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화 (35/61)

모자들의 교향곡 35부 

어느덧 일주일이 눈깜짝할 사이에 흘러갔다.  그날밤 혜영이 태수의 품안으로 들어간뒤부터 둘은 다시 예전과 같은 관계가 되어 한이불을 덮고 몸을 섞으며 지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모든 감정은 사라지는 법이었다.

 혜영도 그렇게 하며 지내자 시골집에서 가졌던 무거운 마음이 차차 가벼워졌다.  또한 옆에서 태수가 너무 자연스럽게 이끌고 대해주어서 그러기가 더 쉬웠다.  점차적으로 아들에게 빠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며 혜영은 모든 상황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문득 그러기에는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더이상 자신의 이성과 싸우기에는 너무 힘겨웠다.  마음한구석에는 아들과의 있을수 없는 관계가 언젠가는 끝나서 태수가 정상적인 삶을 갖게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일요일아침에 혜영은 옆에서 천창을 보며 가만히 누워있는 태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제밤에도 사랑을 나눠서 그들은 벌거벗고 이불만 덮은채 누워있었다.  살며시 아들의 팔을 쓰다듬으니 태수는 고개를 돌려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모습을 보자 남편과 너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전에는 단지 정신적으로 태수와 남편이 닮았다는 착각을 했었지만 시부모와 시누이의 말을 듣고는 그때부터 태수를 몰래 자세히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었다.  그러고보니 태수의 외모는 애아빠와 무척이나 닮아있었다.  

단순히 아들이 저아빠와 흡사한 말과 행동을 한다고 생각했던 혜영은 왜 미처 이런점을 깨닫지 못했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지금 미소를 짓고있는 태수를 보니 마치 죽었던 남편이 환생해서 그녀옆에 누워있는 느낌이었다.  태수가 다시 고개를 돌려 천장을 바라보자 혜영의 입에서는 저도모르게 남편을 부르는 말이 나왔다.

"여보"

그러자 얼른 고개를 돌린 태수는 놀랐는지 눈과 입이 크게 벌어져 있었다.  그런 말을 한 혜영도 깜짝 놀라며 재빨리 등을 돌려버렸다.  너무나 부끄러운 나머지 가슴은 쿵쾅쿵쾅하며 뛰었고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내가 드디어 정신이 돌았나봐. 아들을 남편부르듯이 부르다니. 태수가 또 저아버지와 착각한다고 얼마나 기분나빠할까?]

그러나 태수는 뒤에서 살며시 껴안더니 빨개진 그녀의 귀에 대고 달콤한 음성으로 말했다.

"왜?"

이번에는 혜영이 기겁을 해서 얼른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태수는 만면에 부드러운 미소를 띄운채 사랑스러운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가 생각나세요?"

"....."

무슨말을 해야할지 몰라 그저 멍하니 있는 혜영에게 태수는 가벼운 입맞춤을 해주었다.

"엄마가 부르고 싶으신대로 부르세요. 저는 괜찮으니까요"

그러면서 연신 미소를 띄운채 그녀의 머리결을 쓰다듬어주자 혜영의 부끄러움과 놀라움도 많이 수그러 들었다.

"미안해. 네가 네아버지를 너무 닮아서 나도모르게 그런 말이 나왔어"

"제가 그렇게나 아버지와 닮았어요?"

"응"

"시골에 갔다와서 옛날 사진들을 찾아서 봤었는데 저는 잘 모르겠던데요"

"그랬어? 네얼굴이고 너무 어렸을때 아버지얼굴을 봐서 그런가보다. 나도 예전에는 잘 몰랐었는데 어른들 말씀을 듣고 자세히 보니까 너무 닮았더라"

"그래서 저를 보시면 아버지생각이 나세요?"

"그럴때가 있어. 내가 그래서 기분나쁘지?"

"저를 보시다가 아버지가 연상되시면 슬프세요?"

"너하고 있으면 행복하니까 그렇지는 않아"

"엄마가 괜찮으시다면 저는 됐어요, 하고싶으신데로 하세요. 엄마가 저때문에 아버지를 생각하시고 거기서 행복을 느끼신다면 저도 기쁘거든요"

그말에 혜영에게는 놀라움이 일어났다.

[무슨애가 이렇게 이해심이 많냐? 왠만한 어른들도 이러기는 힘드는데]

그러는데 태수가 뒤에서 그녀의 목과 허리를 안고 끌어당겼다.  

"그런데 엄마가 여보라고 불러주니까 기분은 좋던데요"

"정말?"

