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들의 교향곡 56부
소라가이드의 가족 여러분들,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소원성취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2001년에도 여러분들의 많은 성원을 부탁드릴게요.
선규는 오후가 되어서야 일어났다. 엄마는 약국에 나가고 없어서 그녀가 차려놓은 밥을 먹고 씻었다. 그런다음 방에 돌아와서 수학여행때 가져갔던 가방이 열려있고 그안에 옷들이 없다는걸 발견하자 어제 집에 도착했던게 기억났다. 그동안 엄마가 전화할때마다 그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아서 돌아오면 화를 낼려고 마음먹고 있었지만 선생님과의 일도 있고해서 도저히 그럴수가 없었다. 배신한 사람은 바로 그였기에 엄마에게 뭐라고 할 염치가 없었다. 엄마도 그가 화를 낼것을 짐작하고 있었는지 약간 긴장하는 눈치였었다. 그러나 그저 잘 있었냐며 한번 안아주고 그녀를 피할려고 눕다보니 그만 오늘 오후까지 잠을 잔 것이었다.
[엄마만 모르면 되는거지만 그래도 양심에 찔려 얼굴 대하기가 힘드네]
그러면서 한숨을 쉬는데 이번에는 불현듯 선생님이 떠올랐다. 이제는 그녀와의 관계가 어떻게 되어가는지를 몰라 혼란스러웠다. 그냥 스승과 제자사이로 생각할려고 했지만 이제는 그러기도 쉽지가 않았다. 자꾸만 엄마같은 기분이 들어 그의 가슴속에 애틋한 감정이 계속 들어오고 있었다. 어제 새벽에 토함산 정상에서 절벽아래를 보고있을때 선생님이 기겁을 하며 얼른 내려오라고 야단을 치자 선규는 겁을 내기는 커녕 오히려 행복감을 느꼈었다. 엄마처럼 누군가가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하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선생님하고는 그렇게 되면 안되는데. 어떡하면 좋지?]
생각을 해보니 이번에는 그녀가 저번처럼 다시는 그러지 말자는 말을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선생님이 지금 감정이 혼란스러워 말을 안했을뿐 원래 누구보다도 이성이 뚜렷한 사람이였기에 또다시 이런일이 되풀이 될것 같지는 않았다.
[아이들도 있는데 선생님인생을 어서 찾으셔야지. 아마 그런일은 더이상 일어나지 않을거야]
그렇게 단정한 선규는 침대위에 앉아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몇시간이 흐르고 명숙이 약국문을 닫고 들어와보니 점심때 다시 차려놓았던 밥상이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얘가 일어났나?]
그녀의 방을 가보니 아무도 없어서 아들의 방으로 가보았다. 문을 열어보니 선규는 책상앞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었다.
"언제 일어났어?"
"아까 낮에"
"그럼 일어났다고 말하지 그랬어"
"엄마가 바쁜것 같아서 그냥 공부하고 있었어"
빙그레 웃으며 말하는 선규를 보니 점점 이상함이 들었다. 평소에도 약국을 기웃거리던 애가 여행가서 전화로 닥달까지 하다가 오늘은 별로 아무일도 없다는듯이 행동하니 마치 다른 애처럼 느껴졌다.
"배고파?"
"아니. 아까 밥을 늦게 먹어서 별 생각없어"
방안을 나갈려던 명숙은 다시 그에게로 와서 침대위에 앉았다.
"왜 그렇게 전화해서 태수엄마와 지내라고 말했니?"
"엄마가 혼자 있으면 무섭고 외로울까봐 그런거지. 엄마 걱정하는게 잘못된거야?"
"아..아니"
천진난만한 얼굴로 바라보는 선규를 보니 명숙은 할말이 없어져서 잠시 당황했다.
"혼자서 괜찮았어?"
"응"
무심결에 한 대답때문에 선규의 얼굴빛이 어둡게 변하자 그녀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너, 여행가서 그거했니?"
"뭐?"
"자위"
"엉?"
선규가 깜짝 놀라며 당황하는 빛을 어렴풋히 보이자 명숙은 틈을 주지않고 몰아붙혔다.
"네가방에서 빨래감들을 꺼내다 보니까 손수건에 정액자국들이 묻어있더라"
"....."
"어떻게 된거야? 무슨일이 있었어?"
1년전만 하더라도 아들앞에서 하기 힘들었던 말들이 이제는 입에서 술술 나오고 있었다. 잠시 당혹스러워하던 선규는 곧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엄마생각이 나서 화장실에 가서 몰래 했었어. 그거때문에 기분 나빴어?"
"....."
이번에는 명숙이 놀래서 말도 못하고 빤히 쳐다보고 있는 선규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 엄마와 처음으로 떨어져 있어보니까 엄마생각이 많이 나더라"
"......"
애틋하게 말하는 선규를 보며 명숙의 가슴속에 있었던 의심과 언짢음은 어느새 눈녹듯이 사라졌다. 비록 성적으로 생각한거였겠지만 그가 여행가서도 그녀를 그토록 생각했다는거에 대해서 흐뭇함과 감격이 들었다. 그래서 부드러운 표정으로 바꾸며 입을 열었다.
"정말 내생각이 많이 났었어?"
"응. 그러니까 전화를 매일 한거지. 엄마도 내생각 많이 했어?"
