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4/13)

자신을 범한 강혁이 다음에 보자는 말을 던지고 사라진 후 흐트러진 옷매무새로 회의실에 앉아있던 서연이 천천히 시선을 돌려 바닥에 떨어져있는 자신의 팬티와 바지를 집어 다리에 걸친 뒤 회의실을 나서 자신의 책상으로 다가가 의자에 앉았다.

- .... -

의자에 앉은 체 멍하니 앉아있던 서연은 아직도 아랫도리에서 느껴지는 얼얼함과 자신의 질구 안에 머물러있을 강혁의 정액이 떠오르자 힘없이 상체를 숙여 책상에 엎드렸다.

[ 따르르릉.. 따르르릉.. ]

- 흡.. 흑.. -

책상에 엎드린 채 어깨를 살며시 들썩이던 서연이 갑작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에 깜짝 놀라며 몸을 일으킨 뒤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 네.. -

- 아직도 회사에 있는 거야.. -

남편의 전화였다. 서연은 그렇게 걸려온 남편의 전화에 눈가에 맺혀있던 눈물을 훔치며 목소리를 다듬었다.

- 어.. 이제 다 끝났어.. 나가려던 참이야.. -

- 벌써 열시가 다됐어.. 빨리 와.. -

- 알았어.. 금방 갈께.. -

- 기다릴게.. -

- 응.. -

남편과 통화를 끝낸 서연이 수화기를 내려놓은 뒤 시계를 바라보았다.

강혁과 회의실로 들어섰던 시간이 8시 반경.... 서연은 그렇게 자신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한 시간 가까이 자신을 무참하게 짓밟은 강혁을 떠올리며 주먹을 쥔 체 치를 떨어갔다.

그러나 서연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을 범하던 강혁이 쉴 새 없이 하체를 공략하던 순간 강혁의 어깨를 밀던 손이 한순간 강혁의 어깨를 잡은 체 자신의 다리를 강혁의 다리에 감았던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 강간당한 사실을 남편에게 알렸나요.. ]

[ 아뇨.. ]

[ 그럼 아무도 몰랐습니까.. ]

[ 네.. ]

[ 왜 도움을 청하지 않았습니까.. ]

[ 어떻게 도움을 청해요.. 이미 제 몸은 그 남자에게 더렵혀졌는데 도움을 청한들 무엇이 달라지겠어요.. 오히려 저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겠지요... ]

[ 하지만 그래도 그 당시 도움을 청하는 게 부인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요.. ]

[ 지금 생각해보면 그랬겠지만 당시는 두려움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

[ .... ]

[ 강간을 당한 여자에게 무엇보다 두려운 건 더럽혀진 육체보다 자신을 바라 볼 주위의 시선이 더욱 두려워요.. 세상은 아직까지 그런 일을 당한 여자를 감싸주기 이전에 흥미로운 시선만을 던지니까요.. ]

[ 그런 시선은 많이 변했습니다.. 강간이라는 폭행은 여성으로서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에 일어난 범죄라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으니까요.. ]

[ 선생님은 만약 선생님의 부인이 그런 일을 당하셨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부인을 바라보실 수 있으세요.. ]

[ .... ]

[ 그게 세상이에요.. 주위의 시선이 아무리 변했다 하더라도 세상은 여전히 그 여자에게 편견에 가득한 시선을 보낼 뿐이에요.. 그 여자를 제일 위로해 주고 안타까워해야 할 가장 가까운 사람조차도 말이죠.. ]

말을 마치고 고개를 약간 수그리는 여자의 말을 들으며 어쩌면 여자의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까지 성폭력을 당한 여성이 그 사실을 밝혔을 때 여성에게 돌아오는 달갑지 않은 시선은 그리 녹녹하게 넘길만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여자가 내게 질문했듯이 나의 아내가 그런 일을 당했을 때 나 역시 덤덤하게 넘길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었다.

[ 그 남자는 그 후로 부인을 어떻게 대했나요.. ]

[ 전 그 일이 있고 난 후 며칠 동안 두려움에 떨었지만 남자에게서 어떤 변화도 없었어요.. 그래서 전 그 일을 그냥 덮어두기로 했어요.. 그냥 몹쓸 꿈을 꿨을 뿐이라고 생각했죠... ]

[ 그 남자를 대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 데요.. ]

[ 그랬죠.. 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저를 대하는 남자의 태도에서 전 오히려 당황했어요.. 그 남자의 태도는 정말이지 제가 꿈을 꾼 것이 아니가하는 생각이들 정도였으니까요.. ]

[ 그럼 그 남자가 다신 부인에게 본 모습을 드러낸 건 언제쯤인가요.. ]

[ 그 일이 있고 난 후 일주일 정도가 지난 뒤였어요.. ]

- 김 대리님.. -

- .... -

- 이것 좀 봐주십시오.. -

[ 툭.. ]

강혁의 목소리가 뒤쪽에서 들리자 흠칫 놀라던 서연은 자신의 책상 위에 무언가를 내려놓는 강혁을 바라보지 못했다.

