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 - (1). 하진의 시점.
장하진. 그녀는 실제로 학창시절부터 주량에는 꽤 자신이 있었다. 사회생활에 있어서도 술을 원활히 주고 받는 것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 그녀는 윗사람들이 권하는 술을 고분고분 받아마셨다. 그리하여 회식 분위기가 밝아진다면 자신은 사랑받는 막내로서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실제로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뭔가가 이상했다....
'왜 이러지? 내 주량이 이렇게 약해졌나...?'
그러고보니 방금 전에 마신 술 맛이 조금 이상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것이 일명 데이트 강간 약물, GHB라는 사실을 그녀가 알 리가 없었지만 말이다. 이렇게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것만 해도 그녀가 평소 술의 맛을 그만큼 자주 접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더이상의 사리판단을 할 여력도 없이, 약물의 기운은 그녀를 덮쳐오고 있었다.
자꾸만 감기는 눈꺼풀. 취기가 오른 것 같지는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정신이 혼미해지고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때마침 바람을 쐬러가자는 팀장님의 제안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 그녀는 서희 팀장의 뒤를 따라 무작정 걸었다.
팀장은 그녀를 3층으로 이끌었다. 312호의 문 앞에 서서 팀장이 문 손잡이를 돌려 열자, 잠겨있지 않았던 문이 쉽게 열렸다.
"팀장님, 숙소엔 왜요..?"
"아, 그냥... 너 많이 마신 것 같아서. 나도 좀 취한 것 같고... 여기서 조금만 쉬다 내려갈까?"
얼떨결에 312호 안으로 끌려들어온 하진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아... 네... 그러면 밖에서.... 바람을 쐬는게... 더... 낫지... 않....."
말을 하면서도 점점 더 내리깔리는 눈꺼풀. 서희 팀장이 그녀를 부축하자 하진은 자신도 모르게 바닥에 허물어져내렸다. 그렇게 바닥에 힘없이 사지를 뻗고 드러눕는 하진. 왠지 착잡한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팀장의 모습이 보인다. 언제나 이지적이고 똑부러지던 팀장의 얼굴이 오늘따라 불안해보인다. 그런 모습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미안해, 하진아..."
갑작스런 팀장의 사과. 무엇이 미안하다는 걸까? 하지만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하진은 서서히, 아주 서서히 깊은 혼수상태에 빠져들었다. 정신을 잃은 그녀는 팀장이 자신의 옷을 하나하나 벗기고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