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86)

00003  1장 당가에서의 생활  =========================================================================

가주의 말에 따라 색목인으로 의심되는 회색 보자기의 여자의 뒤를 졸졸따라가자 주위와는 갑자기 주위의 경관이 확바뀌어버렸다.

붉은 배경의 약간 삭막한 공간이 갑자기 꽃과 작은 새가 조잘거리는, 마치 지상낙원같은 곳으로 변해버린것이다.

꽃향기와 달콤한 과일의 향기가 풍기면서 시냇물이 흐르는 작은 나무집에는 왠지모를 따뜻함마저 느껴졌다.

여자는 내가 바로 그녀의 뒤에 있는것을 확인하더니 나무문을 살짝통통 두드렸다.

그러자 안에서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금새 벌컥 열리더니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긴 머리를 뒤로 길게땋고 얌전해보이는 미남이 땀을 훔치면서 나왔다.

"아, 일호씨, 여기는 무슨일로..."

일호라고 불리는 회색보자기는 내등을 억지로 밀면서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가주님께서 '교육'을 부탁드린다고 합니다."

허스키한 목소리에 나는 깜짝 놀랐고 그 말을 들은 남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일호라는 여자의 뒤에 그를 빤히 바라보는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바로 공손한 자세로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그, 그럼 이 분께서..아, 안녕하세요. 도련님. 앞으로 제가 도련님의 교육과 시중을 담당할 종복인 채홍이라고 합니다."

"아, 저는 장....아니 당수연이라고 해요."

장연이라고 하려고 했지만 옆의 일호라는 여자에게서 풍기는 싸늘한 기운에 깜짝놀라서 바로 가주에게 받은 이름인 당수연을 말해주자 싸늘한 기운이 사라졌다.

일호라는 여자는 내가 채홍이라는 남자와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더니 나에게 무감정하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경고를 했다.

"도련님께서는 이제 당가의 소중한 식솔이시니, 과거의 이름을 더이상 쓰시면 아니되십니다. 그리고 이 곳은 낙원진이라는 아주무시무시한 진법으로 둘러쌓인 곳이니 멋대로 나오시면 위험하십니다. 자세한 것은 채홍님께 물어보도록 하십시오."

살짝 고개를 까닥인 그녀는 올 때와는 다르게 잔상이 생겨질정도로 빠른 속도로 멀어져갔다.

...낙원진? 그리고 진법? 진법이라는것이 이렇게 대단한 것이었나? 

내가 주위의 경관을 멍하니 바라보자 채홍은 살풋이 웃으면서(복장도 앞치마를 두르면서 무릎까지 오는 긴치마를 입고 있었다. 무척이나 어울렸다.)내 손을 이끌고 나무집안으로 들어갔다.

나무집에는 바닥이 보일정도로 반짝거리고 매끈한 나무바닥으로 되어있었기에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자 그는 나를 대나무로 짠 돗자리가 깔린 방안에 밀어넣고는 차와 과자를 가져오면서 이곳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이곳은 당가의 직계혈손 남자...그것도 아주아주 중요하신 분들만이 머무르실 수 있는 '화향옥'이라고 합니다. 저 채홍은...아니, '채'씨 일가는 이곳 회향옥의 관리인이자 중요한 당가의 도련님들을 교육시키는 교육자입니다."

그렇게 말하고나서는 맑은 초록빛의 차를 살짝 들이키고 나서 가만히 나를 쳐다보았다.

그 시선이 무척이나 집요해서 약간 부담감을 느끼고 있을 때, 그는 살짝 눈가에 눈물을 그렁그렁 맺더니 흰 손수건을 꺼내 코를 흥-하고 풀었다.

"훌쩍, 실례. 도련님의 모습을 뵈오니 수련님이 생각나서....그 분도 이곳에서 기거하시면서 아직 어렸던 저를 많이 귀여워해주셨죠. 정말 상냥하신 분이셨죠.."

"저...그, 교육이란 역시..."

내 말에 눈물을 훔치던 그는 깜짝 놀라면서 주책을 부렸다면서 사과하였다.

"아, 그런건 별 신경않쓰니까 상관은 없는데, 저기...세가의 직계 혈손 남자는 저 밖에 없나요? 다른 분들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군요."

"...예...다른 분들은 전부....직계는 도련님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아니계십니다. 방계쪽은 소수이시지만 살아계시고요. 그 씹어먹을 소뢰음사의 탕녀들이 아직 어린 도련님들을 간살하거나 납치해서는..."