"그럼. 항상 너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옆에서 처음 떨어져 있는것이라서 무슨일은 없나하고 걱정 많이 했었어"
그말에 선규는 얼굴이 환해지며 그녀엎에 앉았다.
"다시는 엄마하고 떨어지고 싶지 않아"
명숙이 입가에 행복한 미소를 띄며 쳐다보자 선규는 그녀를 눕히고 키스를 하며 젖무덤위에 손을 얹었다.
이틀이 지나고 버스에서 내린 태수는 책방을 향해 부지런히 걷고 있었다. 책방에 도착해서 문을 열려고 하는데 별안간 그곳에서 유진이 나왔다.
"어? 지금 가는거에요?"
"응. 그동안 잘 있었어?"
"네. 왜 일요일에 안왔어요? 누나를 기다렸었는데"
"그날 학교를 가야할 일이 있어서 못왔어. 미안해"
"누나가 미안할게 뭐가 있어요? 여기에 꼭 와야 하는것도 아닌데요"
태수가 겸연쩍게 웃으며 말하자 유진도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다.
"수학여행은 재미있었니?"
"네. 제가 없을때 매일 엄마를 찾아왔었다는 얘기는 들었어요. 고마워요"
"고맙긴. 나도 즐거웠었는데. 거기가서 내내 아주머니 걱정을 했니?"
"네. 엄마와 처음 떨어져 있는것이라서요"
이해가 간다는듯이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부드러운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어서 들어가봐. 아주머니가 기다리시겠다"
인사를 하고 문을 열려고 하는데 유진이 그를 불렀다.
"태수야"
"네?"
"언제 한번 피아노치러 안올래?"
어딘지 간절한듯이 보이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던 태수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럴게요. 저도 치고 싶었거든요. 누나가 편한 날을 다음에 말해주세요"
"이번 일요일에 올수있니?"
곧바로 날을 정하는 그녀의 말을 듣고 그는 흠짓 놀랐으나 곧 상냥한 소리로 말했다.
"그날이 누나한테 괜찮아요?"
"응"
"그럼 그날 갈게요"
그러자 유진의 얼굴에서는 기뻐하는 기색이 지어졌다. 시간약속을 정하고 인파속으로 사라지는 유진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태수는 이윽고 책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금요일아침 태수와 함께 학교를 가던 선규는 웃음을 가득 띄며 입을 열었다.
"생일 축하한다"
"고맙다"
"아줌마가 오늘 맛있는거 해주시겠네"
"응"
태수는 왠지 쑥스러워서 피식 웃었다. 저녁에 엄마가 그를 위해 한복을 입어준다는것이 생각나서 선규보기가 괜히 민망했다.
"너도 다음주에 생일상 받잖아"
"생일은 나와 비슷해 가지고. 에이....."
"왜?"
"몇달 떨어져 있으면 좋은데 겨우 일주일사이밖에 안되니 내가 너보다 어리다는 느낌이 들잖아"
그소리에 태수는 킥킥거리며 웃었다.
"나도 그거때문에 널 동생으로 생각하고 있어"
"까불지마"
뾰롱통해지는 선규의 얼굴을 웃으며 보던 태수는 다시 입을 열었다.
"넌 나이를 먹는다는게 아무렇지 않니?"
"난 빨리 어른이 됐으면 좋겠어. 더이상 어린애 취급안받고 내가 하고싶은걸 마음대로 할수있게. 너는?"
"모르겠어. 어떤때는 이대로 있고싶기도 하고 또 어떤때는 너처럼 어서 어른이 되고싶기도 해. 내가 어서 돈을 벌어야지 엄마가 좀 편안해 지시잖아"
"그건 나도 그래. 엄마한테 어서빨리 돈다발을 한뭉큼 안겨주고 싶거든"
그말을 듣자 태수는 문득 수학여행에서 선규에게 왔던 황당한 운이 떠올랐다. 그이후로 거기에 대해서는 선규와 한번도 말을 나눠본적은 없었지만 계속해서 신기한 느낌이 들곤 했었다.
"넌 돈을 진짜 많이 벌거 같애"
"......"
"너에게 운이 잘 따르는것 같거든"
그러자 선규의 안색은 어둡게 변했다.
"수학여행때의 일을 말하는거야?"
"응. 그때 정말 놀랬었어"
얼마동안 침묵하던 선규는 중얼거리는 소리로 말했다.
"다른 애들도 너처럼 놀랬지?"
"응"
"사실은 나도 많이 놀랬었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수 있나 해서. 마치 나에게 신이 들린 느낌이었거든"
"운이 따랐는데 그건 좋은거 아니야?"
"글쎄. 아마 어쩌다 온 운일거야. 그런거 너무 믿으면 안되잖아"
"그거야 그렇지"
알수없는 표정을 짓던 선규는 그를 보며 담담한 어조로 물었다.
"요새 선생님은 어떠시니?"
"담임선생님?"
"응. 안색이 좀 어두우신거 같아서"
"글쎄. 평소와 같으신거 같던데.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떡하냐?"
"넌 반장이라서 선생님과 매일 얘기를 나누잖아"
"그런다고 선생님께서 나한테 사적인걸 말씀하시겠냐? 어떻게보면 네가 반장을 할거 그랬어. 선생님과 친한 사람은 너잖아"
그러자 선규는 움찔하며 태수를 응시했다.
"무슨 소리야?"