"네. 엄마는 이상하세요?"

"나..나도 모르겠어. 그냥 장가도 안간 너한테 그렇게 부르니 미안하네"

"뭐 어때요? 엄마와 저만 좋으면 됐죠. 엄마는 안좋으세요?"

"몰라. 자꾸 묻지마"

또다시 부끄러움이 올라와 고개를 돌린 그녀에게 태수는 속삭이듯이 말했다.

"또한번만 그렇게 불러주세요"

그말을 듣자 혜영은 다시 태수를 쳐다보았다.

"내가 그래주기를 원해?"

태수가 대답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혜영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숙이고 기어들어가는 음성으로 불렀다.

"여..여보..."

그러자 태수는 기분이 좋은지 웃음을 터트리며 수줍어서 어쩔줄을 모르는 그녀를 더욱 끌어안고 볼에 힘차게 뽀뽀를 해주었다.  혜영도 상황이 기가 막혀서 아들과 함께 웃었다.

"이러다간 우리 진짜로 부부가 되겠다"

"그럼 부부가 되죠, 뭐"

웃던 혜영은 그말에 정신이 들어 아들의 얼굴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너한테는 엄마가 있어야하고 나한테도 아들이 있어야 돼"

그녀의 말뜻을 알아챘는지 태수도 웃음을 그치고 진지하고도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무려면 어때요? 제일 중요한건 엄마와 저의 마음이잖아요?"

한참동안 아들을 응시하던 혜영은 이윽고 조용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태수에게는 매번보는 엄마의 미소짓는 모습이 이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보였다.  그런 그녀의 얼굴을 보고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는 태수는 머리를 숙여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키스를 받던 혜영은 밀착되어오는 성기가 감지되었다.  히프에 붙어서 커져가는 성기와 함께 그녀의 몸을 더듬는 아들의 손길도 느껴졌다.  아들의 손이 귀중한 물건을 다루듯이 조심스럽게 만지며 지나가자 또다시 전율을 느끼는 혜영은 몸을 돌려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이윽고 입을 뗀 태수는 엄마의 목덜미로부터 젖가슴과 복부를 음미하며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들의 혀와 입술이 지나갈때마다 몸을 파르르 떨었던 혜영은 이미 거친 숨결을 내쉬고 있었다.  잠시 아무런 느낌이 나지가 않아서 눈을 떠보니 바로위에서는 태수가 그윽한 눈길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제는 그와 사랑을 나눌때 더이상 아들로 여겨지지가 않았고 젊었을때 남편에게 가졌던 감정처럼 사랑과 애틋함이 일어나서 태수가 자신과는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는것처럼 느껴졌다.  두손을 아들의 가슴에 얹고 마주보던 혜영은 태수가 다시 키스를 하며 옆에 있던 콘돔을 가져오자 그걸 받아서 뜯고는 그의 성기위에 입혔다.  이제는 많이 익숙해져서 안보고도 자연스럽게 할수있는 일이었다.  그런다음 태수가 위로 올라오자 그녀의 두다리는 자동적으로 벌어져서 그가 들어오기만를 기다렸다.  얼마가 지나고 태수는 엉덩이와 허리를 밑으로 내리면서 엄마안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혜영은 얼굴을 약간 찡그렸으나 이제는 아들의 성기에 많이 익숙해져 있어서 예전만큼의 아픔은 없었다.  두모자는 아무말없이 거친 숨소리만 낼뿐 간간히 뜨거운 키스를 하며 몸을 움직였다.  땀에 젖는 서로의 몸을 애타는듯이 더듬으며 한참을 그렇게 하고있자 혜영은 저멀리서 무언가가 올라오고 있다는것을 감지했다.  또 지나가는 약간의 오르가즘인가보다하고   단순히 생각했지만 태수가 허리를 흔드는 속력을 빨리 할수록 그녀의 육체안으로 엄습해오는 그무엇인가는 평소와는 다르게 점점 크기가 불어나고 있었다.  정신없이 성기를 움직이기에 여념없던 태수는 엄마의 몸에서 조금씩 경련이 일어나고 있는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를 안고있는 그녀의 팔에서는 점점 힘이 들어갔고 입에서는 신음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땀을 비오듯이 흘리며 마지막 지점까지 온몸에 힘0?쓰던 태수는 마침내 사정을 했다.

"아!........"

그순간 혜영의 몸안에서 쌓여만 갔던 크기를 알수없는 덩어리는 폭발을 하며 어마어마한 전율과 여운이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그러한 현상을 도저히 감당할수 없었던 혜영은 커다란 탄성을 내지르며 온몸을 격렬하게 떨기 시작했다.

