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4/8)

3부

이제 모든 것이 끝이났다.

선미도 스티브도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고

끈적거리는 액체만이 긴 끈처럼 그렇게 스티브의 물건에서 선미의 엉덩이 밑으로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바닥으로 춤을 추고 있었다.

"허억...헉,헉..음...허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선미의 등을 짚고 서 있는 스티브.

오랜만의 기가 막힌 섹스로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노곤함에 눈이 감겼다.

도대체 얼마만인가...

그 긴 시간동안 참았던 정욕을 다 쏟아내고난 지금,

자기의 정액을 몸으로 다 받아낸 여자가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선미는 엉덩이에서 등꼴을 타고 내려오는 액체의 느낌을 가지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순간 남편의 얼굴과 나리의 얼굴이 떠오르다니....

"흑,흑, 흐..윽...."

선미는 세면대에 얼굴을 대고 거센 울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여전히 흐느끼고 있는 선미의 몸을 짚고 서 있는 스티브의 눈이 떠졌다.

정말 오랜만에 섹스다운 섹스를 한 것 같았다.

뿌리까지 얼얼한 느낌이었다.

눈에 엎드려 울고 있는 여자가 보였지만 그래도 뒷모습은 너무 섹기가 넘쳐 흘렀다.

뽀얀 여자의 몸을 타고 목덜미쪽으로 흐르는 자신의 정액을 보면서 언제가는 여자의 자궁안에 자신의 씨를 뿌리고 싶어지는 강렬한 욕구가 생기는 것이었다.

"음...좋았어..."

"흑,흑,흑...."

"울지마라. 너 같은 좋은 몸은 오랜만이다. 너무 좋았다."

스티브는 부드럽게 선미의 몸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뿌리치며 바닥으로 주저앉고 만 선미.

그런 모습까지 사랑스럽게만 보이는 스티브...

스티브는 샤워기를 끌어다 땀과 체액으로 범벅이 된 몸을 씻었다.

그 동안에도 무릎사이에 고개를 파묻고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고 있는 선미.

말 없이 그런 선미를 내려다보던 스티브가 샤워기를 선미쪽으로 돌렸다.

"쏴....아...."

차가운 물줄기에 '흠칫' 몸을 떠는 선미, 그러나 고개를 들지는 않는 것이었다.

스티브는 그런 선미의 몸을 구석구석 씻겨 주기 시작했다.

"이 쪽으로 좀...."

하지만 거세게 반발하는 선미.

"가!! 가란 말이야!!"

너무도 완강한 선미의 거부에 멈짓하던 스티브는 샤워기를 놓고

마치 오래전부터 사용하고 알고 있었던 것처럼 태연하게 수납장에서 수건을 꺼내 몸을 감싸는 것이었다

"오늘...너무 좋았다..."

"......."

"너 같은 여자는 처음이야. 정말 좋은 몸이다..."

"........."

"아까 한 약속 있지 마라!"

"........"

몸을 다 닦은 스티브가 나갈려다 아쉬운 듯 뒤돌아 보며 입을 열었다.

"다음에 만나면 뒤는 내가 처음으로 열어줄게. 오늘처럼 아프지 않게 말이야~~"

"........"

대답없이 몸을 웅크린 선미를 내려다보며 멈짓하던 스티브가 몸을 숙였다.

그리고 가볍게 목덜미에 입을 맞추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킁킁대며 냄새를 맡는 것이었다.

"쪽~~음...좋아~~너에게서는 달콤한 향기가 흐른다"

그리고는 조용히 욕실문을 닫고 나가는 스티브.

개운했다.

"오~~~음~~"

그 때 저절로 콧노래가 나오는 스티브의 발 끝에 채이는 옷가지.

선미가 벗어놓은 옷들이었다.

그 중에 스티브는 앙증맞은 비티니 팬티를 주워 들었다.

땀냄새와 함께 여자 특유의 냄새가 진하게 느껴졌다.

"후후....정말 괜찮은 여자야..."

그리고 그 옆에 예쁘게 놓여져 있는 새 내의...

가만히 들어보던 스티브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음...이건 아니지...."

솔기가 약간 뽑혀 나와 있는 팬티 레이스를 보면서 스티브는 혀를 찼다.

"쯧...쯧.. 너 같은 여자가 이러면 안되지...."

그 순간 스티브의 머릿속으로는 야릇한 생각들이 스쳐지나가는 것이었다.

"그래...너는 내가 만들어줘야 겠어...."

중얼거리며 돌아서 나오던 스티브는 거실 한쪽에 걸려 있는 사진을 보고 가까이 다가갔다.

결혼사진.

순백의 드레스와 연미복을 입고 찍은 사진이었다.

"남편인 모양이군...."

핸섬하게 생긴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유약해 보이는 남자와 웃으며 찍은 사진.

나풀거리는 망사드레스 사이로 마치 속살이 비춰지는 느낌을 주는 약간은 섹시한 느낌을 주고 있는 여자.

"음....."

스티브는 또 다시 아래쪽에서 소용돌이 치는 기운을 느꼈다.

다음에는 저 웃고 있는 입속에 자신의 흔적을 반드시 남기고 싶었다.

웃으며 자신의 분신을 정성스럽게 받아들이는 장면을 생각하자 여자가 있는 욕실로 다시 들어가고 싶었지만 참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다.

사진 속 남자를 보면서 스티브의 얼굴에 묘한 표정이 지어졌다.

남자에게는 미안했지만 그렇다고 후회하고 싶지는 않았다.

