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들의 교향곡 49부
집으로 가면서 혜영은 태수의 얼굴을 엿보면서 걷고 있었다. 태수는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눈치였다.
"태수야"
"네?"
태수가 깜짝 놀란듯 쳐다보자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뭘 그렇게 생각해?"
"아무것도 아니에요"
"유진이한테 무슨일이 있니?"
"네?"
그가 두눈을 번쩍 뜨며 바라보자 혜영은 인상을 자연스럽게 하며 입을 열었다.
"아까 네가 들어오기전에 뭔가 초조해 하는것 같더라. 최근에 그런 모습이 자주 보였었는데 오늘은 좀 심한것 같았어"
"누나에게 무슨일이 있는가 보죠"
아들의 대답을 들던 그녀에게는 불현듯 책방에서 헤어질때 뭔가 알수없는 유진의 눈길이 태수에게서 떠나가지를 않았던게 기억났다.
"네가 들어왔을때는 안정을 찾던거 같던데 정말 아는게 없니? 그애하고 친해지다보니 걱정이 되서 그래"
태수는 그녀의 얼굴을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다가 유진의 애인행세를 했던것만 빼고는 모든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런일이 있었어?"
"네"
"그래서 애가 그렇게 불안하게 보였구나"
"누나가 말은 안하지만 속으로는 많이 놀랐을거에요"
"큰일날뻔 했다. 더군다나 주위에 아무도 없으니 말도 못하고 얼마나 겁이 났었겠니? 여기서 끝나야 할텐데"
"제가 누나에게 무슨일이 있으면 책방에 가라고 했으니까 엄마는 아무내색하시지 마시고 편안히 대해주세요"
"걱정말아. 안그래도 몸도 안좋은것 같던데....."
유진의 생각을 하던 혜영은 문득 수많은 남자들중에서 왜 태수가 그녀를 도와줬는지가 의아했고 또한 그가 그런식으로 일을 처리했다는게 신기했다.
"그남자가 대학생이었다면서 무섭지는 않았니?"
"당연히 무서웠죠"
"그런데 어떻게 그런식으로 일을 잘 처리할수가 있었어?"
"저도 모르겠어요. 그냥 생각나는대로 말이 나왔거든요. 아마 누나가 걱정이 되다보니 그랬나봐요"
"유진이가 많이 걱정됐니?"
"그럼요. 엄마와 선규엄마를 제외하고 저한테 그렇게까지 잘해주는 사람은 누나뿐이잖아요. 곤경에 처했을때 당연히 도와줘야죠"
당연한듯이 대답하는 태수를 보고 혜영은 아들의 착한 마음씨에 흐뭇함을 느끼면서도 가슴속에 왠지모를 허전하고 착잡한 심정이 들기도 했다.
선규의 해명을 듣고 명숙은 처음에는 안심이 되었으나 날이 갈수록 의문이 증폭되어 갔다. 아무래도 그의 말이 개운치가 않게 여겨졌다. 그녀의 머리속에서는 예전에 선규가 울면서 말했던 저마음속에는 영원히 그녀밖에 없다는 말이나 추긍할때 했던 그녀만을 사랑한다는 말이 점점 수상쩍게 느껴졌다. 더군다나 잠자리에서 그가 그녀를 만질때의 느낌이 다르다는것도 마음에 계속 걸렸다. 선규는 그이후에 그녀에게 지나칠정도로 너무나 잘하고 있었다.
[꼭 바람핀 남편이 아내에게 선심을 베푸는거 같네]
어처구니없는 생각에 웃음을 지었으나 그래도 뭔가가 이상했다.
[선규의 말을 들어보니 여자문제가 있는거 같애. 더군다나 종업원이 음식을 놓다가 묻었다지만 그래도 그 분자국은 이상하잖아. 얼굴을 그렇게 가까이 댈 이유가 없는데. 그 레스토랑이라는 곳을 한번 가볼까?]
그런생각을 하자 옛날에 악몽같았던 남편과의 일들이 떠올라서 머리를 세차게 내저었다.
[선규가 절대 그럴리없어. 그사람과는 달라야지. 그래도 왜 이렇게 불길한 느낌이 드는거지?]
그러다가 선규가 여자를 만났었을까봐 질투심이 났었던게 기억났다. 그녀도 그런자신이 놀랍기만 했었다. 더군다나 선규는 어떻게 그걸 눈치챘는지 그녀에게 물어봤었을때는 너무나 부끄러워서 말이 안나올 정도였다. 남편에게 질투를 느끼는거야 당연하지만 아들에게 질투를 느낀다는거는 왠지 이상하고 창피스러웠다.
[나도 주책이지. 왜 그런 마음이 들었을까? 그냥 이렇게 살다가 선규가 크면 짝을 지어 보내버리면 되는데]
의자에 앉아 한숨을 쉬던 명숙은 일어나서 약국에 걸려있는 전신거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거울속에 비쳐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 생각에 잠겼다.