"그, 그렇군요."

소뢰음사의 중들이 전부 여자인것은 대충 알고 있었지만 어린 남자아이를 납치하고 간살할 정도로 소아성애자일줄은 몰랐다.

...소아성애...그것도 남자어린아이를.....

머리빡빡민 늙은 여자들이 남자어린아이를 희롱하는 모습을 상상하자 속이 울렁거리고 위장에서 무언가 올라올려는 것을 간신히 참아내고 이곳에 대한 설명과 '교육'에 관해 여러가지를 관리인, 채홍에게 들었다.

이 화향옥이 만들어진 이유는 당가의 시조 때부터 내려오는 전통이라고 하였다.

당가의 시조는 본래 사천출신의 노처녀 약초꾼이었는데, 산에서 캔 약초로 하루하루 근근히 살아가는 가난한 고아였다.

그런 그녀가 어느 날, 큰 상처를 입은 매우 순한 눈빛의 흰 뱀을 치료해주게 되었는데, 그 후부터 흰 뱀이 자신을 찾아와 영초들을 나눠주게 되었다.

영초로 큰 부자가 된 여자는 흰 뱀에게 집을 지어주고 직접 먹이를 가져다 주면서 답례를 하자, 그 날부터 그곳에 기거하던 뱀이 어느덧 아름다운 미청년이 되어 그녀에게 구혼하여 결혼하였다.

그것이 바로 사천 당문의 전해저 내려온 이야기.

"그 흰 뱀이 기거하던 곳을 화향옥이라 칭하고 대대로 절진을 설치하여 직계혈손남자들의 거처로 삼게 되었다는 거죠."

"...잠깐만요. 그렇게 따지면 사실 이곳은 직계남자가 아니라 가주와 결혼하는 남자가 살아야하는 곳이 되어야하는 것이 아닌가요?"

마치 전생의 옛날전래동화같은 가문의 시조에관한 이야기를 듣고나서 떠오른 생각은 그것이었다.

그래, 일단 내가 반은 뱀의 피를 타고났다는 것과 시조는 뱀과 교미할정도로 수간을 좋아하는 변태였다는 것을 제쳐두고라도 화향옥이라고 하는 이곳은 직계혈손인 남자가 아닌 가주의 남자들이 교육받고 사는 곳이어야하지 않은가?

내 말에 채홍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상하다는 말을 하였다.

"도련님? 뭔가 오해하시는 듯한데요....여기는 직계혈손남자가 기거하는 곳이어야함이 맞습니다. 왜냐하면, 직계혈손의 남자는 가주의 남편이 되어야하는 것이니까요."

"에....에에에에에엣~~!"

이게 무슨 개소리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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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홍의 말에 충격을 먹고 잠시 큰 공황상태에 빠진 나에게 그는 상당히 의아한듯한 시선을 보여준 뒤 말을이었다.

가축의 특성을 발달시키듯 근친혼으로 거듭한 무림세가의 직계혈족들은 평범한 인간들보다 훨씬 빠른 무공의 성취와 강한 신체를 타고나는 일종의 초인이 되어간다고 하였다.

이런 순수한 피를 유지하기 위해 진행되어온 근친혼은 마교와 소뢰음사, 그리고 여러 세외문파들의 연합전까지만하더라도 서서히 줄어드는 추세였다.

순수한 피로 강화되는 데에도 어느정도 한계가 있기 때문인데, 지금와서 부활시키는 이유는 바로 직계혈족의 수가 많이 줄었기 때문이란다.

"순수한 피의 강력함은 많은 상류층들이 알고 있습니다. 황제폐하도, 다른 여러가지 무림세가들도 이를 알고 근친혼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답니다."

과거에는 물론 이런 근친혼으로 기형아나 특정질병에 약한 여자들도 태어났지만 그것도 서역에서 들어온 흑마법사들이 들어오기 전까지의 이야기라고한다.

서역의 흑마법사들은 신전이라는 세력에 밀려 중원까지 흘러들어온 자들인데, 그들의 지식으로 인해 순혈의 부작용이라 불리는 것들이 싹 사라지자 중원의 여러 세가들과 황제는 그녀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자 순혈들은 방계들과는 다른 전혀 다른 인종이 되어버렸는데, 그 이점을 받아들인 자가 바로 가주와 당가 10수라고 한다.