"좋은 물건은 주인을 잘 만나야 되는 거지...."

현관문을 닫고 나오면서 스티브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음...누구지, 어느 부서에 근무하는 남자일까..'

다시 한번 생각해도 좋은 와이프를 두고 있는 행운아인 남편이었다.

얼굴도 반반했고 몸 또한 훌륭했다.

가냘픈 듯 하면서도 볼륨있는 몸이엇다.

무엇보다도 섹스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 좋았다.

그것은 자기가 앞으로 개발시켜 줄 것이 많다는 것을 의미했다.

일년 동안 있으면서 철저히 자기 여자로 만들고 싶어지는 것이 바로 그 때문이었다.

"룰루~~~음~~휘이익...."

흥에 겨워 저절로 휘파람 소리가 나오는 스티브는 그렇게 위쪽으로 올라갔다.

선미는 한동안 일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나쁜 놈....'

이렇게 철저하게 남자에게 당해보기는 처음이었다.

남편과 결혼하기 전에 다른 남자를 만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남편이나 그 누구도 이런 식으로 자신을 대하지는 않았다.

남자가 남기고 간 흔적들이 너무도 강하게 곳곳에 남아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넋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끄...응..."

겨우 일어날려고 버둥대던 선미는 현기증과 같은 어지러움에 그만 휘청거렸다.

"아......."

그리고 선미의 몸이 다시 바닥으로 맥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욕실 바닥에 엎드려 가쁘게 숨을 들이마시는 선미의 눈가에 물기가 다시 스며나왔다.

"나쁜 새끼...."

그 순간 잠시 신고해야 한다는 생각이 났다.

하지만 남자의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자세히 보지를 못했다.

회사 사람이며 웬만하면 눈에 익을텐데 낯설었다.

그것이 더 비참했다.

누구인지 알기라도 한다면 나중에라도....

"아니야...!!"

그러나 이내 선미는 고개를 저으며 부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자기가 당한 일을 그 누구에게도 말한다는 것은...

남편이나 주변의 다른 사람이 안다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생각이 들자

오히려 제발 남자가 오늘 일을 그냥 잊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드는 것이었다.

그렇게 멍하게 있은지 얼마나 되었을까,

갑자기 나리 생각에 벌떡 일어난 선미.

"아!!"

아래쪽에서 전해오는 쓰라림과 뒤쪽에 남아 있는 둔탁하고 불쾌한 느낌에 선미는 세면대를 잡고 잠시 서 있었다.

"나리야...."

하지만 아이 생각은 어떻게든 몸을 밖으로 끌고 나오게 만들었고

문을 열고 들였다 본 나리는 방 안에서 소록소록 잠이들어 있었다.

너무도 예쁘고 사랑스런 딸을 보자 선미는 주저앉고 말았다.

"흑..흑,흑.... 나리야....어쩌면 좋으니..."

아이를 보자 또 다시 설움으로 눈물이 쏟아지는 선미.

얼마나 아이 옆에서 울었을까,

더 이상 흘릴 눈물도 없을 때쯤되자 무거운 몸을 끌고 거실로 나온 선미.

억지로 욕실 안으로 들어가 물을 틀어 놓고 곳곳을 깨끗하게 씻기 시작했다.

"흐..흑, 나쁜 놈..."

물이 닿는 사타구니가 쓰라렸다.

뒤쪽도 마치 몽둥이 하나가 박혀 있는 듯한 낯선 기분이 계속되었다.

그렇게 짓밟힌 몸뚱이를 가까스로 몸을 추려 씻고 거실로 나왔다.

시계를 보았다.

1시간 가까이 지나있었다.

'아......'

이렇게 오랜시간동안 남자에게 당하고 있었단 말인가....

또 다시 나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눈물이 흘렀다.

그 날 이후 며칠 동안 선미는 남편의 얼굴을 본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 것인지 미처 몰랐다.

얼굴을 마주하기만 하면 남편이 모든 것을 다 알아 챌 것만 같았다.

순수하기만 한 남편의 얼굴을 볼 때마다 능욕당한 자신의 모습을 알고 있는 것 같아 고개를 들고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당신 어디 아파?"

"아,아니...왜..."

"당신답지 않잖아... 요즘 뭔가 서두르고..."

"응...그냥 몸이 요즘 좀 안좋아서..."

"그래...미안해. 괜히 나 때문에...."

"아니야. 당신 때문이 절대 아니야."

남편의 자책하는 듯한 목소리를 듣게 되면 선미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빨리 나아야지 회사에 나갈텐데...."

남편은 한시라도 빨리 회사에 나갈려고 했지만

미처 그 말을 듣지 못하고 병실 창문 밖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는 선미...

원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저러지....어디 아픈 사람처럼...'

이 모든 것이 자신이 다친 것 때문에 아내가 걱정이 되어서 그런 것이라 생각되자

원우는 아내에게 너무도 미안했다.

원우는 정강이까지 깁스를 했다.

처음에는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단순하게 삐거나 근육통일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8주정도 동안은 하고 있어야 했기에 일단 집에 왔지만 그렇다고 그 기간동안 회사에 출근을 전혀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 주일 정도 지나 불편하지만 목발을 짚고 회사에 나가기 시작했다.

히지만 회사 사무실에 나가서도 자리에서 꼼짝없이 있어야 했고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맡고 있는 일이 밖으로 나가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지만 사장이 바뀌고 구조 조정인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다보니 원우의 속도 타들어갔다.