[선규가 나로는 만족을 못하나? 대학에 들어가기전까지는 교제같은걸 하면 안되는데.....]
자신의 몸매를 살펴보던 명숙은 별안간 문소리가 나자 급히 자세를 바로하고 웃음을 지으며 손님을 맞았다.
일요일에 피아노학원을 갔던 태수는 도착하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유진에게 황급히 물었다.
"어떻게 됐어요, 누나? 그사람이 아직까지 쫓아다녀요?"
그의 초조한 얼굴을 보며 유진은 신기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때 네가 그선배와 얘기를 한 이후로 한번도 본적이 없어"
"잘 됐네요. 이제는 그사람도 포기했나봐요. 다행이에요"
"도대체 그때 무슨말을 한거니? 궁금했었어"
뚫어지게 쳐다보는 그녀를 보고 쑥스럽게 웃던 태수는 유진을 사랑한다는 말을 제외하고는 전부 얘기해주었다. 그러자 유진은 두눈을 크게 뜨며 감탄했다.
"그런게 있었구나. 내가 왜 대자보를 생각못했지? 아무튼 너 정말 대단하다. 고마워"
"뭘요. 어쨋든 누나에게 아무일이 없어서 안심이에요"
"어서 들어가자. 이번주에 시험이 있으니 오늘이 마지막이잖아"
고개를 끄덕인 태수는 유진과 방에 들어가서 연습을 시작했다. 하지만 오늘이 그녀와 같이 앉아 피아노를 치는 마지막날이라고 생각하니 어쩐지 섭섭하고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피아노를 연주하는것도 즐거웠으나 책방과는 다른 분위기속에서 유진과 단둘이 앉아 틀릴때마다 교정해주는 그녀의 따스한 손길을 왠지 계속 느끼고 싶었다. 그녀와 함께 피아노앞에 앉으면 마치 엄마옆에 있는것처럼 마음이 편하기도 하고 설레이기도 하였다. 왜 그런 느낌이 나는지는 몰랐으나 어쨋든 할수만 있다면 이런 시간을 중단하고 싶지가 않았다. 연습을 마치고 그녀와 함께 학원을 나오던 태수는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시험이 끝나도 가끔와서 누나와 피아노를 쳐도 되요?"
"피아노에 재미붙혔니?"
"네"
왠지모르게 유진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수가 없어서 태수는 고개를 숙이고 겸연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피아노 치고싶으면 언제든지 말해. 내가 시간내줄게"
"고마워요, 누나. 계속 폐만 끼치네요"
"그게 어떻게 폐니? 대신 시험 잘 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아주머니 얼굴을 뵐 면목이 없잖아"
"걱정마세요. 누나가 가르쳐줬는데 반드시 잘 할게요"
"내가 너무 부담을 주는거 같네"
조용히 웃으며 태수와 나란히 걸어가던 유진은 앞쪽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이번에 옆에 남자가 있으면 좋다는걸 깨달았어"
"그게 무슨 소리에요?"
그러자 유진은 알수없는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선배일 말이야. 네가 옆에 없었으면 정말 난감했었을거야"
"별로 한것도 없는데 뭘 그래요?"
하지만 유진은 고개를 내저으며 나지막한 소리로 말을 계속 했다.
"아니야. 남자가 옆에 있으면 든든하고 안심이 된다는 소리를 들었을땐 그말에 공감이 가지 않았었거든. 하지만 지금은 그말뜻을 어느정도 알거 같애"
그말을 듣고 태수는 어이가 없다는 웃음을 내지었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그리고 저는 그런말을 듣기에는 아직 어려요. 남자라니요?"
"아주머니께서 너를 어린애로 생각하시니?"
그말에 태수는 걸음을 멈추고 그를 응시하고 있는 유진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무표정인 얼굴에서는 아무것도 읽을수가 없었다. 상당한 어색함을 느낀 태수는 긴장감마저 도는 침묵을 깨기 위해서 일부러 말도 안된다는듯이 소리를 내어 웃었다.
"자식인데 당연히 엄마는 저를 어린애로 생각하시겠죠. 모든 부모들이 다 그러시잖아요?"
한참동안 그를 살펴보던 유진도 곧 표정을 부드럽게 바꾸고 고개를 끄덕이며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네말이 맞아. 내가 괜한 말을 한거 같구나. 어서 가자"
태수는 행동과 표정을 되도록 자연스럽게 하며 유진과 걸었으나 은연중에 가슴한구석에서는 조그마한 경계심이 싹트고 있었다.
일요일에 오라는 마담의 말을 무시하고 선규는 선생님집으로 가고 있었다. 혹시 마담이 그의 집으로 찾아오지는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있기는 했으나 그때 선생님의 남편과 있는걸 본거때문에 화도 나고해서 그녀에게 반항을 하고 싶었다. 더군다나 개학을 한 이후로 선생님집을 찾아가본지도 오래되었고 지난주 내내 선생님이 불쌍하게 보여 자꾸 엄마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도 남편이 집에 없으면 작곡을 배우면서 몇시간이나마 선생님의 말동무가 되어줄려고 어제 찾아가도 되냐고 물어봤었다. 그동안 학교에서 선생님의 안색에서는 별다른 차이점을 볼수가 없었고 그녀는 평소와 다름없이 그를 대해주곤 했었다. 대문에서 초인종을 누르니 스피커에서는 뜻밖에도 혁재의 어린 음성이 나왔다.
