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 - (2). 312호의 이벤트. (40/50)

# 35 - (2). 312호의 이벤트.

하진을 데리고 나갔던 서희 팀장이 술자리로 돌아오자, 사람들은 막내 하진이의 행방을 물었지만 서희 팀장은 밖에서 바람을 더 쐬고 오는 모양이라며 대답을 피할 뿐이었다. 내가 따라준 돼지발정제가 섞인 양주를 한잔씩 걸친 2팀 팀원들은 이미 목덜미가 얼마전 다영이 모녀와 같이 눈에 띄게 붉어져있었다. 그들은 그것을 양주에 의한 취기라고 여겼는지, 연신 목을 득득 긁으며 눈을 꿈뻑거렸다.

"아, 이거... 양주가 엄청 세긴 센가보다. 확 올라오는데?"

"그, 그러게. 한잔 마셨는데 얼굴에 바로 올라오네."

양주를 한잔 마신 조부장의 눈길이 서희 팀장의 몸을 훑는 것이 느껴졌다. 성욕을 부채질하는 약물이 들어간 상태에서 윤 팀장을 보게 되니 하물에 힘이 잔뜩 들어가는 모양이다. 과연 곧이어 조부장이 서희 팀장을 따로 불러내는 모습이 보였다.

"흠.. 흠. 윤팀장. 잠깐 같이 나가지."

조부장이 서희 팀장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버리자 수많은 남자 팀원들의 시선이 서희 팀장의 뒷모습에 꽂혔다. 뭔가에 들뜬 듯한 눈길들. 성욕을 자극받은 수컷들의 눈길이 아름다운 여팀장의 몸 곳곳에 쏠리고 있었다. 나는 두근대는 가슴을 안고 조부장과 윤팀장의 뒤를 쫓아 그들을 미행했다. 

그들이 얼마 떨어져있지 않은 비상구 너머의 비상계단으로 들어서는 모습을 본 나는 쏜살같이 달려 2층의 반대편 비상계단을 통해 3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다시 반대편 비상계단으로 달려 서희 팀장이 있는 방향의 계단으로 내려갔다. 그러자 아슬아슬하게 2층과 3층 계단 사이의 공간에 서 있는 서희 팀장과 조부장의 모습이 보였다. 과연 예상대로 조부장은 서희 팀장을 구석에 몰아넣고 그녀의 엉덩이를 더듬으며 온갖 희롱을 가하고 있었다.

"흐흐.. 이러는 것도 오랜만인데 여기서 한번 어때?"

역겨운 조부장의 목소리에 서희 팀장이 숨을 가다듬으며 발끝을 뾰족하게 세우고 뒤로 물러난다. 그녀는 내가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간신히 구역질을 참으며 이렇게 말한다.

"여기선 안 돼요 부장님.... 제가 312호를 비워뒀으니까 그리로 가요."

"벌써 방까지 구해뒀단 말야? 흐흐흐, 이거 윤 팀장도 내심 내 품을 기다렸던거구만?"

"기.. 기왕 하는거 맘 편하게 하는게 좋잖아요? 저는 팀원들한테 마무리하라고 말해놓고 올라갈테니 부장님은 먼저 가 계세요."

"크크, 좋아 좋아. 알았다구. 빨리 와야 해. 오 대리가 가져온 술이 뭔진 몰라도 아주 물건에 힘이 불끈불끈 들어가게 만드는 구만."

뭐긴 뭐야. 돼지들 교미시키는데 쓰는 발정제지. 조 부장이 연신 변태같은 웃음을 흘리며 위층으로 올라오자, 위쪽 계단에 있었던 나는 황급히 4층으로 몸을 피신해야했다. 조 부장이 비상구를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나는 2층으로 뛰어내려갔다. 서희 팀장은 역시나 내가 보고 있다는걸 알았는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이, 이제 어쩔 생각이죠? 조 부장까지 끌어들일 필요는 없었잖아요..."

"서희 씨한텐 잘 된거 아닌가요? 내일부터 조 부장은 아마 회사에서 얼굴 들고 다니기도 힘들어질걸요. 흐흐. 잘하면 조 부장 좆물받이 신세에서 벗어나게 될 지도 모르는데."

"........."

"그래도 나한테서 벗어나려면 아직 더 분발해야 해요. 자, 이제 술자리로 돌아가죠. 해야 할 일은 잘 알고 있죠?"

서희 팀장을 데리고 술자리로 돌아오니 203호의 분위기는 아까보다 많이 시들해져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약물의 효력이 돌기 시작한 남자들이 서서히 말수를 잃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희석을 시켜서 효력이 다소 떨어지긴 했어도 수컷의 성욕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한 용량. 그들은 연신 같은 방 안의 여직원들을 게슴츠레한 눈으로 살펴보며 하나같이 숨이 거칠어져 있었다.