원우가 해야할 일들은 현장일보다는 사무실 안에서 처리하는 일들이었다.

대부분 전자문서로 결재를 하고 메일로 주고 받으면 되는 일들이 많았지만 꼭 필요한 결재일 경우에는 어쩔 수없이 목발을 하고 직접가야만 했다.

그럴 때마다 윗 사람들의 눈치가 보였지만 그래도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잘못하다가는 구조조정의 일순위가 될수도 있다는 생각이 항상 떠나지 않았다.

하루, 이틀....시간이 지나면서 선미도 그 기억을 잊으려고 노력했고

한 주, 두 주 흐르면서 차츰 그 악몽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가 있었지만 때때로 남편이 출근하고 나리도 어린이집에 가고 나면 찾아드는 두려움은 어쩔 수 없었다.

"아.....어쩌면 좋아...."]

금방이라도 그 남자가 다시 자신을 찾아올 것만 같았다.

그 이후 선미는 모든 문들을 몇 번이고 확인하는 버릇이 생기고 말았다.

그렇게 악몽같은 일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일을 찾아 바쁘게 움직일 때는 그나마 나았다.

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은 너무 싫었다.

그래서 일부러 잊으려고 별의별 일들을 다했고 또 잊어야만 했기에 애써 명랑한 모습만 보일려고 일부러 노력했다.

다행히 남편이 모른다는 것과 자신만 입을 다물며 영원히 묻혔진다는 것에 위안을 삼았지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미웠다.

"왜 문을 열어 놓았을까...."

그렇게 지옥같은 일을 겪은지 한달 정도가 흘러가고 있었다.

남편이 퇴근해 들어와 저녁을 먹고 난 뒤였다.

다치고 난 이후 남편은 집에서 서류를 정리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 날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일을 저렇게 열심히 하지....'

아직 한 달 이상 깁스를 하고 있는 남편을 안쓰럽게 생각하고 있는데 그래도 일이 거의 끝났는지 남편이 기지개를 켜며 앓는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아이구...아구...이제 다 끝났네...."

그 때 울리는 전화소리.

"여보세요..?"

"......."

"예, 잠깐만요.."

권부장의 전화였다.

"여보, 부장님이셔...."

"부장님이...? 이 시간에 웬일이지..."

남편은 꽤 오래동안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계속된 구조조정이 조만간 끝난다고 했는데 혹시 그런 일 때문에 전화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선미도 전화에 예민할 수 밖에 없었지만 모른 척 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남편이 급하게 선미를 불렀다.

"당신이 좀 갔다올래?"

"어..? 어딜...."

선미는 하던 일을 계속하면 별 의미 없이 되물었다.

"응, 위층에"

"뭐!! 거길 내가 어떻게 가! 사장님이 사신다며.."

선미는 남편이 농담으로 하는 말로만 생각했다.

"이거 내일까지 자재과로 넘겨야 된데. 부장님도 참.. 내일해도 된다고 해 놓고서는....."

원우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급히 사장의 결재를 받아오라고 하니 이거 원....

"내일 당신이 가서 하세요~~~"

선미는 장난스럽게 대꾸를 하면서 주방일을 계속 했다.

"선미야!!"

그제서야 놀라 돌아보니 남편이 약간 화가 난 표정이었다.

"내일 사장님이 일찍 공항에 나간다니까 지금밖에 시간이 없어."

화가 잔뜩 난 원우...

남편의 이런 모습을 처음보는 선미는 갑자기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원우도 그런 아내의 모습에 미안했다.

다치고 난 이후 괜히 짜증만 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공장에 가서 자재를 확인하고 기안서를 올려야 되는데 몸이 이렇다보니 내가 깜빡했어.

내일까지 해도 되는 줄 알았는데.. 미안하다...."

"........."

선미는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내일까지 올리면 된다고 했는데 내일 아침에 미국으로 간다잖아 사장님이."

선미는 자기에게 이렇게 화를 내는 남편을 처음 보았다.

남편일이라며 뭐든지 다 들어주는 성격인 선미는 가뜩이나 그 사건 이후 주눅이 들어 작은 일에도 예민해져 있었기에

남편이 행여 자기에게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지 불안해 하고 있더 차에 더 이상 말할 것도 없었다.

"알았어. 이거 마저 다 하고 갔다 올게..."

"미안하다, 소릴 질러서. 사랑해 선미야.."

주방일이 다 끝나고 거실로 나오자 남편은 반은 졸면서 TV를 보고 있었다.

"피곤하면 들어가 자...."

그러면서 어지럽혀져 있는 테이블을 치울려고 하는데 남편이 몸을 일으켰다.

"아직도 안갔어?"

"어..지금 갈려고...."

"사람도 참....빨리 갔다 오지 왜그래.."

"피이...겨우 20분 지났단 말이야.""그래? 그것 밖에 안됐어? 나는 한참 지난 줄 알았잖아..."

방에 들어가 대충 옷맵시를 정리하고 나온 선미.

"뭘 하면 되는데..."

"어..이 봉투 안에 있는 서류를 보여드리고 결재만 받아오면 돼."

"그래...그런데 내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해, 사장님에게..."

"내가 전화를 먼저 드릴 거니까 걱정말고 갔다와."

"얼굴도 모르는데...."

"걱정은...혼자 사시는데 무슨 걱정이야."

"그래도... 밤인데..."

"이 사람이...!!"