"누구세요?"
"선규형이야"
문이 열려지자 선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들어갔다. 한번도 아이들이 문을 열어주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이 어디 나가셨나? 그래도 그렇지. 아이들만 집에 있게하면 어떡하라고.....]
집안을 들어서자 아이들은 그에게로 뛰어왔다. 지난 여름에 그들과 자주 놀아줘서 선생님의 아이들은 그를 잘 따랐다. 선규는 아이들을 한팔에 하나씩 안으면서 반갑게 말했다.
"오래간만이다. 그동안 잘 있었어?"
"응"
"그런데 엄마는 어디 가시고 너희들만 있니?"
"엄마 아퍼"
"뭐?"
혁재의 말에 선규는 두눈을 크게 떴다.
"엄마 어디 계시니?"
"방안에"
아이들을 놓고 안방으로 달려가던 선규는 거실을 지나가다가 선생님의 가족사진을 보게 되었다. 그러자 선생님의 남편이 한눈에 들어왔다.
[맞구나]
마담과 같이있었던 남자가 선생님남편이 맞다는것을 알았어도 마음한구석에는 자신이 틀리기를 바랬었다. 그러나 자신의 눈이 맞다는것을 확인하자 깊은 한숨이 나왔다. 방안을 들어가보니 선생님은 침대위에서 이불을 턱밑까지 덮고 자고있었다. 선생님의 안방에 들어와 보기는 처음이었다. 방안은 그녀의 인상답게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열이 있나 그녀의 이마를 짚어볼려고 가까이 다가갔던 선규는 경악을 했다. 선생님은 식은땀을 비오듯이 흘리고 끙끙거리는 작은 신음소리까지 내고 있었다.
[감기에 걸리셨나? 어제까지는 멀쩡하셨는데]
창백한 얼굴을 짚어보니 뜨거웠다. 놀란 선규는 옆에서 조용히 서있는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언제부터 아프셨니?"
"몰라. 엄마가 아침에 밥 차려주고 잤어"
"그럼 아침부터 그러신거란 말이야?"
그러자 가만히 있던 희재가 입을 열었다.
"엄마는 맨날 이래"
"매일?"
그말을 듣고 선규의 가슴에서는 불안감이 들었다.
[병이 있으신거 아니야? 그런거라면 옆에 누가 있어야 하는데]
"아빠는 오늘도 회사에 나가셨니?"
"....."
아이들이 고개를 숙이고 대답을 하지않자 선규는 이상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왜 그래? 무슨일이 있었어?"
그러자 희재가 시무룩한 얼굴을 들며 말했다.
"어제 엄마와 아빠가 싸웠어"
"......"
선규는 가슴이 철렁해져서 혁재를 돌아보았다.
"무슨일이 있었니? 그리고 아빠는 어디 계셔?"
"아빠는 엄마와 싸우고 어제 나갔어"
"그럼 그이후로 안돌아오셨어?"
"응"
불길함이 엄습해온 선규는 아무말없이 잠들어 있는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선생님이 아셨나?]
"아빠회사 전화번호 가지고 있니?"
아무래도 아픈 선생님과 아이들만 나뒀다가는 안되겠다싶어 물어보자 혁재는 전화번호 수첩을 찾아가지고 왔다. 거실에 나가 수첩에서 전화번호가 찾고 전화를 걸어보니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전화기를 내려놓고 잠시 생각에 잠기던 선규는 다시 전화를 들어 약국으로 전화했다.
"엄마. 나야"
그러자 전화기에서는 뜻밖이다는 엄마의 음성이 들려왔다.
"왠일이니? 네가 밖에서 전화를 다하고"
"선생님이 편찮으셔"
"뭐?"
선규가 증상을 얘기하자 엄마는 선생님집으로 오겠다고 했다.
"됐어. 집하고는 먼거린데 엄마는 약국을 봐야 하잖아. 몸살이라면 나혼자 약국가서 약을 지어오면 되니까 처방이나 말해줘"
"네가 혼자 할수 있겠어?"
"아휴, 내가 약사아들인데 그것도 못할까"
엄마가 얘기하는 처방전을 쓰는데 문득 그녀가 궁금한 투로 물었다.
"그런데 선생님남편은 계시지 않니? 오늘은 일요일이잖아"
"회사일때문에 일요일에도 바쁘시데"
"그렇구나"
조용히 말하는 엄마의 어조에는 어딘가 모르게 동정이 담겨져 있었다.
"엄마, 아무래도 아이들만 있어서 선생님이 일어나신후에 가야할거 같애"
"그래야겠다. 선생님 간호 잘 해드려. 너한테 잘 해주시는 분이잖니?"
