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화 (12/86)

00012  2장- 장강  =========================================================================

"후우..후욱..도, 도착했다아..."

장장 3일 동안 가랑이 사이의 방울이 떨어질정도로 뛰어다닌 끝에서야 겨우 장강의 선착장이 있는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당가의 추격자가 쫓아온다는 압박감에 관도가 아닌 험한 산길로 이동하고 식사는 벽곡단으로 대체하며, 잠도 쪽잠을 자면서 이동한 끝에서야 다다른 이 마을에서 나는 반쯤 정신을 놓은채 객잔에 방을 잡고 그대로 뻗어버렸다.

기절한 듯이 잠에 빠져들고 깨어났을 때는 붉은 노을이 지기 시작하는 저녁쯤이었다. 아직 몽롱하여 더 자고 싶었지만 배가 너무도 고팠기에 일단 뭐라도 먹고 다시 잠들자고 생각하여 아래층으로 내려가 구석탱이에 있는 빈 탁자에 앉자, 나보다 약간 어려보이는 소녀가 주문을 받았다.

대충 끼니를 때울것들을 시킨후에 탁자에 턱을 괴고 왁자지껄한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혼자있고 싶은 마음에 아무 생각없이 다른 자리를 알아보라고 말을 하려고 그곳을 바라보자, 나는 너무도 큰 충격을 받아 아무말도 하지못하고 뻐끔거릴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나에게 말을 건 사람은 내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형태의 여자였기 때문이다.

키는 7척(210cm)에 다다를정도고 큰 키에 떡벌어진 어깨와 그에 걸맞을 정도의 거유(라고는 하지만 그녀의 덩치 때문인지 그다지 크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내 머리는 가볍게 잡을 만큼 크고 두꺼운 손과 내 허리만한 팔뚝...게다가 등에 매달린 거도(巨刀)와 깊은 내공으로 번쩍이는 눈을 가진, 마치 삼국지의 장비같은 여자를 누구라도 처음보면 놀라지 않을까?

"공자, 합석해도 되..."

"예, 하, 하셔도 돼요."

"고맙소. 크하하하하하. 어이! 점소이!"

여자는 덩치에 걸맞는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점소이를 불렀는데, 아까전에 내 주문을 받을 때와는 달리 오돌오돌떨면서 주문받는 점소이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 어느새 주문을 끝냈는지 거대한 여자는 의자를 끌어와 살며시 앉았다.

우지직.

....분명 살며시 앉았지만 의자는 비명을 질렀다. 그것이 마치 죽기전 내뱉는 단말마같아 그 의자를 물끄러미바라보자 내 앞에 앉은 여자는 큰소리로 웃으면서 내 주의를 끌었다.

과도하게 커다란 웃는 것을 보니 상당히 무안했던 모양이다.

"으하하하, 이거 통성명도 하지 않았군요. 저는 패.....철기라고 합니다."

"저는 영령이라고 합니다."

"영령...참 좋은 이름이군요. 공자와 걸맞는 예쁜이름이라고 생각됩니다. 하하."

"고마워요."

살며시 웃으면서 감사를 하자 패철기라는 여자는 얼굴을 붉히면서 손부채질을 하였는데, 그 바람이 나한테까지 올 정도로 상당히 거셌다.

삐이걱.

..나무의자가 신음을 지른다. 하지만 이 여자는 그런 것에는 신경따위도 쓰지않고 오직 나에게 여러가지를 꼬치꼬치 캐물었는데, 하나하나 둘러대느라고 상당히 힘들었다.

나이부터 시작해서 어디서 사느냐, 어디로 가느냐, 부모님은 뭐하시냐, 연인이 있느냐등등 보통사람이라면 실례라고 할 질문까지 거침없이 묻는 이 여자는 자신의 궁금증이 다 풀리자 자신의 자랑을 하기 시작하였다.

자신은 하북출신의 무인으로써 경험을 쌓기위해 이 멀리 사천의 땅까지 내려왔다면서 덩치에 맞지않게 끊이질 않는 수다에 영혼없는 맞장구를 쳐주자 더욱 신나게 떠들어대었다.

북경의 화려함이나 숭산의 웅장함, 화산의 아름다운 매화에 대한 찬양부터 시작하면서 자신이 처리한 마두나 사파의 졸개, 때때로 화전민을 괴롭히던 녹림도들을 해치웠다는 그녀의 허풍섞인 영웅담(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단칼에 10명을 죽였다는 건 좀.....)을 겉으로는 미소로 속으로는 하품을 하면서 듣고 있을 때, 겨우 내가 시킨 음식이 들어왔다.

"영령 공자...혹시 이것만 드시시는 것입니까?"

..왠지 불쌍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 약간 울컥했지만 간신히 미소를 지으며(이 여자는 내가 웃을 때마다 바보같은 표정으로 헤벌쭉 웃었다.) 대답했다.

