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M E M O R I Z E - IF편 Chapter - 04 [도플갱어] (4/11)

#001

똑똑.

“들어오세요.”

방안에서의 허락과 함께 문이 열렸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편안한 얼굴을 한 남자였다. 얼굴은 서글서글한 미소가 어려있지만 눈은 생생한 빛을 흘리고 있다. 조금은 긴장한 눈으로 남자는 천천히 문을 닫았다. 

“부르셨습니까, 클랜 로드.”

“어, 시킬 일이 있거든.”

“시킬 일?”

남자의 말이 짧아졌다. 본능적으로 클랜 로드의 용건이 공적인 일이 아님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의자 채로 돌아있던 사내가 빙글, 의자를 돌렸다. 한눈에 봐도 미남인 남자. 하지만 형용할 수 없는 날카로움을 가진 사내의 눈빛이 남자를 향해 왔다. 

“…내게 따로 시킬 일이 있다? 뉘앙스로 봐선 가볍지 않은 일 같은데.”

“그건 네가 알바 아니고. 애초에 네가 선택할 위치에 있었던가?”

“…없지.”

비릿한 미소로 날리는 말에 남자는 쓴웃음을 지었다. 을의 위치에 있는 남자……. 아니, 무조건적으로 까라면 깔 수밖에 없는 하승우는 눈 앞의 사내에게 평생 부려 먹혀야 할 처지에 놓여있다. 

“그래서 내게 시킬 일이 뭐지? 또 부랑자에 대한 정보인가?”

“비슷하긴 해. 겸사겸사라고 할까? 정보를 내놓되 한가지 더 해야할 일이 있다.”

하승우는 따로 말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김수현이 하는 말에 무조건 따라야 하니까. 그저 계속 말해보란 식으로 응시했다. 

“다른 건 아니고. 이 일은 너 밖에 할 사람이 없어서.”

“뭐지? 나밖에 할 수 없는 일이라면 흉내 밖에 없는데.”

“어, 바로 맞췄네. 한동안 내 행세를 해줘야겠다.”

하승우는 눈을 찌푸렸다. 흉내를 내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눈 앞에 있는 남자의 흉내만큼은 또다시 내기 싫었기 때문이다. 

“…설명이 필요한데.”

“이번 부랑자 척살조는 내가 직접 통솔할 거거든.”

“…네가 직접?”

“어, 처리할 것도 있고 확인할 것도 있어서. 그 동안은 네가 내 행세를 하면서 자리 좀 지켜줘야겠다.”

하승우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김수현을 바라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김수현은 여전히 미소를 유지한 채로 말을 이었다. 

“이번에 여러가지 일이 있었잖아? 잠깐이면 모를까 그래도 이번엔 꽤 오래 자리를 비우게 될 것 같은데 괜히 어수선해지는 건 사양이라.”

“얼마나 오래 비우려고?”

“한 한달 정도?”

“…….”

한달.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김수현에게 있어 그 시간은 결코 짧다 할 수 없다. 그렇다는 것은 한가지를 뜻했다. 

“…이번에 씨를 말려버릴 작정이군.”

“불만있어?”

“그럴리가. 이미 손을 떠난 놈들이다. 이참에 확실히 박살 내줬으면 좋겠군.”

김수현은 피식 웃으며 서랍장에서 하나의 서류봉투를 꺼내 책상 앞으로 던졌다. 잠시 내려다보던 하승우가 집어 내용물을 살폈다. 

“…아무리 봐도 이해가 가지 않는데?”

“뭐가?”

“나에게 이런 임무를 맡기는 이유가 뭐지?”

하승우는 진정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그가 읽었던 서류의 내용. 그것은 특별한 일 몇 개를 제외하면 하승우 본인의 판단에 따라 일을 처리하라는 내용이었다. 즉, 클랜 로드의 전권을 대부분 일임한다는 말. 전임 부랑자 두목으로서 언제나 견제 및 제약을 받아오던 그에게 왜 이런 일을 맡긴단 말인가?

“이참에 너를 완전히 제어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

“너를 믿어서 이런 걸 맡겼을 것 같나? 조금만 이상한 짓 해봐. 너는 물론이고 하승윤까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네가 과연 무얼 할 수 있을까?”

“…할 수밖에 없군.”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자유를 주는 거지. 내가 하지 말라는 것 빼고는 뭘 해도 상관없다. 물론 클랜에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여야겠지만.”

“…….”

그래도 하승우 역시 무리를 이끌었던 몸. 비록 부랑자라는 악의 축의 세력이었으나 리더십으로는 나름 능력이 있는 편이었다. 대행이라면 모를까 김수현의 흉내까지 내야하는 상황에서 이만한 적임자가 없으리라. 

하승우가 작게 숨을 내쉬었다. 

“미리 말하지만 클랜원을 대하는 대는 내 방식대로 할거다. 그 외라면 자신이 없어.”

“누군가를 차별하거나 그런 짓만 하지 않는다면 허용하지. 그래도 너무 선은 넘지마. 네 주제를 생각하라고.”

“…알았다.”

그 말을 끝으로 김수현은 턱을 까딱였다. 이만 나가보라는 뜻이었다. 하승우는 조금은 무거운 낯으로 몸을 돌렸다. 

철컥.

천천히 문이 닫히며 방을 나서는 하승우의 눈이 스산하게 빛났다. 

*

이튿날. 다시 한번의 호출을 시작으로 김수현은 빠르게 모습을 감추었다. 능력을 발휘해 김수현의 모습으로 변한 하승우는 고연주의 모닝차를 시작으로 김수현의 일과를 맡아 하기 시작했다. 

이미 김수현이 전해준 주의점과 내용은 모두 숙지한 상태. 그것만 중점으로 처리하고 나머지는 유려하게 처리하면 될 것이라 생각했던 하승우는 밀려오는 업무량에 생각을 바꿔야만 했다. 

‘이건 뭐……. 업무 때문에 도망간 건가?’

쉬지 않고 몰려오는 결제 서류들. 이만하면 되었나 싶을 즈음, 다시 무더기로 몰려오는 서류량에 하승우는 절로 혀를 내둘렀다. 첫날만 우연히 일이 몰린 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으나 이런 일이 사흘, 나을 이어지니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김수현은 이런 업무량으로 매일을 지새운다는 것을. 

“허튼 짓 할 생각도 하지 말라고? 미친, 생각할 틈도 없다. 일의 분배도 없이 이게 뭔 짓거리야? 그때 빠르게 무너졌던 것도 이해가 가는군.”

김수현이 지옥대공과 함께 사라진 그 날. 그 이후로 머셔너리는 빠르게 무너졌다. 그렇게 튼실하고 탄탄하던 머셔너리의 기반이 마치 모래알처럼 수루룩 녹아내렸다. 고연주와 정하연이 어떻게든 김수현의 빈자리를 메워보려 했으나 내정은 물론이거니와 클랜원의 멘탈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머셔너리는 김수현에게 너무 많이 의지하고 있다. 그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후, 그래도 오늘은 좀 적군.”

마지막 서류 작업을 끝내고 하승우는 의자에 깊게 몸을 묻었다. 사용자 설정으로 인해 이런 일로 몸이 피로할 일은 없었지만 정신이 매우 피곤했다. 어느덧 창 밖으로 붉은 노을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먼 창 밖을 바라보며 피로한 눈을 주무른다. 작은 지압에도 지긋한 통증과 함께 시원하게 퍼지는 감각을 느끼며 하승우가 길게 숨을 흘리는 와중이었다.

똑똑.

문에서 들려오는 노크 소리에 하승우의 미간이 단박에 찌푸려졌다. 또 일인가 싶어 스트레스가 잔뜩 몰려오려 했으나 그는 애써 표정을 정리했다. 차오르던 숨도 가다듬고 김수현을 따라 말했다. 

“들어오세요.”

그러자 천천히 열리는 문. 언제나 서류 뭉치를 들고 오던 조승우의 노곤한 얼굴을 기다렸으나 뜻밖에 모습을 보인 건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이었다. 작은 얼굴 아래로 큼지막한 두 덩어리의 존재감을 뿜어대는 여인. 임한나였다. 

“수현아, 일 끝났어?”

“음? 일단은…….”

“아, 그래? 잘됐다.”

반색하며 방 안으로 들어온 임한나는 얼른 문을 닫았다. 그리고 총총걸음으로 가볍게 달려와 책상 옆으로 빙글 돌아온다. 갑작스러운 접근에 하승우는 당황했지만 애써 표정을 숨겼다. 

“무슨 일인데 그래?”

“아니, 별건 아니고…….”

“음?”

잠시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던 임한나가 불쑥 손을 뻗었다. 갑작스레 목에 뻗어오는 손길에 하승우가 움찔 떨었으나 여인의 가는 손은 그의 목을 잡고 지긋이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냥, 요즘 네가 많이 피곤해 하는 거 같아서.”

“…굳이 이러지 않아도 되는데.”

“아냐, 아냐. 그냥 내가 해주고 싶어. 괜찮으면 잠깐 시간 좀 내줘.”

임한나의 지긋한 말에 하승우는 입을 다물었다. 뭐라 거절해야 할까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임한나 말대로 하승우는 꽤나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능숙하게 주물러주는 임한나의 손길이 꽤나 기분이 좋아 이대로 배려를 받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본인이 해주겠다는데…….’

“…그럴까?”

“그래? 그럼 자리를 옮길까?”

“…어?”

갑작스러운 말에 하승우가 절로 되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임한나는 이미 그의 팔을 잡고 어디론가 이끄는 중이었다. 

그렇게 끌려온 곳. 그다지 멀지 않는 곳이다. 바로 김수현의 업무실 안쪽에 위치한 그의 침실이었다. 침대위로 던져진 하승우는 뭐라 반응하기도 전에 임한나의 손길에 의해 옷이 벗겨졌다. 당황한 것도 있었지만 너무나도 술술 벗겨가는 손길에 하승우의 몸은 어느새 상의 탈의가 된 상태였다. 

“자, 잠깐만 한나야. 여기는 좀…….”

“으응……. 그래? 그럼 이 상태로 하지 뭐.”

어느새 바지 춤까지 잡아 내리려는 손길에 하승우가 기겁하며 말리자 임한나는 어딘가 아쉬운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가볍게 밀치는 손길에 하승우가 침대에 눕혀졌다. 잔뜩 굳은 상태에서 임한나가 옆으로 굴리자 그는 완전히 엎드린 상태가 되었다. 

“잠깐 있어봐~. 나도 준비가 좀 필요해서.”

“…….”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지만 임한나는 콧소리까지 흥얼거리며 어디론가 달려갔다. 업무실에서 무언가를 준비하는 소리를 들으며 하승우는 조용히 생각했다. 

‘…이건 허용 내인가?’

처음엔 가벼운 마사지일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여자 쪽은 그게 아니었나 보다. 뭔가 본격적으로 할 생각인 거 같은데 이걸 받아도 되는지 심각한 고민이 들었다. 

‘분명 김수현은 부적절한 인사 결정이 아니면 클랜원의 처사에 대해선 아무런 관여를 하지 않는다 했다. 이게 뭐 강제로 하는 것도 아니고 본인이 해주겠다는 건데…….’

그러나 긴 시간 동안 정신적 피로를 느끼고 있던 하승우는 방금 전 임한나에게 받은 마사지를 잊을 수가 없었다. 잠깐이었지만 몸이 녹아내리는 기분. 본격적인 마사지를 받는다면 분명 그곳은 천국일 것이 분명했다. 

‘…그래 조금만. 조금만 이라면…….’

그렇게 저도 모르게 이건 김수현의 허용 내라고 판단을 내려버렸다. 푹신푹신한 침대의 감촉을 느끼며 잠시 기다리자 준비를 끝마쳤는지 임한나가 돌아왔다. 단숨에 침대 위로 올라온 임한나가 하승우의 옆에 조신이 꿇어 앉았다. 

“오래 기다렸지? 헤헤.”

“…아니, 1분도 안 지났는데.”

“흐응, 그런가? 생각해보니 그러네?”

임한나와 대화하면서도 하승우는 침대에 얼굴을 묻은 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너무 피곤해서. 푹신푹신한 침대가 기분이 좋아서 손가락 까딱하기 싫었다. 

그런 와중에 쫘악, 하고 무언가 짜내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내 질척거리는 마찰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임한나가 준비했다는 그 무언가인 모양이었다. 마사지 젤인가? 