"선생님집에 자주 찾아가고 그러더니 그런것 같더라. 저번에 산위에서 선생님이 야단을 치셨을때 너는 그냥 웃기만 하던데? 학년초에는 선생님이라면 기겁을 하더니"
그말을 듣고 선규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렇게 보였냐? 사실 네말대로 이제는 선생님이 편해"
"찾아가면 잘해주시니?"
"응. 너도 그때 갔었을때 봤었잖아"
"선생님남편은 뵌적이 있어?"
길바닥을 한동안 내려보던 선규는 고개를 천천히 내저으며 착잡한 어조로 대답했다.
"아니. 옛날에 우리아빠처럼 항상 바쁘신거 같애"
"선생님이 꽤 외로우시겠구나"
"그러시겠지"
정신이 나간듯 중얼거리는 선규의 안색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슬픈 빛이 담겨져 있었다.
저녁에 집에 돌아오자 엄마는 부를때까지 절대로 나오지말라며 태수를 방으로 들여보냈다. 부엌에서 나는 소리를 듣는 태수는 한복입은 엄마의 모습을 본다는 생각에 가슴이 너무 설레여서 어서빨리 그녀가 불러주기로 간절히 고대하고 있었다. 한복입은 여자의 모습이 그렇게나 아름다운 줄은 몰랐던 그는 시골에서 엄마를 본뒤로 가끔가다 머리속에 떠올랐었다. 단아하고 고전적인 옷차림은 엄마를 깨끗하고 청초하게 보이게 해서 무척 어리게 보이도록 만들게 했었다. 그때 엄마를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었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있어서 그냥 넋을 잃고 쳐다보는것에 만족을 해야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엄마와 단둘이 있는곳에서 한복입은 그녀를 볼수있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두근거리고 벌써부터 야릇한 흥분이 드는 것이었다.
[이거 마치 장가가는 기분이네]
그러다가 부엌에서 아무소리도 들리지가 않자 태수는 호흡소리를 조용히 하며 문에 귀를 대었다. 무척이나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 지나가고 마침내 엄마방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젠 나와도 돼"
그소리에 큰 심호흡을 한뒤 방문을 연 태수는 그만 우뚝 서버리고 말았다. 구정때 입었던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있는 엄마는 뒷머리에 쪽을 하고 수줍은 웃음을 지으며 그를 보고있었다.
"왜 그렇게 서있어? 이게 네가 원하는거였잖아"
"....."
하지만 태수가 넋을 잃고 계속해서 그러고 있으니까 엄마는 왼손으로 긴 치마겉자락을 약간 올려잡고 조심스럽게 다가와서 그의 손을 잡아 생일상이 차려있는 상으로 이끌었다.
"다 식겠다. 어서 먹어"
그리고는 몽롱한 기색으로 자리에 앉은 태수의 손에 수저를 쥐어주었다.
"생일 축하해"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태수가 상을 바라보니 모두 그가 좋아하는 음식들로 이루어진 진수성찬이었다.
"너무 감사해요, 엄마. 사실은 저를 낳으시느라 고생하신 엄마가 이런상을 받으셔야 하는데....."
"아니야. 당연히 네가 받아야지. 네가 내아들로 태어나서 얼마나 행복한데"
그러면서 다소곳이 앉아있는 엄마는 입가에 살포시 미소를 띄면서 음식들을 그의 앞으로 가까이 끌어다 놓았다. 그리고는 젖가락으로 반찬을 집어 그의 입에 가져다 대자 태수는 황급히 그녀의 손을 잡았다.
"제가 알아서 먹을테니 엄마도 어서 드시기나 하세요"
"오늘은 내가 먹여주고 싶어서 그래"
그녀가 주는 음식을 멍한 얼굴로 받아먹는 태수는 어린시절로 돌아간것 같기도 하였고 또한 한복을 차려입은 엄마가 마치 아내같기도 해서 얼떨떨하기만 했다. 그런 그를 보고있던 엄마는 다른손으로 입을 가리며 살포시 웃음을 지었다.
"왜 그러세요?"
"이러니까 갓결혼한 낭군님한테 밥주는거 같아서. 네가 좀더 나이만 먹었다면 술도 따라줬을텐데..."
그소리에 태수는 먹던 밥이 목구멍에 걸려서 숨이 넘어갈듯한 기침을 했다. 여전히 웃고있는 엄마가 한참동안 등을 두들겨주고 나서야 겨우 진정된 그는 물을 벌컥벌컥 마신뒤 황송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어떻게 엄마가 저한테 술을 따라주세요?"
"내마음이지"
태수가 아무말도 못하고 입만 벌리고 있자 엄마는 애교스럽게 눈을 홀기며 그의 볼을 가볍게 꼬집었다.
"낭군이라는 소리에 아무말을 안하는걸 보면 그소리 듣기는 싫치 않은가보네"
그의 얼굴이 새빨개져 가는것을 본 그녀는 또다시 입을 가리고 웃음소리를 냈다.
"그런데 난 네가 한복입은 여자를 좋아하는지는 몰랐다"
"엄마만 좋아하는거에요. 그전에는 그런거 생각해보지도 않았었거든요"
"결혼식이나 명절이 아닌때에 한복을 입어보는건 처음이다. 그것도 아들때문에 입어보고"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짓는 엄마로부터 눈길을 떼지 못하는 태수는 다시 입을 열었다.
