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들의 교향곡 47부
유진과 함께 병원을 나서는 혜영은 심란했다. 남편이 오래동안 아팠었던 이유로 병원을 마치 제집처럼 들락날락거렸던 그녀에게는 병원이라는 곳이 신물이 나서 근처에 오는것도 싫어했었다. 유진이가 걱정이 되어 따라 오기는 했지만 병원냄새를 맡으니 속이 미식거렸고 또한 남편을 간병하던때가 생각나서 마음이 착잡했다. 그나마 유진에게 별 문제가 없다는것이 위안이었다. 옆에서 유진은 고맙다는 표정으로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아주머니, 감사해요. 혼자 왔었으면 많이 떨렸을텐데 아주머니가 옆에서 제게 큰힘이 되어주셨어요"
"민망하게 뭘 그러니? 원래 누구나 병원가기는 겁이 나는거야. 그나마 별 탈이 없다니 다행이다. 그런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렇다니 요새 힘드니?"
유진은 쑥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신경을 좀 많이 쓰는편이라서 그런가봐요"
"마음을 편하게하고 살어.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전체에 안좋은 법이야"
"네. 명심할게요"
머리를 조아리는 유진을 보고 혜영은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밖에서는 힘든일이 있다하더라도 집에서는 편하게 있어야하는데 그러지를 못하니. 딱하기 그지 없네]
"태수의 피아노실력은 이제 시험을 볼 만큼은 됐니?"
"네"
"그럼 시험도 얼마 안남았으니까 이제 그만 가르쳐라. 너도 일요일에는 쉬어야 할거 아니야?"
"괜찮아요. 그리고 아무리 실력이 그만큼 됐다하더라도 시험 볼때까지는 계속 연습을 해줘야되요. 일요일이 아니면 태수가 연습할 기회가 없잖아요"
"그래도 네게 너무 미안해서 그러지. 괜히 태수때문에 네가 하루라도 마음편히 쉬지도 못하는거 같아서"
"태수와 같이 있으면 마음편하니까 너무 걱정마세요"
"그애가 편해?"
"네"
웃으며 대답하는 유진을 혜영은 묘한 기색으로 쳐다보았다.
"그애에 대해서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너와 옆집에 사는 태수친구뿐인거 같다"
"왜요? 다들 태수를 어려워해요?"
"응. 지난번에 갔었을때 시골어른들도 그러시고 심지어는 태수의 담암선생님까지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 그러고보면 태수가 너와 친구한테는 다르게 행동하는가 보다"
"그럴리가 있겠어요? 그냥 편하게 생각하면 그렇게 보이는거고 그렇지 않으면 어렵게 보이는거죠"
유진의 얼굴표정을 보니 진심인것 같았다. 혜영도 아들을 어려워 할때가 있기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유진이 선규처럼 신기했다.
[이애들이 태수에게서 내가 못보는 점들을 보나?]
그러면서 옆에서 생긋거리며 얘기하는 유진을 보니 기분이 묘하고 이상했다. 마치 딸과 함께 걷는 기분이어서 태수와 다닐때와는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이럴줄 알았으면 딸도 하나 더 낳을걸 그랬나?]
그런생각을 하자 저도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왜 그러세요?"
"이렇게 유진이와 걸으니까 꼭 딸하고 다니는것 같아서. 나한테는 딸이 없잖아"
그러자 유진의 입가에서는 밝은 미소가 지어졌다.
"저도 아주머니와 있으면 마치 엄마와 있는것 같아요"
그말을 듣자 혜영도 함께 잔잔한 미소를 띄우며 유진을 바라보았다.
어제밤에 했던 선규와의 격렬한 섹스로 명숙은 오늘 하루종일 온몸이 쑤셨다. 더군다나 질안은 후끈거리기까지 하여 약국에서 제대로 서있는거조차 힘들었다. 섹스가 끝난후 선규는 미안하다며 몇번이고 사과를 했었지만 계속 그의 행동이 마음에 걸렸다. 그동안 몸까지 던져가며 달래준 탓인지 선규는 정상으로 돌아오는것 같았다. 하지만 얼마전부터 그가 또다시 불안정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어제 섹스를 할때의 선규는 그녀가 한번도 보지 못했던 모습을 보여줬었다. 얼굴에는 분노와 집착 그리고 성욕에 굶주린것 같은 알수없는것들이 섞여있었고 동물처럼 달려드는 그의 모습은 마치 딴사람 같았다. 명숙도 그런 아들의 모습을 보고 무척 당황스럽고 겁이 났었다. 무의식적으로 무조건 선규의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했었지만 일단 행위가 끝나고 정신을 차렸는지 얼굴표정이 정상으로 돌아온 선규가 사과를 해서 불안감과 근심이 엄습해 왔다. 그것은 오늘 하루종일 계속 되었다. 무슨일이 있느냐고 물어봐도 선규는 어느때와 다름없이 아무일도 없다고 대답해서 그녀의 속은 답답하기만 했다.
[학교에서 무슨일이 있나? 하는 일들을 다 때려치우고 선규만을 따라다닐수도 없고 어떡하지? 한번 담임선생님을 찾아가볼까?]
