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8 - (1). 다영의 시점. (31/50)

# 28 - (1). 다영의 시점.

혐오스런 남자.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악마. 자신을 주인님이라 부르도록 종용하는 남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인생을 파멸시킬 수도 있는 약점을 쥐고 있는 남자.... 거역할 수 없는 남자. 오승환이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을 때, 다영은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불길한 느낌에 몸서리를 쳤다. 그녀는 그가 무서웠다. 

그의 차를 타고 남에게는 차마 보여주기도 민망한 달동네의 다 쓰러져가는 자신의 집까지 가는 길, 그녀는 불안함에 떨며 제발 오승환이 그녀의 집앞까지 오는 일만은 없기만을 바랐다. 다행히 높디 높은 달동네의 낡은집들 중에서도 자신의 집은 오르기도 쉽지않은 으슥한 곳에 위치했기에 그녀는 승환이 그만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다영의 싫은 기색을 즐기기라도 하는 듯한 이 변태같은 작자는 기어이 당황하는 다영의 모습을 즐기며 집앞까지 따라왔다.

"주인님.. 저... 이제 그만... 들어갈게요."

"에이, 여기까지 힘들게 올라왔는데 차 한잔도 안 주고 보낸단 말야? 잠시 커피 한잔 얻어마시고 갈 순 없나?"

"그, 그게... 마땅히 대접할 것도 없고...." 

"그럼 물이라도 한잔 마시고 가지. 여기까지 올라오느라 너무 힘들어서 말야. 여길 매일 오르락내리락 하면 굳이 운동 안 다녀도 될 것 같은데 왜 굳이 헬스클럽에 다녀서 험한 꼴을 보고 그랬나 몰라... 흐흐흐."

"........."

싫다..... 안 된다. 그럴 수 없다. 집 안에는 지금쯤 엄마가 있을 것이다. 엄마에게 이런 작자의 얼굴을 보이는 것이, 아니, 같은 공간에 있게 하는 것조차 싫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르는 이 끔찍한 남자가 엄마에게 어떤 말을 할 지 예상할 수도 없었고, 생각하기도 싫었다. 

만약 승환이란 작자가 입을 놀려 자신이 그동안 숱한 도둑질을 하고 다녔다는 사실을 엄마가 알게 되는 날에는.... 

생각만 해도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하지만 그녀는 몰랐다. 그녀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란 고작해야 그 정도 밖에 안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뭐해? 안 들어가고."

마치 자신의 집이라도 된 양, 그녀가 굳어있자 대신 문고리를 잡아 쥐는 승환. 도대체 자신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쓰레기같은 인간말종의 노리개가 되어버렸단 말인가.... 그녀가 이를 악무는 순간 승환이 가차없이 그녀의 쓰러져가는 낡은집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리고 그녀는 보았다.

"아아... 아아흐응....! 서, 석철 씨....!"

- 찌꺽찌꺽찌꺽찌꺽.....

좁디 좁은 방, 그 한가운데에 남자와 드러누워 짐승처럼 교미에 열중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알몸으로 남자와 몸을 섞고 있는 모친의 모습을. 그리고 그것이 그녀에게 있어선 평생의 악몽으로 남을 지옥같은 밤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어, 엄마...."

모녀의 눈이 서로 마주친다.

"아.... 다영아....."

벌어진 모친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당황과 신음이 섞인 비음.

다영은 알고 있었다. 남편 없이 20년의 세월을 살아온 모친이 얼마나 쓸쓸하고 외로웠는지. 자식을 키우고자 했던 사명감이 있는 여자였지만 그녀의 모친은 어디까지나 색을 아는 여자, 전성기에는 수많은 남자들의 혼을 빼놓았던, 화류계에서는 여전히 알아주는 술집 창부 출신이었다. 

어쩌면 다영이 이른 나이에 색에 눈을 뜨고, 갖은 남자를 경험하고, 산전수전을 다 겪게 된 데에는 모친의 영향도 컸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모친은 심심치 않게 집에 아비가 아닌 다른 남자를 들였으니까. 애초에 아버지란 존재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다영으로서는 그것을 이상하게 여길 수 없었고, 한 모녀가 사는 낡은 집에는 그렇게 수시로 많은 남자들이 드나들었다.

처음에는 같은 달동네의 젊은 총각, 그 다음에는 옆집 강씨네 아저씨, 그 다음에는 말쑥한 정장을 입은 부동산 직원..... 셀 수도 없이 많은 남자들이 다영이 나이를 먹어가는 긴 세월 동안 그녀의 집을 들락거렸고, 요즘에는 저 석철 씨라는 돈 많고 늙은 사업가가 자주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마치 구렁이가 또아리를 틀 듯이.

그렇게 돈이 많은 놈팽이들이 그녀의 어머니를 품에 안고 집을 나서는 날이면, 궁핍하게 찢어지는 다영의 집 살림살이는 그나마 당분간은 좀 나아진다. 돈 깨나 있는 남자들이 모친의 가슴 사이에 수표다발을 적잖이 끼워주고 가기 때문이다. 