“정말로 피곤했나 보네. 꿈쩍도 안하는 걸 보니. 근육 뭉친 거 봐. 이렇게 힘들었으면 진작에 말하지. 난 그것도 모르고…….”

여인의 손이 뻗어진다. 마사지 젤이 묻은 손이 등에 닿자 하승우는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그 반응이 즐거운지 임한나는 천천히 사내의 등을 매만지며 젤을 펴 바르기 시작했다. 

“여기가 심하게 뭉쳐 있네? 여긴 평소에 자세가 바르지 못하면 잘 뭉쳐지는 곳이거든. 여기도 뭉친 거 봐. 어머 여기도. 너 완전 힘들었었구나?”

“…….”

천천히 만져오는 손길. 마력으로 데운 건지 따끈따끈한 젤이 발라지며 몸이 뜨겁게 녹여지는 기분이다. 하승우는 움찔움찔 떨면서 임한나의 말에 답하지 못했다. 나긋나긋 만져오는 손길에 저도 모르게 숨이 터져나올 것만 같아서. 그저 침묵으로 일관하는 수밖에 없다. 

이어 임한나가 나머지 한 손도 남자의 등에 얹었다. 천천히 천천히. 적당한 힘으로 누르며 등 이곳 저곳에 젤을 펴 바르는 손길에 하승우는 몸에 전율이 돋는 걸 느꼈다. 

“기분 좋아?”

“…….”

“치, 대답은 좀 해주면 안돼?”

“조, 좋아.”

하승우는 저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순간 낭패한 기색이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예상외로 임한나의 손길이 너무나 기분이 좋다. 이래서 일부러 말을 하지 않았던 건데…….

“그, 그래? 다행이다…….”

하지만 이어진 임한나의 대답엔 기쁨이 가득 담겨져 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하승우는 의심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에만 안도를 흘렸다. 

그러나 이어진 행동에 하승우는 다시 이를 악물어야 했다. 등을 눌러오는 손길에 무게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처음은 피부만 자극하며 문지르는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아까 목을 주물러졌을 때처럼 지긋이 눌러오며 근육을 자극한다. 정확히 뭉친 부분을 헤집으며 지나가는 손길에 하승우는 절로 턱이 열리려는 걸 참아야 했다. 

“…여기 기분 좋지? 연주 언니나 하연 언니도 이쪽을 만져주는 걸 굉장히 좋아하거든. 몸의 중심이 꿰뚫리는 거 같다나 뭐라나.”

“…….”

뭔가 대답을 해주길 바라는 듯한 음성이었으나 하승우는 대답할 여력이 없었다. 지금 입을 열면 아까처럼 신음이 새어나온다. 그럴 것이 분명했기에 하승우는 이를 악물며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잠시간의 시간이 흘렀다. 임한나의 가벼운 마사지에 하승우의 몸은 이미 흐물흐물하게 풀린 지 오래였다. 그녀의 손길 하나하나가 기분이 좋아 이 시간이 계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드는 와중. 

“자, 이제 몸 돌려봐.”

갑작스런 선고가 떨어졌다. 

거의 반쯤 풀려있던 하승우의 정신이 단숨에 돌아온다. 다른 무엇보다 문득 한 곳에 집중적으로 의식이 몰렸다. 

‘미… 친…….’

섰다. 임한나의 손길을 받으며 하승우는 저도 모르게 발기했다. 

딱히 음란한 기분이 든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나긋나긋하게 마사지를 받다 보니 의식도 하지 못할 만큼 본능적으로 아래에 피가 몰린 것이다. 하지만 그건 본인만의 사정. 임한나가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잠들었어? 몸 돌려보래도?”

“자, 잠시만…….”

“몸 달궈 놓았을 때 계속 받는 게 좋단 말야. 자 얼른!”

하승우가 어떻게든 버텨보려 발악했으나 임한나가 마력까지 일으키며 그의 몸을 홱 뒤집어버렸다. 아차 싶었으나 이미 늦은 반응. 그의 상체를 바라보던 임한나의 시선이 절로 아래로 향했다. 그리고 어머, 하고 입을 가리는 모습을 보며 하승우는 눈을 감았다. 

‘이런 제… 길……?’

망했다, 싶은 생각이 들면서도 순간적으로 본 광경에 하승우가 갸우뚱했다. 방금……. 무언가 살색 무더기를 보았던 것 같은데?

혹시 몰라 하승우는 천천히 눈을 떠보았다. 천천히 들어오는 시야로 보이는 광경에 하승우는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아이 참. 이것 때문에 버틴 거였어? 따, 딱히 버티지 않아도 됐었는데…….”

임한나가 부끄럽다는 듯 양 손으로 볼을 만진다. 살짝 달아오른 얼굴을 보던 하승우가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청순함을 그대로 그려놓은 듯한 외모. 부드러운 머릿결을 따라 내려간 시선은 그녀의 가는 어깨를 응시했다. 처음 입고 왔던 옷은 언제 벗은 건지 부드러워 보이는 하얀 살이 보인다. 그리고 그것과는 반대로 엄청난 존재감을 내보이는 흰 두덩이. 절반은 검은색 레이스가 달린 브래지어에 가려져 있지만 그 위로 넘칠 것 같이 출렁이는 살을 보니 절로 숨이 막혔다. 고체화 된 푸딩 위에 부드러운 살결을 발라놓으면 저런 움직임을 보일까? 

더군다나 부끄럽다고 손으로 볼을 매만지는 상태였다. 자연스럽게 팔이 옆가슴을 눌렀고 그로 인해 볼륨감이 더욱 돋보인다. 금방이라도 터져서 흘러내릴 듯한 가슴에 하승우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놔두면 그대로 흘러내릴 것 같아서. 얼른 손으로 받아내야 한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그런 그의 손길을 임한나가 제지했다. 어느새 내린 손이 그의 손을 마주잡고 도로 침대로 내려놓는다. 

“안돼. 마사지가 끝날 때 까지는 아무것도 하면 안돼.”

“…….”

“…그 전에 해버리면……. 마사지를 끝까지 해줄 수가 없으니까……. 조금만 참아줘.”

저도 모르게 내민 손을 저지당하면서 하승우는 조금이지만 정신을 차렸다. 자칫 잘못했으면 큰일을 낼 뻔 했다고 생각하면서도 이어진 임한나의 말 한마디에 다시금 욕망의 불이 치솟는다. 

그의 심경의 변화는 몸에 그대로 옮겨왔다. 잔뜩 발기한 하체. 그곳으로 피가 잔뜩 몰리며 발기가 더욱 심해졌다. 그 변화를 눈치챘는지 임한나는 조금 난처해하면서도 기쁜 기색으로 몸을 일으켰다. 

“…너무 반응하면 안되니까……. 이렇게 누르고만 있을게.”

한쪽 다리를 들더니 하승우의 하반신 위를 넘어간다. 그의 하체에 무릎을 꿇은 상태로 올라온 임하나는 그대로 엉덩이를 내려 발기한 남성을 짓눌렀다. 

“너……!”

“가, 가만히 좀 있어봐. 너무 움직이잖아…….”

갑작스런 행위에 하승우는 거의 발작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런 행위가 오히려 남성을 더 자극한다는 걸 모르는 걸까? 하지만 위험한 미소를 흘리는 임한나를 본 순간 그녀가 일부러 이런 짓을 했음을 하승우는 바로 깨달았다. 그는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참으면 되니까…….”

이어 젤을 다시 손에 펴 바른 임한나가 하승우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자연스레 두개의 거유가 아래로 출렁이며 사내의 시선을 이끈다. 속옷으로 감싸여 있으면서 그 존재감을 조금도 잃지 않는다. 하승우의 하체가 다시 펄떡거렸다. 

그 미동을 느끼며 임한나는 젤을 남자의 몸에 펴 바르기 시작했다. 김수현의 몸을 흉내낸 탄탄한 가슴을 느끼며 여인의 예쁜 섬섬옥수가 천천히 사내의 몸에 흔적을 넓혀간다. 그런 와중에도 사내의 시선은 여인의 몸을 염탐하느라 정신없이 움직였다. 더욱 잘 보라고, 여인은 몸을 움직이며 사내에게 몸 곳곳을 보여주었다. 

“…후욱, 후욱.”

이제는 거친 숨까지 몰아쉬는 사내. 본인은 눈치를 못 챈 듯 하지만 그러한 반응 하나하나가 임한나를 기쁘게 해주었다. 사랑하는 사내가……. 그것도 평소에 공과 사를 미친듯이 구분하는 김수현이 자신에게 욕정 한다는 사실 자체가 그녀로선 행복 그 자체였으니. 

그런 것도 모르고 하승우는 계속해서 임한나의 몸을 보는데 여념이 없었다. 아까부터 몸이 뜨거워지고 머리가 멍해지는 것이 자꾸만 이성을 잃을 것 같아서 그것을 붙잡는데도 벅찰 지경이었다. 

‘몸이 많이 골았었나. 너무 많이 흥분하는데…….’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되면서도 몸은 정직하다. 아래에서 미칠 듯이 몰려오는 감각에 어떻게든 맞닿아 있는 여인의 그곳을 느끼고자 저도 모르게 필사적으로 집중한다. 바지가 거추장스러워 아까 임한나의 손길을 거부한 것에 후회마저 들었다. 

‘미치겠군. 진짜로……. 그나저나 몸매 하나는 진짜 미치게 죽이는데.’

다시금 임한나의 몸을 감상한다. 물론 부드러움의 극치를 달리는 젖가슴이 가장 이목을 끌었으나 그것 말고도 여러가지 즐거움을 주는 요소도 많았다. 저 젖가슴을 어떻게 유지하며 버틸까 싶은 잘록한 허리나 곧게 잘 뻗은 다리. 치마는 아직 벗지 않았기에 가려져 보이지는 않지만 저 허벅지 안쪽의 살도 분명 최상급일 것이 분명했다. 

“꿀꺽…….”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소리가 꽤나 크게 울렸으나 그에 대한 건 더 이상 의식조차 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임한나의 허벅지를 따라 곧게 꿇은 무릎, 알 하나 안보이는 종아리까지. 그녀의 몸 구석구석을 눈에 각인시키며 그녀의 손길을 즐겼다. 

‘후훗, 너무 보잖아. 바보.’

그런 사내의 시선을 고스란히 느끼는 임한나도 점차 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단순히 시선으로도 숨이 가빠질 정도로 몸이 달아올랐다. 

그렇기에 사내를 만지는 그녀의 손길도 점차 과감해졌다. 가슴과 옆구리, 배에 젤을 펴 바르던 손이 다시 사내의 가슴으로 이동한다. 마치 사내가 여인의 가슴을 주무르는 것처럼. 사내의 가슴을 힘을 주어 주무르던 여인의 손이 의도적으로 사내의 유두를 건드렸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단단해진 사내의 젖꼭지를 이리저리 튕겨낸다. 

“윽…….”

이제껏 보였던 반응과는 다른 격한 반응. 평소와는 동떨어진,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그런 반응을 보였다는 기쁨이 그녀를 더욱 과감하게 만들었다. 욕정이 이끄는 대로. 임한나의 몸이 아래로 내려갔다. 그녀의 손 역시 아래로 내려가며 다시 한번 사내의 바지춤을 붙잡았다. 

“허리……. 살짝만 들어 줄래?”

단순한 부탁이면서도 허락을 구하는 물음. 아까는 거절당했던 물음을 다시 한번 되묻는다. 조금은 긴장한 낯으로 대답을 기다리던 임한나는 천천히 들어올려지는 남자의 허리에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승낙의 대답. 그것이 떨어지자 임한나의 손이 천천히 사내의 바지를 벗겨갔다. 이제는 마지막 남은 관문. 터질 듯 부풀어 오른 남근이 얇은 속옷에 쌓여 힘겹게 껄떡이는 게 눈에 보였다. 

“…하아.”

얼굴을 데우는 듯한 뜨거운 열기가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마치 향긋한 차의 향을 맡는 것처럼 임한나가 깊게 숨을 들이켰다. 밤꽃 향이 깃든, 뜨거운 습기가 그녀의 머리 속을 가득 메웠다. 

“…….”

“…….”

무언가를 잔뜩 원하는 남녀의 시선이 부푼 남근을 사이에 두고 마주친다. 서로를 간절히 원하는 두 남녀의 뜨거운 시선이 서로의 생각을 전해준다. 그 와중에 먼저 움직인 건 임한나였다. 

쭈으읍, 쭙.

옆에 둔 젤 통을 다시 한번 손에 짜내는 여인. 여전히 시선을 남자와 맞추면서 도발적인 얼굴로 입술을 달싹인다. 