온갖 고민을 하던 명숙은 약국문을 닫고 저녁을 짓기 시작하는데 문소리가 나며 선규가 들어왔다.
"엄마, 나 왔어"
"지금 밥하기 시작했으니까 들어가서 옷 갈아입어라"
하지만 선규는 방에 들어가지 않고 그녀의 뒷모습을 조심스럽게 보고있었다.
"엄마, 괜찮아?"
"뭐가?"
"어제밤때문에 혹시 엄마가 오늘도 아파할까봐 걱정했었어. 어제 많이 아파했잖아"
명숙이 돌아보니 선규는 진심으로 걱정하는 눈치였다.
[분명히 무슨일이 있는게 틀림없어]
그러나 겉으로는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난 괜찮아. 그나저나 정말로 무슨일이 있는건 아니지?"
"아니라고 몇번이나 말했었잖아. 어제는 내가 잠깐 머리가 어떻게 됐었나봐"
끝까지 말을 하지 않는 선규를 보고 명숙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돌아서서 저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선규는 뒤로 다가와서 그녀의 허리를 살며시 껴안았다.
"다시한번 미안해. 엄마를 아프게 할 생각은 절대 아니었는데......"
"이젠 됐으니까 앞으로 안그러면 되잖아. 난 그냥 네게 무슨일이 있나싶어 걱정이 되서 그러는거야"
"정말로 아무일은 없으니까 걱정하지마"
그러는 선규는 그녀의 어깨위에 머리를 기대고 한동안 가만히 서있었다. 그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고 요리를 하는데 그녀의 배위에 있던 선규의 손이 몰래 기어올라오더니 풍성한 유방을 잡고 살포시 주무르기 시작했다.
"선규야, 엄마 밥하잖아"
"나 신경쓰지 말고 해"
명숙은 다시 말을 해서 선규를 방안으로 보낼려다가 그만 두었다. 아무래도 방안에 혼자 놔두기보다는 그녀옆에 있게 하는게 안심이 될것 같아서였다. 선규가 계속 그녀의 젖가슴을 애무하자 문득 언제부터인가 그녀를 만지는 손길이 조금 달라졌다는것을 느꼈던게 기억났다.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정확히 꼬집어 말할수는 없지만 가끔가다 다른 사람이 만지고있다는 느낌이 들때가 있어서 마음이 저절로 조금씩 불편해지기도 했다. 그러던중에 선규의 다른손이 치마속으로 들어와 그녀의 다리를 슬금슬금 타고 올라오는것이 느껴졌다.
"선규야......."
"하루종일 엄마생각이 나서 그래"
그말을 들으니 화도 낼수가 없어 선규가 하는대로 내버려두고 있는데 그가 하복부로 그녀의 엉덩이를 지긋이 누르자 바지안에 있는 발기된 성기가 느껴졌다. 그러면서 그의 손이 그녀의 팬티를 어루만지자 명숙은 신경이 쓰여 더이상은 요리를 할수가 없었다. 선규에게 성욕이 올랐다고 짐작하여 성기를 흔들어 사정을 시켜줄까하고 생각하는데 어느새 그의 손은 팬티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다른손으로는 계속 젖가슴을 애무하고 있었고 그녀의 엉덩이에 성기를 누르는 압박은 멈추지를 않았다.
"방에 들어갈까?"
"아니야. 여기서 이러고 싶어"
그리고는 선규가 그녀의 가느다란 목덜미에 입을 맞추며 뜨거운 입김을 내뿜자 명숙에게는 야릇함이 올라왔다. 아무래도 이상태로는 더이상 저녁을 지을수 없을것 같아 손에 들고있던 칼과 음식물들을 내려놓고 아들에게 기댔다. 어제의 섹스때문에 아픔은 여전히 남아있었으나 선규가 이걸로 마음의 안정을 가질수 있다면 오늘도 다시 할 각오가 되어있었다. 가슴위에 있는 선규의 손이 유두를 찾아 더듬으며 다른손으로 엉덩이를 천천히 어루만지자 그녀의 두다리를 은연중에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는데 손가락하나가 엉덩이의 갈라진 틈사이로 서서히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순간 정신이 들며 긴장이 되었으나 선규의 기분을 깨트리지 않을려고 불쾌감을 참았다. 하지만 점점 밑으로 내려오던 그의 손가락이 음모에 덮혀있던 동굴주위를 건드리자 화들짝 놀란 명숙은 더이상은 도저히 참을수가 없어서 저도모르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선규야!"
그리고는 급히 아들의 품안에서 빠져나와 붉어진 얼굴로 쳐다보았다.
"내가 거기 만지는거 싫어하는걸 알잖아"
선규의 얼굴에서는 실망감이 역력했으나 곧 미안한 표정으로 바꾸며 사과했다.
"미안해, 엄마. 잠깐 잊어먹었나봐. 다음부터는 안그럴게"
그걸 보고 딱하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풀어진 명숙은 다시 부드럽게 타일렀다.
"지금당장 못참겠다면 방에 들어갈래?"