"아악!........ 허억!..........."

사정을 마저하던 태수는 엄마의 외침을 듣고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며 그녀의 육체가 심하게 경련을 일으키고 있다는것을 알아챘다.  순간 엄마에게 이상이 온줄 알고 본능적으로 성기를 뺄려고하자 그녀는 그가 움직일 틈도 주지않고 두다리로 허리를 꽉 휘감고 두팔로도 그의 목을 붙들어 메었다.  그러면서 활처럼 몸을 휘어 그에게 더 바짝 달라붙자 태수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경악에 찬 눈으로 엄마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하악!........ 아!........."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커다란 물결이 지나가자 혜영은 힘을 주고있던 두다리와 팔을 풀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몇번이나 큰전율이 찾아와서 저도모르게 부들부들 떨며 발광하듯이 움직였다.

"아이씨....... 아........."

알수없는 긴시간이 흐른후에 혜영은 비로소 잠잠해질수가 있었다.  헐떡거리면서 오르가즘의 여운을 즐기던 그녀는 힘없이 감고있던 눈을 뜨다가 바로위에서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태수의 얼굴을 보고서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엄마, 괜찮으세요?"

태수의 근심어린 어조를 듣자 혜영은 비로소 아들이 보는앞에서 오르가즘을 느끼며 발광했다는것을 깨달았다.  할때는 아무정신이 없어서 몰랐었는데 그걸 깨닫자 너무나 부끄러워 몸들바를 몰랐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까 태수는 그녀가 오르가즘을 가졌다는것을 모르고있는 눈치였다.

"어디 아프신거는 아니죠?"

"괘..괜찮아"

"정말이죠? 몸에 이상이 있으신줄 알고 놀랬어요"

"그..그냥 좋아서 나..나도모르게 그랬던거야"

그제서야 태수는 안도의 표정을 짓고는 그녀에게서 내려올려고 하는데 혜영이 급히 붙잡았다.

"잠시만 이대로 있어줘"

그러자 태수는 미소를 띄우면서 가볍게 입맞춤을 하고는 그녀의 뜻대로 가만히 있었다.  아직까지 여운이 가시기가 않아서 태수를 계속 안고싶었던 혜영은 눈을 감고 몸안에 있던 물결이 서서히 고요해지고 있는것을 느꼈다.  생각을 해보니 이런 기분은 결혼초이후에 처음이었던거 같았다.  남편이나 태수와 성행위를 했을때는 그저 사랑하는 사람에게 안겨있다는 자체만이 좋아서 오르가즘에 대해서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하지만 막상 느껴보니 너무나 좋았고 아들이 자신에게 오르가즘을 가져다 주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다.  그래서 그녀위에서 조용히 누워있는 태수가 대단하기까지 여겨졌다.  

[이제보니 어린애가 아니네. 저엄마를 만족시켜주고. 그런데 어떻게 그게 왔지? 그냥 어쩌다가 한번 온건가? 거참 신기하네]

몰래 웃음을 짓던 혜영은 문득 태수와 그동안 거의 매일같이 성관계를 가졌다는 생각이 들자 걱정이 들었다.

[이러다간 진짜로 아들을 잡겠어. 이젠 좀 자제해야지. 항상 그렇게 생각하면서 태수따라 같이 하는 나도 이상해]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혜영은 어서 아들에게 아침을 지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나서 조용히 말했다.

"이제 일어나자. 밥 먹여야지"

그말에 태수가 조심스럽게 내려오자 혜영은 일어날려고 했으나 몸에 힘이 빠져서 제대로 걷기가 힘들것 같았다.

"엄마 먼저 씻으실래요?"

"아니야. 네가 먼저 씻어라"

그리고는 옷을 챙겨들고 나갈려고 하는 태수를 보다가 조그만 목소리로 불렀다.

"태수야"

"네?"

"이리와봐"

영문을 모르는 태수가 누워있는 그녀에게 다가오자 혜영은 그를 끌어안고 깊숙한 키스를 해주었다.  아까부터 엄마의 행동이 평소같지가 않아서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녀가 기분이 매우 좋은것 같아서 태수도 덩달아 기뻤다.  