“마사지……. 계속 해도 될까?”

손가락 사이로 주르륵 흘러내리는 점액. 그 요사스러운 여인의 모습을 보며 하승우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002

질퍽.

여인의 손이 사내의 허벅지에 닿는다. 

질척이는 점액을 통해 사내가 움찔하는 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단순히 닿기만 했는데도 크게 반응하는 사내. 그런 반응이 놀라우면서도 괜스레 기분 좋아 임한나는 과감하게 손을 움직였다. 

질척, 질척. 

허벅지 위에서부터 안쪽으로. 천천히 젤을 발라가는 여인의 손이 유려하게 움직인다. 김수현을 가장한 하승우는 숨도 쉬지 못한 채 그런 임한나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길게 풀러 내린 머리. 지구에서라면 어디 길가에 꽃을 파는 여인의 모습을 한 청조한 여자가 젤을 듬뿍 바른 채 사내의 몸에 펴 바르고 있다. 위에 브래지어만 차고 있는 채로, 한 손에 담기도 부족할 커다란 젖가슴을 출렁이며 열심히 손을 움직인다. 

젤을 바르는데 집중하는 듯 했지만 여인의 얼굴의 묘하게 달아올라 있다.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려 하는 게 눈에 보였다. 안쪽 입술을 살짝살짝 물면서 숨을 조용히 들이키는게 호흡도 조금씩 거칠어지는 모양. 

그런 여인의 시선이 조금씩 위를 흘끗 쳐다본다. 팬티 속에서 미칠 듯 부풀어 있는 사내의 물건이 신경 쓰이는지 두툼한 그것을 볼 때마다 여인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아.”

그러다가 실수록 툭. 크게 발기한 사내의 아래쪽 불알을 저도 모르게 건드렸다. 살짝 스치는 수준이었지만 반응은 크게 다가왔다. 건드려진 사내도 깜짝 놀라고 여인도 화들짝 놀란다. 

“…….”

“…….”

그렇게 어쩔 줄 몰라 하다 두 남녀의 시선이 마주쳤다. 우연히 스쳐 지나가는 통에 마주쳤지만 마치 갈고리에 걸린 것처럼 둘의 시선은 떨어지려고 해도 떨어지지가 않았다. 

그러는 와중, 먼저 움직인 건 사내였다. 

천천히. 저도 모르게 여인의 얼굴에 손을 뻗던 하승우는 번뜩 정신이 들었다. 거의 닿을 듯 말 듯 다가간 자신의 손을 보고서 이 사태를 다시 깨달은 것이다. 

‘…이런 씨.’

처음엔 단순한 마사지만 받으려 했다. 하지만 임한나가 바지를 벗기려고 했을 때 단순히 마사지 만을 하려고 하는 게 아님을 어느 정도 눈치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승우는 점차 과감해지는 임한나의 손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본인도 알 수 없었다. 단순히 임한나가 아름다운 미녀라서? 그 이유도 없지야 않겠지만 본래 그런 걸로 쉽게 넘어갈 남자였으면 부랑자 우두머리따윈 절대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미 열기가 머리까지 차오른 상태라 잘 굴러가지 않았지만 하승우는 최대한 생각하려 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답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머셔너리에 온 뒤 여인을 안지 못했지. 그만큼 쌓여있던 걸까?’

거의 반년 이상 욕정을 풀지 못했다. 부랑자 우두머리로서 매일 여럿의 여인을 범해왔던 그가 참기엔 분명 오랜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한순간에 욕정에 몰린다고?

그나마 추리할 수 있는 이유였으나 이것도 납득은 되지 않았다. 그는 머셔너리에 있는 동안 욕정에 시달렸다면 모를까, 김수현만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한 기분이 들어 그런 기분조차 들지 않았다. 

“…계속 할까?”

그렇게 상념에 빠져있는데 임한나가 조심이 묻는다. 하승우는 다시금 정신을 차리며 가만히 임한나를 바라보았다. 

좋은 어머니가 될 것 같은 포근한 인상의 미녀. 길쭉한 팔다리와 가느다란 몸으로 날렵하게 나무를 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꼭 신화에 나오는 엘프를 보는 것 같았다. 심지어 활까지 잘 쏘니 엘프의 형상을 그대로 나타냈다고 봐도 좋을 정도. 

하지만 그런 몸매에 비해 엄청난 볼륨을 자랑하는 저 젖가슴이 오히려 언벨런스한 분위기를 가져온다. 청순한 얼굴과는 다르게 폭력적인 가슴을 가진 여인이 지금 자신의 다리 사이에 꿇어 앉아 봉사를 하고 있다. 

지금 당장에라도 눕혀 범하고 싶은 마음이 충동한다. 하지만 그에 무섭게 한 사람의 존재가 그의 본능을 자꾸만 방해했다. 

‘김수현…….’

부랑자들 위에 군림한 후, 그 어떤 것도 무섭지 않았던 그가 유일하게 두려움을 갖게 된 대상. 이 여인은 바로 그 사내의 여인이었다. 

‘건드린다면 난 분명 죽겠지.’

나만 죽을까? 자칫 잘못하면 여동생까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질서를 중요시 하는 김수현이었으나 그건 겉모습에 불과하다.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여기서 그만 둬야해. 한낱 욕망에 목숨을 날릴 수는 없어.’

욕망이 왜 이리 폭발했는지. 그러한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여기서 임한나를 물리고 그 뒤에 생각해도 늦지 않다. 하지만.

“수현아?”

목구멍 위까지 차오른 말이 도저히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이제 그만. 이 네 글자를 내뱉는데 도저히 입술이 열리지 않았다. 

“…….”

그런 그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랫도리는 쉴새 없이 껄떡인다. 그가 어떻게든 말하려고 하는 걸 대신 말하려는 것처럼 입술을 꼼짝도 않는데 아랫도리는 팬티를 뚫고 나올 것처럼 격하게 꿈틀거렸다. 

“…어머.”

그런 반응을 여인이 눈치 못 챌 리가 없다. 사내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던 여자가 아래서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에 시선을 내렸다. 동그랗게 떠진 눈. 그런 여인의 입가가 조금씩 호선을 그렸다. 

“…창피해서 그래?”

“…….”

“아이 참. 우리 사이에 그럴 필요는 없는데…….”

하승우의 열렬한 시선을 멋대로 해석한 임한나가 얼굴을 붉혔다. 그러더니 불현듯 하승우의 속옷을 잡아 아래로 쑤욱 내렸다. 

“자, 잠깐!”

“어머!”

갑작스런 행위에 깜짝 놀란 하승우의 입이 드디어 열렸다. 하지만 이미 속옷은 아래로 내려간 상태였다. 그동안 억지로 얽매였던 남근이 폭발하듯 세상에 드러났다. 

“수, 수현이 너…….”

“…….”

“이, 이렇게 크게 돼서…….”

하승우는 눈을 감았다. 머리로는 미칠 것 같다는 생각만 부글부글 끓어올랐으나 그걸 보는 여인은 전혀 다른 생각에 빠졌다. 

‘이, 이렇게 커다랗게……. 그동안 그렇게 참고 있었구나…….’

평소보다 크게 부푼 남근. 마치 몽둥이로 맞은 것처럼 붉게 부어있는 남근이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움찔거린다. 귀두 끝으로 새어 나오는 투명한 액체가 기둥을 타고 흘러내렸다. 한 방울의 이슬이 굵직한 혈관을 타고 꿈틀거렸다. 

“괘, 괜찮아?”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으면서도 굉장히 아파 보인다. 그래서 임한나가 물은 거지만 사내는 다르게 해석했다. 

“…괜찮을 리가. 그러니까 이제……. 윽?!”

“괘, 괜찮아. 내가 어떻게든 해줄 테니까……!”

괜찮지 않다. 더 이상 건들면 덮쳐버릴 것 같아서, 그렇기에 그만 두려고 말하려던 찰나였다. 갑작스레 남근을 잡은 임한나의 행동에 하승우가 돌처럼 굳었다. 

“뭐, 뭐하는 거……!”

“잠시만…….”

그렇게 하승우가 기겁을 하는데 임한나의 손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굵직한 남근을 잡은 열 개의 섬섬옥수가 천천히 위아래로 미끄러진다. 젤이 듬뿍 묻어있는 손이 남근을 적시며 매끄럽게 이동했다. 

쭈욱, 쭈욱. 쭉. 질척, 질척.

“…윽? 아, 읏!”

잔뜩 민감해진 물건. 그것을 매끄럽고 부드러운 여인의 손이 자극하자 절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저도 모르게 눈을 꾹 감은 하승우를 올려다보며 임한나가 조심이 물었다. 

“괘, 괜찮아? 많이 아파?”

“아, 아니. 그건 아닌데…….”

“일단 한번 내보내면 되는 거지? 잠시만.”

아니다. 절대 아니다. 어떻게든 만류하고 싶었으나 하승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여인의 손이 더 빨라졌기 때문이다. 

찌걱, 찌걱, 찌걱, 찌걱.

이제는 완전한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 손. 남근을 지긋이 잡은 손이 위아래로 빠르게 왕복하기 시작한다. 젤 덕에 아무런 제제도 받지 않은 여인의 손가락이 남근을 감싸 쥔 채 음란한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아, 윽!”

여인의 손이 뿌리에서 귀두로 짜 올릴 때마다 절로 허리가 튕겨진다. 그런 사내의 반응에 놀라면서도 임한나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이 격한 반응이 곧 이 고통을 해소해 줄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큭!”

그녀의 예상에 따라 사내에게 사정이 임박해왔다. 두 눈에 불꽃이 번쩍번쩍 튀는 기분 속에서 하승우는 저도 모르게 임한나의 머리를 붙잡았다. 그 와중에도 김수현이 떠올라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지만 저도 모르게 오므라드는 손에 임한나의 머리카락이 얽혀왔다. 그런 손길을 느낀 임한나는 남자가 드디어 파정을 하려고 하는 것을 깨달았다. 

“아, 안돼……! 한나야, 나……!”

“응. 이대로 싸도 괜찮으니까…….”

“나……. 아윽?!”

“마음껏 내보내도 돼.”

사내의 턱이 위로 치켜졌다. 격해진 허리의 반응과 머리카락을 꽉 움켜쥐는 손길에서 임한나는 묘한 기쁨을 느꼈다. 평소라면 강철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내가 자신의 앞에서 이런 본능적인 부분을 보여준다는 사실이 그녀의 마음을 가득 충족시켰다. 

그런 사내가 내보내는 정이라면 전혀 더럽지 않다. 아니, 그 어떤 것보다 사랑스러운 상이다. 그렇기에 임한나는 사내의 사타구니에 얼굴을 가져갔다. 기둥을 열심히 훑으면서 다른 손으로는 팽팽해진 사내의 불알을 천천히 주무른다. 아까 전엔 살짝 닿기만 해도 놀랐던 부위를,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럽다는 듯 보듬기 시작한다. 

그렇게 사내의 눈앞에 폭죽이 터졌다. 시야가 환하게 터지면서 아랫도리에 차 올랐던 열기가 한곳을 통해 격렬히 뿜어졌다. 

“으헉!”

푸슈슈슛. 푸슉. 퓨류륙.

“아…….”

얼굴을 때리는 뜨거운 감촉에 임한나가 탄성을 흘렸다. 방금 느꼈던 그 감촉이 다시 여러 번 얼굴을 두드린다. 숨을 쉬려 하지 않아도 절로 콧속을 타고 들어오는 진득한 밤꽃 향기에 여인의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남자의 사정은 끝나지 않았다. 폭발할 것처럼 부풀었던 남근답게 터뜨린 사정의 양도 어마어마했다. 그녀가 아는 선으로 따지면 평소보다 약 세배는 많이 내어낸 것 같다. 

“큭, 크하아. 하악, 하악.”

“…….”

사내의 뜨거운 숨이 터짐과 동시에 얼굴을 두드리는 감각도 멎었다. 사내의 사정이 끝났다. 그걸 눈치챈 임한나였지만 그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니, 움직이지 않은 게 아니라 움직이지 못했다. 왜냐하면 얼굴 가득히 덮인 정액 때문에 어쩔 줄 몰랐기 때문이다. 

여기서 조금만 움직이면 얼굴에 잔뜩 묻은 정액이 흘러내릴 것이다. 옷을 완전히 벗은 상태라면 상관없지만 자신은 아직 반은 걸치고 있는 상태였다. 

“아으…….”