"다음주에 선규생일이 있잖아요"
"맞아. 그렇지"
"선규라면 안절부절 못하시는 아줌마도 엄마처럼 아들에게 이런 훌륭한 생일선물을 주지 못하실거에요"
그러자 엄마는 너털웃음을 내지었다.
"그러겠지. 이번 생일이 마음에 드니?"
"최고의 생일선물을 받은거 같애요"
만면에 행복한 기색을 띄고 계속해서 음식을 먹여주는 엄마에게 넋을 잃은 태수는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몰랐다. 단순하고 엷은색의 한복은 그녀가 움직일때마다 아름다운 동적인 선을 그려냈고 깃고대로 둘러쌓인 가느다란 목선은 평소보다 더욱 매력적이고 신비스러웠다. 그리고는 깃고대의 벌어진 좁은 틈사이로 보여지는 하얀 앞가슴과 그밑에 있는 고름을 보자 순간적으로 충동이 일어 수저를 내려놓고 엄마를 끌어안았다. 그러자 그녀는 살며시 그의 양팔을 잡고 제지하며 조용히 말했다.
"먼저 밥먹고. 내가 차린걸 네가 먹어줘야 나도 기쁠거 아니야"
고개를 끄덕인 태수는 엄마가 주는 음식들을 동물원에 있는 물개처럼 열심히 받아먹으며 남은 밥을 맛있게 먹어치웠다.
식사를 끝마친 태수는 그자리에서 엄마를 안을려고 했지만 그녀가 상을 치워야 한다고 좀처럼 몸을 허락하지 않아서 애간장이 타는 심정으로 상을 치우는 엄마를 서둘러 도왔다. 허겁지겁 치우는 그를 보며 그녀는 연신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런다음 엄마가 먼저 방에 들어가 있으라고 하자 그는 번개같이 양치질과 세수를 한다음 방에 들어와 자리를 폈다. 바지안에서는 벌써부터 성기가 발기되어 있었고 가슴은 심하게 두근거리고 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이윽고 문이 열리며 앞치마를 벗고 다시 단정하게 손질한 한복을 입고있는 엄마가 들어왔다. 태수가 충동을 더이상 억제하지 못하고 그녀를 힘껏 끌어안아 뜨거운 키스를 퍼부으며 그녀의 육체를 정신없이 어루만지자 엄마는 그의 손을 잡고 차분한 소리로 만류했다.
"천천히 해. 한복입었을땐 그렇게 하는게 아니야"
그말에 충동을 간신히 자제한 태수는 그녀가 시키는대로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엄마는 긴치마를 잡고 조심스럽게 앉더니 그의 품안으로 안겨왔다. 한복의 부드러운 촉감을 느끼며 그녀의 등을 쓰다듬어 주자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있던 엄마는 나지막한 소리로 물었다.
"오늘 즐거웠어?"
"엄마덕분에 너무 행복했어요. 감사해요"
"네가 좋았다니 나도 기쁘네. 생일때마다 이렇게 해줄까?"
"그러면 저야 좋죠. 하지만 엄마가 힘드실거 아니에요"
"힘들기는. 너를 위해서 하는건데 즐겁지"
태수는 그러는 엄마가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그녀만 마음을 돌려준다면 다른 여자를 만나지않고 엄마와 영원히 함께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녀이외에는 아무도 그를 이처럼 사랑해줄수 없을거 같았고 그도 다른 여자에게 마음이 가지 않을거라고 확신하기 때문이었다. 그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기다란 겉치마를 보고 있는데 엄마가 고개를 들며 살포시 키스를 해왔다. 그런다음 그녀가 입을 떼자 태수는 겉저고리가 풀어지지 않게 고정하고 있는 긴고름을 살며시 잡아당겼다. 그러자 매듭이 지어져 있던 고름이 풀어지며 저고리가 열어지자 상반신에 걸치고 있는 속적삼과 가슴 바로밑에까지 올라온 겉치마의 둘레가 나타났다. 그것들이 압박하고 있어서 그런지 젖가슴은 평평해 있었다. 옷이 구겨질까봐 치마끈을 풀어 겉치마를 조심스럽게 내린뒤 그안에 있는 속치마를 본 그는 후회감이 몰려왔다.
[한복이 생각보다 꽤 복잡하구나. 엄마가 이거 입느라고 귀찮으셨을텐데 괜히 입어달라고 했네]
그런 생각을 하며 엄마의 얼굴을 보자 그녀는 홍조를 가득 띈체 숨소리도 안내며 한복을 만지고있는 그의 손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평소보다 유난히 부끄러움을 타는것 같아서 의아감이 들었지만 왠지 그런 엄마의 수줍어하는 모습이 좋았다. 속치마와 속바지, 그리고 속적삼을 벗기자 엄마는 팬티만으로 알몸을 가리게 되었다. 옷을 벗기기에 시간이 걸리고 까다로웠지만 그래도 마치 신방에 있는것처럼 운치도 있고 색다른 설레임도 있어 옷을 하나씩 벗길때마다 자극적이서 흥분이 점점더 되었다. 그런다음 엄마도 그의 옷을 하나씩 벗겨준다음 노출된 하얀 가슴을 한손으로 조심스럽게 가리고 두다리를 모으면서 눈을 살짝 위로 올렸다. 머리에 단정히 쪽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그녀는 나체로 있어도 한복을 입은것처럼 매우 조신하고 고전적으로 보였다. 태수가 미소를 짓자 그녀도 입가에 부끄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손끝으로 그의 가슴위에서부터 살며시 선을 그으며 내려갔다. 그리고는 다시 손을 올려 그의 볼에 갖다대자 태수도 손을 올려 그녀의 보드라운 손등을 잡고 볼로 전해져오는 따스한 감촉을 느꼈다. 그러면서 한동안 사랑이 넘치는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던 태수는 몹시 뭉클한 감정이 일어나 저도모르게 목이 잠긴 소리로 말했다.