"걱정마"
"그리고 늦으면 꼭 전화해야 한다"
"알았어. 그럼 끊을게"
선규는 웃으면서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날 엄마에게 추궁을 받은 이후로 그는 조금도 늦지않고 칼같이 집에 들어갔었다.
[아직까지 걱정이 되나보지?]
그러면서 약국으로 가려고 일어나다가 문득 앞에 처량한 모습으로 서있는 아이들을 보게 되었다.
"너희들 점심은 먹었니?"
아이들이 고개를 내저으자 선규는 얼른 부엌으로 가보았다. 밥통안에는 밥이 있었고 냉장고안에는 음식물들이 들어있었으나 밥을 차린적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몰랐다.
[이럴때 태수같았으면 차려줄수 있는데. 부엌일을 해봤어야지]
지갑을 꺼내 돈이 충분히 있나를 확인하고 그를 물끄러미 보고있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뭐를 먹고싶니?"
"....."
"괜찮아. 형이 사줄게"
"....."
"피자 먹을래?"
그러자 서로를 마주보던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선규는 미소를 짓고는 혁재의 손을 잡으면서 부드러운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혁재야, 형이 나가서 엄마약과 피자를 사올거야. 그러니까 그동안 형이나 아빠외에는 절대 문을 열어주면 안된다. 엄마도 모르는 사람에게는 문열어주지 말라고 그랬지?"
혁재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에는 희재에게 말했다.
"내가 없는동안 희재는 오빠말을 잘 듣고있어. 그래줄수 있지?"
희재도 고개를 끄덕이자 선규는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일어섰다. 그러나 아무래도 아이들만 남겨두고 가기는 안되겠다싶어 다시 돌아섰다.
"옷 입어라. 같이 나가서 피자 먹고오자"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아이들은 부리나케 방으로 뛰어갔다. 그러한 그들의 모습을 보며 웃던 선규는 혹시 나가있는동안 선생님이 깰지도 몰라 메모를 썼다.
아이들에게 피자를 먹이고 돌아왔어도 선생님은 여전히 앓아 누워있었다. 배가 불러서 그런지 아이들이 제방으로 가서 뛰어놀자 선규는 수건에 물을 적셔 가지고와서 선생님얼굴에 흐르는 땀을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 예전에는 몰랐었는데 유심히 바라보니 선생님은 곱게 생긴 얼굴이었다. 그리고는 안스러운 생각이 들어 저도모르게 그녀의 얼굴을 살며시 어루만졌다. 땀때문에 끈적끈적함이 있었지만 평소보다 여위어진 선생님의 얼굴은 왠지모를 친근함을 가져다 주었다. 보드랍고 말랑말랑한 피부를 만지다가 문득 자신이 무슨짓을 하고있다는것을 깨닫자 흠짓 놀랐다.
[내가 돌았나? 선생님의 얼굴을 만지고....]
혹시 아이들이 봤을까봐 주위를 돌아본 선규는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안도했다. 다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니 신문배달을 하면서 처음 그녀를 만났을때 찬바람이 불었던 얼굴이라고는 도저히 믿겨지지가 않았다. 그러자 가슴한구석에 간직하고 있었던 그녀의 차가웠던 인상이 점차적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한동안 그녀를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으니 선생님남편이라는 사람이 도무지 이해가 안되었다.
[귀여운 자식들과 이런 아내가 있는데 왜 그러지? 선생님이 마담보다는 백배 낫구먼. 하긴 아빠도 엄마와 나를 버리고 그랬는데......]
착잡한 심정이 들어 방바닥에 가만히 앉아 선생님이 일어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녀와 아이들을 돌보느라 방들을 왔다갔다하다보니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중국음식을 시켜 아이들과 저녁을 먹었다. 그러다보니 지갑에서는 돈이 다 떨어지게 되었으나 이상하게도 아깝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어린 아이들이라 그런지 일찍 잠이 들었다. 애들의 이불을 덮어주다가 혁재의 얼굴을 보니 문득 착잡한 심정이 생겨났다.
[얘도 크면 나처럼 저아빠와 똑같이 굴겠구나]
그리고는 방을 나와서 시계를 보니 9시가 넘고 있었다.
[이러다가 내일 학교에 못나오시겠네. 그나저나 나도 여기서 밤을 지새울수는 없는데. 도대체 남편이란 사람은 어디 있는거야? 오늘도 마담하고 있나?]
불현듯 마담을 생각하자 오늘 그녀의 집에 가지 않은것에 대한 두려움이 또다시 일었으나 선생님을 아프게 한것은 그녀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느껴져 화도 치밀어 올랐다.
[옛날에 결혼한 남자가 도망갔었다고 그랬지? 자신이 그렇게 당했으면 남한테는 똑같은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할거 아니야. 그런 여자한테 오늘 안가길 잘했어]
선생님남편에게 낮부터 몇번이고 전화를 했었으나 헛수고였다. 다시 선생님방에 들어가 어둠속에서 얼마동안 침대옆에 앉아있는데 고요히 잠들어 있던 그녀의 입에서 가느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음........."