"빨리 씻고 나올게요"

"천천히 해도 돼"

밝은 미소를 지으며 나가는 아들을 혜영은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저런애가 이세상에서 어디있어? 착하고 이해심많고 나중에 크면 당연히 돈많이 벌어 저가족을 먹여 살리겠고 그리고 그일도 잘하잖아. 내자식이라서 그런게 아니라 남들이 봐도 완전히 일등신랑감이네]

간신히 몸을 일으켜 옷을 찾던 혜영은 방구석에 놓인 카셋트기를 발견했다.  음악이나 들어볼까하고 가져와보니 안에는 이미 테이프가 들어있었다.  무심코 플레이버튼을 눌러보니 카셋트기에서는 Harry Nilsson의 'Without You'가 나왔다.  혜영도 아는 노래이어서 볼륨을 맞추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유진이학생이 준 모양이지? 정말 오래간만에 듣는구나]

마음이 편해진 혜영은 팔베개를 하고 태수생각을 하면서 평화롭게 음악감상을 했다.

책방에서 백과사전들을 정리하기에 여념이 없었던 태수는 유진이 들어온줄도 몰랐다.

"뭐하니?"

뒤에서 말하는 유진의 소리에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 그녀는 웃으면서 호기심어린 눈으로 사전들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언제 왔어요?"

"방금전에. 사람이 들어온것도 모르더라"

"이거 정리하기에 바빠서 그랬어요. 백과사전들인데 지난번에 엄마가 주문하셨거든요"

"그랬었구나. 지난주에 오질 않아서 못봤거든. 내가 도와줄일은 없니?"

"없어요. 안그래도 거의 끝나가던 참이었요"

유진이가 오고해서 태수는 이참에 잠시 쉬기로 했다.  

"구정은 잘 보냈니? 시골에 간다고 그랬었잖아"

"재미있게 잘 보냈어요. 누나는요?"

"손님들이 많이 찾아와서 부엌에만 있었지, 뭐"

"아주 힘들었겠네요. 저도 엄마를 도와줄려고 그랬다가 야단만 맞았어요"

"왜?"

"남자가 부엌에 들어오면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안좋아 하신대요. 제가 들어오니까 펄쩍 뛰시는데 별수가 있었어야죠"

이해가 안된다는 태수의 표정을 보고 유진은 웃음을 터트렸다.

"옛날분들은 다 그러시잖아"

"그냥 엄마를 도와주는건데 왜 그게 잘못된건지 모르겠어요. 누나집도 그래요?"

"나이드신분들은 누구나 다 그러시지"

"뭐가 그리 복잡한지를 모르겠어요"

고개를 도리도리 내젓는 태수를 웃으면서 바라보던 유진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버지 산소에는 찾아가봤니?"

"네. 엄마와 갔었어요"

"오래간만에 찾아뵙는거여서 기분이 뭉클했겠다"

태수는 그때를 생각하자 복잡한 감정이 일어나서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어렸을때는 잘 몰랐는데 이번에 찾아뵈니까 기분이 새롭기도 하고 이상하더라고요"

"아버지께 무슨 말씀을 드렸어?"

"엄마를 잘 보살펴 드리고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약속드렸어요"

그러자 유진은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도 엄마한테 가면 그런 말을 하곤 했었는데"

"이번에 바빠서 찾아뵙지 못했죠?"

"응. 다음번에 가봐야지"

그렇게 말하는 유진의 얼굴에는 어딘지 모르게 쓸쓸함이 깃들어져 있었다.  하지만 곧 하고있던 생각을 떨쳐 버렸는지 다시 밝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졸업은 언제 하니?"

"모레에 해요"

"그럼 고등학교에 입학할 날이 멀지 않았네"

"그런셈이죠"

"아주머니가 자랑스러워 하시겠다"

"뭘요. 당연한건데요"

유진의 말에 태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도 고생하시면서 키운 자식이 그러는걸 보면 감격해 하시지"

"빨리 커서 돈벌어 가지고 엄마가 책방을 안하시고 편히 사시게 해드렸으면 좋겠어요"

"그럼 나는 어디서 책을 사라고?"

"그런 문제가 있었네요"

그러면서 태수와 유진은 함께 웃음을 내지었다.

"참, 저번주에 누나가 줬던 음악들 정말 좋던데요. 그런데 첫번째로 나왔던 'A Whiter Shade of Pale'인가? 그노래 부른 사람들이 누구에요? 많이 들어보던 음이던데"

"Procol Harum? 그노래 좋지?"

"네. 음이 너무 귀에 익어서 어디서 들었나하고 기억하느라 혼났어요"

"그랬을거야. 그노래는 바하의 음악을 이용해서 만든거야"

"음악시간에 배우는 바하요?"