"아니야. 저녁해. 나는 씻을게"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는 선규의 얼굴에서는 다시 실망감과 섭섭함이 나타났다. 아들이 들어간 방문을 한참동안 응시하던 명숙은 한숨을 길게 내쉰후 하던 일을 계속 했다.
계단을 올라온 태수는 학원문을 열려고 하는데 그안에서 소리가 들려 문을 조금 열다가 멈추었다. 문틈으로는 유진과 어떤 남자의 말소리들이 들렸는데 어조를 자세히 들어보니 심상치가 않은 분위기였다.
"어서 나가주세요"
"넌 내마음을 왜 이렇게 몰라주니?"
"선배야말로 왜 자꾸 이러세요? 저는 아무런 감정도 없다고 몇번이나 말했잖아요"
"그애하고는 끝난지 오래야. 그리고 너도 지금 애인이 없잖아"
"아무튼 저는 선배와 사귈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 다시는 나타나지 마세요"
"유진아, 너를 사랑해"
"그런말 하지 말아요"
"제발 내마음을 받아줘"
"언제까지 이러실 거에요? 선배는 그렇게 할일이 없어요?"
"너때문에 아무일도 안돼"
"저는 선배에게 더이상 아무할말이 없어요. 그러니까 어서 나가주세요. 누가 오기로 했단 말이에요"
"네가 계속 내마음을 몰라준다면 나도 어쩔수가 없어"
"선배!"
대화내용에 놀라고 있던 태수는 유진이 다급하게 지르는 소리를 듣자 저도모르게 문을 박차고 뛰어 들어갔다. 그러자 유진을 껴안으려고 그녀의 팔을 붙잡았던 남자는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서고 그를 바라보았다. 유진도 놀랐는지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재빨리 표정을 바꾸며 태수를 가리켰다.
"저사람이 제애인이에요"
"뭐?"
남자는 경악을 하며 쳐다보았다. 놀라기는 태수도 마찬가지였으나 도움을 요청하는듯 간절하게 보이는 유진의 얼굴을 보고 곧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러한 그의 반응을 보고 유진도 안심이 됐는지 남자를 보며 당당하게 말했다.
"이젠 됐죠? 그러니 어서 나가주세요"
그러나 남자는 도저히 믿겨지지가 않는지 계속 그녀와 태수를 번갈아 보고있었다.
"어..언제? 네게는 이런말이 없었잖아"
"사귄지 얼마 됐어요. 그리고 제사생활을 일일이 선배에게 보고해야 되요?"
유진이 차갑게 대답했으나 남자는 여전히 그녀의 말을 못믿겠는지 움직일 생각을 안했다. 태수가 남자를 자세히 살펴보니 20대 초반이나 중반정도로 보였고 그와 비슷한 키에 체격은 약간 왜소해 보였다. 남자가 얼굴빛이 변하며 계속 그러고 서있자 태수는 안되겠다싶어 유진을 엄마처럼 다정하게 바라보며 태연하게 물었다.
"이사람 누구야?"
그말에 유진은 흠짓 놀랐으나 곧 태수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그냥 학교에서 아는 사람이야"
"그런데 이사람하고 무슨일이 있어?"
그러면서 노려보자 남자는 순간 움찔했다. 그러자 태수는 틈을 주지않고 다시 입을 열었다.
"이사람과의 얘기는 다 끝났어?"
"응"
유진이 대답하자 태수는 남자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 겁이 나고 긴장도 됐으나 애써 여유만만한 기색을 지으며 말했다.
"그만 나가주시죠"
아무런 감정이 담겨있지 않은 태수의 또박또박한 말을 듣자 남자는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그와 유진을 한번씩 노려본다음 아무말없이 나갔다.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 태수가 얼른 뛰어가서 문을 잠그자 역시 안도를 하는 유진이 달려왔다.
"태수야, 미안해"
"뭐가요?"
"괜히 나때문에 가짜애인행세까지 했잖아"
"뭐 어때요. 누나에게 아무일이 없으면 된거죠"
하지만 유진은 아직까지 긴장이 안풀렸는지 옆에 있는 의자위에 주저앉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선배와 네가 싸움이라도 할까봐 조마조마해서 혼났어"
그소리에 태수는 웃으면서 유진옆에 앉았다.
"사실은 저도 겁이 났었어요. 그렇게 나이많은 형과 그러기는 처음이었거든요"
"미안해. 다 나때문이야"
그렇게 말하는 유진의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도 서려있었다.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태수는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말했다.
"아까 들어오다가 우연히 누나와 그형이 말하는걸 들었어요"
"....."
"그형은 누나를 정말로 사랑하는것 같던데요. 오래동안 따라다녔다면서요. 그형이 마음에 안드는거에요?"
그러자 유진은 힘없이 웃더니 그와 함께 바닥을 내려보며 입을 열었다.
"그선배는 내친구의 애인이었어"
"....."
"같은과의 선배인데 내친구와 1년정도 사귀었거든. 친구와 같이 만나도 봐서 나도 좋은 사람인줄 알았는데 내친구몰래 뒤에서 이여자 저여자를 만나고 다닌거야. 소문도 바람기가 많다고 안좋더라. 그래서 내친구가 그선배와 헤어졌는데 그뒤로 나를 따라다니는거야. 그러니 그런 사람과 어떻게 사귀니? 그것도 친구의 옛애인을..."