결국 임한나는 두 손으로 얼굴에 묻은 정액을 닦아낼 수밖에 없었다. 두 손을 삽처럼 오므려 얼굴을 긁어낸다. 많이도 쌌는지 두 손 가득히 정액이 모아졌다. 그녀가 어이없어 하면서도 괜스레 기쁜 기분에 손놀림이 가벼워졌다. 

“참, 이렇게 많이 참고 있었으면 미리미리 얘길 하지.”

“…….”

“나뿐만이 아니었어도 연주 언니나 하연 언니도 반갑다며 달려왔을 텐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임한나는 내심 기쁜 마음이었다. 그렇게 참아오던 사내의 정을 받아낸 것이 자신이라는 사실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물론 그가 김수현이 아니라 하승우라는 사실을 알면 경을 칠 일일 테지만.

“…….”

한편 임한나의 얼굴을 잔뜩 더럽힌 하승우는 멍하니 임한나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뿌린 정액을 거둬내고 있는 여인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본다. 

얼굴에 자신이 싸지른 정액이 묻어 있지만 그의 눈에 그녀가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하승우의 심장이 뛰었다. 

‘…안돼. 더 이상은……. 여기까지라면 무를 수 있어.’

머리로는 멈춰야 된다고 생각하면서 가슴은 이미 몸을 이끌고 있다. 그의 손이 임한나에게로 뻗어졌다. 얼굴을 아직 미처 닦아내지 못한 임한나는 불현듯 자신의 손을 잡는 감각에 고개를 갸웃했다. 

“응? 수현아 잠깐만……. 꺅?”

아직 처리 중이라는 말을 하려는데 강제적으로 당기는 손에 임한나의 몸이 딸려왔다. 동시에 뒤집히는 느낌과 함께 등에 푹신푹신한 감촉이 느껴졌다. 어느새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김수현. 사내가 자신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에 내심 기쁘면서도 아직 정액을 처리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자, 잠깐만. 아직 다 처리하지 못했… 읍!?”

사내는 여인이 정액을 받아주길 원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원하지 않는다. 그 사실을 익히 들어 알고있었기에 김수현이 꺼려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덮쳐진 입술에 모든 생각이 뒤집혔다. 아직 입술에 묻어있는 정액을 모조리 빨아 마시겠다는 듯 강하게 흡입하는 사내의 입술에 임한나는 정신까지 쏙 빨아 먹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쭈웁, 쭙……. 흐응……. 아, 안돼……. 아직 더럽단 말이야…….”

“…내 정액이 더러워?”

“아, 아니……. 그건 아닌데…….”

진하게 바라봐 오는 시선. 남자의 진지한 눈빛에 임한나는 저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괜스레 부끄러워지는 기분. 하지만 볼에 닿는 사내의 입술에 절로 허리가 들썩인다. 볼부터 입술까지. 천천히 빨아들이며 고개를 돌리라 종용하는 사내에게 임한나는 다시 입술을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쭙, 쭙……. 흥, 흐응……. 하으!”

사내의 입술에 빨리면서 눌러오는 단단한 신체를 느낀다. 매일 느끼고 싶지만 경쟁자가 많아 순번을 기다려야 했던 몸. 그 몸이 진득하게 눌러오는 체중에 임한나는 가슴이 터질 듯한 행복을 느꼈다. 

단순히 기쁨 뿐만이 아니다. 실제로 그녀의 가슴이 터지도록 사내가 강하게 짓누르고 있었다. 

천천히 올라가는 남자의 손. 그 사내의 손이 여인의 브래지어 끈에 닿는다. 무엇을 하려는지 알았기에 살짝 떤 임한나는 그가 편히 행할 수 있도록 가슴을 들어주었다. 그러자 사내의 손이 여인의 등으로 침입해 능숙하게 브래지어의 후크를 풀어냈다. 

“하응, 진짜. 남자는 풀기 어려운 건데 너무 쉽게 해.”

“…그래서. 싫어?”

“아니, 싫은 건 아닌데…….”

강직하게 물어오는 사내의 모습에 임한나가 다시 주눅든다. 그녀가 움츠러들며 시선을 피하자 사내가 다시 그녀의 입술을 탐했다. 입술 사이로 혀까지 침입하자 여인의 저항이 완전히 사라졌다. 완전히 맞닿은 사내의 몸이 비비듯 아래로 내려가자 끈이 풀린 속옷이 말리며 아래로 내려갔다. 

“후아, 후아……. 으으…….”

“…….”

잠시 입술을 떼고 상체를 든 사내가 아래 펼쳐진 장관을 바라본다. 애처롭게 속옷에 감싸여 있던 젖가슴이 드디어 해방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양 옆으로 흘러내릴 것처럼 퍼지던 젖가슴이 어느 순간 팽팽하게 당겨지며 형태를 유지한다. 

“너, 너무 그렇게 보지마아…….

이쯤까지 왔는데도 부끄러운지 다시 한번 임한나가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가슴을 가리고 싶어하는지 두 손을 가슴에 올렸지만 그 첨단은 가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행동 덕에 가슴이 모이며 압도적인 볼륨만 자랑하는 형태. 

‘…미치겠군 정말로. 미쳤구나, 하승우.’

속으론 여전히 자책하면서도 몸은 본능대로 움직인다. 임한나의 무방비한 젖가슴에 시선을 고정한 그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핥고 빨았던 여인의 입술이 아니라 동산 같은 무덤 위에 솟은 작은 유실로. 

“아읏.”

입술을 모아 살포시 베어 문다. 꽃 향 비슷한 향기와 내음이 입 속에 가득 퍼진다. 마치 진짜 과일을 머금은 것처럼 향긋한 향기에 머리가 더욱 뜨거워지는 기분이다. 

‘마치 이 젤이 과즙이 된 것 같군. …이래서 그렇게 젤이 유행했던 건가?’

언젠가 부랑자 중 몇몇이 최음제가 깃든 젤을 긁어 모으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처음엔 왜 저러나 싶었는데 지금에야 알 것 같았다. 그냥 사용해도 이 정도인데 최음제까지 깃들었다면 분명 정신도 차리지 못했으리라. 

여인이 발라주었던 젤이 몸을 비비며 여인에게도 묻혀졌다. 젖가슴에 묻은 젤을 모조리 빨아 마시겠다는 듯 하승우는 정성을 다해 혀를 놀리며 젖가슴을 핥았다. 젖가슴에 발라진 젤을 혀로 긁어 모아 꼭대기에서 유실과 함께 빨아들인다. 간지러운지 몸을 미세하게 떨던 임한나는 사내가 쭉, 흡입할 때 허리를 살짝 튕겨 올렸다. 그녀 역시 작은 자극에도 놀랄 정도로 크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흐응, 흐앗. 하읏……!”

“쭙, 쭈웁. 츄릅, 쭙.”

그렇게 임한나의 젖가슴에 젤이 완전히 사라졌다. 정말로 하승우는 그녀의 가슴에 묻은 젤을 모조리 핥아 먹은 것이다. 

“하으, 하으……. 수현아 이제는 제대로…….”

이만하면 충분하다. 아니, 과했다. 이미 다리 안쪽이 잔뜩 습해진 걸 안 임한나는 본격적인 행위에 돌입하길 원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승우가 먼저 움직였다. 삽입 행위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의 상체가 내려가며 임한나의 배쪽으로 얼굴이 내려간다. 

“할짝, 할짝.”

“하응?!”

갑작스레 간지럽히는 배꼽. 순간적으로 그곳에 혀가 들어오자 임한나의 허리가 펄쩍 뛰었다. 자신도 예상 못한 반응에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하는데 다시금 배꼽을 후비는 감촉이 느껴진다. 

“하윽? 수, 수현이 너어……!”

“할짝, 할짝, 츄르릅.”

“히익?!”

다급히 내려보는데 혀를 길게 빼 들고 자신의 파여있는 홈에 쏘옥 집어넣는 모습이 보였다. 동시에 척추를 관통하는 짜릿한 쾌감에 임한나가 다시 허리를 튕겼다. 

“아윽, 수, 수현아 잠깐만! 거, 거긴 살살… 히윽?!”

그녀의 만류에도 듣는건지 마는건지 혀는 날카롭게 찔러왔다. 안쪽 틈새 하나하나 놓치지 않겠다는 듯 집요하게 후벼오는 혀에 임한나가 자지러졌다. 

“아, 안돼. 제, 제발 그마아아안!”

“츕, 츕. 츄읍.”

“아흐으윽?! 힉?! 흐아앙!”

이제는 숫제 움직이지 말라는 것처럼. 양 손으로 임한나의 허리를 단단히 잡은 뒤 배꼽을 후빈다. 임한나가 그의 손을 잡고 풀어내려 발버둥쳤지만 사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임한나의 몸이 바르르 떨렸다. 경련하는 것처럼 이도 저도 못하며 덜덜 떨던 그녀가 감전된 것마냥 파르르 떨었다. 

“흐이이익?! 아아아악!

“쯉, 쯉, 쮸우우웁.”

“흐으으으……. 흐으윽.”

격하게 절정에 이른 여인이 추욱 늘어진다. 사내의 손 안에서 발버둥 치던 나비가 추락하는 것처럼 임한나가 쾌락에 스러졌다. 배꼽에 깃든 젤을 모조리 흡입했는지 그제야 하승우가 얼굴을 들었다. 

“흐으, 흐으, 흐으…….”

“…….”

“날 죽일 셈이야아……?”

그토록 격한 오르가즘이었는지 임한나의 혀가 풀렸다. 조금은 원망스러운 눈으로 바라 봐왔지만 하승우는 가만히 그녀의 시선을 바라볼 뿐이었다. 마찬가지로 멍하게 풀려 있던 임한나의 눈이 급격하게 초점이 돌아온다. 

“수, 수현아? 너……?!”

순간적으로 경악한 임한나가 뭐라 하기도 전이었다. 그녀의 허리를 잡은 사내의 손에 다시금 힘이 들어간다. 

“수, 수현아. 자, 잠깐만! 거긴 정말로 안돼!”

임한나가 재빨리 움직이려 했지만 이미 속박은 끝난 상태였다. 가느다란 허리는 사내의 두 손만으로 가득 잡힌 상태다. 평소에 자랑하던 얇은 허리였으나 애석하게도 지금은 사내에게 딱 맞는 손잡이에 불과하다. 

그리고 천천히. 

“아, 안돼! 안된다니까! 바보야!”

사내의 상체가 다시 내려갔다. 방금 전은 가슴에서 배로 내려왔지만 지금은 배에서 아래로 내려간다. 그곳이 어디를 향하는 지는 바보라도 알 것이다. 

“너 진짜! 저, 정신차려!”

“…….”

“내가 잘못했으니까! 그러니까 제발 멈춰!”

이제는 숫제 머리까지 두드리고 있지만 하승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직 벗겨지지 않은 치마. 그러나 발버둥치며 뒤집혀진 상태였기에 본래의 기능은 상실했다. 브래지어와 마찬가지로 검은 레이스가 달린 야한 디자인의 팬티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아니, 정확히는 진득한 액체로 얼룩진 속옷의 정 가운데 부분만이. 

“…….”

하승우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을 다시 마주한 임한나가 움찔 떨었다. 자신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보다 더한 초점을 잃은 눈. 그 안으로 더 이상 이성이 보이지 않는다. 

“수, 수현아?”

“…….”

“내, 내가 잘못했어……. 젤에 장난친 거……. 그거 다 내 잘못이니까 이제 그만 하자, 응?”

무심하게 바라보는 남자의 눈. 그리고 방금 배꼽을 공격당하며 느꼈던 아찔한 쾌감. 그리고 그 대상이 소중한 곳에 다다를 것이라 생각하자 임한나는 급격히 두려워졌다. 해서 자진으로 실토했다. 하승우가 아까부터 이상함을 느꼈던 원인. 마사지 젤에 미약을 첨가시킨 사실을 모두 고백했다. 

당연히 임한나 입장에선 김수현을 해하고자 하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저 피곤함을 느껴하는 것 같아 마사지를 해줄 겸 야릇한 분위기까지 형성해 온몸으로 피로를 풀어줄 생각이었는데 상황이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가버렸다. 문득 이걸 나눠주며 했던 고연주의 당부가 떠올랐다. 

‘아프로지니아. 처음 들어보지? 당연해. 그만큼 구하기 힘든 거니까. 근데 그 만큼 효과는 위험하니까 사용할 때는 극히 소량만 써야 돼.’