"응. 바하가 작곡한 'Sleepers Awake'라는 칸타타를 편곡해서 노래가사를 붙힌거야. 칸타타라는것은 주일예배를 위해서 쓰는 곡이거든. 나중에는 결혼식같은 행사에서도 쓰여졌다고 하더라"

"어쩐지 귀에 익었다고 했어요. 그런 클래식음악이 대중음악에 쓰여졌다니 신기하네요"

"그런노래들이 많이 있어.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도 베토벤의 음악을 사용했잖아. 비록 도입부에서만 쓰였지만"

"정말 그러네요"

"Procol Harum은 60년대 말에서 70년대까지 활동했던 영국그룹인데 클래식음악을 사용해서 클래시컬 록이란 음악을 했었어. 'A Whiter Shade of Pale'은 그들의 가장 성공했던 곡이었지"

유진의 설명을 들으며 태수는 감탄을 했다.

"누나는 참 많이도 아네요"

"그분야에 흥미를 가지고 있으면 공부하는것 보다 더 쉽게 배우게 되잖아. 너도 관심있는것이 있으면 더 빨리 머리에 들어오지 않니?"

"맞아요. 그래서 누나말대로 하고싶은것을 하는게 중요한가봐요"

조용한 미소를 짓던 유진은 좀더 태수와 얘기를 나누다가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책을 산다음 돌아서다가 문득 물었다.

"아버지산소에서 아주머니는 어떠셨니? 슬퍼하시든?"

화들짝 놀란 태수는 무표정으로 서있는 유진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예"

"눈물도 흘리셨어?"

"그러시지는 않으셨는데 제생각으로는 참으셨던거 같애요"

잠시 바닥을 쳐다보던 유진은 착잡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 아빠는 엄마를 찾아가신지가 오래되셨거든. 그러고보면 너희아버지는 참으로 행복한 분이시다. 돌아가셨어도 슬퍼해줄 배우자가 계시잖아"

그런다음 힘없는 웃음을 짓더니 인사를 하고 나가버렸다.  창문으로 간 태수에게는 걸어가는 유진의 뒷모습이 매우 쓸쓸하게 보였다.

이틀후는 졸업식이었다.  태수와 선규에게는 중학교생활을 마치는거에 대한 아쉬움과 고등학교에 들어가는 기대감과 두려움등이 섞여있었다.  이날만은 혜영과 명숙도 잠시 가게문들을 닫고 학교에 찾아왔다.  졸업을 하는 아들들을 보니 뿌듯했고 감개가 무량하기까지 했다.  3년전에 태수와 선규가 입학했었을때는 그들은 각각 책방과 약국의 자리들을 잡느라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무단히 고생했었다.  그런데 엊그제같았던 그때가 벌써 눈깜짝할 사이에 이렇게 지나간 것이었다.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는 혜영과 명숙은 별탈없이 중학교를 무사히 마쳐준 자식들이 그저 고맙기만 했다.  그러면서 적은수였지만 아버지들도 찾아와준 아이들을 볼때면 마음이 착잡해져서 저절로 한숨이 나오기도 했다.  아이들이 졸업장을 가지고 달려오자 명숙의 제안으로 모두들 밥을 사먹으러 갔다.  고기집에 들어간 그들은 상을 사이에 두고 모자들끼리 각각 마주보며 앉았다.  오래간만에 보는 혜영과 명숙은 그동안 아들과의 일때문에 서로를 보기가 어쩐지 어색했다.  각자 상대방이 눈치채지는 않나하는 불안감이 들었고 은근히 상대방과 아들의 사이를 저도모르게 살피고 있었다.  하지만 태수와 선규는 아무렇지도 않은듯 웃고 얘기하며 열심히 고기를 집어먹고 있었다.  고기를 굽던 혜영은 조심스럽게 말을 먼저 꺼냈다.

"신기하지 않니? 얘네들 같은 학교에 된거"

"글쎄말이야. 나도 그얘기를 듣고 깜짝 놀랬어. 우리들은 고작 대학교만 같이 다녔는데 자식들은 어떻게 국민학교에서부터 같은 학교가 되냐?"

"태수와 선규사이에 인연이 많나보지"

"그런가보다. 요즘 책방은 잘돼?"

"응. 졸업시즌이라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꽤 많아. 너는 어떠니?"

"약국이야 어느때나 다 똑같지, 뭐. 항상 아픈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잖아. 참, 저번에 태수를 통해서 갖다준 음식들 고맙게 잘먹었다.  아주 맛있더라"

"그래? 다행이구나. 우리 어머님께서 솜씨가 좋으시거든"

명숙은 혜영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물었다.