선미는 사장이 이사를 왔다는 것은 알았지만 얼굴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 날 이후 거의 바깥 출입을 하지 않는 것도 있었지만

스티브도 막상 짐만 집에다 갔다 놓았을 뿐 거의 사무실에 살다시피 하다보니 집에 온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다 집에 올 때도 밤 늦게 잠깐 필요한 물건만 가지러 올 뿐이었다.

원우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아내를 보며 웃음이 나왔다.

'음...멋진 남자지...'

재미교포인 사장은 같은 남자가 보기에도 부러울 만큼 멋졌다.

큰 덩치에 균형잡힌 몸이며 서글서글한 인상이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인상을 주는데 일처리에 있어서도 칼이었다.

임직원들도 잘못한 것이 바로 지적을 할 만큼 카리스마가 있으면서도 말단 직원들까지 챙기는 것을 보면서 특히 직원들이 좋아했다.

"우리 같은 사람하고는 차원이 다르니까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말고..."

"피이...같은 사람인데 그런게 어딨어...."

"어..허!! 자꾸 그럴래....?"

"밤에 혼자 남자 있는 집에 가는 것이 좀 그러잖아..내 입장도 생각을 해봐..."

"아니, 정말...! 누가 당신 같은 여자를 거들떠 보기나 한 대. 쓸때없는 생각은..."

"그래도 좀 그렇다 나는........."

선미는 좀 마음이 편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탁자 위에 있는 봉투를 들었다.

"어...! 당신 그런 모습으로 갈려고..!!"

선미는 남편의 제지에 자신의 옷차림을 내려다 보았다.

그냥 츄리닝 차림인데....

"그래도 사장님에게 가는데 옷 좀 갈아입고 가지...."

뭐라 말대꾸를 할려다 선미는 말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지금으로서는 그대로 따라주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다치고 난 이후에 예민해진 남편을 생각하니 가급적이면 부딪치지 않으려고 했다.

옷장을 열고 이것저것 고르던 선미는 한참을 망설였다.

어떤 옷을 입고 갈지 갈피가 잡히지 않은 것이었다.

"밤인데 그냥 갖다 오면 어째서...."

중얼거리며 불만을 토로했지만 자기가 생각하기에도 츄리닝은 좀 그랬다.

결국 편한 치마와 브라우스를 입고 나오다 거울을 보며 화장대에 앉았다.

'그래, 이왕 이럴 바에는...'

맨 얼굴로 가는 것도 좀 뭐해서 가볍게 루즈를 바르고 머리를 다시 동여매었다.

"이러면 되...."

밖으로 나온 선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어느새 소파에서 자고 있는 남편.

선미는 어이가 없었지만 홑이불로 남편을 덮어주고 혹시 남편이 깰까봐 조용히 문을 닫았다

여름이었지만 인기척이 없는 복도는 썰렁했다.

선미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위층으로 올라갔다.

잠시 문 앞에서 머뭇거리며 망설이다 어쩔 수 없이 벨을 눌렀다.

"띵동.......띵동...."

사람의 기척이 없다.

"아무도 없나....."

다시 한번 누르려고 하는데 안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십니까..?"

선미는 가슴이 철렁내려 앉는 기분이었다.

목소리를 듣는 순간 기억 저편 어디선가 들었던 목소리 같은 생각도 나면서 뭔지 모를 기분 나쁜 기운이 엄습하고 있어 불안했지만 조심스럽게 대답을 했다.

"예...저.....송원우씨..."

"아..송팀장. 그래요 문이 열려 있으니 들어오세요."

선미는 주저 하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내가 지금 작업 중이라서 그러니 가지고 온 것 테이블 위에 두시고 가세요."

어디서 들려오는 목소리인지 모를 정도로 사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그저 웅웅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선미는 조심스럽게 거실을 둘러보았다.

심플했다.

필요한 가전제품 몇가지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었고

아직도 짐정리가 덜 되었는지 군데군데 풀지 않고 그냥 있는 꾸러미들도 보였다.

'이사온지 몇 주 된다고 들었는데...'

아이보리와 딥블루로 인테리어가 되어 있는 거실 분위기는 시원한 느낌을 주면서도

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

젊은 시절 좋아했던 카페분위기에 젖어드는 것 같아 잠시 정신을 놓고 있던 선미는 갑자기 다시 들려오는 남자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송팀장은 어때요? 괜찮나요?"

"예? 아 예......"

아무리 사장이라도 낯선 남자의 집.

선미는 서류를 두고 돌아서 나오다가 멈짓하고 말았다.

'결재를 받아 오라고 했던 것 같은데 어쩌지....'

그냥 두고 가라는 사장의 말에 무심코 탁자 위에 봉투를 내려 놓던 선미는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망설였지만 이미 몸은 현관쪽에 가 있었다.

그런데....

"아, 참!! 저 잠깐만요.."

거의 현관쪽에 이르렀던 선미는 남자의 급박한 외침소리에 깜짝 놀랐다.

"이거 급한 거라고 하던데... 결재해 줄테니 갖고 가세요."

문이 열리고 남자가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밤이라 화장도 제대로 하지 않은 얼굴을 보여 주기에 민망해 등을 보이며 현관 쪽으로 서 있는 선미는 선반위에 놓여 있는 소품들에 눈을 주며 그 자리에 그렇게 서 있었다.

"바스락...바스락...."

종이를 넘기는 소리가 들리고...

"음... 잘 작성이 됐구만.. 오케이"

볼펜이 긁히는 소리가 들리고 만족해 하는 남자의 목소리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자, 여기..."