어두운 유진의 얼굴을 보자 태수는 문득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엄마는 유진이 요새 몸도 안좋고 피곤한거 같으니 적당히 연습하고 돌아오라고 신신당부를 했었다.
[그럼 이일때문에 그랬나보지?]
그리고는 유진의 얼굴을 걱정스럽게 쳐다보며 물었다.
"지금은 괜찮아요?"
"응"
"그사람이 자꾸 누나를 귀찮게 해요?"
"관심없다고 수없이 말했는데도 계속 이러네. 여기는 어떻게 알아냈는지 오늘 와보니까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그녀의 말을 듣고 태수까지 겁이 들었다.
[이상한 사람이네. 싫다는 사람을 왜 자꾸 따라다니는거야?]
"도움을 청할 사람은 있어요?"
"이런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도움을 받니?"
유진이 계속 한숨을 쉬며 근심을 하자 태수는 그녀를 지켜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니 이제까지 그보다 나이많은 누나로만으로는 안보이고 엄마처럼 약하게 느껴졌다.
"누나"
"응?"
"만약에 도움이 필요하면 오늘처럼 저를 부르세요. 그러면 제가 달려갈게요"
그러자 유진은 얼굴을 들고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밖에 있을때 불안하면 저희책방에 가 있어도 되요. 엄마도 누나와 있는걸 좋아하시잖아요. 그리고 그남자가 또 나타나면 애인이 있다고 단단히 말해주고요. 그러면 별 문제는 없을거에요"
"....."
"바람기가 있는 남자인데 누나가 계속 그런식으로 나오면 포기하고 다른 여자에게 가겠죠"
그러면서 태수가 조용한 웃음을 짓자 신기한듯이 바라보던 유진은 불안이 섞인 어조로 물었다.
"네말대로 과연 그러겠지?"
태수도 그남자가 어떻게 나올지는 몰랐으나 유진을 안심시켜줄려고 일부러 확신하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마 그럴거에요. 남자가 남자를 더 잘 알잖아요"
그제서야 유진은 안심하는 표정을 지으며 다정한 눈길로 말했다.
"나한테까지 그렇게 신경써줘서 정말 고마워. 오늘일도 그렇고. 네말대로 할게"
"누나에게 어려운 일이 있으면 당연히 도와주는건데 뭘 그래요?"
태수도 함께 미소를 띄며 말하자 유진은 불현듯 생각났는지 신기하다는듯이 물었다.
"그런데 너 아까 어쩜 그렇게 자연스럽게 행동할수가 있었냐? 놀라지도 않았어?"
"누나도 잘 하던데요. 제가 오히려 더 놀랐어요"
그말에 유진은 웃음을 터트렸다.
"만약에 너와 내가 배우가 됐다면 호흡이 잘 맞는 연기자들이 됐겠다"
"아마 그랬을거에요. 그런데 누나는 저를 봤을때 어떻게 그런 생각이 나왔어요?"
그러자 유진은 얼굴에 홍조를 띄며 수줍게 말했다.
"나도 몰라. 너를 보는 순간 그생각이 머리에 떠올랐어"
"누나가 머리가 좋은가봐요"
"기분 나빴니?"
"아니요. 처음에는 솔직히 놀랐었는데 누나가 곤경에 처한것 같아서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용히 웃던 유진은 시계를 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때분에 시간만 잡아먹었네. 어서 연습하자"
"오늘은 그냥 갈게요. 누나가 많이 놀랐잖아요"
"안돼. 시험이 얼마 안남았는데 연습은 꼭 해야지. 오늘 안하면 다음주까지 못하잖아"
유진의 손에 이끌려 할수없이 피아노의자에 앉은 태수는 장난기어린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누나, 제가 진짜로 나이가 들어 보이나봐요"
"엉?"
"아까 그사람이 누나애인이라니까 믿었잖아요"
그러자 유진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태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네가 대학생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아마 다 믿을거야"
그말을 듣고 태수는 자신의 얼굴을 만지며 겸연쩍게 웃다가 유진이 악보를 펼치자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일주일이 흐르고 선규는 가방을 들고 지하철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지난번에 술집마담에게 가게에 놀러가도 되냐고 물어보자 일요일이 그나마 제일 한가한 시간이니 그때 오라고 했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밤늦게까지 친구집에서 공부해야 한다고 둘러대고 옷장에서 가장 어른스럽게 보이는 옷들을 골라 가방에 넣어 가는 길이었다.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은다음 학생처럼 보이는 머리를 다듬어 빗은다음 입고왔던 옷들을 넣은 가방을 보관함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지하철을 타고 술집으로 갔다. 시내중심에서 내려 명함에 적혀있는 주소를 보며 걷다가 마침내 어느빌딩밑에 걸려있는 간판을 찾아냈다. 그것은 간판이 아니라 정확히 말하면 네온사인이었다. 길거리에 서서 그랜드 레스토랑이라고 쓰여져있는 간판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룸살롱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옛날에 3류극장에 미성년자관람불가 영화를 보러갔었을때보다 더 떨렸다. 이곳에 들어갔다가 만약에 걸리는 날이면 대학은 물론이고 인생이 종 친다는것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룸살롱이라는 곳이 너무 궁금했고 또한 여자의 약점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한번은 가야 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가야한다고 했지? 더군다나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갈수 있겠어? 보통사람들도 돈이 없어 못가는곳인데]
다시한번 머리와 옷을 매만진 선규는 심호흡을 크게 한다음 천천히 입구쪽으로 걸어갔다. 낮은 많이 짧아졌지만 아직 저녁 6시밖에 안되서 그런지 그렇게 어둡지는 않았다. 입구가 점점 가까이 다가올수록 선규의 심장은 더 크게 두근거렸다.