그녀들은 순혈보존으로 태어난 여아들인데, 당가가 무너질 무렵 어렸던 그녀들이 이렇게 강해진 이유는 당가타의 무공비급과 영약도 있었지만 이런 재능도 큰 역할을 맞게 되었다고한다.

덕분에 3년만에 당가는 전성기의 절반에 해당하는 세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저희 당가 뿐만아니라 다른 무림세가에서도 많이 행해지는 행위입니다. 당수련님은 물론 이런 행위를 싫어하시면서 데릴부인을 들여오셨죠. 물론, 큰 반대가 있었지만 부인인 이강님이 상당히 강하신 고수였기에 허락되었답니다."

그 말을 멍하니 듣던 나는 갑자기 피로해져서 눈을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자, 채홍이 그런 나를 보고 호들갑을 떨면서 얼른 욕탕으로 가서 목욕을 하라고 하였다.

언제 데웠는지 뜨끈...아니 내가 좋아하는 약간 따끈할 정도로의 물이 담긴 나무 욕조에 들어가자 알게모르게 긴장했던 몸이 풀리는 것 같았다.

몸을 깨끗이 씻고 바깥에 있던 옷(내가 입고 있던 옷은 여기서는 여자옷인 바지였다. 산골에서 치마를 입고 돌아다니기에는 힘들었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은 내가 싫었다. 전생에 남자였던 기억이 있으니까..그런 내가 지금 갈아입은 옷은 매끄러운 재질의 흰색 원피스였다...으드득.)을 입고나서 채홍의 목소리를 따라 식당으로 가니, 향긋하고 화려한 색채를 가진 반찬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수연님께서는 치마가 어울리세요. 남자답지않게 바지를 입으시는 모습도 상당히 두근거리지만 역시 남자는 치마죠!"

반짝거리는 눈으로 바라보는 채홍의 눈에 손가락을 쑤셔박고싶은 심정을 간신히 눌러버리고 의자를 꺼내어서 바로 식사를 하려고 하자 갑자기 손등에서 찰싹하는 소리와 함께, 냉정한 채홍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어머, 수연님. 아무리 배가고프셔도 그렇지, 남자가 품위없게 행동하시면 안됩니다. 제가 식사예절을 가르쳐드릴테니 하나하나 차근차근 배워보도록 하죠."

방금전까지 내 원피스를 입은 모습을 보면서 꿈꾸는 청년같은 헤실헤실대는 남자의 얼굴을 지워버리고 엄숙한 교육자의 얼굴이 된 채홍은 어디서 꺼냈는지 상상하기 싫은 검은색 회초리를 낭창낭창 휘면서 상당히 서늘한 기운을 풍겼다.

'내가 이래서 이곳에 오기 싫었어.'

"식사중 딴 생각은 금지입니다."

"아얏!"

"당가의 남자라면 신음성에도 기품이 스며들어야합니다."

찰싹찰싹.

...뭔가 이상한 상태에 빠져든 채홍의 분위기에 설설기는 얼굴이 되어 그가 가르쳐준 자세와 예의라는 것으로 간신히 식사를 마치자 다시 헤실거리는 분위기로 변하면서... 

"처음이신데 상당히 훌륭하세요. 역시 도련님은 훌륭한 당가의 직계남성이 되실 겁니다. 자아~ 내일 부터는 평소 걸음걸이와 자세도 교정해 보도록하겠습니다!"

'아, 피곤해...'

차라리 당웅의 험악한 얼굴이나 가주와 함께 있는편이 편하다고 생각하였지만 괜히 그런말을 꺼내면 채홍에게 칭찬아닌 칭찬(어머어머, 벌써 그런 기특하신 생각을...좋습니다. 사실 가주님은 설렁설렁 교육시키시라고 했지만 도련님이 바라신다면 이 채홍 기꺼이..)을 할것 같기에 입을 닥치고 바로 이를 닦고 잠에 빠졌다.

잠들 때도 귀찮게 침의(잠옷)으로 갈아입으라고 하는데...으득..정말...으드득...예쁜 침의를 주면서 미소짓는 채홍의 얼굴에 주먹을 내려꼿아버리고 싶었다.

왜냐하면 그 침의는 무슨재질인지 모르지만 속까지 훤히비치는 야한 침의였기 때문이다!

'정말 미친척하고 한번 도망쳐볼까?'

확률도 낮고 할머니에게 가해질 보복이 걱정되긴 하지만 이런 처지가 계속된다면 정말 정신줄을 놓고 도망쳐버릴 계획을 세우는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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