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화장실 도촬.
변기에 앉은 서희 팀장의 사진을 찍은 이후로, 나는 그녀에게 갈수록 집중하기 시작했다. 속옷 사진에 이어 그런 은밀한 사진까지 찍고 나니 왠지 '윤서희는 뭔가가 자꾸 생긴다.' 라는 막연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단순히 사진을 찍고 즐기기만 했던 수준을 넘어서 도촬의 대상을 실제로 어떻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구체적으로 생긴 것도 그 무렵이 처음이었다. 어떻게든 그녀를 한번 먹어보고 싶었기 때문에, 혹시 화장실 사진을 빌미로 협박 같은 것을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얼토당토 않는 망상도 해봤지만, 따지고보면 협박을 할 만한 사진도 아니었거니와 그 정도로 협박을 했다간 오히려 고소를 당해 철창 신세를 질 수가 있다는 생각이 더 컸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더욱 특별한 윤서희 몰카' 를 찍기 위한 계획을 짜기 시작했던 것 같다. 갈수록 나는 윤서희 팀장의 기획부 근처에서 얼쩡이는 일이 많아졌고, 점점 더 스토커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기획부 부서 근처의 여자 화장실 구조를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샅샅이 연구했다. 기획부가 있는 5층의 여자화장실은 총 네 개의 칸으로 되어 있었고, 술집 화장실과는 다르게 바깥에서는 안의 구조를 거의 볼 수가 없도록 ㄱ 자로 설계가 되어 있었다.
나는 고심 끝에 새로운 몰카 장비를 구매하기에 이르렀다. 그 때까지의 나는 핸드폰 무음 카메라 어플로 가벼운 촬영을 하는 정도에서 만족해 왔지만, '윤서희' 라는 특별한 사냥감을 건져올리기 위해 나는 도촬과 몰카의 세계에 더욱 깊숙히 발을 내딛기로 했다.
인터넷에서는 생각보다 쉽게 시중에 퍼진 위장용 카메라의 각종 종류들을 구할 수 있었다. 안경이나 시계, 볼펜 따위의 일상용품으로 꾸며진 몰래카메라 기종이 있는가 하면 차량 키홀더나 단추 등으로 되어 있는 초소형 캠코더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화재경보기형 무선 캠코더였다. 나는 천장에 부착하는 화재경보기형 캠코더 모델을 4개 구입하였다.
그 때부터 나는 윤서희 팀장의 주변을 더욱 끈질기게 배회하며 기회를 노렸다. 몇 주간을 기다린 끝에 마침내 최적의 기회가 찾아왔다. 프레젠테이션 준비를 하느라 서희 팀장의 2팀이 저녁 늦게까지 남아 작업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나는 사전에 5층 기획부 여자화장실에 몰래 침입하여 천장에 각 칸막이마다 화재경보기형 무선 캠코더를 하나씩 설치해두었다. 핸드폰 카메라와는 차원이 다른 화질인데다가, 칸막이 바로 앞 천장 한가운데에서
찍는 것이기 때문에 혹시 누가 아래에서 소변을 본다면 보지까지 생생하게 찍힐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휴지통 뒤에는 라이터로 된 소형 캠코더를 하나씩 더 설치해두었다. 라이터의 경우에는 분실될 우려가 있긴 했지만 누가 보더라도 쓰다 버린 라이터로 보일 것이기 때문에 괜찮을 것 같았다. 화재경보기는 생각보다 모델이 자연스러워서, 원래부터 거기에 붙어 있었는지 의심을 가지고 보지 않는 이상 도저히 카메라라는 생각을 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제발... 값어치를 했으면 좋겠는데.'
하다못해 서희 팀장의 소변 배설 장면이라도 찍었으면 했을 만큼 나는 윤서희에게 집착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날 저녁 여자 화장실의 청소용구 보관용 칸막이에 들어가 줄곧 서희 팀장이 화장실에 들어오기만을 죽치고 기다렸다.
'검은 구두에 금색 장식...'
나는 그날 미리 서희 팀장의 구두 색깔과 모양을 봐두었기 때문에 그날 저녁 화장실에 들어오는 여자들의 신발을
칸막이 밑으로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그녀가 서희 팀장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었다. 굳이 서희 팀장이 아니더라도 캠코더에 찍히고 있을 5층 여직원들의 화장실 몰카는 내게 희귀한 수확이 될 것임이 분명했다. 이걸 인터넷에다가 올리면 어떤 반응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나는 메인 사냥감인 윤서희가 들어오기만을 꾸준히 기다렸다.
하지만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윤서희는 나타나지 않았다. 청소용구를 보관하는 칸막이는 변기가 있는 칸막이와는 아예 맞은편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거울로 계속 칸막이 아래쪽을 살피고 있으면 나갔다 들어오는 여자들의 구두 모양 정도는 모두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윤서희 팀장은 한번도 화장실에 들어오지 않았다.