"엄마가 제아내였으면 좋겠어요"
순간적으로 나온 말에 그자신도 놀라며 엄마의 기분이 변할까 조마조마 했으나 그녀는 계속 부드러운 미소를 띄며 그의 얼굴을 그윽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자신때문에 아들이 나중에 다른 이성을 만나는것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하고 늘 염려하던 혜영도 지금만큼은 그말에 아무런 거부감이나 불안감이 없었다. 태수가 한복을 하나씩 벗겨주었을때는 보통때보다 유난히도 떨려서 정말로 결혼식을 마치고 첫날밤을 맞는 기분이었다.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을 차려주고 함께 밥을 지샐수 있다는게 그저 기쁘고 행복하기만 했다. 혼자남은 그녀만을 위해주고 사랑해주는 태수는 아들이고 남편이었다. 욕심같아서는 그가 다른 여자를 만나지않고 평생 그녀옆에서만 있어주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런생각에 몹시 애절함이 들어 아들의 품안으로 파고들었다. 태수는 애타는 손길로 그녀의 육체를 어루만져주면서 입을 맞춰주다가 이윽고 그녀를 조심스럽게 눕혔다. 그리고는 애틋한 눈길로 혜영의 얼굴을 바라보며 옆에 눕더니 다시 그녀의 몸을 부드럽고 소중하게 애무해 주었다. 감정이 고조되어 이제는 태수가 아들이 아닌 그녀의 남자로만 생각되어 그가 안으로 들어올때는 첫경험처럼 가슴이 매우 두근거렸다. 아들의 가슴위에 얹어져있는 손도 몹시 떨려서 제대로 움직일수가 없을 정도였다. 가끔마다 이런 느낌이 들어 혜영도 태수를 정말로 남자로서만을 원하는가 싶어 그녀자신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섹스는 격렬하지 않았고 오래동안 지속되며 부드러웠다. 천천히 움직이는 아들의 성기가 들어올때마다 마음속에 있는 그녀의 빈곳들을 완전히 채워주는 희열이 느껴졌다. 세상의 모든 관념들을 잊고 오로지 태수만을 갖고싶어서 경직되어 있는 손들을 간신히 움직여 아들의 몸을 부둥켜안고는 몸으로 전해오는 그의 단단한 육체의 감촉을 만끽했다.
"사랑해, 태수야"
그러자 태수는 감미로운 입맞춤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리고는 입을 옮겨 그녀의 입과 목덜미로 뜨거운 애무를 하자 혜영의 몸에서는 터질듯한 절정이 오고 있었다.
"하악....... 하악......... 아흑..........."
헐떡거리면서 아들이 움직일때마다 몸이 흔들리던 혜영은 마침내 오르가즘을 맞았다.
"아악!....... 하악!..........."
그러면서 질안에 아들의 정액이 가득 들어오자 오르가즘은 더 심해지면서 커다란 경련이 왔다. 그것은 온세상을 다 차지한 만족이었다.
"허억!.......... 아..........."
"아!................ "
거센 물결이 지나가고 땀에 젖은 아들을 끌어안고 있는 혜영은 섹스의 여운을 즐겼다. 젊었을적에 태수아빠와 할때는 아무것도 몰라 그저 행위만 할뿐 사랑하는 남편에게 안겨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했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섹스를 하며 진정한 사랑과 행복을 알게 해준 태수가 말도 못할정도로 고마웠다. 숨소리가 진정된 그가 조심스럽게 내려와서 그들위로 이불을 덮어주고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어주자 혜영은 다시 그의 팔안으로 안겨왔다.
"오늘 다시한번 고마워요. 그리고 사랑해요, 엄마"
행복한 미소만을 짓고있는 혜영은 키스를 해주며 아들의 따듯한 품안에서 언제까지나 벗어날줄을 몰랐다.
약속한 시간에 맞춰 학원에 도착해보니 유진은 이미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학원에 오래간만에 와서 그런지 정겨운 느낌이 들었다. 몹시 반가운지 활짝 웃는 유진과 얼마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그녀와 피아노의자위에 나란히 앉아 전에 함께 쳐봤던 곡들을 연주했다. 피아노를 마지막으로 쳐본지가 불과 1달정도밖에 안되었으나 손가락들이 굳어져서 연주는 의외로 쉽지가 않았다.
"이것도 자주 해봐야 되는가 보네요. 손이 잘 안움직이는데요"
"하던걸 얼마동안 손을 놓으면 다 그렇지"
그러면서 틀릴때마다 그의 손을 잡아주는 유진을 몰래 쳐다보았다. 그녀에게서 피아노치러 오라는 제의를 받았을때부터 태수에게는 뭔가 궁금함이 있었다. 그녀에게는 대학친구들이나 할일이 많을텐데 쉬는 날에 그를 만나는게 이상했다. 그냥 동생같은 그에게 잘해주는 것으로 생각할려고 했지만 그래도 어딘가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친구들이 애인 보여달라고 난리다"
갑자기 말한 그녀의 소리에 태수는 피아노를 치던 손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누나, 애인 생겼어요?"