"태수아버지께는 갔다왔었니?"

"응. 시아버님이 자주 챙겨주셔서 산소가 깨끗하더라"

"오래간만에 가보는거라 마음이 그랬겠다"

"이미 그렇게 된 사람인데 이제는 받아들이고 살아야지"

착잡한 표정을 짓던 혜영과 명숙은 문득 옆이 조용해진것을 느껴서 돌아다보니 태수와 선규가 묘한 얼굴로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순간 명숙은 화들짝 놀랬으나 혜영은 태연하게 고기들을 건네주며 말했다.

"왜 안먹니? 너희들때문에 온건데"

"엄마는 안드세요?"

그러면서 태수가 고기들을 혜영의 접시에 덜어주자 그광경을 보고있던 선규도 얼른 고기들을 명숙에게 덜어주었다.

"엄마도 왜 안먹는거야? 점심 안먹었잖아"

그러한 아들들을 멍하니 보고있던 혜영과 명숙은 다시 서로를 마주보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도 우리들은 자식들을 효자로 뒀네"

"그러게 말이야. 얘네들이 나중에 결혼해서 나가면 적적하겠지?"

"그러겠지, 뭐. 그러면 심심하지않게 우리둘이 함께 양로원에 들어가서 살면 되잖아"

"맞다, 맞어"

옆에서 깔깔거리며 웃고있는 엄마들을 태수와 선규는 섭섭한 표정을 지으며 보고있었다.

그날밤 선규가 화장실문을 열고 들어가자 엄마는 팬티에 무엇인가를 붙히고 있다가 깜짝 놀랬다.  

"지금 뭐하는거야?"

엉거주춤 서서 우물쭈물하던 엄마는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했다.

"패드하는거야"

"패드?"

"응. 나 오늘부터 생리를 시작했거든"

"아, 그럼 이게 바로 여자들이 생리할때 착용하는 패드야?"

"응"

"한번 만져봐도 돼?"

얼굴이 새빨개진 엄마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거렸다.  엄마팬티안에 반쯤 붙혀져있는 패드는 하얗고 부드러우면서도 아주 얇은 매트리스처럼 딱딱하기도 하였다.  애기귀저기처럼 생겼고 둘레에는 접착할수 있도록 테이프같은것이 붙어있었다.  패드라는 말을 여러번 들어본 선규한테는 실제로 직접보니 호기심이 일어나고 매우 신기했다.

"생리할때 이걸 착용한단 말이야?"

"응"

"답답하지 않아?"

"그렇지는 않아. 피가 새어나가지를 않으니까 오히려 편하지"

"피가 많이 나와?"

"첫이틀이나 사흘동안은 그래"

이리저리 패드를 살펴보던 선규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많이 아퍼?"

"좀 배가 아퍼"

"여자들은 안됐다. 생리를 매달 해야되잖아"

엄마는 웃으면서 패드를 마저 붙히고 팬티를 끌어올렸다.

"알아주면 됐어"

"생리는 몇살정도가 되면 안하게 돼?"

"사람마다 다른데 나이가 들면 안하게 돼. 빠른 사람은 40대에서도 끝나고 늦는 사람은 60대까지고 갈수 있어"

"엄마는 빨리 생리를 안하게 됐으면 좋겠다. 그러면 매달 아프지 않아도 되잖아"

그말에 엄마는 피식 웃었다.

"여자가 더이상 생리를 안하게 되면 슬픈일이야. 더이상 애도 못낳는다는 소린데 그건 이제 여자가 아니라는 소리거든. 그리고 생리를 한다는거는 건강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래? 그럼 엄마는 백살이 될때까지 생리해라"

그러자 엄마는 웃음을 터트리며 선규의 볼을 잡고 흔들었다.

"으이구, 그런 끔찍한 소리 하지마라. 그렇게 늙어서도 그러면 주책이야"

함께 웃던 선규는 아까 태수네와 밥먹을때 엄마들이 했던 얘기가 떠올라서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엄마, 나이들면 정말로 양로원에 가서 살고싶어?"