선미는 몸을 약간 비틀고 손만 옆으로 뻗어 서류를 받아들었다.

"그럼, 이만..."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하고 나가는 선미를 보고 사장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건넸다.

"이거 미안해서...커피라도 한잔하고 가실래요...."

"아,아녜요..."

신발을 신고 인사를 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드는 순간 두 사람의 얼굴이 마주쳤다.

그 순간.....

두 사람은 동시에 놀라움으로 한발씩 물러서고 말았다.

그 짧은 순간에도 스티브의 머릿속으로는 여자의 젖은 육체가 급히 떠올랐다 사라졌다.

"아~~!!"

스티브의 입이 벌어졌다.

"어머!! 당,당신은!!!"

두 사람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선미는 애써 지워가던 그 나쁜 기억이 머릿속에 떠오름과 동시에 휘청거렸다.

선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스티브도 깜짝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아...그녀가...'

몇 주 전 강제로 가졌던 그녀였다.

그렇다면 그녀가 바로 송팀장의 와이프였단 말인가!

송팀장이 같은 c동에 산다는 것은 알았지만 바로 밑에 층에 살 줄이야...

한국에 온지 얼마되지 않다보니 정리해야 할 것도 많고 처리해야 할 일도 많았다.

그러다보니 대부분 사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할 경우가 많았고 집에 올 경우는 거의 없었다.

오늘 전화 통화를 하면서 비로소 송팀장이 같은 동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바로 밑에 층, 그 여자일 줄이야...

스티브는 난감했지만 휘청거리며 쓰러질 것만 같은 여자를 보자 얼떨결에 붙잡고 말았다.

몸을 가누지 못하면서도 선미는 얼굴이 빨개짐과 동시에 알 수 없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느낌을 받고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아........."

스티브의 품안으로 여자가 쓰러져 들어왔다.

"허..엇..!!"

깜짝 놀란 스티브 코 끝으로 향긋한 여자의 향기가 후각을 기분좋게 자극했다.

늦은 밤 생각지도 않던 여자의 향기는 서서히 스티브의 기운을 불러 일으키기 시작했고 스티브는 축 늘어져 있는 여자의 몸을 조심스럽게 안아들었다.

일단 정신을 차리게 만들어야 했다.

선미는 남자의 품에 안겨 들려져 있다는 것을 금방 알았다.

"이거 놓으세요!!"

벗어날려고 발버둥쳤으나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힘이 빠져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의식은 돌아왔지만 전혀 몸에 힘을 쓸 수가 없었다.

'안돼!!'

또 다시 일이 벌어질까봐 선미는 급해졌지만 마음이 급할수록 이상한 것은 자신은 발버둥치고 있다고 생각함에도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스티브는 소파에 선미를 가만히 내려 놓았다.

그제서야 선미는 두 손을 가슴에 모아 쥐고 다리를 오므리며 최대한으로 몸을 가렸지만 한 눈에 보기에도 애처로운 모습이었다.

선미는 남자를 보자 두려웠다.

짐승같이 자신을 범하고 사라졌던 남자가 사장이었고 바로 지금 앞에 있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흑,흑,흑...."

스티브는 울고 있는 선미의 얼굴에 손을 갖다대고 눈물을 닦아 주었다.

"미안해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스티브의 얼굴이 홱 돌아갔다.

"짝....."

선미의 오른손이 스티브의 뺨에 손자국을 깊게 남겨 놓았다.

"허어....."

얼떨결에 손찌검을 당한 스티브는 황당했지만 가만히 있었다.

여자 입장에서는 그 정도로 끝난 것이 어쩌면 다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선미가 몸을 한층 더 웅크리면서 흘러나오는 눈물을 훔쳤다.

"당,당신이...사장이었단 말이에요...?"

"........."

"어쩜 그럴수가..."

"몰랐어요. 그쪽이 송팀장의 와이프라는 것을..."

선미는 스티브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야만인이에요. 나쁜 사람 같으니...흑,흑..."

"미안해요. 그 땐 당신이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만..."

선미는 어서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장이라는 이 남자가 또 어떤 일을 할지 몰랐다.

"당신은 정말이지...짐승이야, 짐승.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눈물로 범벅이 된 선미의 입에서 거침 없이 심한 말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스티브는 미안하면서도 여자의 말에 슬며시 반감이 생기는 것이었다.

분명 여자의 육체가 보여졌기에 순간적으로 자기도 범하고 말았던 것인데 완전히 자기를 일방적으로 나쁜 놈으로 몰아 세우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여자도 나중에는 어느 정도 자기를 받아들였다고 생각했었는데.....

선미는 발딱 일어섰다.

"다시는 아는 체 하지 마세요. 당신을 사람으로 보지 않을테니까..."

찬바람을 일으키며 스티브 앞을 지나쳐 가는 선미.

스티브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전혀 자기가 말할 틈도 없이 자기 말만 쏟아내는 여자.

그런데 묘하게도 마음속 반감과 동시에 뜨거워지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 여자는 그렇게 날뛰는 맛이 있어야지....'

이제 직원의 아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송팀장의 와이프라는 사실 보다도 더 근본적인 문제는 솟구치고 있는 정욕이었다.

아주 평범하고 수수한 모습의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스티브는 강한 끌림을 받고 있으면서 서서히 정복욕에 불타기 시작하는 자신의 모습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었다.

'허어...이거 내가 왜 이러지....'

자신도 알 수 없는 사실이었다.

급한 마음 때문에 신발 신는 것까지도 허둥대는 선미.