[태수와 같이 올걸 그랬나? 에이, 태수가 이걸 알면 아마 펄쩍 뛰었겠지]
입구앞에서 잠시 망설이던 선규는 주위를 살핀다음 태연하게 계단을 내려가 문을 열었다. 그러자 어두운 내부에서는 깔끔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30대 남자가 와서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어떻게 오셨읍니까?"
순간적으로 긴장을 한 선규는 되도록이면 어른처럼 목소리를 깔며 여자가 준 명함을 내밀었다.
"사장님을 뵈러 왔읍니다"
명함과 선규를 주의깊게 살펴보던 남자는 잠시만 기다리리며 다시 정중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다음 사라졌다. 그러한 남자의 태도에 선규는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여기 진짜 레스토랑 아니야?]
아직 영업을 시작하지 않았는지 안에서는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남자가 마담과 함께 다시 나타났다.
"이분이십니다"
남자가 고개를 숙이며 말하자 여자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선규를 쳐다보았다. 짧은 스커트에 정장을 말끔히 차려입은 마담은 아파트에서 보던때와 너무 다르게 보여 선규의 머리는 저절로 숙여졌다.
"왔니?"
목소리도 절제된 음성이었다. 마치 어느 회사의 중역처럼 보였고 이곳에서 보니 마담의 외모는 더욱 매력적으로 보였다.
"수고했어, 미스터박. 내가 안내할테니 가서 하던일을 보도록 해"
그러자 남자는 즉시 공손하게 허리를 굽히더니 사라졌다. 여자가 다시 선규를 보며 따라오라는 손짓을 해서 그는 아무말없이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내부를 보자 선규의 놀라움은 더욱 커졌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봐서 룸살롱이라면 남자들이 술집여자들을 데리고 이마에 넥타이를 동여매며 노래나 부르고 흥청망청 술을 마시는곳으로 생각했는데 여기는 마치 무슨 일류 호텔에 있는 커피샵과 같은 분위기였다. 중앙에 있는 넓은 홀에는 고급스럽게 보이는 가구들이 놓여있었고 가라오께 기계는 보이지가 않았다. 그녀가 방으로 안내하자 그곳도 마찬가지였다. 방은 별장의 응접실에 온거처럼 쾌적하고 아늑하였다. 편안하게 보이는 소파들안에는 높이가 낮은 테이블이 있었고 그위에는 조그만 재떨이와 작은 유리컵안에 있는 초가 있을뿐이었다. 여자가 소파위에 늘씬한 두다리를 모으며 단정히 앉자 선규도 두리번거리며 조금 떨어진곳에 앉았다.
"찾는데 어럽지는 않았니?"
"네"
"너같은 애가 우리가게에 온거는 네가 처음인거 같다"
그말에 선규가 쳐다보는데 별안간 문에서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문이 열리자 아까와는 다른 남자가 역시 단정한 양복차림의 유니폼을 차려입고 들어왔다.
"뭐 마실래?"
"아..아무거나요"
"술은 할줄 아니?"
술이라고는 친구들과 장난으로 맥주를 조금 입에 대본것밖에 없었으나 그래도 마담과 주문을 받는 남자에게 성인같은 인상을 주고싶어서 다른말을 했다.
"어느정도 해요"
"솔직히 말해. 나중에 취하면 곤란하니까"
"아무거나 갖다주세요"
"밥은 먹었어?"
"생각없어요"
눈을 곱게 흘기며 선규를 쳐다보던 여자는 남자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내가 마시는 술하고 안주는 알아서 많이 가져와"
"알겠읍니다"
남자가 문을 닫고 나가자 여자는 소파등에 기대며 다시 선규를 바라보았다.
"오니까 어떠니? 궁금해 했잖아"
"제가 생각했던거하고는 다르네요. 카페같기도 하고 진짜 레스토랑같기도 하고....."
"영화같은데서 봤던거와 달라서 그래?"
"네. 여기는 어떤 곳이에요?"
"일하느라 지친 사람들이 와서 쉬어가는 곳이야"
"여기는 응접실이에요?"
"아니. 손님접대하는 룸이야"
"다 이래요?"
"응"
아무리 생각해도 예사로운 곳이 아닌것 같아서 여자를 대하는 말투도 그도모르게 조심스러워지고 있었다.
"여기서는 뭐라 부를까요? 저도 사장님이라고 부를까요?"