"너"
"....."
"네가 내애인이잖아"
무슨 소리인지를 몰라 의아스러운 표정을 짓던 태수는 그말에 입이 벌어졌다. 그모습에 입을 손으로 가리고 웃음을 터트리던 그녀는 이윽고 설명해 주었다.
"그선배가 누군가에게 말했나봐. 그거때문에 과에서 소문이 쫙 퍼졌어. 애들이 궁금해 하는데 너는 항상 내옆에 없잖아. 그래서 유령애인이 하나 생긴거지"
남의 얘기를 말하는거처럼 재미있다는듯이 얘기하는 유진을 보며 태수의 낯빚은 근심스럽게 변해갔다.
"그러다가 누나에게 안좋아지면 어떡해요? 그소문때문에 진짜로 남자를 못사귈수도 있잖아요"
"상관없어. 애인사귈 마음도 없는데"
"누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연애 해보고 싶지가 않아요?"
"아직은 그런 마음이 안들어"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듯이 말했지만 태수는 어딘지 모르게 부담감이 들었다. 생일날 이후로 엄마에 대한 사랑이 더욱 깊어만 갔는데 비록 말도 안되는 소문이라도 누군가의 애인이 되었다는게 꺼림직했다. 또한 엄마가 유진이 같은 여자와 사귀지는 말라고 당부한것도 있어서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다. 그런 그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던 유진은 다시 입을 열었다.
"내애인이 됐다는게 기분 나쁘니?"
"아..아니요. 괜히 저때문에 누나한테 피해가 갈거 같아서요"
"걱정하지마. 요즘 연인들 만났다가 헤어지는거 흔하잖아. 나중에 그선배 졸업하고 나서 헤어졌다고 하면 돼"
그러자 태수는 가벼운 웃음을 내지었다.
"그럼 그때까지 제가 누나애인이 되어야겠네요"
"그러게 말이야. 어떡하다보니 애인이 생겼네"
함께 웃던 유진은 가방에서 포장이 된 작은 상자를 꺼내 내밀었다.
"이게 뭐에요?"
"그저께가 네생일이었지? 선물이야"
그소리에 태수의 눈은 커다랗게 떠졌다.
"누나가 제생일을 어떻게 알아요?"
"저번에 아주머니께 여쭤봤었어"
어렸을때부터 생일이다고 떠벌리고 돌아다니지를 않아서 엄마나 선규네외에는 생일선물을 받아본적이 없었던 태수는 뜻밖의 선물에 할말을 잃었다.
"안뜯어봐?"
생글거리는 유진의 얼굴과 선물을 번갈아 보던 태수는 조심스럽게 포장을 뜯었다. 상자안에는 만년필이 들어있었다.
"마음에 들어?"
"네. 이거 비싼거 아니에요?"
"그렇게 안비싸. 열심히 공부해서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라는 뜻으로 주는거니까 부담갖지마. 생일카드도 줄려고 했는데 내가 글쓰는거에는 소질이 없거든. 늦었지만 생일 축하해"
물끄러미 만년필을 보고있던 태수는 그녀의 말을 듣고 감격했다.
"다른 사람에게 생일선물을 받는건 처음이에요"
"....."
"진심으로 고마워요, 누나"
고개를 숙이고 나직히 말하자 유진은 잔잔한 미소를 띄었다.
"전 계속 누나한테 받기만 하네요"
"뭘 받기만 하니? 너도 날 도와주고 그랬었잖아"
선배라는 사람과의 일이 떠오른 태수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생일은 잘 보냈니?"
"네"
"아주머니가 잘 해주셨어?"
그러자 태수는 저도모르게 당혹스러움을 느끼며 대답했다.
"예. 생일상을 잘 차려주셨어요"
"하나뿐인 자식의 생일인데 당연히 그러셨겠지. 친구는 아무도 안왔어?"
"원래부터 친구는 안불러요. 생일이 대단한 날도 아닌데 저를 낳아준 엄마와 함께 지내야죠"
그말에 유진은 알수없는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얘기가 나와 다시 불편해진 태수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이거 줄려고 오늘 여기 오라고 한거에요?"
"응. 그때 날 도와준거에 대해 제대로 고맙다는 말도 못해 겸사겸사해서 오라고 한거야"
"아무때나 줘도 되는데 제가 누나쉬는날을 방해한거잖아요"
"내가 좋아서 하는건데 마음쓰지마"
"누나는 생일이 언제에요?"
"그저께"
그소리를 듣고 태수는 입이 아까보다 더 크게 벌어지며 놀란눈으로 어색한 웃음을 짓고있는 유진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저..저와 생일이 같은 날이에요?"
"응. 나도 네생일날짜를 듣고 무척 놀랬었어"
"그럼 말을 하지 그랬어요. 그런줄 알았으면 저도 선물을 가지고 오는건데요"
"나도 그런거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는 성격이 아니라서......"
"그럼 혼자 생일을 보냈어요?"