멍하니 방바닥에 앉아있던 선규는 벌떡 일어나 불을 켜고 선생님옆으로 갔다.
"응........"
그녀가 일어났나해서 반갑고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는데 선생님은 눈을 비비며 상반신을 조금 일으켰다.
"일어나셨어요?"
"....."
그말에 그녀는 선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직 정신을 덜 차렸는지 멍한 표정이었다.
"이젠 괜찮으세요?"
"선규니?"
"네"
이상한 얼굴로 쳐다보던 선생님은 그제서야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네가 여기에는 왠일이니?"
"오늘 찾아뵙는다고 그랬잖아요"
"맞아. 그랬었지. 내가 깜빡 했다. 그런데 지금 몇시니?"
"저녁 9시 반정도가 됐어요"
"뭐?"
그말을 듣고 선생님은 두눈을 번쩍 떴다.
"그럼 네가 여태까지 여기 있었단 말이야?"
"네. 선생님이 이렇게 아프시고 애들도 혼자 있어서 갈수가 있어야죠. 그래서 그냥 여기에 있었어요"
"그래도 그렇지. 밥은 먹었니? 아니면 내가 지금 차려줄게"
"먹었으니까 신경쓰시지 마세요"
"애들은 지금 어딨니?"
"자요"
"밥을 안먹었을텐데..."
그녀가 근심하는 표정을 짓자 선규는 겸연쩍게 웃으면서 말했다.
"제가 부엌일을 할줄 몰라서 애들에게 피자와 중국음식을 사줬어요, 선생님의 허락없이 그래서 죄송해요"
"네가?"
입을 벌리고 놀라던 그녀는 이내 그의 손을 잡고 미안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선생님의 말에는 여전히 아픈 사람같이 힘이 없었다.
"미안하다, 선규야. 나때문에 아까운 시간을 그냥 보냈구나. 애들에게 사준거 얼마니? 내가 돈 줄게"
"아니에요. 저도 먹었는데요"
그가 쾌활하게 대답하자 그녀는 말없이 눈가에 미소를 머금고 바라보았다. 그러는 선생님이 왠지 매우 쓸쓸하게 보였다.
"혁재아버지께서는 아직 안들어 오셨어요"
선규가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말을 하자 선생님은 그와 반대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한참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괜한 말을 해서 침울한 분위기를 만들었다싶어 그는 얼른 옆에 있는 약봉다리를 내밀었다.
"선생님, 식사하시고 이거 드세요"
그러자 그녀는 다시 고개를 돌리고 선규손안에 있는 약봉다리를 보았다. 그러는 선생님의 눈은 어딘지 모르게 빨갛게 보였다.
"그게 뭔데?"
"약이에요. 제가 낮에 약국에서 사왔어요"
"약?"
선생님이 놀란 표정을 짓자 선규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저희 엄마가 약사이세요. 그래서 아까 전화를 해서 엄마한테 처방을 받아 약을 지어온 거에요. 저도 어깨너머로 배워서 증상 볼줄을 아니까 걱정마시고 드세요"
선규의 말을 듣고 선생님의 얼굴에는 감동과 고마움의 표정들이 섞여졌다.
"너에게 뭐라 할말이 없구나. 애들을 돌봐준것도 고마운데. 어머님께 꼭 내가 감사하다고 전해라"
"네"
"네어머님을 뵐 낯이 없다. 괜히 나때문에 네가 공부도 못하게 만들고"
"우리엄마는 아픈사람을 보면 반드시 도와줘야 한다는 성격이시니까 걱정하시지 마세요"
"그래도 그렇지. 어머님한테는 네가 어떤 자식인데..... 스승이 되어서 제자에게 공부나 방해하고....."
선생님이 씁쓸한 인상을 지으며 한숨을 쉬자 선규는 그만 가야겠다싶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생님이 일어나신걸 봤으니까 저는 이만 가볼게요. 푹 쉬세요"
"갈려고?"
"네. 제가 있으면 쉬시지도 못하시잖아요"
그말을 듣고 이불속에서 일어나던 선생님이 그만 비틀거리자 선규는 얼른 그녀를 잡아 침대위에 앉혔다. 어찌나 땀을 많이 흘렸던지 그녀의 옷은 물에 젖은것처럼 축축했다.
"오늘 드신게 없으셔서 기운이 없어 그러세요. 저혼자 갈테니 선생님은 그냥 누워 계세요"
"그래도 네가 애들과 나에게 잘 해줬는데 내가 배웅이라도 해줘야지"
"괜찮아요. 그러다가 진짜 병나시면 어떡해요?"
"아니야. 그냥 이렇게 너를 보내면 내마음이 편치않을거 같아서 그래"
선규의 가슴에 잠시 기대고 있던 선생님은 부시시한 머리카락들을 쓸어넘기며 창피한듯이 조용하게 말했다.
