로 끌려들어가게 되었는데, 피냄새나 비명이들리지 않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그녀들은 수적치고 신의가 있는 모양이다.
그 중에는 내 의남매인 패철기도 있었는데, 그녀는 나에게 자랑했던 것과는 달리 덩치가 아깝게 하얗게 질린체로 패물을 바치면서 순순히 수적들의 안내를 받아 선실로 들어갔다.
물론 의남매인 나를 찾는 기색은 전혀 보이지도 않고서 말이다.
'...뭐, 저럴 줄 알았지.'
나이에 맞지 않게 내공이 깊고 무공이 뛰어난듯 하지만 그래봤자 젊은 나이의 무인. 미숙한 정신과 경험을 지닌 여자이니 이런 상황에서 저런 꼴을 보일 줄은 알았지만 왠지모르게 씁쓸해져서 고개를 푹 숙이자 머리카락이 우왁스럽게 당겨지는 느낌과 함께 번쩍거렸다.
짝.
"이런 씨부랄, 지금 이 상황에 조는 미친..."
내 머리카락을 당기며 뺨을 때리고 욕설을 날리던 수적은 나를 보더니 하나뿐인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침을 삼키면서 나를 쌀가마니처럼 어깨에 들쳐매고 저들의 배에 던져넣었다.
난 그들이 원하는 패물이 있기에 말을 하려고 했지만 애꾸 수적은 보기보다 고수였는지 아혈이 점해져서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강제로 수적들의 갑판에 올려진 나보다 나이가 연상이거나 비슷한 소년 4명은 눈알만 디룩디룩 굴리면서 주위를 둘러보다가 수적들 중 몇명이 히죽대는 얼굴을 보고서는 시선을 아래로 깔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난 후, 내가 탔던 배에 있던 수적들이 전부 돌아오자 수적을의 배는 천천히 그곳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는데, 어느정도 그 배와 거리가 벌려지자 아까들린 우두머리가 쏘라는 명령을 내리자 불덩어리들이 날아갔다.
그 불덩어리들은 내가 탔던 그 배로 떨어졌고 순식간에 활활 타오르던 배는 잠시후 쾅쾅-거리는 큰소리와 함께 무너지면서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함께 불타오르자 수적들은 저마다 짐승같이 웃거나 소리질렀다.
수적에게 강제로 끌려온 젊은 남성, 혹은 어린 소년들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 몇명은 눈물을 흘리며 소리없는 통곡을 하였고, 몇명은 기절하여 버렸다.
나? 나도 기절했다. 아니, 기절한 척을 했다.
왜냐하면 계속해서 누군가가 나를 집요하게 뜯어보는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집요하고 끈끈한 시선에서 왠지모를 불안감을 느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