"그래...! 그럼 그렇게 하지."

순간 선미는 가슴이 덜컹 내려 앉는 것이었다.

남자의 착 가라앉은 말투와 남자가 너무 순순히 응해주는 것 같은 사장의 태도는 웬지 모를 불안감을 주었다.

그렇지만 이미 내뱉은 말이었고 또 남편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만 했다.

그렇게 치욕스러운 일을 당했는데 또 그 남자와 같은 공간에서 호흡하고 있다는 것은 자신을 또 한번 더럽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했다.

"서류는? 이 서류는 안 갖고 갈건가?"

스티브의 목소리가 급속히 차가워졌다.

선미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멈춰섰다.

"이게 필요해서 온 것 아닌가?"

선미는 몸에서 식은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대로 나가야하는지 아니면 돌아서 서류를 받아서 가야하는지 망설일 수 밖에....

'아...어떻해....'

선미는 냉정하게 돌아서 나오지 못하는 자신을 탓할 겨를도 없이 당황하고 있었다.

'만약 이대로 나간다면 남편에게 혹시나....'

그럴리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당장 현실을 생각하자 선미의 눈에 남편의 실망하는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그것도 하나 받아가지고 오지 못하냐고 말하고 있는 듯한....

말 없이 돌아서 스티브 앞으로 온 선미가 손을 내밀었다.

고개는 돌린 채....

스티브는 웃음이 나왔지만 참았다.

여자의 손이 바들바들 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길쭉하고 고운 손가락이었다.

"나, 스티브 장이야. 한국명 장민석. 너는?"

선미는 기가 찼다.

완전 반말로 아랫사람 다루듯이 막 취급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대접을 지금까지 받아본적이 없던 선미의 얼굴이 빨개졌다.

"이름 없어? 그런 송팀장 아내라고 할까?"

"........"

"싫어? 그럼, 야! 라고 해야 하나?"

".........."

선미는 내밀고 있는 손이 부끄러웠다.

"그래...? 허어...고집이 있구만...."

".........."

스티브는 그런 선미의 모습이 즐거웠다.

"야...."

스티브의 입이 막 떨어질려고 하는 찰나에 선미의 입에서 말이 흘러 나왔다.

"선미, 김선미...."

막상 말을 해 놓고는 선미도 당황했다.

"어!! 이름이 있었네~. 선미, 김선미라... 예쁜 이름인데!"

"......."

선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왜 자신이 이름을 말했는지,

왜 반말을 하는 사장에게 자신이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을 뿐이었다.

스티브가 서류봉투를 내밀었다.

아무 생각없이 빨리 나가야겠다고 생각한 선미가 봉투를 잡았을 때 또 다시 당황했는데...

막상 내민 봉투를 잡고 놓치 않는 남자 때문에 선미의 손에 힘이 들어가면서

얼굴이 벌개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왜 이러세요...."

그 순간 스티브가 힘을 빼자 선미의 몸이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힘껏 손을 당기던 선미는 이번에는 너무 쉽게 전해지는 봉투 때문에 황당했지만 어째든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야만 했다.

서류를 받아든 선미가 몸을 돌려 다시 몇 걸음 걸었을 때,

뒤에서 선미를 바라다 보던 스티브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치마 밑으로 보이는 종아리 근육이 너무 아름다웠다.

"헉!!"

선미는 자신이 몸이 '붕' 떠오른 것을 느낌과 동시에 진한 남자의 향기를 느꼈다.

'아......불안한 마음이 이것이었나...'

현관에서 들었던 남자의 목소리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던 것이 결국 이것 때문이었다.

"안돼요!!"

발버둥치며 남자의 품에서 벗어날려는 선미.

하지만 스티브의 완력도 좀처럼 그 틈을 주지 않았다.

"가만히 있어!!"

두 사람이 그렇게 옥신각신 다투고 있었지만 이미 승부는 결정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제발 이러지 마세요..."

선미의 발짓이 허공에 공허한 동작만을 되풀이 할 뿐 성큼성큼 걸어 거실 한 가운데로 온 스티브에게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툭....."

서류봉투가 바닥에 떨어졌다.

"터..억....."

그리고 또 다시 선미의 팔이 스티브 얼굴을 향해 움직이며 이번에는 둔탁한 소리를 냈다.

선미의 손을 피할려던 스티브는 목덕미에 약간의 통증을 느꼈다.

"정말...."

저항을 하기 시작하는 선미의 손은 이제 잡히는데로 마구 때리고 핥퀴고 있을 뿐이었다.

"싫단 말이에요. 가게 해 주세요...."

그렇게 거칠게 저항하는 선미 때문에 스티브의 목과 팔에 길게 그어지고 만 손톱자국.

그리고 곧 바로 벌겋게 부풀어 오르면서 쓰린 통증이 생각보다 깊게 전해왔다.

"이것 봐라...."

더 이상 참지 못한 스티브가 선미를 바닥에 내려 놓자 때를 만난 것처럼 도망가는 선미.

"오,오지 마세요..."

선미는 소파 뒤쪽으로 몸을 숨기며 스티브가 접근하는 것을 방어했지만 부질없는 일이었다.

"이거 왜 이러나, 이리 잠깐만 와봐......"

결국 스티브에게 잡혀 거실 복판으로 다시 끌려 나왔다.

"손, 손 놓으세요. 제발!!"

"그냥 잠깐이면 돼..."

선미는 가혹한 운명이 원망스러웠다.