"너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서 미안해"
"아프신걸 가지고 뭘 그러세요?"
희미한 웃음을 짓던 그녀는 그를 붙잡고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선규도 할수없어서 그런 그녀를 도와주기만 하고 있었다.
"잠깐 나가서 기다릴래? 내가 금방 씻고 옷갈아입고 나올게"
"혼자 하실수 있으시겠어요?"
그러자 선생님은 너털웃음을 내지었다.
"나 씻는거까지 네가 도와줄래?"
그말에 선규는 얼굴이 빨개지며 얼른 방문쪽으로 갔다.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을테니 제신경 쓰시지 마시고 천천히 하세요"
그리고는 방문을 열고 나갈려고 하는데 다시 선생님의 힘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선규야"
"네?"
"너 집에서도 어머님께 이렇게 잘하니?"
"그건 왜 물어보세요?"
"난 태수가 집에서 이렇게 효자노릇을 하고 너는 그냥 개구장이인줄로 생각했었거든"
그러자 선규는 크게 웃었다.
"선생님께서 정확히 보신거에요. 저는 엄마속을 썩이는 그런 평범한 아이거든요"
그말을 듣고 선생님은 그와 함께 웃음을 짓더니 화장실로 가버렸다. 거실에 나온 선규는 집에 전화를 걸어 엄마한테 곧 떠난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얼마를 기다리고 있자 새옷을 입고 머리를 단정히 빗은 선생님이 나왔다. 그녀는 택시비를 주며 큰길까지 나오겠다고 했으나 선규는 간신히 만류하며 대문앞으로 나왔다.
"버스타면 금방인데 뭣하러 택시를 타요? 그리고 선생님이 나오시면 애들이 집에 혼자 있게 되는거잖아요"
"그러면 이돈이나마 가지고 가. 내가 미안해서 그래"
"그러시지 마시고 그돈으로 애들한테 맛있는거나 사주세요. 저는 정말 괜찮아요"
선규가 끝내 돈을 안받자 선생님은 아쉬운 기색으로 마지못해 돈을 집어넣었다.
"내일 학교에 나오실수 있으시겠어요?"
"내일부터 음악시험들이 줄줄이 있는데 나가봐야지. 네가 이렇게 나를 간호해줬으니까 내일은 틀림없이 괜찮아질거야"
"너무 무리히시지 마세요. 선생님이 병나시면 저와 태수는 학교에서 고생해요. 저희들은 선생님이 안계시면 아무것도 못하잖아요"
"알았어"
그녀가 웃으며 대답을 하자 선규는 인사를 하고 대문을 나섰다.
"선규야"
"네?"
"오늘 정말 미안하고 고마웠다. 제자한테 이런 대접을 받아보기는 처음이야"
그러자 선규는 쑥스러워져서 고개를 숙였다.
"당연한 일을 한건데 뭘 그러세요? 편안히 쉬세요. 저는 내일 뵐게요"
다시 인사를 하고 가는 선규를 선생님은 그가 시야에서 사라질때까지 움직이지 않고 바라보고만 있었다.
집으로 가던 선규는 선생님이 자꾸 마음에 걸려 저도모르게 마담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유를 모르겠지만 선생님의 남편이 마담과 같이 있을거란 예감이 계속 들었다.
[아무리 부부싸움을 했다고 하지만 아내가 아픈데도 집에 늦게까지 안들어오는 사람이 어딨냐? 정말로 마담과 같이 있으면 어떡하지?]
아파트앞으로 다가가서 마담집의 창문들을 올려다보니 불은 꺼져있었다.
[마담은 아직 가게에 있는가 보구나]
그리고는 집으로 갈려고 하는데 저멀리서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보였다. 무심코 다가오는 차를 바라보니 그것은 술집앞에서 보았던 선생님남편의 차와 똑같은 모델이었다. 그래서 설마하는 생각으로 얼른 다른 자동차의 뒤에 숨어서 지켜보았다. 그의 앞을 지나가는 자동차안은 어두어서 잘 보이지가 않았다. 그러나 주차하는 자동차의 번호판을 살펴보니 바로 저번에 외웠던 선생님남편차의 번호와 일치했다.
[설마, 진짜로?]
긴장이 되어 숨소리도 내지않으며 유심히 보고있으니까 이윽고 라이터와 시동이 꺼진 차안에는 두남녀와 나와 서로를 다정하게 끌어안고 아파트입구로 걸어왔다. 선생님남편과 마담을 확인하자 선규는 절망감으로 그만 두눈을 질끔 감았다.
[뭐 이런 남자가 있어? 전화도 안받고 그러더니 역시 마담과 같이 있었던거구나. 아내는 집에서 앓아 누운줄도 모르고]
극심한 분노가 치밀어 올라 당장이라도 달려나가 선생님남편과 마담을 때려눕히고 싶었다. 하지만 제삼자인 그가 잘못 끼어들었다가는 괜히 남의 집에 평지풍파를 일으킬수가 있어 끓어오르는 분노를 간신히 참았다.
