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4/12)

4. 歲月

내가 실제로 이 눈으로 직접 본, 어머니의 바람피는 현장은 침실이 마지막이었다.

한번 더 정도는 보았을지도 모르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나중에 더 이상 알면 안될 것 같아 필사적으로 참았다. 더 이상은 위험하다.

무엇보다, 주위의 환경도 바뀌어 그쪽에 대한 흥미가 불가사의할 정도로 급속히 식었다.

유부녀와의 밀회 장소로서, 남편의 없는 집은 자극적이지만 위험한 장소이다. 그러나, 아이들의 눈은 있었지만, 아버지가 잔업을 하는 밤 거실이 남자에게는 유일한 찬스였다.

이것은 전부터, 어머니는 밤 방문객, 그것도 갑작스런 방문을 싫어했다. 아무리 급한 볼일이 있을 경우에도 누구라도 먼저 연락을 하고, 허락을 받은 후, 그 뒤에 황송해하며 들어 왔다.

어머니를 화나게 하면 어머니는 무섭다. 명가의 딸이라 그런지도 모르지만.

어머니는 밤에는 가족들의 시간으로 하고 싶어 했다. 그러니까, 밤에 갑작스런 방문자는 우리 집에는 없다.

아버지는 동사무소 내의 부서가 바뀌어 잔업이 없어졌다. 대신에 일요일에 출근을 했지만, 일요일은 우리남매가 집에 있었다.

남자가 거실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을 시간이 없어졌다. 일요일 낮에 밖으로 어머니를 데리고 나갈 수 있으면 좋지만, 평상시의 어머니가 뒤따라 갈리가 없다.

그 남자는 변함없이 집에 출입하고 있었지만, 대부분 아버지가 있을 때였다. 그리고, 어머니와 그 남자로부터 비밀스런 긴장감이 전해지지 않게 되었다. 나는 이렇게 끝나서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나도 중학교 3학년이 되어 수험 태세에 들어갔다.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의 집중력이 생겼다. 그리고, 유명한 고등학교에 들어갔고, 사립 중에 제일 좋다는 토쿄의 대학에 다녔다.

고교시절, 어머니의 속옷으로 자위도 했고, 어머니와 나 단둘이 있을 때, 침실 장면이 플래시가 되어 나를 괴롭히는 일도 있었지만, 심각한 일은 되지 않았다.

사랑도 했고, 여자의 육체도 알았다. 몇 번 자랑할만한 일도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어머니는 변했다. 안경이 온화한 느낌이 드는, 테가 둥근 안경으로 바뀌었다.

밝고 어디서든지 잘 웃게 되었다. 일꾼들에 대해서도 전보다 티 없이 접하게 되었고, 특히 남정네를 포함한 남자에 대해서 울타리가 낮아진 것 같았다. 그러한 행동이 자연스럽게 보여져 이전과 다르게, 다가가기 쉬운 느낌을 주위의 사람에게 주었다.

복장도 그런 변화를 반영하고 있었다. 품위를 잃지는 않았지만...

나의 느낌은, 화려하게 느껴졌으나, 어른은 말했을 것이다.

요염해졌다, 라고...

아버지에게 아양을 떠는 모습을 우리 남매 앞에서도 보여 나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적극성도 띠었다. 자동차 면허도 취득했다. 여동생은 어머니의 차를 타는 것을 싫어해서 이렇게 말했다.

"이런 사람에게 면허를 주는 교습소가 나빠."

사실, 어머니의 차가 오면, 마을에서는 차도 보행자도 서둘러 도망쳤다. 수리 공장의 단골손님이 되었지만 큰 사고는 일으키지 않았고, 반년이 지나자 모두들 도망치지 않게 되었다. 어머니의 행동 범위는 더욱 더 넓어졌다.

대사건도 있었다. 내가 고교 1년 때, "대장"이 죽었다. 업무 중, 실족으로 나무로부터 떨어져 벼랑으로... 그리고 죽었다고 한다.

믿을 수 없다며 모두들 말했다.

원숭이보다 잽싸고, 짧은 로프 하나로도 놀라운 스피드로 大木을 오르내렸다. 가지를 잡으며, 나무에서 나무로 옮겨 다녔다. 나도 몇번인가 본 적이 있다.

그러나, 평상시는 제일 안전한 방법을 취했다. 그러나 가끔 위험한 기술을 사용했다. 그것이 또 견딜 수 없이 멋있게 보일 때도 있었다.

언제라도 제일 위험한 장소에 있었지만, 최근 10년동안 상처 하나 입지 않았던 그 남자가...

"대장"의 부인은 말수가 적은, 소극적인 여자였다. 그 부인의 기분이 어땠을까를 생각하면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성대하게 장례식을 치러줬지만, 정 없게 부인은 집을 그대로 둔채 아이만을 데리고 어딘가로 가 버렸다. 사람들은 배은망덕한 여자라고 소문냈다.