왜 하필이면 나에게 이런 일이 또 벌어지는 것인지...

"이렇게 좀 해 보래두...."

스티브가 선미의 얼굴을 잡고 자기쪽으로 끌어당겼다.

"찰싹..."

또 다시 스티브의 뺨을 때리고 만 선미.

잠시 멍하게 서 있던 스티브의 표정이 굳어가기 시작하더니 그만 손을 들고 말았다.

"악!!"

순간적으로 선미의 몸이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두 번이나 여자에게 뺨을 맞은 스티브가 폭발하고 말았던 것이었다.

"이런 썅....."

터져 나오는 데로 욕을 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간신히 참고 있는 스티브.

여자에게 뺨을, 그것도 한번이 아닌 두 번이나 맞았다는 것에 스스로가 어이가 없었다.

"뭐 이런게 다 있어..."

선미는 바닥에 주저앉아 가쁜 숨을 내몰아 쉬면서 손으로 얼얼한 뺨을 감싸고 있었지만

울음이 나오지도 않았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들....

"그래? 싫으면 가!! 별것도 아닌게...."

스티브는 소파에 몸을 기대며 소리를 질렀다.

선미는 정신이 하나도 없는 가운데도 빨리 이 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힘들게 몸을 일으켰다.

"그거....송팀장에게 갖다 주라구!!"

"........."

바닥에 떨어진 봉투를 집어 든 선미.

"그리고 송팀장 좀 올라오라고 해요!!"

순간 얼어붙고 만 선미.

'왜, 왜 남편을....'

남편얘기가 나오자 선미의 가슴이 급하게 뛰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몸을 돌린 선미는 스티브를 쳐다보았다.

본능이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선미의 눈 속에는 그 이유를 묻는 간절함이 담겨 있었지만

스티브의 무심한 눈길 속에서 그 어떤 이유도 할 수가 없었다.

"나,남편은 왜....."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참으며 간신히 입을 연 선미를 보면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을 꺼내는 스티브.

"그냥 할 말이 있어 그러니까 선미씨라고 그랬나...송 팀장에게 전해 줘요!"

선미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냉정하게 들리는 사장의 목소리는 악마의 소리처럼 가슴을 짓누르는 것이었다.

'안돼...남편이 알아서는 절대 안돼....'

고개를 떨구고 가냘프게 떨고 있는 선미를 보는 스티브의 눈길이 잠시 흔들렸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묘한 것은 여자를 그렇게까지 괴롭히고 싶어지는 마음이었다.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욕심이랄까...

선미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안돼요...그것만은 제발...."

고개를 숙인 체 중얼거리듯 울먹이는 선미를 잠시 지켜보던 스티브.

조용히 일어나 다가가자 그 기척에 놀란 선미의 눈이 왕방울처럼 커지고 말았다.

"가만히....그대로...."

그리고 스티브의 낮으면서도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실린 말에 선미는 얼어붙고 말았다.

선미의 몸이 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기억하기 싫은 장면들이 스치고 지나가는 선미.

잊혀져가고, 아니 잊으려고 했던 욕실에서의 첫 섹스....

너무도 충격적이고 격렬한 섹스였기에 쉽게 털어내지 못하고 이제 겨우 조금씩 혼자서 삭이고 있었는데 이제 다시 그 아픈 기억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그 사이 스티브는 벌써 선미 코 앞까지 다가서고 있었다.

스티브도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짓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이것은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왔던 것과는 너무 치졸한 방법이었다.

미국에서 이렇게 하다가는 치명적인 소송이나 사회적으로 매장될 수 있기에 절대적으로 조심하고 가급적이면 문제를 만들지 않는 행동을 하는 곳이 보통이건만 이 여자에게는 이상하게도 그런 자제력을 갖지 못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는 것 같았다.

'여자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가.....'

오랫동안 접하지 못한 여체의 냄새를 맡게 해 준 것이 그 때의 사건이라면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여자와의 섹스를 한 그 날 이 후 지난 몇 주동안 완전히 일에 파묻혀 살았고 오늘도 내일 미국에 있는 본사에 갖다 오면 어느 정도 회사 정리가 다 끝난다는 안도감에 그나마 쉬고 있었는데 여자를 보는 순간 또 다시 핏줄이 타는 듯이 뜨거워지는 것이었다.

'허어....참.....'

사실 여자의 거센 반항과 생각지도 않던 사이에 손찌검을 당한 스티브로도 순간적으로 자기도 모르게 여자에게 손을 대었지만 정작 그것보다는 그 다음을 걱정할 수 밖에 없었다.

막상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여자가 매몰차게 나가버리면 어떻게 하나라는 생각과 그럴리는 없겠지만 여자가 다른 사람들에게 입을 열 경우였다.

그런데 다행히 여자가 가만히 서 있자 스티브도 자신감이 생겼다.

처음에 남편 얘기를 꺼내고서 스티브도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이거 내가 왜 이 지경까지 되었지...'

치사하게 남편의 얘기까지 꺼내다니....

하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 졌고 더 이상 시간을 끌 수도 없는 일이었다.

떨고 있는 여자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얹는 스티브....

선미는 추웠다.

여름 날씨임에도 왜 이렇게 추운지...

남자가 자신의 어깨에 손을 얹고 가볍게 당기는 것까지 다 느끼고 있었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겨우 힘을 내어 입을 열어 한 말...

"하,하지 마세요...제발...."

남자의 향기가 코 속으로 스며들었다.