‘무조건적으로 기억해. 혹여라도 시험해볼 생각하지 마. 괜히 과하게 넣었다가 너 그날 아래에 빵꾸난다. 절대 극 소량만 사용해야 돼. 꼭!’

그 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해서 임한나 역시 그녀가 말한 대로 극히 소량만 첨가하려 했다. 하지만 김수현이 누구인가? 정신계 쪽이나 이런 약물 쪽으로는 엄청난 면역력을 보이는 초인 아니던가. 해서 조금 더 추가했다. 그러다가 이 정도로는 좀 부족한 것 같아 조금 더 넣었다. 그런데 왠지 불안해서 좀 더 첨가했다. 

그렇게 몇번의 반복을 끝내고서야 임한나는 행동에 임했다. 그래도 조금 부족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김수현은 생각 외로 약 효과에 쉽게 반응했다. 해서 첫 사정까지 무사히 끝마쳤다. 

그렇게 무사히 그녀의 예상대로 흘러가나 했으나 웬걸. 김수현의 몸에 젤을 발라주면서 느꼈던 불안감이 몸에 젤이 발라지면서 점점 커져갔다. 김수현처럼 평소보다 배는 빠르게 흥분한 몸이 남자의 작은 행위에도 크게 반응했다. 

그리고 온 게 이지경. 고작 조금 애무 받은 것뿐이지만 아래에 구멍이 날지도 모른다는 고연주의 말이 생생하게 와 닿는다. 문득 김수현한테 그렇게 당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 이상의 쾌감을 느끼면 부숴져 버릴 것 같다는 생각에 두려움까지 생겨날 지경이었다. 

그렇게 임한나는 두려운 눈으로 김수현, 아니 하승우를 바라보았다. 하승우의 눈에는 이지가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행동은 멈췄다. 이대로 멈출 수 있다는 생각에 천천히 그의 손에서 빠져나오려는 찰나였다. 

꽈악.

“하읏! 수, 수현아?”

남자의 손아귀가 강해졌다. 다시금 허리를 꽉 잡아오는 손길마저 쾌감으로 느껴진다. 임한나가 당황해서 부르는데 사내의 상체가 빠르게 아래로 내려갔다. 

“자, 잠깐! 아, 안돼 수현아. 지금은 정말로 안된다니까!”

“하아, 하아, 하아…….”

허리를 잡은 사내의 손이 쭉 내려오며 여인의 허벅지를 감싸 안는다. 다리와 골반을 함께 잡힌 임한나는 더욱 꼼짝하지 못했다. 어느새 가랑이 사이로 코앞까지 다가온 사내의 숨결이 생생히 느껴진다. 

“아, 안돼…….”

애절한 음성. 하지만 그런 여인의 목소리마저 천천히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음부에 닿는 사내의 거친 숨결만으로 여인은 허리가 저릴 정도로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사내가 입을 벌렸다. 혀를 크게 내민 채로. 질척하게 젖어있는 여인의 속옷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003

“츄릅, 츄르릅!”

“힉?!”

여인의 허리가 활처럼 휘었다. 작살 맞은 생선 마냥 파닥거렸으나 사내의 손에 꽉 잡힌 하체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하승우의 혀가 길게 나와 여인의 음부를 핥는다. 이미 애액으로 흠뻑 젖은 속옷이 사내에 의해 깊게 눌렸다. 그 행동에 하나하나 반응하 듯, 여체의 다르가 부르르 떨렸다. 

“아으으… 제, 제발 멈춰어어…….”

“츄릅, 츄릅, 츕, 쯉.”

“응, 앗.”

여인의 애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사내는 조금도 멈추지 않았다. 아니, 하승우의 귀엔 더 이상 임한나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아프로디지아. 그 어떤 생물체도 욕망의 화신체로 만든다는 악마의 미약의 효과가 바로 나타나는 것이었다. 

젤이라는 이물질이 첨가되었으면서도 단순히 닿는 것만으로 몸이 불같이 뜨거워진다. 아주 적은 소량의 섭취만으로도 사람 하나 보내는 건 일도 아닌 미약을, 그것도 과다 섞은 젤을 흡입했으니 이성을 잃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승우가 다짜고짜 삽입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임한나로서는 다행이라 볼 수도 있는 상황. 

그러나 혓바닥만으로도 임한나는 바닥까지 떨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속옷 위로 핥는 유연하고도 힘찬 설육이 짓누를 때마다 그녀의 눈 앞으로 번개가 치고 있었다. 

“힉?! 히끅?!”

파르르 임한나의 다리가 다시 떨렸다. 쾌락에 저린 게 아니라 일순간 몰려온 파도에 근육이 제멋대로 움직인다. 다시 절정에 이른 것이다. 

감전된 것마냥 움찔거리던 다리가 돌연 하승우의 머리를 감쌌다. 반쯤 뒤집어진 임한나의 눈동자는 거의 이성을 잃은 듯 했고 본능적으로 사내의 머리를 끌어당기는 중이었다. 

“츄릅, 츄릅, 츄르르릅.”

그런 여인의 움직임을 따라 사내 역시 본능적으로 행했다. 이제는 입술까지 사용해 도톰한 살을 베어 문다. 속옷의 레이스 때문에 까끌까끌한 감촉이 있었으나 애액으로 인해 질척한 상태. 속옷을 뜯어 먹을 듯이 맹렬히 움직이는 입에 임한나는 다시금 허리를 튕겨 올렸다. 

“으… 으으…….”

“후욱, 후욱, 후욱.”

결국 참지 못했는지 사내가 속옷을 입으로 물어 젖혔다. 고기를 뜯는 맹수 마냥 이리저리 고개를 흔들며 속옷을 찢어버린 하승우가 다시 한번 임한나의 가랑이에 얼굴을 묻는다. 

질척해 진 상태로 이미 잔뜩 불어 있는 여인의 속살에 사내가 꿀꺽 침을 삼킨다. 살며시 열린 구멍에서 주르륵 흘러내리는 액을 보니 한없이 갈증이 생긴다. 다시 혀를 길게 내민 사내가 잔뜩 흘러내린 애액을 회음부에서부터 진하게 핥아 올렸다. 

“쬽, 쬽, 쬽… 츄르르릅, 츄릅!”

“아, 으, 으으으읏?!”

다시금 조여오는 여인의 다리를 마주 꼭 잡으며 하승우가 혀를 놀렸다. 열심히 애액을 받아먹던 그가 혀를 세워 여인의 안쪽으로 찔러 넣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흐물흐물하게 열려 있던 속살이 외세의 침입에 놀라 급격하게 조여온다. 그 살들을 억지로 파헤치며 사내의 날카로운 혀가 안쪽을 벌리며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흥, 핫, 하악!”

“쯉, 쯉, 쯉.”

빨대처럼 꽂아 넣은 혀를 통해 애액을 잔뜩 흡입하는 사내. 내부를 통째로 빨리는 듯한 느낌에 여인이 몸서리쳤다. 사내의 머리를 으깰 것처럼 조이던 허벅지가 일순간 굳으며 다리가 길게 뻗어졌다. 

“아으으으……!”

길다란 각선미를 뽐내며 여체가 쫙 펴졌다. 뻣뻣이 벌어진 발가락이 그녀가 얼마나 느끼고 있는지를 대변해 준다. 그런 여인의 허벅지를 손자국이 남도록 주무르던 사내가 돌연 고개를 들며 이를 악물었다. 

“아윽!”

음부 상단을 덮고 있는 작은 초원. 잘 정돈되어 있는 음모를 이로 문 하승우가 거칠게 고개를 틀었다. 사내의 이에 의해 음모가 움푹 뜯겨져 나왔다. 갑작스런 통증에 여체의 허리가 튕겨졌으나 그뿐. 

“으으으…….”

이미 아프로네지아에 중독된 여인에게 그 정도의 고통은 쾌락에 불과했다. 강한 자극에 눈빛이 돌아오던 임한나의 시선이 다시금 탁해지기 시작했다. 

“후욱, 후욱, 후욱!”

마치 생고기를 뜯는 것처럼 물어 뜯은 음모를 잘근잘근 씹던 하승우가 잔뜩 발기한 양물을 잡았다. 가뜩이나 잔뜩 발기했던 양물이 미약의 효과를 받아 눈물을 흘리고 있는 중이었다. 귀두 끝에서 줄줄 흐르는 허연 액체. 그것을 윤활류 삼아 이리저리 비비던 하승우는 곧바로 임한나의 음부에 갖다 대고 허리를 앞으로 밀었다. 

쑤걱.

“으으읏!”

“허억?”

사내의 손에 잡힌 다리가 움찔 떨린다. 힘없이 늘어져 있던 다리에 점차 힘이 들어가며 다시금 사내를 끌어 안기 시작했다. 

단숨에 뿌리까지 박힌 남근. 힘없이 그것을 받아들였던 음부가 꿈틀대며 서서히 남근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흐억, 흐억.”

철썩, 철썩…….

점차 얽히기 시작한 속살을 느낀 하승우가 허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달라붙은 살들을 떼 놓고자 격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으나 살들은 더욱 질척해지며 남근을 붙잡아오기 시작했다. 

척, 척, 척, 척.

“하응, 하읏. 하악, 흐윽!”

“헉, 헉, 헉.”

뜨겁게 퍼지는 숨결. 사내는 뜨겁게 얽혀오는 여인의 내부를, 여인은 사내의 송곳 같은 물건을 의식하며 서로를 바라본다. 더 이상 이지가 존재하지 않는 두 시선이 만나며 천천히 가까워진다.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두 남녀는 서로의 입술을 탐했다. 

“츄릅, 츄릅, 쭙… 하윽.”

“하아, 하아… 하아…….”

가벼운 입맞춤이 아닌 욕망을 나누는 키스. 입술로 서로의 베어 물며 빠는 행위가 무척이나 농염하다. 층층으로 겹치며 타액을 나누던 두 남녀의 혀 역시 서로의 입 속으로 들어가 침을 훔치기 시작했다. 

철퍽, 철퍽, 철퍽.

그 와중에도 하승우의 허리는 계속해서 움직이는 중이었다. 그의 상체가 숙여지며 자연스럽게 임한나의 가슴을 짓누른다. 그것마저 큰 흥분으로 다가온 두 남녀는 서로의 몸을 강하게 껴안으며 온몸으로 비볐다. 단순한 접촉도 지금 그들에게 있어 큰 성적행위로 다가왔다. 

척, 척, 척, 척, 척.

“하윽, 흐윽.”

그런 그들이 점차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맞물려있던 입술에서 거친 숨이 흘러나온다. 사내의 허리가 점차 빨라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조금의 여유도 없이 여인의 사타구니를 쳐올리기 시작했다. 그런 사내의 행위에 호응해 임한나 역시 긴 다리로 사내의 허리를 감싸 박자에 맞춰 조이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끝을 향해 달리던 둘이 일순간 뻣뻣하게 굳었다. 사내는 여인의 가장 깊숙한 곳을 향해 허리를 내질렀고 여인은 팔다리로 힘껏 사내를 끌어 안았다. 마주 닿은 가슴 사이로 임한나의 가슴이 짓눌리며 터질 듯 부풀어 오른다. 

“흥, 흐응, 흐응…….”

“후욱, 후욱…….”

잘게 전율하는 몸. 여인의 가장 안쪽에 힘껏 정을 토해낸 사내가 길게 이어지는 여운에 몸을 떨었다. 그 정액을 모두 받아먹겠다는 듯, 안쪽 살이 꾸물꾸물 조여오며 사내의 사정을 돕는다. 

그렇게 약 20초가 흐르고 나서야 사내가 숨을 내쉬며 쓰러졌다. 길고 긴 사정이 끝나고 탈력감에 몹시 지친 얼굴이었다. 여인 역시 사내를 끌어 안고 있던 팔다리가 추욱 늘어졌다. 남자와 여자를 욕망의 화신으로 만들었던 아프로디지아. 엄청난 쾌락의 파도를 일으켰던 그 미약이 훌륭히 효과를 끝마치고 체내에서 타올라 사라졌다.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사정의 여운을 느끼는 남녀. 둘 중에 먼저 움직인 건 남자 쪽이었다. 

“…어?”

점차 돌아오는 이성 속에서 하승우는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이제서야 지금까지의 일들이 머리 속으로 속속히 새겨지기 시작한다. 

‘미친…….’

하승우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감히 방안이 떠오르질 않는다. 이토록 과격한 행위. 이건 덮는다고 덮어지는 일이 아니었다. 

‘이 여자가 미쳤나. 왜 하필 오늘…….’