"아니. 보통때처럼 누나라고 불러. 그게 자연스러우니까. 너를 내가 잘아는 동생이라고 해두었어"
"혹시 제가 영업을 방해하는거는 아니에요? 그러면 누나 사무실로 가도 되는데"
"괜찮아. 지금은 손님이 별로 없고 어차피 밤이 되도 오늘은 그리 많지가 않을거야. 여기서 마음놓고 푹 쉬어"
그렇게 말하는 여자의 얼굴은 그에게 선심을 쓰고 있는건지 아니면 딴뜻이 있는건지 도무지 읽을수가 없었다.
"누나는 계속 제옆에 있으실거에요? 혹시 다른일을 봐야 하는거는 아니에요?"
"왜? 내가 네옆에서 술시중을 들어줄까?"
"그..그런뜻이 아니라요....."
말을 잘못 했나해서 우물쭈물하자 여자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는데 문이 열리며 방금전에 주문을 받던 남자가 술상을 들고 왔다. 테이블위에 놓여지는 것들을 보고 선규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고급으로 보이는 양주 2병과 얼음통, 그리고 과일과 마른 안주들을 비롯하여 생전 못보던 음식들이 즐비하게 차려져 있었다. 그의 놀라는 표정을 보며 계속 만면에 웃음을 짓던 여자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가씨 불러줄까?"
"예?"
그말에 성인처럼 행동하겠다는 다짐을 망각한 선규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러자 여자는 고개를 뜻밖이다는듯이 갸웃거렸다.
"왜 그렇게 놀라냐? 그것때문에 온거 아니야?"
"그..그냥 누나를 보러 온거에요..."
"뭘 그리 부끄러워 해? 어차피 나는 여기에 오래 못있으니까 누가 네옆에 있어줘야지. 그래도 우리가게에 온 손님인데 잘 대접해야 하지 않겠어?"
"그러지 않으셔도 되요"
"괜찮아. 내가 네게 주는 선물이니까 부담가질 필요는 없어"
그러더니 지시를 기다리고 있던 남자를 바라보았다.
"누가 좋을까? 미스성이 지금 있나?"
"네. 있읍니다"
"오늘 미스성한테 예약된 손님이 없지?"
"그렇게 알고있읍니다"
"그럼 미스성을 이리로 오라고 해"
이곳에 온 선규의 원래 목적은 마담에 대해서 좀더 알아볼려고 온것이지 다른 여자와 놀려고 온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마담의 말을 들으니 귀가 솔깃했다. 그러나 왠지 겁이 나서 남자가 나가자마자 그녀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다급한듯이 속삭였다.
"저 돈없어요"
"누가 너보고 돈달래? 그동안 네가 내가 주는 돈을 안받고 그래서 이거라도 해주고 싶어 그래. 이래봐도 나는 그렇게 무심한 사람이 아니다"
그래도 안심이 안되는 선규의 얼굴에서는 불안한 기색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하지만 저는 어려요. 이런곳에 와본적도 없고요"
"괜찮아. 네가 하고싶은대로 놀면 돼"
그러더니 마담은 별안간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대신 두가지만 지켜주면 돼. 첫째는 여기에 온걸 아무에게도 말하면 안돼. 여기서 보고 들은것도 절대 입밖에 내지마. 그리고 두번째는 네옆에 있을 아가씨와는 끝까지 갈 생각은 추호도 하지말고. 넌 내거니까. 지킬수 있겠지?"
저도모르게 긴장하며 듣던 선규는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마담은 만족한듯 다시 밝은 표정으로 바꾸었다. 그러는데 노크소리가 들리고 마담의 허락이 떨어지자 문이 열려졌다.
선규는 처음에 마담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여자인줄 알았다. 마담과 마찬가지로 정숙하고 깨끗한 정장차림과 단정한 머리를 한 여자는 그가 생각하던 술집아가씨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학력이 높고 교양도 있어보여 마치 큰회사에서 일하는 커리어우먼이나 회장비서실에 있는 여자를 연상케 했다. 여자가 공손하게 인사를 하자 마담은 선규의 옆을 가리켰다.
"이애 옆에 앉아"
여자가 옆에 다소곳이 앉자 마담은 웃음을 띄며 어리둥절해 하는 선규에게 물었다.
"우리 미스성 마음에 들어?"
"예?"
선규는 기겁을 하며 마담과 옆에 앉아있는 미스성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뭐야? 설마 자기사무실에서 일하는 여자를 데려온건 아니겠지? 아니야. 아까 예약된 손님이 어쩌고 저쩌고 그러던데.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연이어 예상밖의 일들이 일어나서 선규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수가 없었다.
"마음에 안들어? 그러면 다른애로 바꿔줄까?"
"아..아니에요"
또 무슨 생각밖의 일을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선규는 황급히 두손을 내저었다. 마담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미스성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미스성은 일어나서 유리잔에 얼음을 넣고 술을 따라 마담과 선규앞에 놓은다음 접시에 안주들을 조금씩 덜어 그것들도 술잔옆에 놓았다. 행동 하나하나는 예의바르고 무척 조심스러웠다.
[이거 정말로 고급레스토랑에 온거 같네]
"안마시니?"