"야, 양주가... 좀 독한가보네...."

주로 남자들에게 양주를 따라주었지만 개중에는 잘못 걸려 최음제를 들이키게 된 여직원도 몇 있었다. 그들 역시 자기 몸의 변화가 이상하게 느껴지는지 붉은 기가 오르는 목과 팔다리를 매만지며 의아해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서희 팀장이 나타나자 2팀 남자들의 시선이 모두 그녀에게로 집중되었다. 평소와는 다른, 마치 늑대같은 팀원들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꽂히자 서희 팀장의 표정이 기묘하게 뒤틀렸다.

"팀장님, 여기서만 이러고 있으려니 아쉬운데 저희 2팀끼리 나가서 좋은 곳으로 2차가는게 어떻습니까?"

"옳소! 옳소!"

때마침 누군가가 제안을 하자 들뜬 남성들이 저마다 동조하고 나섰다. 그러자 서희 팀장이 자기 바로 아래 서열인 박 차장을 따로 조용히 불러내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나는 서희 팀장과 박차장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다.

"박 차장님, 남자들만 데리고 조용히 312호로 가주세요."

"네? 312호엔 왜요?"

"조용히 우리끼리만 나가서 2차가려는데, 다른 팀 눈에 띄면 좋을 거 없잖아요. 부장님한테는 내가 알아서 말할텐까 박차장님은 조용히 남자들만 모아서 와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그런데 왜 여자들은 빼고 남자들끼리만....?"

"그건 이따가 말해줄게요. 우선 312호에 다들 모여요."

"알겠습니다. 딸꾹."

지시를 받은 박차장이 윤 팀장의 명령대로 술자리에서 남자들만 모아서 빠져나가자, 자리에 남은 여직원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수선대는 여직원들을 서희 팀장이 인솔하는 동안, 나는 박차장이 이끄는 남자들 무리에 자연스럽게 슬쩍 끼어 함께 312호로 올라갔다.

척 보기에 열댓 명 남짓 되어보이는 남자들.... 주로 기획부 2팀 남자들이었지만 개중에는 두어명 정도 타 부서의 남자들도 있었는데, 이미 술이 잔뜩 취한 박차장은 그것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틈바구니에는 자연스럽게 섞여든 나도 있었다.

"아, 오늘따라 왜 이렇게 몸이 뜨겁지?"

"그러게 말야. 이거 도저히 가만 있기가 힘든데...."

"차장님, 여기서 이러지말고 남자들끼리 나가서 안마방이라도 다녀오는게 어떻습니까?"

최음제가 섞인 양주를 걸친 남자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마신 건지도 모르고 그저 취기와 성욕에 들떠 웅성거리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얼굴이 벌개진 박차장이 부하 직원의 솔깃한 제안에 적잖이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서희 팀장이 다같이 2차가자고 하던데."

"크크.... 우리 어디 조용한 곳으로 2차가서 팀장님이랑 여자들 완전 꽐라 만들어버리죠."

"흐흐, 그거 좋다. 그러고 나면 우리끼리 한적한 곳에 방 하나 잡아서...."

이성이 마비되자 팀장에 대한 음담패설도 서슴지 않고 내뱉는 2팀 남자들. 아마 2팀 남자들 사이에서는 이렇게 남자들끼리 있으면 서희 팀장에 대한 음담패설을 하는 분위기가 이미 만연한 것 같았다. 그러는 와중에 남자들 무리는 어느새 3층 복도까지 다다랐다.

군중들이 312호 앞에 몰려들기 전, 나는 한발 먼저 움직여 312호의 열쇠구멍에 키를 꽂아놓았다. 아까 내가 열어두고 나왔던 문이 지금은 안에서 단단히 잠겨있었다. 키를 꽂아놓은 나는 만취한 군중들 사이에서 잽싸게 빠져나와 바로 옆 숙소인 311호로 들어섰다. 다행히 아무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311호의 문을 안쪽에서 단단히 걸어잠근 나는 휴대폰을 꺼내 서희 팀장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리고 312호에 설치된 캠코더를 와이파이로 모니터링하고 있는 휴대용 스크린의 전원을 켰다. 그러자 312호 내부의 모습이 스크린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때마침 312호의 문고리를 열어젖히는 소리가 복도를 타고 여기까지 들려왔다. 

"어엇... 자, 잠깐!!"

그러자 안쪽에서 다급하게 터져나오는 조부장의 다급한 고함소리. 이유를 궁금해 할 필요는 없었다. 스크린에 떠오른 광경이 모든 것을 설명해주고 있었으니. 그리고 미처 손 쓸 틈도 없이 그 광경 앞에 몰려드는 열댓 명의 남성들. 굳게 걸어잠근 문이 이렇게 갑작스레 열릴 줄 조부장이 어찌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제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느긋하게 지켜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휴대폰을 꺼내 윤서희 팀장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벤트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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