- 이번 광고 초안입니다.. 잘못된 게 있으면 지적해 주십시오.. -

- ..... -

자신에게 엄청난 짓을 저지르고도 너무도 뻔뻔스럽게 결재 판을 펼치는 강혁의 행동에 서연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느꼈지만 직원들이 있는 사무실에서 분노를 표출할 수 없음에 침착함을 잃지 않은 채 강혁이 펼친 서류로 시선을 가져갔다.

[ 지난번 일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점심시간 때 잠시 시간 좀 내주십시오.. ]

- .... -

서류를 들여다보던 서연은 서류 한가운데 놓여있는 백지 위에 쓰여 있는 글을 발견하자 지난번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름을 느끼며 두려움에 어깨를 떨자 강혁이 상체를 약간 숙여 서류를 설명하는 듯 한 자세를 취했다.

- 꼭 시간을 내주십시오.. 아셨죠.. -

- .... -

- 그럼 시간을 내주시는 것으로 알고 점심시간 때 옥상에서 기다리겠습니다.. -

- .... -

속삭이듯 말을 건네고 자리로 돌아서는 강혁을 느끼며 서연은 마치 얼어붙어 버린 듯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자리에 앉아있었다.

- .... -

점심시간을 맞아 텅 비어버린 사무실에 홀로 앉아있던 서연이 벌써 점심시간을 십오 분이나 지나고 있는 시계를 바라본 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연은 결심했다. 자신은 강혁에게서 들을 말도 없을뿐더러 다시는 강혁과 단둘이 마주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곳이 점심 식사 후 많은 사람들이 찾는 옥상일지라도 강혁과는 다시는 함께 자리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 어디 가십니까.. -

- ... -

사무실을 나와 복도를 지나려던 서연이 갑자기 들려오는 음성에 놀라며 뒤를 바라보는 순간 강혁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두려움이 가득한 시선을 지어 보였다.

- 옥상에서 식사도 못하고 여태까지 기다렸습니다.. 제가 꼭 시간을 내달라고 말씀 드렸을 텐데요.. -

- 나.. 난 할 말 없어요.. 들을 말도 없고요.. -

- 그건 김 대리님 생각이시고요.. 전 할 말이 있습니다.. -

두려움에 말까지 더듬는 서연과는 달리 차분한 음성으로 말을 하던 강혁이 천천히 서연에게로 다가오자 서연이 뒤로 조금 물러서며 경계의 눈초리를 던졌다.

- 다가오면 소리 지를 거예요.. -

- 후훗.. 마음대로 하십시오.. -

- 정말 왜 이래요.. -

코앞까지 다가온 강혁을 바라보며 서연은 밀려오는 두려움을 느꼈다.

- 어떻게 할까요.. 여기서 이야기할까요.. 아니면 옥상으로 올라갈까요.. -

- ..... -

- 아무래도 옥상이 났겠죠..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남들의 시선도 있으니까요.. 안 그렇습니까.. -

- 이 손 놔요.. -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던 강혁이 서연의 손을 잡아끌자 서연이 강혁의 손을 거세게 뿌리쳤다.

- 좋습니다.. 그럼 따라오시죠.. -

- .... -

노려보는 서연에게 등을 돌린 체 걸음을 옮기던 강혁이 다시 한 번 뒤를 돌아 서연을 바라보며 고갯짓을 하자 서연이 할 수 없다는 듯 걸음을 옮겼다.

옥상을 올라가기 위하여 계단을 오르는 강혁의 뒤쪽에서 계단을 오르던 서연은 자신의 회사 위층에 자리했던 설계 회사가 며칠 전 사무실을 비운 탓에 바로 위층이 텅 비어있었고 강혁은 지금 자신을 그쪽으로 유인하고 있음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 .... -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계단을 오르던 서연은 한 층을 올라간 강혁이 걸음을 멈추고 자신을 기다리는 듯하자 설마 이 계단에서 강혁이 자신을 어떻게 하지는 못하리라고 생각했던 서연이 계단 몇 개를 떠오르며 강혁에게 다가서는 순간 강혁이 손을 뻗어 서연의 팔을 낚아챘다.

- 어머.. -

- .... -

- 왜 이래요.. -

다급하게 외치는 서연을 거세게 잡아끌던 강혁이 비상구를 빠져나가 위층 사무실 입구 앞에 다다르자 조금은 이상함을 느끼던 서연은 또다시 자신을 세차게 잡아끈 강혁이 위층 사무실 문을 열며 자신을 사무실 안으로 밀어 넣자 서연은 당황하며 들어선 사무실을 둘러보다 눈을 커다랗게 뜨고 말았다.

텅 비어버린 사무실.. 서연은 그제야 이 사무실이 엊그제 비워졌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황급히 몸을 돌리던 순간 사무실 문을 잠가 버리는 강혁을 발견했다.