"말씀드렸다시피 보타암까지 가려면 노자가 부족하니까요. 그리고 소식을 하는 편이라..."

"그래도 그렇지...제 음식이 오면 좀 드시다 가시지요. 그렇게 적게 먹으니까 키가 작...."

'이 여자가!'

안 그래도 신경쓰고 있는 점을 거침없이 쿡찌르는 철기의 말에 눈꺼풀이 바르르 떨리는 것을 느끼면서 눈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억지로 참으려고 애쓰면서 괜찮다고 사양하자 말동무라도 해달라고 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접시에 담긴 음식을 한 입혹은 두 입에 털어넣으면서 냄새만 맡아도 취할것 같은 독한 술을 물처럼 들이키는 그녀는 마치 맹수와도 같았다.

빠르게 음식을 비운 철기는 다시 술과 안주를 주문하면서 나에게 아까전에 이어 자신의 영웅담을 계속 떠들어댔는데, 그것은 술이 오고, 나와 대작하면서까지 계속되었다.

향기롭고 약간 달짝지근한 술을 조금씩 홀짝거리면서 그녀의 말을 듣던 나는 밀려오는 졸음에 꾸벅거리다가 그 다음부터는 기억이 나질 않았다.

...이것이 필름이 끊긴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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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머리야.. 속도 뒤집어질 것 같아...이게 숙취인가?'

처음먹은 술은 음료수같아서 마구 마셨는데, 그래뵈도 술인지 지금 나는 전생과 현생처음으로 겪는 숙취로 고생하고 있다.

머리는 깨질것같고 속은 뒤집어질것 같은데 근육통까지 합쳐져 고통의 3중주가 조화를 이루어서 침대에 꼼짝도 못하고 있을 때, 누군가 문을 쾅쾅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으으...누구세요?"

"나야! 령동생! 철기누나라고!"

'...철기누나?......에?'

쾅쾅.

"어서 문열어! 보타암으로 같이 간다고 했잖아. 빨리 나와!"

"네, 넷!"

삐걱거리는 몸을 겨우 움직여 문을 열자 문보다 큰 그녀, 패철기가 허리를 약간 숙여 숙취로 고생하는 내 얼굴을 보더니 씨익 웃으면서 내 팔을 잡고 억지로 객잔밖으로 나갔다.

"자, 잠깐. 처, 천천..히...우욱."

"뭐야~ 설마 령동생. 고작 그거에 숙취를 겪는거야? 후하하하, 정말 귀엽네~ 업어줄까? 응?"

"어...저기 그것보다. 동생? 그건 뭡니까? 그리고 보타암으로 같이 간다구요?"

아까부터 궁금했던 점을 물어보자 패철기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각진 턱을 커다란 손으로 쓰다듬으며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뭔가 깨달은 듯한 얼굴로 변하면서 내 등을 거세게 두드렸다.

"그렇군. 술이 약한 동생은 기억이 잘 안나나본데..."

어제 자신의 수다에 맞장구를 잘 쳐주는 남자는 내가 처음이라면서 의남매를 맺지 않겠냐고 물었더니 내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의했고, 그것이 기쁜 패철기는 보타암에 가는 길까지 같이 가도 되겠냐고 물었더니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그녀의 말에 어렴풋이 어제 꾸벅꾸벅 조는동안 무슨말을 들은듯한 기억이 날랑말랑했었지만 아직도 두드리는 그녀의 등짝파괴장(掌)에 전부 날아가벼렀다.

"누, 누님 그, 그만 좀...."

안간힘을 다해 등짝을 두드리는 것 좀 그만해달라고 말하자, 패철기는 정말...덩치에 걸맞지 않게 부끄러워하면서 다시한번 불러달라고 하였다.

"누님..이요?"

"으헤헤헤헤헤헤헤. 미남에게 누님이라는 말을 들으니 엄청 기분이 좋네."

"하하..몇 번이라도 불러드릴테니 이제 떠나볼까요? 지금 놓치면 며칠은 기다려야하니까요."

"그, 그렇네. 그럼 동생, 잠깐만...."

"에? 에?"

턱.

한팔로 나를 겨드랑이 사이에 끼운 철기는 허리와 무릎을 구부렸다.

설마...내가 생각하는 그건 아니겠지? 지금 숙취때문에 죽겠단말야. 제발 그것만은....으아아아악.

"빨리 가야하니까. 조금만 참아, 동생."

사람들이 들어차 복잡한 길을 빠르게 벗어나기 위해 그녀는 나를 들고 경공으로 뛰어올라 건물의 지붕으로 올라간 후 빠른 속도로 내달렸다.

내공도 뛰어나서 그런지 지붕의 파손은 거의 없는 훌륭한 경공이었지만 나는 그것에 감탄하기보다는 아까부터 올라오려는 것을 뱉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했다.

이 때, 난 전생에서 사람들이 하던 한가지 격언이 떠올랐다.

'그 놈의 술이 왠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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