문득 임한나가 아까 내질렀던 고백을 떠올린 하승우는 이를 악물었다. 젤에 장난을 쳤다는 말. 그것이 미약을 의미한다는 것을 바로 알아챘다. 괜스레 원망스러워져 쓰러진 임한나를 내려다보았다. 

반쯤 치켜 떠진 두 눈은 실성한 듯한 모습이었다. 두 팔 다리를 벌린 채 무방비 상태로 쓰러져 있는 여인의 모습은 아찔하다 못해 처참한 모습에 가까웠다. 그가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빼자 하체에 아찔한 쾌감이 스쳐 지나간다. 주르륵, 남근이 빠지며 여인의 음부가 힘없이 벌어졌다. 

하승우는 골치가 아파 이마를 매만졌다. 잔뜩 부어 오른 입술, 벌어진 음부에서 흘러내리는 정액……. 임한나가 살짝살짝 움직일 때마다 울컥 쏟아져 나오는 양에 어처구니가 없어지는 기분이었다. 

‘…미약은 미약인 건가. 어처구니 없게도 싸질렀군. 이렇게 피곤한 것도 이해가 가.’

거의 온몸의 생기가 빨리는 듯한 사정감이었다. 이런 사정을 두어 번 정도 더 한다면 그대로 혼절해 버릴 것이 분명했다. 

그런 그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임한나가 가져온 마사지 젤. 욕지거리가 나올 뻔 했으나 한편으론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다른 건 몰라도 그 순간 느꼈던 쾌감은 그가 지금껏 느껴본 그 어떤 순간보다 더 강렬했으니. 

“내가 그렇게 오래 굶었었나? 이딴 게 끌리다니.”

미약이라면 하승우도 적지 않게 써보았다. 본래 부랑자 출신이 아니던가. 사용자나 거주민을 상대로 별의 별 짓을 다 해본 그였다. 하지만 이 정도의 강한 미약은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었다. 

“흠, 흠흠. 좀 챙길까?”

그렇게 순하고 청조하던 임한나를 무너뜨린 미약이다. 그녀가 밤에 어떤 모습이었을 지는 모르지만 보통이 아닌 미약일 것이 분명해 하승우는 조용히 젤을 챙겼다. 그러다가 살짝 손에 묻었는데 그것만으로도 후끈 달아오르는 감촉이라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자, 그럼 어쩐다…….”

일단 미약을 챙기는 건 챙기는 거고. 문제는 다음이었다.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해 넘길 것인가. 

임한나야 사랑하는 김수현과 특수한 플레이를 한 것에 불과하지만 이 사실이 김수현의 귀에 들어가선 안된다. 그렇다면 임한나의 입을 막아야 한다는 소린데.

‘정체를 밝히고 협박할까? 너무 위험한가?’

임한나 같은 부류의 여자들은 사랑하는 이에게 원망 받는 걸 매우 두려워한다. 특히나 정인이 아닌 다른 이에게 범해졌다는 건 여자들한테 치명적인 스캔들이었다. 이해 받는다 하더라도 절대로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될 것이 분명했기에. 

그가 정체를 밝혀 이 사실로 협박한다면 임한나는 결코 입을 열지 않겠지. 대신 태연하게 연기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저 아슬아슬하게 이 사태를 연장하는 것뿐. 

‘김수현이 돌아오려면 아직 3주 정도 남았다. 시간은 아직 많아…….’

시간은 많으니 앞으로 긴 시간을 들여 임한나를 다스린다. 이런 과격한 플레이를 하게 된 원인을 임한나에게 몰아 그녀가 책임감을 느끼게 하고 앞으로의 성관계를 통해 정상적인 관계로 되돌린다. 

그렇게만 한다면 김수현이 돌아왔을 때 급격한 분위기 변화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물론 임한나가 다시 지금의 일을 꺼낸다면 헛수고가 되는 거지만 그것까지 모조리 재교육한다. 

다른 건 몰라도 사람을 조교 하는데 자신이 있는 하승우였다. 그것만이 그와 하승윤이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일단 임한나가 제정신을 차릴 때까지는 편하게 간다. 체력이 복구되는 대로 곧바로 조교에 들어간다.’

그렇게 판단을 내린 하승우는 임한나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리고 널려있는 옷가지를 주워 입은 뒤 천천히 침실을 빠져나왔다. 

그가 목을 이리저리 꺾었다. 갑자기 일어난 상황에 두통이 일었지만 그보다 육체의 탈력감이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다. 문득 품 안에 넣어둔 젤이 떠올랐다. 

지금은 상황이 좋지 않지만 언젠가 제대로 한번 써 봐야지. 그렇게 생각을 하며 집무실을 지나 복도로 나오려고 하던 순간이었다. 

“……?”

그대로 문고리를 잡고 문을 열려던 하승우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의 시선이 책상으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에 바짝 허리를 편 채 서있는 여인과 눈을 마주쳤다. 

“검…….”

저도 모르게 평소처럼 말하려다가 얼른 입을 다물었다. 혼란스러운 머리를 최대한 억누르고 그가 떨림을 가라앉히며 입을 열었다. 

“다은이가 여기 웬일이야?”

“아, 그, 그러니까, 하하…….”

평소라면 차가운 얼굴로 마주했을 얼굴. 오뚝 솟은 콧날과 굳게 닫혀있던 입술이 마치 다른 사람처럼 어색한 미소를 그린다. 

“그, 그 뭣 때문에 와, 왔더라? 부, 분명 용건이 있어서 온 건 맞는데…….”

“…혹시 들었니?”

“…….”

어색한 침묵.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아니, 애초에 들리지 않았을 리가 없다. 김수현의 집무실은 외부와 철저히 단절되어 있지만 내부의 침실과는 방음이 되어있지 않다. 게다가 급격히 전개된 상황인지라 침실 문도 닫지 못했다. 관계 도중에 들어왔다면 모를 수가 없는 일이다. 

하승우의 머리가 다시 급격히 돌아갔다. 어색한 미소로 뻘쭘하게 서있는 미녀를 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막아야 할 입이 늘었다. 이를 어찌할까…….’

원래의 방식이라면 강제로 눕히고 범해 개조한다. 이지가 박살 나도록 범하다 보면 그가 원하는 상태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임한나 때와 마찬가지로 그것은 최악의 수였다. 

‘입은 두배로 늘었지만 처리해야 하는 일은 두배 정도가 아니야. 수십 배로 늘어났어.’

어찌해야 할까. 아무리 고민해봐도 마땅한 대처가 떠오르지 않는다. 하승우의 낯이 어둑해졌다. 

그런데 해답은 뜻밖에서 나왔다. 

“하하, 제, 제가 일부러 들으려던 건 아니었고요……. 그 어쩌다가 듣게 되었는데… 저도 모르게 가만히 듣고만 있었네요.”

“……?”

“하, 한나 언니가 굉장히 기분이 좋았나 봐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수줍은 소녀의 모습으로 몸을 배배 꼬는 남다은을 보며 하승우는 입을 벌릴 뻔 했다. 김수현에겐 순한 양이 되는 건 알고 있었으나 실제로 마주하니 그 갭이 어마어마하다. 

그런 와중에 하승우의 신경을 끄는 건 바로 남다은의 표정이었다. 새하얀 눈처럼 냉철을 유지하던 여인은 온데간데 없었다. 한껏 달아오른 얼굴로 우물쭈물 하는 모습에 멍하니 시선을 빼앗긴다. 

문득, 예전에 들었던 소문이 떠올랐다. 

“하, 한나 언니는 웬만하면 저렇게 소리 내지 않을 줄 알았는데… 완전 예상 외라…….”

“…….”

“따, 딱히 이상하다는 건 아니고……. 그냥 사, 살짝 부, 부럽다는 생각이 좀…….”

자기가 말해놓고 부끄럽다는 듯이 온몸을 감싼다. 아이, 몰라. 하며 몸을 꼬는 남다은을 보며 예전에 보았던 한 사내를 떠올렸다. 

‘괜찮은 여자가 있는데 맛 좀 보시겠수?’

이름이 이강산이라 했던가. 검후가 될 여자를 빼돌리고 검후를 만들어 성적 노리개로 만든 사내. 언제 한번 보았을 때 그가 목줄을 채운 알몸의 여자를 데려왔던 것이 떠올랐다. 

‘그 여자가 검후였던가.’

지금과는 달리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기에 잘 매칭이 되지 않았지만 얼핏 닮은 구석이 있다. 안대로 반쯤 가려진 얼굴 아래로 보이는 콧날이라던가 전체적인 체구나 가슴 크기를 보아선 남다은과 흡사하게 보였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아이 참… 오빠도 정말 너무 해요!”

혹여나 드는 생각에 한 번 더 떠보았다. 그러자 미끼를 덥석 물며 남다은이 총총 걸음으로 다가와 그의 팔에 안겼다. 그의 허리를 힘껏 끌어안고 가슴을 비벼온다. 

“저, 저도 그런 거 좋아한단 말이에요…….”

“…….”

“오, 오빠도 잘 알면서…….”

이윽고 수줍게 고개를 내리는 남다은을 보며 하승우는 결정했다. 애초에 순수한 임한나와는 다르게 남다은은 이미 더러움이 묻어 있는 여자였다. 검후라면 길들일 수 있다. 

“그래? 우리 다은이. 다은이도 저렇게 막 울부짖고 싶어?”

“…으. 모, 몰라요.”

“왜? 솔직히 말해봐. 나는 이런 쪽으론 무뎌서 확실하게 말해주지 않으면 몰라.”

진득한 미소를 짓고. 하승우가 얼굴을 가까이 다가가자 남다은이 얼굴을 붉히며 그의 가슴에 고개를 묻었다. 곧게 편 검지 손가락으로 하승우의 가슴을 살며시 간질인다. 

“몰라요오…….”

“그러니? 그러면…….”

마찬가지로 곧게 편 손가락을, 하승우가 남다은의 가슴으로 가져갔다. 상의의 앞섶에 손가락을 걸고 슬며시 내린다. 틈새로 여인의 은밀한 계곡이 그의 시야에 들어온다. 

“우리 다은이 몸에 직접 물어볼까?”

“으으, 오빠아…….”

은밀한 말에 남다은이 더욱 몸을 달라 붙여왔다. 평소에 냉철하기 그지없던 여인의 육체를 고스란히 느끼며 하승우가 품 안에서 젤을 꺼냈다. 그걸 본 남다은의 얼굴이 더욱 흥분으로 물든다. 

하승우의 입가가 더욱더 진하게 올라갔다.

#004

“읏, 아읏, 흑!”

불이 꺼진 어둑한 방. 그 방에서 여인의 흐느끼는 소리가 울렸다. 

근원지는 머지 않은 곳에 있었다. 커다란 방 안 한쪽에 위치한 책상 위에 한 여인이 드러누운 채 쉴새 없이 몸을 떨고 있다. 

위이이잉.

“흥앗, 앗……!”

길다란 고운 머릿결. 생채기 하나 없는 매끄러운 피부. 전체적으로 선한 인상의 미녀가 신음을 흘리며 허덕인다. 커다란 젖가슴을 내놓은 채로 본인 스스로 두 다리를 잡아 벌린 그녀는 다리 사이에서 기계음이 울릴 때마다 바르르 떨었다. 이미 제 기능을 잃은 치맛자락이 꿈틀거리며 은밀한 부위를 완전히 노출한다. 그녀의 다리 사이로 길다란 막대 하나가 삐져나와 세차게 진동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비부를 코앞에서 지켜보는 사내. 그것은 바로 김수현, 아니 그의 탈을 쓴 하승우였다. 

“흐음, 조금씩 빠져나오는데?”

“흐응, 윽, 흑.”

“좋아, 들어간다. 잘했어.”

그의 말 한마디에 임한나는 온 힘을 들여 다시 꾸역꾸역 막대를 삼켜갔다. 손을 쓰지않고 아래쪽 근육만을 사용해 막대를 집어 삼킨다. 그동안 하승우가 계속해서 가르쳤던 아랫입의 사용법이었다. 

그 음란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지켜보는 하승우의 얼굴에 만족이 어렸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육체 자체는 최상품에 이르는데 그녀가 가진 테크닉이라고는 그저 천부적인 살결 밖에 없었으니까. 기교라고 부를만한 기술은 전혀 없었기에 그걸 가르치느라 보통 고생한 게 아니었다. 물론 이런 쪽의 조교는 그로서 즐겁기 그지없었지만. 