"생일을 알고있는 친한친구들 몇명과 저녁을 먹었어"
그와 생일이 똑같은 사람을 본적이 없어 신기해 하던 태수는 유진의 성격이 그와 비슷하다는것에 또한번 놀랐다. 우연의 일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그녀가 남들보다 더 가깝다는 느낌이 들었다.
"누나도 생일 축하해요"
"고마워"
수줍게 웃고있는 그녀를 보다가 아무래도 안되겠다싶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맛있는거 사줄테니까 나가요"
"아..아니야. 이럴려고 부른게 아닌데 그러지 않아도 돼"
"저도 그러고 싶어서 그래요. 누나와 제생일을 자축할겸 해서요. 어서요"
태수가 코트를 입자 망설이던 유진도 일어나서 외투를 챙겨입었다.
"괜히 너에게 얘기한거 같네"
"잘 했어요. 안그랬으면 저만 미안해지잖아요. 그나저나 생일이 같은 사람이 있다니 신기하네요"
"나도 그래.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네생일은 평생 기억하게 될거야"
함께 웃음을 짓는 태수는 학원에서 나와 유진의 제의에 따라 분식집에 들어갔다.
태수의 생일이 있은지 정확히 일주일뒤, 선규가 점심시간에 아이들과 농구를 하고 교실로 돌아오는데 반대편에서 담임선생님이 다른 선생님들과 걸어오고 있는게 보였다. 선생님은 동료교사들을 먼저 보내고 그를 불렀다. 선규도 아이들과 헤어지며 복도창문에 서있는 선생님에게로 다가갔다.
"시키실 일이 있으세요?"
학교에서는 평범한 스승과 제자로 행동해서 선규가 자연스러운 얼굴로 공손하게 서있자 선생님은 만면에 미소를 띄었다.
"오늘 네생일이지?"
"태수한테 들으셨어요?"
"아니. 생활기록부가 있잖아"
선생님의 말에 선규는 겸연쩍어져서 피식 웃기만 했다.
"뭘 제생일까지 챙겨주세요?"
"왜? 제자의 생일을 챙겨주는게 잘못된거니?"
어색한 느낌이 들었지만 선생님이 말하지도 않은 그의 생일을 챙겨주기까지 해줘서 기분은 몹시 좋았다. 오늘은 그녀의 표정과 어조가 왠지 밝아보였다.
"생일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따로 네생일을 축하해 주고싶은데 그러지를 못하네"
별안간 나지막히 속삭이는 그녀의 말을 듣고 선규는 깜짝 놀랬다. 또한 그녀의 얼굴에서는 안타깝다는 표정도 서려있었다.
"말씀만 들어도 고마운데요"
태연하게 말하며 선생님을 쳐다보던 선규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이들은 잘 있어요?"
"응"
지난 일요일에 선생님이 아이들을 보러 친정집에 간다고해서 그녀의 집에 찾아가보지를 못했었다.
"언제 집에 돌아와요? 보고싶네요"
"일단 일이 끝날때까지 거기에 있게 할려고 해"
그러면서 그녀는 얼마동안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이번주에도 애들을 보러 가야하니까 우리집에 오고싶으면 다음주에 와라. 한동안 안들었더니 네기타소리가 그립네"
"그럴게요"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그녀가 발걸음을 옮기려 하자 선규는 선생님을 불렀다.
"선생님"
"응?"
"안색이 밝으셔서 보기 좋으시네요"
그러자 그녀는 애정이 담긴 눈으로 그를 한참동안 쳐다보다가 이윽고 그자리를 떠났다.
그날저녁에 선규의 요구대로 명숙은 그와 함께 외식을 하려고 시내에 있는 식당에 갔다. 생일이라서 그런지 선규는 오늘따라 기분이 밝아보였다. 주문을 하고 음식을 기다리면서도 그는 그녀를 보며 계속 해맑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집에서 내가 생일상 잘 차려줄수 있는데 뭣하러 나오자 그랬어?"
"엄마와 데이트하고 싶어서. 매일 집에서만 볼뿐 같이 나와본적이 별로 없었잖아"
"나와 생일을 같이 보내는게 좋니? 이런데라면 친구들과 함께 와도 되잖아"
"생일날인데 제일 같이 있고싶은 사람과 있어야지"
그말에 명숙은 흐뭇하기만 해서 미소가 저절로 지어졌다. 얼마후에 음식이 나와 함께 저녁을 먹던 그녀는 지나가는 소리로 중얼거렸다.
"근처에 음식점을 낸다더니 아무런 소식이 없네"
그러자 밥을 먹던 선규는 고개를 번쩍 들며 쳐다보았다.
"누구?"
"지난번에 약국에 왔었던 손님있었잖아. 그왜 굉장히 예뻤던 여자말이야. 네가 그때 드링크상자를 날라주고 그랬었잖아. 생각안나?"
미간을 약간 찌푸린 선규는 왠지모르게 긴장이 되어있는것처럼 보였다.
"그여자는 왜?"
"나중에 연락을 한다 그러더니 아무소식도 없고 집근처에 새로 생긴 음식점도 없잖아"
"생각을 바꿨나보지. 그런데 그건 왜 생각났는데?"
"여기 음식점을 둘러보다가 갑자기 생각나서"
무표정으로 바라보던 선규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밥을 먹기 시작했다. 남자가 아닌 여자손님 얘기에 긴장을 하는 아들이 이상했지만 곧 생각을 떨쳐버리고 그와 함께 식사를 마저했다.