- .... -

그렇게 또다시 텅 비어버린 사무실에 강혁과 단둘이 자리 하게 된 서연은 두려움에 어딘 가로 숨을 곳을 찾는 듯 사무실 안을 둘러보았지만 블라인드 사이로 밀려들어온 햇살만으로 조금은 어둡게 보이는 사무실은 텅 비어진 체 공허함만이 맴돌고 있었다.

- 왜.. 왜 이래요.. -

- 후훗.. 지난번 김 대리님 몸이 자꾸 생각이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가 않더군요.. 그래서 이리로 모셨습니다.. -

- 미쳤어요.. 소리 지르겠어요.. -

- 후.. 과연 소리를 지를 수 있을까요.. 한번 질러보시죠.. -

- .... -

자신감 있게 말하는 강혁의 말에 서연은 순간 입이 얼어붙은 듯 떨어지지 않자 당황하기 시작했고 그런 서연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던 강혁이 재빨리 서연에게로 다가와 서연이 피할 틈도 주저앉은 체 서연의 허리를 낚아챘다.

- .... -

- 소용없어요.. -

허리를 잡힌 서연이 이리저리 몸을 비틀어 보았지만 허리를 움켜잡은 강혁의 손을 빠져나오지 못했고 이어 강혁이 자신의 두 팔을 뒤로 꺾어 교차시킨 뒤 한 손으로 움켜잡자 지난번 기억이 떠오른 서연이 두려운 얼굴을 짓기 시작했다.

- 강혁씨.. 정말 왜 이래요.. 이것 놔줘요.. 네.. -

- 후후.. 지난번 제가 만족스럽게 해드리지 못했나보군요.. 이거 실망인데요.. 전 나름대로 김 대리님을 기쁘게 해드리려고 열심히 움직였는데.. -

- 부탁할게요.. 제발 날 놔줘요.. 그러면 아무 일도 없는 것으로 여길게요.. 부탁이에요.. -

- 어떻게 아무 일도 없는 게 됩니까.. 우린 벌써 한 몸이 됐었는데.. -

- .... -

강혁의 음산함 음성이 귓전을 때리는 순간 지난번 일을 떠올린 서연이 낙담한 표정을 지으며 순간 반항을 멈췄다.

- 후후.. 진작 그래야죠.. 그래야 저도 김 대리님을 위해서 더욱 열심히 움직이지 않겠습니까.. -

- ..... -

- 긴장을 풀고 그냥 느껴보세요.. 어차피 처음도 아닌데 굳이 힘들게 힘 싸움할 필요 없잖습니까.. -

- ..... -

마치 주문을 거는 듯 한 강혁의 음성에 서연은 이제 아무 움직임도 하지 못한 체 그저 강혁을 노려만 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분노의 눈초리 저 너머에는 두려움의 빛이 살며시 고개를 쳐들고 있었고 강혁은 그 두려움의 눈빛을 놓치지 않았다.

- ... -

- ... -

그렇게 자신을 노려보는 서연을 마주보던 강혁이 서연의 허리를 잡고 있던 손을 푼 뒤 서연의 손을 잡아끌며 걸음을 옮기자 서연이 힘없이 강혁에게 끌려가기 시작했다.

- .... -

자신을 어디론가 끌고 가던 강혁이 들어선 곳은 지난번 사무실을 쓰던 회사가 별도의 설계실로 사용한 듯 하던 작은 방이었다. 그곳 역시 비어있기는 마찬가지였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진 강혁이 그래도 조금은 더 안전한 곳을 택해 서연을 끌고 들어온 것이다.

- .... -

구석진 사무실로 들어온 강혁이 서연의 어깨를 잡아 뒤로 밀자 서연이 힘에 밀려 뒷걸음질을 치다 벽에 등을 기대고 서자 서연을 바라보던 강혁이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 12시 25분이군요.. 아직 시간은 충분하군.. -

- .... -

- 김 대리님.. 시간 낭비하지 맙시다.. 어차피 여기를 벗어날 수는 없으니까요.. -

- .... -

조소 섞인 미소를 지으며 말하던 강혁이 자신의 블라우스 단추를 풀자 잠시 반항을 하던 서연은 자신의 손을 옆으로 힘껏 밀어내는 강혁의 시선에서 자신을 곱게 보내주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절망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자신의 블라우스 단추를 모두 풀어낸 강혁이 블라우스를 양쪽으로 벌리며 브래지어를 차고 있는 가슴을 뚫어져라 바라보자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말았다.

[ 왜 반항을 하시지 않으신 겁니까.. ]

[ 반항을 하면요.. ]

[ .... ]

[ 아무도 없는 텅 빈 사무실에서 제가 아무리 반항을 한 다해도 그 사람은 결국 기어이 저를 또다시 범했을 게 분명했어요.. ]

[ 하지만.. ]

[ 선생님은 그 상황을 느껴보지 못했으니까요.. ]

[ .... ]

[ 전 무서웠어요.. 또다시 나를 범하려는 그 사람의 시선이 마치 저를 어떡하던지 기어이 범하고 말겠다는 눈빛 이였어요.. 그래서 비명조차 지를 수가 없었어요.. ]

[ 알겠습니다.. 계속하시죠..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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