다영은 그녀의 어머니가 여전히 창부 취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는가. 20대 초반에 자신을 갖게 되어 일본인 남편으로부터 버림 받고 그 때부터 젊음의 시절을 오직 외로움과 서러움으로 보내야만 했던 모친의 심정을 알기에. 그리고 어머니를 비난하기에는 자신 역시 잘못된 삶을 살고 있다는 것 또한 알기에.

어쩌면 그녀의 도둑질 역시, 어머니로부터 느낀 그러한 비인륜적 삶에 대한 무감각으로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인륜과 도덕 같은 것은 어렵고 힘든 삶 앞에서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그녀는 이해했다. 자신의 모친이 집에 외간 남자를 들이든, 그 남자와 무슨 짓을 하든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어머니도 실은 그러한 정욕의 해소를 통해 박복한 삶에 숨구멍을 트고 있다는 것을 다영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오늘 같은 이런 상황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어, 엄마!!!!!!!"

당황함을 이기지 못하고 소리를 빼액 지르고야 마는 다영. 딸아이의 평소와는 다른 격한 반응에 모친은 의아해하며 그제야 옷가지를 주섬주섬 몸에 걸치기 시작한다. 부끄러워한다기 보다는 무슨 일이냐는 듯한 반응. 그 반응이 다영의 속을 태우고 있었다. 

"다.. 다영이 왔구나. 오늘은 좀 일찍 들어왔네."

모친의 눈길이 딸아이의 모습을 훑다가 문득 옆에 있는 젊은 총각에게로 향한다. 낯선 남자, 그것도 젊은 외간 남자가 자신의 성교 장면을 빤히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영의 모친은 생각보다 그리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다. 다영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모친의 이런 모습이 남사스럽다고 느꼈다.

"손님이 왔구나... 누구시니?"

"그, 그게....."

당황하여 말을 잇지 못하는 다영. 그녀의 모친이 이 남자의 정체를 알고 나면 과연 그 때도 이렇게 무덤덤하게, 알몸이나 다름없는 모습으로 이 자를 올려다보고 있을 수 있을까.

"안녕하십니까, 다영이 어머님. 저는 따님 남자친구 오승환이라고 합니다. 말씀 많이 들었는데 첫 인사를 이렇게 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안 좋은 시간에 방문한 것 같은데 이따가 다시 오면 되겠습니까?"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오승환의 자기 소개. 남자친구라니.... 다영의 입술이 부들부들 떨리며 주먹에 불끈 힘이 들어간다. 하지만 그 뻔뻔한 소개에 대한 대답은 그녀의 모친이 아닌, 모친과 몸을 섞고 있던 중년의 남성에게서 나왔다.

"허, 험험. 그래. 거, 젊은 친구가 이렇게 늦은 시간에 말도 없이 어른 댁을 불쑥 방문하고 그러면 쓰나. 나중에 다시 오게."

"아니, 아니에요. 다영아, 엄마 잠깐 박 사장님 배웅하고 올테니까 손님 모시고 있어. 석철 씨, 오늘은 이만 가요."

"에에잉... 쩝... 산통 다 깨지누만."

입맛을 다시며 팬티를 주워 입는 중년의 남성. 평소 이 돈많은 사업가 영감에게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았던 다영이었지만 오늘만큼은 그의 침입이 저주스러웠다. 덕분에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악마에게 엄마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지 않은가....

"아저씨!! 우리집에 맘대로 오지 말라고 했잖아요 내가!!!!"

괜한 마음에 분풀이로 소리를 지르는 다영. 늙은 사업가는 민망함에 헛기침을 두어번 하고, 그녀의 모친은 평소와는 너무도 다른 딸아이의 모습에 그제야 당황하기 시작한다.

"아니, 다영아 너 오늘 따라 왜 그러니?"

"엄마도 그래. 지금 다른 사람도 있는데 꼴이 그게 뭐냐구!!! 빨리 옷이라도 제대로 좀 입으란 말야!!"

그녀의 모친은 여전히 알몸에 속옷 두 장만을 대충 걸쳐입은 상태였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고 했듯이 다영의 육덕진 몸매는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라 그녀의 모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었다. 다영의 모친은 딸아이보다도 더욱 풍만하고 물 오른 몸에, 세월과 경험을 통해 몸에 붙은 농염한 색기까지 지니고 있었다. 그런 농익은 여인이 색스러운 검정 레이스 속옷만을 알몸에 걸치고 있으니, 외간 남자 앞에서 결코 자연스러운 모양새는 아니라 할 수 있었다. 

딸아이의 독촉에 느릿느릿 속옷 위에 헐렁한 원피스를 끼워입고 박석철 사장과 함께 집을 나서는 다영의 모친. 그녀가 대문을 나서기 전 승환을 돌아보며 고개를 꾸벅 숙인다.

"어수선할 때 오셔서 인사가 조금 번잡스럽네요. 손님 가시는 길 배웅하고 올테니 딸아이와 시간 보내고 계시겠어요?"

"하하, 네. 물론이죠."

그리고 중년의 남녀 한 쌍이 대문을 나가버리자, 좁디 좁은 집안에는 다영과 승환만이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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