두 손을 가슴 앞에 가지런히 모으고 조금이라도 거리를 둘려고 했지만 남자의 힘은 조용히 그러나 거부할 수 없을 만큼 강하게 품 속으로 끌어당기고 있는 것이었다.

얼굴을 돌리며 선미는 애써 남자의 숨결을 느끼지 않으려고 했지만

남자의 품에서 벗어날려는 선미의 저항은 이미 적극적이고 결사적인 모습이 아니라 수동적인 보호만을 위한 저항이었다.

힘껏 뿌리치지도 못하고 단지 팔을 들어 밀어내는 정도의....

그런 선미의 안타까운 몸짓은 점점 스티브로 하여금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게 만들었고 이제는 아예 선미를 가슴으로 당기고 있는 것이었다.

선미를 품에 안은 스티브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얼굴을 감싼 손에 힘을 주며 오물거리는 선미의 입술로 입을 가져갔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 또 다시 외면하는 선미.

"시,싫어요....안돼요...."

멋쩍게 방향을 잃고 어색한 자세가 되어 버린 스티브가 피식 웃고 말았다.

"후후... 그래? 입술은 줄 수 없다는 건가~~"

스티브는 동양여자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많지는 않았지만 대부분 자기와 섹스를 한 동양여자들은 한결같이 키스하는 것에 대해 강박관념이 있는 것 같았다.

두 번, 세 번 만나면 먼저 달려들면서도 첫만남에서는 결코 입술을 줄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이 여자 스스로가 열릴 때까지 기다리면 될 일이었다.

선미는 눈을 꼭 감고 있었다.

뭔가를 해야 하는데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해...빨리 나가야 하는데...'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몸은 전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

갑자기 몸이 허공에 떠 올랐다.

"안돼요!! 제발....!!"

이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너무도 쉽게 남자에게 말려들어가는 자신을 느끼면서 남자의 품 안에 안겨 들려져 있는 자신의 모습에 거의 실신하기 직전이었다.

스티브는 성큼성큼 거실 한 가운데로 걸어가 조용히 무릎을 꿇고 여자를 내려놓았다.

선미는 등쪽으로 차가운 바닥의 느낌이 전해오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손으로 눈을 가리고 말았지만 그것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조용했다.

아무런 움직임도 없고

어떤 기척도 없이 너무도 조용했다.

모든 것이 너무 두려운 선미는 이 고요함마저 무서웠다.

누워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덜덜 떨고 있는 선미는 아무런 동작도 하지 못하고 겨우 몸만을 웅크린 채 중얼거리 듯 혼자말을 하는 것이었다.

"아....안돼...제발...나..가야해....제..발..."

그 순간 스티브의 몸이 다가서고 있음을 전혀 알지 못했다.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심하게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선미의 가슴을 내려다보던 스티브.

봉긋하게 솟아있는 가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가슴.

거기서 눈길은 다시 아래쪽으로 훑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예쁜 종아리와 아이들 발 같이 앙증맞은 발가락.....

"허어....음......."

스티브의 힘줄이 드러난 강인한 팔이 선미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허억!!!"

선미는 번쩍 눈을 뜨고 말았다.

가슴에 와 닿는 이물질감을 느끼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상체가 벌떡 일어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내 다시 몸을 바닥에 누이고 말았다.

가만히 내려 누르는 스티브의 힘을 거역할 수가 없었다.

"제발......."

선미는 마지막 애원의 소리를 내뱉었다.

남자의 손이 가슴을 더듬고 있다는 것을 아는 순간 어떻게든지 이 상황에서 끝내야한다는 결심을 한 선미였다.

하지만....

하지만 그것은 스티브로 하여금 도전의식과 파괴본능을 불러 일으킨다는 것을 미처 모르고 있었다.

스티브의 손이 선미의 가슴을 부드럽게 움켜쥐었다.

"아........"

그리고 가슴 앞에 꼭 모으고 있던 선미의 손을 가만히 내렸다.

"안돼...요..."

하지만 마비가 된 것처럼 전혀 움직일 수 없는 몸뚱이.

마치 조종되고 있는 인형처럼 스티브에 의해 두 손이 맥없이 아랫배쪽에 놓인 두손.

선미의 눈이 감겼다.

그리고 눈가에 조금씩 스며 나오기 시작하는 물기....

스티브는 떨고 있는 선미의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가만히 옷깃을 잡았다.

"툭...툭..."

단추가 벗겨지는 소리....

그리고 앞쪽이 서늘해지면서 살갗에 와 닿는 뜨거운 손길.

선미는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벗겨진 상체를 더듬은 남자의 손길에서 남자의 갈구하는 욕정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이라도 몸을 일으켜 나가야 한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몸에 힘을 줄 수가 없었다.

'아.....'

왜 이렇게 꼼짝을 할 수 없는 것인지,

왜 이렇게 열병을 앓는 것처럼 온 몸이 펄펄 끓고 있는 것인지....

이를 앙다문 선미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꼼짝않고 누워 있었지만 머릿속에서는 힘겹게 싸우고 있었다.

'눈을 떠. 일어나 나가야 해. 이건 아니야. 남편과 나리는...'

머릿속에서는 그렇게 자신을 일깨워주는 소리가 웅웅거렸지만 내려뜨려진 손만 꼭 움켜쥘 뿐 스티브의 손에 의해 상체가 드러나고 있는 것을 막지 못하고 있는 선미였다.

"음...역시 그 때 그 향기구만~~"

가볍게 킁킁대며 냄새를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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