장장 세시간을 냄새나는 밀대 걸레들 사이에서 가만히 있었더니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이렇게 캠코더의 값어치를 하지 못하고 기회를 날린건가.... 싶어 씁쓸한 마음이 들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또각또각 소리와 함께 울리는 한 쌍의 하이힐 소리. 선명한 발자국 소리가 맞은편 두번째 칸막이 안으로 들어가 칸막이의 문을 딸깍 하고 걸어잠궜다. 나는 잽싸게 거울을 내려 맞은편 칸막이 안의 구두를 확인했다. 검은 구두에 금색 장식.... 다름 아닌 윤서희 팀장이었다.
고진감래라고 했던가. 드디어 서희 팀장이 들어왔다는 사실에 나는 감격하여 천장과 쓰레기통 뒤의 두 캠코더가 이 진귀한 장면을, 윤서희가 팬티를 내리는 장면 하나하나까지 다 세세히 찍고 있기를 바라며 조용히 옆칸에서 숨을 죽였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오줌줄기가 변기에 부딪히는 소리라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큰 일을 보는 소리라도 들려야 마땅한데 한참이 지나도록 서희 팀장 쪽에선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속옷을 내리는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듯 했다. 그렇게 한 5분 정도 가만히 있었을까? 별안간 화장실 입구 쪽에서 또 한 쌍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뭔가가 이상했다. 뚜벅뚜벅 하는 소리가 나는 것이.... 여자들의 구두굽 소리와는 뭔가 다른, 그러니까 흡사 남자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무거운 구두굽 소리가 몇 차례 울리고 난 후, 내 맞은편 두 번째 칸... 그러니까 윤서희 팀장이 있는 문 앞에서 멈췄다.
똑똑, 하는 노크 소리가 울리고.... 그 후 문이 열렸다. 나는 이게 어찌된 일인가 싶어 조용히 청소용구함 벽에 귀를 대고 기울였다. 서희 팀장이 나가고 그 후 누군가가 들어온건가 싶었지만 누군가가 나가는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시 한번 거울을 칸막이 아래로 내려보았다.
여전히 서 있는 서희 팀장의 검은색 구두.... 만이 있어야 할 곳에 누군가 한 명이 더 있었다. 각각 한 쌍씩, 총 네 개의 구두 중에서 윤서희 팀장의 하이힐을 제외한 나머지 두 발의 신발은 믿기지 않게도 남성의 구두였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혼란스러운 내 머릿 속을 뒤로하고 희미하지만 낮게 들려오는 목소리가 맞은편에서 나기 시작했다.
"부장님... 여기서는..."
나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부장님이라니?
"뭐 어때서 그래... 애들 다 퇴근시켰어."
낮게 내리깔린 걸걸한 목소리. 서희 팀장보다 한층 더 또렷한 목소리였다. 분명 기획부 부장이었다.
"그래도 누가 오면 어떡해요...."
"괜찮아. 5층에 아무도 없어. 경비 돌려면 한참 멀었으니 빨리 한번 빼자구."
기획부 부장의 목소리.... 맞은편의 칸막이에는 내가 있었지만 청소용구를 보관하는 곳이기 때문에 안에 사람이 있을거란 생각을 못하는게 분명했다. 생각지도 못한 사태에 내가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데, 곧이어 혀와 살이 얽히는 특유의 쩝쩝거리는 소리가 맞은편에서 울려나오기 시작했다.
'세상에... 저것들 지금 뭐하는 거야?'
부장새끼는 마누라도 있는 인간인데.... 설마 불륜인가? 기껏해야 오줌 누는 장면이나 찍으려고 했던 캠코더가 지금 무슨 장면을 찍고 있을지 생각만 해도 궁금증이 치밀어 당장에라도 캠코더를 확인하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여기서는 기껏해야 칸막이 밑 틈새로 두 사람의 발을 보는 것 정도밖에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곧 불가능해졌다. 문 쪽에 더 가까이 서있었던 부장의 구두발 아래로 벨트가 풀린 부장의 바지가 미끄러져 내려오면서 칸막이 아래 틈새를 가려버린 것이다.
도대체 안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이걸로 하나는 확실해졌다. 바지를 벗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용납 못 할 일이 저 작은 칸막이 안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거고.... 그리고 천장과 휴지통 뒤에 있는 내 몰래카메라들이 그 장면들을 찍고 있다는 것.
그 날 나는 그 작은 공간 안에서 20여분이 흐를 동안 온갖 상상을 하며 조용히 숨 죽이고 있어야 했고, 부장과 서희 팀장의 발소리가 화장실을 떠나고 난 후 다행히도 분실되지 않은 라이터형 캠코더와 천장에 붙은 캠코더를 전부 회수해 회사 건물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집에 오자마자 캠코더의 내용물을 급히 확인했다.
상상 이상의 결과물에 거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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