잠옷바지를 입던 엄마는 그런말을 하는 선규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몰라. 하지만 늙으면 혼자가 될텐데 그것도 좋은방법이긴 하겠지"

"엄마가 왜 혼자가 돼? 옆에 내가 있을텐데"

"너도 결혼해서 네가정을 꾸리고 살아야 할텐데 언제까지 내옆에 있을수는 없잖아"

"엄마와 죽을때까지 함께 살겠다고 말했었잖아. 결혼같은거는 안할테니 그런 생각하지마"

한동안 그를 바라보던 엄마는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런말 하지마. 당연히 결혼하고 네인생을 살아야 하는데 왜 나하고 같이 사니? 네가 자꾸 그런 생각을 갖는다면 나는 괴로워서 더이상 너와 이렇게 살수없어. 약속해줘. 반드시 네짝을 만나 결혼하겠다고"

엄마를 무표정으로 바라보던 선규는 침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마음에 드는 여자가 나오면 그렇게 할게"

그말을 듣자 엄마는 밝은 웃음을 지으며 선규를 껴안아줬다.

"그래야지. 꼭 네짝이 나올거야"

기뻐서 그의 등을 다독거려주는 엄마와는 달리 선규는 어두운 얼굴로 긴한숨을 내쉬었다.

여러날이 지나서 태수는 저녁에 대통령취임식을 녹화한걸 보여주는 뉴스를 시청하고 있었다.  새로 취임한 대통령이 한참동안 연설을 하고있는데 엄마가 방안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텔레비젼 화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인상을 찡그리며 앉았다.

"엄마, 이제 군사정권이 없어진다는게 신기하죠?"

"그렇기는 하다만 사람들이 잘살도록 해줘야지"

"잘 하겠죠. 국민들의 기대도 크잖아요"

"나도 모르겠다. 옛날의 네아버지가 그러더라. 저런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위해서 싸우는거는 훌륭한 일인데 대통령은 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왜요?"

"단식이니 투쟁이니 그런거만 해서 국정에 대한 경험은 전혀 없으니까 저런 사람들이 갑자기 대통령이 되면 나라에 혼란이 올지도 모른데"

"그거야 야당사람들이 국정에 참여할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어떡할수가 없는일이잖아요"

"그래서 네아버지는 어떡해서든지 야당사람들을 국회의원 같은거말고 국정에 참여시켜 그사람들을 밀어야 한다고 그러더라"

"그럼 엄마는 새로 된 대통령이 잘 못할거 같다는 말씀이세요?"

"내가 뭘 아니? 그냥 네아버지가 하는말을 옆에서 들은것 뿐인데. 하지만 나는 정치하는 사람들을 안믿어. 정치인들이 제일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들이란 말도 있잖아"

그말을 듣고 태수는 웃음을 지었다.

"맞아요. 그런말이 있어요"

"난 그냥 죄없는 사람들을 잡아가지 않고 국민들을 생각하며 일했으면 좋겠다.  저사람이 저렇게 된것도 네아버지같은 사람이나 죄없는 학생들의 희생으로 선거가 생겨 저자리에 올라간건데 열심히 일해야지"

심란한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보던 엄마는 갑자기 고개를 돌려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너는 옆에서 누가 하래도 절대로 정치같은거는 하지마라. 아니, 정치에 관련된 일은 아무것도 하지마. 저런거 하면 주위가 복잡해지고 한순간에 잘못될수도 있어"

"저도 정치하는거에는 관심없어요"

"네아버지때문에 세상일에 관련된 일이라면 치가 떨린다. 그러니 의사나 공학박사같은거를 해"

"엄마는 제가 하고싶은것을 하는걸 바라지 않으세요?"

그러자 엄마는 정색을 하며 쳐다보았다.

"하고싶은게 있니?"

"아직은 정하지 않았지만 의사나 공학박사 같은게 아닐수도 있잖아요"

태수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던 엄마는 이윽고 고개를 들었다.

"네가 하고싶은것이 있으면 당연히 그걸 해야지. 하지만 네아버지처럼 되는일은 절대로 하지마라. 너까지 그러면 내가슴에 두번이나 못박는거다"

슬프게 보이는 엄마의 말을 듣던 태수는 살며시 그녀를 안았다.

"절대로 그러지를 않을거니까 안심하세요"

한동안 포옹을 하고있던 태수는 몸을 움직여 엄마의 얼굴을 보니 어느새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울지마세요. 엄마를 걱정시키지 않는다고 약속드렸었잖아요. 이제 그만 들어가서 자요. 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엄마를 보고 태수는 텔레비젼을 끈다음 그녀를 들어안아 방으로 데려갔다.

태수와 선규는 드디어 고등학생이 되었다.  입학식이 끝나고 배정받은 교실로 들어가면서 태수가 입을 열었다.

"같은 학교가 된것도 신기한데 어떻게 또 같은반까지 되냐?"