아버지는 그것을 기회로 山을 거의 처분해 마을 부동산에 투자했다. 물론 일꾼들의 일자리는 세심하게 알아봐주었다. 그 남자 이외에 山을 맡길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만, 때가 때인 만큼 이 결단은 대성공이 된다.

나는 살인자가 되고 싶어도 될 수 없게 되었다.

"대장"의 장례식 뒤, 어머니는 한동안 낙담한 것 같았지만 부부사이는 더욱 더 좋아졌다.

어머니는 山의 일이 없어진 만큼, 사회봉사에 열심이었다. PTA , 부인회는 물론, 주위의 아가씨들을 모아, 어머니는 자원봉사로 신부 수업 선생님 역을 맡았다.

그 아가씨들의 영향인지, 어머니는 더 젊어졌다. 안경을 콘택트렌즈로 바꿨다. 술도 세어져 특히 와인을 좋아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부서가 바뀌어 보통 공무원의 근무를 하게 되었다. 여동생이 고교에 다니게 되자, 휴일 전날은 부부 둘이서 별장에 가 숙박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어머니는 더욱 더 매력적이 되어, 나와 함께 걷고 있어도 중년 남자가 힐끗 되돌아 볼 정도였다.

무용은 어머니와 함께 걷는 것을 싫어했다. 자매로 오인 받을 것 같아서.

어머니에게는 사랑하는 친구도 있었다.

아버지도 순조롭게 출세해 갔다.

그 어머니가 죽었다.

49세였다. 이전부터 심장이 약해 병원에 자주 갔지만, 최근에는 병의 악화되는 속도가 빨라 선생님도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주로 검사를 위해서였지만, 입 퇴원을 반복했다.

아버지는 정년이 가까워지자 일을 그만두고 퇴직해, 쭉 어머니의 곁에 붙어 헌신적으로 간병했다. 마을에서도 병원에서도 평판이 자자했다.

어머니는 가슴의 고통과, 치료의 괴로움을 잘 참았다. 다만, 집에 돌아가고 싶어 해, 아이처럼 때를 쓰기도 했다. 아버지는 참으라고 하며 집에 돌아가게 되면 진통제라고 하며 와인을 마실 수 있게 해 준다고 했다.

나나 여동생도 어머니의 마지막에 입회할 수 없었다.

어머니의 죽음은 돌연 왔다. 입원하고 있었지만, 어머니의 용태는 안정되어 있었고 최근에는 드물게 외박 허가가 나와, 오랫만에 가족모두가 집에 모이기고 했다.

나는 대학을 나와 일하고 있었다. 무용도 대학을 나와 결혼한 바로 직후였다.

우리들은 어머니의 여생이 길지 않은 것을 최근 아버지로부터 듣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날 밤은 조용하지만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무용의 결혼식에 참가할 수 있던 것을 어머니는 기뻐하고 있었다.

다음은 네 차례야, 빨리 상대를 찾아, 라고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이에는 얼마 남지 않은 이 세상의 시간의 흐름과는 다른 농밀한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다음날 어머니는 현관까지 마중을 나와 주었다.

돌아가는 길에, 무용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이에 깊은 애정과 굉장한 무엇인가를 느꼈다고 했다.

그날 저녁 상태가 안 좋아진 어머니는 머나먼 여행을 떠났다.

어머니의 장례에는 많은 사람이 참석해 주었다. 옛 남정네들, 여자들도 참석해 주었다.

가문의 위치를 볼 때, 참석할 신분이 아니었지만, 여자들 중에는 진심어린 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었다.

그 옛날 온천 숙박권을 받은 부인이다.

그 남자의 부인은 오지 않았다. 재혼해 먼 곳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세월은 흘러, 아버지의 장례가 3일 전에 행해졌다.

어머니의 死後, 아버지는 사람을 혐오하는 것처럼 종일 서재에 틀어 박혔다.

몇 번인가 술에 취해 무너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서재에서 무엇인가 말하면서 울고 있었다.

재혼이야기도 있었지만, 모두 거절한 것 같았다.

아버지가 서재에서 쓰러져 있는 것을, 식사를 돌봐 주고 있는 사람이 찾아냈다.

많은 출혈로 위험한 상태가 며칠인가 계속되었다. 한때 회복했지만 결국 아버지는 생을 마감했다.

내가 머리맡에 있을 때, 아버지가 눈을 떴다.

무엇인가 열심히 나에게 전하려 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입가가 뒤틀린다. 나는 귀를 아버지의 입가에 가까이 대었다. 써두려고 했지만 의미를 알 수 없었다. 간신히 알파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앞파벳을 써서 보여주었다.

"지워라..."

"지우라고?"

한 번 더 얼굴을 가까이 하고 되물었지만 대답은 없었다. 몸을 일으켜 아버지의 얼굴을 보았을 때에는 의식이 없었다. 두 번 다시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만77세였다.

장례가 끝나, 친척들도 돌아가고 마지막에 여동생 가족과 내 가족만 남게 되었다. 나도 함께 돌아갈 예정이었지만, 나만 하루 남기로 했다. 의아해하는 아내에게 "조사해야할 일이 있다" 라고 하고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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