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 워크샵의 밤.
왁자지껄한 분위기와 오고 가는 술. 주간 교육 프로그램이 끝나고 주어진 저녁 자유시간의 모습이었다. 초저녁에 시작된 술자리는 점점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면서 어느덧 밤 12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숙소 전체에서 벌어진 술자리는 처음에는 전체 인원을 한 곳에 수용할 수가 없어서 소속 부서별로 나누어 시작되었지만, 흥이 깊어지면서 자리 이동이 자유로워졌고 어느새 팀과 소속 부서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뒤섞여 노는 분위기가 되었다.
윤서희 팀장의 기획부 2팀과 내가 속한 영업부 3팀은 그리 많은 접점이 있는 관계가 아니었기에 술자리 초반에는 그쪽으로 갈 핑계가 궁색했으나 역시 분위기가 깊어지자 어렵지 않게 영업부 자리에서 빠져나와 서희 팀장의 팀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었다.
기획부의 숙소는 내가 배정받은 숙소로부터 한 동이나 떨어져 있었는데, 2층과 3층을 나누어 아예 2층은 술판을 벌이는 용도로 쓰고 3층 전체를 숙소층으로 쓰고 있었다. 나는 윤서희 팀장의 기획부 2팀이 판을 벌이고 있는 203호로 들어섰다.
"오오, 이게 누구야. 영업부의 오 대리 아니야?"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먼저 반겨준건 기획부의 최고참, 바로 조 부장이었다. 생각해보면 서희 팀장이 내 노리개가 된 것도 다 조부장 덕분인데 이 인간은 과연 그 사실을 알고나 있을까? 요새도 두 사람은 사내 으슥한 곳을 찾아 불륜의 시간을 갖곤 할까?
"하하, 제가 여기 끼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지. 그러고보면 오 대리가 우리 윤 팀장과 많이 가까워보인다는 소문이 요즘들어 들리던데. 허허."
멀지 않은 곳에서 팀원들과 술잔을 주고 받고 있던 서희 팀장의 얼굴이 삽시간에 돌처럼 굳어졌다. 이렇게 삼자대면을 하는 것은 그러고보면 처음이니 그녀 입장에서는 긴장될 법도 할 것이다.
"하하, 지난번 PT 작업 하면서 조금 가까워진 것 뿐입니다."
"하기야 우리 서희 팀장의 인기가 워낙 좋다보니 이제 별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구만. 허허허. 안 그런가, 윤 팀장?"
나는 조 부장의 그 말 속에서 나만이 캐치해낼 수 있는 기묘한 흡족함을 읽어낼 수 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이렇게 인기 좋은 윤서희라는 계집과 나는 아무도 모르게 불륜을 즐기고 있다, 라는 수컷으로서의 자부심이리라. 지목을 받은 서희 팀장은 차마 아무 대답을 하지 못하고 황급히 몸을 돌려 팀원들과의 수다에 집중하는 척을 했다.
"오 대리님~! 이리와서 같이 한잔 해요!"
역시나 멀지 않은 곳에 2팀 막내 장하진이 있다. 오늘밤 내가 기획한 이벤트의 제물이 될 년이다. 나는 사전에 주고받은 대로 서희 팀장에게 신호를 보내며 기획부 2팀 사람들 사이의 틈바구니에 끼어앉았다.
"자아, 또 게임 들어갑니다~"
분위기를 보니 술자리 게임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척 보기에도 벌칙이 막내 장하진에게로 몰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신입 여사원에게 톡톡히 신고식을 치르게 하기 위해 팀 선배들이 그녀에게 잔을 몰아주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주량이 세다는 하진이년의 말이 거짓은 아니었는지 그녀는 연신 잔을 받아내면서도 얼굴색이 크게 변화가 없었다.
"아~ 왜 또 저에요... 이거 짜고 치는거 맞죠오?"
혀가 살짝 꼬인 발음으로 하진이가 투덜거리자 기획부 2팀에서 윤서희 팀장 다음가는 서열인 박차장이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그녀에게 술을 따랐다.
"막내란 원래 그런거야. 벌칙은 모두 막내 몫이라는거 몰라?"
"자, 자, 하진씨에게 다들 질문 타임 한번씩! 대답 못하면 벌주 한잔 씩이야."
진실게임 비슷한 것을 하고 있었나보다. 시계 방향으로 돌아가며 다들 장하진에게 질문을 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꽤 짖궂은 질문들도 더러 나왔다. 이를테면 하진의 사수인 최 대리가 던진 이런 질문 말이다.
"하진 씨, 누가 만약 대쉬하면 군대 가있는 남자친구 버리고 바람 필 생각 있어?"
그러자 2팀의 여직원들이 일제히 야유를 던지며 혐오스런 표정을 지었다.
"아이 참, 뭐에요~ 저질!"
"남자들이란 정말."
하지만 그러면서도 여직원들은 진실게임의 표적이 된 장하진이 어떤 대답을 할지 내심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하진은 망설임도 없이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이래뵈도 지조있는 여자라서 바람 같은거 안 펴요~ 호호."