마담이 술잔을 들고 쳐다보자 선규도 얼떨결에 앞에 있는 술잔을 들었다. 그녀가 마시는것을 보고 함께 술잔을 입에 됐으나 독한 술냄새가 코를 찔러서 조금만 마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이 들어간 가슴속은 화끈거려서 머리가 아찔했다.
"술도 마음에 들어?"
"네. 좋네요"
술맛을 알리가 없는 선규는 그냥 입에서 나오는대로 대답했다. 그러는데 또다시 문이 열리며 이번에는 입구에서 그를 맞아주었던 미스터박이라는 남자가 들어왔다.
"오셨읍니다"
선규가 잘못 본건지도 모르지만 그말을 듣고 마담의 얼굴에서는 약간의 홍조가 보이는것 같았다. 마담은 부드러운 얼굴로 그를 보며 입을 열었다.
"일때문에 나가봐야 해. 나중에 나를 못보더라도 애들한테 일러둘테니까 아무걱정말고 편안히 있다가 가. 그리고 필요한게 있으면 미스성에게 말하거나 소파옆에 있는 전화를 쓰면 돼"
그리고는 표정을 바꾸고 미스성에게 사무적인 소리로 말했다.
"내가 아끼는 동생이니까 갈때까지 잘 모시도록 해"
"알겠읍니다"
그러더니 마담은 선규의 볼을 톡톡 만지고는 기다리는 미스터박과 나가버렸다.
마담에게는 감정이 안좋았지만 그래도 아는 사람이 나가버리니 대단히 어색하고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술 안드세요?"
"네?"
"좋아하시는게 아니라면 다른걸로 바꿔드릴까요?"
"아..아니요. 이걸로 됐어요"
그러면서 미스성을 자세히 볼 기회를 가지게 되자 그녀도 역시 상당히 매력있어 보이는 여자였다. 나이는 20대 중반같았고 늘씬한 다리와 몸매는 모델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더군다나 엷은 화장과 귀티가 흐르는 얼굴은 이런곳에서 일하는 여자와는 어울리지가 않았다. 어색한 침묵을 깰려고 선규는 빈잔과 술병을 미스성에게로 갖다놓았다.
"같이 들어요"
"손님부터 드셔야 해요"
"혼자 마시기가 미안해서 그래요"
선규가 술을 따라줄려고 하자 미스성은 황급히 병을 빼앗아 그녀의 잔에 술을 따랐다.
"이런거는 손님이 하실 필요가 없어요"
차분한 그녀의 얼굴을 보며 선규는 물었다.
"저같은 어린애에게 이러는게 기분나쁘죠?"
그러자 미스성은 엷은 미소를 띄며 대답했다.
"저희들한테는 이곳에 오는 분들은 모두 손님일뿐이에요. 그리고 사장님께서도 잘 해드리라고 하셨잖아요"
"원래는 이럴려고 여기에 놀러온게 아니었거든요. 만약에 저와 함께 있는게 내키지 않으면 나가셔도 되요"
그말을 듣자 미스성은 한참을 쳐다보다가 이내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오늘은 일요일이라서 아가씨들이 별로 없기때문에 여길 나가도 다른 손님을 맞아야 되요. 그리고 사장님의 명이 계셔서 여기 있어야 하고요. 그러니 신경쓰시지 마세요. 아마 제가 나가도 다른 아가씨가 들어올거에요"
선규는 미스성의 공손한 태도가 왠지 불편했다.
"제가 그쪽을 뭐라 불러야 되요?"
"미스성이라 부르시면 되요"
"저기요, 말을 놓으시면 안되요? 그쪽이 저보다 나이가 많은데 제가 불편해서 그러거든요. 저도 그냥 누나라고 부르면 안될까요?"
그말에 미스성은 조금 놀라는 눈치를 보였다.
"뭐라 부르시던 손님마음이시지만 저는 이곳 규칙상 그럴수가 없어요. 이해해 주세요"
[교육을 철저히 시키는가 보구나]
술잔안에 있는 얼음들을 보던 선규는 미스성의 은은한 향수냄새를 맡으며 물었다.
"미스성누나는 뭐하던 분이에요?"
"신상에 대해서 말하는것도 규칙에 어긋나기때문에 말씀드릴수가 없어요"
선규는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그냥 미스성누나가 이런곳에 일하는 사람으로 어울리지 않는것 같아서 물어봤어요"
"그럼 제가 뭘로 보이는데요?"
"커리어우먼이요"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하네요"
미스성이 조용히 웃자 선규는 술병을 보며 다시 물었다.
"이거는 한병에 얼마에요?"
"시중에서는 20만원정도 하지만 여기서는 50만원 해요"
그말을 듣고 선규는 입을 크게 벌리며 미스성을 쳐다보았다.
"그렇게 비싸요?"
"네. 이곳이 보통업소들보다 좀 비싸요"
"이 안주들은요?"
"다 합치면 안주들도 그정도는 할거에요"
"그럼 손님들이 이렇게 시켜요?"
"아니요. 이거는 기본보다 적은거에요. 이술도 우리가게에서는 값이 싼편에 속하고요"
술집에서 남자들이 엄청난 액수의 돈을 쓴다는 말은 들어보았지만 이정도인지는 몰랐다.