여하튼 꿈틀거리며 막대를 삼키는 속살을 지켜보니 절로 침이 넘어간다. 근 2주동안 쉴새 없이 맛본 육체지만 그럼에도 군침이 돌 정도로 임한나의 육체는 맛있었다. 아랫도리에 절로 힘이 들어간다. 부풀어 오른 바지춤을 문지르던 하승우는 천천히 손을 뻗어 그녀의 비부로 가져갔다. 

“흐응!”

사내의 손이 닿자마자 안 그래도 들썩거리던 살이 파르르 요동쳤다. 꿀렁거리며 끈적한 액을 토해내는데 당장이라도 박아 달라는 듯한 모습이다. 침을 꼴깍 삼킨 하승우가 비어있는 음부를 손으로 매만졌다. 질척거리는 액체를 느끼며 그녀가 느끼는 살을 주무르듯 매만진다. 

“흥, 흐응, 흑……!”

매끄럽고 질척이는 점도. 이미 상당히 느끼고 있음을 뜻한다. 임한나는 최고조로 달아올라 있는 상태였다. 닫혀 있던 음부가 활짝 열렸다 다시 닫히기를 반복한다. 그 음란한 모습을 보고있다가 하승우는 시선을 내렸다. 딜도가 박혀있는 곳은 음부가 아니었다. 바로 최근에 조교를 끝낸 항문이었다. 

“흐이이익……!”

이미 꿀로 범벅이 된 손잡이를 주욱 잡아 빼자 여체의 허리가 튕겨져 올랐다. 그럼에도 잡고 있는 두 다리를 결코 놓지 않는다. 본인의 허벅지에 손톱자국이 생길 정도로 꽉 잡은 손을 보며 하승우는 마저 딜도를 뽑아내었다. 

“와, 이 정도면 완전히 개발 끝났는데? 이제 넣어도 되겠어.”

“으, 으으. 너, 넣어줘, 빨리…….”

임한나의 손이 내려가 엉덩이를 잡아 벌린다. 서서히 닫히는 음부와 항문을 스스로 벌리며 당장이라도 박아 주길 애원한다. 그 모습을 보니 아랫도리가 터질 것 같은 기분이라 하승우는 가까스로 페이스를 유지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아니야. 오늘은 이쪽을 먼저 하기로 했으니까.”

“아, 아아…….”

절망으로 물드는 임한나로부터 몸을 돌린 하승우는 곧바로 그녀의 옆에 자리한 여인에게 다가갔다. 

위이이잉, 위잉-.

책상에 누워 있는 임한나와는 반대로 넙죽 엎드려 있는 여체. 두 팔을 뒤로 결박 당한 채 엉덩이만 세워 있는 여성의 뒷구멍에도 길다란 딜도가 박혀있다. 임한나와는 다르게 두 쪽 모두에 커다란 딜도가 깊숙이 박혀 있는 상태였다. 

“우리 다은이는 꽤 잘 참고 있었네? 기특하기도 해라.”

“…흐으윽?!”

마찬가지로 덜덜 떨리는 두 딜도를 쭈욱 잡아 빼내자 멍하니 있던 엉덩이가 파르르 떨렸다. 약간은 잠겨 있는 신음이 물기를 머금은 상태였다. 

“…참은 게 아니라 기절했던 건가?”

“으, 으으…….”

“상을 주려 했는데 벌을 줘야겠네? 자, 일어나.”

살짝 잡아당기자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여인의 하체가 바닥으로 내려왔다. 상체는 여전히 책상 위에 얹어놓은 상태로 하승우는 여인의 음부에 양물을 가져갔다. 

찔꺽. 

“흐으으…….”

서서히 허리를 들이밀자 질척이는 소리가 음란하게 울린다. 여인의 젖은 비부가 아무런 무리없이 사내의 남근을 받아들인다. 아래는 부드럽게 사내를 삼키지만 본심은 그게 아닌 듯 고개가 위로 들려진다.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으, 윽, 읏, 으윽, 읏!”

사내의 허리가 절로 움직인다. 앞뒤로 빼고 박으면서 여체의 안을 샅샅이 맛본다. 부드럽게 달라붙는 임한나와는 다르게 꽉꽉 조여주는 살결. 흠뻑 젖은 상태라 움직이는 데에 문제는 없지만 그렇기에 더욱 쾌감이 오른다. 여인 역시 꽉 잡아 놓으려 해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남근 때문에 애처롭게 퍼덕거렸다. 

“하응, 핫, 학, 하윽, 흑!”

“다은이 기분 좋아 보이네? 기분 좋으라고 해주는 거 아닌데?”

“아으, 아, 앗. 죄, 죄송해요오오…….”

정말로 그럴 생각이 없는듯 고개를 이리저리 젓는 검후지만 그럴수록 아래는 꽉꽉 물어온다. 하승우는 두 손으로 앙증맞은 엉덩이를 잡아 벌렸다. 손에 들어오는 탄탄한 감촉을 느끼며 좌우로 쫙 벌리자 양물을 머금은 음부 위로 계속해서 열렸다 닫혔다 하는 항문이 보인다. 

하승우는 이미 애액으로 젖어있는 균열을 손가락으로 어루만지다 단숨에 찔러 넣었다. 한번에 두개의 손가락이 침입해 오자 남다은도 허리를 들썩이며 엉덩이를 힘껏 조여왔다. 하지만 아래와 마찬가지로 미끌거리는 애액 때문에 손가락은 너무나도 쉽게 안을 헤집었다. 남다은은 위아래로 쑤셔오는 통에 고개를 마구 흔들며 쾌락에 몸부림쳤다. 

“아응, 아흑! 안돼! 두 곳에서 동시에 괴롭히면 안돼에에…….”

철썩, 철썩, 철썩, 철썩.

“앗, 흥, 흥, 흐익?! 흐아아아……!”

안에서 송곳같이 찌르는 남근. 그리고 갈고리처럼 직장을 긁어 내리는 손길에 남다은이 결국 바르르 떨었다. 결박되어 있는 두 손도 어쩌지 못해 애처롭게 손가락이 허공을 긁어내린다. 쉴새 없이 조여오는 질. 그곳을 무차별로 쑤시던 하승우도 사정감이 치고 올라오자 거친 숨을 머금었다. 

그리고 그 움직임이 최고조에 이른 순간. 

“윽!”

“악……!”

하승우가 단숨에 허리를 뒤로 빼내었다. 마찬가지로 손가락 역시 빼내어 남다은의 엉덩이를 활짝 벌리고는 그대로 항문으로 남근을 꽂아 넣었다. 직장 가장 깊숙한 곳에 남자의 씨가 폭발적으로 쏘아졌다. 

뷰류륙, 뷰륵, 부르륵.

“아으으으…….”

이제는 늘어지다시피 내려진 남다은의 허벅지가 파르르 떨렸다. 자세를 유지하기 힘든지 불안하게 기대있다가 스르륵 책상 아래로 무너져내렸다.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거친 숨을 쉬는 남다은. 바닥에 맞닿은 그곳에서 허연 정액이 주르륵 새어나오기 시작한다. 발그레 달아오른 미녀가 늘어져 정액을 흘리고 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야릇하다. 하승우는 품속에 넣어 놓았던 아프로디지아를 소량 흡입하며 다시금 양물을 세워냈다. 

“하응, 읏, 흑.”

남다은과의 거친 성교를 가만히 지켜보기만은 힘들었는지 임한나는 조용히 수음하고 있는 상태였다. 두 다리는 여전히 잡아 벌리고 있는 상태로 손가락을 살짝 가져가 음부를 만지고 있다가 하승우가 바라보자 화들짝 놀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음부를 양쪽 손가락으로 살며시 잡아 벌리며 하승우를 유혹한다. 

“…이, 이제 내 차례지? 빠, 빨리 넣어줘…….”

평소라면 생각지도 못할 모습. 청순함의 극치를 달리는 임한나가 상스러운 모습으로 남자를 유혹한다. 이미 한껏 풀려 벌어진 음부가 끈적한 액을 흘리며 사내의 혼을 쏙 빼놓는다. 하승우는 멍하니 이끌리듯 임한나에게 다가가 그대로 삽입했다. 

“하윽!”

“헉, 헉, 헉.”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사내의 아랫배가 여자의 둔부를 쉴새 없이 때린다. 질척이는 음란한 소리가 집무실 안을 가득 메웠다. 임한나는 절로 출렁여지는 젖가슴의 움직임을 느끼며 힘껏 다리를 잡아 벌렸다. 남자가 쉽게 삽입할 수 있도록 음부 만을 제공하는 여인의 모습에 하승우는 극도록 끓어오르는 흥분을 느꼈다. 

“가, 가슴도 주물러줘.”

애처롭게 바라는 여인의 말에 사내가 호응했다. 두 손으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이는 젖가슴을 강하게 움켜쥐고 주물렀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삐져나오는 어마어마한 살무덤에 하승우가 저도 모르게 입을 가져가 가슴을 베어 물었다. 

“쫍, 쫍, 쪼옵.”

“하응, 핫, 으응!”

가슴을 타고 짜릿하게 흐르는 쾌감에도 임한나는 결코 다리를 잡은 손을 풀지 않았다. 그것이 그동안 하승우에게 배운 철칙 중 하나였으니까. 사내가 마음껏 자신에게 욕정을 풀 수 있도록 제공하는 것이 본인이 해야할 역할이라고 이미 조교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렇게 사내의 움직임이 다시금 빨라졌다. 안쪽 깊숙이 찔러오는 남근에 여인 역시 허리를 뜰썩이며 절정에 다가가고 있는 중이었다. 결국 먼저 절정에 다다른 건 여자 쪽이었다. 

“하악! 하읏, 아으으응!”

“끅!”

치켜 올려지는 허리. 초승달처럼 휜 허리가 최고조에 이르러 부들부들 떨린다. 끈적이는 늪 마냥 엉겨붙어 오던 살들이 갑작스레 탄력이 붙더니 쥐어짜듯 조여온다. 그런 살들을 억지로 헤집으며 남근이 빠르게 안을 쑤셨다 빠져나간다. 

퍽, 퍽, 퍽, 퍽. 촥, 촥, 촥촥촥촥.

“아윽, 읏, 학, 하악……!”

“크윽!”

일초에 수번, 엄청난 속도로 여체를 때리던 사내가 드디어 폭발을 앞둔 순간이었다. 

위이잉-

갑작스레 나타난 진동에 남자의 움직임이 우뚝 멎었다. 엄청난 속도로 안을 두드리던 송곳이 일순간 정지하자 오히려 그것이 더욱 자극으로 다가와 임한나가 다시 한번 크게 울부짖었다. 연속된 절정. 멀티 오르가즘을 맞은 임한나가 드디어 다리를 놓쳐 완전히 드러누운 상태가 되었다. 

“하으으, 흐으, 흐…….”

“…….”

여인의 안에 그대로 파정하려는 순간 방해 받았다. 매우 짜증이 날만 할 텐데도 하승우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잔뜩 긴장한 낯으로 한쪽에 벗어둔 코트에서 하나의 수정구를 꺼내 들었다. 

위잉, 위잉, 위이잉-

붉은 빛을 내며 작게 진동하는 수정구. 김수현이 떠나기 전 주고 갔던 통신구였다. 

“으윽!”

퓨루룻, 뷰륵, 퓨슈슉.

여러가지 복잡한 감정이 몰아치며 잠시 멈췄던 흥분이 다시 터져 나왔다.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잠시 억지로 참은 상태라 터져 나오는 정은 다소 격하게 쏟아져 나왔다. 

눈앞이 하얗게 백열되는 쾌감 속에서도 하승우는 그 여운에 빠지지 못했다. 빠르게 호흡을 고르며 쾌감의 여운을 떨쳐냈다. 

드디어 김수현이 돌아온다. 

*

“보고.”

김수현이 돌아온 건 신호가 온지 사흘이 지난 뒤였다. 그 전까지 매일 밤낮 가리지 않고 임한나와 남다은을 조교했던 그 책상에서 그 본 주인이 앉아 하승우의 답을 기다린다. 

“…특별한 일은 없었다. 여러가지 던전 공략에 대한 승인서는 따로 조사한 후 내 판단에 따라 결정했다. 비교적 위험한 곳은 없었어.”

“그래? 그런 것 같더라.”

의자에 깊이 몸을 묻고 서류를 보고 있는 사내. 김수현이 보던 서류를 접고 책상에 내려놓았다. 