"오올~"
분위기가 흥에 들뜨자 나는 슬슬 계획을 진행시킬 타이밍이 되었다 싶어 서희 팀장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사전에 예고된 대로 서희 팀장이 내게 지시를 내린다.
"승환 씨... 술이 부족한데 위층에 가서 좀 가져와주실래요? 내가 우리 숙소방에 보관해뒀는데."
"하하, 그러죠."
나는 흔쾌히 일어나 그 길로 곧장 3층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서희 팀장의 숙소방으로 바로 들어가지는 않고, 3층의 구조를 파악한 후 그 중 가장 으슥한 방을 골라냈다. 구석에 위치한 312호는 복도 맨 끝에 위치해 있었는데, 나는 이 방으로 들어가 미리 준비해두었던 도촬용 촬영장비들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고가의 거금을 들여 새로이 구매한 촬영장비를 내려다보며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벽면 스위치 형태로 위장된 이 캠코더 모델은 와이파이를 연동하여 가까운 곳에서 실시간으로 촬영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초고성능의 신형 모델이었다. 물론 네트워크를 벗어날 정도로 먼 거리에선 쓸모가 없지만 바로 옆 방인 311호에서라면 문제될 것이 없었다.
나는 312호에 캠코더를 설치하고는, 311호로 자리를 옮겨 촬영 내용을 모니터링 할 수 있는 장비들을 깔기 시작했다. 미리 서희 팀장의 숙소에 장비들을 가져다놓길 잘했다. 작업은 비교적 수월하게 진행되었고, 3층 복도에는 인적이 뜸해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술자리가 이대로 내일아침까지 진행된다면 어쩌면 오늘밤 이 3층에는 아무도 올라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크크."
312호와 311호에 각각 필요한 장비들을 설치하고는 나는 두 방의 열쇠를 열쇠구멍에서 뽑아내어 호주머니에 넣었다. 모니터링 장비가 설치된 311호의 문은 단단히 잠갔지만, 위장용 캠코더가 설치된 312호의 문은 그대로 열어두었다. 준비를 마친 나는 서희 팀장이 지시한 대로 술 상자를 짊어지고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술자리는 여전히 흥에 겨워 있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서희 팀장에게 가져온 술 박스를 내밀었다. 미리 일러준대로 서희 팀장은 그 술병들 가운데 병 부리에 우리만이 알아볼 수 있게끔 O, X로 표시해놓은 맥주병 두 개를 꺼냈다. 그리고 O 표시가 된 맥주병을 열어 막내 장하진에게 술잔을 권했다.
"하, 하진아... 한잔 받을래?"
한심하게도 자기 팀원에게 술을 따르며 긴장하는 윤서희였다. 하긴 그럴 만도 할 것이다. 앞으로 자기가 따르는 이 술 한잔 때문에 자기 팀의 막내가 겪게 될 일을 생각하면 죄책감과 긴장감이 뒤섞여 심정이 말이 아닐 것이니. 하지만 막내 하진이년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자기 팀장이 주는 지엄한 술잔을 넙죽 받아든다.
"넵! 팀장님도 제 술 한잔 받으세요!"
"아.. 나, 나는 맥주 말고 소주로..."
하진이년이 방금 전의 맥주병을 집어들려고하자 황급히 거부하는 서희 팀장. 당연한 일이다. 그 맥주는 알콜과 GHB, 일명 물뽕이라 불리는 약물이 혼합된 액체였으니. 자기 입으로 그것을 마시고 싶을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뽕을 탄 맥주를 하진이년이 벌컥벌컥 들이키자 그녀는 착잡한 심정이 뒤섞인 표정으로 눈을 질끈 감는다.
나는 잠시 뜸을 들인 후, 적절한 시간이 지났다고 판단될 무렵 서희 팀장에게 고갯짓으로 지시를 내렸다.
"하진아, 잠시 밖에 나갔다 올까?"
"네? 어디 가시게요?"
"아, 그냥... 바람이나 좀 쐴까해서."
어리둥절한 표정의 장하진이 팀장의 손에 이끌려 자리를 벗어나자, 팀내의 최고미녀 두 명이 순식간에 빠져버려 남자 팀원들이 아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가져온 술 상자에서 X 표시가 된 특별한 술병을 꺼내들고는 2팀 좌중을 향해 말했다.
"자자, 우리끼리 한잔 더 합시다. 이건 특별히 제가 빈손으로 오기 뭐해서 가져온 양주인데, 기획부 분들하고 나눠마시려고 가져왔습니다! 한잔씩 하시죠."
"이야~ 양주? 승환씨 최고!"
나는 기획부 2팀의 남자 팀원들에게 차례대로 양주를 한잔씩 따라주었다. 팀원들은 그것이 돼지발정제가 섞인 술이라는 사실도 모르고 잘도 그것을 받아마셨다. 일전에 내가 다영이 모녀에게 사용했던 것과 같은 최음제가 팀원들의 목구멍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