[이남자가 집에 들어갈려나? 이거 선생님이 진짜로 엄마처럼 되시는거 아니야?]
일어나서 선생님남편과 마담이 들어간 입구를 한참동안 노려보던 선규는 뒤를 돌아 버스정류장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명숙은 올시간이 지났는데도 선규가 돌아오지를 않자 몹시 초조해졌다. 그동안 시간을 잘 지키며 들어오던 애가 갑자기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들어오지를 않으니 별의별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안오는거야? 선생님집에서 나온 애가 설마 이상한 곳을 간건 아니겠지?]
그러면서 거실안을 서성거리는데 선규가 들어오자 급히 현관으로 달려나갔다.
"아까 출발한다고 전화 해놓고는 왜 이렇게 늦은거야? 어디 들렀다 온거야?"
그녀가 신경질을 내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선규는 알수없는 표정으로 명숙을 쳐다보다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시험때문에 선생님과 얘기를 나누다가 늦었어. 미안해"
"그..그랬어? 그럼 전화라도 해주지"
할말이 없어진 명숙이 부끄러워서 우물쭈물하자 선규는 다가와서 그녀를 다정하게 껴안았다.
"다음부터는 꼭 전화할게. 걱정하게 해서 미안해"
왠지 선규가 힘이 없어 보여 명숙은 어리둥절했다.
"선생님은 괜찮으시니?"
"응. 엄마한테 감사하다고 전해달래"
"선생님남편은 아직 들어오시지를 않은거니?"
그러자 선규는 슬프게 보이는 눈으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침대에 누워있는 명숙은 옆에 있는 아들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선규는 풀이 죽은듯 내내 아무말이 없었고 얼굴표정도 마치 넋이 나간듯이 보였다.
"선규야"
"응?"
"선생님집에서 무슨일이 있었니?"
"아니. 왜?"
"그냥 네가 힘이 없어 보여서"
"피곤해서 그런가봐. 오늘 하루종일 아이들을 돌보고 선생님을 간병했었잖아"
"네가 그래서 선생님이 감동하셨겠다"
"그거가지고 뭘. 아프신 선생님에게 제자가 그러는건 당연한건데"
등을 돌리고 있는 선규가 조용한 소리로 말하자 명숙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선규가 착하기는 착해. 다른애들 같았으면 그러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그러자 그녀의 가슴속에는 아들에 대한 애틋함과 사랑스러움이 충만해져 뒤에서 선규를 살며시 끌어안았다. 선규는 그녀가 안아주는것을 무척 좋아했고 그녀도 그를 안고있으면 마치 이리저리 방황하는 새를 품안에 안은것 같아 마음이 편안했다. 한동안 그녀의 품안에서 침묵하고 있던 선규는 별안간 착잡하게 들리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엄마"
"응?"
"엄마는 아빠가 바람핀걸 처음 알았을때 기분이 어땠어?"
그말을 듣고 명숙은 순간적으로 경직이 되었다.
"그건 왜 물어보는데?"
"갑자기 궁금해서 그래"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얘기하는 선규의 말을 듣고 그녀는 의아해 했다.
[또 무슨생각이 나서 이러는거야?]
하지만 그때의 일이 떠오르니 마음이 괴롭고 착잡하기도 해서 어둠속을 가만히 응시했다.
"처음에는 믿겨지지가 않았어. 아니 믿지를 않을려고 했었지"
"....."
"그런데 계속 증거가 나오니까 세상이 무너지는것 같은 절망감이 생기고 네아빠에 대한 배신감이 들어 화가 나더라. 그리고는 내가 뭘 그리 잘못해서 내남자가 바람을 피우게 됐나하는 의문이 들었고. 내자신한테도 문제가 있는것 같아 속이 많이 상했었어. 다른 여자들처럼 내남자만은 그러지 않을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거든"
선규에게서 떨어져 바로 누운 명숙은 긴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계속 했다.
"결혼을 했었을때는 세상을 다 가진것 같아 행복이 영원할줄 알았는데. 그러고보면 인간의 일이란 한치의 앞도 모를 일이야"
그러고나니 속이 울적하고 허탈해서 멍하니 누워있는데 선규가 몸을 돌려 그녀의 품안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얌전하게 있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명숙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다음에 너는 네처한테 그러지마라. 결혼이라는거는 약속이나 다름없는데 그걸 어길바에는 뭣하러 결혼하니? 결혼이 아니라 사귀고 있을때도 그러지말고.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면 나중에 너한테도 그런일이 난다"
그러자 선규는 얼굴을 들고 어둠속에서 한참동안 그녀를 응시했다.
"아빠한테도 상처를 받는날이 올까?"
"모르지. 생각하기도 싫다"
그러고 있는데 그녀의 몸에 닿아있는 선규의 몸이 떨리고 있는게 느껴졌다. 착잡한 심정에서 놀라움과 이상함으로 바뀐 명숙은 본능적으로 떨고있는 아들을 달래주기 위해서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얘가 요즘따라 왜 이렇게 불안감을 주지?]