음식점을 나와 집으로 갈려고 지하철을 탔는데 천장에 붙어있는 지하철지도를 보고있던 선규가 별안간 말을 꺼냈다.
"엄마, 우리 영화보고 갈래?"
"영화? 내일 학교가야 하는데 이시간에 무슨 영화니?"
"간만에 나온김에 엄마와 영화보고 싶어서 그래. 이런 기회가 아니면 엄마와 같이 나오는게 힘들잖아"
"그래도 지금은 너무 늦었잖아. 내가 일요일 같은날 하루 쉬어볼테니 그때 가자"
그러자 선규는 언짢은 인상을 지으며 짜증을 냈다.
"내생일인데 그거 하나 못들어줘?"
선규의 기분이 돌변한걸 보고 순간적으로 긴장한 명숙은 시계를 보며 설득해 보았다.
"주말도 아닌데 이시간에 하는 영화가 어딨어? 해도 전부 마지막 상영을 하고 있을거야"
"어쨋든 가보자"
도저히 아들의 고집을 꺽지 못할거 같아서 명숙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참일찍 일어나야 해서 극장가는것이 못마땅했지만 생일날의 아들기분을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 한번 가보자. 무슨 영화가 보고싶은데?"
"가면 알겠지"
다시 표정이 밝아진 선규는 지하철이 집에서 몇정거장 떨어진 역에 서자 그녀의 손을 잡고 내렸다.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아들의 손에 끌려나온 명숙은 거리로 나오자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내한복판을 벗어난 그곳은 상가로 이루어져 있었고 저멀리에서는 아파트단지들이 보였다.
"여기에 극장이 있어?"
"찾아보면 있겠지"
선규가 자세히 얘기를 해주지 않고 계속해서 주위를 두리번 거리기만 해서 그녀의 가슴속에서는 일말의 불길함이 생겨났다. 워낙 엉뚱한 짓을 잘하는 애라서 지금의 행동을 보니 정말로 극장에 갈려고 한게 아닌것 같았고 또한 이동네도 처음 와보는것 같았다. 그녀의 손을 꼭 잡고 한참동안 골목을 이리저리 헤매던 선규는 상가가 뜸한 곳에 이르자 마침내 발걸음을 멈추었다.
"저기 가자"
그가 가리키는 곳을 보고 명숙은 기겁을 했다. 4층짜리 건물에 걸려있는 간판들중에서 선규가 가리키는 간판에는 비디오방이라고 적혀있었다.
"비..비디오방에 가잔 말이야?"
"응. 엄마말대로 이시간에 영화를 새로 상영하는 극장이 어딨어? 그러니 이런곳에 와야지"
겁을 먹은 명숙은 호기심이 잔뜩 서려있는 선규의 손을 가까스로 뿌리치고 뒤로 물러났다. 그녀도 신문이나 잡지를 통해 비디오방에 대해서 알고 있었고 또한 그곳에서 사람들이 남부끄러운 짓을 하는것도 들어 알고있었다. 그런곳을 엄마인 그녀와 가자고 하는 아들이 기가 막히기만 했다.
"너, 비디오방에 가본적이 있니?"
"아니. 나도 처음이야"
"이런곳에서 사람들이 영화만 보는게 아니라는걸 알고있어?"
"그건 일부분의 사람들만 그러는거야. 거의가 그냥 영화보러 온데. 내친구들도 갔었는데 극장보다 훨씬 편하데"
긴장하고 있는 명숙이 아무말을 하지않자 선규는 천진난만한 기색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영화만 보는건데 어때? 엄마도 영화보는걸 좋아하잖아"
"그..그래도 누가 보면......"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기 때문에 아는 동네 사람을 만날 염려도 없어"
그소리에 명숙은 다시한번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애가 어찌 이렇게 영악할까?]
비록 자신이 낳은 자식이지만 이렇게 잔머리를 굴릴때는 다른 사람으로 느껴져 혀가 찼다. 그러면서 그녀가 계속 침묵하고 있으니까 선규는 간절한 어조로 애원했다.
"엄마와 오래간만에 나와서 같이 저녁도 먹고 영화도 보고 들어가고 싶어서 그래. 내생일날 같이 있고싶은 사람은 엄마뿐이라고 했었잖아"
한참동안 주저하던 명숙은 그소리에 마음이 흔들렸다.
"그..그냥 영화만 볼거지?"
"영화보러 온건데 또 뭘 하겠어?"
선규의 얼굴표정을 보니 진심인것 같았다. 어차피 계속 싫다고 하면 선규가 섭섭해서 기분이 안좋아질거는 뻔해서 내키지가 않다러도 들어가야 한다는것을 아까부터 짐작하고 있었다. 다시한번 간판을 바라본 명숙은 이윽고 긴한숨을 내쉬며 무거운 입을 열었다.
"알았어. 네가 원하는대로 들어가서 보자. 대신 영화만 보고 나와야 하고 혹시 이상한 눈치를 챌지도 모르니까 행동을 조심해야 해. 약속할수 있지?"
그러자 선규는 금새 안색이 환해지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알았어. 추운데 빨리 들어가자, 명숙씨"
"....."
"이러면 우리가 엄마와 아들이라는걸 아무도 모를거 아니야"
입을 크게 벌리고 경악을 하던 명숙은 장난기어린 웃음을 짓고있는 아들의 손에 이끌려 주위를 살피면서 건물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