"글쎄말이야. 신기하지? 우리가 전생에 부부였나? 이러다간 죽는날도 같겠다"

선규의 말에 태수는 너털웃음을 내지었다.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너와 나사이에는 특별한 인연이 있나봐"

"그런데 하필이면 남자학교에 걸리냐? 주위를 둘러봐도 온사방에 머슴아들밖에 없네"

"어떠냐? 어차피 이제부터는 죽어라고 공부만 해야 할텐데"

하지만 선규는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투덜거렸다.

"아까 멀리 서있던 선생님들을 보니 대부분이 남자선생님들이던데 담임도 남자선생님이 걸리나보다"

"어떻게 넌 생각하는게 그러냐? 그병을 언제 고칠래?"

그러면서 태수는 선규의 어깨를 잡고 함께 교실로 들어갔다.  

모두들 앉아 기다리는데 문이 열리며 교과서들을 든 남자들 몇명이 들어오고 그뒤로 여자 한명이 들어왔다.  그러자 선규의 입에서는 외마디 비명이 나올뻔 했다.  그여자는 바로 선규가 신문배달을 할때 창문을 열고 섹스하던 남녀의 집근처에 사는 여자였다.

[저사람이 여기는 왠일이야? 서..설마?]

남자들이 교과서들을 풀어 맨앞에 앉아있는 학생들에게 건네주기 시작하자 여자는 교단에 서서 잠시 학생들을 살펴보더니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앞으로 너희들의 담임을 맡게될 선생님이야"

여자가 그를 알아볼까봐 고개를 숙이고있던 선규는 그소리에 눈을 질끔 감았다.  앞으로 1년동안 그의 담임을 맡게될 여자가 그동안 자신을 볼때마다 차갑고 이상한 얼굴로 쳐다보던것이 생각나서 앞이 캄캄했다.  원래 신문배달을 하는 집들의 사람들이 그를 볼때마다 무표정으로 대하기는 했으나 이여자만은 이상하게도 왠지모를 불편함을 줬었다.  항상 그녀의 얼굴을 볼때마다 근처집에서 나는 신음소리들을 엿들은걸 아는것 같아서 창피함과 겁이 덜컹 생기곤 했었다.  그런데 바로 그여자와 앞으로 1년동안을 마주치며 학교를 다녀야 하는것이었다.

[어..어떻게 이런일이? 세상이 좁다고는 하지만 하필이면 이여자가 담임이 될게 뭐야?]

여자는 돌아서더니 칠판에 정희경이라는 이름을 적었다.  

"이게 내이름이고 난 음악을 가르쳐. 앞으로 1년동안 잘 지내보자"

그다음부터는 선생님이 무슨말을 하는지 선규에게는 하나도 들리지가 않았다.  이윽고 모든것이 끝나고 교문으로 걸어가면서 태수는 그의 등을 두드렸다.

"좋겠다. 그렇게나 원하던 여자담임선생님을 만났으니"

웃고있는 태수를 바라보며 선규는 죽을상을 지었다.

"그러지마. 나는 심각하단 말이야"

"왠일이냐? 좋아할줄 알았는데"

저번에 태수의 말도 있고해서 말을 하기가 망설여졌지만 속이 너무 답답해서 모든걸 말해주었다.  그러자 태수는 두눈을 커다랗게 뜨며 놀랬다.

"그런일이 있었단말이야?"

"그래"

"그러게 내가 조심하라고 그랬잖아"

"그럼 어떡하냐? 들으라고 내는 소리인데. 나도 안들을려고 했지만 이 혈기왕성한 나이에 어떻게 그냥 지나칠수가 있었겠냐? 너도 거기에 있었으면 나처럼 똑같이 그랬을걸"

"그럼 선생님이 네가 그걸 듣고있었단걸 아신단말이야?"

"모르겠어. 나를 쳐다보는 표정으로 봐서는 그런거 같기도 한데. 설마 모르시겠지?"

"하여튼 너때문에 미치겠다"

"남의 일보듯이 그러지마. 난 지금 굉장히 심각하단 말이야. 전학갈 생각도 하고있어"

"뭐?"

"선생님이 그걸 알고있다면 날 이상한놈으로 볼텐데 그럼 어떻게 학교를 다니냐?"

가만히 바라보던 태수는 축 처진 선규의 어깨를 감싸며 위로했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마. 선생님이 진짜로 모르실수도 있잖아"

"그랬으면 오죽 좋겠냐?"

그러는 선규의 입에서는 땅이 꺼질듯한 한숨이 계속해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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