그러는데 별안간 선규의 뜨거운 혀가 그녀의 입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그녀의 다리에서 전해져오는 아들의 발기되어 가는 성기를 느끼고 내일이 월요일이라서 그의 행동을 멈추게 할려고 했지만 왠지모르게 마음한구석에서 그를 감싸주고 싶은 충동이 나서 그녀도 선규를 껴안고 함께 키스를 해주었다. 그녀의 육체를 애무하던 아들의 손은 곧 잠옷을 모두 벗기고 두다리를 벌렸다. 명숙도 선규의 옷을 전부 벗겨주고 그의 온몸을 더듬어 주었다. 호리호리한 아들의 몸은 오늘따라 금방이라도 깨질것처럼 연약하게 느껴졌다. 잠시후 선규의 성기가 그녀의 안으로 들어오자 명숙은 두다리로 그의 허리를 휘감으며 두팔로 그의 상반신을 얼싸안았다. 오늘은 아들에게 쾌락을 주기보다는 포근한 품안을 제공해 불안정하게 보이는 그에게 조금이라도 마음의 평온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엄마가 아기를 안아주듯이 부드럽고 따듯하게 끌어안았다. 선규는 흐느끼듯한 작은 신음소리를 내면서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고 허리의 움직임을 가속화 시켰다. 그러면서 얼마동안 눈을 감고 자신의 배속에서 나온 몸의 감촉을 음미하며 질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아들의 성기를 느끼는데 갑자기 선규가 하던 행위를 중단했다. 의아심에 눈을 뜨자 여전히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있는 그는 가쁜 호흡을 내쉬며 미안하고도 울적한 소리로 속삭였다.
"미안해, 엄마. 오늘은 더이상 못하겠어"
아들과 성행위를 하면서 한번도 이런일이 일어난적이 없어 명숙의 경악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뜻밖의 상황에 다리에 힘이 풀리자 선규는 말없이 그녀에게서 내려와 다시 등을 돌리고 누웠다.
[왜 이러지? 정말로 이제는 나한테서 만족을 못느끼나?]
몹시 당황한 명숙은 얼른 선규를 안고 그의 반응을 살폈다. 꼼짝을 하지않는 그를 보니 왠지모를 커다란 두려움까지 드는 것이었다.
"왜 그래, 선규야? 피곤해?"
"....."
"그러면 내가 거..거기를 빨아줄까?"
"됐어"
침울하게 들리는 선규의 가라앉은 소리를 듣고 명숙은 가슴이 철렁했다. 아들에게 무슨 문제가 있나싶어 겁이 났고 그녀에게 싫증이 났구나라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했다. 그것은 홧김에 이혼을 하자고 하자 남편이 순순히 그러자라고 말했을때의 느꼈던 감정보다 훨씬 더 절망적이었다. 그래서 떨리는 가슴을 잡고 선규에게 매딜리며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이제는 내가 싫어?"
"내가 왜 엄마를 싫어해?"
"그럼 왜 그래? 한번도 이런일이 없었잖아"
"....."
선규에게서 무슨 대답이 나올지를 몰라 말을 꺼내기가 무서웠지만 명숙은 심호흡을 한다음 애써 차분함을 가지며 물었다.
"마음속에 누가 있니?"
"....."
"그런거야?"
"....."
[여자가 생겼구나]
아들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명숙은 남편이 바람을 피웠을때 가졌던 배신감이 느껴지지않고 커다란 서글픔이 엄습해왔다.
[그래서 아까 나의 의중을 떠볼려고 그런 질문을 했었구나]
언젠가는 이런 일이 일어나 선규가 그녀의 품안을 떠나게 될거라는것을 알고있었지만 막상 닥쳐오니 아들을 잃은다는 생각에 섭섭하고 슬펐다. 더군다나 극심한 외로움까지 스며드는 것이었다.
"내마음에는 엄마밖에 없어"
조용하게 들려오는 선규의 말을 듣고 명숙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말 정말이야?"
"진심이야. 앞으로도 그럴거고"
그러자 그녀는 안도를 하며 가슴에는 기쁨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선규는 한숨을 내쉬며 어두운 음성으로 말했다.
"하지만 내몸안에는 아빠의 피가 흐르고있어 바람을 필지도 몰라. 아들은 아빠를 닮는대잖아"
"....."
선규는 몸을 돌려 그녀의 얼굴을 두손으로 감싸고 진지하게 말했다.
"그렇지만 엄마이외에는 누구에게도 절대 내마음을 주지 않을거야. 그러니까 그런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너무 속상해 하지마"
대관절 선규가 무슨말을 하고있는지를 모르겠으나 어쨋든 지금현재 그에게 아무도 없다는것이 그저 감사하고 다행으로 여겨 명숙은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아들앞에서 얼떨결에 고개만 끄덕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