“혈향 감옥, 개미지옥, 거꾸로 흐르는 폭포. 이 정도가 조금 유의해야 될 곳인데 나름 인원 배분을 잘 했어. 허준영이랑 선유운, 그리고 안현, 정하연 조합도 나름 신선하고.”

“…너라면 더 괜찮은 조합을 선택했겠지. 사용자 안현과 정하연도 요즘 부쩍 같이 다니는 모양인데 생각해보니 괜찮은 시너지가 될 것이라 판단했다. 조금 경험이 부족하긴 해도 푸른 마도사가 서포터해주면 훌륭히 해내리라 생각했고.”

“…그렇지. 요즘 둘이 부쩍 같이 지내지.”

미소 지으며 흘리는 말. 하승우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기분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목소리에서 알 수 없는 불길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뭐지? 뭐지 이 상황은?’

지난 3일. 하승우는 상황을 최대한 수습하는 대에 심혈을 기울였다. 애초에 임한나와 남다은을 조교한 이유도 김수현이 왔을 때 다른 여파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 아닌가. 

그동안 임한나, 남다은과 불 같은 관계를 가지면서도 하승우는 관계 후의 일을 깔끔히 정리했다. 평소에 김수현이 보여주는 업무의 칼 같은 선. 그걸 살리며 이후에 임한나와 남다은이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한 것이다. 

덕분에 임한나와 남다은은 이런 사적인 자리가 아니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물론 눈이 마주칠 때마다 묘한 열기를 띄는 건 있었으나 그 정도는 김수현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 판단해 놔두었다. 

물론 그가 따로 호출해 조교를 시작한다면 180도 바뀌었지만. 그것 역시 특별한 신호가 아니면 자제하도록 교육시켰다. 

그렇기에 하승우는 안전장치를 완벽하게 마련했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김수현이라도 이 변화는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라 장담했다. 하지만 이 분위기는 완전히 다 들킨 것만 같은 느낌이지 않은가. 

“흐음, 허준영의 조에는 이유정이 포함되어 있고. 고연주는 따로 개인 임무를 행하고 있고. 정하연은 안현에게 붙여 놓았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아니, 문제는 딱히 없는데 왜 이런 조합을 뒀는지 궁금해서.”

“말했던 대로다. 안현, 정하연의 조합은 시너지가 잘 나올 것 같아서 붙여 놓았고 그 암고양… 사용자 이유정은 사용자 허준영이 철저하게 통제할 수 있을 것 같아 붙여놓았다. 통제만 잘 되면 분명 괜찮은 사용자긴 하니까. 그리고 그림자 여왕은 원래 하던 대로 하게 놔두었고.”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다. 하승우는 진정 그리 판단하여 붙여놓았다. 임한나, 남다은을 제외하면 정말로 철저하게 조합을 맞췄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아아, 네 말도 틀린 건 없지. 근데 생각해보면 조금 미흡한 부분이 많아.”

“…….”

“조사해봤다고 하면 충분히 알았겠지. 개미지옥은 난전에 익숙한 검후를 투입하는 게 더 효율적이고, 거꾸로 흐르는 폭포는 기동성이 더 뛰어난 임한나를 투입하는 게 맞아. 그런데 왜 그 둘은 뺏지?”

“…….”

하승우는 태연하게 김수현을 바라보았다. 차갑게 응시해오는 시선. 마치 무언가를 시험하는 듯한 목소리다. 

‘이미 다 알고 있는 건가?’

미세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 마치 더 재롱부려봐라 라고 말하는 듯하다. 하승우는 속으로 고민했다. 지금 저건 알아서 자수하라는 무언의 압박일까? 아니면 자신이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일까. 

하승우는 후자일 것이라 확신했다. 김수현이 귀신이 아닌 이상 그것을 눈치챌 수는 없다고 절대적으로 확신했다. 하지만 상대는 그 머셔너리 로드였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눈 앞의 사내 만큼은 절대로 어쩌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도 한달 전이었다. 

결국 하승우는 눈을 감았다.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응? 무얼?”

“…모르는 척 하지 마라. 이미 다 알고 있잖아. 네 직권을 남용해서 추잡한 짓을 했다는 것을.”

김수현이 피식 웃었다. 

“아니, 말은 똑바로 해야지. 먼저 선수를 친 건 네가 아니고 임한나였지.”

“……!”

“물론 나중에 가서는 네가 주도적으로 하긴 했지만. 뭐 너도 계획하고 한 짓은 아니잖아?”

마치 남일 얘기하듯 하는 투라 하승우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의 말을 다시 곱씹어보던 그가 이내 눈을 와그작 찌푸렸다. 

“…너.”

“딱히 이번 일로 책임을 물을 생각은 없어. 애초에 그 자리로 세운 건 나였고 먼저 시작한 것도 임한나 쪽이었으니까. 남자로서 그녀들을 거부하기도 힘들었을 거고 네 입장도 충분히 이해해. 아프로디지아까지 구해서 쓸 줄은 나도 몰랐어.”

“…대체 무슨 생각이지?”

하승우는 간만에 몸이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아니, 김수현을 대할 때는 언제나 긴장으로 떨었지만 말까지 하기 힘들 정도로 떨어본 적은 정말로 오랜만이었다. 이건 원초적인 두려움이었다. 

“생각? 뭐, 이런 일에 딱히 생각할 게 있나. 남녀가 욕구가 생겨 몸을 섞는 건 당연한 현상이지.”

“…….”

“이런 세상이잖아? 암묵적인 규율은 있어도 정해진 법은 없지. 홀플레인에 간통 죄 같은 게 있을까. 마음이 향하는 대로 행하면 되는걸.”

“…너 설마?”

하승우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아직까지는 혹시나 하는 수준. 

그러나 김수현은 피식 웃으며 가볍게 흘렸다. 

“나도 딱히 뭐라 할 처지는 아니잖아? 나 역시 다른 여인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걸. 매번 그녀들의 욕구를 일일이 채워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

“그 대안이다.”

입을 쩌억 벌리던 하승우는 이내 주먹을 꼭 쥐었다. 이 모든 것이 김수현이 의도한 대로 였다는 것은 충분히 인지했다. 하지만 그 저의가 공감이 된다는 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직접 말하지 그랬나. 다른 남자들과 관계를 가지라고. 꼭 이런 식으로 해야 했나?”

“내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해? 나 좋다고 다가온 사람들인데. 그건 완전히 그 믿음을 배반하는 거잖아?”

“…이것과 무엇이 다르다고.”

“다르지. 억지로 떠밀려진 것과 본인의 마음이 끌리는 대로 행한 것. 그리고 아는 것과 모르는 건 하늘과 땅 차이지. 당장 한나와 다은이만 해도 한번 큰 상처를 입은 애들이야. 내가 떠밀면 당장 죽고 싶어 하는 심정이었을걸?”

여전히 미소를 짓고 말하는 김수현을 보며 하승우는 입을 다물었다. 그가 조용히 달싹였다.

“…미쳤군.”

“네가 할 소리는 아니잖아? 전직 부랑자 우두머리 씨.”

“…….”

저렇게 말하니 하승우도 할 말이 없었다. 자신이 부랑자였던 시절, 그때 자신이 저질렀던 짓을 생각하면 김수현은 극히 정상인에 가깝다. 

하승우는 침묵을 유지했다. 그러다가 조용히 말했다. 

“…더 할말 있나? 없다면 이만 가서 쉬고 싶은데.”

“어, 가서 쉬어. 그리고 앞으로도 잘 부탁하고.”

몸을 돌리던 하승우가 움찔 멈췄다. 김수현이 무언가를 던지자 그가 가볍게 낚아챘다. 

“…수정구?”

“선물이야. 는 농담이고. 앞으로 임한나와 남다은을 조교할 때 그걸 사용하도록 해.”

“…이건 녹화용 수정구잖아? 아니, 그보다 이 일을 앞으로 계속 하라고?”

“그럼. 내가 괜히 이런 무대를 마련했을까. 그냥 그러려니 생각해. 내 성적취향이라 생각해도 좋고.”

여전히 여유로운 미소를 지은 김수현이 책상 위로 다른 수정구를 꺼내놓았다. 그가 마력을 불어넣자 수정구에서 새어 나온 빛이 허공에 작은 형상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응, 하으읏. 하윽!]

[헉, 헉, 헉.]

익숙한 책상. 그 위에 엎드려 있는 여인을 뒤에서부터 공격하는 한 사내. 평소의 냉철한 얼굴은 온데간데 없고 눈물과 침으로 얼룩진 남다은이 혀를 내밀고 헐떡이고 있다. 그 여인을 뒤에서부터 박고 있는 남자가 누군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김수현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김수현이 아닌 사람. 

“앞으로 신버전 족족 기대할 게. 생각보다 잘해줘서 나도 놀랐어.”

“…미친놈.”

“한번은 봐준다. 앞으로 주둥이 관리 잘 하고.”

이를 악물던 하승우가 결국 평점심을 잃고 말았다. 그가 따지듯 소리쳤다.

“아니 대체……! 왜 하필 나지? 클랜에 잘난 남자들 많지않나? 네가 말한 대로 난 부랑자 출신이다. 왜 내게 이런 일을 종용하는 거야.”

“말은 똑바로 해야지. 종용? 처음에 임한나가 먼저 시작하긴 했어도 결국 즐긴 건 너였잖아?”

“아프로디지아! 그것을 복용하고 참을 수 있는 생물은 이세상에 없어! 그리고 검후의 입을 막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고!”

“말도 안되는 소리. 임한나와 남다은은 나랑 몸을 섞는 사이야. 들켰다 하더라도 그냥 멋쩍게 웃어 넘기면 되는 일이었어. 그냥 네 욕망이 일을 그 쪽으로 끌고 간 것뿐이지.”

“헛소리…….”

“헛소리라고 하지는 말아. 이후에는 아프로디지아를 사용한 건 너였잖아? 왜이래? 아마추어같이.”

바로바로 대꾸하는 통에 결국 말문이 막힌 건 하승우였다. 뭐라 하고 싶어도 목소리가 나오질 않는다. 김수현의 말대로, 사심이 없었다고는 스스로 확신할 수가 없었으니까. 

그런 하승우에게 김수현은 쐐기를 박았다. 

“그리고 혼자만 특별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하지 마.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건 많아.”

그가 책상 위로 여러 개의 수정구를 내려놓았다. 또르르, 굴러가는 수정구만 해도 족히 열 개는 넘어 보인다. 무언가를 더 꺼내려다 그만둔 것을 보면 저것 말고도 더 많이 있는 모양이었다. 

“이 정도는 이해하겠지? 이런 세상이니까. 이런 저런 식으로 비틀어져 있을 수도 있는 거지. 나라고 멀쩡하리란 법은 없잖아? 

“…….”

“한나랑 다은이도 좋아할 거야. 그치?”

하승우의 꽉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가 이를 갈며 으르렁거렸다. 

“…나중에 어떻게 되도 후회하지 마라.”

“이미 한번 죽은 거주민 따위한테 후회할까. 네가 쓸데없는 짓만 하지 않으면 그럴 일 없으니까 안심하고.”

절대로 그럴 일은 없으니 걱정 붙들어 매란 소리였다. 그리고 정체를 밝히거나 하는 수작 따윈 하지 말라고 경고까지 하고 있다. 

그동안 몸을 겹치면서 괜한 정이라도 생긴 걸까? 괜스레 분한 기분을 느끼며 하승우는 완전히 몸을 돌렸다. 김수현의 인사도 무시하고 방을 나선 그는 성큼성큼 어디론가 향했다. 

‘마음껏 해보라고? 앞으로도 계속?’

복도를 거니는 하승우의 얼굴이 점차 변해간다. 남자의 이목구비가 더욱 뚜렷해지며 한층 훤칠하게 잘 생긴 사내의 얼굴로 변했다. 김수현. 방금까지 마주하고 있던 사내의 얼굴이었다. 

‘…그 말. 무조건 후회하게 해주지. 나중에 가서 그만 하라고 해도 그때는 이미 늦었을 것이다.’

그가 성큼성큼 향한 곳. 그가 발걸음을 멈춘 곳은 바로 임한나의 방문 앞이었다. 그가 주머니에 손을 가져갔다. 동그란 수정구를 만지며 마력을 불어넣자 주머니에서 은은한 붉은 빛이 흘러 나왔다가 곧 사그라졌다. 그가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 

“…어머, 깜짝이야. 수, 수현아? 갑자기 무슨 일… 아, 아읏.”

여인의 작은 신음. 그리고 그것이 흐느낌으로 변하는 것과 동시, 방문이 천천히 닫혀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