[마담이 이가게는 중간정도라 그랬지? 그럼 정말 좋은곳은 도대체 얼마나 한다는 소리야?]
"마담누나는 부자이겠네요"
"사장님에 대해서는 저희들은 아무것도 몰라요"
"이곳에 온지 얼마나 됐어요?
"몇달 됐어요"
그녀의 대답을 듣고 선규는 아무말없이 안주들을 살펴보았다. 접시에는 그림으로만 보았던 캐비어니 훈제연어니 생전 먹어보지 않았던 진귀한것들이 놓여있었다.
"이거 같이 먹어요. 저 혼자 다 못먹거든요"
안주들을 미스성앞에 끌어놓고 하나하나 맛을 보며 쳐다보니 그녀는 먹지도 않고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여기서는 뭐 하며 놀아요? 이런곳이 처음이라 모르거든요"
"보통 손님들끼리 술마시면서 얘기를 나누는데 어떤때는 노래도 부를때가 있어요"
"가라오께기계가 안보이던데요?"
"있으면 지저분해 보이니까 다른곳에 치워놓고 손님들이 찾으시면 그때 가져오죠"
다른 할일도 없어서 선규가 기계를 갖다달라고 부탁을 하자 미스성은 소파옆에 있는 전화기를 들었다. 얼마후에 기계와 엠프가 오고 베이스기타를 든 남자가 들어왔다.
"이사람은 누구에요?"
"밴드에요. 노래할때 옆에서 연주를 해주죠"
베이스기타를 유심히 살펴보던 선규는 남자에게 물었다.
"여기에 전자기타가 있나요?"
"예"
"그럼 그걸 갖다주세요. 아저씨는 들어오시지 않으셔도 되고요"
"알겠읍니다"
남자가 나가자 미스성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입가에 함박 웃음을 짓는 선규를 바라보았다.
"기타 칠줄 아세요?"
"약간 쳐요"
기타가 오자 선규는 어린애처럼 좋아하며 코드를 엠프에 꽃고 자리에 앉아 기타를 들었다.
"이방 방음이 되있죠?"
"네"
기타를 가르치는 형이 전자기타를 갖고있어서 몇번 쳐본적이 있던 선규는 통기타와는 다른 소리를 내는거에 매력을 느꼈다. 전자기타를 치면 마치 그의 가슴속에 있던 응어리들이 터져 나오는것만 같았다. 조율을 하고 볼륨을 맞춘다음 여러곡들을 치며 즉흥연주를 했다. 기타소리에 심취되어 있는 선규는 지금 그가 있는 장소나 옆에 미스성이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한참후에 연주가 끝나자 미스성은 감탄을 했다.
"정말 잘 치시네요"
그녀의 칭찬에 조용히 웃음만 짓던 선규는 목이 타서 저도모르게 잔을 들고 술을 벌컥 들이마셨다. 그러자 그의 가슴속에서는 불이 활활 타오르며 얼굴이 뜨거워지고 눈앞이 빙글빙글 돌았다. 그리면서 술기가 오르자 당황했다.
[이거 독하네. 취하면 안되는데. 엄마한테 친구집에서 공부하고 온다고 했는데 술냄새 풍기고 들어가면 안되잖아]
"여기 화장실이 어디 있어요?"
미스성이 안내해주겠다고 따라나올려고 하자 얼른 말리고 위치나 가리켜달라고 했다. 화장실에서 차가운물로 세수를 한다음 다시 방으로 오다가 불현듯 생각이 나서 마담의 사무실을 찾았다. 혹시 도움이 될만한걸 발견할수 있지않을까해서 어두운 복도를 두리번 거리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미스터박이 웃으면서 다가왔다.
"사장님을 찾으십니까?"
"아니에요. 화장실을 찾고있어요"
당황한 선규는 급히 둘러댔다.
"화장실은 저쪽에 있읍니다. 제가 안내해 드리겠읍니다"
안도를 하며 미스터박을 따라 또다시 화장실로 가는데 어느문이 열리며 빈쟁반을 든 종업원이 나왔다. 그리고 열려진 문틈사이로 어떤 남자와 다정하게 포옹을 하며 진한 키스를 하는 마담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과 몸을 섞었던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 안겨있는것을 보니 왠지 웃음이 나왔다. 그여자가 마담이 아니라 엄마였다면 당장 달려들어가서 양주병으로 그남자의 머리를 내려쳤을게 뻔했다. 하지만 마담이 그러는것은 별로 개의치가 않았다. 그러는데 종업원이 닫는 문틈사이로 마담이 머리를 들고 옆에 앉자 남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와 마주보며 앉아있어 정확히 볼수가 있었다. 그순간 선규는 자신의 두눈을 의심했다.
[저사람은?]
옛날부터 선규는 한번 주의깊게 본 얼굴은 절대 잊어버리지를 않았다. 마담을 안고 애인처럼 다정한 키스를 하던 똑똑하게 생긴 남자는 선생님집에 갈때마다 봤던 사진속의 남자, 바로 담임선생님의 남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